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족

 

 

 

                                                     황동규

 

 

 

 

 

 

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

아주 적적한 곳

늦겨울 텅 빈 강원도 골짜기도 좋지만,

알맞게 사람 냄새 풍겨 조금 덜 슴슴한

부석사 뒤편 오전약수 골짜기

벌써 초여름, 산들이 날이면 날마다 더 푸른 옷 갈아 입을 때

흔들어도 안터지는 휴대폰

주머니에 쑤셔 넣고 걷다 보면

면허증 신분증 카드 수첩 명함 휴대폰

그리고 잊어버린 교통범칙금 고지서까지

지겹게 지니고 다닌다는 생각!


시냇가에 앚아 구두와 양말 벗고 바지를 걷는다

팔과 종아리에 이틀내 모기들이 수놓은

생물과 생물이 느닷없이 만나 새긴

화끈한 문신들!

인간의 손을 쳐서

채 완성 못 본 문신도

그대로 새겨 있다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고 푼 것이 어디 있는가?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2-08-04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이 시를 보니 발 한 번 시원한 개울물에 담가본 것처럼 좀 시원해졌어요. 요즘 서울 거리를 지나는 건 '걷는다'가 아니라 '삶긴다'에요. ㅎㅎ

저녁 먹으러 나갔다가 뜨끈한 거 먹고는 후회했어요. 조금의 뜨거움에도 참을성이 없어지나봐요. 그래도 이러다가 어느 날 문득 더위가 한 걸음 물러서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려나요?

프레이야 2012-08-06 07:52   좋아요 0 | URL
만치님, 무더위에 뜨끈한 거 잘 드셨네요.
그렇게 땀 흘리고 나면 오히려 시원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더운 건 더운 거에요. 그죠? 한낮에 걷는 건 어딜가나 삶기는 거일걸요.ㅎㅎ
이러다 금세 더위가 물러나면 언제 그랬냐싶지요.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12-08-05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도 많이 덥죠?
신랑회사 동료중 몇몇이 서울 있다가 부산에 오니 너무 시원해서 좋다라는 소릴 한다네요?@.@
부산은 정말로 시원한가요?ㅋ
여긴 한낮만 좀 덥고,그나마 좀 시원한 편인 것같기도 하고, 아닌 것같기도 하구요.
건강 조심하세요.^^

프레이야 2012-08-06 07:55   좋아요 0 | URL
나무님, 어딜 가나 더워요.ㅎㅎ
부산은 바다가 가까이 있어서 바다 가까이 가면 아무래도 바람이 좀 다르긴 해요.^^
해가 질 무렵이면 좀 살 것 같아요.
이쁜 아이들이랑 시원하게 건강히 지내세요.~~

2012-08-06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 읽고 시원해졌어요..
아, 부산. 부산의 산과 바다와 집들이 함께 있는 풍경 사랑해요!
ㅎㅎㅎ

프레이야 2012-08-06 22:33   좋아요 0 | URL
섬님, 좀 시원해지셨어요? ㅎㅎ
마지막 행, 기막히지요.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고 푼 것이 어디 있는가라니요. ^^

꿈꾸는섬 2012-08-06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탁족하고 싶어요~

프레이야 2012-08-06 23:02   좋아요 0 | URL
히히~~ 꿈섬님 탁족이란 말이 새삼스러워요.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한 곳에 자리를 잡거나 한가지 일에 의지한다는 뜻과 잠시 머무른다는 뜻이 더 있더라구요.
화끈한 문신을 새긴 모기들은 그런 식으로 탁족하는 걸까요? 엉뚱한 생각이..ㅎㅎ
발을 담그고 씻는 행위가 그런 의미까지 갖는 걸까요.
그럼 서로 탁족을 해주는 행위는 어떤 마음일까싶어요.
계곡물에 발 담그면 시원할 것 같아요.^^

세실 2012-08-09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모닝 프레이야님^*^
무더운 여름 잘 이겨내고 계시는거죠?
부석사 뒤편 오전약수 골짜기 가고 싶네요. 왜 몰랐을까? ㅎ
도서관은 에어컨 들어와서 시원하네요.

프레이야 2012-08-09 21:37   좋아요 0 | URL
세실님, 무더위도 한풀 꺾였네요. ㅎㅎ
잘지내고 계시죠? ♥ 도서관이 젤 시원한것같아요.
부석사는 가봤지만 저도 오전약수 골짜기는 몰랐어요. ^^

2012-08-10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10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08-10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과감하게, 핸드폰을 못 받을 상황에서는 꺼버려요.
그래도 연락할 사람은 문자를 넣겠지, 그런 정성도 없는 사람과 굳이 통화해야 할까? 머 이런 생각이요...

가만보면 저는 정말 요즘 배짱 편하게 변하고 있는거 같아요.

