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지나고 그 주 금요일에 점자도서관에서 하는 테마가 있는 시 수업을 마치고 약속 장소로 갔다. 앗, 그전에 엄마집에 잠시 들러 추석 때 못 찾아뵌 딸 노릇을 사들고 간 꽃등심으로 좀 하고 가느라 약속시간보다 20분 늦게 도착했다. 빈대떡집에서는 이미 세 분이서 한 순배 돌리고 계셨다. 나는 안주 킬러라 맥주는 한 잔만 받고 배가 엄청 부르도록 먹고 말았다. 

이런저런 근황을 이야기하다 협회 하반기 행사 일정 조율을 하는 중에 우리 동인 및 협회를 16년째 이끌고 계신 대장님 입에서 '이연실 편집자'가 나왔다.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를 만든 그분이고 에세이 편집자로 상당한 분이라며 한번 강연을 모시고 싶다는 요지였다. 11월 초로 모시려면 이미 강연 섭외나 그분 일정으로 바쁠텐데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내가 말했고 나중 연락을 취해 보셨는지 아무튼 강연은 다음에 하기로 되었다.


 그러고 이름을 새겨듣지는 않고 이 자리는 지나갔는데 며칠 전 우연히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제목이 먼저 보였고 유유출판사, 저자 이름은 나중에 보였는데 이력을 보니 그분이 맞다. 이미 유명한 에세이들이 이 분 손에서 나왔더라.  


조목조목 경험에 비추어 쉽고도 정확하게 쓴 이 책을 읽어보면 에세이를 쓰겠다는 작가와 삶, 원고를 대하는 편집자의 태도와 현실적으로 '일반 독자'를 향해 책의 방향을 모색하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낌이 확 온다. 늘 공부하고 수집하고 작은 것에도 잘 느끼며 살아야 되는 직업 같고,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람 같다. 책은 유유출판사다운 그 만듦새이니 읽기에 실용적이다. 제목의 중요성부터 표지, 다른 장르와는 다른 에세이 보도자료의 어조, 저자와의 좋은 관계, 디자인팀과의 지치지 않는 조율까지, 일을 하며 배우고 느끼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내용이 구체적이고 알차다. 겸손하고, 확고함에 유연성도 잃지 않는 좋은 태도를 지닌 사람 같아 호감이 간다. 게다가 좋은 책을 몇 권이나 건지게 되었다.


<에세이 만드는 법>을 읽고 끌려서 주문한 책


1

2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국적도 생소한 벨라루스의 작가다. 이연실 편집자는 어느 날 신문에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책을 두고 '실제 사람들을 인터뷰한 논픽션인데 동시에 소설이기도 한 책'이라는 기사를 읽고 달려들었다. 인터뷰집과 르포의 성격을 한 권에 품은 책이다. 게다가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 끌렸던 건데, 편집자로서 좋은 책을 알아보는 눈이 있는 거다.


이 책을 발간한 후, 알렉시예비치는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수상을 미리 알고 메이저급 출판사에서 미리 당긴 거 아니라는 류의 소문과 달리 이 책은 2년간의 시간이 번역과 편집에 소요된 결과물이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그보다 전작이다.





3


미친 사랑의 서 


 '이연실 갤러리'에는 유난히 '책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그림과 사진이 많다고 한다. 편집자 선배들은 오랫동안 풍요롭고 단단한 '자기만의 미술관'을 가슴에 꾸려온다고. 이렇게 이미지를 의식적으로 모으고 채운 갤러리, 그중 아꼈던 중국 출신의 화가 '원우'의 유화를 표지에 올린 책이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유명한 작가들의 사랑과 연애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긴 이 책의 원제는 '책 표지 속의 작가들Writers Between the Covers'인데 한국어판 제목을 다소 자극적으로 바꾸고 표지는 최대한 우아하고 고상하게 가야겠다는 작전을 세워 두고 시작했다고! 

김훈은 이 책을 40금이라고 했단다.

(페이퍼 쓰는데 이 책 벌써 도착했다. 오호 표지그림 정말 멋지다.)

목차를 보니 아는 이야기도 좀 있고, 당연하게도 보부아르가 있네. 

보부아르가 나오는 챕터 제목은 '섹스의 즐거움'. 



원우의 그림에는 친근한 동양인과 책이 등장하지만, 어딘가 좀 낯설고 독특한 기운이 감돈다. 원우의 그림 속 인물들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책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책을 머리에 이고 있거나 책에 파묻혀 있거나 때론 책을 애무하는 것 같다. 책을 데리고 살아가다가 약간 미쳐 버린 사람들 같달까. 나는 언젠가 환장할 것 같은 열기가 배어 있는 원고를 만나면, 원우의 그림을 꼭 표지로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 59~60쪽 



무엇보다 에세이를 문학이 아니라고 보고 홀대하는 풍토를 지적하며 '잡문'으로 말하는 사람에게 모멸감을 느꼈다가 정여울 작가가 하는 말에서 힘을 얻었다는 마지막 대목은 편집자로서 저자의 일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에세이는 흔히 자기고백적인 글이라 신변잡기에 머무르기 쉬운 함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좋은 편집자 이전에 좋은 작가라면 그 함정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편집자로서만이 아니라 글을 쓰고 구성하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 될 내용이 알토란 같다. 


