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개정판 성경의 오역을 지적하는 책이 출간되어 기독교계에서는 화제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강원주 목사가 <개역개정판에 대해 말한다>(도서출판 소망, 2008)에서 제기한 것이다. 책은 이달에 나왔을 듯한데, 둘러보니 아직 파는 곳도 없고 이미지도 전혀 뜨지 않는다. 관련기사만 번역관련 자료로 스크랩해놓는다.

강원주 목사는 장신대 기독교교육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총회신학연구원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세계선교회 대표를 맡고 있으며,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크리스천투데이(08. 09. 02) “개역개정판, 8백여곳 잘못 번역됐다”

개역개정판 성경의 오역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예장합동과 통합, 고신 등 주요 교단에서 이미 개역개정판을 사용하고 있는 가운데 장신대 출신 강원주 목사가 1일 서울 연지동 한국교회언론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개역판은 개정(改正)이 아닌 개악(改惡)”이라고 주장했다. 강원주 목사는 이날 자신이 쓴 ‘개역개정판에 대해 말한다(도서출판 소망)’을 들고 나왔다. 이 책에는 개역성경의 바른 번역을 개역개정판에서 왜곡한 8백여곳의 사례를 분석하고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과 대조해 해설했다.

기자회견에서 강 목사는 “‘7만3천여곳이 수정됐으므로 그래도 개역판보다는 개역개정판이 낫지 않겠느냐’고 개정위원들은 말하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라며 “수정된 부분의 대다수는 현행 맞춤법에 따라 고친 것이지만, 문제는 원문과의 비교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강 목사는 구체적인 오역 사례로 창세기 27장 34절의 ‘에서가 그 아비의 말을 듣고 방성 대곡하며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의 ‘방성 대곡’을 개역개정판에서는 ‘소리내어 울며’로 바꾼 것을 들었다. 그는 “히브리어 원문으로는 에서가 우는 모양을 ‘매우 크게, 격동적으로 심히 울부짖는’이라는 뜻의 6개나 되는 단어를 사용해 수식하고 있다”며 “개역개정판의 번역은 원문의 의미를 약화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수기 11장 6절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를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라고 개정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개역판은 만나 외에는 먹지 못해 기운이 다 빠졌는데도 먹을 것이라고는 만나밖에 없다는 뜻인데, 개역개정판은 기력이 다 빠져서 다른 음식이 있음에도 만나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현대어로 바꾸려면 차라리 ‘우리의 기력이 다하되’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기자들이 신학적으로 결정적인 문제를 불러올 수 있는 오역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신약 고린도전서 1장 30절과 로마서 4장 17절을 들었다. 고린도전서 1장 30절의 개역판에는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라고 돼 있으나, 개역개정판에는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라고 돼 있다. 강 목사는 이에 대해 “구속과 구원은 엄연히 원문상으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이것(구속과 구원의 차이)은 신학교에 가면 가장 기초적으로 배우는 것들”이라고 주장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는 로마서 4장 17절 말씀도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분을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로 번역한 것이 잘못됐다고 밝혔다. 개역개정판의 번역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표현이며, 신학적으로 중요한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강 목사는 개역개정판을 만들 당시 개정감수위원들의 발언을 인용하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개정감수위원회 서기였던 김중은 총장(장신대)은 강 목사와 지난 2004년에 만난 자리에서 “감수작업을 위해 최소한 3개월의 시간을 더 달라고 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강 목사가 밝혔다. 당시 김 총장이 그에 대한 보수를 받지 않겠다고까지 하면서 개정감수위 측에 강력히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정감수위원회의 또다른 서기였던 도한호 총장(침신대)의 논문 ‘개역개정의 의의와 방법’에 나와있는 진술도 언급됐다. 도 총장은 논문에서 “시간에 너무 쫓겨 처음 계획대로 할 수 없었고, 작업을 서두르다 원문 확인없이 개정될 우려가 있었다”고 했다고 강 목사는 덧붙였다. 강 목사는 “개정개역판을 사용하는 교회들은 곧바로 이를 중단해야 하며, 성경공회(*성서공회) 측은 한국교회 앞에 사과하고 개역개정판 보급을 당장 중지하며, 이를 회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이대웅기자)

08. 09. 07.

P.S. 기사를 읽다 보니 생각나는 책은 앙드레 라콕과 폴 리쾨르(리꾀르)가 쓴 <성서의 새로운 이해>(살림, 2006)이다. 부분적으로 읽다가 말긴 했는데, 모름지기 기독교인이라면 성서 무오류주의를 신봉하며 전문쓰기 같은 것에 정성을 들이기보다는 이런 책이라도 음미해가며 읽어봄 직하다. 책의 요점은 이렇다.

지금 우리가 읽는 구약성서는 기원전 3세기에 그리스어로 번역되면서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 서로 융합된 결과물이다. 이 책은 이 점에 힌트를 얻어 헤브라이즘의 편에 서 있는 구약학자(앙드레 라콕)와 헬레니즘의 정신을 이어받은 철학자(폴 리꾀르)가 성서를 두 가지 관점에서 새로이 이야기한다. 선악과, 십계명, 하나님의 이름 등 구약성서의 주요한 주제들을 주석학과 해석학의 방법론을 통해 다룬다. 이 책에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철학과 신학은 서로의 빈 공간을 채우는 방식으로 생산적인 담론을 구성한다. 성서학자인 라콕의 연구결과에 대해 철학자인 리꾀르가 응답을 하면 두 저자는 서로의 글을 읽고 각각의 글을 보완하는 식이다. 십계명이 원래는 금기가 아닌 '한계'를 의미했다거나, 선악의 인식이 결국엔 인간에게 필요한 도전이었다는 성찰 등 흥미로운 해석과 견해를 담았다. 더 나아가 성서 번역의 역사 자체가 해석의 역사임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마지막 멘트처럼 "성서 번역의 역사 자체가 해석의 역사"라는 것 정도는 상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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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9-07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신도가 성서해석학이나 교회사 공부하면 성직자들이 그다지 안 좋아하는데...그러고 보니 성경해석 공부한지도 꽤 되었네요.폴 리꾀르가 이런 책도 냈군요.

로쟈 2008-09-07 22:48   좋아요 0 | URL
사해문서와 관련해서도 음모론이 있더군요. 권력은 무지를 선호하는 듯해요...
 

김우창 교수의 대담집 <세 개의 동그라미>(한길사, 2008)에 관한 기사를 옮겨놓으면서 하버마스가 연상된다고 했는데, 최근에 관심도서 중 하나가 하버마스의 <인식과 관심>이다. 오래전 강영계 교수의 번역본 <인식과 관심>(고려원, 1983)이 출간됐지만(나도 나중에 중고본으로 구입했다) 이미 절판됐고(알라딘에는 1996년판까지 나온 걸로 돼 있다) 번역에 대해서도 시비가 많았다.

