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 작가 마르탱 뒤가르의 소설 <티보가의 사람들>(민음사, 2000/2008)이 완역됐다. 이미 지난 2000년에 완역된 줄 알았더니 '별권'이 하나 남아있었고, 이번에 나온 것이다. 이 대하장편소설에 '일생'을 바친 정지영 교수의 노작인데, 관련 인터뷰가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동아일보(08. 09. 11) 정지영 교수 “오역은 죄… 준비 안된 번역 경계해야”

소설 하나를 번역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면 고개부터 갸우뚱거릴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정지영(71·사진) 서울대 불문과 명예교수는 스스로 그 길에 뛰어들었다. 정 교수는 1984년부터 프랑스 작가 로제 마르탱 뒤가르의 소설 ‘티보가의 사람들’(민음사)의 번역에 나서 최근 ‘별권·회상’ 편으로 완역을 마쳤다. 이 소설은 1922년부터 1940년까지 18년여간 발표된 작품으로 번역본은 6권으로 완간됐다. 24년간 원고지 2만 장이 넘는 대역사를 마친 노학자는 어떤 소회를 가슴에 담았을까. 10일 오전 카랑한 목소리로 너털웃음을 던지는 정 교수의 말을 들어봤다.(정양환 기자) 



○ “학자로서 조금이나마 학문에 기여해 뿌듯”

―오랜 작업을 끝내 기분이 남다를 듯합니다.

“시원합니다. 이제야 내 할 바를 다한 것 같아요. 불문학자로 살아온 인생, 조금이나마 학문에 기여를 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허허.”

―‘티보가의 사람들’을 번역하게 된 연유가 궁금한데요.

“1963년인가, 대학원에 있을 때였죠. 은사이신 이휘영 선생께서 이 소설 가운데 ‘회색 노트’ 편 번역을 우리에게 맡겼습니다. 변변한 불한사전도 없던 시절이라 포기했죠. 이후 마음에만 담아뒀는데 1984년 청계연구소라는 출판사를 하던 동서가 권유를 합디다. 일본에선 위대한 소설이라며 많이 읽는데 왜 국내엔 번역본이 없냐고요. 안 그래도 기억이 생생한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요.”



―소설을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

한 편의 대하소설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노년까지 인간이 겪고 생각하는 보편적인 것들이 담겼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이 소설의 작가를 ‘영원한 현대인’이라고 불렀죠. 20세기는 물론이고 21세기에 읽어도 문제가 없습니다. 소설을 끝낸 작가에게 다음 작품은 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답니다. ‘여기에 모든 게 있으니 더 쓸 것이 없다’고.”

○ 번역 도중 3년 걸려 불한사전 펴내기도

―번역하는 데 어려운 점도 많았겠습니다.

“힘들 게 뭐가 있겠소, 얼마나 즐거운 일인데. ‘티보 가의 사람들’은 재밌는 소설입니다. 읽다 보면 끌려들어가요. 언어학적으로도 흥미롭죠. 프랑스 사전들도 단어 용례를 쓸 때 이 소설의 문구를 많이 가져다 쓸 정도지요.”

―불한사전을 내신 적도 있는데요.

“번역을 하다 보니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다음 세대는 좀 더 편하게 프랑스어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1995년부터 졸업생 20명과 3년 동안 작업해 ‘프라임 불한사전’을 펴냈습니다. 언어학자들은 사전 편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정확한 해석을 도와주는 사전이야말로 문화와 문화를 이어주는 가교입니다.”

―우문인지 모르겠지만 번역이란 무엇입니까.

번역은 글 쓰는 것과 똑같습니다. 오랜 기간 공부해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요즘 젊은 번역가들이 속성으로 번역물을 내놓는 것은 스스로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급한 오역은 원작가는 물론이고 독자에게도 죄를 짓는 거니까요. 인생도 마찬가지 아니오. 제대로 된 준비 없이는 일을 그르칠 뿐입니다.”

―평생의 작업을 마쳤으니 이제 뭘 하십니까.

“할 일 많습니다. 사전도 다시 손봐야 하고 공부할 것도 많고요. 건강에 문제없으니 계속 일해야죠. 몸이 허락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죄악이지요.”

08. 09.15.

P.S. 관련기사를 검색하다 보니 작가 김영하씨가 <퀴즈쇼>(문학동네, 2007)를 낼 무렵에 한 인터뷰도 눈에 띈다. "그에게 대하소설을 쓸 생각이 없냐고 묻자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언젠가는 프랑스의 작가 R. 마르탱 뒤가르의 대하소설인 '티보가의 사람들'과 같은 작품을 꼭 한번 써보고 싶다"고 답했다."라는 기사다. 그의 마지막 소설이겠다.