저자가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에서 들었다는 정여울 작가의 말은 아래 인용문에서...

타인이 에세이를 '잡문'이라 부를 때는 이 장르를 가볍게 보는 편견이 들어 있을 것이나, 스스로 나의 장르를 '잡문이라 말할 때 그것은 자기비하도, 겸손도 아닌 단단한 자신감이 된다고. '잡스럽다'는 것은 반듯하게 그어진 경계나 선 따위는 뛰어넘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고. 


나는 잡종 편집자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과 좋은 사람을 책으로 만들 수 있는 잡종 에세이 편집자이다. 앞으로도 매일 고민하고 가끔 실패하고, 종종 잘 팔면서 나는 계속 '잡문' 편집자로 살아갈 것이다. - 175쪽


나는 2014년부터 동인지와 계간지, 개인수필집 등을 만드는 일을 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모든 걸 믿고 맡겨주신 대장님에게 감사드린다. 지난 해에는 이런저런 한시적인 걸 더 맡아 한 달에 한 권 꼴로 만들었던 셈이다. 이연실 편집자처럼 메이저 편집자가 아니고 문단의 말석에서 글을 쓰며 삶의 의미를 찾는 수많은 글벗들의 글을 모두 읽고 교정교열하고 이쁘게 앉히는 일이었지만 나름의 보람과 의미가 있었다. 일을 하며 사람을 알게 되었고 모르던 면면을 보고도 마음에서 내치지 않을 수 있는 너그러움도 배우게 되었고 착오나 오차가 생겼을 때 능숙하게 서로 다치지 않고 해결하는 유연성과 여유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19년부터는 두 군데를 맡아 하다가 올 겨울호를 마지막으로 만기제대할 생각이다. 여기까지!


그런데 진짜 좋은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이 책 <에세이 만드는 법>을 읽고 나서 불끈 생기고 말았다. 이 동네는 거의 자비출판이라 시중 마케팅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좀 다르긴 하지만 팔리는 책이 아니면 어떤가,라고 말하면 이연실 편집자 같은 분에겐 안 통할 이야기가 되겠다. 아무튼 이 동네 사람들은 무용한 일에 열정이 많다. 나도 그렇고. ^^

계간지는 표지와 특집 기획하고 회원의 글을 마감기일 안에 받아 편집교정하고 발간, 전국배부까지 일련의 과정이 한 계절을 앞서 반복해 이어졌고, 개인수필집 발간하는 일을 도맡아 도와드리면서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일생과 생각이 담긴 주옥같은 스토리를 제대로 문장으로 앉히고 목차를 짜고 표지와 표제, 전체 구성에 모두 개입했다. 믿고 맡기니 처음부터 마지막 절차까지 성심껏 도와드렸다고 생각한다. 80세 전후 그보다 더, 미수의 나이에 돌아보는 한 사람의 인생은 눈물겹고 거룩하기에 내 글인 듯 감정이입해 내 책인 듯 만들었다. 


나는 쓰지 않으면 숨 쉴 수 없기에 계속 뭐든 쓸 것이고 좀더 다양한 시선을 두어야겠다고도 생각한다. 이 일을 하며 속으로 묵혀두었던 여러가지 소소한 일들을 좀전에 후임 선생님과 두 시간이 넘도록 통화했다. 다른 일로 통화했지만 이야기를 시작하니 줄줄이 사탕처럼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그건 그렇고 나라는 사람은  "미친듯이 쓸 것이다. 기다려라." 이런 메모를 7,8년 전인가 어디다 해뒀더라.ㅎㅎ 한잔했던가 보다. 이제 기억이 마저 나는데 2013년 9월에 작은딸이 내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다 뭔가 다 통째 날려먹어 문서도 왕창 사라졌다. 나라는 사람은 그걸 백업도 해두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이삭 줍듯이 하며 들었던 생각이 '그냥 다시 쓰자'였다. 그냥 날려버리고 새로 하자고. 그리 될 운명의 문서라 날아간 거라고 위안하고 아이한테는 별말도 안 한 걸로 기억하는데 아이의 기억은 달라서 엄마가 미친듯이 화를 냈다고 했다. 다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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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0-16 2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멋지세요. 공감합니다 돌아보면 개개인 모두 눈물겹고 거룩한 인생 ~~ 글 쓰고 싶어하는 분들 도움 많이 주시면서 본인의 글도 열심히 쓰시는 모습 응원합니다 *^^*스베툴라나 전쟁은 여자의~~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안목있는 편집자님 덕분이군요.~~

프레이야 2021-10-16 22:24   좋아요 2 | URL
<전쟁은....> 그랬더라구요^^ 이연실 편집자, 대단! 문학동네 편집팀장인데 강의도 잘 할 거 같아요. 내년이나 여기서 초청해 들을 수 있을지도요.
저 책은 글을 에세이를 쓰거나 쓰려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거에요.

새파랑 2021-10-16 2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책 오늘 서점에서 봤었는데 살껄 그랬군요 ㅜㅜ 프레이야님도 출판일을 하시는군요. 어떤 책인지 궁금하네요. 멋집니다~!!

