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츄 -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고양이 그림책 암실문고
발튀스.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윤석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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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리 소장하고 싶은 암실문고 시리즈 중 라이너 마리아 릴케 + 발튀스 조합을 만났다. 릴케는 이름만 알고, 발튀스는 초면. 무지한 게 부끄럽지만, 앎의 기쁨을 느낄 수 있어 좋을 때도 있다. ^^;;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고양이 그림책,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이 책은 물성이 참말 좋아서 고양이 러버들에게 선물하기도 좋은 책이다. 겉커버, 속커버 두가지인데 둘 다 내 취향. 겉 커버는 갱지 느낌, 속커버는 터콰이즈!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커버가 단단하여 만졌을 때 느낌이 좋다. 보관하기도 좋을 듯.



암실 문고는 서로 다른 색깔의 어둠을 하나씩 담아 서가에 꽂아 두는 작업입니다.


이 책은 어떤 어둠을 담아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발튀스가 13세에 출간한 이 책은 40편의 고양이 그림을 담고 있다. 10살에 만난 고양이 미추와의 추억들을 고스란히 담아낸 소년의 그림들. 실제 그림 사이즈 그대로 만들었다고 하니, 참 작은 종이에 그려낸 그림들이고 검은색만 사용한 드로잉인데 그림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훌륭하다, 고 감탄했다! 재능을 알아볼 줄 아는 릴케와 한 집에서 살았던 것이 발튀스의 행운이렸다. 게다가 릴케가 쓴 서문을 읽고 - 그림을 보고 - 이현아님의 해설을 읽고 난 다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림을 다시 보면 또 다르게 보이는 매직. 발튀스의 인생에서 유년기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왜 그렇게 그리워하는 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른 암실 문고를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제목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발튀스의 어둠은 상대적으로 빛이 많이 드는 어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봤다.


고양이 미추는 결국 자유를 찾아 떠나는데, 발튀스가 느낀 상실감은 당연히 어마어마할 터...! 마지막 장면이 짠한 발튀스 앞에 닥친 이 사태에 대해 릴케는 상실과 소유로 풀어낸다. 상실은 소유의 끝이며 소유를 확인시켜주는 제 2의 소유일 뿐이라고... 이렇게 상실과 소유를 가르쳐 줄 어른이 가까운 곁에 있다는 것 역시도 발튀스의 행운이지 싶었다. 이현아 님의 말처럼.


발튀스는 유년기에 겪은 상실을 기록하고 애도할 수 있는 드문 행운을 거머쥐었다. 이것은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사건이었다. 드로잉집의 서문을 쓴 릴케는 발튀스의 삶을 예견이라도 한 듯 말했다. "발튀스는 그의 꿈에 머물 것이고, 모든 현실을 자신의 창조적 필요에 맞게 변형할 겁니다" 그의 유년은 상실의 까만 심연을 들여다봐 주는 사람들과 함께였다.

(111-112)


누구나 가지고 있는 유년, 유년의 기억. 충만하게 보낸 유년의 기억으로 평생을 사는 발튀스. 릴케와 함께한 그의 유년시절이 어땠을지, 이 책을 보며 더듬더듬 그려본다. 릴케는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피붙이도 아닌 발튀스 형제가 학업을 이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심지어 발튀스에게는 인생의 문을 열어준 사람. 이 두 예술가의 만남과 성장이 따뜻했다. 