언니, 오늘 드디어 시원한 바람이 불어요. 오늘 하루 여유가 생겨서 너무 좋아요.
내일부터........... 다시 막막한 일정 시작이거든요. ㅋㅋ

프레이야 2012-08-10 21:28   좋아요 0 | URL
달여우님, 저도 받지 못할 상황이면 넘겨 버리곤 해요.
나중 다시 오거나 제가 다시 하면 되지요.ㅎㅎ
마음 편한 게 최고에요!!!
내일부터 다시 바쁜 거에요? 너무 바쁘진 말고 적당히요~~~ 달여우 귀여워요.^^
 
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8월의 둘째날,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도 조금만 견디면 지나간다.

어제부터 이곳엔 태풍의 기운이 약간은 있어 그 덕을 보는 셈이다. 바람이 불어드니 조금은 낫다.

그래도 체질이 바뀌는 건지 온몸의 피부로 열이 뻗치고 올라와 그 열에 내가 녹을 지경이다. 기운없어 ^^

이런 날 함께 무더위를 이겨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건 어떨까.

이런 에세이라면 무더위 날리는 데도 좋을 것 같다!!!

 

 

1. 안철수의 생각

 

우리 시대, 희망과 변혁과 상식의 키워드가 되고있는 안철수의 생각을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으나 충분히 기대하는 수준 이상일 거라 생각된다.

특히, 3부 컴퓨터 의사가 보는 아픈 세상,에 담긴 생각이 궁금하다.

 

3부 목차

기업에도 독이 되는 고용 없는 성장
- 정리해고와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중산층이 쓰러진 승자 독식 사회의 풍경
- 900조 원을 넘은 가계부채
교육 개혁을 넘어 사회 개혁을
- 입시 경쟁 사교육과 학교폭력
이제는 신재생에너지 시대로
- 일본 원전 사태에서 배우는 교훈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는 무조건 FTA 하라고?
- 식량 안보 시대에 우리 농업이 살 길
소통 부재와 개발만능주의 정부가 빚은 참극
- 강정마을과 용산 참사
국가가 시민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코미디
- 언론사 파업 사태와 표현의 자유
<완득이>, 우리에게 다가온 현실
- 여성, 장애인, 그리고 다문화사회


 

 

 

2. 의자놀이 / 공지영 / 휴머니스트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놓지 않고 꾸준히 문제제기와 고발을 해온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2009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표지그림도 의미심장하다.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이 잔혹한 의자놀이와 연이은 죽음에 대해 작가 공지영은 “쌍용자동차는 또 다른 도가니”라고 말한다. 고통과 죽음이 전염병처럼 번질 것 같아 이 싸움에 뛰어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죽음의 그림자가 이토록 깊게 드리운 것일까.

77일간의 뜨거운 파업의 순간부터 22번째 죽음까지 작가적 양심으로 써내려간 공지영의 쌍용자동차 이야기 《의자놀이》. “국민이 용산에 대해 국가에 관용을 베풀지 않았더라면 쌍용자동차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이 작가에게 무언가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었듯이, 오늘 우리가 쌍용자동차 사태를 묵과한다면 또 뒤늦은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의 의자를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 휴머니스트 출판사 제공 책소개, 중)

 

 

 

 

3. 엄마와 연애할 때 / 임경선 / 마음산책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고 굴레로 덧씌워진 '모성'이라는 이름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아들에게 "네가 태어나기 전이 난 훨씬 행복했어"라고 똑똑히 말하고 아들은 본능적으로

획득한 분노와 상실감에 엄마를 괴롭힌다. 평생을 안고 가야할 이들 죄책감과 애증의 굴레가

너무나 가슴 아프면서도 섬뜩했던 영화다.

 

<엄마와 연애할 때>는 아들이 아니라,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지만 '엄마가 된다는 것', '엄마로서 산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딸로 태어난다는 것 딸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는 늙어가고 딸도 늙어간다. 함께 나이들어가는 두 여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목차만 봐도 끌린다. 나도 엄마의 딸이고 딸의 엄마이니 더욱.

 

"엄마들은 때때로 애를 내동댕이치고 싶지만 상상으로만 그럴 뿐이고 그런 생각을 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는데 나는 실제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다. 눈가에 여전히 눈물이 고인 채로 잠든 구슬픈 모습에 나는 감정이 북받쳐 ‘딸아 미안해’ 이러면서 참회의 눈물이라도 흘릴 줄 알았는데, 울음은커녕 열 받은 가슴은 아직 진정될 기미조차 안 보였다. 그러다가 이내 나도 까무룩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침에 우리는 거의 동시에 눈을 떴던 것 같다. 윤서는 조금 부은 눈으로 첫날밤을 같이 보낸 애인을 쳐다보듯,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제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96쪽, 「괴물」에서 - 알라딘 제공)

 

이 인용문에서처럼 나도 첫아이를 침대에 내동댕이 치고 머리를 후려갈기고 발로 걷어찬 적이 있다.

고백이다. 하루종일 울어대는 아이를 밤잠을 못자고 업고 안고 재우고 먹이고 씻기고 배변 뒷처리에 아프면 밤을 새고

병원에 업고 뛰어다니고, 아무튼 달처럼 방긋거리기만 하지 않는 아이는 매사 서툴고 엄마가 될 준비도 되지 않은,

이기적인 애송이 엄마에게 괴물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세상에 덩그러니

나와 외로움과 두려움에 몸을 떨며 기댈 곳을 찾는 아이에게 그런 엄마 또한 괴물로 보이지 않을까.