프레이야 2021-10-16 22:28   좋아요 2 | URL
아니에요 출판일 아니어요. 그냥 이곳 글쓰는 동네 말석의 조용한 편집일을 했을 뿐이에요 에구.

새파랑 2021-10-16 22:34   좋아요 2 | URL
편집도 출판이라 생각했는데 다른건가 보군요~ 제가 잘 몰라서 😅 편집이 더 멋진 일이죠~!!

프레이야 2021-10-16 22:51   좋아요 2 | URL
새파랑 님 ^^ 제가 많이 배우게 된 일이고 믿고 맡겨주신 문우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지요. 내년에는 뭔가 제 일상의 방향을 새로 잡아야 할 거 같아요. 어찌될지 모르지만요^^

scott 2021-10-17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단의 말석이라도
좋은 글 아름다운 글 엮는 일을 하시는 것
멋집니다!
언젠가
프레이야님의 글솜씨가 담긴 책을 만나 보고 싶습니다 ^^

프레이야 2021-10-17 09:4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스캇님 ^^ 따뜻한 말씀에 힘을 얻어요. 미숙한 사람이라 늘 고민하며 홀로 또 같이 가려구요.

책읽는나무 2021-10-17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응원하겠습니다^^
존경의 마음이 샘솟아...아...하며 읽다가 마지막 편에서 사람 냄새가 나 혼자 빵~터졌습니다.ㅋㅋㅋ
저희도 애들이 옛날 이야기를 할 때, 얼굴이 붉어지도록 지네들 혼났었던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얘기 하더라구요??
나는 정말 그렇게 혼낸 기억 없이 조금 인상쓰면서 타일렀던 것 같았었는데?????ㅋㅋㅋㅋ
기억이 각자 달라서 참 이상하다????
싶었었는데.....저만 이상한 게 아녀서 위안 받았습니다ㅋㅋㅋㅋ
사람 냄새가 나서 프레이야님 더 리스펙입니다♡♡

프레이야 2021-10-17 15:07   좋아요 1 | URL
그니깐요 ㅎㅎ 화를 미친듯이 한번 내긴 했지만 아이한테 대놓고 하진 않았는데 딱 기억하곤 ㅋㅋ 엄마들 다 글쵸. 갑자기 둥이 민이 요즘 모습이 궁금해지네요. 귀여운 둥이 잘생긴 민이. 저는 보기보다 허당이라 빈구석도 많고 그런 사람입니다요. ^^ 오늘 날씨 쨍하네요

2021-10-17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17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17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17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17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11-05 16: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프레이야님의 글은
무조건 책으로 나와야 함
아무튼 ^ㅅ^

프레이야 2021-11-05 17:27   좋아요 1 | URL
에궁 고맙습니다 ~^^

그레이스 2021-11-05 16: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쓰지 않으면 숨쉴 수가 없고....!
멋지세요~
저는 아직은 읽지 않으면 숨쉴 수 없는 단계!^^
그 경지는 못이를 듯요
쓰려고 하면 서두가 생각나지 않아서 숨쉴 수 없을 때가 가끔 있죠 ㅋㅋ
축하드려요~

프레이야 2021-11-05 17:29   좋아요 1 | URL
ㅋㅋ 서두가 생각나질 않을 땐 해찰하기요 !! 고맙습니다.

mini74 2021-11-05 16: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와닿는 따뜻한 글, 항상 감사합니다. 당산도 무지무지 축하드랴요 *^^*

프레이야 2021-11-05 17:31   좋아요 3 | URL
미니님 ~ 고맙습니당 ^^

서니데이 2021-11-05 18: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프레이야 2021-11-05 18:44   좋아요 4 | URL
고맙습니다 ^^

새파랑 2021-11-05 18: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멋진 페이퍼 당선 축하드려요~!! 저도 멋진 에세이 써보고 싶네요😁

프레이야 2021-11-05 18:45   좋아요 4 | URL
새파랑 님 고맙습니다. ^^

모나리자 2021-11-05 23: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프레이야님~
굿밤 되세요.^^

프레이야 2021-11-06 00:06   좋아요 3 | URL
모나리자 님 고맙습니다 ~^^

thkang1001 2021-11-06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프레이야 2021-11-06 13: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멋진 가을 보내세요. 날씨가 넘 좋으네요 ~~

초딩 2021-11-07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
즐거운 가을 일요일 되세요~

프레이야 2021-11-07 12:00   좋아요 0 | URL
초딩 님 고맙습니다 ^^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8월 중반에 가지 한 박스가 왔다. 웬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옆지기가 주문했던 것. 원래 들기름으로 무친 가지나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말린 가지로 더 맛나게 반찬해 먹자고 주문을 했던 것이다. 처음 해 보긴 하지만 한 박스에 거의 75개 정도 든 가지를 용감하게 단번에 쓱싹 칼질했다. 가지 하나를 꼭지 부분은 남기고 사등분 정도로 칼질해 주면 옆지기가 세탁소 옷걸이 하나에 대여섯 개를 걸어 널었다. 어디서 본 모양이다. 이렇게 말리면 된다고. 


