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참 이상하고도 재밌는 것 중 하나인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일에 조금 재주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소개팅 시켜줬던 건 성사율 0%였긴 했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냥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들을 서로 친구시켜주고 이런 일들을 좋아했다는 거다.

K와 J는 고등학교 시절 나와 같은 동아리에 있던 친구인데, 나는 K와 따로, J와 따로 친했다. 그리고 Y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당시 나름 친하게 지내던 오빠들과 무리지어 놀던 친구 중 한 명으로 당시 유행하던 단체 돌림일기, 뭐 이런 것들도 같이 쓰고 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 (그 때 여섯명이 함께 쓰던 돌림일기는 아직 책꽂이에 있는데 어쩐지 낯부끄러워질 것 같아 꺼내어 보지는 않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 모임도 나와 H오라버니를 중심으로 각자의 친구들로 결성이 됐던 모임이었구나 -_-)

그러다 우리는 2학년이 됐고, 나와 같은 동아리에 있던 K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Y와 내가 2학년 때 한 반이 됐다. 그리고 우리는 다섯, 여섯명쯤 무리지어 노는 친구들 (그러니까 함께 도시락을 먹는다는 의미 ㅋㅋ) 이 됐는데, 구성이 생각해보니 나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2명과 나와 같은 동아리였던 친구들 2명이었다. J는 여전히 다른 반이었고, 나와는 동아리 친구였고. 실은 J와 나는 서로 싫어하던 사이였는데, 싫어하다보니 정이 들고, 오해가 풀리고, 뭐 이러면서 급 친해졌던 관계.

대학에 오고, 나는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살게 됐고, K와 J와 Y와는 각각 다르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K와 J가 휴학을 하게 됐고, 둘다 각자 심심하다고 연락을 해왔기에, 그럼 둘이 놀면 좋겠다 싶어 J에게 연락을 해보라며 K에게 J의 연락처를 알려줬었다. K는 회상하기를, 오죽 심심했으면, 이라고 하긴 하지만- 암튼 K는 J에게 연락을 했고 둘이 같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둘의 사이는 급 친해지고, 나는 또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지내면서 K와 J와 Y 모두와 조금씩 소원해졌다. 그리고 3학년을 마치고, 내가 휴학을 해 다시 집으로 왔을 때는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졌으니, 그 안어울리던 K와 J가 소위 말하는 베스트프렌드가 돼있는 사건. 아, 그 때의 당혹감이란. 암튼 그 과정에서 고등학교 때는 서로 말도 섞지 않던 J와 Y까지도 친해지게 되서 결국 나를 뺀 그 셋은 함께한 그 세월에 비례하는 매우 일상적인 친구가 돼버렸다.

내가 졸업을 한 후, K와 Y는 함께 호주에서 연수를 했고, J는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느라 그들은 또 나와는 그만큼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녀들을 만난 며칠 전, 나는 공교롭게도 제일 덜 친한 친구가 되어 그들과 함께했다. 이런 아이러니함이라니. 이젠, 니들 만날 때 나도 불러, 라고 내가 말해야 되는 상황이 되버렸다.

Y는 스물 아홉을 맞이하면서, 올 가을 쯤 결혼을 생각했던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 받았다. 때마친 다니던 회사도 불안정해지자, 그녀는 무슨 스물 아홉이 이래, 라며 경악을 했다. 그런 그녀가 뮤지컬 싱글즈를 보러 가잔다. 80년생들에게 29%를 할인해주는 스물 아홉살 이벤트를 한다며, 스물 아홉이 되서 계속 안좋은 일만 생겼는데, 이런 좋은 일도 생겼구나, 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우리는 경악한다. 으아아아악. 그런 이벤트의 대상이 80년생이 되버린 이 현실이 너무 싫어. 나는 빈정 상해서 절대 뮤지컬 싱글즈는 보지 않겠다며 갖은 오버를 떨었고, 본다 하더라도 80년생 할인 따위 받지 않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그날은 그녀를 위해 공연 한 편 예매하는 걸 아까워하던 남자친구가 새로 생긴 여자를 위해 라이어를 (심지어 2개월 할부로 -_-) 예매한 사실을 알고 Y가 경악을 한 날이었으므로, 그날은 Y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 주가 됐다. 그녀가 지난 남자친구들과 헤어지면서 보여줬던 그 바닥의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경악을 했다. 아, 저럴 수도 있구나. 그치만 한편으로는 한번쯤은 해봤어야 했는데, 라며 부러워하던 나와 J. 이 나이 먹어서 다시 하기는 싫고, 저런 경험을 과거로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해서 Y에게 더욱 욕을 먹었지만, 진심이었다. 어쩌면 그게 진심이어서 J와 내가 아직까지 그런 것도 못해봤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유독 삶 속에서도 가오 떨어져, 라는 말을 많이 하는 J와 나. 그딴 게 뭐 중요하다고. 라고 말하지만 분명 못할 게 뻔하다 우리는. 실은 객관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을 떠올리면서도 가끔씩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보면.

K는 심지어 집에서 '노처녀' 라는 구박을 노골적으로 듣는단다. 집에서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즐겨보는 부모님께 너 혹시 동성애자가 아니냐는 구박을 자못 심각한 목소리로 듣고 있는 지경이라며. 우리는 스물 아홉은 절대 노처녀,가 아니라며, 사회적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나는 회사에 결혼하지 않은 분들이 워낙 많다 보니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그 분들을 노처녀라는 잣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노골적으로 구박을 한 적이 없어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확~ 실감이 난다.

하긴, 그러고 보니 나는 말없이 조용히, 온 집안의 기도제목이다. 이젠 내가 직장생활을 잘 하도록,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하도록, 기도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좋은 배우자를 위한 기도가 누구에게든, 1순위가 되버렸다. 어제 아침 가족 예배 때도, 아빠까지 이제 당연한 듯, 그런 기도를 하시는데 솔직히 좀 놀랐다. 결혼을 잘하는 일은 분명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걸 위해 기도해 주는 게 나에게 최고의 축복은 아닐진대, 너무 인식이 일방화돼있는 듯 해 조금 불만이다. (워워, 화내면 또 히스테리라고 할라 -_-)

그러고보니 친구들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횟수가 늘어가는 게 내가 나이가 들었음을 반증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자꾸만 나이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지는 것 역시 그렇고. 나와 비슷한 누군가에게 칭찬을 해줄 때는 동안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되는 것도 그렇고, 그럼에도 동안이라는 말을 들을 땐 또 그리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올해엔 아마 나이에 대한 페이퍼를 스무개쯤은 거뜬히 더 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 ㅋㅋ 그치만 나이에 함몰되서, 혹은 쫓겨서, 혹은 그에 부응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잃지는 말아야겠다는 경계심이 더 들기도 한다. 어랄라, 친구 팔아 페이퍼 쓰다 보니, 여기는 삼천포, 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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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8-02-08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도 명절에 멀리 안가셨나봐요. ㅎㅎ 저는 오랜만에 내리 영화보고 술 마시고 잠자고 푸~~욱 쉬고 있어요 ㅎㅎ 어제 6년째 연애중 보는데, 중간에 "너 그새끼랑 잤어 안잤어" 이 대사에 뜬금없이 "12시 8분에 거기 있었습니까?"가 매치되서 어찌나 웃기던지 ㅎㅎ

웽스북스 2008-02-08 19:15   좋아요 0 | URL
네네, 전 요즘 훌라에 맛들인 엄마 때문에 훌라 상대가 되주느라 거의 초죽음이에요 ㅋㅋ 그나저나 제이드님 놀라운 적용 능력인데요? ㅋㅋㅋ

Mephistopheles 2008-02-08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뭡니까...페이퍼는 친구팔고 뮤지컬 팔고 이것저것 다 팔았지만 결론은 소개팅..인건가요...??? 그런건가..??

