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출간됐지만 무심코 지나쳐버렸다가 오늘에서야 '발동'이 걸린 책이 있다. 과학저술가 필립 볼의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까치, 2008)가 그것이다. 책 표지만 보고 그렇고 그런 교양과학서겠거니 생각했지만 목차를 보니 좀더 근사한 책이란 걸 알 수 있다('사회물리학'이라니!). 최근에 나온 교양과학서들 가운데서는 가장 먼저 읽고픈 책이다(우울한 것은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이지만). 아니 사회학 책인가?! 지난주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8. 09. 20) 인간행동·관계 속에 존재하는 물리학법칙

물리학은 물질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다. 그런데 지난 20여년 동안 이 분야에선 특별한 일이 진행되어 왔다. 물질세계를 이해하려고 개발했던 방법과 아이디어들이 뜻밖의 분야에 응용되기 시작했다. 물리학이 사람들의 상호작용과 사회적 행동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는 ‘사회의 물리학’(physics of society)이 부상한 것이다. 물리학은 열린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결정하고 투표하며, 어떻게 집단과 조직을 형성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틀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금융시장의 움직임이나 사회적·상업적 네트워크에 숨겨진 구조를 밝혀내고 갈등과 협력의 정치학을 분석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는 이처럼 물리학을 사회학·정치학·경제학 등에 결합시킨 새로운 사회물리학의 역사적 궤적과 최근 동향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저명한 과학저술가인 저자는 토머스 홉스와 애덤 스미스에서부터 게임이론과 인터넷 네트워크에 대한 현대적 연구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을 통해 사회를 이해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을 풍부하게 제시하는 한편 사회물리학의 한계와 위험성에 대해서도 살폈다.

사회물리학을 모색했던 최초의 인물은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였다. 그는 더 이상 단순화할 수 없고 자명하다고 믿는 공리(公理)로부터 인간의 상호작용, 정치, 사회에 대한 과학을 정립하고자 했다. 대표작 ‘리바이어던’은 갈릴레오의 역학을 근거로 삼았다. 이 같은 홉스의 사상은 로크 등을 통해 후세의 사상가들에게 전해졌다. 책에는 애덤 스미스, 칸트, 콩트, 밀 등 홉스와 같은 아이디어를 추구했던 이들과 함께 사회물리학의 정립에 기여한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물리학을 통계적인 것으로 만든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 사회통계학을 이용해 정치경제학을 연구한 윌리엄 페티.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이해라는 개념을 널리 확산시킨 천문학자 아돌프 케틀레, 역사 자체를 과학으로 본 헨리 토머스 버클 등이다.

헬빙과 몰나르는 물리학을 바탕으로 보행자들의 움직임에 대한 수학적 모델을 개발했다. 하나의 문을 지나가려는 사람들은 일부가 한쪽으로 통과한 후에 다른 방향으로 통과하는 일이 번갈아 일어난다.

사회적 행동을 정량화하려고 시도한 현대 연구자들의 연구와 실험들도 풍부하게 소개된다. 사회물리학은 보행자들의 흐름에서 전기 전하를 가진 입자들에게 작용하는 전자기 힘과 비슷한 사회적 압력을 읽어내고, 도시 팽창의 복잡한 유기적 성격의 실마리를 박테리아 군체의 비평형 성장과정에 대한 연구에서 찾는다. 덩어리가 커질수록 더 빨리 성장하고 작은 덩어리들은 사라지거나 다른 덩어리에 의해서 삼켜지는 ‘오스트발트 성숙’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기업인수와 세계화와 연결된다. 물리학은 왜 정체가 생기는지를 이해하고 주가의 움직임 등 경제를 예측하려는 시도들에도 개입한다.

책에는 상전이, 멱법칙, 자기조직화 패턴, 집단적 움직임, 무규모 네트워크 등 낯선 개념들이 등장하지만 흥미로운 실험 사례들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미국 배우 케빈 베이컨이 다른 배우와 몇 단계를 거치면 아는 사이인지 파악하는 ‘케빈 베이컨 게임’의 다양한 ‘버전’들이 나오기도 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 17개 국가들의 제휴관계를 거의 흡사하게 재현해내는 실험도 소개된다.

저자는 “인간이 자신의 의사대로 행동하는 이유를 전혀 모르더라도 그들이 집단적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렇지만 사회물리학이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단언한다. “개인적 책임과 집단적 책임을 어떻게 정의하며, 삶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가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는 사회물리학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김진우기자)

08. 09. 27.

P.S. 알라딘에서 검색되는 원서의 표지는 국역본 이상으로 심심하다. 찾아보니 좀더 근사한 다른 표지가 있다.

표지에 국역본에서와 마찬가지로 '2005년도 아벤티스 과학저술상 수상작'이라고 적혀 있다. 그게 어떤 상인지 일반독자로선 알 수가 없지만, 스티븐 호킹의 <호두껍질 속의 우주>(2002년)와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2004년)가 이전 수상작이라고 하니 허튼 상은 아니다. 역자인 이덕환 교수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까치, 2003)도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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