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편의 <죄와 벌>이 무대에 오른다. 일단 극단 명품극단의 <더 게임-죄와 벌>이 오늘부터 3월 11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명품극단의 전작 <죄와 벌> 라스콜리니코프와 소냐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죄와 벌>은 라스콜리니코프와 포르피리를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연출가인 김원석은 거미줄에 걸린 벌레와 다를 바 없는 한 인간의 절규를 통해 우리를 옭죄고 있는 법, 도덕, 규칙과 제도라는 억압과 구속을 이야기한다. 대학로에서 뼈가 굵은 남명렬이 뽀르피리 역을, 오경태가 라스꼴리니꼬프 역을 맡았다. 여배우 김호정은 쏘냐로 출연한다.(스포츠경향)

 

그리고 극단 피악도 이달 27일부터 4월 1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죄와 벌>을 선보인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지난 2010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연기와 춤이 어우러진 씨어터 댄스 스타일의 공연이라고. 

라스꼴리니꼬프 역에는 지적이면서도 강한 연기에너지가 돋보이는 배우 김태훈(현 세종대학교 문화예술콘텐츠대학원장)이 맡았다. 최홍일, 정수영, 문경희 등이 라스꼴리니꼬프의 독백 사이사이 등장하는 주요 배역으로 출연한다. 현대무용 안무가로 잘 알려진 댄스씨어터 까두의 박호빈이 안무를 맡아 새로운 형태의 무대 스타일을 제시한다. 프랑스에서 공연학 박사를 취득하고 유럽에서 공연예술가들과 협력하여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업을 추구했던 나진환의 연출이 기대되는 작품이다.(스포츠경향)

 

명품극단의 <더 게임-죄와 벌>과 관련해서는 지난달에 팸플릿 소개글을 부탁받고 쓴 바 있다. 초고를 옮겨놓는다. 

 

가장 러시아적이면서도 가장 유럽적인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1866)은 이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1880)에 이르는 위대한 작가적 여정의 첫 번째 이정표이다. 작가는 문제작 <지하로부터의 수기>(1864)를 통해서 당시 러시아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공리적 사회주의 이념을 공박하고 진정 '살아있는 삶'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죄와 벌>은 이러한 관심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동시에 이 작품은 문제적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사상과 선택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사상은 그의 범죄이론에 집약돼 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범인(凡人)과 비범인(非凡人)으로 나뉠 수 있고, 비범인은 범인의 한계를 넘어 초법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역사상의 비범인들, 곧 모든 입법자나 건설자들이 바로 그런 권리를 행사해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인간 ‘분류학’에 한정되지 않는다. 가난 때문에 휴학중인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자기 자신이 비범인인가 아닌가였다. 러시아어로 '죄'의 어원적인 뜻은 '한 발작 넘어섬'인데, 그는 자기가 비범인들처럼 모든 장애를 딛고 한 발작 넘어설 수 있는가를 시험해보고자 한다. 전당포 노파 알료나에 대한 살인은 그러한 시험의 의미를 지닌다. 과연 그는 자부심대로 자신이 비범인이란 걸 확인할 수 있었을까.


라스콜리니코프란 이름에서 '라스콜'은 러시아어로 분리/분열을 뜻한다. 살인을 계획하던 단계에서부터 라스콜리니코프는 가족과 친구에게서 자신을 고립시킨다. 이것이 그가 겪는 분리와 소외의 체험이다. 또한 알료나의 이복자매 리자베타에 대한 예기치 않은 추가살인은 라스콜리니코프의 계획과 실행 사이에 괴리를 가져오며 그의 내면에 분열을 초래한다. 예심판사 포르피리의 심문 장면이 보여주는 긴장감은 이러한 내적 분열이 외부로 표출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과연 무엇이 잘못됐다고 느끼며 어떤 고뇌에 빠지는 것일까. 그가  전당포 노파를 죽인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을 죽였다고 토로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일까.   


고전은 언제나 다시 읽히며 재해석되는 가운데 생명을 유지한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지식인 청년의 고뇌를 담은 <죄와 벌>이 명품극단의 을 통해서 한 번 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사유를 자극한다. 이 공연을 통해서 우리는 라스콜리니코프와 함께 또 다른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12.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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