근사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8월23일 촬영



다하고 나니 옷걸이 수가 제법 되었다. 햇볕 잘 들고 바람 잘 통하는 베란다 쪽으로 걸어두고 아침저녁으로 들여다 보았다. 비가 자주 왔고 흐린 날이 많아서 어쩌나 했지만 더디긴 해도 별탈 없이 잘 말라갔다. 처음엔 가지 무게에 축 처지던 빨랫줄이 어느 날부터 괜찮아지는 거다. 제 속의 물기를 날리면서 가벼워지는 기특한 것들은 점점 냄새도 달큰하게 풍겼다. 우리의 가지는 잘 있냐, 이러며 매일 들여다보길래 피식 웃었지만 나도 매일 들여다보고 냄새 맡고 신기해 했으니 뭐.


3, 4주 정도가 지났던가. 제법 모양도 좋게 잘 마른 가지를 옷걸이에서 다 걷어내어 꼭지 부분은 자르고 나머지 부분을 길이로 이등분하여 냉동실에 보관했다. 오늘까지 모두 4번 나누어 볶아서 다 먹었다. 굴소스, 진간장, 마늘다대기, 매실청, 들기름, 통깨. 내가 먹어봐도 꼬들꼬들 맛났다. 야채를 건조하면 영양가도 높아진다지. 오늘은 어머님에게도 반찬해서 보내드렸더니 맛나다고 전화가 왔다.


그런데 사람일이란 참 웃기는 게, 이제 다시는 안 해도 되게 생겼다. 

첫 번째로 성공했던 마른 가지가 반 정도 남아 있는 시점에서 완전히 기분 상승해 있던 옆지기가 어느 날, 가지 한 박스 더 살까, 이러는 거다. 헉! 집중할 일도 있고 바쁘다고 했는데 이러니 시큰둥 놀랐지만 그 고집을 누가 꺾나. 한 박스가 또 배달왔고 이번엔 총 78개의 가지를 똑 같이 잘랐다. 손목이 좀 아팠지만 또 예쁘게 잘 마르면 보기도 좋고 맛도 좋으니 여기까진 괜찮았다. 문제는 여기서 사람이 조금 편하려고 잔꾀를 부리면 안 된다는 것.  일을 조금 빨리 끝내려고 그랬는지 옷걸이 하나에 다닥다닥 붙여서 가지를 걸었다는 사실. 굳이 띄엄띄엄 널 필요 없겠더라고, 이러면서. 설마?, 했지만 그러겠다고 하니 별말 안 했는데 그게 문제였다. 한 옷걸이에 9-10개를 걸었으니 과밀지역에서 가지들은 숨을 못 쉬었을 수밖에 없었다. 9월 27일이 가지 한 박스 두 번째 건조의 1일차였고 이때까진 결과를 알지 못했다. 그저 첫 번째와 같이 잘 마를 거라고만 생각했지.


며칠 후부터인가 가지가 좀 이상하다 싶었다. 자세히 보니 곰팡이가 피고 있는 것이다. 시커먼 곰팡이 부분을 잘라내면 또 있고 또 있고... 포자가 다 죽질 않고 퍼지는 모양이었다. 너무 다닥다닥 붙여서 널어 그렇다고 말해도 그 이유일리가 없다고 하니 기가 막혔다. 선풍기를 가져다 돌리지 않나, 햇볕이 더 잘 드는 반대쪽 베란다로 모두 옮기질 않나. 아무 소용 없었다. 그렇게 잘라내 버리고 또 잘라내 버리고 해서 지금은 먹을 만한 게 반도 안 남아있다. 내일쯤 옷걸이에서 다 걷어내면 한움큼 정도 되려나 싶다. 귀한 교훈을 얻은 거지. 아직도 자기가 잘못했다는 말은 절대 안 한다. 식품건조기 살까 하다 그것도 안 하기로 했다. 물건을 더 사는 건 안 하는 걸로. 다음엔 말린 가지 1킬로 주문하자, 이런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굳 아이디어!! 


여기서 몇 년 전 썼던 글 '변신'을 발췌해 옮겨둔다. 

* *


습관처럼 코를 가까이 댄다. 달콤하지도 상큼하지도 않은 냄새가 얌전히 안겨든다. 오래된 책갈피에서 나는 도타운 냄새다. 만지면 부서질 듯 가녀린 꽃잎 위로 시간의 살비듬이 포슬포슬 내려앉았다.


조금은 지쳐 있던 그해 봄, 아주 커다란 꽃바구니를 배달받았다. 이런 걸 보낼 사람이 없는데 싶어 수신인을 재확인했다. 발신인은 적혀 있지 않았다. 둥그런 등바구니에 선홍색 물이 묻어날 것 같은 한아름 장미가 터질 듯 들어앉아 있는데 앞다투어 내민 얼굴을 대충 헤아려봐도 이백 송이는 되어 보였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바구니를 안으로 옮기려다 긴 리본에 적힌 고전적인 글귀에 발이 걸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기억하고 있던 날을 상기했다. 설렐 일이라곤 없을 줄 알았는데, 이런 방식의 고백이라니! 오래전 멀리 떨어진 어린 아내에게 손편지로 보내오던 눈 맑은 이등병의 글귀가 떠올랐다. 비무장 상태에서 변칙적인 한 방에 낯이 간질간질 가슴이 두방망이질해댔다. 집안 한가운데쯤 피아노 옆자리로 옮겨놓으니 은은한 향취가 온 집에 맴돌았다. 일주일이 그렇게 솔솔 흘러갔다.