1차 세계대전의 시대를 살아가며 고된 삶을 살았으나 언제나 함께했던 고양이 미추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은 책, 더불어 릴케의 서문으로 더 인상 깊었던 책이었다. 발튀스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고 깜짝 놀랐지만... ^^;; 이 책만큼은, 상실에 대해 따뜻하고 소년스럽게 이야기하는 발튀스를 만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고양이 그림책, 집사님들께, 고양이 러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도서제공 #을유문화사 #출판사로부터도서를제공받아작성되었습니다

인생+고양이

장담하건대, 이 둘의 합은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건 매우 슬픈 일입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건 나쁜 일을 당하거나, 어딘가가 부러지거나, 결국엔 늙고 쇠락한다고 가정하는 것이죠. 하지만 ‘고양이를 잃어버린다‘라는 표현은 절대 생각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고양이를, 살아있는 생명체를, 하나의 생명을 잃어버릴 수 있을까요? 하나의 생명체를 잃어 버리는 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

그건 바로 죽음이에요 - P19

발튀스는 유년기에 겪은 상실을 기록하고 애도할 수 있는 드문 행운을 거머쥐었다. 이것은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사건이었다. 드로잉집의 서문을 쓴 릴케는 발튀스의 삶을 예견이라도 한 듯 말했다. "발튀스는 그의 꿈에 머물 것이고, 모든 현실을 자신의 창조적 필요에 맞게 변형할 겁니다" 그의 유년은 상실의 까만 심연을 들여다봐 주는 사람들과 함께였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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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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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써주세요 작가님 제가 열심히 열렬히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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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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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녹록치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평안하기만 한 삶은 없겠지. 그러나 자, 해보자. 누가누가 잘 사는가를 기준으로 하여 줄을 세워보자. 소위 사회적으로 "무난하게 잘 산다"는 기준으로 세워보자. 작가님은 아마... 후하고 후하게 쳐도 중위권 이후에 있지 않을까.

우선, 작가님은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어릴 적에 작가라는 사람은 반드시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의 캔디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다! 라고 생각했었다. "온갖 불행 소스를 다 때려넣은 이 잡탕같은 인생에..." 라는 드라마 도깨비의 대사가 자꾸 뇌리에 머무른다. 책을 읽는 내내. 그렇다면, 조승리님은 천상 작가로 태어난거다. 작가가 되려고 이 모든 시련들을 겪어낸 거다. 책장을 덮고 나는 그리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람이 작가가 되지 않으면 아니 대체 무얼해.


내 운명이 빙산 같다고 생각했다. 바다를 홀로 떠돌다 결국 녹아 없어져 버리는 빙산처럼 나의 삶도 시간을 부유하다 무의미하게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탱고를 추는 시간 중에서


86년 아시안 게임을 시청하다 작가님을 낳은 엄마 이선열님이 지어준 이름, 승리. 조승리. 2023년 샘터 문학상 대상 수상을 이선열님이 보셨다면 어떤 말을 하셨을까. 내가 이름 하나 잘 지었다니까, 하지 않으셨을까.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 - 창간 당시 샘터의 캐치 프레이가 이러했다는데, 정말 취지에 부합하는 글이 아닌가! 샘터 출판사도 있는데, 굳이 달 출판사에서 이 책이 나온 것은 또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보통 추천사는 청탁한다는데, 이 책은 좀 다르지 않았을까. 이병률 시인의 추천사는 이러했다.


이 책을 읽고 슬펐고 뜨거웠으며, 아리고 기운이 났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전한다. 그리고 그녀의 훤칠한 글 앞에서 내가 바짝 쫄았다는 사실까지도.


-이병률 (시인/여행작가) 의 추천사


훤칠한 글, 2번째 챕터를 읽으면서 나는 이 표현이 무슨 뜻인지 바로 느꼈다. 글이 훤칠할 수 있구나. 훤칠하게 잘생긴 젊은이처럼 꼿꼿하고 싱그럽고 뒤끝없이 꿋꿋하구나,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친구 둘과 같이 타이베이 자유여행을 갈 정도의 도전도 할 수 있는 사람, 장애에 대한 편견이 유독 심한 한국에서 서른이 넘도록 버텨온 조승리님의 글은 정말, 훤칠했다. 편견의 말들과 시선을 감내하며 버텨왔을 그녀의 글은, 정말이지 그랬다.


공간에 흐르는 가을 공기가 맨살에 소름을 오소소 돋게 했다. 평온한 일상에 안도한다. 순간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남의 불행을 자신과 비교하며 안도를 찾는 이들을 나는 얼마나 경멸했는가?