내 견문으론 이 책의 번역 문제를 공개적으로 처음 지적한 이가 조선일보의 이한우 기자였다(철학전공자이다). 30대 중반의 젊은 기자가 쓴 <우리의 학맥과 학풍>(문예출판사, 1995)에 보면 '번역, 제대로 합시다'란 부록이 실려 있었고 내 기억에 거기에서 <인식과 관심> 국역본은 일차적인 비판의 대상이었다(우리 언론계에 대해서도 그런 책을 써주면 좋겠다). 이후로 새 번역본을 기대했지만 감감 무소식이다(그 사이에 나는 20대에서 40대가 되었다!). 해서, 흔히 <의사소통행위이론>과 함께 하버마스의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한국어로는 읽을 수 없다. 나는 이런 게 한국 학계의 풍토인 듯싶어서 씁쓸하다. 가끔 영역본이나 뒤적여보는 수밖에. 쓸 만한 기사가 있나 찾아보다가 그래도 핵심을 요약해주고 있는 것이 있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우리의 학맥과 학풍>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이한우기자의 <의사소통행위이론>(나남, 2006)에 대한 리뷰기사도 함께 모아놓는다.

한국일보(03. 10. 10) 하버마스의 「인식과 관심」

「살아있는 고전」 「20세기 현대사상의 거두」 라고 불리는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70). 그는 현대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대상을 사회로 보고 이 사회를 변형시키고 발전시키는 것만이 인간의 소외와 병리 현상을 극복, 자유와 해방을 보장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인식과 관심의 올바른 이해와 결합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하버마스의 사상적 진수가 농축된 저서가 바로 「인식과 관심(Erkenntnis und Interesse)」. 69년 초판이 나온데 이어 후기가 첨가된 증보판이 73년 출간됐다.

하버마스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등의 뒤를 이어 사회비판이론을 정립한 푸랑크프르트학파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철학을 총정리해내는 역할을 했다. 『오늘의 철학은 존재론적 체계의 철학이기를 그치고 과학과 사회, 전통문화, 종교를 비판하는 이론이 되어야 한다』는 하버마스의 철학적 방법론은 「인식과 관심」에도 잘 드러난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에 대한 토대가 된 「인식과 관심」에서 하버마스는 인식이 현실적 욕구나 주관적 이해관계와 초연한 순수 이론적인 측면에서 탐구되어오던 기존의 서구사상을 전면 부정한다. 인식이 인간의 것인 한, 인간의 본래적인 관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며 관심은 오히려 인식을 바른 인식이 되게 하는 조건과 틀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객관적이며 순수하다는 자연과학·경험적 인식에 있어서도 하버마스는 합목적적인 관심, 기술적 유용성의 관심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역사적·해석학적인 학문이나 인식에서도 역시 실천적 관심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밖에 비판이론적인 학문에서는 인간 해방적 관심이 인식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

이러한 관점을 견지한 하버마스는 실증주의자 칼 포퍼의 사회과학이 자연과학화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 자연과학이 사회과학화 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게 했다. 인식과 관심이 바르게 결합할 때 마르크스의 사회비판이론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과 같은 실천적이고 치료적인 이론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사회에 초연하고 무관한 인식이 아니라 성숙과 해방에 관심을 가진 인식은 사회와 역사를 발전시키고 인간의 병리를 치료하게 만든다는 것이다.(배국남기자)

1. 한국 현대지성사의 복원을 위하여
2. 전통학문의 존재방식
3. 동양철학
4. 서양철학
5. 역사학
6. 정치학
7. 법학
8. 부록 : 번역, 제대로 합시다
9. 베끼기에서 시각도용까지, 한국 학계의 표절 백태

"우리의 정신사 형성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인문학의 동양철학 . 서양철학 .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사회학 . 정치학 . 법학 등 6개 분야를 중심으로 우리의 주요 현대 학문들이 해방 이후 어떻게 성장해 왔고, 주요학자들 중에는 어떤 이들이 있으며 현재의 실상은 대략 어떠한가에 관한 것을 다룬 책."(한국 학계의 부정적인 실상을 고발한 책으로는 강성민의 <학계의 금기를 찾아서>(살림, 2004)도 꼽아볼 수 있다. 저자는 교수신문의 기자였다.) 

조선일보(06. 03. 11) 돈과 권력의 문화지배를 막아라

흔히 ‘인식과 관심’과 함께 하버마스의 양대 대표작의 하나로 꼽히는 ‘의사사통행위이론’이 번역됐다. 실은 10여년전에 번역된 적이 있지만 비전공자들의 공동번역으로 인해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제대로 된 첫 번역서가 나온 셈이다. ‘인식과 관심’도 20여년전에 번역됐지만 오역의 창고라는 비판을 받아 재번역을 기다리고 있다. 번역에 관한 한 하버마스는 한국에서 그리 운이 좋았던 편이 아니다. 

‘의사소통행위이론’이 저술된 맥락은 1970년대 구미(歐美)의 철학계와 사회학계였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려면 당시 철학계와 사회학계의 이론적 쟁점들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이 있어야 한다.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사회사상가’를 지향했던 하버마스의 원대한 꿈에 대해서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 책은 베버를 통해 마르크스를 해독(解讀)함으로써, 혹은 해독(解毒)함으로써 하버마스 자신의 사회이론 구축을 위한 토대를 다지려는 것이다. 즉 마르크스와 베버의 뒷 자리를 차지하려는 학문적 야심에서 저술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먼저 의식(意識)철학으로부터의 탈피다. 의식철학이란 칸트에서 시작해 마르크스나 베버에게까지 깊이 스며들어 있는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다. 의식은 곧 이성이었다. 20세기 들면서 의식철학은 다양한 각도에서 비판을 받았다. 특히 언어철학의 등장은 의식철학을 낡은 철학으로 만들어버렸다.

언어적 전환은 유럽이나 미국 모두에서 일어났다. 하버마스는 이같은 성과들을 무비판적일 정도로 고스란히 수용한다. 한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두 사람 이상의 의사소통 행위에서 이성의 토대를 찾아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하버마스는 이론사(理論史)의 재구성에 나선다. 그는 베버가 고민했던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 철학과 사회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면서 베버를 다시 읽는 것이다. 때로는 베버의 선택을 승인하고 때로는 베버의 한계를 지적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하버마스는 2단계로 된 사회이론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언어적 의사소통만으로는 인간행위를 조정하는게 어려워지고, 따라서 언어적 의사소통에 주어지는 과도한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권력이나 화폐와 같은 비언어적 매체를 통해 행위조정이 이루어지는 영역들이 독립하게 된다는 것이다. 언어적 의사소통에 의한 행위의 조정이 이루어지는 영역이 ‘생활세계(Lebenswelt)’였다면 권력이나 화폐같은 비언어적 매체에 의해 조정이 이뤄지는 영역은 ‘체계(System)’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하버마스가 진단하는 현대사회가 핵심문제는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다. 간단히 말하면 문화영역에 돈과 권력의 논리가 침입해 드는 것이 바로 이 식민화다. 결국 대안은 체계가 월권을 행사해 생활세계로 침투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아내는데서 찾아야 한다는게 하버마스의 전략이다. 비판이론의 재생을 염두에 둔 저작치고는 대안이 너무 허약하다. 하버마스가 더 이상 비판이론의 전통에 서 있지 않은 것같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나온 것도 이 책에서다. 그러나 그의 지적 방대함을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글읽기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역작이라는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이한우기자)

08. 09. 07.

P.S. 비판이론과 관련해서 최근에 나온 묵직한 연구서는 세일라 벤하비브의 <비판, 규범, 유토피아>(울력, 2008)다. 요즘 같아선 시장성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종류의 책이기에 출간 자체가 놀랍다. 저자는 예일대학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비판이론 연구의 권위자다. 간략한 책 소개는 이렇다.