둘째를 기를 땐 좀더 수월하고 아이에게도 상대적으로 관대해지는 이유는 '모성'에 익숙해졌거나 길들여졌기 때문일까. 

케빈의 엄마가 케빈을 내동댕이 쳐서 팔을 부러뜨렸을 때를 회상하며 케빈은 "엄마의 본성이 잘 드러난 사건"이었다고

잔인한 눈빛으로 일침을 놓는다. 아이와 엄마는 끊임없이 기싸움을 하고 서로 익숙해져가는데

어린 케빈의 말처럼 "익숙한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그러나 '엄마는 한순간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단다.'

엄마와 자식이 서로 화해하고 죄책감과의 이별을 하며 행복과 평화를 찾아가는 과정을 이 책이 선사할 것 같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2-08-02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와 연애할 때, 나도 이거 보고 싶어요.
엄마와 딸의 관계에 많은 부분 공감하지 않을까 싶어서...
의자놀이는 꼭 봐야 할 책일 거 같고요.

프레이야 2012-08-02 23:00   좋아요 0 | URL
호호~ 그죠? 언니. 저도 이 책이 선정되면 좋겠어요.
셋 다는 욕심일거구요. 날이 너무 더워서 축 처져 있어요.
언니, 무더위에 건강히 지내고 계세요.^^

비로그인 2012-08-02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엄마도 저를 이불위에 던져버리신 적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랬더니 아기가 지 죽을 것처럼 마구 울어대더라고..
그래서 다시 토닥 토닥 안아서 달래주었다고 하시더라구요..

음... 두 딸과의 연애..를 하시는 프레이야님.. 그래도 그녀들을 사랑하실 수 밖에 없으실.. 엄마이신게 ..
부러워요.. ~~아직 딸이 없는 저로서는 .. ㅠㅠ

프레이야 2012-08-04 09:23   좋아요 0 | URL
현대인들님도 엄마를 못살게 군 아기였군요.^^
저도 엄마에게 까탈스레 군 아기였고 제 딸도 저에게 그랬어요.ㅎㅎ
저의 엄마도 저를 내동이친 적이 있었다고 해요.
그래도 딸은 영원한 친구라는데요^^


다락방 2012-08-02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서는요 프레이야님, 엄마가 케빈에게 '나는 한순간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단다' 라고 결코 말해주질 않아요. 왜냐하면 정말 그녀는 그렇다고 생각하질 않았으니까요. 프레이야님의 글, 마지막 부분을 읽는데 다시 그 책이 생각나서 마음이 무거워져요.

[안철수의 생각]은 다 읽고 난 후의 프레이야님 생각이 궁금해지네요. 저는 입시경쟁과 학교폭력 부분이 확 와닿질 않았거든요.

프레이야 2012-08-04 09:2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영화에서 그 대사는 나오지 않고 삽입음악의 가사로 자막이 흘러요.
반복해서요. 케빈의 엄마도 자신이 혼동스러운 그런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거꾸로 원작을 꼭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안철수의생각,은 너무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암튼 읽어봐야할 것 같아요.
지적하신 그 부분이 어떤지 더 궁금하네요.

2012-08-03 0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04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03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04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8-03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권의 책의 제목이 제가 다 알고 있는 책이네요. 그 만큼 홍보가 잘 된 책인 듯... 그 내용은 짐작만 합니다.
아이를 내동댕이치고 싶을 때 당연히 있죠. 첫애는 순해서 수월하게 키웠는데,
둘째는 엄청 울어 애먹었어요. 밤잠을 자다가 꼭 한 번은 깨서 울어서 아예 새벽 두세 시에
아이를 엎고 거실을 몇 바퀴 돌다가 다시 재우는 게 버릇처럼 되어 버렸죠. 1년 넘게 그런 것 같아요.
다시 하라면 못해요.ㅋㅋ
만약 둘째도 순했다면 저는 한 명 더 낳았을지 몰라요.ㅋㅋ 그때 육아에 질려서 그만 낳았다는...ㅋㅋ
자식들은 엄마를 훈련시키는 것 같아요. 어디까지 참고 견딜 수 있나, 하고...^^

프레이야 2012-08-04 09:33   좋아요 0 | URL
페크님 아기들은 저랑 반대네요. 진짜 고생 많으셨군요.
전 첫애가 더 힘들었어요. 둘째도 만 삼년까지는 밤잠을 안 자서 밤마다 제가 업고 꼴딱 밤을
새웠어요. 둘째는 그것 빼고 낮에는 수월했군요. 첫애는 하루종일 힘들었어요. 아무래도
첫애는 엄마로서도 초보니까 더 그랬지싶어요.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은 아이들 ㅎㅎ

moonnight 2012-08-03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철수씨책은 읽지 않을거같고, 공지영 작가의 책은 예전에안녕을 고했어요-_-; 그치만 '엄마와 연애할 때'는 꼭 읽고싶네요. 케빈에 대하여는 아마도 어둠의 경로로 봐야할 듯 한데;; 관심 많이 가는 영화입니다.