웽스북스 2008-02-08 19:16   좋아요 0 | URL
뭐에요 이런 왜곡된 해석이라니, 이건 다 내가 스물 아홉이기 때문인 거죠? 그런거죠? (어긋난 히스테리 -_- ㅋㅋㅋ)

Mephistopheles 2008-02-08 19:35   좋아요 0 | URL
왜곡된 해석일까요 정곡을 찔렀기에 둘러대는 것일까요..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근데 아무리봐도 후자는 아닌 것 같고..=3=3=3=3

웽스북스 2008-02-08 21:0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왜곡된 해석이라는 말씀이신거죠? ^_^

Mephistopheles 2008-02-08 21:30   좋아요 0 | URL
모르죠...행여나 1%라도 웬디양님의 심리에 자리잡고 있다면야.......왜곡된 건 아닌 것 같은디요?

웽스북스 2008-02-08 21:38   좋아요 0 | URL
ㅋㅋ 후자는 아니라시길래요 ^-^
근데 저 글을 쓰면서는 맹세코 소개팅을 생각했던 건 아닌데 (실은 소개팅 해달라고 누군가한테 제 입으로 말했던 적은 한번도 없다는 ㅋㅋ) 뭐 해주시겠다면야, 거부는 안하구요, 막 이러고 ㅋㅋㅋㅋㅋㅋㅋ

Mephistopheles 2008-02-08 21:56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웬디양님..제가 소개시켜드리면 정말이지 웬디양님께 실례를 끼치는 것일지도 몰라요..다 중늙은이 아저씨들인데..그래도 웬디양님은 20대잖아요..흑.

웽스북스 2008-02-08 22:10   좋아요 0 | URL
아...그래도 20대...ㅜㅜ

세실 2008-02-08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물아홉의 다이어리?
나름 연구하며 페이퍼 읽어야 해서 살짝 머리 아팠습니다.
이니셜만 여럿 나오면 머리 아파요.
님 좋은 배필 만나시길 기도드리옵니당^*^

웽스북스 2008-02-08 21:10   좋아요 0 | URL
실은 저도 쓰면서 좀 헷갈렸어요 세실님 ㅋㅋㅋ
그렇다구 애들 실명을 쓰기도 그렇구 말이죠 ㅎㅎㅎ

순오기 2008-02-08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적령기가 많이 물러난 요즘엔 스물 아홉이 꽃같은 나이 아닌가요?
배우자를 위한 기도는 필요하지요!!^^물론 본인이 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웽스북스 2008-02-08 21:10   좋아요 0 | URL
주변에서 하도 많이 하셔서 저는 안하고 있어요 ㅋㅋㅋㅋㅋ
순오기님 댓글이 바로 제가 원한 댓글이에요
스물 아홉 꽃같은 나이인거죠? 그쵸? ^-^

마늘빵 2008-02-08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왜 서른살은 30% 할인 안 해준대요?

웽스북스 2008-02-08 21:11   좋아요 0 | URL
저도 서른살을 할인해주면 좋겠어요 살짝 빗겨나가서 아쉬운 척 하는 쾌감이랄까? ㅋㅋㅋ 스물 아홉의 이야기여서 그렇겠죠 뭐- 영화로 싱글즈를 봤을 때는 저 스물 아홉이라는 나이가 까마득했었는데 말입니다

비로그인 2008-02-09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보고 나니,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꼭 하면 안되는 것도 아닌 일상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도 제가 해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단지 선택하고 난 후의 방향이 약간 달라질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스물아홉 이벤트로 싱글즈라니, 참 그렇고 그래요. 흑.(슬퍼해야할지 좋아해야 할지 알기가 힘든 일) 이건 제가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 북카페 같은 곳에서 `싱글은 스타일이다' 이런 책을 꺼내 읽기가 뭣한 것과도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요. 아무도 뭐라하지 않지만 혼자 중얼거리는 일들이요.

웽스북스 2008-02-09 00:14   좋아요 0 | URL
참 그렇고 그래요, 에 동감이에요- y는 스물 아홉 되고 처음으로 좋았던 일이라고 하는데, 참 목소리 높여 열낼 수도 없고, 괜히 열내는 게 웃기기도 하고, 암튼 참 그렇고 그래요

결혼이란 건 어차피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을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는 또 당위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정작 저부터도 이게 선택의 문제,라고 얘기는 하지만, 나의 10년후 모습, 같은 걸 떠올릴 때는 결혼해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떠올리는 게 더 자연스럽기도 하고요.

깐따삐야 2008-02-09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 만나기 전까진 결혼 안 할거야, 라고 하고 싶다가도 왠지 주변을 두리번거려야 할 것만 같은 애매모호한 기분은 뭘까요. 나이가 웬수 같어요. 고작 숫자에 불과한 것이 내 일상의 자잘한 순간들을 모두 장악해오는 듯한 느낌. 안 좋아요. 안 좋아!

Mephistopheles 2008-02-09 11:28   좋아요 0 | URL
숫자에 불과하다고 펌하하기엔 정신적 육체적으로 영향을 많이 준다죠..^^

웽스북스 2008-02-09 12:2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꾸만 나이에 대해서 할 얘기가 늘어가는 게 진짜 나이 먹었다는 생각 와락 들어요 정말 ㅠㅠ
 



하고싶은 얘기는 많고
시간은 없고
게다가 오늘은 회식까지 했고
머리는 나쁘고
다 까먹을테고

그래도 짧게 짧게 해볼까, 안그러면 계속 못쓸라
일단 사진전 얘기부터


두개의 사진전

무식한 나인고로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전이 안양에서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물론, 세바스티앙 살가도 역시 잘 몰랐다. M언니의 지인께서 알려주셨는데, 이 분은 제주에 계신 관계로 사진전에 오지 못하고 혹시 사진집을 팔거든 사다달라는 부탁만을 남겼단다. 꽤 가까운 곳에 있는 안양 예술 공원은 몇번 가보지 않았으면서도, 혹시나 누군가를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약간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가게 되는 곳. 갈 때마다 요상스런, 추억같지도 않은 추억이 떠오르는 곳-

사진은 그야말로 멋지더군. 감탄이 절로 나오는 사진들 뿐이다. 가장 좋은 사진은 이해하기 위해 굳이 골머리를 쓰지 않아도, 그냥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뭔가가 있는 사진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던 순간이다. 20세기 최고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라고 불리던데, 과장되지 않았다고 적어도 나는 생각했다. 사진으로 찍은 건데, 분명 스케치가 아닌데, 어쩌면 이렇게도 터치가 고울 수 있는지, 참 매력적이게 느껴진다. 몇몇 사진들 앞에서는 조금 먹먹해진다

언니, 전 감히 이런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눈을 갖고 싶어요,

라고 말한다. 나는. 진정 보배로운 것은 당신의 카메라가 아닌, 당신의 눈이라고 결론 내린다.

