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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계획은 2시쯤 나와서 모임을 가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벽돌같이 경악스럽게도 두꺼운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를 가방 안에 쏙 넣고 원피스에 구두 차림으로 쫄레졸레 서울랜드로 갔다. 서둘러 가서 보니, 부장집사님은 어제 야근의 여파로 아직 못오시고, K는 토요 출근. ㄷㄷ 선생님 둘과 몇몇 아이들이 서 있다.
선생님은, 일찍 가신다고 했죠? 그럼 일반 입장권?
아.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어졌다.
흠. 그냥. 자유이용권 끊어주세요.
서울랜드 내 무슨 전시장에서 하는 한국의 사도행전이라는 이름만 봐도 어쩐지 뭔지 딱 알 것 같은, 그 전시 및 영상 상영 관람 이후에 아이들의 자유로운 여정이 허락되어 있는 상황이었기에 먼저 전시장에 들어가 그림을 보는데, 한 신학교 3학년쯤 되는 알바생이 성가대복같은 옷을 입고 설명해준다. 아이들은 몸을 배배꼰다. 새로온 아이 하나가 아. 재미없다. 라고 말한다. 내가 쳐다보자 슬쩍 눈치를 본다. 나는 아이에게 귓속말로 슬쩍 말한다.
나도 재미 없어 죽겠어, 얼른 보고 나가서 놀자
급 반가운 표정을 짓는 아이. 하지만 우리의 바람은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자리를 옮겨 이번에는 신대원 1학년쯤 되어보이는 성가대복 학생이 설명하는 한국 교회의 역사를 들어야했다. 그래. 한국 교회의 역사 중요하지. 근데 왜 우리가 들어야 하는 역사는, 늘, 한쪽 시각에서 포장되고 부풀려진 역사여야만 하는거지? 누가 어떤 탄압을 어떻게 견디어오면서 교회가 견뎌냈는지, 이런 것이 교회의 역사의 전부라고 들어야 하는 거지? 교회가 정권과 어떻게 야합했는지, 도대체 언놈들이 한국 교회의 정신머리를 이딴 식으로 만들어놨는지, 우리는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배울 기회가 없는지. 진짜 오늘의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한쪽의, 매우 크고 중요한 역사를 손가락으로 가린채, 우리 입맛에 맞는 역사만을 우리의 역사라 강요하는 일은 다분히 폭력적이다. 나는 화가 나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재미없어하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놀다가 밥먹다가 1시 영상 시간을 놓치고 1시 40분 영상을 보기로 했는데 밥먹고 40분이나 뜨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나는 영상을 다섯시쯤 보고 일단 애들을 다시 놀 수 있도록 해주자고 C에게 연락을 했다. C는 그렇게 하자고 하고 나는 아이들과 오락실로 갔다. 그 중 두 녀석은 오락실보다 놀이기구가 좋다며 88열차를 타러 갔다. 아이들과 열심히 펌프를 하고 있는데 (구두까지 벗고 오랜만에 컴백을 뛰었으나 F - 이재현이 터키행진곡을 켰을 땐 도무지 따라할 수가 없어서 부끄러워서 구두라도 신어야 덜쪽팔린다는 심정으로 얼른 다시 구두를 신었다.) 극구 40분 영상을 봐야 한다며 선생님들이 다시 왔다. 이게 오늘 모임의 주 행사이기 때문에 먼저 하고 놀아야 한다는 것이 오늘 모임을 주관한 S집사님의 변이다. 휴. 영상은 안봐도 되지 않느냐는 나와 C의 말에 영상이 참 괜찮다며 꼭 봐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ㅜㅜ
그래, 뭐 우리야 오락실에 있었으니 괜찮지만 문제는 청룡열차를 타러 간 아이들. 이 아이들은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도 아닌, 전도로 새로 온 아이들인데, 이미 먼 길을 가서 30분 정도를 기다렸을텐데, 다시 오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니 참 난감하다. 그 아이들에게 가도 된다고 이야기했던 건 바로 나였고. 나는 그 아이들은 나중에 영상을 보게 하고, 일단 우리끼리 보자고 했으나 완고하게도 꼭 아이들이 와야 한다고 하신다. 나는 미안해서 계속 동동거리는 마음이다. 밖에서 서성서성 기다리는데 아이들이 온다. 아. 얘들아. 진짜 미안해. 정말 화났지. 미안해. 미안해. 흑. / 아니에요. 이따가 다시 타러 가면 되죠 - 아. 감동. 니들 정말 착한 아이들이구나. 미안해. 내가 꼬래비 선생님이라 힘이 없어. 흑. 우리 이따가 꼭 같이 타러 가자.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들어와 본 영상은
지독하게도. 재미가. 없었다.