프레이야 2012-08-04 09:34   좋아요 0 | URL
달밤님, 공지영의 책, 저는 예전에는 별로였는데 도가니 이후 지리산행복학교도 좋던걸요.
의자놀이는 관심가는 책이에요.^^
케빈에 대하여,는 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어머니는 어떠신가요?? 착한 딸이에요 달밤님은.

꿈꾸는섬 2012-08-04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목할만한 신간에세이들이네요. 세 권 모두 궁금해요.^^

프레이야 2012-08-04 09:35   좋아요 0 | URL
꿈섬님, 그죠그죠? ^^
읽고싶은 책들이 많은데 여름이라 그런지 부산스러워요.
시원한 데서 조용히 책이나 읽고 있으면 좋겠어요.

2012-08-06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진짜 세 권 겹치네요. 프야님. 뭐가 선정될까~~요~. (두구두구두구)

프레이야 2012-08-06 22:39   좋아요 0 | URL
두구두구두구~~~~~~
뭐가 되도 좋지요.^^ 행복의 충격,도 좋은데요.^^

라로 2012-08-07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철수의 생각도 읽어보고 싶지만 저는 그의 부인인 김미경 씨의 생각이 더 궁금해요,^^;;
전 정말 청개구리에요, 닉네임을 청개구리로 해야 했는데 말이에요, ㅋㅋ

프레이야 2012-08-07 07:53   좋아요 0 | URL
히히 청개구리님ㅋ
여자가 궁금하다는 폐이퍼 기억나요.
나비님은 남자옆의 여자가 더 궁금하시다는ᆢㅎㅎ
안,김,그리고 딸 세식구가 미국어서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공부시했다는, 대목 기억나요.
덥긴한데 오늘이 벌써 말복에 입추인가봐요.
매미소리 울울창창한데ᆢ무더위랑 잘지내고있다가
만나요.
 

 

2012년 3월28일 시작, 총 28시간 소요 녹음완성.

2012년 7월24일 1차 편집 시작.

 

 

녹음 속도가 빨라 편집할 도서가 많이 밀려있다.

지난 주 김훈 장편소설 <흑산>(총 19시간) 1차 편집을 마치고 오늘 <화차> 편집에 들어갔다.

 

미야베 미유키가 장치해놓은 복선들이 다시 눈에 띄었다. 혼마의 시선으로 표현된,

사람을 묘사하는 섬세한 눈과 사람을 꿰뚫는 예리한 눈은 동시에 작가의 것이리라.

소비자금융규제법과 개인파산에 대한 것까지 오늘 편집한 부분에서 나왔는데,

작가의 치밀한 자료조사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이 책의 주제로 통하는 '거울'에 대한 복선이 아주 초반부터 눈에 띈다.

 

다리 부상으로 휴직을 하고 있는 형사 혼마는 불현듯 옛날 일이 떠오른다.

상습절도범 소녀에 대한 기억인데, 솜씨가 좋았던 그 소녀는 훔친 고급 브랜드의 옷과 시계나

액세서리까지 한번도 밖에 나갈 때 착용하질 않았다.

 

대신 아무도 못 보게 방문을 걸어 잠그고 커다란 전신거울 앞에서 이것저것 번갈아 입어보았다.

오로지 자기 방의 거울 앞에서만. 그러면 어울리지 않는다는 핀잔을 들을 염려도 없으니까.

......

아무도 없는 곳에서만 자기주장을 한다. 찔리는 구석이 있으면 다 그렇게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 소녀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 벌써 이십 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이다. 어쩌면 당시의 자기 나이 또래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입을 굳게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는 그녀에게 설교를 늘어놓으려 애쓰면서 변변히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던 풋내기 형사의 얼굴 따윈 잊은 지 오래겠지만. (p9)

 

 

우리는 착각 속에 산다. 행복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정작 무언가를 손에 쥐면 행복할 것 같지만 절대 오래가지 않는다. 모든 건 순간이다. 그 느낌마저 순간의 착각이다.

가즈오의 약혼자, 한순간에 사라진 여인 세키네 쇼코는 "나는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다"고 말한다.

어떤 게 행복일까? 크고 아름다운 집이 있으면 행복해질 것 같았던 쇼코, 우리의 다른 이름이 아니고 무얼까.

 

이 세상에는 다리를 원하지만 허물벗기에 지쳐버렸거나 게으름뱅이거나 벗는 방법을 모르는 뱀이 수없이 많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뱀들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을 파는 뱀도 있다는 말씀. 그리고 뱀들은 빚을 내서라도

그 거울을 사고 싶어하는 거예요. (p347)

 

거울은 당연히 있는 그대로 비춰줄 것 같지만 거울마다 약간은 다른 느낌을 준다. 확실히 어떤 거울은 실제보다

이쁘게 보이게 한다. 옷가게 거울 앞에 서면 모델처럼 날씬한 내가 서있어 기쁘고 놀라운 경험이 다들 있을 거다.

