대부분 그렇겠지만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하는 책이 일치하는 건 아니다. 지난주 신간 중에 앤드류 달비의 <언어의 종말>(작가정신, 2008) 같은 책은 단박에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올려두었지만(물론 그렇다고 억지로 읽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아프리카 !쿵족 여성의 삶을 다룬 <니사>(삼인출판사, 2008)나 교양과학서 <보살핌>(사이언스북스, 2008)은 '읽고 싶은 책'이지만 당장에는 여유를 갖기는 어려운 책이다(하여 '그림의 책'이다). 두 책의 공통점이라면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될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리뷰들을 옮겨놓고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를 갈면서까지는 아니겠으나 속은 조금 쓰리다...

한국일보(08. 09. 27) 아프리카 '!쿵'族 여인들이 사는법

"대개 일생 동안 두 번 이상 결혼하며, 적어도 한 번은 장기간의 결혼을 경험한다. 이혼으로 결혼이 깨지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이혼은 보통 결혼 첫 몇년 사이 아이가 생기기 이전에 여성 쪽 주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187쪽)

이혼과 동거가 다반사처럼 돼가는 이곳 이야기가 아니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도 오지인 칼리하리 사막 북부의 흑인 부족 '!쿵' 족의 생활을 손금 보듯 기록한 인류학의 고전 <니사> 중 한 구절이다. '!쿵'이란 "쯧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를 나타내는 음성기호(!)를 사용해 표현한 아프리카의 독특한 발성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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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이 자유로운 !쿵족이지만 첫 아이를 낳은 뒤로는 남은 일생동안 자녀를 키우는 일에 몰두한다.

이 책은 '서구 문명'이라는 형식은 세계의 극히 작은 일부라는 사실을 웅변하는 인류학적 연구의 보고다. 서구 문명과 전혀 다른 세계를, 현지인들의 시각으로 올곧게 재현한다는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들에게도 문화의 형식이 있고, 사랑이 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있다. 책은 구미 사회의 대격동기였던 1969년부터 1980년까지 전문가들이 펼친 인터뷰와 현지조사를 토대로 1981년 출간됐다.

저자는 여성주의의 시각을 감추지 않는다. "사랑, 결혼, 섹슈얼리티, 일, 정체성 등 여성성의 문제에 씨름하는 젊은 여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저자는 "그들과 나눈 수백여건의 인터뷰를 통해 인간의 감정은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서두에서 밝힌다. '니사'는 그 중 특히 입심 좋은 여인의 이름이다.

이 책은 인류학 민족지의 모범을 구현한 고전으로 대접받고 있다. 오랫동안 무시돼온 토착민ㆍ문맹자ㆍ여성의 입장에 충실, 세계를 보는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했다. 저자가 현지인들의 바람대로 담배를 줄 것인지, 인터뷰에 응한 대가로 돈을 줘야 하는지, 고유 문화를 보존한다면서 알게 모르게 오염시키는 것은 아닌지 등을 두고 고민하는 모습 등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보편성은 특수성과 어떻게 결합하는가? 예를 들어 섹스 문제를 보자. "!쿵 사람들은 사람이 섹스에 굶주려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365쪽) 거기 대한 책의 풀이는 이러하다. "식량 자원을 예측하기 힘들고 식량이 끊임없는 관심사인 사람들" 특유의 세계관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의료인류학자인 남편의 현지조사를 따라 현장에 갔다가 원주민들의 삶에 매료돼 이 책을 썼다. 1990년 다시 니사를 만나러 현지에 갔던 저자는 장시간의 인터뷰를 남겼다. 그러나 1996년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그 기록은 2000년에야 <니사에게 다시 가 보니>라는 유작으로 빛을 보았다.(장병욱기자)

문화일보(08. 09. 26) 인간 본성은… 따뜻하다

1948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의학연구자 엘지 위도슨은 식생활이 아이들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실험에 들어갔다. 고아원 두 곳을 택해 한 곳에만 6개월간 빵과 잼 등을 추가로 지원했다. 그런데 연구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추가로 식품을 지원받지 않은 A고아원의 아이들은 잘 자란 반면, 식품을 지원받은 B고아원의 아이들은 거의 자라지 않은 것. 머리를 갸웃거리며 위도슨은 그 다음 6개월간 두 고아원의 조건을 바꿨다.