오래전 지인을 따라 방문한 어느 교회에서 목사는 나의 장애를 거론하며 말했다. 하나님이 왜 장애인을 이 땅에 만드셨는지 아시나요? 그건 여러분께 현실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게 해드리려는 주님의 안배입니다. 저들을 바라보며 건강한 육신이 얼마나 축복인가를 아시길 바랍니다.


-그녀는 헬러윈에 갔을까 중에서


블라인드 서평단을 신청한 이유는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이 지랄맞음이 축제가 되겠지 - 라는 훤칠한 제목이 정말 궁금했다. 지랄맞음이라는 단어 안에 담긴 회한. 신을 탓하고 싶어지는 저 말에 대체 무슨 사연이 있을까 궁금했다. 이렇게 이미 궁금한데- 이병률 시인이 모든 예술가들이 살고 싶어하는 어떤 심연에 작가가 이미 도착해 있는 건 아닐까, 라고 하셨으니... 신청하지 않고 배겨낼 도리가 없었다.


서평단을 위해 제작된 책이라, 순서가 그대로일지는 모르겠지만 - 샘터 대상 수상작인 "불꽃축제가 있던 날 택시 안에서" 로 시작하여 24개의 에세이가 담긴 이 책은 정말 매 편이 충만했다. 다 읽고 나서야 생각하게 되는 질문. 아니, 눈이 안보이는데 책을 어떻게 쓰지...? 영화는 어떻게 보는 거지? 그 모든 세상 일을 어떻게 다 알고 이렇게 느끼고 생각하는 거지? 하는 저차원 궁금증에서부터, 과거와 현재의 삶에 일어난 일들을 하나하나 골라 긴 여운을 남기는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깊은 어둠에 고여있었을까, 하고 시간을 헤아려보느라 다 읽고 나서도 한참 책 등을 쓸었다.

엄마의 열정과 농담을 물려 받았으니


책에서 느껴지는 투사의 기운...! 어디서 왔을까 했는데 작가님에게는 역시 엄마가 있었다. 돈벌러 간다면서 자꾸 사라지는 애비를 대신해 세남매를 키워낸 엄마가. 밭일하고 가축도 키우며 억척스럽게 살았던 엄마가. 열다섯에 시력을 잃고 장애인 학교에 들어갔던 작가님이 부끄러워 졸업식에 한번도 가 주질 않았던 엄마가 있다. 아마도 결혼 전에는 삶에 대한 열정이 있었을테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자식을 위해 아득바득 애를 쓰며 버티기 위해 농담을 택했을 엄마가, 큰 산같은 뒷배가 있었다.



은사님은 내게 엄마 이아기를 써보는 것이 어떻겠나고 하셨다. 나는 준비가 되면 그래보겠다고 대답했다. 언젠가 내 엄마가 아닌 여자 이선열에 관해 쓰고 싶다.그녀의 열정과 농담을 이어받았으니 그것은 나의 힘이 될 거라고 믿는다.

-위로의 방식 중에서


작가님은 이 책을 통해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다 풀었을까. 아니면 아직 더 남았을까, 싶었다. 책 곳곳에 뿌려진 엄마와의 에피소드는 나의 눈물 버튼이었다. 한 해의 대부분 얼굴이 까맣고 거친 손으로 호탕한 웃음을 웃으며 담배를 맛있게 피우는 몸집이 큰 여자 사람이 그려졌다. 엄마와 딸의 맞담배도 낯설었지만 떨어진 담배를 사기 위해 나갔던 밤 드라이브의 에피소드는 더 낯설고 그래서 유쾌했다. 숨어있는 순찰대를 놀리기 위해 부러 이상하게 운전을 하고, 결국 돌아오는 길에는 귀엽게 선도 넘으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는 눈빛을 보내는 엄마. 아, 그러시면 안돼요~ 라는 말이 턱까지 찼지만 귀여우니까 인정. 이선열 엄마는 뜨겁게 사셨네, 싶은. 온갖 부조리를 겪어내며 원망만 할 수도 있는 인생이셨을텐데. 가슴에 묻은 일들이 오조오억개이셨을텐데. 남편에 이어 딸만 보면 억장이 무너졌을 것인데. 이 훤칠한 글 뒤에 숨은 절절함이 읽혀서 울었다. 이선열 엄마의 마음과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딸 조승리에게 이어졌구나, 해서 울었다.