마음에 드는 사진 몇개를 올려본다.
온라인에서 전부 찾을 수는 없었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그리고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있던 또하나의 사진전은 G언니의 오빠가 하는 전시였다. 오프닝 때 초대를 했는데, 시간이 6시였던 사건. 아무래도 난 언니가 날 놀리려고 부른 거라며 씩씩거렸다. 언니의 오빠는 사진을 찍은지 2-3년 정도 됐는데, 조금씩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내 서재 메인 이미지인 저 튤립 사진을 찍으신 분도 언니의 오빠다. 저 사진은 G언니가 나를 보면 5월이 떠오른다며 선물해줬었고, 나는 5월도 저 사진도 무척 마음에 든다. 그래서 더, 조금 무리해서 사진전에 갔던 것 같다. (6시까지였는데 살가도의 전시를 보고 나온 시간이 4시 40분 정도였기에 간당간당)

전시회장에 들어서자마자 걸린 컬러풀한 사진들이 보인다. 마치 저 튤립 사진의 색채를 떠올리게 하는. 언니는 자신의 오빠가 찍은 사진을 보면서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을 봤다고 한다. 조금은 알 듯도 하고, 또 모를 듯도 하고. (이미지를 가져오고 싶은데 저장이 안되는구나)

아래층이 강렬한 색채였다면, 윗층을 부연 안개가 자욱한 느낌이다. 1년 내내 이렇게 안개가 자욱한 곳에서 산다는 것은 삶에 어떤 의미일까, 혹은 어떤 영향일까. 또 그 희뿌연 안개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언니의 오빠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하는 것들을 떠올려 본다.

건너 아는 사이지만, 그래도 안다 셈 치고 ^-^ 언니 오빠가 안내소책자에 써놓은 글을 보며 나는 또 막 웃는다, 언니에게 들었던 오빠의 이미지. 동네에 있는 포니 자동차란 포니 자동차에 있는 말 모형을 다 떼서 수집하고, 철물점에 팔아먹고, (그러면서도 걸릴까봐 자기 집 포니의 말은 못떼서, 동네에서 유일하게 말이 제대로 달린 포니를 가지고 있던 언니 아부지) 과학 실험 하다가 불을 내곤 했다던 그 주체할 수 없는 열정적 에너지의 소유자. 그리고 그만큼의, 이렇게 말하지만 정작 나는 알지 못했을, 어쩌면 그 열정의 실체였을지도 모를 삶의 무게와 아픔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역시 나의 능력으로는 헤아리기 어렵지만.

   
 

(전략) 그 어린 사진가가 이제는 당당하게 세계를 여행하고 또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갸륵한 일상을 담아내며 내 안의 감동들과 세상에 전해야 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진실들에 대하여 감히 사진으로 말하려 한다.

반짝이고 아름다운 것들보다는 아직 내겐 빛을 잃고 시들어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더 강하다. 풍요로운 삶의 풍경보다는 거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내겐 더 익숙하게 다가온다. 기묘하고 장대한 풍광보다는 거리에서 만나는 소소한 사람들의 눈에 비친 작고 푸른 하늘 한 조각에서 나는 더 진정한 삶의 가치를 느낀다.

 
   
 
덕분에 뭔가, 잔뜩 충만해진 것 같은 기분의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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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1-22 0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안양예술공원에 알바로 시자 라는 유명한 양반이 지은 건물이 있던데.
거기서 했나요?

웽스북스 2008-01-22 10:38   좋아요 0 | URL
우와 역시 ㅎㅎ
맞아요 ^_^ 알바로시자홀~
근데 제가 너무 정신없이 두군데를 다녀야했던 관계로
건물은 제대로 못봤네요

다음에 가게 되면 꼭 눈여겨봐야겠어요

비로그인 2008-01-22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 두 번 전시회장을 가면 정말 충만해질것같아요.

웽스북스 2008-01-22 12:02   좋아요 0 | URL

실은 소화불량에 걸릴 수도 있는데 ㅋㅋ
두번째 전시장은 사진이 많지 않아서 아쉽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기도 했지요 ^_^

깐따삐야 2008-01-22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꽉 찬 주말을 보냈네요.^^
요즘 내가 가장 부러운 사람들은 뭔가에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웽스북스 2008-01-22 12:04   좋아요 0 | URL
네 주말을 바쁘게 보냈더니 막 쑤셔요 ㅋㅋ 애고애고

열정, 그리고 영감! 참 부러운 것들이에요 ^_^
제가 보기엔 깐따삐야님도 열정적이에요~

Jade 2008-01-22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웬디님 저 옆에 '김선우의 사물들' 이거 제가 엄청 좋아하는 책인데 ㅎㅎㅎ

웽스북스 2008-01-22 15:55   좋아요 0 | URL
흐흐, 어제부터 매우 흐뭇하게 읽고 있는 책이에요 ^_^
아주 제대로 말랑말랑한 책들만 읽고 있는 사건 ㅋㅋ

해적오리 2008-01-22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가도의 전시회 가고 싶은데...
안양은...넘 멀군요..
이번 주말엔 결혼식도 가야하고...음.... 인넷으로 사진이라도 검색해봐야겠어요. ^^

웽스북스 2008-01-23 00:14   좋아요 0 | URL
해적없다님 계신 곳은 어디실까요? 흠
안타깝게도 사진전은 지난주가 마지막이었어요
저도 그래서 무리해서 빠듯하게 갔다온 것이었지요 ^_^

털짱 2008-01-23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곳에 다녀오셨군요. ^-^ 저도 한번 가봐야겠는데요.

웽스북스 2008-01-23 21:01   좋아요 0 | URL
털짱님 반가워요 ^_^
사진전은 아쉽게도 지난주가 마지막이었답니다

근데 우리 메피교주님 말에 의하면
사진전이 있었던 알바로시자홀이 되게 유명한 분의 건축물이라고 하네요
(본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전 문외한이라 눈여겨보지 않고 휙~~ 들어갔지만요 ㅋㅋ

Koni 2008-01-23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살가도 전시회는 전에 보고 굉장히 감동했었어요. 왠지 이렇게 보니 반가운 마음에 불쑥 인사 드려요. 두번째 전시회명을 알 수 없어 아쉽네요.^-^

웽스북스 2008-01-23 21:02   좋아요 0 | URL
첨 뵙겠습니다 냐오님
불쑥 인사는 언제든 환영이에요

두번째 전시회는 사진작가 이홍석 전시회였답니다
살가도 전시회는, 저도 참, 같이 간 언니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면서 봤었어요 ^^

앞으로 자주 뵈어요
 



1

H가 대장암 3기로 투병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매우 당혹스러웠다. 일단은 우리 나이 자체가 투병, 이런 것과 어울리지 않는 나이인데, 어쩌다가. 참 이런 이야기들은 늘 남일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한 번 더 당혹스러웠던 건, H에게 문병을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의 문제였다. 실은 마음은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난 H와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한마디 대화가 어색할 정도로 인사만 하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내가 아파 자리에 누웠을 때, H를 떠올릴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의 등장이 좀 오버스럽거나 당혹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때의 삶이, 그런 것들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렇게 H를 찾아가 얼굴을 보며 위로를 전하고 싶을 만큼 윤택하지도 못했었다. 물론 지금도 퍽퍽한 건 여전하지만.

2

I가 내 미니홈피로 찾아와 방명록에 글을 남겼을 때, 나는 더욱 당혹스러웠다. H의 투병소식을 들었다며, 우리 학번이 모여 H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글이었다. 일단 I의 이름 자체를 굉장히 오랜만에 마주친 데다가, 학교에 다닐 때도 같은 동아리이긴 했지만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다만 I가 제대 후 복학해서 따르던 선생님을 또 내가 따랐던 관계로 선생님 미니홈피에서 가끔 이름이나 보던 사이. 게다가 내가 우리 학부, 우리 학번 아이들의 중심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새삼 그들이 다시 그리워진 것도 아니었기에 I의 글에 그냥 의례적으로, 언제한번 밥먹자,라고 말하듯 그러자, 라고 답을 하긴 했지만 나는 실은 별로 그럴 의향이 많지 않았다. I가 열성적으로 앞장서서 뭔가를 모색한다면 모를까. 그래서 그 글이 가끔 생각날 때마다 나는 내가 그 때 제대로 호응하지 못했던 게 괜한 부채감으로 다가오기도 했었다.