날이 갈수록 꽃송이들이 변해갔다. 근사한 마른 꽃이 되어가는 모양새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향기는 옅어지고 물기는 차츰 날아가 파슬파슬해졌다. 한껏 부풀었던 꽃송이는 부피가 줄고 붉게 타던 겹겹의 꽃잎은 시간이 갈수록 색이 짙어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힘을 빼고 색을 벗어 버렸다. 그야말로 인기 있는 립스틱 색상명, 말린 장미꽃 색이 되었다. 무심한 듯 차분하게 열정을 잘 다독인, 편안하면서도 세련미를 풍기는 색상이었다.


마른 장미꽃 바구니를 일 년이 넘도록 버리지 못했다. 먼지가 된 시간을 온몸으로 안으며 거듭 피어난 꽃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습윤이 증발하고 잘린 줄기의 먼 기억이 부른 은근한 흙냄새가 꽃잎 위로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의 분진粉塵을 말해 주었다. 다음 해 기념일을 맞이하고도 한참 지난 후에야 이별을 마음먹었다. 아이들이 스치고 지나다니며 꽃이파리가 바스러지는 게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못내 아쉬워 한 묶음 남겨 낮은 장식장 위에 정물로 앉은 청화백자 푼주에 뉘어두었다. 직립해 있던 꽃가지들이 또 다른 자리를 찾아 누운 모양새가 보기에도 썩 좋았다.


마른 꽃을 좀 더 오래 고이 간직할 순 없을까. 먼저 한 다발을 적당히 모아 꽃잎에 헤어스프레이를 살짝 뿌려주면 이쁜 모양새로 말리는 데 도움이 된다. 잘린 줄기 끝이 하늘을 보도록 거꾸로 매달아 둬야 하는데,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이면 최상이다. 햇빛이 센 곳에 두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금세 시들어 버린다. 물기가 서서히 증발하지 못하고 일순간에 다 타버리는 것이다. 무모하고 성급한 정열에 심신을 소진하고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이카로스의 밀랍 날개를 생각한다. 모든 일에는 온전한 마음과 적절한 기술과 좋은 타이밍이 요구된다. 일도 사랑도 그렇다. 정성은 오래, 전부 쏟아야 진가를 발휘한다. 꽃을 말리는 일도 그렇다.


(중략 _ 이 부분은 엄마의 뜨개질 내용)


대중목욕탕에서 고화枯花를 본다. 연로한 몸에는 덧없는 홍조의 시절을 건너 고갱이로 남은 마른 꽃이 알록달록하다. 생의 갈증을 이기고 풍화를 견뎌온 연륜의 꽃은 인고의 삶과 지혜의 덕망을 품고 있다.

변해가는 건 생화生花만이 아니다. 우리가 그려가는 동행도 고화枯花로 변신 중이다. 벨 듯한 향기 대신 무향의 몸을 부대끼며 무언의 말을 나눈다. 부딪혀서 금 가고 부서지지 않도록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말 한마디 삼키고 무던히 지나가는 날이 많다. 어디쯤에서 넘어지고 다치는지 이해하게 되기까지 천 개의 그늘과 만 개의 바람이 필요하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되는 진실이다.


시간은 숨이다. 시간은 베일에 가린 우리 삶의 안자락을 춤추듯 들고 난다. 꽃은 그 시간을 야금야금 먹고 느린 숨을 쉬며 새로이 몸을 연다. 연지 바른 입술은 푸르죽죽한 맨살을 보이고 강퍅하게 제 향만을 뽐내던 허욕의 길을 돌아 나와 단출하게 홀로 선 자의 자태다. 보잘것없는 몸을 가려준 허식의 옷을 벗고 겨울숲으로 걸어 들어간 자의 뒷모습이다.


뜨개실을 풀어 새로 감듯 안과 밖을 되감는 중이다. 바람 좋은 창가에 말라가는 내 안의 꽃을 매단다. 그런대로 괜찮은 풍경이 되길.

 

* * 



그런데 가지 꼭지에 영양분이 다 모여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 버렸는데 아깝다. 가지 꼭지가 눈에도 좋다고 하여 당장 주문했고 이틀 후 요렇게 깨끗하게 말린 가지 꼭지가 왔다. 냉장실에 넣어두고 꺼내 쓴다. 가지 꼭지에는 가시가 있으니 맨손으로 덥석 잡다가는 아얏,하는데 말린 가지 꼭지는 괜찮다. 끓여서 마셔 보니 구수하다.^^


드라이플라워도 그렇고 가지를 말리는 일도 그렇고 사이라는 이름의 바람이 들고나는 시간의 숨을 생각하게 한다. 사이는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의 영지에서도 중요하다. 더구나 천공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도록 그대들의 공존에 거리를 두라는 칼릴 지브란의 문장이 생각난다. 수분이 빠지고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 


고등학교에 입학한 해, 검정색 표지의 <예언자>를 엄마가 데려간 동네서점에서 '어린 왕자'와 같이 내가 골랐던 기억이 있다. 그 책은 언젠가부터 사라지고 안 보이지만... 대신 강은교 번역의 양장본을 중고도서로 갖고 있다.