연구 결과는 또다시 연구자를 놀라게 했다. 더 이상 추가 식품을 지원받지 못한 B고아원의 아이들은 빠르게 자라기 시작한 반면, 새롭게 지원받은 A고아원 아이들의 성장은 오히려 둔화되었다. 위도슨은 이유를 찾기 위해 고아원에 대한 직접 조사를 벌였고, 원인을 알아냈다. 이유는 식품이 아니라 원장이었다. 연구를 시작할 당시 B고아원의 원장은 엄격하고 강압적인 여성이었는데, 그녀가 6개월 후 A고아원으로 옮긴 것. 추가 식품의 지원 여부에 따라 아이들의 성장이 달라진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원장의 강압적인 양육태도가 아이들 성장을 방해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다. 그런데 사랑과 관심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또 하나의 사례인데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저자는 보살핌이라는 긍정적인 힘에 대한 인정을 넘어 보살핌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보살핌 본성론’의 출발은 두 가지 과학, 사회적 흐름에 대한 반격으로 시작한다. 하나는 인간의 공격성, 이기심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며, 인간 사회는 전쟁터라는 ‘투쟁’론이다. 또 다른 하나는 보살핌을 여성의 모성애와 연결시키고 모성애를 여성의 활동을 옥죄는 이데올로기 기제로 작용시키는 것이다. 이어 저자는 보살핌 본능을 ‘스트레스 상황’을 통해 설명한다.

즉 기존의 공격적인 인간 본성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도피해버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보살핌의 본성이 작용, 사람들은 오히려 서로 어울려 보살피는 행동을 통해 스트레스에 효과적으로 대처한다고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어미와 아기의 강렬한 애착부터 차모임, 계모임 등 문화권에 따라 형태는 다르지만 여성들간의 사회적 유대를 강화시키는 각종 모임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보살피려는 인간 본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 적의 위협과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남성이 맞서 싸우거나 도망치는 데 비해 여성, 특히 어머니는 자식들을 품에 안고 오히려 침착하게 다독이며 애정을 쏟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남성은 공격성을 증가시키는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받는 반면, 여성은 옥시토신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저자는 육아, 결혼, 사회생활 등을 넘나들며 보살핌의 본능을 추적한 뒤, 결국 인간이 태곳적부터 지니고 있는 보살핌 본성을 사회적 시스템화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긍정적 바람으로 끝을 맺는다.(최현미기자)

08. 09. 28.

 

 

 

 

 

 

P.S. '쿵족'이 아니라 '!쿵족'이다. 예전에 인류학 관련서를 읽다가 '!쿵'이란 표기 때문에 인상에 남았던 부족이라서 이번에 출간된 <니사>가 반갑다. 언젠가는 나폴레옹 샤농의 <야노마모>(파스칼북스, 2003)와 함께 꼭 비교해서 읽어보고 싶다(오래전부터 미뤄놓은 '숙제'다). 한편, 셸리 테일러의 '보살핌 본성' 혹은 '보살핌 본능'이 떠올리게 해주는 책은 '보살핌의 윤리'에 관한 것들이다. 얼른 생각나는 건 한국현상학회에서 펴낸 <보살핌의 현상학>(철학과현실사, 2002). 레비나스의 윤리학 등이 다뤄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이미 절판된 것으로 나오는데, 캐롤 길리건의 유명한 책 <다른 목소리로>(동녘, 1997). 저자는 남성과 여성의 도덕적 정향이 각기 다르게 설정돼 있다고 주장한다. 보편성 대신에 관계지향성을 내세우는 여성은 '보살핌'에 더 적극적인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 <보살핌>과 같이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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