3

얼마 후 H를 우연히 만난 이후, H는 내게 연락을 해왔고, 함께 책 읽는 모임을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H는 이 모임을 제법 열심히 알리고 다니더니 12명의 멤버를 모았다. 대부분이 같은 학부 출신 선후배였고, 나에게는 다들 H와 I의 수준으로 어설프게 친하거나, 통성명만 한 정도의 사이였다. 뭐 전공했냐고 물어보는 사람에게 나는 늘 신방과,라고 얼버무려 답하지만 엄밀히 내 전공은 매스컴과 기독교 문화 복수 전공이다. (그리고 수준은 딱 학부 수준을 절대 못넘어선다) 어떻게 어떻게 하다보니 기독교를 시작으로 한 다양한 주제들의 책을 함께 읽게 됐는데, 난 시민사회에서의 예의와 선교에 대한 얘기들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내공은 없이 삐딱한 마음만 가득해서 문제이긴 하지만.

4

그 모임에는 I도 있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I의 말을 흘리듯 넘기던 그 때가 떠올랐다. 해주는 것도 없고, 해줄 것도 없을 예정이면서도, 난 웬지 그 때의 부채감이 조금은 해소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H에게도, I에게도

5

H는 나와 가장 절친했던 친구인 HH가 별로 안좋아했던 친구다. 순간 그 친구가 무심결에 흘려보냈던, 인간적으로 좀 부족했던 모습들을 HH가 포착하고 나에게 말해줬던 이후로 나도 H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었다. 그 나이땐 그렇다. 우우 몰려다니고, 준거집단의 판단이 나의 판단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I는 당시 영상을 한다고 카메라를 좀 들고 다녔었는데 당시에 카메라 들고다니던 애들도 내가 또 안좋아했다. 이유도 없다. 뭐 굳이 찾으라면야 이유가 없었겠냐마는 그야말로 쓰잘데기 없는, 비합리적인 이유들이다.

그리고 나 역시, 가끔 스무 살, 스물 한살 시절의 내 철없음을 떠올리면 아찔하고 부끄럽고 지우고 싶고 한 것들이 많다. 나는 그 때의 나이지만, 그 때의 내가 아니기도 하다. 그 뒤로 많은 세월이 흘렀고, 나는 그 세월들을 다행히 아주 헛되게 보내지만은 않은 듯 하고 스스로 그 시간들을 존중해 주는 편이다. (잘보냈다고 할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내가 내 앞의 시간들을 이렇게 존중하면서, 다른 사람 앞의 시간들에 대해서는 그저 잊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분명히 변했으면서, 옛날 그마음 그대로, 저자식 인간이 덜됐다던가, 폼만 잡고 다닌다던가, 비열하다던가, 라는 5년도 더 된 기준을 상대에게 들이대는 나 자신을 종종 발견한다. 그 시간은 분명 비열했던 그자식에게도, 폼만 잡고 다니던 그 자식에게도, 인간이 덜 된 그 자식에게도 공평하게 흘렀으니까. 비열한 자식은 자신의 비열함을 깨닫기에, 폼만 잡고 다니던 자식은 폼에 걸맞는 내공을 갖추기에, 인간이 덜 된 그 자식은 인간의 형상에 좀 더 가까워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그 사람들의 그만큼의 세월을 모르고서는 절대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H는 거의 5년만, I는 거의 8년만에 만나서 대화를 한 셈인데, 그동안 이녀석들이 참 많이 의젓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 참 감회가 새롭다. H는 투병생활을 하면서 많이 깊어졌고, I에 대해서는 내가 역시 잘 몰랐기도 했지만, 세월만큼의 내공과 여유가 더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참 신선한 경험이다. I는 나를 보더니, 하나도 안변했는데 예뻐졌다는, 얼핏 들으면 칭찬같지만 곱씹어 생각해보면 말이 안되는 말을 했다. 하하하.

그런데, 나는 얘들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으면서도 예뻐졌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 기본 심성이 쉽게 변하는 건 아니지, 얘들도 그대로이면서, 참 많이 다듬어진 것 같다. I도 그런 의미에서 내게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철없어 보이던 너희들이 의젓해 보이는 게 나에게는 가장 신기한 경험이라는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앞으로 함께 보낼 이십대의 마지막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꽤 괜찮은 친구들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다. H와 I 뿐만 아니라, 학교 다닐 때부터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기고 다니셨던 S선배, 친해질 듯 친해질듯 친해지지 않던 Y와 N언니, 친해지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서 멀리서만 바라보던 C, 주변 사람들끼리만 다 친하지만 정작 만나면 뻘쭘하던 P, 처음만난 생글생글 유쾌발랄 05학번 W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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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외박이 돼버린 엠티?
    from 지극히 개인적인 2008-03-08 23:08 
    어제는 지난 번 페이퍼에 쓴 적이 있었던(엮인글) 학교 동문 독서모임의 엠티가 있었다. 처음에는 팬션도 빌리고 거창하게 가려던 계획이었는데 점차 축소되어 결국은 H가 다니는 교회의 작은 방에서 모이게 됐다. 그래도 내 마음은 엠티였던지라 나름 씻을 거, 갈아입을 옷 다 챙겨갔는데, 각자의 사정으로 새벽에 해산을 하는 바람에 따로 챙겨간 쇼핑백은 열어보지도 못한 사건. H는 돌봐주는 아이의 어머니가 얘를 데리고 여행을 함께 다녀오면, 비용은
 
 
2008-01-16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6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8-01-16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기 모임 부러워요.
저는 선배들이 붙잡고 하자고 하는데도 도망다니고 했어요.
그때 딱히 할것도 없었는데 말에요.
지금은 그런 모임 있어도 못 나가잖아요,애들때문에...
좋은 시간 보내시고,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세요.

웽스북스 2008-01-16 22:49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겠네요
그래도 아이들이 승연님께 주는 선물이 더 큰것들이겠지요?
책보다, 아이들이 다듬어가는 승연님 모습이
더 아름다울 거라 믿어요 ^-^

이게다예요 2008-01-16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모임 참 부럽네요.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책을 읽고 나눴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떠올리게 되네요. 요즘은 제 주위에 알라딘 사람들 외엔 별로 책 읽는 사람을 못 봤어요. 그게 너무 아쉬워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웽스북스 2008-01-16 22:49   좋아요 0 | URL
이게 다예요님 나이를 제가 알지는 못하지만,
또 찾아보면 같은 것들에 목말라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그걸 찾기 어려워서 우리가 이 공간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2008-01-16 1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8-01-16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만난 사람들, 좋아 보이네요.^^
저는 예전부터 사람 욕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남는 건 사람 뿐이다, 라는 말을 듣고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세월을 보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별로 달라질 것 같지가 않아요. 아무래두 천성인가 봐요. ㅋㅋ

웽스북스 2008-01-16 22:50   좋아요 0 | URL
그런데 사람들은 분명 깐따삐야님을 욕심낼 거에요
흐흐 철철 흘러나오는 이 매력을 어쩔거야~

다락방 2008-01-16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예뻐요.
그것이 어떤 의도이든, 내 보기엔 웬디양님 정말 예뻐요.

이런 글을 읽게 되면서 제게 웬디양님은 '더'예쁜 존재예요. :)

웽스북스 2008-01-16 22:51   좋아요 0 | URL
역시 다락방님은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뭔지 읽어주신 거죠?
전 그런 다락방님이 참 좋답니다 ^-^

예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흐흐흐 (부끄럽다~)
 



1. 격월 채식
나의 채식은 그러니까, 고매하신 완벽주의적 채식에 이르지 못하는, 그냥 생태계에 대해 예의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몸짓,정도라고 보면 되는데 생선과 우유, 치즈, 이런 것들은 다 먹고 심지어 고기 들어간 국물 이런 것까지 다 먹으면서 고깃덩이만 먹지 않는 채식인데, 내가 만두는 너무너무 좋아해서 만두는 봐주기로 한, 한마디로 내멋대로 채식이다. 우습게도. 이조차 나는 너무너무 힘들고 어렵긴 하다. 작년에는 띄엄띄엄 3개월 정도 이렇게 살았는데, 올해는 일단 격월에 도전!