이런 문장의 의미를 십 대 그때는 몰랐겠지.


 













 칼릴지브란 / 강은교 역




 결혼에 대하여



 그러자 알미트라는 또 다시 물었다. 그러면 스승이여, 결혼이랑 무엇입니까?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으며, 또 영원히 함께 있으리라.

 죽음의 흰 날개가 그대들의 생애를 흩어 사라지게 할 때까지 함께 있으리라.

 아, 그대들은 함께 있으리라, 신의 말없는 기억 속에서까지도.

 허나 그대들의 공존에는 거리를 두라, 천공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도록.


 서로 사랑하라, 허나 사랑에 속박되지는 말라.

 차라리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엔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우되, 어느 한 편의 잔만을 마시지는 말라.

 서로 저희의 빵을 주되, 어느 한 편의 빵만을 먹지는 말라.

 비록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저마다 외로운 기타 줄들처럼.

 

 서로 가슴을 주라, 허나 간직하지는 말라.

 오직 삶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허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는 것을.

 참나무와 사이프러스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 2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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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0-15 2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지를 저렇게 옷걸이에 걸고 말리는군요 ^^ 다음부터는 말린가지로 ㅋ 책 좋아하시는 분들은 가지 꼭지를 꼭 먹어야 겠네요~!!

프레이야 2021-10-15 20:33   좋아요 3 | URL
네. 의외로 간단한데 관건은 사이사이 붙이지 말고 거리를 두고 널어야 해요 ^^ 뼈아픈 교훈.

mini74 2021-10-15 2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만삭일때 감 한 상자 사서 곶감 만들겠다고 말리다가 ㅠㅠ 그 하 가을 내내 비가 자주 내리는 바람에 몽땅 썩어 버린 기억이 납니다. 깎은 공이 아까워서 ㅎㅎ 그 후론 말리는 건 안녕~ 했는데 가지 보니 또 욕망이 ! 말리고 싶다 건조기도 있는데 ! 하면서 보고있어요 ㅎㅎ 칼릴 지브란, 책받침 등 문구로 자주 뵌 분 , 반갑네요 *^^*

프레이야 2021-10-15 20:51   좋아요 2 | URL
세상에나.. 만삭에 그걸 다요. 진짜 공이 아깝네요. 건조기 있으면 해보셔도 ㅎㅎ
뭐든 말리기 좋아하는 분 제 주변에도 있어요. 온갖 거 다 말리더라구요.
보통 정성이 아니에요. 손도 아프고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요.
지브란은 레바논 태생, 아랍어와 영어 모두 창작에 자유로이 쓰고
로댕에게 미술도 배워 그림도 잘 그리고 신비적이고 아무튼 고등학생 때
이 책을 고른 건 산문시도 좋았지만 삽화가 마음을 당겼어요.
책받침, 문구에도 있었나요^^ 못 봤네요 전.

mini74 2021-10-15 20:56   좋아요 1 | URL
책받침 연습장 등 표지에 예쁜 소녀 그림 등에 간단 문구에 밑엔 칼릴 지브란 이렇게~ 소녀 그림 등이 예뻐서 샀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좀 미련했지요 ㅠㅠㅠ 아파트 베란다에선 아무래도 힘들더라구요 ~~

scott 2021-10-16 00:30   좋아요 2 | URL
오! 넘 안타깝습니다 ㅠ.ㅠ(전, 곶감 귀신임 🖐)

서니데이 2021-10-15 20: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첫번째가 운좋게 성공하면, 그 다음 두번째나 세번째는 잘 안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저희집에서는 몇 번 실패하고 요즘엔 안 하는 것 같아요.
베란다에 바람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 잘 마르지 않거나,
아니면 미세먼지 많은 시기여서 그런지 감이나 다른 과일이 검게 말라서
결과가 좋지 않았거든요.
건조기를 사고 싶었지만, 그것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서 아직 안 사고 있어요.
두번째는 실패의 원인 아셨으니, 다음엔 잘 되실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프레이야 2021-10-15 21:50   좋아요 3 | URL
앗. 그 시커먼스가 미세먼지 때문에 생기는 걸수도 있겠네요. 암튼 실패의 값진 교훈이죠 ㅎㅎ 다시는 하라고 안 하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그저 바람 잘 통하는 공기 좋은 곳에 널널하게. 이게 정답인 거 같아요. 기계 건조기보다 아무래도 낫겠죠. 손도 가고 시간도 정성도 들여야 되는 일이네요. 서니 님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21-10-15 2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말려서 먹어 보려고 감이랑 몇 개의 채소 말려 봤는데 곰팡이가 피던데요??
그래서 식품 건조기 사서 씽크대 선반에 잘 건조시키고 있구요ㅋㅋㅋㅋ
프레이야님댁 첫 번째 가지는 잘 말랐습니다.들기름에 볶아 먹었음 맛있었겠다..싶어요^^
저번에 나혼산에서 김지석이 딸기랑 김을 어떻게 양면으로 붙여 건조시켜 술안주로 먹던데 따라해 보려다 말았어요ㅜㅜ
모든 게 다 귀찮을 나이잖아요ㅋㅋㅋ
가지꼭지가 눈에 좋다는 건 첨 알았네요^^