그러면 당연히 그 거울을 사고 싶지만 대신 옷을 사고 만다. 집에 와서 입어보면 실망하겠지만.

우리는 뱀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 하나를 사기 위해, 행복이라는 이름의 착각을 사기 위해

결국 행복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끔찍하고도 아름다운 비유가 <화차>를 더 무게 있게 한다. 

이 책 편집하며 한 번 더 읽게될 거라 좋다. ^^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2-07-24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차는 영화만 보고 책은 못 읽었어요.
이 페이퍼만 읽어도 좋으네요~~~

프레이야 2012-07-25 23:57   좋아요 0 | URL
오기언니, 영화도 좋았는데 책으로 읽어보면 더 좋을 거에요^^

맥거핀 2012-07-25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인용하신 일부분만 보고도 미야베 미유키가 상당히 날카로운 관찰자라는 걸 알겠습니다. 아마 소설에서는 혼마 형사와 관련하여서도 재미있는 부분이 꽤 있는 것 같군요. 소설을 읽고 싶도록 만드는 글이네요.

프레이야 2012-07-26 00:00   좋아요 0 | URL
저는 미미여사의 다른 작품은 그다지 당기지 않아 피했는데 다른 것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에요. 이야기는 혼마의 힘으로 시종 끌고가는데, 혼마를 비롯해 다른 등장인물도
그녀(작품 속 쇼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해요. 그녀 안에서 자신들을 본 거겠지요.
원작의 엔딩이 전 영화보도 더 좋았어요.
그치만 변감독의 영화도 좋았어요.^^

라로 2012-07-25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여사는 돈으로 생기는 인간의 탐욕과 퇴락을 아주 잘 표현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책을 읽을 자신은 없어요,,,전 그녀의 [이유]읽고 무서워서 잠을 설쳤;;;
하지만 영화는 볼만 하더군요..오히려 영상이 어쩔 땐 더 쉬워요, 제겐.ㅎㅎㅎ

프레이야 2012-07-26 00:00   좋아요 0 | URL
ㅎㅎㅎ 무서운 거, 잔인한 건 잘 못보는 뤼야님.
'화차'는 그런 장면은 없어요. 영화도 좋았어요.^^

blanca 2012-07-25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녹음하시는 중이군요. 저는 미야베 미유키가 이 소설이 처음이었는데 정말 기대 이상이어서 너무 탐닉하며 읽었던 기억이 나요. 가벼운 책인 줄 알았는데 읽으며 소름이 돋더라고요. 자본주의의 한켠에서 몰락해 가는 사람의 모습을 어떻게나 절절하게 그렸던지... 나중엔 슬프더라고요. 프레이야님이 편집 작업도 하시는군요!

프레이야 2012-07-26 07:51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녹음은 마쳤고 1차편집 중이에요.^^
저도 미미여사 소설은 이게 처음이에요. 님의 멋진 리뷰도 기억나구요.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어요. 오늘 편집분 중, 미조구치 변호사의 말,
개인파산을 한 쇼코에 대해 "그건 꼭 그녀만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현대사회의 신용대출 파산은 어떻게 보면 공해 같은 겁니다." 기억나시죠? ^^
눈의 무서움, 이런 짧은 단어 두 개로도 비유되고요. 겉은 멀쩡하고 화려하고 순백해도
덮여있는 슬프고 비루한 현실과 욕망이란 무서워요. 자본주의 거탑 아래 서서히 몰락해 가는...
네, 절절하면서도 참 담담하게 그리고 있구나, 생각 들었어요.

라로 2012-07-26 17:12   좋아요 0 | URL
저 치매 맞나봐요,,ㅠㅠ
저 위의 댓글 달면서 블랑카님이 한, '자본주의'니'몰락'이니 뭐 그런 단어가 생각이 안 나는거에야요,,흑흑
그래서 돈, 퇴락,,,이런걸로 썼다는,,,도대체 돈, 퇴락,,수준차이 나게 이게 뭐랍니까???ㅠㅠ
인간의 탐욕만 제대로 기억이 나더라는,,ㅠㅠ
명사를 잊어버리는게 먼저라더니,,ㅎㅎㅎㅎㅎㅎㅎ맞는 말이에요.훌쩍

프레이야 2012-07-26 19:15   좋아요 0 | URL
뤼야님, 저도 그래요.ㅠ 단어가 생각 안 나고 뭐든 깜박하고 그래요.ㅋㅋ
근데 자본이나 돈이나, 퇴락이나 몰락이나 그게 그거죠.ㅎㅎ

2012-07-28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훗. 거울을 사야 하는 거였군요. 옷이 아니라.
여튼 굉장히 섬뜩하고도 와닿는 비유입니다. <화차>는 역시 좋은 책이군요..
그나저나 녹음하면서 좋은 책들을 천천히 읽을 수 있는 프레이야님의 독서가 부럽습니다.^^

프레이야 2012-07-28 12:54   좋아요 0 | URL
섬님, 화차, 역시 영화도 좋지만 원작이 좋았어요^^
거울아,거울아, 하던 백설공주랑 계모 생각도 나네요.ㅎㅎ
사람관계도 그런 것 같아요. 내 보기에 좋은 거울을 만드는 일,
그게 행복한 관계를 만드는 일 같구요. 그러고 보니 거울이 다시 보입니다^^

2012-07-31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31 0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년 7월 18일 녹음시작, 7월 24일 마침. 총 10시간 남짓 소요.