2. 영어 공부
업무상 영어가 필요치 않아 영어는 손을 놨다. 그런데 영어가 좀 필요하게 생겼다. 지금 하는 일 때문이 아니라, 지금 관심 갖고 있는 그 무엇 때문에 그런데 일단 올해는 좀 몸을 낮추고 영어 공부를 하면서 준비만 하고 있자,고 생각을 했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수능 영어는 영어보다는 국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토익 영어는 영어보다는 처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진짜 영어를 좀 익혀야 할텐데, 막막하고 참 멀다.

3. 다이어트
이건 얼마 전 페이퍼에도 썼는데, 절대 무리한 목표는 내가 또 안세운다. 일단 과자와 초콜렛 끊기. (남들은 술.담배 끊을 때 스물 아홉 먹은 아가씨가 과자와 초콜렛 끊기라니, 좀 찬란하게 유치하긴 하지만) 운동은 계속 고민중

4. 꼬박꼬박 기록하기
업무일지, 가계부, 다이어리, 책, 영화, 공연 리스트 이런 것들 좀 꼬박꼬박 정리해보자. 꼭 중간에 손을 놓게 되서 탈이다. 2007년에 엄마가 내 다이어리에 써놓은 일기를 보는 것 같다는 강한 의혹이 들어 다이어리 쓰기를 그만뒀었다. 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 가계부 쓰는 일은 워낙 소질이 없다. 실은 쓰다 보면 성질이 나서 자꾸 그만두게 된다. 합계가 너무 높아. 언제 이 돈을 다쓴 거야. 우씨, 이번 달은 포기. 다음달은 절약하겠어. 막 이러고 다음달에 사야할 것들을 이번달에 미리 사놓는다. ㅠㅠ (일명 가계부의 부작용)

5. 종이컵 쓰지 않기
12월 들어, 컵씻으러 가기 귀찮아서 좀 무뎌진 목표다. 다시 결씸!

6. 책 + 영화 = 150
2006년의 100을 초과달성한 후, 2007년에는 150으로 상향 재조정했으나 달성하지 못한 목표. 중간이후로 성질나서 기록도 안했다. (이놈의 성격도 새해엔 좀 고쳐먹어야 할텐데, 이 역시 목표의 부작용이랄까)

7. 지난 달에 읽은 책의 수보다 적게 구매하기
1월에 6권을 읽었다면 2월에는 6권을 초과해 구매를 못하도록 스스로에게 제약을 두는 것이다. 더 많이 책을 읽기 위한 자극, 더 많이 책을 사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자극이다. 물론 선물용 도서, 이런 것들은 제외,라는 빠져나가기 조항을 뒀다는 거 ^^

이 목표들은 완벽을 기하는 달성을 위한 목표는 아니다. 그저 살면서 기억하며,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하여 나의 목표들은 오늘 아침에 종이컵을 썼다해도, 그런 나를 질책하기보다는 다시 종이컵을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모습의 것들이다.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얘기다 -_- ㅋㅋ


그리고 어제, 송구영신 예배 때 적어서 낸 기도 제목은 아래와 같다.

1. 온 가족 건강하길.
2. 교회와 회사에서 맡은 일들을 잘 감당하길
3. 지식과 지혜를 찾고 구하되,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최우선으로 두는 겸허함을 잊지 않길
4. 세상을 보는 냉철한 시각과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길
5.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이 열리는 한 해이길
6. 삶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차근 차근 준비해 나가는 한 해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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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8-01-02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는 계획이라곤 딱 하나(취직) 세웠는데 그걸 못 이뤘어요.
해는 넘겼지만 계속 그 계획을 밀고 나가려구요 ㅎㅎ
웬디양님도 올 한해 목표한 삶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노력하는 삶을 살아보아요 !

웽스북스 2008-01-02 00:08   좋아요 0 | URL
네 이매지님 ^^
똑부러져서 어딜 가서 뭘 하든 잘할 거야.
너무 맘 급하게 먹지 말구요, 하고 싶은 일 꼭 찾을 수 있을 거에요!

Mephistopheles 2008-01-02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찾아보시면 안에 야채만 잔뜩 들어간 만두도 분명 있을 껍니다.^^
2. 저야말로 본토발음 확실하게 날려주는 주니어덕분에 영어공부가 절실해졌습니다.
3. 이것역시 너무나 맘에 와닿는 제목....
4. 요즘 유행하는 댓글로 표현을 하자면...중간에 쓰기그만두거나 밀리거나 혹은 어머니가 일기장을 보면 좀 어때...경제만 살리면 되죠..=3=3=3=3
5. 아 이건 사무실에서 이미 작년부터 실행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종이컵 꼭 쓰더라도 몇번씩 재활용하기로도 했고요.
6. 숫자는 무의미하지 않을까요.^^ 좋은 영화 좋은 책을 일 년동안 한 권혹은 한 편만이라도 만나면 그게 좋은거라 생각됩니다.^^
7. 이 부분은 정말 알라디너들이 전부 다 공감해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웽스북스 2008-01-02 00:11   좋아요 0 | URL
1. 그런 만두는 먹고싶지 않아요
2. 아 주니어 부러워요 흙흙
3. 그런 의미에서 저칼로리 영양식인 간장게장을 (근거없음)
4. ㅋㅋㅋ 그런게 유행이군요 ^^
5. 생각없이 쓰다보면 정말 종이컵 사용량을 무시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6. 물론 그렇죠 ^^ 숫자 채우기에 급급한 독서, 영화, 이런 건 안해야지 하고 있어요- 그래서 리스트가 빈약하긴 하지만. ㅋㅋ 올해는 영화를 정말 적게 봤는데 좋은 것들을 많이 봐서 또 뿌듯하기도 하고요 ^^
7. 헤헤헤 그럼 메피님도? ^^

마늘빵 2008-01-02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도내용에 빠진게 있잖아욧. 남자칭구.

저는 가계부는 잘 써요. 제가 매일 지출한거 기록해두었다가 집에 오면 옮겨적어요. 그렇게 해서 한달 지출내역을 파악하고, 대략 한달에 내가 얼마 쓰는구나 하는걸 알게 돼요. 근데 잘 줄이지는 못한다는. 작년에 발견하게 있는게 연애할 때랑 솔로일 때랑 지출이 크게 차이난다는거. 내가 일방적으로 돈 쓰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더라구요. -_-

웽스북스 2008-01-02 00:17   좋아요 0 | URL
아, 그건 사실 기도하기가 되게 민망하거든요? 기도하다 보면 막 웃겨요- ㅋㅋㅋ 하나님, 제 이상형은 어쩌고저쩌고 하다보면 ㅋㅋㅋㅋ 그래서 그건 잘 못해요- 그리고 저 기도제목은 목사님께서 전 성도 앞에서 읽어주는 것들이라 가능하면 크고 포괄적이고 사람들이 속뜻은 잘 못알아듣게 쓰려고 노력해요- 넓은 의미로 '관계의 문이 열린다'에 은근 포함돼 있다는 거 ㅋㅋㅋ

아프님 은근 꼼꼼하시다 ㅋㅋ 우리 과장님은 엑셀 파일에다가 수식 넣어서 다 정리하시거든요- 항목별로 자동 계산되게. 난 그것까지 받았는데도 잘 못한다는 거 -_-

깐따삐야 2008-01-02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난 '뭐든지 골고루 먹자'주의에요. 요즘은 포항초나물에 맛들였어요.
(우리 칼국수, 게장, 만두, 아이스크림 다 먹자요!)
2. 영어에 대한 웬디양님의 정의 맘에 쏘옥 드누만요. 정작 영어공부할 사람은 난데 말이지요. -_-
3. 이몸은 군것질도 잘 안 하는데 살은 안 빠져요. 밥이 넘흐 맛있으니 원.
4. 난 모든지 절약하면 정리도 쉬워진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5. 자판기 커피 나두 무지 즐겨찾는데 좀 줄여야겠당. 생수병을 들고 다닐까?
6. 올해도 그냥 끌리는대로- 마음가는대로-
7. 최선을 다할래요!