장애 + 중국교포라서 두배의 차별을 받는 언니 대신 화를 내고 복수도 해주는 작가님, 가족들에게 이용 당하며 속만 문드러지는 마사지 손님에게 현실을 일깨워주는 작가님, "올바른" 얘기만 하는 봉사자에게 따끔한 일침을 날려주는 작가님, 절망에 빠진 장애아 엄마에게 당신은 죄가 없다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는 작가님. 당장 자신이 겪는 불합리한 일들이 산적해있을텐데 세상의 다른 불합리를 보며 큰언니처럼 등을 두드려주는 삶을 사는 작가님의 글들 앞에서 무장해제되어 나는 또 울었다.


'내 눈에 박사, 너는 늘 열여덟으로 보인다. 어린데도 돈 벌어 집에 빚 갚아줘야 한다고 동동거리던, 우리 학교 아이들이 근처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맞고 오면 빗자루 들고 황소처럼 뛰어나가던 어른 같던 아이. 난 네가 나한테는 어리광도 피우고 떼도 썼으면 좋겠다."

무어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입을 열면 눈물 스위치가 뚝 하고 켜질 것만 같아 객쩍은 농담도 할 수가 없었다. 바오쯔가 다 쪄졌는지 언니가 뚜껑을 열어 김을 날렸다. 찜솥에서 바오쯔를 꺼낸 언니가 입으로 호호 불어 식힌 뒤 내게 가저왔다. 나는 뜨거운 바오쯔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무국적 만두 중에서


감히 추측컨데 엄마 이선열님도 이런 사람이시지 않았을까. 작가님은 엄마를 꼭 닮은 게 아닐까. 사랑했고 연민했고 애정을 갈구했고 더불어 증오도 했던 엄마를.


계속 써주세요, 읽을게요


작가님은 읽었다고 했다. 시력을 잃어간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학업을 중단하고 도서관으로 달려가 닥치는 대로 읽었다고 썼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부터 눈이 부쩍 많이 피로해진 나는 가끔 눈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를 생각하곤 하는데 ... 아찔하다. 정말 아찔하다. 책을 읽지 못하고 영화를 보지 못하고. 오감 중에 중요도를 따지면 아마도 눈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할 만큼. 책을 좋아하는 십대 소녀에게 시력 상실이라는 건 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감히 상상도 못하겠다. 지금이야 오디오북이라는 옵션도 있고 기술 발전의 힘으로 뭔가 더 가능해졌겠지만...그 당시 그 어떤 기술 발전이 그려졌을까, 아니 과연 희망의 끄트머리를 떠올릴 수나 있었을까. 친척들은 나만 보면 울고, 엄마는 낫게 하겠다고 온갖 미신까지 찾는 그 와중에. 도서관으로 달려간 작가님의 마음은 대체 어땠을까. 책이 어떤 의미였을까. 그렇게 읽은 책들을 작가님에게 어떻게 쌓였을까.


나는 수미씨의 올바름에 화가 났다. 그녀는 결핍을 모르는 사람이다. 수미씨, 수미씨는 장애인 자식 없어봤잖아요. 그래본 적 없으면서 희생하지 않는다고 헐뜯을 자격 있어요?"