주기철 목사님의 고문을 주제로 했던 연극을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한 것과 터키에서 있었던 순교에 대한 영상. 아. 도무지. 언제까지 이런 진부한 것들로 아이들의 발목을 잡아놔야 하는 걸까. 내가 보기에도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재미없고 촌스러운 것들. 전혀 통하지 않는 소통 방법이다. 전시를 보고 상영을 보는 일에만 함께 참여하고 나머지는 아이들 따로 놀게 하는 일보다는 아이들과 청룡열차를 다섯번쯤 타는 것, 그 긴긴 기다림의 시간동안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열번쯤 웃어주는 일이 훨씬 나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한다. 구두를 신은 발이 부르트도록 아이들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같이 물을 맞고 소리를 질러대면서. 피곤해죽겠다는 애들한테 젊은 청춘이 그러면 안된다고, 나는 늙은 서른살이라 너희들보다 삼십배쯤은 힘들다고 자학도 해가면서. 같이 비를 맞고 마법의 양탄자를 타면서. 재미없는 착각의 집에서 비틀비틀거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누나, 언니, 라고 나를 부르는 아이들에게 니가 드디어 미쳤구나, 라고 이야기하면서, 하지만 사실은 좋아하면서. (앗싸)
맥주를 파는 곳 앞을 지나면서 N은 나 들으라는 듯, 와. 맛있겠다. 라고 말한다. 내가 그럼 안되지 N아. 라도 할 줄 알았나보다. 후훗. 그러게. 라고 말하는 나를 보고 더 세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선생님 맥주는 콜라같지 않아요? 라고 말한다. 웃겨, 어디 맥주를 콜라 따위와 비교해? 훨씬 맛있지. 라는 나의 말에 자못 놀라며 졌다는 표정. 이봐. 나 이래뵈도 알콜중독이라고. ㅋㅋ
행사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동동거리고 아이들을 전도하고, 하는 이 모든 일은 S집사님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것도 늦게, 몸만 얹어서 아이들과 신나게 놀기만 했다. 어찌 보면 숟가락 하나만 얹은 셈이지. 아이러니하게도 저 S집사님의 손길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 이런 행사를 하자고 할 인간이 아니므로, 이 행사도 없었겠지. 어쩌면 이게 우리가 이 청소년부에 함께 존재하는 이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조차 답답하고 재미없는 프로그램 속에 아이들을 넣는 일이, 그리고 옳고 바른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그것들이 강요되는 일이, 나는 퍽 불만스러웠다. 게다가 더욱 난감한 것은 진정성이다. (요즘 나를 제일 난감하게 하는 것이 바로 진정성이다) 내가 아는 하나님은 분명 기뻐하지 않으실 것 같으면서도, 이 정성어린 손길과 마음을 어찌 외면하실까 싶기도 한 거다. 아무튼, 내년에 청년부에 올라오는 S와 J를 데리고 같이 기독교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으나 아. 나 내년에 교회 옮길거지. 흔들리지 말게. 그대도 살아야지. 라고 다시 결론을 낸다.
참. 바이킹을 타고 나오는 길에 다리가 후들후들거리는 스스로를 보고 좀 놀랐다.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갈 때 가슴을 쓸어내리는 나를 반대편에서 본 J가 계속 선생님 실망이에요,를 외쳐댄다. 이해해. 난 서른살이잖아. 응?
2
아무 힘이 없어 그저 놀아줄 수밖에 없던 나는, 대신 각개전투에 강하다. ㅎㅎ 서울랜드에서 돌아오는 지하철역에서 S를 꼬신다. 우리 커피 한 잔 하고 들어가자.
로하스에 앉아 S와 커피를 마신다. S는 고3. 목사님 딸. 그녀를 처음 알았던 건 그녀 나이 12세. 초등학교 5학년 시절.
- 나는 아직도 가끔, 교회에서 친구들과 비욘세 노래에 맞춰 웨이브를 하던 네가 생각나곤 해.
