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를 마치고 H 언니와 C커플과 이디야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C와 함께 살 때는 일주일에 두세번씩 갔었는데 올해는 그러고보니 거의 6개월만에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만에) 갔군. 일단 싸다는 게 미덕. C커플은 예매해놓은 영화가 있어 먼저 가고 나와 언니는 매우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지난 10월 말에 결혼한 언니의 남편 C오라버니는 공대로 유명한 H대를 나와 L모 전자를 다니다가 1년도 못되어 그만두고, 거의 3년간을 백수로 지냈다. 백수로 지내는 남자친구와 결혼시키지 못하는 부모님 때문에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시간이 흐를 수록 취업의 문턱은 점점 높아져갔다. 결국 C오라버니가 백수인 상태로 언니는 결혼을 하게 됐고, 부모님은 그래도 C오라버니가 멀쩡한 대학을 나와 멀쩡한 회사를 다니던 녀석이니 곧 번듯한 직장에 취직을 해 딸 고생은 시키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결혼을 시켰다.
그런데 결혼 후 C오빠가 선택한 일은 가스배달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우리는 당연히 거기가 C오빠가 머무를 직장이라 생각지 않았고, 그냥 잠시 생활을 위해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언니와 얘기해보니 C오빠는 그 일을 매우 즐겁게 하고 있단다. 다시 사무실로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머리 쓰는 일보다 몸 쓰는 일이 편하다며 C오빠는 그 일을 계속 할 생각이란다. 말은 못하지만 속터지는 건 언니. 언니는 일산에 있는 약국에 매니저로 있기 때문에 현재 언니의 수입도 오빠의 수입도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뭐 둘이 번 돈을 합하면 샐러리맨 하나 월급 정도는 나와 지금은 두 명의 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치만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는 동안 언니가 일을 쉬게 될 경우의 생활이 당장 막막하고, 아기에게 들어가는 돈 역시 감당키가 어렵다는 것. 게다가 착한 언니는 여전히 처녀 때부터 지금까지 친정에 남아 있는 빚을 계속 갚고 있는 상황이니, 좀 더 생활이 빠듯하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하면 결국 티격태격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서로 마음만 상하니, 일단은 하고 싶다는 일을 존중해주고 있다고, 하지만 앞으로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언니는 얘기했다.
C오빠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특히나 오빠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보통 이상으로 받았었나보다. 게다가 지난 3년을 백수로 지내며 받았던 스트레스도 엄청났을테니, 그 취업 전쟁에 다시 뛰어드는 것이 두려운 것도 이해가 된다. 그치만 역시나 난 자꾸만 H언니의 입장에서 현실을 생각하게 되고, C오빠가 안쓰러우면서도 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모두가 안정, 안정,을 외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는 결혼을 하게 되면 한 사람 정도는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자로 살고 싶은 욕심은 없지만, 최소한 타인에게 인색한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생활에 여유가 사라지게 되면 마음의 여유도 함께 사라진다는 걸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꿈이 돈을 적게 버는 일과 연관이 돼 있다면 나는 그냥 내가 돈을 꾸준히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그 돈 적게 버는 일의 범주는 우습지만 -_-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일,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일, 뭐 이런 것들이었다. 가스배달이라는 직업은 아예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나의 이런 당황이 더 당황스러운 건 내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지 않다고 갖은 착한 척을 하면서도 몸을 쓰는 일,을 멀쩡한 대학 나온 사람이 하는 건 상식적이지 못한 일이라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생판 남이거나, 친구의 친구의 사촌언니의 남편이라면 그냥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사는 게 행복한 거지,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닌, 내가 좋아하는 언니의 남편, 나와도 친한 누군가,의 일이라면 얘기가 달라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뭔가 모순적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오빠의 앞길을 또 마냥 응원만 하지는 못하겠는 나,는 일하는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며, 사람 눈치볼 필요 없고, 종일 운전하며 배달 대기중 남는 시간엔 책도 보고, 신문도 읽는 지금이 좋다는 오빠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오빠가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여전히 변함이 없다. 미안하지만 그렇다. 아, 정말 어쩔 수 없게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