-정지된 도시 중에서


책 끝머리에 적힌 작가님의 장래희망은 "한 떨기 꽃"이란다. 비극을 양분으로 가장 단단한 뿌리를 뻗고, 비바람에도 결코 휘어지지 않는 단단한 줄기를 하늘로 향하겠다고. 세상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꽃송이가 되어 기뻐하는 이의 품에, 슬퍼하는 이의 가슴에 안겨 함께 흔들려야겠다고 썼다. 그렇게 누군가가 꽃의 향기를 맡으며 위로를 받는다면, 본인 비극의 끝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남을 것이라고, 그렇게 이 책은 끝이 난다.

아마 작가님은 겪은일, 들은일의 반의 반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글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나는 이런게 에세이지! 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에세이가 넘쳐나서 에세이를 잘 읽지 않게 되어 버렸지만... 이런 에세이는 꾸준히 있어야 한다고, 내가 읽겠다고, 좋은 독자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는게 고통이지만 또 그렇게 이겨낼 수 있다고, 무너지지 말고 원망하지 말라고. 굽이굽이 걸어가면 내리막이 보일 거라고, 좋은 꽃밭도 있을 거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넌지시 자신의 지난 날을 건네주는 이런 에세이. 또 읽고 싶다. 조승리님의 에세이를 계속 읽고 싶다.




*출판사에서 서평단용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내 운명이 빙산 같다고 생각했다. 바다를 홀로 떠돌다 결국 녹아 없어져 버리는 빙산처럼 나의 삶도 시간을 부유하다 무의미하게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 P200

공간에 흐르는 가을 공기가 맨살에 소름을 오소소 돋게 했다. 평온한 일상에 안도한다. 순간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남의 불행을 자신과 비교하며 안도를 찾는 이들을 나는얼마나 경멸했는가?



오래전 지인을 따라 방문한 어느 교회에서 목사는 나의 장애를 거론하며 말했다. 하나님이 왜 장애인을 이 땅에 만드셨는지 아시나요? 그건 여러분께 현실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게 해드리려는 주님의 안배입니다. 저들을 바라보며 건강한 육신이 얼마나 축복인가를 아시길 바랍니다. - P187

그와 나는 학교 시절 이야기를 하며 속없이 낄낄거렸다. 나는 아저씨가 자책에 빠져 누군가를 저주하며 인생을 낭비하지 않길 바랐다. 진정한 복수는 앙갚음도 용서도 아니다. - P76

철없죠. 아이는 죽어가는데 어미가 돼서 내 즐거움을 찾고 있으니. 나는 그녀를 응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잘한 일이라고, 앞으로도 자신의 행복을 찾아나가시라고, 그것이 아이가 바라는 것일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엎드려 오열했다. 잘했다는 말을 너무도 오랜만에 들어본다고 했다. 아이를 낳은 이후로 자신은 행복하면 안 되고 오로지 아이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자기검열에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내가 물었다. 장애아를 낳으면 죄인이 돼아 하나요? 그게 사회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사실인가요? 그럼 저는요, 저는 죄의 근원인가요?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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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박사 김상욱의 수상한 연구실 2 : 중력 - 으악, 유령이다! 물리박사 김상욱의 수상한 연구실 2
김상욱 기획, 김하연 글, 정순규 그림, 강신철 자문 / 아울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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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분야를 선택하여 공부할 수 있던 시절에, 철저한 문과는 물리와 화학을 인생에서 지웠더랬습니다. 그냥 한 문장인 것 같은데 읽히지가 않던!!!! 물리, 외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던 화학... 그 때 이 두 학문을 저리 치운 이후로 다시는 안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레슨 인 더 케미스트리에서는 화학을 다시 만나고, 인터스텔라를 비롯하여 각종 과학 영화와 테드창과 매니악 등의 책들에서, 물리를 만나게 될 줄은... 그리고 무엇보다 알쓸신잡, 알쓸범잡, 알쓸인잡, 알쓸별잡을 통해 김상욱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물리에 대해 다시 한번, 도전해볼까, 싶었더랬죠. 조곤조곤하게 설명하시는 김교수님의 설명은 왠지 물포자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물리를 몰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물리는 생각보다 생활에 불쑥 불쑥 등장하는 그런 학문이라서 알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김상욱 기획, 김하연 글, 정순규 그림의 책입니다.