- 아. 선생님. 손발 오그라들어요. 얘기하지 말아주세요.
- 하하. 나는 니가 오십살이 되도 그걸 기억할 것 같아. 사실 나도 너가 그렇게 교회 앞에 나가 춤을 추던 그 똑같은 나이에 교회에서 친구들과 춤을 췄었어.
그래. 교회라고 앞에 찬송 하나 넣고 구색 맞추던 것까지 어쩜 그렇게 똑같았을까. 그 때를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까지도. 그런데 결국 우리는 과거의 당당했던 시간들을 오글거림으로 바꿔가면서 한걸음씩 성큼성큼 가는 거잖아. 나는 그런 오글거리는 역사 하나 없이 반듯하게만 자라온 사람보다는 마음속에 오글거림이 충만한 사람들이 더 좋더라, 그래서 나는 그때의 네 모습을 기억하는 게 참 재밌고, 또 좋아.
라고 말하려다가 어쩐지 또 마음이 오글거리는 것만 같아 그만둔다. 하하.
암튼, 그렇던 S가, 세상에나. 나와 같이,
루시드폴을 좋아하고, 브로콜리 너마저를 좋아하고, 오지은을 좋아하고,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를 보고, 나희덕의 시를 읽고, 김연수의 소설을 읽고, 그것들을 이야기하며 함께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그때랑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훌쩍 자란 누군가를 보는, 누구나 살면서 한 스무번쯤은 느끼게 될 그 보편적인 아련함의 세계로 나 역시 막 진입하고 있었다. 이것은 삼십대의 숙명?
- 선생님. 저는 교직이수를 해서 선생님이 되고 싶은데, 음악은 특히나 비정규직 교사를 쓰는 일이 대세여서 너무 걱정이에요.
- 그러게, 사람들이 참 나쁘지. 사람이 사람을 쓰는 일을 참 쉽고 편하고 즉각적으로, 자기 유리한대로만 하려고 하잖아.
- 선생님, 저희 친구들은 사실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도 걱정이에요. 특히나 예체능은 학비도 너무 비싸고요, 그런데 요즘은 대출 금리도 정말 비싸서 학자금 대출도 정말 어렵거든요.
- 그러게. 너희 정말 안됐어. 공부도 잘해야지, 사회경험도 있어야지, 게다가 돈도 벌어야되지. 지들은 그렇게 편하게 살아놓고. 무슨 슈퍼맨이 되라는 것도 아니고 말야.
아. 누가 이 아이들에게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든건지.
- 선생님, 이명박도 노무현도 저는 둘다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저희 선생님은 자꾸만 이명박과 노무현을 극과 극에 놓고 대조를 하거든요. 물론 이명박이 나쁜 건 알겠지만, 선생님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아이들에게 강요를 하면 선생님에 대한 반감만 더 생겨요.
- 너희가 어떤 세대인데. 그렇게 강요를 하시는지 모르겠다. 그치만 선생님 마음에서 어떤 진정성 같은 건 느껴줬으면 좋겠다. 사실, 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건 이명박이 태어나서 처음이야.
- 선생님. 그런데 다른 교회 목사님들은 자살해도 괜찮다고 얘기하기도 한데요.
- 선생님도 그건 그렇게 생각해.
- 저는 저희 이모가 그렇게 힘들게 돌아가셨는데,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생명을 포기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나요.
- S야. 너는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운이 좋게도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으로 자랄 수 있었잖아. 그래서, 너의 건강한 마음으로는그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자살의 80% 이상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병으로부터 비롯한 거야.
- 성적 떨어졌다고 비관자살 하는 애들은요?
- 그건 사회적 타살이라고 봐야지. 그렇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는 사회를 만들고 있잖아. 자살은 하나님께서 매우 슬퍼하실 일이긴 하지만, 죄라고 교리적으로 규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어. 특히나 죽은 사람 면전에 대고, 자살이 죄라고 말하는 건, 더욱 말이 안되는 거지.
부비작부비작. 작업도 시작해본다. 그러고보니, 그녀의 오빠인 H를 망쳐놓은(?) 것도 이맘때쯤부터 아니었나 싶네. ㅎㅎ. 앞으로 얼마나 S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참 묘한 기분이랄까. 다음엔 또다른 고3, J와 같이 영화라도 한편 보자고 해봐야겠다. 흐흐.
얘들아. 잘 자라다오
라는 바람이 피어오르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