웽스북스 2008-01-02 00:23   좋아요 0 | URL
1. 포항초나물은 뭐에요? 나 나름 포항에 4년이나 살았는데 모르네?
2. 영어선생님한테 인정받은 거에요? 우와!
3. 나는 그나마 군것질을 많이 해서 살에 대한 책임을 걔들한테 돌릴 수 있다는 거 ㅋㅋ (근데 걔들을 줄여도 살이 안빠지면 어쩌죠? 흑)
4. 그르게, 정말 그렇네요-
5. 자판기 커피 마실 땐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정말. 근데 사무실에 있다 보면 그냥 물한잔 마셔도 종이컵에 마시게 되잖아요- 그런 것들을 아껴야죠 뭐. 제 목표는 원래 타협 잘하는 목표라서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은 그냥 버려요 의지발현이 가능한 상황일 때 노력하자는 거죠 ㅋㅋ 참 물렁하죠 목표가
6. 흐흐흐 나도 저렇게 써놓고 그렇게 살아요 ㅋㅋ 살다가 달성되면 좋은 거구
7. 히히 화이링! (이거 무슨 캠페인이라도 ㅋㅋ)

깐따삐야 2008-01-02 00:29   좋아요 0 | URL
포항초는 요즘 마트에 가보면 많이 나와있어요. 시금치는 시금친데 좀더 연하고 부드러워요. 나물로 무치면 촉촉하니 담백해요. 원래 시금치보단 고사리를 더 좋아하는데 요즘엔 포항초에 맛들여서 아주 맛나게 먹구 있어요!
글구 당분을 먹고 찐 살은 당분을 줄이면 서서히 빠질걸요?


웽스북스 2008-01-02 00:31   좋아요 0 | URL
아아 그렇구나. 포항이 시금치가 유명해요- 그걸 브랜드화한건가? 저도 시금치는 별로 안좋아하고, 고사리는 완전 좋아해요 ^^ 그럼 포항초도 좋아하겠다 ㅋㅋ 사실 살도 살인데, 요즘 과자랑 초콜렛을 많이 먹었더니 피부에 독이 오르는 것 같아요- ㅠㅠ

깐따삐야 2008-01-02 00:50   좋아요 0 | URL
서재질에 독 올라서 피부에도 독 오르는 건 아닐까요? 하여간 피부랑은 천적이라니깐. 까다로운 복합성알라딘 같으니라구!

웽스북스 2008-01-02 00:56   좋아요 0 | URL
너무 독하게 열심히 서재질하고 있는 거에요? ㅋㅋㅋ
내일부턴 독하게, 말고 물이 오르게 헤야겠다. 그럼 피부에 물이 올라 촉촉해지겠죠? ㅎㅎㅎ

순오기 2008-01-02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별로 하는 게 없네요. 모든 부분 다 필요한데도...ㅠㅠ
종이컵 안 쓰기는 잘 하는군요. 환경사랑 실천, 요거는 제가 그래도 잘하는 편이죠.애들 키울때 종이기저귀도 거의 안 쓰고 삼남매 키웠어용!

웽스북스 2008-01-02 00:28   좋아요 0 | URL
저도, 잘하면 목표,가 아니지요 잘 못해서 목표에요 ^^
순오기님 종이기저귀 안쓰고 삼남매 키웠다니 대단해요- 전 자신 없어요 흑흑 역시 순오기님을 롤모델로 삼아야된다니까~

춤추는인생. 2008-01-02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익이 처세에 가까운 영어라는 글귀 아 이거 명문이예요
그리고 아프님과 나누시는 댓글중에 관계의 문이 열린다.라는 은근히 비춰진 속뜻과 속사정도 너무 재미있어요. 하긴 남자친구 사귀게 해주세요를 목사님이 많은사람들 앞에서 읽기에는 저도 그렇게 못할것 같아요. 써먹을래요. 관계의 문이 열리게 도와주세요^^ 이렇게요~

웽스북스 2008-01-02 00:55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지 않나요? 토익 공부하면서 내가 영어를 공부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안들었었거든요- 물론 영어를 잘하는 애들은 토익도 잘하지만, 토익을 잘하는 애들이 영어를 잘하지는 않더라구요-

그리고 저 속뜻, ㅋㅋ 음흉하죠 좀 ㅋㅋㅋㅋㅋ 그래도 100% 다 그런 건 아니구요 ^^ 그냥 살짝, 매우 살짝 숨겨놓은 거에요 (구차하다 ㅋㅋ)

바람돌이 2008-01-02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 가능한건 5밖에 없군요. 나머지는 뭐 전혀 가능성이 없으니....
목표가 뭐 다 하라고 있는건 아니잖아요.ㅎㅎ
새해에 원하는바 이루시고 행복하세요. ^^

웽스북스 2008-01-02 12:03   좋아요 0 | URL
흐흐 그렇죠 ^^
5번이라도 모두가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흐흐흣

프레이야 2008-01-02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그럭저럭 네가지가 겹쳐요. (뭘까요? ㅎㅎ)
성공하는 사람들의 대개는 계획을 잘 세운다는 것이던데
님은 절반의 성공을 하고 새해를 시작하는 것 같아요.
완전 성공하시리라 믿어요.^^

웽스북스 2008-01-02 12:04   좋아요 0 | URL
완전 성공하시리라, 믿으시면 제가 부담스럽구요 ㅎㅎ
최선을 다해야죠

혜경님의 4가지도 궁금해요
찍어보자면...1ㅡ4ㅡ5ㅡ7???

비로그인 2008-01-02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올해는 4번을 해야겠습니다~ ^^
영화 티켓과 동전은 꼬박 모으는데, 정리를 안한다는...( -_-)

웽스북스 2008-01-02 12:04   좋아요 0 | URL
우와 동전도 모아요?
저도 티켓이 정리가 안되고 있어요
은근 시간 걸리고 쉽지 않다는 ;;

무스탕 2008-01-02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작 저는 주부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가계부 안적습니다. 그저 간단히 지출만 적지요..
7번에서 뜨끔.. 사 놓고 읽지않고 쟁겨두는게 특기인 저는 어쩌라고.. ㅠ.ㅠ

웽스북스 2008-01-02 12:0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무스탕님에게 갑자기 굉장히 정감이 갑니다 ^^

비로그인 2008-01-02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대로 가져가서 써도 될만한 좋은 계획이십니다. 특히 4번,7번 공감
건투를 빌어요~^-^

웽스북스 2008-01-02 17:0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프랭클린 플래너에 적은 멋진 계획들
차근차근 해나가시는 한해되시길바랍니다

다락방 2008-01-02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보자.

