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 제목은 <un Avion sans elle> 그녀 없는 비행기. 제목이 스포인셈. 


1980년 12월 22일, 눈보라에 터키발 파리 행 비행기가 추락,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다. 단 한명, 백일 남짓의 어린 아기만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승객 명단에는 그 또래의 아기는 두 명. 두 유족은 서로의 핏줄임을 주장하고 길고 긴 여론 몰이와 재판을 거쳐 아기는 에밀리 '비트랄'로 성장하게 된다. 축제나 관광지에서 푸드트럭을 하는 서민층의 손녀로. 두 살 위 오빠 마르크와는 매우, 매우 의좋게 너무나 특별한 사이로 성장한다. 거부할 수 없는 사랑. 하지만 또 다른 유족, 이쪽은 (주말 드라마 같이) 거대 기업주이며 귀족 혈통인 '카르빌'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손녀 리즈로즈라고 믿으며 사설탐정 크레듈을 고용해 조사작업을 장장 18년간 펼친다. 여기엔 여섯 살 위의 언니 말비나가 그 세월 동안 뒤틀린 모습으로 동생을 기다려 왔다. 우리의 '그림자 소녀'는 에밀리인가, 리즈로즈인가. 그 와중에 사람들이 하나, 둘, 셋, 넷, 다섯이 살해당한다. 


뮈쏘의 스릴러 같은 로맨스 통속 소설을 두 어 번 시도하다 완독을 못했는데 이번 소설도 비슷한 경고 분위기로 시작했다. 금발에 파란눈 미녀, 다재다능한 여주인공, 낳은정 기른정, 물보다 진한 피, 열길 물속 보다 어지러운 사람 속, 왕가슴 매력에 무릎 꿇는 아자씨, 등 판에 박힌 공식들이 계속 이어진다. 이런 줄거리는 K드라마가 전문인줄 알았는데. 뭐 그럭저럭 읽었다. 아침 밥 차리고 먹고 치우고 읽다가 커피 마시고 조금 더 읽다가, 빨래 널고 이어서 읽다가, 전화로 친구에게 이 소설 욕도 좀 하다가, 사흘 쯤 설렁 설렁 다 읽었다. 다 읽고 나니 정말 우리나라 드라마 본 기분이 든다. (일년 후, 출산, 결혼, 환갑잔치 등으로 마무리하는 식이다) 배경이 프랑스였는데 송혜교 원빈 한효주 등등이 떠오른다. 사랑의 힘!으로 다 이겨낸 여주 남주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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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16 21: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뭔가 출생의 비밀부터 막장까지 정말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같은 ㅎㅎ 우리나란 김치로 싸대기를 날리더데요. 프랑스는 마카롱으로 싸대기? ㅎㅎ 책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만두님 글은 재미있어요

책읽는나무 2021-12-16 22:25   좋아요 3 | URL
책보다 만두님의 리뷰가 늘 흥미진진 합니다.
근데 마카롱으로 싸대기라뇨???
안돼요~~마카롱 아까비!!!ㅜㅜ

유부만두 2021-12-18 22:38   좋아요 3 | URL
프랑스는 그냥 총질을 하거나 몸으로 밀어붙이던데요? 책도 뭐 재미는 있어요. 너무 친근한 소재들이라 당황스럽기도 했고요. ㅎㅎ

난티나무 2021-12-17 00: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있는데 패스해야 겠군요. 감사합니다!^^

유부만두 2021-12-18 22:38   좋아요 2 | URL
프랑스에선 아주 인기였다는데 글쎄요... 추천하긴 힘들어요. ^^;;

psyche 2021-12-17 04: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밀리의 서재에 있길래 읽어볼까 다운받았는데 가볍게 패스해야겠다 ㅎㅎ

유부만두 2021-12-18 22:39   좋아요 2 | URL
패스! 패스!
 


첫 장면은 어머니의 중병 소식을 알리는 가족 식사 자리다. 일본인 대가족의 서양 (아마도 스페인) 음식상 삐걱거리는 묘사와 감정 과잉에 다섯 쪽을 읽지 못했다. 음식 관련 단편 모음집이었는데 아마 다시 손에 들지 않을 것 같다. 