내가 읽은 <티보가의 사람들>은 기사에서도 언급된 이휘영 교수 번역의 <회색노트>(문예출판사)가 전부다. 알려져 있다시피 <티보가의 사람들> 8부작 중 제1부에 해당하며, 유독 국내에서는 여러 종의 번역본이 출간되었던 작품이다. 고등학교 때 읽어서 주인공의 학창시절을 다루었다는 것 말고 지금은 기억에 남아있는 바가 거의 없지만. 완역본을 소장해둘 만한 여건이 되면 한번 다시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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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9-15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개인적으로 불어라는 '미지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곁눈질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던 것도 돌이켜보면 다 저 프라임 불한 사전 덕분인데, 이는 <티보가의 사람들> 완역 출간이 '남 얘기' 같지 않게 너무나 반갑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도 이 완역 소식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저도 5권까지가 완간인 줄 알았습니다^^;). 정지영 선생의 노고와 열정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로쟈 2008-09-15 09:55   좋아요 0 | URL
제가 배울 때만 해도 민중서림판 불한사전이었는데, 세대 교체가 된 모양이군요.^^;

람혼 2008-09-15 23:17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까 민중서림 사전의 편저자는 이휘영 선생이었고 프라임 사전의 편저자는 정지영 선생이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서, <티보가의 사람들>의 번역과 불한 사전의 편집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묘한 '연결 관계'를 감지하게 됩니다. 여담이지만, 로쟈님과 제가 딱 민중서림 사전과 프라임 사전 사이만큼의 세대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로쟈 2008-09-15 23:37   좋아요 0 | URL
네, 민중서림판이 아직 현역이어서 다행입니다.^^

paviana 2008-09-15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경이 시원스레 바뀌었네요.
고등학교때 저도 <회색노트>읽고 친구랑 교환일기 쓰던 기억이 나네요. 저도 아마 이휘영 교수번역의 책을 읽은거같은데 어째 저 표지를 보니 전혀 읽어보고 싶은 맘이 안드네요.아이들 보는 축약판 기분이에요.
언제 기회가 된다면 전권읽기에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요.

로쟈 2008-09-15 18:42   좋아요 0 | URL
좋은 완역본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죠.^^

딸기 2008-09-21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색노트... 저도 그거 하나 보고 땡 쳤는데...
친구와의 회색노트 추억도 새록새록~

로쟈 2008-09-21 12:11   좋아요 0 | URL
여학교에선 유행이었나 보더군요...
 

얼마전부터 새로 완역되기 시작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민음사, 2008)의 번역관련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6780). '번역을 말한다'라고 분류돼 있는데, 연재물인지는 잘 모르겠다. 직접 이 완역본 시리즈에 참여한 번역자 송은주 씨의 번역체험담이어서 눈길을 끈다. '번역과 번역가'로 분류해놓는다. 

교수신문(08. 09. 08) 사료의 도서관, 유려한 문체의 정원에서 넋을 잃다

1776년부터 1788년까지 12년에 걸쳐 전 여섯 권으로 간행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깊이 있는 통찰력, 방대한 분량에 담긴 상세한 기술, 해박한 역사적 고증 등으로 무수히 많은 로마사 책들 중에서도 대표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유려한 명문으로 영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국내에 번역 소개된 『로마제국 쇠망사』는 일부를 간추린 발췌 번역본이나, 완역이라 해도 일어판의 중역본 정도가 고작이었다.

발췌 번역본은 여섯 권이나 되는 전체 분량을 한 권으로 줄인 것이어서 원작의 방대한 세계를 접하기에는 부족하고, 중역본은 일어판을 바탕으로 옮기다 보니 생소한 일본식 한자어가 여과없이 들어가고 지나치게 고어투로 서술됐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고전을 수용하고 연구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원전의 충실한 번역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와 같이 이미 오래 전에 고전의 반열에 오른 주요 저작이 제대로 번역된 적이 없다는 것은 전공자들에게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나 크게 아쉬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로마제국 쇠망사』의 번역 작업은 힘들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번역판은 가장 뛰어난 편집판으로 인정받고 있는 J. B. 버리 판을 토대로 했으며, 전체 8300개 각주 가운데 버리가 편집한 각주 4700여개 중 본문 내용과 관계없는 350개만 삭제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살린 국내 최초의 완역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서기 2세기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부터 동로마 제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약 1400년 간의 역사를 다루었다. 기번은 이 장대한 역사를 다루면서 입수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철저히 조사하고 연구한다는 자세를 취했다. 그가 수집하고 연구한 엄청난 양의 역사적 사료는 그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보여주는 유려한 문체로 한데 어우러져 방대한 大河劇을 이루었다. 기번의 최고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실증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면서도 엄청난 분량의 로마사를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빚어내는 흥망성쇠의 장으로 박진감 있게 그려냈다는 점일 것이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역사 속에서 행하는 행동과 결단, 운명의 변전은 웬만한 문학작품을 능가하는 재미를 준다.