프레이야 2021-10-15 23:06   좋아요 3 | URL
바람이 잘 통해야 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가지꼭지 소식에 괜스레 눈이 떠지는 듯요.
건조욕구들이 많군요 ㅎㅎ전 귀찮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을 옆지기 성화에 했는데 처음 건 어쩌다 얻어걸린 행운이었더라능.
그 댁 싱크대에서 잘 건조되고 있는 건조기 어쩐다요 ㅎㅎㅎ

oren 2021-10-15 2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지를 옷걸이에 걸어서 저렇게 말리니 그 모습이 썩 근사하군요.^^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저도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는 동안 가지를 참 자주 먹었더랬습니다. 온 식구들이(할아버지까지 모두 아홉 식구였지요) 아침과 점심으로 먹을 보리밥을 (쌀도 조금 섞어서) 지을 때, 커다란 철솥엔 철마다 콩가루 묻힌 정구지(부추), 풋고추, 가지 등이 자주 얹어졌고, 밥이 다 지어질 무렵에 건져올린 밥풀이 덕지덕지 붙은 그 반찬 소재들은 조선간장과 들기름에 적당히 버무려진 끝에 밥상 위에 무척이나 자주 오르곤 했더랬지요.^^ 추억이 몽글몽글 돋는 글, 너무 즐겁게 읽었습니다.^^

프레이야 2021-10-16 00:13   좋아요 3 | URL
색깔도 근사하죠.^^ 경북이 무슨 음식에도 콩가루를 많이 쓰던데요. 정구지까지 ^^
상상만 해도 군침 넘어갑니다. 조선간장이란 말도 ㅎㅎ 추억 돋네요.
전 왜 그런지 들깨랑 들기름 무지하게 좋아하거든요. 체질에 맞나 봐요.
건강밥상에 온 식구 둘러앉아 정겨운 풍경이 오렌 님 댓글로 생생하게 그려져요.

oren 2021-10-16 00:31   좋아요 2 | URL
들깨를 곁들인 음식들은 먹는 내내 건강해지는 느낌마저 들지요.
말이 나온 김에 <들꺠수제비>를 정말 맛있게 하는 곳 소개해 드릴께요.
가끔씩은 일부러 집에서부터 걸어서 이 음식점까지 간답니다.
날씨가 너무 좋을 땐 일부러 정발산을 넘어서 가기도 하고요.^^
https://blog.naver.com/2kihwan/222093861701

프레이야 2021-10-16 07:42   좋아요 2 | URL
오렌 님 그죠 몸에 좀 잘해주는 느낌 들구요. 들깨수제비 들깨칼국수 이런 거 엄청 좋아해요. ㅎㅎ 근데 링크가 안 열리네요. 식당 이름을 알려 주시면 제가 검색해 볼게요. 집에서 걸어서 가는 곳이군요. 한번 나들이 나가봐야겠어요.

oren 2021-10-16 11:16   좋아요 3 | URL
알라딘 서재 댓글창에는 링크 주소를 붙여넣어도 활성화되지 않아서 링크가 안 열린답니다.(링크 범람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막았다고 봐야겠죠.) 그냥 제가 알려드린 url 주소를 마우스로 드래그한 뒤 복사하여 인터넷 주소창에 붙여넣기 하시면 해당 인터넷 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답니다. 상호는 <청정 바지락 칼국수>이고 <일산동구 정발산동 밤가시마을>에 있어요.^^

프레이야 2021-10-16 11:19   좋아요 2 | URL
오호 ~~ 완전 좋아요. 올해 안에 꼭 가보는 걸로 찜할게요 ^^

그레이스 2021-10-15 22: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지꼭지 말려서 눈 나쁜 남편 차 끓여 줘야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메리골드도 좋다고 해서 말린 꽃차 마셔요~^^

프레이야 2021-10-16 00:16   좋아요 4 | URL
네, 그레이스 님, 메리골드차도 좋다고 해서 가끔 마셔요.
전에 몇 사람이서 일일수업으로 가서 차선생님에게 배우며
메리골드 직접 덖어서 가져왔는데 문제는 매일 마시지 않고
어쩌다 생각나면 마시고 이러니 효과를 못 보는 것 같아요.
꾸준히 매일 드셔야^^
앗참, 가지꼭지 떼실 때 손 조심하세요. 찔리면 된통 아파요.

scott 2021-10-16 00:29   좋아요 2 | URL
맛이 궁금합니다
가지꼭지 말린 차 맛!!

커피맛을 뛰어 넘었으면 ㅎㅎㅎ

프레이야 2021-10-16 09:40   좋아요 2 | URL
스캇님도 커피 많이 마시는군요. 저도 아직은 커피가 최고에요. 사실 좀 줄이고 다른 차 마셔야 되는데 몸에 좋다는 차들은 순위에서 밀리죠 늘. 가지차는 구수하고 부드러운 맛이었는데 뭐라 말을 못하겠네요 ㅎㅎ 한꺼번에 끓여두고 물 마시듯 해도 될까 싶기도 하고요. 평소 물을 잘 안 마시는 편인데 이 습관도 바꿔야겠죵. 비 오는 토요일^^

scott 2021-10-16 0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 프레이야님
작가님이셨군요
단어마다 시적인 운율이 느껴집니다
향과색!소리 까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장을 읽는 것 같은 !!