같은 저자의 책은 아니지만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묶은 <걸어다니는 어원사전>을 재미있게 읽어서 샀는데.... 아, 이건 <어원사전> 처럼 재치있는 엣세이 형식도 아니고 재미없는 단어/숙어집 형식인데다 표현들도 어쩜 이리 .... 군내가 나는지, 1/3 깔딱 고개를 못 넘고 덮었다. 


<-- '걸어다니는 어원사전' 아주 재미있습니다. 읽고나서 기억나는 어원... 뭐 없진 않습니다만, 까먹었으면 다시 읽으면 돼죠, 머. 다시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다 읽고 까먹었으면 다시 읽으 ... (반복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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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2-15 2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사전 류, 배열은 읽을 때 너무 재밌는데 읽고 나서 기억이 가물이 문제지만, 유부만두님 말씀처럼 다시 읽으면 되니까^^ 재밌으니까^^

유부만두 2021-12-16 19:45   좋아요 1 | URL
그쵸! 다시 재미있는 독서하면서 단어도 다시 배우고요 ^^

쎄인트 2021-12-16 16: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21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유부만두 2021-12-16 19: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쎄인트님도 축하드립니다! ^^

scott 2021-12-16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2021년 서달인 추카 합니다 ^ㅅ^

유부만두 2021-12-16 19:48   좋아요 1 | URL
스콧님도요! 전 가을에 서재를 잘 챙기지 못해서 놀랐어요!

새파랑 2021-12-16 1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 서달당선 축하드려요 ^^

유부만두 2021-12-16 19:48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도요! 축하드립니다. ^^

독서괭 2021-12-17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 다섯번째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유부만두 2021-12-18 22: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독서괭님께도 축하 인사드립니다! ^^

그렇게혜윰 2021-12-23 17:24   좋아요 0 | URL
다섯번째라니♡♡♡♡ 축하드려요
 

정치적 올바름이 작품과 작가를 옥죄는 상황에 대한 작가의 토로. 


'끝까지 몰아부치는' 폭력과 성애 장면을 자주 쓰며 극한의 감정과 상황을 소설 속에 녹여내는 작가 마쓰 유메이는 어느날 국가 기관으로 부터 소환장을 받는다. 기르던 고양이가 집을 나간지 며칠, 뒤숭숭한 마음으로 간단한 짐을 챙겨 어느 해변가 기차역에서 낯선 공무원의 차를 타고 '요양원'에 입소한다. 곧 자신의 자유를, 운신의 자유와 글쓰기 및 생각의 자유를 빼앗긴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다. 작가는 과연 이 요양소/수용소/무덤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탈출에 성공한다면 어디로 가야하는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PC한, 체제 순응적인, 좋은 소설은 무얼까. 작가의 입장에서 본, 규율에 몸서리치는 소설은 의외로 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예전 소설 보다는 순하고 읽기가 쉽다. 피도 덜 나고 축제를 벌이는 듯한 성폭행 묘사도 없다. 하지만 작가가 더 이상 자유로운 작가가 아닌 상황을 그리고 있으니 최악의 디스토피아이다. 독자 입장에선 ... 음.... 작가가 맘껏 그려내는 '극한'에 대해선 독자 나름대로 호불호를 나름대로 가질 수는 있다고 본다. 독자가 그렇게 멋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랭이는 아니니까... 중요한 건 소설이 만든 그 세계 안에서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하늘에서 생선이 내려도 계속 읽어나갈 수 있다. 대신 인물이 생뚱맞거나 작가가 도드라진 목소리로 독자를 가르치려 들거나, 게으르게 뻔한 이야기를늘어놓는다면 그거야 말로 '아웃'이다. 독자인 나는 새롭게! 재미있게! 홀려주는 작가와 작품을 바란다. 그런 점에선 이 소설은 슴슴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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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12-15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 듣는 작가인데 정말 그가 수용소를 탈출했는지 궁금하네요. 하늘에서 생선이 내려온다고 해도 믿고 읽을 수 있는, 혹은 신뢰할 수 있는 작가를 만난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일까 싶어요.
오늘은 안 추워서 좋네요. 좋은 날 되세요^^

유부만두 2021-12-15 11:27   좋아요 1 | URL
오늘은 푸근하네요. 단발머리님께도 푸근한 날이 되길 바랍니다.