유려한 문장에 실린 생동감 넘치는 인물과 사건 묘사는 역사서는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털어내며 이 작품이 어떻게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생명력을 지니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기번은 성실한 역사가로서의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엄청난 사료에 눌리지 않고 이를 자유자재로 요리해내는 탁월한 솜씨를 발휘했다. 덕분에 역사 전공이 아니라 영문학을 전공한 역자로서도 번역 작업을 하면서 로마사의 일부가 됐던 수많은 인물들의 삶 속으로 흠뻑 빠져들 수 있었다.

이에 더해 『로마제국 쇠망사』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이슬람교와 기독교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대하는 그의 역사가로서의 공평무사한 안목이다. 간혹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편견이나 그릇된 정보에서 나온 대목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그가 18세기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놀랄 만한 중립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이 또한 『로마제국 쇠망사』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덕목일 것이다.

로마의 멸망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많지만, 기번은 기독교의 성장으로 인한 사회심리학적 요인을 가장 큰 요인으로 들고 있다. 무려 14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지속된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제국이니, 아마도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로서는 로마제국이 언젠가 멸망하리라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것만큼이나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기나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천년이 넘는 긴 세월도 지나간 과거의 일부일 뿐이다. 자기가 살아가는 시대 안에서는 그 시대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를 읽는 것은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보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기번의 로마사를 자세히 읽어나가며 몰입하는 즐거움과는 별개로, 번역 작업에는 상당한 노력이 요구됐다. 기번의 작품은 수많은 역사적 자료를 치밀하게 엮어서 쌓은 거대한 산맥과도 같아서 접근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기번의 역사 서술은 읽는 이가 이미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역사와 서양 문화에 관한 소양을 지니고 있음을 전제로 하고, 그 위에 자신이 섭렵한 방대한 자료를 거침없이 풀어나가는 식이다. 따라서 기번이 요구하는 만큼의 기본 지식이 부족한 역자로서는 이를 따라가기 위해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또한 기번은 해박한 역사적 지식뿐 아니라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등 각종 언어에도 능통하여 원사료를 읽어낼 수 있었으며, 이를 본문과 각주에도 무수히 인용했다. 툭하면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이러한 특수 언어들의 인용문 또한 본문을 이해하는 데 장애로 작용했다. 특히 역자들을 괴롭혔던 것이 본문에 육박하는 방대한 양의 각주였다.

기번의 ‘잡담’이라고도 불리는 총 8300여 개(버리 판 4700개)의 각주는 본문 내용과 관련돼 본문의 이해를 돕는 것도 있지만, 본문과 별 관계없이 엉뚱하게 자신의 지인들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든가 말 그대로 잡담도 상당수였다. 따라서 편집 과정에서 일부 각주는 생략됐다. 또한 영문학사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기번의 명문장도 번역하는 데 많은 애로가 따랐다. 한 문장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만연체로 서술된 부분이 많아서, 어떻게 하면 기번 특유의 유려한 문체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되도록 읽기 편하고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옮길 것인가의 문제를 번역하는 내내 고민해야 했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방대한 역사서이면서 동시에 위대한 문학작품이므로, 가장 이상적인 경우를 말한다면 역사를 전공해 풍부한 전문 지식을 갖추었으면서 동시에 기번의 까다로운 문체를 정확하면서도 매끄럽게 옮길 수 있는 영어 실력과 문학적 소양을 구비한 역자가 번역을 맡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번의 작품을 완벽히 소화할 수 있는 모든 자질을 두루 갖춘 역자가 번역을 맡는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역사 전공자도 아닌 영문학 전공의 역자들이 번역을 맡게 됐다. 기번의 저작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몇 년간에 걸친 고된 작업에 매진했으나, 끝나고 보니 새삼 부족함을 아쉽게 느낄 수밖에 없다.

비전공자로서 번역을 하면서 무엇보다도 아쉬운 점은 로마의 여러 관직명이나 제도명 등의 명기에 완벽을 기하기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고전은 매 시대마다 그 시대의 언어로 새롭게 번역되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로마제국 쇠망사』의 국내 최초 완역으로 이제 이 책을 국내 소개하는 데 본격적인 첫발을 떼었다고 생각한다.