기획 김상욱 자문 강신철 두 분이 꼭 다뤄야 할 물리 개념을 정리하고 김하연 작가가 이야기로 변환, 정순규 작가님이 삽화를 그렸고요. 학습 만화와 줄글책의 중간 지점에 와 있는 책으로 줄글책 잘 읽는 저학년 + 줄글책 부담스러운 고학년도 모두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씌였습니다.


바로 어제인 3월 27일에, 3권이 출간되었습니다.

이로서 수상한 연구실의 시리즈는 이렇게 구성되었지요.

1권 - 빛

2권 - 중력

3권 - 원자

어머나 어머나! 빛, 중력, 원자 모두 아이 키우면서 한번은 어떤 이유로든 아이에게 설명하게 되었던 개념들 아닌가요! 물론 나의 설명은 미천했지만 실생활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학문이 물리구나, 하고 목차를 보며 깨닫습니다.

김상욱 교수님은 물리학은 모든 과학의 기본, 이라고 하십니다. 뉴턴의 중력을 시작으로 자연현상을 다루고 있는 것이 물리니까요. 그래서 물리가 자꾸 인생에 끼어드는가 봅니다.


물리를 재미있게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장치들


이 책에서는 어려운 개념을 재미있게 보여주기 위해 몇가지 장치가 차용되었습니다. 초판 한정으로 들어있던 홀로그램 카드가 있죠. 그 카드 이름이 "이데아" 입니다! 이데아요? 플라톤의 이데아요?



이 책의 이데아는 좀 더 쉽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시각적으로 물리 개념을 인지할 수 있도록 물리의 개념들을 캐릭터로 설정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2권의 이데아는 물리 이데아 - 그라몽이 되었고요!

이 책을 읽은 녀석에게 이데아가 뭔 것 같냐 물으니

"포켓몬 같은 거...?" 라고 합니다. 이데아캔도 있거든요. 이데아캔에 이데아를 불러들일 수도 있습니다. ^^;;;

플라톤의 이데아보다 수상한 연구실의 이데아를 먼저 접해버렸으니 이제 이데아는 포켓몬 같은 것... 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닐지 염려도 되지만요 ^^;; 중력 이데아 그라몽은 키 20cm에 몸무게가 10kg 나 되는 작고 무거운 존재인데 눈물이 많고 소심한 성격입니다. 재밌네요.




중력=그라몽으로 치환하니 한결 가까운 느낌입니다. 그라몽은 뉴턴의 중력, 아인슈타인의 중력을 "현상"으로 보여줍니다. 진짜 뉴턴의 중력만 알고 있던 무지한 애미는 아인슈타인의 중력을 이렇게 처음 배우고.... - 시공간 왜곡이 등장하다니! 두근두근! 그라몽을 "부력"을 이용해 잡는다는 것에, 중력과 부력의 상관관계에 유레카를 외쳤습니다!


또 하나의 장치는 역시 설정이겠죠?

김상욱 교수님이 또만나 떡볶이집 주인으로 등장하는 것이 포인트...! 게다가 요리를 못하는 편... 아이들 대상으로 매운 떡볶이만 내어주는 편... 그런 안경잡이 교수님이 아이들과 함께 이데아를 잡으러 다니고, 이를 방해하며 가로채려는 "회사"가 등장합니다. 이렇게 익숙한 대결구도와 모험 이야기의 틀에 물리를 집어 넣어 친근하게 접하게 한다는 점! 물리에 대한 장벽을 걷어내기 위한 좋은 장치가 되겠습니다!