이 작가의 전작들은 피칠갑에 인간도축에 극한 장면 연출이 많아요. 하지만 이번 소설은 pc함과 자기검열이 작가와 사상을 규제하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어요. 작가의 말을 플어 쓴 이야기 같달까요.
 

트위터에서 포스터를 봤는데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1990년대 발랄라한 이십대 초반 여성의 대도시 직장 생활 분투기라고 했다. 그런데 직장이 문학 에이전시. 인상적인 백발의 여성 상사 시고니 위버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쿨시크한 상사 메릴 스트립을 생각나게 했다. 



원작이 있어서 찾아 읽었는데 소설이 아니라 회고록이라고 했다. 역시나 '프라다'와 비슷한 분위기로 시작한다. 때는 1995년 12월, 영국에서 다니던 대학원을 석사만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온 (본가는 브롱스) 조안나는 이제 자신의 시를 쓰고 싶다. 오래된 문학 에이전시에 비서/보조?로 취직해서 녹취록을 만들고, 유명 은둔 작가 샐린저에게 온 팬레터에 공식 거절/반송 편지를 쓰며 (이 모든 것은 타자기로 한다. 컴퓨터가 아니라. 1996년에 말입니다. 이 사무실이 Judy Blume을 놓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책에서 언급되는 주디 블룸의 '어른 소설' Summer Sisters가 궁금해졌다) 하루하루를 보낸다. 원고 검토는 언감생심, 그런데 동거하는 남친은 여성 혐오 넘치는 소설을 쓴다고 온갖 진상을 다 떨고있다. 직장 상사의 부재시 (주로 금요일) 조안나는 전화를 제대로 받고, 무엇보다 샐린저의 정보를 외부에 발설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상사도 역시 개인사의 아픔을 갖고 있었고... 문학 사랑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막막하다.


박봉에 시달리고, 남친의 괴팍한 행동과 끔찍한 현실을 마주하고, 가구가 아닌 사람 취급을 받기위해 애쓰는 조안나는 몇 번의 전화 통화에서 노인 대작가 샐린저를 통해 자신의 진짜 꿈을 (꿈의 불씨를) 되살린다. 더해서 자존감도. 모두가 열광하는듯한 샐린저의 소설 세계를 이십대가 되어서야 읽기 시작하고 울컥하는 마음에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인생의 큰 발걸음을 내딛는다. 정말 '프라다'와 비슷하다. 그에게 샐린저는 ... 어떤 의미냐... 


이 책은 2015년에 출간되었고, 작가의 1996년과 2008년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샐린저의 추문, 1998년 Maynard의 회고록 출간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오십대 중년 아재의 대학1년생(및 미성년자) 꼬시기 (이게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남자친구의 성추행 해직과 자신을 향한 가스라이팅 설정을 공들여 써놓았다. 


귀엽고 어딘가 어설픈 표정의 사회초년생 이야기, 제목마저 뉴욕 다이어리, 라고 달아놓고 슬쩍 샐린저를 인생 조언 해주는 어르신으로 모셔놓으니 많이 찜찜하다. 샐린저의 옛애인 Maynard는 (나이차이가 34살!!!) 대학 1학년을 중퇴하고 그의 집으로 들어갔고 그 '어린 여자에게 마수를 뻗는 착취자'에 대해 여러번 기고문을 통해 분노와 경고를 쏟아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폭로자를 향한 비난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샐린저는 Maynard와의 동거 이후에도 1988년 40살 연하의 여인과 결혼했다. 