헤겔의 작품들에 나타난 비판 개념을 분석하고, 마르크스가 헤겔적인 유산을 어떻게 변형시키는지를 검토하는 것으로 시작해, 헤겔과 마르크스에 의해 발견된 비판의 차원들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작품, 특히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작품에서 어떻게 급진적으로 변화되는지를 보여 준다. 그런 다음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능주의적 이성을 비판하는 하버마스의 프로그램을 토론하고 비판한다. 자연법과 칸트에 대한 헤겔의 비판이 의사소통적 윤리학과 자율성의 프로그램을 진작시킴에 있어 얼마나 생산적으로 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역사적으로, 체계적으로 탐구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연구했던 지성사가 마틴 제이는 이 책에 대해서 "미국에서 비판 이론의 창조적인 발전을 뛰어나게 입증해 주고 있는 사회 철학의 주요 저작"이라고 평했다. 그러고 보면 마틴 제이의 <변증법적 상상력>(돌베개, 1979/1981)도 절판된 지 오래다. 해방적 관심도 재테크적 관심에 완패한 지 이미 오래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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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9-07 10:56   좋아요 0 | URL
하버마스의 강연 모습은 1996년 다산 강좌 때 사진이 아닌가요? 저도 저 자리 어느 구석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그리 오래 전 일 같지 않은데, 벌써 10년도 더 전이라니 새삼 감회가 새롭습니다... <비판, 규범, 유토피아>의 번역 출간 소식은 전혀 챙겨두지 못하고 있던 것인데, 또 역시나 로쟈님 덕분에 잘 갈무리해갑니다. 매번 감사드리기도 이젠 죄송할 지경입니다.^^;

로쟈 2008-09-07 11:0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강당 뒤쪽에 있었습니다.^^ 벤하비브의 책은 8월말에 교보에 들렀다가 발견한 책입니다. <타자의 권리>도 덕분에 챙기게 됐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9-07 17:01   좋아요 0 | URL
이한우 씨가 독일 현대철학을 연구했죠.가다머 책을 번역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요즘은 조선의 왕 평전을 쓰더라구요.이승만 전기 개정판을 보니 더 두툼해졌더군요.인식과 관심 오역은 많이 알려졌죠.

로쟈 2008-09-07 17:00   좋아요 0 | URL
하이데거 전공이고 가다머 연구서를 번역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9-07 17:01   좋아요 0 | URL
오...하이데거를 전공했군요.
 

김우창, 문광훈 교수의 대담집 <세 개의 동그라미>(한길사, 2008)가 출간됐다. 784쪽짜리 책이다. '마음, 이데아, 지각'은 그 부제인데, 아주 두툼하고 그만큼 값도 세다. 그래도 주문을 넣었다. 장회익, 최종덕 교수의 대담집 <이분법을 넘어서>(한길사, 2008)를 유익하게 읽은 기억 때문이다. 예전에 나온 '김우창과의 대화' <행동과 사유>(생각의나무, 2004)에서도 엿본 바 있지만, '우리시대 인문학의 한 모델'의 전모를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도 싶다. 내주에 책을 읽게 되겠지만 미리 리뷰를 챙겨놓는다. 한국일보의 것이다(같이 읽은 건 경향신문의 리뷰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09051659465&code=900308 이며 사진은 거기서 가져왔다).  

한국일보(08. 09. 06) 일상에서 우주까지… 두 교수 '대화의 향연'

인문학의 대가와 후학이 일궈내는 대화의 향연은 이 시대, 삶과 세계에 대한 성찰이 왜 더욱 절실한가를 명징하게 밝혀준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71)와 문광훈 고려대 아시아 문제 연구소 연구교수는 '향연'을 가졌고, 일상에서 우주까지를 대화라는 담론의 그물로 건져 올렸다.

김 교수는 끊임없이 답하고, 문 교수는 쉴새 없이 묻는다. 인문학이라는 그물코로 건져 올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주제다. 이들은 "없는 대량 학살 무기를 있다고 거짓 정보를 만들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와 블레어"(58쪽) 등 해외의 정세를 논하다, "통일은 자유ㆍ민주주의ㆍ풍요한 삶 등 여러 가지 개념과의 연쇄 속에서 얘기돼야"(689쪽)한다며 한국의 미래를 바라본다.

이들의 이야기는 마음이라는 범주를 중심으로 크게 혹은 작게 변주돼 간다. 김 교수는 "아무런 선입견을 갖지 않은, 텅 빈 마음"을 출발점으로 잡는다. 특유의 '정제된 엄밀성'을 향해 나아가기 위함이다. 책에는 어떻게 감정이 성찰의 과정을 거쳐 특유의 '표백된 언어'로 나타나는지가 두 사람의 구체적 언어를 통해 기록돼 있다. 그는 "인문학을 너무 추상적인 개념에 의지하는 것으로 파악한다면 인간 존재의 근본을 상실하게 된다"며 경계를 요청했다.

아주 가끔씩 나오는 현 정부 평가는 인문주의의 현유한 숲에서 독특한 광채를 발한다. 김 교수는 "(현 정부는)부동산이라는 관점에서 자기 집을 평가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늘 만들어 낸다"며 "삶의 안정을 약속하는 아무 대안도 없이 마구 흔들어 놓기만 하는 정책들에 경고를 준 것이 이번에 나온 현 정부의 지지도 조사 결과가 아닌가 하는 느낌"(27쪽)이라며 속내를 비추기도 했다.



대담은 2006년 6~10월 모두 11차례에 걸쳐 김씨의 평창동 자택에서 이뤄졌다. 회당 4~5시간 걸렸던 마라톤 대담이었다. 김 교수는 "문 교수는 대담 전 수십여쪽의 질문지를 작성, 논리와 일관성을 세웠다"며 "퇴고 과정에서도 수정과 보충 등 성의를 다했다"고 밝혔다. 세 개의 동그라미란 인식의 기본 도구인 지각, 이데아, 마음을 뜻한다.(장병욱 기자) 

08. 09. 07.

P.S. 이번에 두 권의 책이 같이 나왔다. 마치 가을로 넘어서자 마자 추수를 보는 듯하다. <전환의 모색>(생각의나무, 2008)은 장회익, 최장집, 도정일, 김우창 4인의 대담을 싣고 있으며,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한 패러다임'이란 주제의 김우창 교수 대담은 박명림 교수가 진행했다. 그리고 곧 출간될 '問 라이브러리'의 첫권 <정의와 정의의 조건>(생각의나무, 2008)도 눈길이 가게 만든다. 136쪽이니까 시집 정도의 분량이고 값 또한 그러하다. 이 시리즈가 장수해서 '포켓 인문학' 시대를 열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기사에서 "김 교수는 "아무런 선입견을 갖지 않은, 텅 빈 마음"을 출발점으로 잡는다"는 대목을 읽을 수 있는데, 김우창 용어로 '자유'가 그 '텅 빈 마음'에 대응하지 않을까 싶다(하지만 그 '자유'와 '텅 빈 마음'은 디폴트값으로 '조건화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우창과 나란히 떠올리게 되는 이름은 하버마스와 롤스이다(<정의와 정의의 조건>은 롤스의 주제이기도 하다). 차이라면 아마도 김우창식 '심미적 이성'의 자리에서 두 이론가들을 수용한 것에 있지 않을까라는 게 내 생각이다(미학의 결여는 하버마스 이론의 구성적 결여이다). 그걸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세 개의 동그라미>에 가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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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9-07 11:02   좋아요 0 | URL
작년에 출간되었던가요, 김우창 전집 5권도 아직 완독을 못한 저로서는 완전 과부하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이 '가을의 추수'를 음미해봐야겠습니다. 김우창 선생의 자택이 참 아늑하고 여유롭게 보이는군요('default value'라는 말씀에 슬쩍 미소 짓습니다^^).