 

오늘 이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의 말에서 '희망'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절망스러운 것인지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의 절망은 희망의 이마를 살짝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장영희 교수는 에필로그에서 자신이 "희망을 너무 크게 말했나"라고 반문했다.

희망을 가지라고 조언도 하지만 결국 그 희망 때문에 열정을 다해 살아낸 생이지만

누구나가 그렇듯, 조금 더 생명을 연장하긴 했겠지만 그녀는 이 세상에 안녕을 고하고

아끼는 사람들 곁을 떠났다. 몇 차례의 암 투병과 힘든 치료 과정을 다 겪고.

 

희망을 노래하는 게 어쩌면 동화 같은 이야기일지라도 장영희의 이런 인터뷰는 신선하다.

이 책의 에필로그 도입 부분이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질문자가 내게 빼놓지 않고 하는 질문이 있다. 신체장애, 암 투병 등을 극복하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이다. 그럴 때마다 난 참 난감하다. 그래서 그냥 본능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의지와 노력으로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니라 내 안에서 절로 생기는 내공의 힘, 세상에서 제일 멋진 축복이라고, 난 그렇게 희망을 아주 크게

떠들었다. 여러분이여 희망을 가져라,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p231)

 

 

 

엄마가 직장암 3기 말에 대수술을 한 지 만 5년이 되었다. 그동안 잘 견뎌오셨고, 병원에서는 5년만에 대장 내시경을

해야한다고 했고 어제 예약해둔 대로 하셨다. 다른 이상은 없다. 다행이다. 용종이 하나 있어 조직검사를 해두고 오셨다.

결과가 나쁘지 않기를...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2-07-24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술 후 검진결과가 좋다니 다행이어요.
어머님이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지요.^^
이 책은 어떤 부분을 읽어도 좋았어요~~

프레이야 2012-07-26 00:10   좋아요 0 | URL
네, 언니, 결과 좋기를 바래요. 아버진 훨씬 더 연세가 많으신데 사실 노인인데
겉으론 그래 안 보여서 아직도 청춘일 줄만 알아요, 제가요. 기력이 좀 없으신가 봐요.
날도 더운데... 몸에 좋은 것 사드려야겠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7-25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하네요..3기셨어도 수술하고 좋아지실 수 있는거군요.
가까운 지인의 부모님께서 모르고 계셨다가 대장암 말기로 판명이 나셔서 마음이 심난하네요.
함께 계실 때 더 잘해야 겠어요...
더운데 잘 지내고 계시죠?^^

프레이야 2012-07-26 00:12   좋아요 0 | URL
현맘님, 무더위에 지치지 않고 잘 지내지나요? ^^
주위에 암환자가 적지 않아요. 건강합시다!!!
엄마의 5년 전 그 때가 기억나요. 더울 때였지요. 병원에서 밤을 새던 몇날.
조직, 결과 좋게 나오길 바라고 있답니다.

라로 2012-07-25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능의 힘,,,정말 맞는 말이에요,,
그나저나 어머님 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제 친정 엄마도 그렇고,,,
딱히 잘 해드리는거 없지만 말이에요,,^^;;

프레이야 2012-07-26 00:13   좋아요 0 | URL
살아야겠다는, 살려는, 잘 살려는, 그런 건 정말 본능인 것 같아요.
몸도 알아서 반응하구요.
뤼야님 어머님도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바랍니다^^
우린 진짜 잘해드리지도 않고 허당 맏딸 같아요. 나만 그런가.ㅋㅋ

2012-07-28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능의 힘'이라고 말할 줄 아는 장영희 선생님은 역시 냉철한 이성을 가지신 분이셨구나 싶어요. (어디서 장영희 샘께 배운 분이 그런 분이라 하셨어요. 따뜻하고도 냉철한 분.)
어머님께서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프레이야 2012-07-28 12:56   좋아요 0 | URL
장영희 샘이 실제로도 그런 분이군요.
글과 사람이 일치하고 삶과도 일치하는 게 올바르겠지요.
엄마는 결과가 좋게 나와서 다행이에요. 일년 후 또 검사 대장 검사 하러 오랬답니다.
고마워요, 섬님.^^
 

 새로 시작할 책을 고르던 중 점자도서관 책꽂이에서 손을 기다리고 있는 책들에는 별로 마음이

가지 않아 내 것에서 고르던 중 2009년 6월 8일 읽었던 이 책에 다시 손이 갔다.

