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참 이상하고도 재밌는 것 중 하나인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일에 조금 재주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소개팅 시켜줬던 건 성사율 0%였긴 했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냥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들을 서로 친구시켜주고 이런 일들을 좋아했다는 거다.
K와 J는 고등학교 시절 나와 같은 동아리에 있던 친구인데, 나는 K와 따로, J와 따로 친했다. 그리고 Y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당시 나름 친하게 지내던 오빠들과 무리지어 놀던 친구 중 한 명으로 당시 유행하던 단체 돌림일기, 뭐 이런 것들도 같이 쓰고 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 (그 때 여섯명이 함께 쓰던 돌림일기는 아직 책꽂이에 있는데 어쩐지 낯부끄러워질 것 같아 꺼내어 보지는 않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 모임도 나와 H오라버니를 중심으로 각자의 친구들로 결성이 됐던 모임이었구나 -_-)
그러다 우리는 2학년이 됐고, 나와 같은 동아리에 있던 K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Y와 내가 2학년 때 한 반이 됐다. 그리고 우리는 다섯, 여섯명쯤 무리지어 노는 친구들 (그러니까 함께 도시락을 먹는다는 의미 ㅋㅋ) 이 됐는데, 구성이 생각해보니 나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2명과 나와 같은 동아리였던 친구들 2명이었다. J는 여전히 다른 반이었고, 나와는 동아리 친구였고. 실은 J와 나는 서로 싫어하던 사이였는데, 싫어하다보니 정이 들고, 오해가 풀리고, 뭐 이러면서 급 친해졌던 관계.
대학에 오고, 나는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살게 됐고, K와 J와 Y와는 각각 다르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K와 J가 휴학을 하게 됐고, 둘다 각자 심심하다고 연락을 해왔기에, 그럼 둘이 놀면 좋겠다 싶어 J에게 연락을 해보라며 K에게 J의 연락처를 알려줬었다. K는 회상하기를, 오죽 심심했으면, 이라고 하긴 하지만- 암튼 K는 J에게 연락을 했고 둘이 같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둘의 사이는 급 친해지고, 나는 또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지내면서 K와 J와 Y 모두와 조금씩 소원해졌다. 그리고 3학년을 마치고, 내가 휴학을 해 다시 집으로 왔을 때는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졌으니, 그 안어울리던 K와 J가 소위 말하는 베스트프렌드가 돼있는 사건. 아, 그 때의 당혹감이란. 암튼 그 과정에서 고등학교 때는 서로 말도 섞지 않던 J와 Y까지도 친해지게 되서 결국 나를 뺀 그 셋은 함께한 그 세월에 비례하는 매우 일상적인 친구가 돼버렸다.
내가 졸업을 한 후, K와 Y는 함께 호주에서 연수를 했고, J는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느라 그들은 또 나와는 그만큼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녀들을 만난 며칠 전, 나는 공교롭게도 제일 덜 친한 친구가 되어 그들과 함께했다. 이런 아이러니함이라니. 이젠, 니들 만날 때 나도 불러, 라고 내가 말해야 되는 상황이 되버렸다.
Y는 스물 아홉을 맞이하면서, 올 가을 쯤 결혼을 생각했던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 받았다. 때마친 다니던 회사도 불안정해지자, 그녀는 무슨 스물 아홉이 이래, 라며 경악을 했다. 그런 그녀가 뮤지컬 싱글즈를 보러 가잔다. 80년생들에게 29%를 할인해주는 스물 아홉살 이벤트를 한다며, 스물 아홉이 되서 계속 안좋은 일만 생겼는데, 이런 좋은 일도 생겼구나, 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우리는 경악한다. 으아아아악. 그런 이벤트의 대상이 80년생이 되버린 이 현실이 너무 싫어. 나는 빈정 상해서 절대 뮤지컬 싱글즈는 보지 않겠다며 갖은 오버를 떨었고, 본다 하더라도 80년생 할인 따위 받지 않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그날은 그녀를 위해 공연 한 편 예매하는 걸 아까워하던 남자친구가 새로 생긴 여자를 위해 라이어를 (심지어 2개월 할부로 -_-) 예매한 사실을 알고 Y가 경악을 한 날이었으므로, 그날은 Y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 주가 됐다. 그녀가 지난 남자친구들과 헤어지면서 보여줬던 그 바닥의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경악을 했다. 아, 저럴 수도 있구나. 그치만 한편으로는 한번쯤은 해봤어야 했는데, 라며 부러워하던 나와 J. 이 나이 먹어서 다시 하기는 싫고, 저런 경험을 과거로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해서 Y에게 더욱 욕을 먹었지만, 진심이었다. 어쩌면 그게 진심이어서 J와 내가 아직까지 그런 것도 못해봤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유독 삶 속에서도 가오 떨어져, 라는 말을 많이 하는 J와 나. 그딴 게 뭐 중요하다고. 라고 말하지만 분명 못할 게 뻔하다 우리는. 실은 객관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을 떠올리면서도 가끔씩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보면.
K는 심지어 집에서 '노처녀' 라는 구박을 노골적으로 듣는단다. 집에서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즐겨보는 부모님께 너 혹시 동성애자가 아니냐는 구박을 자못 심각한 목소리로 듣고 있는 지경이라며. 우리는 스물 아홉은 절대 노처녀,가 아니라며, 사회적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나는 회사에 결혼하지 않은 분들이 워낙 많다 보니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그 분들을 노처녀라는 잣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노골적으로 구박을 한 적이 없어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확~ 실감이 난다.
하긴, 그러고 보니 나는 말없이 조용히, 온 집안의 기도제목이다. 이젠 내가 직장생활을 잘 하도록,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하도록, 기도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좋은 배우자를 위한 기도가 누구에게든, 1순위가 되버렸다. 어제 아침 가족 예배 때도, 아빠까지 이제 당연한 듯, 그런 기도를 하시는데 솔직히 좀 놀랐다. 결혼을 잘하는 일은 분명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걸 위해 기도해 주는 게 나에게 최고의 축복은 아닐진대, 너무 인식이 일방화돼있는 듯 해 조금 불만이다. (워워, 화내면 또 히스테리라고 할라 -_-)
그러고보니 친구들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횟수가 늘어가는 게 내가 나이가 들었음을 반증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자꾸만 나이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지는 것 역시 그렇고. 나와 비슷한 누군가에게 칭찬을 해줄 때는 동안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되는 것도 그렇고, 그럼에도 동안이라는 말을 들을 땐 또 그리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올해엔 아마 나이에 대한 페이퍼를 스무개쯤은 거뜬히 더 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 ㅋㅋ 그치만 나이에 함몰되서, 혹은 쫓겨서, 혹은 그에 부응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잃지는 말아야겠다는 경계심이 더 들기도 한다. 어랄라, 친구 팔아 페이퍼 쓰다 보니, 여기는 삼천포, 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