우리집 어린이도 책이 오자마자, 알아서 뜯고 알아서 읽고 있더라고요. 학습만화의 장단이 분명하지만, 진입 장벽을 허문다는 점은 분명 장점입니다. 어떻게든 읽게 되니까요. 게다가 이 책은 만화+줄글 혼합이라 글밥 많은 책으로 건너가기에 좋은 가교가 될 것 같기도요.


총 7개의 챕터로 구성되었으며 챕터의 마지막에는 #김상욱 박사의비밀연구일지 라는 개념 정리가 있습니다. 오늘의 연구 대상, 오늘의 일지, 오늘의 연구 결과라는 템플릿과 예시도 보여주고요. 벌어진 이야기들로 개념을 현상으로 보여준 뒤, 챕터 마지막에 이론을 설명하면 현상이 > 과학 개념으로 입력되는 셈입니다.


쉽고 재밌게 물리를, 자연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아이에게 가르침을 받았네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읽게 되었고, 작성하였습니다.




출간 제안을 받았을 때, 과학학습만화 시리즈를 틈틈이 읽던 저의 어린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공룡과 곤충 이야기에는 흠뻑 빠졌지만, 물리를 다룬 이야기는 지루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물리 이야기도 공룡이나 곤충처럼 재미있게 읽었다면 좀 더 일찍 물리학자의 꿈을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 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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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고 녹슬지 않는 위픽
이혁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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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개된 글로 먼저 읽었을 때부터 머리를 징징 울리며 전개되는 여러 사건들에 고민을 하다가 영인 할머니의 사건으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울컥하는 마음을 달래느라 바빴던, 바로 그 책이 드디어 출판되었다. 위픽 선공개 글은 빼먹지 않고 보는 편인데 기억이 많이 남는 몇 편들 중 단연코 선두의 자리에 서 있는 이야기였다. 이혁진 작가님의 책.


이야기는 두 가지 갈래로 흐른다. 자율주행자동차 슈마허,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동을 담당하는 기계 무버. 이 두 기계는 사람들의 삶을 어찌나 바꿔놓으려는지 인간들은 인간들이 만든 기계에 옴짝달싹 못하고 시험에 들고야 만다. 조금은 익숙한 설정 - 대박을 칠거야!  VS 윤리의 문제는 어쩌고 / 내가 이러려고 자율주행차를 만든 게 아닌데? VS 사람들이 선호하는 기능을 더 많이 넣어서 좋아 보이게만 하면 돼의 갈등 상황이 이어지는 와중에 발생하는 사고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윤리, 도덕에 대한 잣대와 기준의 부재를 드러나게 하고... 물러설 수도 돌아갈 수도 없이 와 버린 현재는 인간들을 짓누르는데...


자율주행자들의 일정한 차간 거리, 도로 위 자율주행차들이 많아짐에 따라 진짜 인간들은 점점 AI의 운전 방식을 따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것이 도로 위 질서이니까. 자율 주행 - 내가 운전을 하지 않는 것, 에서 더 이상 선택할 여지가 없음으로 바뀌어 버리는 것이 과연 우리가 자율주행 자동차를 개발하는 의도일까 점점 의심이 드는 와중에. 고민은 자꾸 깊어진다. 도로 위로 부유한 할머니와 가난해 보이는 어린 아이가 뛰어 들었고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부딪히게 된다. 라는 상황 하에서 자율주행자동차에게 어떤 선택을 하라고 기준을 심어줄 것인가. 내가 개발자라면? 내가 CEO라면? 나는 어떤 기준을 부여할 것인가? 아니 그런데... 왜 자율 주행 자동차가 선택을 하고 있지? 선택을 하는 것이 자율 주행 자동차인가? 그게 맞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들이 머릿속을 헤집는 와중에, 감정적으로 울컥하게 하는 이야기가 또 있으니... 바로 무버를 타는 어린이들. 특히 재호의 아내. 재호 아내에게 완전히 감정 이입한 나는 정말 여러번 답답함과 막막함에 눈물이 났다. 문제 의식도 나 같아서, 대처 방법도 나 같아서. 8살짜리 주제에 논리와 그럴듯한 지식만 갖춰 "입만 산" 아들을 "무버에서 내려오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억장이 무너지는 엄마를 "너무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틀린 길로 가는 아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대치 상황만 만드는 엄마를.