점자도서관에 대기 중인 책은 모두 기증도서로 채워지는데 나는 이 부분이 좀 거슬리긴 하다.

신간 위주로 녹음을 하는 게 좋다면서도 왜 점자도서관 측의 지원은 없는지, 몇 번인가 팀장에게

물어봤지만 개운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꽂혀 있는 책이 제법 모두 녹음되고 나가야 다른 책이

온다는 말도 납득되기 어렵고.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내가 갖고 있거나 내가 새로 구매한

책을 녹음도서로 하는 일이 자주 있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좋다. 듣는 분들에게 유익하면 좋은 일.

 

이 책, 저자도 제목을 두고 고심했다고 고백했지만 결국 김종삼 시인의 싯구를 딴 제목.

'기적'이라는 단어에 쏠렸고 '살아온'과 '살아갈'에 새삼 사로잡혔다.

표지의 꿈꾸듯 사랑스러운 분위기에 끌렸지만 가장 큰 이유는 동시대를 살다가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책의 글이 다시 읽고 싶어져서였다.

그리고 내 목소리를 들을 분들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편안하면서 진솔하고 꾸밈없이, 생에 대한 애정이 물씬, 발랄한 저자의 글을 읽으며

그녀가 환하게 웃던 생전의 얼굴이 떠올랐다. 삶에 대한 열망과 희망으로 반짝였던 그 얼굴이.

 

 

2012년 7월 18일 녹음 시작, 벌써 38페이지 정도만 남았다.

매미 소리 울울창창 애절한 아침, 이영배 역도선수의 웃음 띈 얼굴을 티비에서 봤다. 4년 전 은메달을 따고 너무나

시원스레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던 장면과 함께 짧은 인터뷰가 나왔는데 아주 기분 좋은 웃음과 말이었다.

자신의 목표는 금메달이 아니었고 단지 메달이었다고. 그래서 더없이 행복해 웃음이 났다고.

3일 앞으로 다가온 런던올림픽에서는 더 부담없이 경기에 임할 수 있겠다고, 무언가의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은,

우리가 열정이라고도 부르는 어떠한 욕망에 초연한 태도가 내겐 오늘따라 더 감동적이었다.

열심히 해서 꼭 금메달을 따겠다는 말보다 백배는 더 훌륭하게 들렸다.

 

 

건강, 특히 암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극대화되어 있는 요즘, 삶의 열정이 지나친 것도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는 말을 늘

염두에 두는 편이다. 치열하게 살고 있지않은 내 삶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겠고 다 태우지 못하는 숨겨진 열정에 대한

자위의 말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나는 스트레스를 일종의 '허기' 또는 '공복감'으로 본다.  

그 허기의 종류는 무수하고 그 갈래 또한 섬세하다. 스트레스는 같은 상황에서도 받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걸로 보아 상대적인 것이지만 어느 정도의 객관성은 있다고 본다.  굳이 암이나 어떤 몹쓸 병을 생각한다면

깨끗한 먹을 거리로 잘 먹고 양질의 잠을 잘 자고 편안한 마음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전적인 요인도 있을 것이다.

단지, 열정이란 말은 흥겨운 꽃노래만으로 볼 수 없다. 지나친 성과욕, 현시욕, 지나치게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의 태도,

이런 것들이 하나의 스트레스가 된다고 한다. 우리 몸과 영혼은 열정에 의해 타들어가고 억압 받고 불편해진다.

몸과 영혼이 그걸 느끼는 순간 그것에 대적해 싸우려하는 태도가 동시에 발동하고 몇날을 몇달을 싸워야할지도 모른다.

그게 몇날 몇달이 아니라 좀더 지속적으로 오랜 세월의 태도로 굳어진다면, 우리 몸은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열병이나 다름없는 사랑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수긍하자.

장애를 평생 안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더 치열하고 열심으로 살았던 장영희 교수의 글을 읽으며

사람이 한 세상 살다 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좀더 느긋해지자. 의도적으로라도.

 

 

오늘은 방학을 한 작은딸을 데리고 오후에 가서 녹음 마치고 올 예정이다. 지금은 신명나게 사물놀이 연습하러 갔다.

그런데, 매미! 저렇게 한 계절 열정적으로 울어대다니... 그러니 단명하는 건가, 하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어 우습다.

아이는 윗층 일반 도서관에서 책 읽고 있겠다네. 생각해보면, 딸아이랑 이런 시간 가질 기회도 점점 적어질 테니

먼저 그렇게 말하며 따라가겠다고 하는 아이가 고맙다.^^

 

 

영작문을 가르칠 때 나는 미국의 유명한 수필가인 E.B. White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글을 잘 쓰는 비결에 대해 '인류나 인간(Man)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man)에 대해 쓰는 것'

이라고 했다.