로쟈 2008-09-07 11:06   좋아요 0 | URL
재작년에 재출간되었지요.^^ 입문서로는 대담집이 적격이라 많이들 읽어볼 만하지만, 분량은 좀 부담스러울 듯도 합니다...
 

낮에 재미있게 읽은 한국일보의 인터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인터뷰이는 '영원한 현역 소설가' 황석영이다. <개밥바리기별>(문학동네, 2008)이 그의 말대로 '중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덕분인지 말에 여유가 있고 구라에 힘이 붙었다(그가 눌변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싶지만). 요즘 재밌는 일들도 없는지라 황작가의 구라를 잠시 감상해보는 것도 정신건강을 위해선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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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08. 09. 05) [박선영 기자의 Who's Now] 영원한 현역 소설가 황석영

일찍이 그는 문학사(文學史)의 편애를 받은 복된 작가였다. 생애는 파란만장했으나, 시대와 함께 호흡한 그의 문학은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치우침 없는 사랑을 받았다. 어느덧 문필활동 40여년. 여전히 현역작가로 붓놀림이 유려한 행복한 작가, 그는 황석영(65)이다. 그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했던 소설 <개밥바라기별>이 서점가에 잔잔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노년의 거장이 뒤돌아본 사춘기의 갈등과 방황이 반세기 가까운 시차를 두고 이 시대 어린 청춘들의 가슴에 풍랑을 일으킨 탓이다. 청바지에 흰 남방 차림으로 40대의 인상을 풍기며 약속장소에 나타난 그는 과연 걸출한 입담의 소유자였다. 질문이 끝나지 않아도 대답이 먼저 나오니 이 얼마나 후련한가. '황구라'라는 별명은 역시 거저 얻어진 게 아니었다.

- 오늘 인터뷰는 아주 기대가 큽니다. 조선의 '3대 구라'를 직접 만나는 자리여서요.

"하하하하하. 그래요? 구라도 '3대 라지오'(라디오)가 있고, '3대 교육방송'이 있잖아. 교육방송은 1대가 이어령, 2대가 도올 김용옥이고, 3대가 유홍준. 라지오 3대는 백기완, 방배추, 황석영. 그게 분파로 쫙 갈렸어요."

- 혹시 3대 구라가 다 같이 모여보신 적 있으세요? 누가 제일 세던가요?

"다 같이 모인 적은 없는데, 최근에 50대 후배들이 주축이 돼서 '세기의 대결'이 추진되고 있어요. 70년대에 방구라하고 나하고 대결을 했거든. 그때 막상막하로 가다가 막판에 내가 깨졌지. 그래서 이번엔 모두 모여서 21세기의 대결을 한번 하자. 표를 한 장에 10만원씩 한정판으로 팔아서.(웃음) 날짜 정해지면 새로운 레퍼토리 연습도 하고 그래야 돼요."



- 새 책 <개밥바라기별>이 출간 한 달 만에 11만부나 팔렸다고 하던데요. 베스트셀러 2위더라구요.

"그러게 말야. 아이들한테 그렇게 팔려나가는 모양이지? 고등학생, 사춘기, 20대 고 아이들인데, 요새 내가 고무적인 건 이 젊고 새로운 독자들이에요."

- 소설이 선생님 어린 시절 얘기잖아요. 그래서 든 생각인데, 만약 선생님 자제분이 선생님처럼 학교를 때려치우고 산 속을 헤매고 다닌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사람이 나이가 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보수화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아, 속상하겠죠. 그래서 내가 어머니한테 정말 미안하더라구요. 이걸 쓰다 보니까 내가 우리 어머니를 얼마나 속 썩였는지, 그 40대 과부가 참 대단했다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정말 처음으로 어머니한테 바친다고 헌사를 했는데, 쓰다 보면 울컥 하고 그랬어요.

우리 큰 아이도 나처럼 고등학교 때 퇴학을 맞았어요. 근데 나랑 다른 게 나는 자유주의적인 그런 거였지만, 걔는 광주에서 (5ㆍ18 민주화항쟁을) 겪었잖아요, 꼬마 때. 그리고 우리 집에 맨날 드나든 게 그런 삼촌들이니까 영향을 받아서는 고등학교 때 전고협을 구성하다가 걸려서 잘렸어.

근데 그놈도 검정고시 봐서 대학 들어갔어요. 나랑 비슷한 길을 간 거지. 지금은 제일 유명한 국악 작곡가예요. 재즈밴드도 지가 갖고 있고." (퓨전음악밴드 '우주낙타'를 이끌고 있는 그의 장남 황호준씨 얘기다.)

- 아주 젊은 시절부터 문학사(文學史)의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은 거의 유일한 작가시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지금까지 현역으로 계속해왔다는 것. 그것 보면 참 운도 좋았어요. 그게 아마 중간에 10여년 이상 쫓겨나서 가로 돌고 징역 가고 그런 과정이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건강상으로도 피가 되고 살이 됐던 것 같애요. 왜냐면 그 중간에 빠져 있었으니까. 그때 계속 어울려서 술 먹은 놈들은 다들 빌빌하고 있거든. 하하하.

또 하나는 사회 변화과정을 객관적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 그것도 해외에서. 좋은 기회가 됐죠. 어쨌든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게 다 문학적 우여곡절이었다고 생각이 되기 때문에 문학을 수업하는 과정이었다고 봐요. 글을 못 쓰고 있는 동안 형식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그게 아마 지금 하반기 문학의 밑천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나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다 써도 못 쓸 만큼의 얘깃거리들을 갖고 있거든. 레퍼토리가 너무 많아서 출판사에 물어볼 정도야. 야, 뭐부터 줄까?" (웃음)

- 보통 장편소설들을 신문 연재를 통해 생산해내셨고, 이번 소설도 인터넷 연재 작품이잖아요. 근데 그 연재 스트레스라는 게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원고 펑크 내고 늦기로도 악명 높으신데.

"내가 한국일보에 <장길산> 연재할 때 원고 '빵꾸' 내서 기자들 내지는 데스크를 아주 골치 아프게 한 건 사실이지만, 요샌 거의 '생활의 달인' 식으로 됐어요. 옛날에 빵꾸 내는 과정을 보면 새벽녘까지 한 줄도 못 쓰고, 괜히 자료들 뒤지고 그래요. 두 세줄 쓰다가 찢고 그러다가 때려치고 나가서 방황을 하죠, 새벽거리를. 그리곤 저 모퉁이의 대폿집, 해장국집 가서 술국 시켜서 소주 한 병 훌쩍훌쩍 마시면서 별 생각을 다 하는 거예요. 난 재주가 없구나, 소설 때려치워야겠다, 내일 당장 공고를 내서 난 소설가를 폐업한다 그래야겠다, 뭐 별 절망적인 생각을 다하고 헤매다가 들어와서 자요. 자고 일어나면 좀 나아져있는 거예요.

