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배를 마치고 집에서 잠깐 쉬다가 극장으로 갔다. 모임까지 시간이 떠서 댄인러브를 보고 가야겠다, 싶어서. ㅎㅎ (그렇다, 어제 취소할까, 했던 모임은 결국 갔던 것이다. ㅋㅋ) 영화를 보고 나와 잠시 구두 굽을 갈기 위해 구두방(?)에 들렀다. 구두를 닦았는지, 수선했는지, 암튼 1만원어치의 서비스를 받으신 아저씨의 차례가 지나 나의 차례가 왔다. 나의 무게에 -_- 짓이겨진 뒷굽을 갈아달라고 부탁하고 잠시 앉아 기다리는데 왠 할아버지가 지난 번에 가져왔던 신발을 가져올테니 오늘 뒷굽을 갈아달라고 한다. 듣자하지, 굽을 자르고, 새로운 높이의 신을 나름 '재창조'하는 듯했는데 가져올테니 당장 해달라는 할아버지께, 우리의 아저씨 장인정신 발휘하신다.
"무자르듯, 배추자르듯, 그렇게 굽 자르는 거 아니에요. 동서남북 다 맞춰야되고, 기울어진 데 없나 확인해보고 정교하게 작업해야 하는 건데, 맡겨놓고 가셔야지, 그렇게 금방 하라고 하시면 안되요"
할아버지는 별 까칠한 반응 다 보겠다며 알겠다고 하시고는 가셨고, 그때까지 나에게 말한마디 걸지 않던 아저씨는 나에게 막 하소연을 하신다. 그렇잖아요, 구두굽이 그렇게 뚝 자른다고 잘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되고......
사실 정성스럽지 않게 툭툭 신을 다루는 아저씨들이 있는데, 신을 맡겨놓고 옆에서 보고있으면 가끔 화가 난다. 신고치러 갔다가 망가뜨려서 오는 기분이랄까. 특히 회사 앞 구두방 아저씨는 밖에 노점도 함께 펴놓고 계셔서 항상 마음이 급하다. 굽을 갈면 살짝이라도 닦아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절대 닦아주지도 않는다. 게다가 한번은 부츠 바닥이 떨어지려고 해서 붙여달라고 가져갔는데, 더이상은 안붙는다며 성의없이 본드칠을 하고는 거의 예전과 다름없는 상태의 신발을 줘서 아쥬 어이가 없었다.
작은 일일지언정, 정성스레 동서남북을 맞추고, 기울어진 데 없나 꼼꼼하게 확인해서 주는 아저씨가, 퉁명스럽긴 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갔다. 역시 아저씨는 내 구두 앞쪽 먼지 쌓인 부분을 놓치지 않고 살짝 닦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 역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나오는 것을 잊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2
오늘 모임은 매우 심히 가기 잘했다. (이봐이봐 또 이럴 줄 알았다) 지난번 외박이 돼버린 엠티를 했던 그 모임이었다. 실은 교회 내에서는 누구와도 나누기 힘들었던 고민들이고, (물론 나는 M이나 C와 나누고 있긴 하지만, 우리는 수준이 비슷하기에, 논의의 심도가 거기서 거기긴 하다 ㅋㅋ) 졸업 이후에는 계속 생각들이 머물러 있는 상태, 아니 오히려 다시 돌아가는 것 같은 상태였는데, 만날 때마다 신선한 자극이 된다. 그리고, 실은 항상 스스로가 교회 내에서는 소수인 것 같아, 내가 또 잘못 생각하는 거 아닌가, 하는 고민을 늘 해왔는데, 이들을 만나면 어쩐지 다수가 된 것만 같아 의기양양하니 위로가 된다. ㅋㅋ (소수끼리 모여놓고는 말이다 ㅎㅎㅎ 그런데 내가 속한 모임들이 실은 좀 다 이런 편이어서, 나는 자꾸만 이런 착각들을 하게 된다.)
덕분에 8월에 내가 발제하려고 한 책 (무례한 기독교) 는 취소를 해야할 듯 하다. 남들이 보기엔 좀 진보적이다 싶을 수 있는 책이고, 내가 보기엔 참 건강한 책인 이 책은, 이미 우리 모임 안에서는 쟁점을 이끌어낼 수는 없을 듯 하다. 뭐뭐, 맞는 말이잖아, 이러다 끝날 것 같다고 해야하나. 흐음, 덕분에 쉽게 가려고 했던 발제를 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은데, 뭘 해야하나... 역시 알라딘의 도움을 좀 받아봐야겠다. 흐흐.
3
금요일엔 노래방을 갔다. 실은 내가 좀 재수없는 영혼일 때가 있어서, 노래방에서 흔들고, 춤추며, 소위 '분위기를 띄워' 그 뜬 기분을 자신의 기분으로 치환해 마음의 위로를 얻는 것에 대해 굉장히 경시해 왔었다. 그건 진정한 위로가 아니잖아. 라며 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데, 가끔은 지친 동료를 위해, 가끔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안따라주는 몸 흔들어가며, 허벅지 멍들도록 탬버린 쳐주며 그렇게 함께 노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금요일에는 D대리님과 팀장님과 셋이 노래방에 가서, 탬버린좀 쳤다. 소리좀 질렀다. 그리고 좀 많이 웃었다. 물론 탬버린은 30분 정도 치니, 절로 허벅지 보호본능이 일어, 허벅지 없이도 신나게 흔드는 법을 익히게 되더군. 그간 정말 많이 지쳤다며, 정말 쉬고 싶다던 D대리님의 스트레스가 좀 풀린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말로만 듣던 D대리의 '사랑의 이름표' 엄지춤 스페셜과 팀장님의 '트롯트 메들리'를 구경할 수 있었다. 나는 신나는 노래를 부를 줄 아는 게 별로 없어, 겨우겨우 생각해낸 신나는 트로트는 작년에 거침없이 하이킥에 나왔던 '사랑은 개나소나' 였다는 거. ㅋㅋ 그리고 고등학교 때 열씸히 부르던 '허리케인 박' 정도? 뽀롱뽀롱뽀로로 주제곡과 토마토송이 없어서 얼마나 슬프던지. ㅜㅜ 다행히 분위기 띄우기의 압박이 계속되는 건 아니었기에 좋아하는 발라드 곡도 몇개 불렀다.
지난 금요일의 노래방도 재밌었지만, 실은 내가 하고 싶은 노래방 모임은 따로 있다. 이건 누구랑이든, 언제든, 하고야 말건데. ㅎㅎ (실은 작년에 계획했다가 무산됐던) 가이드라인은 아래와 같다.
1. 분위기가 방방 떠 있어야 한다는 압박은 일단 버립니다.
2. 가급적이면 다른 사람이 노래할 때는 듣습니다.
3. 장르 불문하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노래를 부릅니다.
4. 잘할 수 있는 것과 상관 없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사의 노래를 소개합니다. 못해도 좋습니다. 그 노래를 왜 좋아하는지, 혹 어떤 사연이 있는지 얘기해 주세요. (노래방은 실은 가사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5.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 외, 웃겨줄 수 있는 노래라던가, 멋드러진 춤을 곁들일 수 있는 노래라던가, 이런 게 있다면 그런 것들을 소개해 보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는 노래방에서도 '당신을 알고 싶은' 인간인가보다. '노래'로 대변되는 음악을 통해 소개되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노래방 모임. 뽐내기보다는 들어주기에, 함께 나누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 생각만 해도 재밌을 것 같다. ㅎㅎ 그런데, 이런 것들을 같이 재미있어해줄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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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은 화요일쯤 활짝 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