송은주 번역가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성과 감성』, 『순수의 시대』 등을 번역했다.

08. 0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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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9-17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친 김에 기번 자서전 번역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명저라고 하더군요.쇠망사는 로마사 전공자보단 영문학하는 사람이 번역하는 게 더 나을까요? 번역하면서 공부를 엄청나게 했을 것 같군요.

로쟈 2008-09-17 17:39   좋아요 0 | URL
짐작엔 협업이 최선이었을 것 같습니다...

shimy 2011-02-11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다가 너무 화가 나서 웹서핑 중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 4권을 읽고 있는데 해도해도 너무하군요. 발번역이라는 말이 있던데 4권에 딱 어울립니다. 그래도1~3권까지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번역의 질이 확 떨어지더군요. 로마제국 법체계 설명하는 부분에선 번역기 돌려 번역한 수준이고 p469에선 '성 세례 요하네스 교회'라는 단어를 보곤 열이 확 올라오네요. 세례 요하네스라니요. 이게 어느나라 말입니까. 영어도 아니고 독일어도 아니고 한국말도 아니네요. 아마 콘스탄티노플에 있던 '성 세례 요한교회'를 말한 것이겠죠. 역사 전공자인지는 제쳐두고 기본적인 역사 소양도 없는 것 같습니다. 성모 마리아를 동정녀도 아닌 성처녀라고 해놓질 않나...
 

연휴의 일정을 소화하고 집에 돌아오니 이 시간이다. 아니 '소화'에는 시간이 좀더 필요하겠다. 책과 복사물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책상에는 신문지도 몇 장 얹어져 있는데, 스크랩을 해둔다고 미뤄놓은 것들이다. 일단 하나만 옮겨놓는다. 이달초 방한했던 홀거 하이데 교수와의 인터뷰 기사이다(굳이 분류하자면 전공은 경영학인 모양이다). 한국의 '집단 트라우마'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와 노동자 운동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학자라는 점이 이채롭다. 덧붙여,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의 자유를 목줄에 이끌려 산책 나온 강아지에 '적확하게' 비유한 것이 눈길을 끈다(언제 써먹어야겠다!).

경향신문(08. 09. 09) “지구화는 트라우마의 심화과정”

‘지구화’는 자유로운 삶의 확대 과정인가, 트라우마(상처)의 심화 과정인가. 이 물음에 홀거 하이데 독일 브레멘대 명예교수(69·사진)는 ‘지구화’는 자유라는 허상 속에서 심화되는 트라우마라고 답한다. 이화여대 탈경계 인문학연구단의 ‘지구화와 문화적 경계들: 탈경계 문화변동 현상의 비판적 재검토’ 국제학술대회(9월 4~5일)를 위해 방한한 하이데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자본과 시장이라는 외부 힘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통해 트라우마를 내면화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 회사 대표가 걱정하던 것들을 이제는 종업원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 우리 나라의 경제가 망하면 내가 끝장난다는 그런 위기감을 개인이 걱정하고 있어요. 그 위기란 그저 돈벌이의 위기일 뿐, 진정 사람 사는 것의 위기와 다를 수 있는데도, 사회는 끊임없이 협력을 요구합니다.”

한국사회의 중장년층에 만연한 일중독 현상이나 과로사는 ‘지구화의 경쟁논리가 하나의 집단적 트라우마로 각각의 개인에 내장되며 벌어지는 병리현상’이라는 것이다. 하이데 교수는 공원에 산책 나온 강아지를 예로 들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자유는 길이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목줄에 이끌려 산책 나온 강아지의 자유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강아지의 모습이 자유로워 보이죠. 그런데 결국 그것은 주인(자본)의 손아귀 아래에서의 자유일 뿐입니다.” 이 자유는 “폭력적 과정을 겪은 이후 상처 받은 이들의 자유”이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처벌하고, 정신병동에 가두거나 사형으로 완전히 격리시키는 등 근대 자본주의 정착 과정에서 이뤄졌던 폭력적 과정 후에 만들어진 자유”다.

하이데 교수는 상대적으로 한국사회의 집단적 트라우마가 심하다고 했다. “일제식민지와 미군정, 한국전쟁, 군부독재 등을 압축적으로 겪으면서 매우 폭력적인 과정으로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민주화됐다고 하는 현 시점에도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법에 의해 일부 사람들을 가두는 것이 집단 트라우마가 강한 사회임을 증명합니다.”

그는 또 한국사회의 집단 트라우마가 대물림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고 했다. “어른들이 직장과 사회 생활에서 받은 압력과 트라우마가 집집마다 아이들에게 전가됩니다. 부모 자격으로 자식에게 성적 올리기만 강요하고, 아이들의 진정한 내면적 욕구에 대해서는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아이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 부모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되는 식으로 트라우마의 악순환이 이뤄집니다.”

