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서 포스터를 봤는데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1990년대 발랄라한 이십대 초반 여성의 대도시 직장 생활 분투기라고 했다. 그런데 직장이 문학 에이전시. 인상적인 백발의 여성 상사 시고니 위버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쿨시크한 상사 메릴 스트립을 생각나게 했다. 



원작이 있어서 찾아 읽었는데 소설이 아니라 회고록이라고 했다. 역시나 '프라다'와 비슷한 분위기로 시작한다. 때는 1995년 12월, 영국에서 다니던 대학원을 석사만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온 (본가는 브롱스) 조안나는 이제 자신의 시를 쓰고 싶다. 오래된 문학 에이전시에 비서/보조?로 취직해서 녹취록을 만들고, 유명 은둔 작가 샐린저에게 온 팬레터에 공식 거절/반송 편지를 쓰며 (이 모든 것은 타자기로 한다. 컴퓨터가 아니라. 1996년에 말입니다. 이 사무실이 Judy Blume을 놓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책에서 언급되는 주디 블룸의 '어른 소설' Summer Sisters가 궁금해졌다) 하루하루를 보낸다. 원고 검토는 언감생심, 그런데 동거하는 남친은 여성 혐오 넘치는 소설을 쓴다고 온갖 진상을 다 떨고있다. 직장 상사의 부재시 (주로 금요일) 조안나는 전화를 제대로 받고, 무엇보다 샐린저의 정보를 외부에 발설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상사도 역시 개인사의 아픔을 갖고 있었고... 문학 사랑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막막하다.


박봉에 시달리고, 남친의 괴팍한 행동과 끔찍한 현실을 마주하고, 가구가 아닌 사람 취급을 받기위해 애쓰는 조안나는 몇 번의 전화 통화에서 노인 대작가 샐린저를 통해 자신의 진짜 꿈을 (꿈의 불씨를) 되살린다. 더해서 자존감도. 모두가 열광하는듯한 샐린저의 소설 세계를 이십대가 되어서야 읽기 시작하고 울컥하는 마음에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인생의 큰 발걸음을 내딛는다. 정말 '프라다'와 비슷하다. 그에게 샐린저는 ... 어떤 의미냐... 


이 책은 2015년에 출간되었고, 작가의 1996년과 2008년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샐린저의 추문, 1998년 Maynard의 회고록 출간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오십대 중년 아재의 대학1년생(및 미성년자) 꼬시기 (이게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남자친구의 성추행 해직과 자신을 향한 가스라이팅 설정을 공들여 써놓았다. 


귀엽고 어딘가 어설픈 표정의 사회초년생 이야기, 제목마저 뉴욕 다이어리, 라고 달아놓고 슬쩍 샐린저를 인생 조언 해주는 어르신으로 모셔놓으니 많이 찜찜하다. 샐린저의 옛애인 Maynard는 (나이차이가 34살!!!) 대학 1학년을 중퇴하고 그의 집으로 들어갔고 그 '어린 여자에게 마수를 뻗는 착취자'에 대해 여러번 기고문을 통해 분노와 경고를 쏟아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폭로자를 향한 비난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샐린저는 Maynard와의 동거 이후에도 1988년 40살 연하의 여인과 결혼했다. 


Salinger in Love | Vanity Fair

Joyce Maynard on Woody Allen, J.D. Salinger, and the Chilling Parallels Between 2 ‘Great’ Men | Vanity Fair


여러 생각이 오가는 독서였다. 재미는 있는데 찜찜함도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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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13 17: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샐린저에 이런 추문이 !! 영화에서도 보면 아내나 아이에게 좋은 남편 아버지는 못 되더라고요.ㅠㅠ

유부만두 2021-12-13 17:32   좋아요 3 | URL
샐린저가 더해서 오락가락 하는 신앙으로도 가족을 괴롭게 했다고 읽었어요.

Maynard는 성추문이 드러날 때 비난이 여성/고발자를 향하는 문제를 성토하고 있어요. 문제가 되는 행동을 ‘누가‘ 하는지가 더 중요한데도 자꾸 이유를 만들면서 가해자를 감싸고 돈다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오십대 대작가가 대학 1학년 여학생에게 집적거리는 건 ...으....너무 더럽고 싫어요. 그런데 그런 비슷한 사례가 우리 나라에도 있잖아요. 으....

scott 2021-12-13 17: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메이나드와 샐린저 평전 책 읽고 분노를!!! 샐린저 사이코 메이나드 딸이 자신의 어머니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아다고 폭로 했던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나네요 샐린저가 군대 생활과 전쟁 당시 겪었던 정신적 충격 트라우마로 어린 소녀에게 탐닉했던 롤리타 증후군을 앓았던 미국 문학계에서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 하지 않고 덮어 버린,,,파수꾼 알고 보면 무서운 이야기...

유부만두 2021-12-13 17:35   좋아요 2 | URL
메이나드 딸의 기사는 잘 모르겠고요,
샐린저나 우디 앨런의 확실한 성착취에도 그들의 ‘옹호자‘들이 나서서 폭로자/피해자를 공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독서괭 2021-12-13 23: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헉 샐린저 그런 사람이었군요. <호밀밭의 파수꾼> 만 읽었지 작가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는데… 충격입니다. 오십대작가가 대학생- 넘 싫네요 ㅠ

유부만두 2021-12-15 07:02   좋아요 2 | URL
저도 큰 충격을 받았어요. ㅜ ㅜ
이래서 작가의 사생활과 작품은 구별해야 하는 걸까요?
과연 그 구별은 가능할까요?

persona 2021-12-14 0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피비 지켜! ㅠㅠ 갑자기 안 좋은 의심을 하게 됐어요. 교생때 애들한테 선물한 책 중 하나인데. ㅠㅠ

유부만두 2021-12-15 07:03   좋아요 1 | URL
페르소나님의 선물의 의미가 퇴색하진 않을거에요. ㅜ ㅜ
하지만 저의 독서 경험...

psyche 2021-12-14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화 트레일러 보니 제이양 생각이 나네. 졸업하고 처음에 문학 에이전시에서 일했었는데. 그 누구더라... 리베카 솔닛이 그 에이전시 작가였는데. 제이양이 땡스기빙 떄 집에 와서 리베카 솔닛 아냐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한국에서 인기라고 에이전시에서 놀라고 있다고 했었지.

유부만두 2021-12-15 07:04   좋아요 1 | URL
맞다! 예전에 언니가 이야기 해준 기억이 나요.
문학 에이전시 안에서 일하면 문학을 어쩌면 다른 시각에서 바라봤겠네요. 이 책의 주인공 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