Salinger in Love | Vanity Fair

Joyce Maynard on Woody Allen, J.D. Salinger, and the Chilling Parallels Between 2 ‘Great’ Men | Vanity Fair


여러 생각이 오가는 독서였다. 재미는 있는데 찜찜함도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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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13 17: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샐린저에 이런 추문이 !! 영화에서도 보면 아내나 아이에게 좋은 남편 아버지는 못 되더라고요.ㅠㅠ

유부만두 2021-12-13 17:32   좋아요 3 | URL
샐린저가 더해서 오락가락 하는 신앙으로도 가족을 괴롭게 했다고 읽었어요.

Maynard는 성추문이 드러날 때 비난이 여성/고발자를 향하는 문제를 성토하고 있어요. 문제가 되는 행동을 ‘누가‘ 하는지가 더 중요한데도 자꾸 이유를 만들면서 가해자를 감싸고 돈다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오십대 대작가가 대학 1학년 여학생에게 집적거리는 건 ...으....너무 더럽고 싫어요. 그런데 그런 비슷한 사례가 우리 나라에도 있잖아요. 으....

scott 2021-12-13 17: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메이나드와 샐린저 평전 책 읽고 분노를!!! 샐린저 사이코 메이나드 딸이 자신의 어머니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아다고 폭로 했던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나네요 샐린저가 군대 생활과 전쟁 당시 겪었던 정신적 충격 트라우마로 어린 소녀에게 탐닉했던 롤리타 증후군을 앓았던 미국 문학계에서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 하지 않고 덮어 버린,,,파수꾼 알고 보면 무서운 이야기...

유부만두 2021-12-13 17:35   좋아요 2 | URL
메이나드 딸의 기사는 잘 모르겠고요,
샐린저나 우디 앨런의 확실한 성착취에도 그들의 ‘옹호자‘들이 나서서 폭로자/피해자를 공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독서괭 2021-12-13 23: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헉 샐린저 그런 사람이었군요. <호밀밭의 파수꾼> 만 읽었지 작가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는데… 충격입니다. 오십대작가가 대학생- 넘 싫네요 ㅠ

유부만두 2021-12-15 07:02   좋아요 2 | URL
저도 큰 충격을 받았어요. ㅜ ㅜ
이래서 작가의 사생활과 작품은 구별해야 하는 걸까요?
과연 그 구별은 가능할까요?

PersonaSchatten 2021-12-14 0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피비 지켜! ㅠㅠ 갑자기 안 좋은 의심을 하게 됐어요. 교생때 애들한테 선물한 책 중 하나인데. ㅠㅠ

유부만두 2021-12-15 07:03   좋아요 1 | URL
페르소나님의 선물의 의미가 퇴색하진 않을거에요. ㅜ ㅜ
하지만 저의 독서 경험...

psyche 2021-12-14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화 트레일러 보니 제이양 생각이 나네. 졸업하고 처음에 문학 에이전시에서 일했었는데. 그 누구더라... 리베카 솔닛이 그 에이전시 작가였는데. 제이양이 땡스기빙 떄 집에 와서 리베카 솔닛 아냐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한국에서 인기라고 에이전시에서 놀라고 있다고 했었지.

유부만두 2021-12-15 07:04   좋아요 1 | URL
맞다! 예전에 언니가 이야기 해준 기억이 나요.
문학 에이전시 안에서 일하면 문학을 어쩌면 다른 시각에서 바라봤겠네요. 이 책의 주인공 처럼요.

 

서부 카우보이 소설의 대가 애니 프루가 추천한 소설. 


1915년생 작가 토머스 새비지는 거대 양목장의 후계자인 어머니와 거대 소목장 주인인 양아버지 슬하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그 경험을 다분 이 소설(과 다른 소설들)에 녹여냈다. 