근데 요새는 무조건 안 돼도 그냥 책상머리에 앉아있어요. 그럼 막혀있다가도 한 시간쯤 생각을 하면 또 생각이 나요. 그러니까 지금은 일정 분량을 일정 기간에 써내야겠다 그러면 쓰는 거야, 딱. 수수해졌다고 할까,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이번에 잘 못 쓰면 다음에 고치거나 다음 작품 잘 쓰지 뭐. 이건 유명한 얘긴데 어떤 선배가 하도 내 원고가 딱딱 제 날짜에 맞춰서 들어오니까 놀래가지고 그러더래. '황석영이를 봐라. 한국 교도행정의 일대 승리다.' 하하하."

- 젊은 작가들한텐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작가라는 점이 참 닮고 싶은 점일 것 같아요.

"그걸 '중박'이라고 그러죠. 내 인생은 중박인생이야. 대박을 하려면 죄를 많이 지어야 돼. 욕과 얼룩도 어느 정도 묻혀야 되고. 그걸 좀 피하면서 문학성과 대중성을 견지하려면 그게 한 중박 정도 돼요. 근데 뭐 중박 정도만 해도 품위를 지키면서 작가 생활 할 수 있고, 먹고 살 만해요. 그걸 유지하면 되는 거야. 굳이 욕심 내서 대박으로 가거나 뭘 고수한다고 혼자 써서 쪽박으로 가는 길, 쪽박과 대박 사이 중박을 유지한다는 균형이 굉장히 힘들면서도 기량이 없으면 못하죠. 그러니까 내가 기량이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지. 하하하."

그의 생애는 가팔랐다. 민주화운동, 방북, 망명, 수감 등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생의 이력에 포갰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은 윌리엄 포크너 식의 상상의 세계보다 헤밍웨이의 체험의 세계에 보다 가까워 보인다. 그가 양쪽의 세계를 모두 아울렀음에도.

- 참 파란만장한 생애를 사셨어요.

"난 난민으로 태어나 늘 '이동'하는 삶을 살았어요. 늘 경계에 서고. 디아스포라(이산)라고 하면 너무 추상적이고, 레퓨지(난민)라고 해야 맞아. 장춘에서 태어나서 해방 후 고국으로 귀국, 평양에 있다가 분단 직전에 38선 넘어서 남쪽으로 오니까 피난민, 조금 있다가 학교 들어가자 마자 6ㆍ25 터져서 피난지 전전하다가 또 전후복구 시절을 넘기고, 그랬더니 또 4ㆍ19 꽝, 5ㆍ16 꽝, 그러고선 청년이 되면서 군대 가서 베트남 전쟁 끌려가고….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전쟁을 세 차례 겪은 거예요. 그리고 돌아와서 민주화운동, 또 광주항쟁, 또 방북, 베를린 갔더니 베를린 장벽 무너지고, 망명. 돌아다니다 와선 징역 살고, 뭐 그런 연속에 있죠. 내 중단편 전집 뒤에 약력을 보면 하여튼 1~2년에 한번씩 큰 변화가 있더라고. 누가 그걸 보더니 그래요. 야, 그걸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동아시아 현대사가 되겠다."



- 그 많은 사건들이 제각각 영향을 끼쳤겠지만, 가장 중요한 생애의 사건을 꼽으라면 뭐가 1순위에 올까요?

"베를린장벽 무너지는 거 보면서 서구사회가 변화하는 걸 본 게 가장 큰 소득이었죠. 베를린에서 2년 반 망명하고 있으면서 굉장히 성숙해졌어요. 왜냐면 방북을 하고 나서 남북 양쪽의 국가주의적 체제로부터 왕따 당했잖아요. 어디 설 데도 없고. 게다가 장벽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놨던 여러 가지 제약들이 흩어지고 변화해가는 과정을 봤고요. 거기서 개인과 일상이라는 가치들을 재발견했죠. 그때 이미 후반기 문학의 여러 가지 구상들을 시작하거든요."

- 방북을 1순위로 꼽으실 줄 알았어요. 워낙 큰 타격을 입은 사건이라. 당시 북한 가실 때는 어떤 각오셨나요? 그런 파장을 예상 못 하셨나요?

"거의 못했죠. 그때 노태우 정부가 7ㆍ7선언을 하고 남북교류를 자유화하겠다고 발표했던 때니까. 그때 전대협, 전농, 전노협 등 전국화된 단체들이 '전씨 5형제'라고 있었거든요. 문익환 목사가 의장단의 대표였고, 내가 대변인이었는데, 내가 지방 가 있는 사이에 방북이 결정됐어요. 그걸 뭐 나이든 놈이 안 가겠다고 할 수도 없고, 그래 가보자 했죠. 그냥 귀싸대기 몇 대 맞고 끝날 줄 알았지 뭐,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나. 알았으면 안 갔지. (웃음)

그런데 거기 갔다가 나와서 베를린 있을 때 보니까 우리 방북을 결정했던 새끼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서 제도 정치권으로 들어가버렸더라고. 나만 말이야, 게임 후 헹가래 치고선 확 던져놓고 불 꺼진 운동장에 허리 다쳐 혼자 누워있는 그런 꼴이 됐지."

- 최근 촛불집회에 비판적인 발언을 하셔서 화제가 되셨어요.

"중도에서 살짝 삐딱한 거, 그게 난데 젊은 놈들은 불만이지, 그게. 타도하는 데 같이 가자고 하는데, 그럼 '야 이 새끼야, 느이들이 뽑지를 말든가, 투표를 열심히 하든가, 둘 다 안 해놓고 이제 와서 그걸 뒤집으면 뭘 어떡할래? 그 담엔 군인이 잡을 텐데.' 헌정질서 거부하고 박살내면 군인이 나올 명분이 생깁니다. 우린 무력이 50만이나 됩니다, 그것도 서울 지척에.

근데 애들이 그걸 몰라요, 철이 없어서. 헌정질서라는 게 우리가 피땀을 흘려서 여기까지 온 건데 그거 엎어버리면 그 다음엔 다른 세력들도 그렇게 할 거 아니냐 이거죠. 우리가 겪어봤잖아요. 이 질서, 형식적 민주주의 이건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거든. 그랬더니, 야, 이건 누구를 위한 거냐, 또 이러면서 욕을 먹는 거죠."

- 이런 저런 나라 걱정들, 작품활동 말고 다른 방식으로 해보실 계획 같은 건 없으세요?

"그래서 미디어를 하나 해볼까 해요. 내가 지금 작품을 1년마다 내놨기 때문에 좀 텀을 가지려고 하거든. 새로운 작품은 내년 연말쯤 시작할까 하는데 그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잖아요. 인터넷으로 하는 문화매거진을 창간하려고 해요, 친구들하고. 거의 합의가 끝나고 이제 금년 안으로 착수를 하려고 합니다. 이를테면 70년대 문화운동 선언을 했듯이 이제 인터넷 문화운동을 하는 거죠."

- 고은 선생님과 함께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시잖아요. 항간에는 선생님께서 유럽에 체류하신 게 노벨문학상을 위한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서라는 말도 있었어요.