이러한 악순환에 대한 돌파구는 근원 모를 두려움, 공포를 인정하고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그는 “주위 사람들과 아픔을 나눌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효도, 예의 때문에 아무 말도 못꺼내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맞을 각오로 아이가 자신의 욕구를 말하는 순간 해결 가능성이 생깁니다.”

하이데 교수는 촛불집회가 단적인 예라고 했다. 무엇보다 비폭력성에 주목했다. “내 스스로 진정 강하다고 생각하면 주먹을 보이지 않고 얌전하게 말로 합니다. 대중은 내면의 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비폭력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또 촛불집회의 자발성도 꼽았다. “힘은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중앙 통제가 아닌 각자 자기를 조직화하고 분권화하는 개별 행동에서 나옵니다. 각자 스스로 움직이니 정권 차원에서도 어떻게 대응할지 당황할 수밖에 없었죠. 일이 벌어질 땐 있지도 않은 ‘배후’ 얘기를 하다가 뒤늦게 검거 선풍을 일으킵니다. 오세철 교수 체포건처럼 뒤늦게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고, 자다가 뒷북치는 행태를 보입니다. 대중의 자기조직화, 자발성이 갖는 강한 힘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하이데 교수는 강한 집단 트라우마 후에 민중이 자기 삶에 대한 책임성을 갖는 자세가 생겼는데, 그것이 촛불집회를 통해 잘 드러났다고 진단했다. 그렇기에 “한국사회에서 아직 희망을 얘기할 수 있다”고 했다.

하이데 교수는
1987년 7월 노동자 대투쟁 때 한국에 처음 온 뒤 한국 자본주의와 노동자 운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다. 저서 ‘노동사회에서 벗어나기’가 국내에 소개돼 있으며, 강수돌 고려대 교수가 그의 제자다. 이날 인터뷰도 강 교수의 독일어 통역으로 이뤄졌다.(손제민기자)

08. 09. 14.

 

 

 

 

P.S. 기사 덕분에 강수돌 교수의 책들을 검색해봤다. <경영과 노동>(한울, 1997/2002), <노동의 희망>(이후, 2001), <일중독에서 벗어나기>(메이데이, 2007),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생각의나무, 2008) 등의 리스트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찾아보니 <신자유주의 IMF 그리고 국제연대>(문화과학사, 1998)에도 '세계시장, 신자유주의 , 그리고 살아있는 연대' 란 제목으로 하이데 교수가 쓴 글이 포함돼 있다. <당대비평>(2003년 여름호)에는 '노동중독에서 탈출하기: 노동조합은 노동중독 사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란 글이 실려 있다. 몇 차례 방한하기도 하여 한국과는 인연이 깊은 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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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4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4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명절 대이동'에 동참한지라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어서 인터넷 서핑이나 하고 있다. 읽어볼 만한 신간들도 찾아보게 되는데, 우선 순위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한 책에 '전 세계 권력 지형에 대한 비판적 조망'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대담집 <역사로서의 현재>(모티브북, 2008)가 있다.

 

네르멘 샤이크란 저자의 이름은 생소한데, "아시아 소사이어티 연구원 네르멘 샤이크가 수년에 걸쳐 아마티아 센, 헬레나 노르베르-호지 등 세계적인 석학들을 만나 현대 권력과 국제 정치학이 그려내는 전 세계 권력 지형에 대해 인터뷰한 것을 묶은 대담집이다. 국제 문제의 근원이 되는 광범위한 역사적.정치적.경제적 맥락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한다"고. 찾아보니 간단한 소개기사 하나 정도가 떠 있을 뿐이다(요즘은 웬만한 분량의 소개로는 출판사 소개보다 빈약할 경우가 많다). 저자가 (짐작에는) 파키스탄 출신이라 대담자에 이슬람쪽 지식인이 많이 포함돼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 아닌가 한다.   

동아일보(08. 09. 13) 세계적 석학 13명이 말하는…‘역사로서의 현재’

미국 뉴욕의 아시아 소사이어티 연구원 네르멘 샤이크 씨는 최근 몇 년에 걸쳐 세계적 석학 13명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인도 출신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과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스웨덴 출신의 생태환경연구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란의 인권운동가 시린 에바디 등 면면이 쟁쟁하다. 석학들이 인터뷰에서 각각 세계경제, 페미니즘, 인권, 환경, 이슬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털어놓은 이야기들을 묶은 책.