1. 저는 고기를 완전 사랑하기 때문에 채식과는 완전 거리가 멀구요, 다만 일주일에 3회를 초과해서 고기를 먹지는 말자, 이러는데 이것도 잘 안된다는거. orz
2. 영어 공부는 해야해, 라고 생각하지만 하겠다고 마음은 안먹어요. ㅜㅜ
3. 이건 완전 급해졌어요. 왜냐하면 4월5일에 여동생이 결혼하거든요. 뚱뚱한 언니로 예식장에 서있을 순 없잖아요. 동생을 먼저 시집보내면 언니가 멋져야 되는거잖아요. 그렇잖아요, 네??
4. 이건 패쓰. 나이들면 기록에 의미를 두지 않는것 같아요. 예전엔 기차표나 공연표 이런것도 다 모아뒀었는데 이젠 죄다 버린다는.. --;;
5. 이건 몇개월전부터 아주 실천 잘 해주시고 있다는. 머그컵 씻기 귀찮아서 아예 안마셔요. ㅡ,.ㅡ
6. 이것도 정해두지 않고 마음내키는대로 하기 때문에 패쓰.
7. 다이어트만으로도 이미 심하게 마음의 압박(만)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런걸로 스트레스 안줄려고요.(제가 스스로를 너무 사랑해주시나요? ㅜㅜ)

웽스북스 2008-01-02 17:02   좋아요 0 | URL
1. 나도 그렇게 바꿔볼까나? ㅋㅋㅋ
2. 저도 어제 실행 첫날이었는데, 휴일이라며 오늘로 미루긴 했어요
3. 에에 멋지세요 충분히 ^^
4. ㅎㅎ 저도 점점 그러고 있긴 해요- 그래서 발악을! ㅋㅋ
5. 흐흐흐 화이링이에요!!!
6. ㅋㅋㅋ 마음내키는대로 살다가 초과되면 감사한거죠
7. 저도 둘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다이어트를 고르겠어요 ㅋㅋ

돌돌 2008-01-02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자와 초콜렛 끊기가 굉장히 공감됩니다!!!! 전 더불어 술도;;;

웽스북스 2008-01-02 17:03   좋아요 0 | URL
아 그러고보니 오늘 스트로베리초콜렛을 먹긴 했어요 ㅠㅠ
 



예배를 마치고 H 언니와 C커플과 이디야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C와 함께 살 때는 일주일에 두세번씩 갔었는데 올해는 그러고보니 거의 6개월만에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만에) 갔군. 일단 싸다는 게 미덕. C커플은 예매해놓은 영화가 있어 먼저 가고 나와 언니는 매우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지난 10월 말에 결혼한 언니의 남편 C오라버니는 공대로 유명한 H대를 나와 L모 전자를 다니다가 1년도 못되어 그만두고, 거의 3년간을 백수로 지냈다. 백수로 지내는 남자친구와 결혼시키지 못하는 부모님 때문에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시간이 흐를 수록 취업의 문턱은 점점 높아져갔다. 결국 C오라버니가 백수인 상태로 언니는 결혼을 하게 됐고, 부모님은 그래도 C오라버니가 멀쩡한 대학을 나와 멀쩡한 회사를 다니던 녀석이니 곧 번듯한 직장에 취직을 해 딸 고생은 시키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결혼을 시켰다.

그런데 결혼 후 C오빠가 선택한 일은 가스배달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우리는 당연히 거기가 C오빠가 머무를 직장이라 생각지 않았고, 그냥 잠시 생활을 위해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언니와 얘기해보니 C오빠는 그 일을 매우 즐겁게 하고 있단다. 다시 사무실로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머리 쓰는 일보다 몸 쓰는 일이 편하다며 C오빠는 그 일을 계속 할 생각이란다. 말은 못하지만 속터지는 건 언니. 언니는 일산에 있는 약국에 매니저로 있기 때문에 현재 언니의 수입도 오빠의 수입도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뭐 둘이 번 돈을 합하면 샐러리맨 하나 월급 정도는 나와 지금은 두 명의 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치만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는 동안 언니가 일을 쉬게 될 경우의 생활이 당장 막막하고, 아기에게 들어가는 돈 역시 감당키가 어렵다는 것. 게다가 착한 언니는 여전히 처녀 때부터 지금까지 친정에 남아 있는 빚을 계속 갚고 있는 상황이니, 좀 더 생활이 빠듯하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하면 결국 티격태격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서로 마음만 상하니, 일단은 하고 싶다는 일을 존중해주고 있다고, 하지만 앞으로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언니는 얘기했다.

C오빠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특히나 오빠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보통 이상으로 받았었나보다. 게다가 지난 3년을 백수로 지내며 받았던 스트레스도 엄청났을테니, 그 취업 전쟁에 다시 뛰어드는 것이 두려운 것도 이해가 된다. 그치만 역시나 난 자꾸만 H언니의 입장에서 현실을 생각하게 되고, C오빠가 안쓰러우면서도 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모두가 안정, 안정,을 외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는 결혼을 하게 되면 한 사람 정도는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자로 살고 싶은 욕심은 없지만, 최소한 타인에게 인색한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생활에 여유가 사라지게 되면 마음의 여유도 함께 사라진다는 걸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꿈이 돈을 적게 버는 일과 연관이 돼 있다면 나는 그냥 내가 돈을 꾸준히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그 돈 적게 버는 일의 범주는 우습지만 -_-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일,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일, 뭐 이런 것들이었다. 가스배달이라는 직업은 아예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나의 이런 당황이 더 당황스러운 건 내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지 않다고 갖은 착한 척을 하면서도 몸을 쓰는 일,을 멀쩡한 대학 나온 사람이 하는 건 상식적이지 못한 일이라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생판 남이거나, 친구의 친구의 사촌언니의 남편이라면 그냥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사는 게 행복한 거지,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닌, 내가 좋아하는 언니의 남편, 나와도 친한 누군가,의 일이라면 얘기가 달라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뭔가 모순적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오빠의 앞길을 또 마냥 응원만 하지는 못하겠는 나,는 일하는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며, 사람 눈치볼 필요 없고, 종일 운전하며 배달 대기중 남는 시간엔 책도 보고, 신문도 읽는 지금이 좋다는 오빠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오빠가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여전히 변함이 없다. 미안하지만 그렇다. 아, 정말 어쩔 수 없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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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2-25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C오빠는 부양가족이 하나 더 생겨버리면 다른 생각을 가질지 몰라요.^^

웽스북스 2007-12-25 21:41   좋아요 0 | URL
어째 좀 슬프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랬음 좋겠어요

깐따삐야 2007-12-25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의견에 많은 부분 공감하는 바. 돈을 좀 못 벌어도 어떤 면에서건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C오빠라는 분 같은 경우엔 아내의 노고라든가, 2세를 위한 준비라든가. 그런 걸 너무 간과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간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는 모르지만 누군들 좋아서 힘든 직장 다니며 고생하나요. 스스로 선택해서 결혼했고 홀몸이 아닌 이상 좀더 안정된 생활을 위해 책임감을 갖고 노력해야죠. 부부끼리 탁 터놓고 솔직한 대화가 필요한 것 같아 보여요. (신구 아저씨도 아니면서 또또 남의 일에 열내고 앉았네.-_-)

Mephistopheles 2007-12-25 21:37   좋아요 0 | URL
확실히 깐따삐야님은 게맛 만큼은 확실히 아실 것 같아요.=3=3=3=3

웽스북스 2007-12-25 21:44   좋아요 0 | URL
언니에게도 대화해보라고 얘기했는데, 아무래도 쉽지는 않은가봐요- 그저 지금도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C오빠가 뭔가 속으로 꿍꿍이가 있는 거길 바라고 있는데, 잘 모르겠네요 ㅠ_ㅠ

충청도의 게맛은 어떻던가요? ㅎㅎ

깐따삐야 2007-12-25 21:54   좋아요 0 | URL
음. 그렇다면 본인도 유예기간을 두는 건지도? 몸을 마구 움직이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기도 하니깐. 어쨌거나 잘됐으면 좋겠다.