"아냐, 아냐. 나는 사실 관심이 없어요. 노벨문학상이라는 게 웃기는 게 뭐냐면, 한국이 이제 시작이에요. 그게 무슨 월드컵도 아니고, 올림픽 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은 문화적 마인드도 전혀 없고 국제적으로 자기 문화를 알리려는 노력도 전혀 없어요. 일본은 자기 문화를 서구에 알린 한 100년 한 뒤에 노벨상도 타고 그랬어요."

그는 끊었다던 담배를 인터뷰 중간중간 다시 물었다. 그러면서 "아, 우리 마누라가 이거 알면 혼나는데"라는 말을 자동 후렴구처럼 반복했다. 20세 연하의 세 번째 아내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화 속으로 불러들여졌다.

- 아니, 왜 이렇게 공처가세요?

(웃으며) "무서워. 나 요번에 또 짤리면 어디로 가란 말이야. 하하하."

- 선생님은 아들로선…?

"불효자지."

- 남편으로선…?

"거의 기초적인 것도 해오지 않는 사람. 요샌 둘이 사니까 조금 시늉을 하는데도 굉장히 힘드네요. 공처가라고 언뜻 비쳤지만, 그렇게 해야 되잖아. 화도 좀 내지 말아야 되고, 집에 좀 있어야 되고, 때때로 데리고 어디도 댕겨야 되고."

- 소설가 황석영 말고 생활인, 자연인 황석영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그건 생각할 수가 없는데. 나는 거의 살아있는 것의 목적이나 목표가 문학인 거 같애. 그런 얘길 예전에는 창피해서 못했어요. 그런데 중요한 때마다 어려울 때마다, 내가 바탕이 기독교인이니까 절대자한테 기도를 하는데, 가령 베트남 가서 구정물에 막 구르면서 폭탄 터질 때면, 날 살려주면 내 좋은 작품 쓰겠다, 살아남게 해주라, 기도를 했어요. 감옥에서도 어려울 때, 내 나가서 좋은 작품 쓰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했고. 그러니까 소설가가 되지 않았으면 굉장히 무능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난 다른 건 할 줄 모르거든."

- <개밥바라기별>에 보면 "나는 아무렇게나 마구 살았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살면서 하고 싶은데 못하고 안 했던 것이 있나요?

"거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저지르고 싶은 대로 저지르고 살았죠. 그런데 못했던 것도 있어요. 어린이날 아이들 데리고 공원에 가서 가족이 논다든가 그런 거 안 해봤죠. 할 수 있는 건데 어떻게 못했어. 틈이 없었어요."

- 문학사의 황석영 챕터가 어떻게 기록되길 바라세요?

"글쎄 그건 내가 할 바는 없는데, 다만 나는 시대와 함께 소멸하고 싶어요. 시대와 함께 기억되고. 나는 이문구 작가를 참 좋아하는데, 그가 그런 식으로 태도를 정해서 죽을 때도 그렇게 죽었어요. 문학상도 안 만들고 기념관도 안 만들고 문학마을도 안 만들었죠. 나도 그렇게 할 겁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기 문학이라든가 문학의 완성도라든가 문학사에서의 앞으로의 위상이라든가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욕심이 전혀 없게 되죠. 솔직히 그건 없어요. 대신 지금 현재 글 쓰는 거, 새로운 작품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어요. 요샌 문청 시절하고 똑같아, 그 열정이. 거의 뭐 소설 쓰기에 미쳐있다고 할까. 나 요새 쓰고 싶어 죽겠어. 그런데 좀 텀을 가지려고 해요. 너무 자주 내면 독자들이 나이든 게 말야, 자발없이 왕거미 똥구멍에서 거미줄 뽑듯이 한다고 할 거 아냐? 하하하."

08. 0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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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6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06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람혼 2008-09-06 0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가지 말이 크게 인상적입니다. "한국 교도행정의 일대 승리"(여기서 크게 소리내서 웃었습니다^^), 그리고 "왕거미 똥구멍에서 거미줄 뽑듯이"(많은 분들이 오히려 그렇게 안 돼서 문제고 고민이죠^^).

로쟈 2008-09-06 08:48   좋아요 0 | URL
언젠가 다른 자리에서도 했던 말들인데, 이 양반이 요즘 '문청'이지만 능구렁이를 여러 마리 삶아드신 후 '회춘한 문청'이시죠...
 

박홍규 교수의 신작 <반민주적인, 너무나 반민주적인>(필맥, 2008)이 떠올려주는 전작은 바로 한달 전에 나온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글항아리, 2008)와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청어람미디어, 2005)이다. 한국의 지식인과 독자들이 자주 언급하지만 제대로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판단을 전제로 하고 있는 책들. 한데, 이번에 나온 '니체 비판서'는 새롭다기보다는 좀 '올드'하다는 인상을 준다. 1960년대에 소위 '니체 르네상스'(혹은 '새로운 니체')가 일어나면서 타겟으로 삼았던 전통적인/보수적인 니체관을 그대로 리바이벌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가령, “사내는 전투를 위해, 또 여인은 전사에게 위안이 될 수 있도록 양육되어야 한다. 그밖의 모든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란 대목에서 "여성을 남성의 도구로 보는 관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보는 식(너무나 당연한 독해다!). 그의 '다시 읽기'는 '곧이 곧대로 읽기'이기도 하다(그의 주장은 니체를 비틀어 읽지 말라는 것이다!). 책이 흥미로울 듯했으나 리뷰를 읽으면서는 주저하게 된다(사실 오늘도 이 책을 사러 서점에 들렀지만 눈에 띄지 않는 바람에 깜박 잊고 말았다. 다행인가?).  

한겨레(08. 09. 06) 니체는 인종주의자·제국주의자였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쓴 <반민주적인, 너무나 반민주적인>은 근년 들어 부활해 거침없이 활보하고 있는 니체(1844~1900) 사상을 정면으로 비판한 저작이다. 지은이는 부활한 니체의 등 뒤에 감추어져 있던 반민주주의자 니체의 모습을 돋을새김한다. 니체 르네상스라고 할 만한 최근의 현상은 프랑스판 탈근대주의 물결과 함께 등장했다. 미셸 푸코가 사유의 지렛대로 삼은 ‘계보학’이 국내에서 니체의 탈근대적 재해석의 도화선 노릇을 했고, 뒤이어 질 들뢰즈 철학의 유행이 니체의 전면적 복권을 이끌어냈다. 이 흐름이 발굴한 니체는 도발적이고 반항적인 니체, 급진적이고 전복적인 니체다. 니체의 사유를 거점으로 삼아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반역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니체 르네상스의 바탕에 깔려 있다.

지은이는 이런 식의 니체 해석이 니체를 ‘오독’하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니체의 일부를 전부로 치환하고, 니체의 핵심적인 주장을 지워버리며, 왜곡·과장으로 니체의 본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니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오늘날의 니체 이해와는 정반대로 인종주의자·제국주의자·반여성주의자였다고 말한다. 이 모든 점을 요약해 지은이는 니체가 반민주주의자였다고 강조한다. 니체는 강자·주인·귀족·지배자를 위한 철학을 했으며, 그 지배자의 지배를 정당화했을 뿐만 아니라 그 지배의 실현을 총체적으로 요구했다. 반면에 약자·여성·노예·피지배자를 멸시했고, 그들의 사상과 제도인 민주주의를 극단적으로 혐오했다. 지은이는 니체의 이런 면모가 그의 저작 전편에 일관성 있게 깔려 있음을 보여준다.

