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꺼]

 

 

김선우

 

 

 

젊은 여자 개그맨이 TV에서 연애시절 받은 편지를 읽는다

편지는 이렇게 끝난다 [니꺼가]

세 음절의 그 말을 힘주어 읽은 후 어깨를 편다 젊은 남자 가수가

노래를 한다 밥을 먹다가 나는 숟가락을 입에 문 채 멍해진다

'내꺼 중에 최고'가 노래 제목이다 내꺼 중에 최고......

 

보채는 당신에게 나는 끝내 이 말을 해주지 않는다

[누구꺼? 당신꺼 내꺼]

이 모든 소유격에 숨어 있는 마음의 그림자노동,

그게 싫어, 라고 말하려다 관둔다 내가 좀더 현명하다면

[당신꺼]라고 편안히 말해줄 수도 있을 텐데 여인을 업어

강 건네준 후 여인을 잊는 구도자의 자유자재처럼

모두에게 속하고 어디에도 영원히 속할 수 없는

말이야 천만번  못하겠는가 내 마음이 당신을 이리 사랑하는데

그런데도 나는 [당신꺼]라고 말하지 않는다

햇살을 곰곰 빗기면서 매일 다시 생각해도

당신이 어떻게 내 것인가 햇살이 공기가 대지가 어떻게,

내 것이 아닌 당신을 나는 오 늘 도 다 만 사 랑 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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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바람은 공기는

바다는 하늘은 대지는 공평하다.

내 것이 아니면서 내 것인 그것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어디에나 속한다.

 

'이 모든 소유격에 숨어 있는 마음의 그림자노동'

 

그래서 힘들었구나, 그래서 힘이 드는구나.

소유하려함으로써 나는 노동을 하는구나 중노동을 하는구나.

그것도 햇살의 반대편 그늘의 노동을.

다만 사 랑 하 면 될 일을.

다만 고 마 워 하면 될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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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8-11 0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유격'이라는 문법 용어에도 우리는 민감해지지요.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거의 본능인가요.
어차피 갈때는 다 두고 갈것을 말이지요.
김선우 시인의 낭낭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 2012-08-11 10:12   좋아요 0 | URL
소유격은 목적격을 염두에 두는 것이니, 목적격 없이 주격만으로 사랑하는 삶은
어떤 걸까 생각해보게 되어요, 나인님.^^
김선우 시인은 산문도 참 낭낭한 것 같던데 나인님은 목소리를 직접 들으신 것 같으네요.
입추가 지났지만 더위는 아직 기승이에요. 오늘 비가 온다더니 일기예보가 전혀 맞질 않네요.
모쪼록 즐기는 여름 되시길^^

L.SHIN 2012-08-11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햇살을, 대지를, 공기를, 바다를, 이 지구를
내 것이 아닌 당신을 사랑한다.

나는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고, 나도 이 세상 그 무엇도 소유하려고 하지 얂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은 이런 나를 잘 이해 못 하는군요(웃음)

약 15년 만이네요, 내 마음에 닿은 시가.

프레이야 2012-08-11 19:26   좋아요 0 | URL
이해는 원래 불가한 영역인긴봐요. 지구인은요ㅎㅎ
외계엘신님은 지구도 사랑하네요. 역쉬!
시가 15년만에 마음에 와닿으셨다니 너무 그리
오래진않은것 같아요^^ 무언가 진심으로 마음에 와닿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요뭐. 히히~~

실비 2012-08-1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유하려함으로써 나는 노동을 하는구나 중노동을 하는구나.'
이부분이 왠지 공감이 가는 이유는 몰까요. ㅎㅎㅎ
여러생각과 공감이 교차되는시네요 ^^

프레이야 2012-08-12 00:08   좋아요 0 | URL
실비님, 그 구절은 제 소감이에요.^^
사랑을 소유하지않고도 사랑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싶어요.

네꼬 2012-08-13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가 시고 어디가 감상인지 알 수 없는, 통째로 아름다운 페이퍼군요!

프레이야 2012-08-13 19:15   좋아요 0 | URL
네꼬님, 박성우 시인은 '시는 아침밥'이라고 말하던데요
제게 시는 뭘까, 하다가도 이런 시 한 구절에 그냥 와락 안길 때가 있어요.
품넓은 가슴 또는 기댈 수 있는 어깨 같은 것이랄까요. 히히~ 좋아요, 네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