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분석심리학에 관심을 가졌던 계기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접하고서 어떤 한계 같은걸 느끼고, 융의 접근이 좀더 보편적이고 문화를 세밀하게 다룬다는 인상때문이다.
융의 기본 저작집이나 이부영 선생님의 책들을 읽으면서 깊지 않지만 기본적인 이해를 얻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에 번역된 기본 저작에 없는 글들이 궁금해지면서, 영어로 번역된 전집 몇권 구입해 읽기도 했다. 그러고 한참 손놓고 시간이 흘렀다.
요몇년 유행하고 있는 MBti 나 가끔 내가 꾼 꿈을 해석해보면서 융심리학을 조금씩 되뇌 보기는 했다. MBti 는 8개 요소중 6개 요소를 융의 성격유형에서 가지고 오고, 나머지 2개 요소를 마이어스 브릭스 모녀가 보태서 완성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프로이트 정신분석이나 융 분석심리학에서 설명하는 무의식에 큰 기대를 하고, 여성심리학이나 인생후반부에 대한 대비 같은 거에도 관심이 많았던 거 같다. 그러나 인생후반부에 들어서니, 그런 목적 지향보다, 인간이해의 폭, 인간이해의 가능성을 목격하는 것으로 충분한 거 같다.
전이를 다루는 기본3권, 개성화과정을 다루는 5권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
다시보니, 분석심리학에서만 보이는 페르소나, 개성화, 자기 등등의 개념들이 대부분 무의식 특유의 자율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존재감'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는 강하지 않은거 같다. 자율성은 있지만 독립까지는 아닌, 문득문득 우리에게 의식적이든 아니든 올라오는 심리현상들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정도인거 같다.
융이 정성들여 촘촘히 마련해둔 자리들이, 자아의 불확실함을 드러내는 한 방식임에는 틀림없고, MBti 8요소로 개인의 성격유형을 어느정도 보여주는 것처럼, 자아보다 넓은 범위인, 자기를 보여주는 여러 심리요소들이 어떻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정말 인간에관한 인문학적 태도로 정밀하게 보여준다. 거기다가 분석심리학 특유의 '공명'의 요소가 어떤 감동을 주기도 한다.
다만 자아를 많이 넘은, 자기 의 많은 것을 다루는 것이 가치있지만 허망할 수 있어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