니체 사상의 본질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구절로 이 책에 소개되는 것이 말기의 저작 <도덕의 계보> 중 ‘금발의 야수’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아마도 소름 끼치는 일련의 살인·방화·능욕·고문에서 의기양양하게 정신적 안정을 지닌 채 돌아오는 즐거움에 찬 괴물[이다.] (…) 이런 모든 고귀한 종족의 근저에 있는 맹수, 곧 먹잇감과 승리를 갈구하며 방황하는 화려한 금발의 야수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 로마·아라비아·독일·일본의 귀족, 호메로스의 영웅들, 스칸디나비아의 해적들-이러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모두 같다.”

이 ‘소름 끼치는 야수’야말로 니체가 지배자 종족의 표상으로 인식하고 옹호했던 대상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니체의 이 근본 이미지는 다른 저작에서 다양한 형태로 끝없이 변주되고 반복된다. 약자에 대해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 가장 커다란 위험은 병자다. 악인이나 ‘맹수’가 아니다. 처음부터 실패자, 패배자, 좌절한 자-가장 약한 자들인 이들은 대부분 인간의 삶의 토대를 허물어버리고, 삶이나 인간이나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신뢰에 가장 위험하게 독을 타서 그것을 의심하게 만드는 자들이다.”

마찬가지로 니체는 여성에 대해서도 경멸적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사내는 전투를 위해, 또 여인은 전사에게 위안이 될 수 있도록 양육되어야 한다. 그밖의 모든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여성을 남성의 도구로 보는 관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니체는 제국주의적 침략과 전쟁을 권하기도 한다. “세계에 아직 남아 있는 야만적이고 신선한 지역의 주인이 되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주인이 되려 하자. (…) 모험과 전쟁을 회피하지 말고 최악의 경우에는 죽을 각오를 하자. (…) 유럽의 주민 중 4분의 3만큼이 빠져나가면 좋을 것이다.”


지은이는 니체가 노동자들을 노예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음도 상기시킨다. 니체는 노동자들을 교육하고 조직하는 것이 강자의 지배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보았다. “목표를 원한다면 수단도 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예를 원하면서 노예를 주인으로 교육한다면 바보가 아닐 수 없다.” 니체의 이런 반민중적·반여성적·반민주적 발언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된다. “오늘날은 소인배들이 주인이다. 여인의 근성을 지닌 자, 하인의 피를 타고난 자, 그리고 누구보다도 천민 잡동사니, 이제 그런 자들이 인간의 온갖 숙명 위에 군림하려 드니, 오, 역겹도다! 역겹도다! 역겹도다!”

지은이는 애초 독일정신을 찬양했던 니체가 1871년 이후 반독일로 돌아섰던 것도 독일에서 민주주의가 번지는 데 실망한 결과라고 해석한다. 아리아인의 지배자 정신을 체현해야 할 독일이 자신의 정신을 배반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많은 ‘탈근대적’ 니체주의자들이 니체의 반독일주의를 인종주의·국가주의·군국주의에 대한 니체의 반대를 뜻한다고 보는 것과 전혀 다른 관점이다. 지은이는 니체주의자들이 니체의 이런 본모습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회피한 채로 니체의 몇몇 발언에 기대 그를 민주주의·페미니즘·급진주의의 새로운 대안으로 삼는 것은 억지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한다. 니체를 여과 없이 찬양함으로써 반민주적인 엘리트주의자·귀족주의자 니체가 활보할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은이가 이 책에서 가장 힘주어 강조하는 지점이다.(고명섭 기자)

08. 09. 05.

P.S. 찾아보니 니체와 하이데거 전공자인 박찬국 교수의 <니체, 인간에 대해서 말하다>(철학과현실사, 2008)도 지난 여름에 나온 책이다. '병든 인간 건강한 인간, 니체의 잠언과 해설'이 부제인데, 니체 혐오가가 아닌 니체 애호가의 책이긴 하지만 '잠언의 철학자, 니체' 또한 나로선 별로 흥미를 갖게 되지 않는다. 타이틀로만 보자면, <니체의 체계(Nietzsche's System)>(http://books.google.co.kr/books?id=XATb3iOXQVcC&dq=nietzsche's+system&pg=PP1&ots=Vl2TL3EczX&sig=1bdakrETQzG73R4-iHnT_mczznI&hl=ko&sa=X&oi=book_result&resnum=1&ct=result) 같은 책이 내가 읽고 싶은 책이다(그래도 뭔가 새로운 걸 말해주는 책들 말이다). 니체에 관한 지안니 바티모의 책들이나 읽는 게 그냥 더 나을 듯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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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주의와 약자의 원한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19 23:50 
    서평후보로 꼽아두었다가 다른 책에 밀리는 바람에 잠시 독서를 미뤄두고 있는 책이 김진석 교수의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개마고원, 2009)이다. 책은 이달초에 구입을 했으니까 좀 됐다(니체에 대해서 자주 언급했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전작 읽기를 시도한 적은 없다. 다음 학기에 강의를 하게 되면 겸사겸사 유고들까지 읽어볼 계획이다). 나는 책소개라도 해놓은 줄 알고 있었는데, 
 
 
전자인간 2008-09-05 23:21   좋아요 0 | URL
'비틀어 읽기'는 지젝의 특기죠. 이를테면, 영화 <300>에 대한 전복적 해석...
흠, 지젝을 비판한다기 보다는, 박홍규 식의 관점이, 말하자면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박홍규 식 니체 해석이 '복고풍'의 새로운 유행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로쟈 2008-09-06 08:46   좋아요 0 | URL
유행까지는 모르겠고, 니체 마니아들의 '반발'은 불러일으킬 것 같습니다. 생산적인 논쟁이 오고간다면 좋겠지요...

Joule 2008-09-06 02:2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재미없는 분이네요. 뻔한 얘기 하는 책은 읽어서 저에게 독이 되기도 하는데 내 무지를 오만하게 잘못 길들이니까요. <니체의 체계>가 어느 성실하신 분의 번역으로 나오면 좋겠어요. 음, 배송비 때문에 지젝 책을 아마존에서 아직도 구입 못하고 있어요. ㅡㅡ' 그래도 최소한 4권은 질러야 좀이라도 덜 손해보는 기분일 텐데. 이상하게 손이 오그라드네요. 국내에서 파는 곳은 예스24뿐인데 거긴 회원 가입도 안 되어 있어서. 쩝.

로쟈 2008-09-06 08:45   좋아요 0 | URL
때론 상식의 확인이 생산적인 자극을 주기도 하는데, 책은 니체에 대한 나치즘의 선호/열광을 니체 자체에 들씌우고 있는 듯싶어서 머뭇거리게 되네요. 지젝의 책들은 알라딘에서도 구입하실 수 있지 않나요?...