충청도의 게맛은 끝내줘요! 아앙~ 간장게장+양념게장+호박게국지가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며 허기진 배를 희롱하네욤.

마늘빵 2007-12-25 22:01   좋아요 0 | URL
간장게장은 못먹지만 양념게장은 게눈감추듯 먹어치울수 있는데 -_- 쓰읍.

깐따삐야 2007-12-25 22:08   좋아요 0 | URL
대체 그 맛있는 간장게장을 왜 못 먹는다는 건지.(또또 먹는 이야기에 광분하기 시작)

마늘빵 2007-12-25 22:29   좋아요 0 | URL
간장게장은 너무 짜요. -_- 양념게장은 쓰읍. 아 먹고싶다. 고기먹으러갈 때 나오는 양념게장은 항상 두 그릇씩 뚝딱 해치우는데 좀 많이 먹고 싶다아.

웽스북스 2007-12-25 22:45   좋아요 0 | URL
깐따삐야님 // 모르겠어요- 실은 저도 그냥은 잘 이해가 안되거든요- 내가 그냥 커피집에서 서빙이나 하고 싶다는 거랑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르겠고 말이죠- 근데 호박 게국지는 뭔가요? 이름만 봐도 맛있겠다 ㅋㅋ

아프님 // 간장 게장이 짜니까 밥도둑인 거죠 괜히 밥도둑이겠어요- 잘하는 데 가서 먹으면 맛있는데 저도 잘 못먹긴 해요- (일딴 비싸고!) ㅋㅋ

깐따삐야 2007-12-25 22:53   좋아요 0 | URL
아프님- 간장게장 게딱지에 따순 밥 넣고 솔솔 비벼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양념게장도 물론 맛나죠. 근데 금방 무쳐먹어야 제맛인 양념게장은 반짝하는 양념맛이구요. 깊고 담백한 맛은 역시나 간장게장이죠. 배고파라.-_-

웬디양님- 호박게국지는요. 제 고향에서 겨울에 잘해먹는 음식인데요. 배추와 무, 늙은호박, 간장게장 국물로 김치를 담근 다음 여기에 게다리 등을 찢어서 같이 넣어주고요. 김치가 다 익은 후, 쌀뜨물을 붓고 찌개로 끓여먹으면 세상 모르고 맛있습니다요. 배고파. 흑!

웽스북스 2007-12-25 22:54   좋아요 0 | URL
ㅋㅋ역시 떠올렸을 때 침을 꼴깍 하게 되는 녀석은 간장게장인게죠 ㅋㅋ 어 근데 이거 쓰니까 호박 게국지에 대한 덧글 첨부가 ㅋㅋ 세상 모르고 맛있다니 아, 정말 맛있겠다. 깐따삐야님 끓일 줄도 알아요?

깐따삐야 2007-12-25 23:06   좋아요 0 | URL
히히.^^ 맛있게 먹을 줄만 알아요. 그리고 고향에서 떠나온 후로는 예전처럼 호박게국지 잘 안해먹어요. 엄마 말씀으론 이 동네는 내륙이라 그런가. 싱싱한 해산물이 안 보인다고. 고향의 큰댁에선 지금도 게장이니 게국지니 열심히 담그시는 모양인데 말이죠. 배고파. 배고파. 어뜩해.-_-;;

웽스북스 2007-12-25 23:09   좋아요 0 | URL
아 고향은 지금 그 도시가 아닌 거군요-
씨오빠 얘기하다가 왜 먹는 얘기로 넘어갔는지 거슬러 올라가보니
이게 다 메피님 때문이로군요 흥흥 ㅋㅋㅋ

배고파요 책임져요 메피님

마늘빵 2007-12-26 01:09   좋아요 0 | URL
그건 머여요. 호박게국지. 그것두 먹어보고 싶다. 맛있겠다. 게는 다 좋아하는데.

웽스북스 2007-12-26 01:11   좋아요 0 | URL
간장게장을 안좋아하므로 무효
호박게국지는 정말 맛있겠죠 ^-^

마늘빵 2007-12-25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으로서 씨오빠가 어떤지보다는 저는 그 분의 개인적인 행보가 남달라보여요. 아직 내가 '가정'의 범주에서 생각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_- 언니분이 이 부분에 있어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 같기도. 근데 그 문제가지고 다툼의 조짐이 보일거 같다면... 둘이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을거 같아욤.

웽스북스 2007-12-25 22:46   좋아요 0 | URL
남다르죠 정말 남다르긴 하죠- 언니가 이 부분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게 문제이고, 당분간은 언니도 지켜보자는 입장이에요- 둘다 참 좋은 사람들이고, 서로 많이 좋아해서, 일단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오빠도 언니가 수입의 일부분을 여전히 친정에 보내는 거에 대해 관대하고요 ^^ 우리모두 신구가 되고 있는 사건 ㅋㅋ

순오기 2007-12-25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갑을 지낸 시아버님이 첫딸을 낳은 내게 행복한 가정을 위해선 건강, 경제, 사랑 순서로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그땐 왜 경제가 먼저일까 알지 못했는데, 살면서 '경제'가 얼마나 중요하지 뼛속까지 느낍니다. 경제가 받쳐주지 않으면 사랑이 아닌 가정까지 깨고 싶을 정도로... 한번 나락으로 떨어진 가정경제는 되살리기 쉽지 않아요. 가장의 경제적인 힘, 필수조건입니다!

웽스북스 2007-12-25 22:57   좋아요 0 | URL
순진한 소리를 종종 해대는 제게 주변 결혼하신 분들께서 해주시곤 하는 말씀과 비슷한 이야기이에요- 그게 결정요인이 되서는 안되지만, 절대 무시해서도 안된다고. 살면서 현실을 알아가는 거죠- 참.

바람돌이 2007-12-26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문제네요. 저정도로 직장생활에 스트레스가 심했다면 아마 돌아가기 힘들거예요. 제가 옛날에 알던 사람이 증권회사에서 초고속 승진으로 아주 잘 나갈때 때려치워버리더라구요. 그리곤 한 말이 다시는 넥타이 매고 출근하는 직업 안가진다였어요. 그러고는 이민가버렸어요. 절실하게 싫다면 그건 누구도 어쩔수 없죠. 그런데 사는게 그리 단순하지 않으니... 다행히 두분이 다 좋은 분들이라니 아마 둘이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낼 수 있을거예요.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말예요.

웽스북스 2007-12-26 00:5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언니한테 스트레스 받아서 병나는 것보다는 건강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은 했어요- 참 남의 일에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거니까, 좋은 결론이 나기를 바라야죠 뭐

Mephistopheles 2007-12-26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놈의 "게"때문에..."게"때문에..!!

웽스북스 2007-12-26 01:27   좋아요 0 | URL
그럼 간장게장 사주시는 겁니까? ㅋㅋ

깐따삐야 2007-12-26 01:43   좋아요 0 | URL
저도 사주세요, 메피님! ㅋㅋ

마늘빵 2007-12-26 09:00   좋아요 0 | URL
나두나두

웽스북스 2007-12-26 09:46   좋아요 0 | URL
멤버는 결성됐고, 장소는, 신사동 어떠십니까? 막이러고 ㅋㅋㅋ

Mephistopheles 2007-12-26 11:53   좋아요 0 | URL
글쎄 애인부터들 만드시라니까요..^^

깐따삐야 2007-12-26 12:12   좋아요 0 | URL
정말 애인 만들어서 델구 가기만 하면 사주시는 거죠? 어렵지 않아요. 약속 안 지키시기만 해봐요!!

마늘빵 2007-12-26 14:51   좋아요 0 | URL
그럼 나도 일일 애인 만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