때는 1925년, 마흔살의 농장주 (그 당시에도 자산 몇 십만불을 호가했다는) 필과 두살 아래 동생 조지는 아직 미혼이다. 모든 면에서 반대인듯한 두 형제는 그런대로 오랫동안 (이십오 년의 결혼 생활에 비유할 만큼) 잘 지내왔다. 하지만 광활한 대지는 무자비하고, 수십 명의 카우보이들과 함께 수천 두의 소들을 키워 (때때로 잡아 먹고) 기차역이 있는 마을까지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하고 화물열차에 태우는 일은 고되다. 그들 사이에 한 여인 로즈가 사연과  열여섯 살 아들 필립을 데리고 등장한다. 그들을 온몸으로 경멸하는 필. 자동차를 혐오하고, 원주민 인디언을 내쫓은 주제에 이민자들을 혐오하고, 여성을 혐오하고, 허세와 위선을 혐오하고, 자신은 모든것을 꿰뚫어본다고 믿고, 좋았던 옛시절과 카우보이 스승을 그리워하며, 흐르는 시간과 시대를 거부하는 남자 필. 그는 장갑을 끼지 않는다. 


세세한 풍경 묘사는 책 읽는 내내 바람 냄새를 일으켰고, 각 인물들의 속엣말들은 생생하게 그들 사이의 벽과 갈등을 쌓아놓는다. 소설의 시작 전에 깔려있는 파국의 밑밥 위에 파국으로 시작하고 더 큰, 파국으로 '개의 아가리'를 향해 달려가는 소설. 여기에서 개는 누구인가. 풍경의 개, 인생의 걸림돌인 개, 사악함의 개. ...하지만 어딘가에 목숨 바쳐 충실했고 쓸쓸했던 그 개. 


스포일러를 하지 않겠다. 

두 밧줄, 두 명 (더하기 반)의 아버지,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는 아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어머니와 아들, 맨 손, 맨 몸, 그리고 맨 정신. 


책을 읽고 곧이어 넷플릭의 영화를 봤다.  책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영화에선 인물들 사연이 많이 생략되어서 책을 읽지 않은 남편은 지루하다는 평을 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필이, 그 빌어먹을 개 자식이 더 도드라졌다. 컴버배치의 연기는 꽤 좋았다. 필이 평생 억누르며 감춰왔던 마음, 그 이야기가 몬태나 산맥과 광야에 그리고 그 호수에서 펼쳐졌다. 묘한 표정으로 서 있는 소년 필립이 영화를 마무리하고 나는 돌아와서 애니 프루가 2000년대에 이 책(초판 1967년)을 재발간하며 쓴 '해설' 부분을 읽었다. 다시 몬태나의 이야기가 시작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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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12-12 09: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극장 가서 보려고 찜! 했는데 책부터 읽는 게 역시 좋군요.

유부만두 2021-12-12 09:24   좋아요 2 | URL
전 넷플릭스에서 봤는데 극장개봉도 하는군요.
풍경을 큰 화면으로 보면 더 멋지겠어요.
책을 먼.저. 읽으시길 권합니다.
그 긴장감! 그 속 사정! 은 책을 읽을 때 더 잘 즐기실 수 있어요.

독서괭 2021-12-12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인공이 빌어먹을 개자식인 건가요 ㅎㅎㅎ

유부만두 2021-12-12 13:29   좋아요 1 | URL
개자식 중 하나지요. ^^

mini74 2021-12-12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개가 주인공인줄 알았어요 ㅎㅎ ㅠㅠ 그런 개가 이니군요. 이 책도 넘 제미있겠어요 ~~

유부만두 2021-12-13 06:32   좋아요 1 | URL
긴장감이 장난 아닙니다.
목장에 ‘진짜 개’도 물론 있고요. ^^

psyche 2021-12-14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넷플릭스로 영화만 보려 했는데 책을 읽어야 하는 거야?

유부만두 2021-12-15 07:06   좋아요 0 | URL
책이 훠어어얼씨이인 나아요.

영화에선 엄마의 행동이 잘 설명되지 않거든요.
그리고 주인공 필(컴버배치)의 감정이 과장되기도 하고요.

책은 좀 클래식한 면이 있지만 긴장감 두근두근 .... 재밌어요.

hnine 2021-12-21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이런. 영화를 먼저 보기 시작해버렸네요.

유부만두 2021-12-31 07:09   좋아요 0 | URL
영화 먼저 보셔도 책은 다른 감동을 안겨줄거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