빈곤 연구의 대가인 센 씨는 “단순히 경제만 성장시키는 개발이 아니라 인간의 잠재능력을 확대시킴으로써 자유를 확산시키는 개발이 돼야 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단순히 물질적 부()를 추구하는 개발이 아니라 인간적 부를 증진시키는 개발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

스티글리츠 씨는 1997년 아시아의 금융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이 월스트리트의 이익을 위해 동아시아의 약화를 꾀했다는 음모론에 대해 “이해관계에 있는 모두를 음모의 배에 승선시킬 수 있다고 생각지 않으며, 많은 이들은 강한 동아시아가 세계 경제와 미국에 긍정적이라고 믿는다”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미국 뉴 아메리칸 파운데이션의 선임연구원 아나톨 리벤 씨는 미국 민족주의의 특징으로 ‘여러 나라에 빛을 비추는 나라라고 믿는 메시아주의(messianism)’를 꼽았다. 이 믿음은 평소에는 수동적이지만 9·11테러 같은 공격을 받으면 적극적 형태로 바뀌어 세계를 미국화하려는 욕망을 나타낸다고 그는 지적했다.(금동근 기자)

08. 09. 13.

P.S. 참고로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1부 세계 경제
1장 아마티아 센Amartya Sen - 15
2장 헬레나 노르베르-호지Helena Norberg-Hodge - 39
3장 산자이 레디Sanjay Reddy - 57
4장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 97

2부 탈식민주의와 신제국주의
5장 파르타 차테르지Partha Chatterjee - 123
6장 마흐무드 맘다니Mahmood Mamdani - 159
7장 아나톨 리벤Anatol Lieven - 185

3부 페미니즘과 인권
8장 시린 에바디Shirin Ebadi - 231
9장 릴라 아부-루고드Lila Abu-Lughod - 239
10장 사바 마흐무드Saba Mahmood - 249
11장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 - 287

4부 세속주의와 이슬람
12장 탈랄 아사드Talal Asad - 341
13장 질 아니자르Gil Anidjar -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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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레네의 <레이스 뜨는 여자>(부키, 2008)가 거의 20년만에 다시 나왔다. 첫 번역본 <레이스 뜨는 여자>(예하, 1989)의 역자인 이재형씨가 손을 더 보아서 냈는데, 덕분에 잠깐 2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을 했다(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과 함께 이 책을 읽던 부대 관사의 당번병 방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1989년이었다). 젊은 독자들에겐 생소할지 모르겠지만, 책은 "콩쿠르 수상작이자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영화 <레이스 뜨는 여자>(1977)의 원작 소설"이다. "얀 베르메르의 동명의 그림(하지만 '레이스 짜는 여인'으로 표기된다)에서 제목을 따온 이 소설은 문학이 씨줄로, 철학과 사회학, 심리학이 날줄로 엮혀 있는 프랑스 현대 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개인적으론 이자벨 위페르와 관련한 페이퍼들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다(http://blog.aladin.co.kr/mramor/1548659 참조). 반가운 마음에 자료를 찾으니 바로 얼마전에 장석주씨가 쓴 '독서일기'가 있어 스크랩해놓는다.  

 

뉴스메이커(08. 08. 20) 뽐므는 정말로 ‘흔해 빠진 여자’일까?

프랑스 낭테르 대학에서 남학생의 여학생 기숙사 출입을 막는 데 따른 불만에서 촉발한 시위는 5월 한 달 동안 프랑스 전역에서 대학생 시위와 1000만 노동자의 대규모 파업으로 번진다. 불이 산소를 만나 타오르듯 냉전과 베트남전과 같은 시대의 화두를 끌어안으며 젊은이들을 저항과 해방의 열망으로 타오르게 했다. 그러나 ‘68혁명’은 하나의 이념과 기획으로 묶을 수 없다. 모든 금지에 대한 저항, 구속 없이 즐기는 삶에 대한 열망이 그 이념과 기획을 대체했다. 궁극적으로 낡은 정치체제와 신체에 가하는 낡은 도덕 관습들에 대한 전면적인 반란이었다.

‘68혁명’의 거센 불길이 지나간 뒤에 남은 것은 마리화나와 히피, 마오주의(Maoism), 그리고 성의 해방이다. 그 중에서 마오주의는 최악의 유산으로 꼽혔다. 젊은이들 사이에 번진 파시즘 독재자에 대한 이상한 열광은 이해할 수 없었다. ‘68혁명’에 대한 평가는 낡은 도덕과 정치체제를 새것으로 바꾸려는 ‘혁명’이거나, 혹은 무질서와 파괴로 얼룩진 재앙이라고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분명한 것은 ‘68혁명’이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대중의 자발적인 움직임이었다는 점이다. 그 움직임은 국가와 권위에서 오는 일체의 통제와 억압에 대한 저항이고, 혹은 하나로 묶일 수 없는 다양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만든 사건의 연속체였다. ‘68혁명’은 저렇게 다른 목소리들이다. 다양한 차이 안에서 그 목소리는 변화하려는 열망과 그 극단을 드러낸다. 그 목소리는 조직되지 않고, 기성 조직에 기대지도 않는다. 그 목소리는 신체를 포획하는 그 무엇을 스스로 바꾸고자 하였을 뿐이다.