Joule 2008-09-06 13:49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선 9월 30일 이후에나 구입 가능. ㅡㅡ'

람혼 2008-09-06 04:58   좋아요 0 | URL
박홍규 선생의 니체에 관한 책을 단순히 '진부한 독해'로만 치부하지 않고 징후적인ㅡ혹은 반복[강박]적인ㅡ측면에서 읽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곧, 니체와 파시즘의 문제는 '곧이 곧대로 읽는 독해/비틀어 읽는 독해'의 대립구조로만 해소할 수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오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이 문제의 지층을 조금 달리 해보자면, 손쉽게 소위 '니체주의자'로[만] 분류되는 경향이 있는 바타이유의 경우, 아감벤은 바타이유를 결국 '또 다른 파시즘'에 가닿을 수밖에 없는 사상구조를 가진 자로 규정하는 반면, 올리에는 이에 맞서 오히려 바타이유의 '체험(experience)'이 지닌 '반-파시즘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기도 합니다. 결국 문제는 이들의 니체/바타이유 비판 혹은 옹호가 궁극적으로 그 자신의 사상구조 안에서 의도하고 목표로 하는 지점이 무엇인가 하는 부분과 결부될 수밖에 없을 텐데요, 박홍규 선생의 이 책에 관해서도 왜 이 시점에서 그가 니체의 저 '반민주적인' 성격ㅡ그것이 비록 매우 '진부한' 독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할지라도ㅡ에 주목하는가 하는 문제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저 '독일적인 것'에 대한 니체의 복잡하고 착종된 감정을 단순히 '독일에서 민주주의가 확산되는' 현상에 대한 실망이 낳은 감정으로만 분석한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니체의 이러한 착종성 혹은 분기점에는 바그너로 대표되는 어떤 '독일정신'에 대한 태도 변화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민주주의'에 관련해서 이를 '해석'하자면, 오히려 니체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그너의 '반민주주의성'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입장으로 더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로쟈 2008-09-06 08:43   좋아요 0 | URL
아시다시피 니체는 상당히 모순적인 말들도 많이 남기지 않았나요? 그에 대한 '곧이 곧대로 읽기'가 도달할 수 있는 니체는 '모순적인 니체'가 아닐까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인종주의자, 반민주주의자' 등으로 확정되는 게 아니라요. 그런 모순을 피하자면 어떤 '체계'를 가정해야 할 텐데, 그것이 징후적 독해가 아니라 진부한 독해로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나중에 독후감은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2008-09-06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06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06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06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06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8-09-06 07:46   좋아요 0 | URL
로쟈님이 이 책의 성격을 한 줄로 정리해주셨네요..

"그의 '다시 읽기'는 '곧이 곧대로 읽기'이기도 하다." (곧이 곧대로가 문자적으로 라는 뜻이겠지요)

람혼님의 징후적 독해의 댓글도 잘 봤습니다.

전 이 '진부한 독해'라는 것이 굳이 나쁠 건 없다고 보이는군요. 나면서 부터 '진부하지 않았던' 독해에 익숙해져 있었다면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진부하지 않았던 독해'부터 알았던 것 같고, 그 '진부하지 않았던' 독해에서 말하는 '진부한 독해'만을 들었을 뿐이니까.. 뭐 그런거 있잖아요 "니체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그의 사상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편협하게 적용하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시작하는...
지젝이 소련의 붕괴 이후 '레닌/스탈린'을 단절시키는 트렌드 속에 '스탈린주의 속에 들어있던 레닌'의 얼굴을 이야기한 것 정도로 이해하면서 보면 나쁠 건 없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이 책이 제 쫓기는 시간을 이겨낼 수 있을까는 싶군요..

로쟈 2008-09-06 08:38   좋아요 0 | URL
저는 그 '진부한 독해'의 결과가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였다' '니체는 제국주의자였다'라고 식으로 귀결된다면 무얼 더 말해주는 것인지 좀 의문이 듭니다. 거기서 독해가 '시작'된다면, 그래서 '니체 르네상스'에 대한 '계보학적 독해'로 나간다면 더 유익하지 않을까 싶어요. 독전감이라 좀 그렇긴 하지만, '리뷰'의 기능이 원래 책을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판단하게 해주는 것이니까요...

yoonta 2008-09-06 14:55   좋아요 0 | URL
니체를 "곧이 곧대로 읽는"다면 "반민주적이다, 혹은 아니다"라고 이분법적으로 말할수 있는게 아니라 "모순적이며 역설적이다.".라고 해야하지 않을까요? 로쟈님 표현처럼 "모순적인 니체"라고 해야 할것 같은데 말이지요. 다만 람혼님 말씀대로 박홍규씨와 같은 니체독해의 시도도 "진부한" 오늘날의 시대(MB시대)에서는 나름의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가치를 평가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로쟈 2008-09-06 21:43   좋아요 0 | URL
신간 덕분에 <니체와 철학>을 다시 빼들었는데, 펴본 대목들이 우연찮게도 요령부득입니다. <니체, 철학의 주사위>도 확인해보고 불만을 적든가 해야겠습니다. 유행이었다고 해도 국내에 '니체 르네상스'가 있었던 것인지 의문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9-06 16:08   좋아요 0 | URL
박홍규 씨가 그동안 써온 책이나 칼럼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 책은 니체에 대한 비판이라기 보다는 니체를 비판하면서 니체열풍에 맹목적인 한국인들을 비판하는 책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카뮈나 세익스피어에 관한 비판서도 그런 성격이 강했죠.

로쟈 2008-09-06 21:47   좋아요 0 | URL
그 '니체 열풍'이란 게 사실 속빈 강정입니다. 꼼꼼하게 읽(었)을 독자는 손에 꼽을 정도겠지요. 그리고 셰익스피어나 니체 정도 되면 이미 '비판'의 대상이 아닙니다. 정반대의 논증들이 가능하기 때문에요(헤겔 좌파, 우파 하는 식으로). 취향의 문제죠...

노이에자이트 2008-09-06 21:58   좋아요 0 | URL
독일에 그런 학자들이 많아요.헤겔도 그렇고...헤겔이나 니체나 둘 다 나치즘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았지요.루터도 일정정도 가톨릭 세력에 균열낸 공은 있지만 또 반유대주의자라서... 윌리엄 샤이러<제3제국의 흥망>에는 나치즘에 영향준 사상가로 루터 헤겔 니체를 꼽는데 특히 니체의 초인사상이 원인이라고 했더라구요.물론 샤이러는 독일 관념론을 연구한 이는 아니었지만요.니체의 비판정신을 살리려는 이들은 마르크스와 니체를 결합하려고도 했으니 해석이 다양하긴 하나 봐요.

로쟈 2008-09-06 22:03   좋아요 0 | URL
슈미트만 하더라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재해석되기도 하니까요. '고전'급이 되면 글은 저자를 초월/초과합니다. 못난 사람이 쓴 작품이어서 못났다, 란 주장은 B급에나 해당하는 것이죠...

노이에자이트 2008-09-07 16:49   좋아요 0 | URL
레이몽 아롱이 슈미트의 사상을 높이 평가했다네요.사실은 우리가 중고교 시절 사회시간 때부터 듣는 이름이지만 슈미트 책은 거의 안 보잖아요.근데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이 많더라구요.저는 독일 낭만주의에 관심이 많아서 <정치적 낭만>을 봤어요.굉장히 해박한 학자더라구요.

로쟈 2008-09-07 16:59   좋아요 0 | URL
그래서 더 악명이 높겠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9-07 17:34   좋아요 0 | URL
거의 100살 가까이 장수했죠.전범으로 복역한 후 출소해서는 꽤 유유자적 산 것 같더라구요.

로쟈 2008-09-07 22:49   좋아요 0 | URL
<칼 슈미트의 도전> 같은 얇은 책이 있는데, 소개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