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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둘째날,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도 조금만 견디면 지나간다.
어제부터 이곳엔 태풍의 기운이 약간은 있어 그 덕을 보는 셈이다. 바람이 불어드니 조금은 낫다.
그래도 체질이 바뀌는 건지 온몸의 피부로 열이 뻗치고 올라와 그 열에 내가 녹을 지경이다. 기운없어 ^^
이런 날 함께 무더위를 이겨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건 어떨까.
이런 에세이라면 무더위 날리는 데도 좋을 것 같다!!!
1. 안철수의 생각
우리 시대, 희망과 변혁과 상식의 키워드가 되고있는 안철수의 생각을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으나 충분히 기대하는 수준 이상일 거라 생각된다.
특히, 3부 컴퓨터 의사가 보는 아픈 세상,에 담긴 생각이 궁금하다.
3부 목차
기업에도 독이 되는 고용 없는 성장
- 정리해고와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중산층이 쓰러진 승자 독식 사회의 풍경
- 900조 원을 넘은 가계부채
교육 개혁을 넘어 사회 개혁을
- 입시 경쟁 사교육과 학교폭력
이제는 신재생에너지 시대로
- 일본 원전 사태에서 배우는 교훈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는 무조건 FTA 하라고?
- 식량 안보 시대에 우리 농업이 살 길
소통 부재와 개발만능주의 정부가 빚은 참극
- 강정마을과 용산 참사
국가가 시민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코미디
- 언론사 파업 사태와 표현의 자유
<완득이>, 우리에게 다가온 현실
- 여성, 장애인, 그리고 다문화사회
2. 의자놀이 / 공지영 / 휴머니스트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놓지 않고 꾸준히 문제제기와 고발을 해온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2009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표지그림도 의미심장하다.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이 잔혹한 의자놀이와 연이은 죽음에 대해 작가 공지영은 “쌍용자동차는 또 다른 도가니”라고 말한다. 고통과 죽음이 전염병처럼 번질 것 같아 이 싸움에 뛰어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죽음의 그림자가 이토록 깊게 드리운 것일까.
77일간의 뜨거운 파업의 순간부터 22번째 죽음까지 작가적 양심으로 써내려간 공지영의 쌍용자동차 이야기 《의자놀이》. “국민이 용산에 대해 국가에 관용을 베풀지 않았더라면 쌍용자동차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이 작가에게 무언가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었듯이, 오늘 우리가 쌍용자동차 사태를 묵과한다면 또 뒤늦은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의 의자를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 휴머니스트 출판사 제공 책소개, 중)
3. 엄마와 연애할 때 / 임경선 / 마음산책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고 굴레로 덧씌워진 '모성'이라는 이름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아들에게 "네가 태어나기 전이 난 훨씬 행복했어"라고 똑똑히 말하고 아들은 본능적으로
획득한 분노와 상실감에 엄마를 괴롭힌다. 평생을 안고 가야할 이들 죄책감과 애증의 굴레가
너무나 가슴 아프면서도 섬뜩했던 영화다.
<엄마와 연애할 때>는 아들이 아니라,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지만 '엄마가 된다는 것', '엄마로서 산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딸로 태어난다는 것 딸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는 늙어가고 딸도 늙어간다. 함께 나이들어가는 두 여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목차만 봐도 끌린다. 나도 엄마의 딸이고 딸의 엄마이니 더욱.
"엄마들은 때때로 애를 내동댕이치고 싶지만 상상으로만 그럴 뿐이고 그런 생각을 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는데 나는 실제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다. 눈가에 여전히 눈물이 고인 채로 잠든 구슬픈 모습에 나는 감정이 북받쳐 ‘딸아 미안해’ 이러면서 참회의 눈물이라도 흘릴 줄 알았는데, 울음은커녕 열 받은 가슴은 아직 진정될 기미조차 안 보였다. 그러다가 이내 나도 까무룩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침에 우리는 거의 동시에 눈을 떴던 것 같다. 윤서는 조금 부은 눈으로 첫날밤을 같이 보낸 애인을 쳐다보듯,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제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96쪽, 「괴물」에서 - 알라딘 제공)
이 인용문에서처럼 나도 첫아이를 침대에 내동댕이 치고 머리를 후려갈기고 발로 걷어찬 적이 있다.
고백이다. 하루종일 울어대는 아이를 밤잠을 못자고 업고 안고 재우고 먹이고 씻기고 배변 뒷처리에 아프면 밤을 새고
병원에 업고 뛰어다니고, 아무튼 달처럼 방긋거리기만 하지 않는 아이는 매사 서툴고 엄마가 될 준비도 되지 않은,
이기적인 애송이 엄마에게 괴물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세상에 덩그러니
나와 외로움과 두려움에 몸을 떨며 기댈 곳을 찾는 아이에게 그런 엄마 또한 괴물로 보이지 않을까.
둘째를 기를 땐 좀더 수월하고 아이에게도 상대적으로 관대해지는 이유는 '모성'에 익숙해졌거나 길들여졌기 때문일까.
케빈의 엄마가 케빈을 내동댕이 쳐서 팔을 부러뜨렸을 때를 회상하며 케빈은 "엄마의 본성이 잘 드러난 사건"이었다고
잔인한 눈빛으로 일침을 놓는다. 아이와 엄마는 끊임없이 기싸움을 하고 서로 익숙해져가는데
어린 케빈의 말처럼 "익숙한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그러나 '엄마는 한순간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단다.'
엄마와 자식이 서로 화해하고 죄책감과의 이별을 하며 행복과 평화를 찾아가는 과정을 이 책이 선사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