파스칼 레네는 ‘68혁명’의 중심을 가로질러 나온 프랑스 출신의 철학자이자 소설가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레이스 뜨는 여자’는 ‘68혁명’의 여진(餘震) 속에서 씌어진, ‘68혁명’이 지핀 변화를 향한 열망이 스민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68혁명’이 젊은이들의 의식과 행동에 어떻게 스며들고 변화의 무늬를 남겼는지를 찾아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그들은 확실히 ‘68혁명’ 이전 세대와는 무언가 다를 것이다. ‘금지만이 금지된다’ 혹은 ‘구속 없는 삶을 즐겨라’라는 ‘68혁명’의 강령을 간접적이거나 혹은 직접적으로 체화해낸 세대는 성에 대한 낡은 도덕적 관습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녀는 매일 밤 그렇게 하기라도 했듯이, 서두르지 않고 스스로 옷을 벗었다. 그녀는 바지의 주름을 잡아서 의자 등받이에 놓아두었다. 청년은 그런 식의 침착함에 얼이 빠져 있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계속되어온, 육체를 향한 그의 육체의 동작의 탐색은 그토록 단순하고 말없는 침착성과 비교할 때 정말 우스꽝스러운 노력이었고 어려움이었던 것처럼 그에게는 보였다. 하지만 그는 뽐므가 평소에는 덜 세심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 앞에서 자발적으로 옷을 벗는다. 스스로 옷을 벗음은 하나의 비밀의식이다.



한 존재란 그 자체로 얼마나 충만한 존재인가. 파스칼 레네가 묘사하는 여주인공 뽐므는 다음과 같다. “충만이란 그 나이(열네 살이라고 해두자)의 여자 아이에게는 적합한 말이 아니지만, 이 아이는 꽉 차 있다는 인상을 즉시 풍겼다. 바삐 움직이거나 앉아 있거나 길게 드러누운 채 꼼짝 않고 꿈을 꾸거나, 눈을 감은 채 입술을 살짝 벌리고 있거나, 그녀의 정신이 그녀에게서 벗어나 잠시 꾸벅꾸벅 졸거나 간에 그녀의 육체의 존재는 온 방 안에 군림했다. 뽐므, 그녀는 이제 막, 그러나 완전한 동질성과 놀랄 만한 밀도를 갖추고 완성된 것이다. 그녀의 영혼 또한 틀림없이 단단하고 두툼할 것이다. 그것은 그 존재가 추상화한 눈길이나 말 속으로 흡수되어 버리는 그런 사람들의 영혼이 아니었다. 정말 하찮아 보이는 그녀의 움직임과 활동조차도 그녀를 매 순간의 영원성 속에 구현시켰다.”

가난이 진부한 재앙이라면 “완전한 동질성과 놀랄 만한 밀도를 갖추고 완성된” 뽐므의 삶은 진부한 재앙의 억센 손아귀에 잡힌 셈이다. 그러나 가난이나 천직(賤職) 따위는 한 사람의 심오한 본성을 어쩌지 못한다. 그러나 관습의 독재에 빠진 시선은 한 사람을 심오한 본성을 가진 충만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내의를 책임 맡은 하녀’ ‘물 배달하는 여인’ '레이스 뜨는 여자’로 보게 한다. 남자의 시선은 그 여자의 존재로 스미지 못하고 그 여자가 수행하는 직분 위로 미끄러진다. 그럴 때 몸은 소통하지 않고 다만 소비된다.

처녀와 청년은 우연히 만나 성교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한다. 두 존재의 다름은 이내 드러난다. “그들은 제비콩 샐러드를 먹었는데, 청년은 처녀의 의도를 해독할 수 없었고, 처녀는 그런 건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녀는 단순히 청년과 함께 있는 데, 그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데 만족해했으며, 그래서 그녀는 할 말을 찾아내지 못해서 주눅이 들어 있는 그 청년의 침묵을 불안해하지 않았다.” 처녀는 청년의 존재 바깥으로 미끄러져 나간다. 마찬가지로 청년 역시 처녀의 존재 바깥으로 미끄러져 나간다. “요컨대 그들은 동일한 세계에 속해 있지 않은 것이었다. 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은 상대방을 만족시키지 못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똑같은 즐거움을 나누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서 태어났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그녀가 자기에게 뭘 기대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존재 바깥으로 미끄러져 나감은 몰이해와 혐오감으로 나타난다.