나는 절대로 무버를 들이지 않겠다고 생각하지만 "교육적으로 도움이 된다" 라는 전제가 있을 때, 그리고 "모두가 다 사는데" 라고 할 때 과연 사지 않고 배겨낼 수 있을까. 마치 "등골 브레이커" 같은 존재가 무버라고 한다면?


나는 과연 강단있고 심지있게 아이의 반대를 무릎쓰고 내 고집을 견지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모든 게 육아서로 읽히는 매직...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

"해피엔딩주의자" 인 나는 잠시 책을 내려 놓을 뻔 했지만... 이혁진 작가님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더 격해지기 전에 좋은 결말을 만들어주셨다. 울컥 울컥 결국 막판엔 눈물 줄줄. 흐엉엉.

자식과 아들을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잃은 엄마이자 아내 - 할머니 영인. 이 책의 제목인 "단단하고 녹슬지 않는" 의 이야기를 지닌 영인이 그리 해주었다. 이 복잡하게 꼬인 윤리적 질문들의 거미줄 사이로 비친 한 줄기 햇빛은 바로 영인이었다. 가장 아프고 힘든 사연을 가진 채 슈마허에 치인 영인.


어느

늙고

미친

여자가

이 하찮은

일에 자기

목숨을

걸었다고


늙었으니까, 미쳤으니까 이런 일에 목숨을 걸지, 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그런 싸움을 시작하는 영인을 응원하고, 연대하고 싶어졌다. 우리에겐 함께하는 이들이 있다고. 비록 언제까지 길어져도, 나는 당신을 응원한다고. 이것은 이기는 싸움일테니까.


책장을 덮고 나서도 긴 여운에 숨을 골라야 했다.

199페이지의 길지 않은 이야기 속에 담긴 수많은 질문과 답하기 어려운 난제들. 그리고 작가님이 제시한 바로 그 단어에 닿아 울컥하는 마음까지 스펙타클한 여정을 함께 한 기분이 들었던 소설, 인류애가 떨어질 때마다 한번씩 찾아보고 싶은, 그런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았습니다.



슈마허가 선택을 했다는 게, 대상을 골랐다는 게. - P86

나만 겪는 게 없는 것처럼 나만 안 겪는 것도 없을테니까. - P37

그러니까 가르쳐줘야 할 건 기준이야.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 이유가 어떻든 맞는 건 뭐고 틀린 건 뭔지. 이제 알겠어. 내가 제일 못했던 게 그거라는 걸, 그래서 얘가 지금 이렇게 됐다는 걸. 아내는 후회스럽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니 나부터 해야지, 기준을 지켜야지. 아무리 울고 떼쓰고 날 미안하게, 아프게 해도 상관없어. 나쁜 엄마라 해도 괜찮아. 맞는 건 맞고, 틀린 건 틀려. 멀쩡한 두 다리로 태어난 건 고마운 일이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날개를 갖고 태어나지 못한 게 불행한 일이나 선택의 결과일 수 없는 것처럼. 맞잖아. - P53

이럴 의도가 아니었는데도 이렇게 됐으니까,

그럼에도 틀림없이 전부 다 자기가 벌인 일이었으니까. - P26

영인은 다시 그때가 눈앞에 선한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정말 그런 걸 한번 체험해봐야 해요. 인간은 그런 말을 듣고 그런 얼굴을 보기 위해 산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모든 게, 지금껏 있었던 모든 불안, 괴로움, 힘들고 어려웠던 게 눈물조차 없이 다 사라지는, 보상받는 느낌조차 없이 그냥 다 받아들일 수 있게 돼요. 그 모든 게 다 필요했고 가치 있었다는 걸 비로소, 완전히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거죠.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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