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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가 대장암 3기로 투병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매우 당혹스러웠다. 일단은 우리 나이 자체가 투병, 이런 것과 어울리지 않는 나이인데, 어쩌다가. 참 이런 이야기들은 늘 남일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한 번 더 당혹스러웠던 건, H에게 문병을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의 문제였다. 실은 마음은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난 H와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한마디 대화가 어색할 정도로 인사만 하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내가 아파 자리에 누웠을 때, H를 떠올릴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의 등장이 좀 오버스럽거나 당혹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때의 삶이, 그런 것들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렇게 H를 찾아가 얼굴을 보며 위로를 전하고 싶을 만큼 윤택하지도 못했었다. 물론 지금도 퍽퍽한 건 여전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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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가 내 미니홈피로 찾아와 방명록에 글을 남겼을 때, 나는 더욱 당혹스러웠다. H의 투병소식을 들었다며, 우리 학번이 모여 H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글이었다. 일단 I의 이름 자체를 굉장히 오랜만에 마주친 데다가, 학교에 다닐 때도 같은 동아리이긴 했지만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다만 I가 제대 후 복학해서 따르던 선생님을 또 내가 따랐던 관계로 선생님 미니홈피에서 가끔 이름이나 보던 사이. 게다가 내가 우리 학부, 우리 학번 아이들의 중심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새삼 그들이 다시 그리워진 것도 아니었기에 I의 글에 그냥 의례적으로, 언제한번 밥먹자,라고 말하듯 그러자, 라고 답을 하긴 했지만 나는 실은 별로 그럴 의향이 많지 않았다. I가 열성적으로 앞장서서 뭔가를 모색한다면 모를까. 그래서 그 글이 가끔 생각날 때마다 나는 내가 그 때 제대로 호응하지 못했던 게 괜한 부채감으로 다가오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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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H를 우연히 만난 이후, H는 내게 연락을 해왔고, 함께 책 읽는 모임을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H는 이 모임을 제법 열심히 알리고 다니더니 12명의 멤버를 모았다. 대부분이 같은 학부 출신 선후배였고, 나에게는 다들 H와 I의 수준으로 어설프게 친하거나, 통성명만 한 정도의 사이였다. 뭐 전공했냐고 물어보는 사람에게 나는 늘 신방과,라고 얼버무려 답하지만 엄밀히 내 전공은 매스컴과 기독교 문화 복수 전공이다. (그리고 수준은 딱 학부 수준을 절대 못넘어선다) 어떻게 어떻게 하다보니 기독교를 시작으로 한 다양한 주제들의 책을 함께 읽게 됐는데, 난 시민사회에서의 예의와 선교에 대한 얘기들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내공은 없이 삐딱한 마음만 가득해서 문제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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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임에는 I도 있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I의 말을 흘리듯 넘기던 그 때가 떠올랐다. 해주는 것도 없고, 해줄 것도 없을 예정이면서도, 난 웬지 그 때의 부채감이 조금은 해소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H에게도, I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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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는 나와 가장 절친했던 친구인 HH가 별로 안좋아했던 친구다. 순간 그 친구가 무심결에 흘려보냈던, 인간적으로 좀 부족했던 모습들을 HH가 포착하고 나에게 말해줬던 이후로 나도 H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었다. 그 나이땐 그렇다. 우우 몰려다니고, 준거집단의 판단이 나의 판단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I는 당시 영상을 한다고 카메라를 좀 들고 다녔었는데 당시에 카메라 들고다니던 애들도 내가 또 안좋아했다. 이유도 없다. 뭐 굳이 찾으라면야 이유가 없었겠냐마는 그야말로 쓰잘데기 없는, 비합리적인 이유들이다.
그리고 나 역시, 가끔 스무 살, 스물 한살 시절의 내 철없음을 떠올리면 아찔하고 부끄럽고 지우고 싶고 한 것들이 많다. 나는 그 때의 나이지만, 그 때의 내가 아니기도 하다. 그 뒤로 많은 세월이 흘렀고, 나는 그 세월들을 다행히 아주 헛되게 보내지만은 않은 듯 하고 스스로 그 시간들을 존중해 주는 편이다. (잘보냈다고 할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내가 내 앞의 시간들을 이렇게 존중하면서, 다른 사람 앞의 시간들에 대해서는 그저 잊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분명히 변했으면서, 옛날 그마음 그대로, 저자식 인간이 덜됐다던가, 폼만 잡고 다닌다던가, 비열하다던가, 라는 5년도 더 된 기준을 상대에게 들이대는 나 자신을 종종 발견한다. 그 시간은 분명 비열했던 그자식에게도, 폼만 잡고 다니던 그 자식에게도, 인간이 덜 된 그 자식에게도 공평하게 흘렀으니까. 비열한 자식은 자신의 비열함을 깨닫기에, 폼만 잡고 다니던 자식은 폼에 걸맞는 내공을 갖추기에, 인간이 덜 된 그 자식은 인간의 형상에 좀 더 가까워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그 사람들의 그만큼의 세월을 모르고서는 절대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H는 거의 5년만, I는 거의 8년만에 만나서 대화를 한 셈인데, 그동안 이녀석들이 참 많이 의젓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 참 감회가 새롭다. H는 투병생활을 하면서 많이 깊어졌고, I에 대해서는 내가 역시 잘 몰랐기도 했지만, 세월만큼의 내공과 여유가 더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참 신선한 경험이다. I는 나를 보더니, 하나도 안변했는데 예뻐졌다는, 얼핏 들으면 칭찬같지만 곱씹어 생각해보면 말이 안되는 말을 했다. 하하하.
그런데, 나는 얘들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으면서도 예뻐졌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 기본 심성이 쉽게 변하는 건 아니지, 얘들도 그대로이면서, 참 많이 다듬어진 것 같다. I도 그런 의미에서 내게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철없어 보이던 너희들이 의젓해 보이는 게 나에게는 가장 신기한 경험이라는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앞으로 함께 보낼 이십대의 마지막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꽤 괜찮은 친구들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다. H와 I 뿐만 아니라, 학교 다닐 때부터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기고 다니셨던 S선배, 친해질 듯 친해질듯 친해지지 않던 Y와 N언니, 친해지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서 멀리서만 바라보던 C, 주변 사람들끼리만 다 친하지만 정작 만나면 뻘쭘하던 P, 처음만난 생글생글 유쾌발랄 05학번 W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