청년은 처녀가 이빨 닦을 때 내는 소리, 침대에서 처녀의 발이 제 몸에 닿는 것, 잠든 처녀의 숨소리조차 견디기 힘들어한다. 처녀의 현전 자체가 욕구를 휘발시키고 실망과 유감 속으로 빠뜨린다. “그에게는 무엇인가가 결핍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녀였다. 하지만 뽐므가 일을 끝내고 돌아와 방으로 들어오면, 충만감도, 기쁨도 사라져버렸다. 반대로 그녀의 현전은 그녀에 대한 욕구를 그에게서 앗아갔다. 그것은 매번 변함없이 가볍고 겨우 느껴지면서도 진정한 실망이었으며 똑같은 유감이었다.” 미래의 박물관장인 청년은 어디에나 있는 흔한 처녀를 만나 성교까지 나누지만 처녀 존재 자체에서 오는 실망과 환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비약하자면 이 처녀는 그 ‘68혁명’에 대한 하나의 은유는 아닐까. 그리고 청년은 실패한 혁명에서 오는 실망과 환멸에 빠진 그 숱한 자율주의자들, 작가 자신을 포함한 지식인 계급의 표상은 아닐까.

“그런데 그로 말하자면 자아를 기증하려고 하는 그 처녀를 만류할 만한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잠자기 전에 끄는 것을 잊어버린 전등만큼도 그 촛불에 대해 염려하지 않은 채로 그는 자신을 숭배하는 그 작은 촛불이 자기 앞에서 타도록 내버려두었다.” 정욕의 시선들은 어디서나 ‘덮칠 대상’을 찾아 이리저리 떠돈다. 타자에게 제 자아를 기증하려는 ‘흔해 빠진 여자'는 잠자기 전에 불 끄기를 잊는 남자의 수만큼이나 희귀하다. 흔한 것은 그 여자를 ‘흔해 빠진 여자’라고 믿는 일방적 해석의 오류에 빠지는 남자들이다.

우연히 만난 처녀를 남자가 ‘흔해 빠진 여자’로 묶을 때 여자는 영원히 남자의 이방(異邦), 바깥에 머문다. 여자를 제 생의 가치 영역에서 배제할 때 남자 역시 여자의 이방으로 전락하는 결과에 이른다.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날리는, 아주 조금은 비극적인 꽃가루로 비유했던 이 인물을 포착하면서, 작가는 이 인물을 손상시킬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이렇게 연약한 존재에 어울릴 만큼 섬세하고 정밀한 글쓰기는 존재할 수 없으리라. ‘레이스 뜨는 여자’는 그녀가 짠 세공품의 투명함 그 자체 속에서 나타나게 해야 할 것이다.”



태생적 배경이 다른 두 남녀의 만남, 동거와 헤어짐, 여자의 거식증과 정신병원행 따위는 흔한 연애소설의 외관을 취하지만 이 소설은 흔한 연애소설은 아니다. 이 섬세하게 연애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시대에 대한 중의적 사유를 덧씌운 ‘레이스 뜨는 여자’는 선택과 배제의 오류에 대한 관찰을 보여준다. 더 또렷하게 말하자면 선택과 배제에 대한 심리적 고찰과 철학적 탐색으로 이루어진다. 작가는 정교하게 짠 레이스와 같이 아름다운 세공품 그 자체인 여자가 가난이나 천직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해석의 폭력에 의해 비참한 자아로 떨어지는지, 해석의 폭력이 어떻게 여자의 현전이 감춘 감수성, 아름다움, 평온함 따위를 지워버리는지를 묘사한다. 파스칼 레네는 그 묘사를 실패한 혁명이 만든 실망과 환멸 위에 덧씌운다.(장석주)

08. 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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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akim 2008-09-13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에 읽어보네요. 극한 디테일이 주는 각성의 시선과 의식의 깨어남 같은 것. 그러면서 그 눈을 통해 머리속이 환해지는 경험이 오랜 시간을 거슬러 접속되네요. 로쟈님 잘 지내시죠?

로쟈 2008-09-13 08:53   좋아요 0 | URL
바쁜 일은 끝내셨나요?^^

2008-09-13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3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3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3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5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9-15 09:57   좋아요 0 | URL
축하합니다.^^ 이사도 하셨으니 제2의 인생이시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