즉 거창하고 추상적인 이론이나 일반론은 설득력이 없고, 각 개인이 삶에서 겪는 드라마나 애환에 대해 쓸 때에만

독자들의 동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화이트의 말을 인용하는 데는 다른 의도도 있다. 영문과가 아닌 학생들에게 글쓰기의 이론을 가르치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학생들 숙제를 읽을 때 지루함을 덜기 위해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추상적인

글보다는 좀 재미있는 일화 위주의 글을 읽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행복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잊지 못할 사람' 또는 '잊지 못할 그날'에 대해서 쓰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p156)

 

 

 

장영희 교수나 화이트의 말은 경험한 것만 쓰겠다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과도 같은 말이다.

 

The writer must write what he has to say, not speak it.  - Ernest Hemingway

 

 

 

덧) 장영희 교수의 책 중 갖고 있는 세 권과 안 갖고 있는 세 권. 표지가 모두 예쁘다.(우선은 표지에 늘 끌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2-07-24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주 중요한 것 알게 됐어요. '인류나 인간(Man)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man)에 대해 쓰는 것'
그런데 저는 사적인 생활의 글 - 제 자신이 드러난 글- 을 쓰고 나면 후회될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극복해야 할 문제이군요.
뽑으신 인용문, 훌륭해요. 네 번째 문단의 열정에 관한 글도 훌륭해요. ㅋ
노트에 적어 놓겠습니다.
1. 글을 쓸 땐 한 사람에 대해 쓸 것.
2. 삶의 열정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조심할 것.

저,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님 덕분에요.

프레이야 2012-07-24 19:32   좋아요 0 | URL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에 대해 쓰는 게 좋다고 말한 헤밍웨이도 그런 의미로 한 말 같아요.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 속에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나겠지요.
극복해야할 문제 맞아요, 제게도. 어떻게 녹여내느냐의 문제 같아요.
페크님, 나이 들어가는 것의 좋은 점이라면 열정을 다스릴 줄 아는 지혜 같은 것이겠지요.
저는 아직도 멀었답니다.^^

비로그인 2012-07-2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스트레스를 일종의 '허기' 또는 '공복감'으로 본다.

그 허기의 종류는 무수하고 그 갈래 또한 섬세하다"



스트레스에 대한 곱지만 아주 섬세한 표현이세요..
기억하여 전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서 따로 수첩에 적어두었습니다..

둘째 따님과의 시간에 대한 일상을 넘어서는 애틋한 자각... 그리고 그것을 아끼시고 소중하게 채우시려는 마음이
손에 잡힐듯이 느껴져요..
더운날씨.. 평온한 오후이시길 바래봅니다..

프레이야 2012-07-24 19:35   좋아요 0 | URL
오늘 하루도 햇볕이 대단했어요. 하지만 우리 모녀는 도서관에서 시원하게 보냈어요.
최고 피서지에요. 녹음실은 더 그래요. 일반 도서관은 전기 절약 차원에서 에어컨 틀어주지 않고
선풍기만 돌려서 좀 더웠다고 딸이 그러네요. 저녁인데 매미소리는 그치질 않네요.
허기를 오늘도 내일도 항상 잘 달래보렵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몸에도 좋다고 하는데 지나치면
뭐든 좋지 않을 것 같아요, 현대인들님.^^

순오기 2012-07-24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내가 에세이 써야 했던 일 알죠?
그때 미친듯이 장영희 교수님 에세이집 읽었어요. 그리곤 좌절~~ ^^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요것만 없고 다 있어요,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프레이야 2012-07-26 00:15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언니 ^^
좌절은 왜 했대요.ㅎㅎ
장영희님처럼 그렇게 쉽게 쓰기가 사실 더 쉽지 않긴 해요.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이 책도 표지 엄청 이뻐~~요^^

라주미힌 2012-07-25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영희씨의 글을 프레이야님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저만 모르는건가;;;; )

프레이야 2012-07-26 00:16   좋아요 0 | URL
방법이 없어요.^^ (속으론 다행)
라주미힌님도 장영희님 글 좋아하시는군요.

라로 2012-07-25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영희 선생님의 골수 팬이라 그분의 책을 다 갖고 있지롱요~~~.그뿐 아니라 그분의 아버지인 장왕록교수님의 책까지 다 갖고 있어요,,,저 정말 그분들 참 사랑해요,,,

프레이야 2012-07-26 00:18   좋아요 0 | URL
골수 팬인 거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장왕록교수 책까지요!!! 우째우째.^^
이 책에,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읽다가 울컥했어요.

2012-07-28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뒤쪽 세 권을 안 가지고 있어요. 아, 맨 앞 책은 누구 줘버렸구나.... 뤼야님만큼의 팬은 아니군요. 프야님과 저는. (아마 가까운 미래에 뒤쪽 세 권도 다 가지게 될 듯.. 뤼야님의 뽐뿌질 땜에요.ㅎㅎ) 우와 장왕록 교수님 책까지 다 갖고 있다니, 대단하십니다 뤼야님.

프레이야 2012-07-28 12:57   좋아요 0 | URL
그죠? 뤼야님은!!!
<내 생애 단 한번>의 표지 파란 나비도 넘 멋지요.
이 책 제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던데 사람들이 '생의' 또는 '생에'로 잘못 아는 경우가
많더래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