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당일배송으로 주문한 책의 하나는 히로세 다카시의 <제1권력 2>(프로메테우스, 2011)이다. 자본권력을 다룬 전작 <제1권력>(프로메테우스, 2010)을 읽을 터라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지도 않고 바로 주문을 넣었다. 아침에 리뷰가 뜬 걸 보니 러시아의 지배계급과 권력지도에 관해 다룬 책이다. '러시아 이야기'로 분류해도 될 만하다. 마이리스트로 만들어놓으려고 하다가 자세한 리뷰기사가 있길래 기사를 옮겨놓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재 러시아 지배층 가운데 로마노프 왕가의 후손들은 아직도 최대 이권 집단이라고 지적"이 요지 가운데 하나일 텐데(일종의 족보결정론?), 푸틴도 거기에 해당하는지 읽어봐야겠다... 

    

세계일보(11. 11. 12) 러시아 지배계급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저항해 온 것은 빈곤을 낳은 하나하나의 문제들이지, 자본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이데올로기가 결코 아니었다. 소련이 소멸되었기 때문에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했다지만, 사실상 그들 지도자는 대부분 귀족계급 내지는 자본주의의 화신이나 다름없었다. 이래서야 무슨 실험을 했다고….” 이 책은 이른바 ‘좌파’의 원조격인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이면을 고발하면서, 민중운동을 명분으로 내건 사회주의 진보 지식인들의 본모습을 들춰낸다. 저자가 겨냥한 인물들은 1848년 공산당선언에서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고 외친 칼 마르크스, 민중이 지배하는 나라를 만들자며 국가혁명론을 들고 나선 블라디미르 레닌,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완성하자고 외친 트로츠키, 스탈린 등이다.

우선 16세기 중반부터 러시아를 통치한 로마노프 왕가의 혈연을 따라간다. 이에 열거한 인물들은 죄다 로마노프 왕가와 직계 혹은 모계로 연결돼 있다. 저자는 이들이 권력서클을 이룬 과정, 인민 대중을 수탈하는 과정, 기득권 보호 행태 등을 고증자료를 토대로 비판한다. 특히 민중 봉기를 부추기는 이데올로기의 허구성과 맹점을 통렬히 고발하고 있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으로 유명한 저자는 지난해 ‘제1권력 1’을 펴내 JP모건과 록펠러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거대자본가들이 미국을 좌지우지했던 갖가지 행태들을 열거했다. 지난해 이 책은 출간 직후 일본 공산당 이론가들이 공식 항의하고 반박하는 소동을 빚으면서 30만부 이상 팔려나가는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책은 이제껏 전해진 소비에트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종래 인식을 뒤집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종래 ‘좌·우’이념이라는 이분법적 틀을 깨고 ‘러시아혁명(공산주의혁명)은 대체 무엇이었나’라고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이를테면 소비에트 독재를 연 인물 가운데 한 명인 흐루시초프는 로마노프 가문의 대귀족이었다. 이어 이오시프 스탈린, 몰로토프, 미코얀 등의 크렘린 수뇌부는 거의 로마노프 가문과 유대관계 또는 혈연으로 연결된 사실도 밝혀진다.

흐루시초프는 100% 프롤레타리아 출신임을 간판으로 내걸고 소비에트운동에 앞장선 인물. 러시아 정부 공식 문헌에도 도네츠크 탄광에서 일한 노동자로 분명히 명기되어 있다. 그는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한 러시아 왕가의 일원이었으나,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완수하는 주역으로 면모를 탈색한다. 이렇듯 노동자와 농민이 지배한다는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구소련의 최고 권력 집단 ‘볼셰비키 정부’를 구성한 인물들은 대부분 귀족 집안의 후손이거나 그 후광을 업고 있었다. 이런 게 사실이라면 사회주의 이념을 추종하고 있는 국내 진보 사상가들의 이념적 혼돈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지금도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혁명의 아버지를 떠받들고 있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선조는 로마노프 왕가를 추종한 귀족이었다. 레닌의 외조부는 1847년 카잔의 영주였으며 가장 유복한 계급이었다. 소련이 붕괴되고 자유 기운이 한창 무르익을 때 반체제 인사로 이름을 알린 사하로프. 그는 수소폭탄이라는 인류 최대의 흉기를 스탈린에게 만들어 바친 인물로 묘사된다. 서방에서는 그를 반체제 양심인사의 상징으로 치켜세우곤 했다. 하지만 지금 러시아에서 사하로프를 떠받들거나 존경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보리스 옐친의 금고지기 출신으로, 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구단 첼시의 구단주이자 석유재벌인 아브라모비치 역시 귀족집단 ‘울리가르히’ 중 한 명이다.

저자는 이런 인물들이 움직이는 러시아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분명히 적시한다. 양심적 지식인들의 각성을 촉구한 것이다. 그러면서 민중운동 내지 사회주의를 명분으로 한 특권층의 행태를 고발한다. 그는 현재 러시아 지배층 가운데 로마노프 왕가의 후손들은 아직도 최대 이권 집단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로마노프 왕가가 지배한 제정 러시아에서 공산주의로 바뀌고, 현대에 와서 다시 제정 러시아로 돌아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지배계급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면서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낭만적 성향의 일부 사회주의자들은 맹종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국내 사회 운동가들 가운데서도 이런 표리부동의 인물들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공산주의 이념을 내걸고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실험했던 장본인들은 실상 당대의 자본가 내지 귀족 계급 출신이었다. 저자는 로마노프 왕가로 대표되는 러시아 지배계층의 본모습을 고발하면서 현대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정승욱 선임기자)  

11.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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