**참고로 말린 꽃은 집안에 오래 두지 말라고 합니다

풍수적으로 별로 좋지 않다고 ^.~

프레이야 2021-10-16 09:41   좋아요 2 | URL
옴마나 야스나리가 놀라겠어요 ^^
부끄럽지만 고맙습니다. 호호~
말린 꽃이나 조화가 풍수적으로 집안에 두면 별로라고 해요. 마른꽃은 버렸고 조화나 리스는 아까워 아직 몇 개 있어요. 조화를 새로운 눈으로 보기로 마음 바꿨거든요. 향은 없지만 시들지 않는 영원한 꽃으로요. 생화의 향도 사실 며칠이면 금세 변하고 추해지구요. 금기시 하는 것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랄까 뭐 그런 것으로루다가요 ^^

붕붕툐툐 2021-10-16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글을 읽으며 우와 나도 가지 진짜 좋아하는 저렇게 말려봐야지 하다가, 두번째 망친 이야기 듣고 바로 맘을 접었습니다. 안 해본거라 영 자신이 없네요~ 그 꼬들한 식감 진짜 좋은데...ㅎㅎ
프리이야님 글도 쓰시는데 나물도 잘 무치시고 완전 다 가지셨네요~(저에겐 나물 잘 무치는 사람이 요리 젤 잘하는 사람~ㅎㅎ)
예언자 저도 넘 좋아하는 책이라 반갑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땐가 교회 오빠가 선물로 준 책인데 그 오빠는 뭘 알고 저 책을 선물한 걸까 싶긴 하더라구요~ㅎㅎㅎㅎㅎ

프레이야 2021-10-16 14:14   좋아요 2 | URL
오호 그 교회 오빠 왠지 진심인듯요
지적 허세를 좀 드러내며 ㅎ 나물은 참기름 들기름이 다하는 거 같아요. 멜젓을 쬐끔 넣어주면 확 감칠맛이 나요. 지인 어머니가 담가준 멜젓인데 그 엄니가 이제 병환 중이라 다신 못 만드신대요 에구 ㅠ 아껴 먹고 있어요.
가지 말리는 거 마음 접으신 거 완전 잘한 일이에요. ㅎㅎ 건조가지 팔더라구요.

moonnight 2021-10-16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붕붕툐툐님께서 제 맘을 대변해주시네요ㅎㅎ^^; 저도 가지를 무척 좋아해서 의지 불타 올랐다가 금세 사그라들었습니다^^; 프레이야님 글에 마음이 촉촉해집니다. 감사드립니다♡

프레이야 2021-10-16 20:57   좋아요 1 | URL
달밤 님 오랜만에 반가워요.
금세 사그라들길 잘하셨어요^^ 고요한 토욜 저녁이에요. 갯마을 차차차 본방사수 대기하고 있어요.

보슬비 2021-10-18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린 가지가 너무 근사해요. 가지에게도 사이와 시간이 필요하듯이 인간관계에도 마찬가지인것 같아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들이 쌓이는 시간 동안 맛있게 만들어진 가지처럼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는것 같아요. 역시 프레이야님 글들은 쫄깃하니 맛있어요~~

프레이야 2021-10-18 15:50   좋아요 0 | URL
보슬비 님 댓글이 참 좋아요. 그 시간을 사랑해야겠어요.^^
말린가지처럼 쫄깃하게 씹어드셔서 감사해요.
말린가지 인터넷으로 구매했네요.
곰팡이 핀 것들 다 버리고 그래도 제법 건졌어요. ㅎㅎ
한 박스 78개 중 그래도 그게 어디래요.
 

그동안 다닌 곳도 많고 다닐 때마다 아무튼 책이 동행했는데 이건 알라디너면 모두 공통점일 듯.

일단 간단히 세 권만 소개합니다.^^


1.


 














 올해 설날 연휴가 끝난 월요일에 작은딸과 옆지기랑 셋이서 제주도로 날아가 협재포구 쪽 마을에서 하루 묵고 비양도로 갔다. 제주에 내린 날은 비바람이 좀 불어 다음날 배가 뜰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사실 걱정은 아니었다. 비가 오면 길을 바꾸면 되니까) 다음날 아침 거짓말처럼 날이 너무 좋은 거다. 화창한 하늘 아래 배를 타고 비양도에 내려 우리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해안을 한 바뀌 돌았다. 바다도 좋았지만 동백꽃이 어찌 이쁜지... 





그다음날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림읍 독립책방 <소리소문>을 찾아갔다. <아무튼, 뜨개>는 낡은 한옥을 개조해 꾸민 소담한 이곳 책방에서 작은딸이 고른 책 중 하나. 마당은 검은고양이 한 마리가 사수하고 있었다. 사진기를 들이대면 모델처럼 또 포즈까지 잡아주고. 손에 쥐기도 좋은 이 책은 뜨개질 명수 울엄마와 큰딸을 떠올려줘서 애정이 간다. 제주에서 서울로 바로 올라간 딸은 며칠 후 이 책 의외로 좋은 구절이 많고 번역일을 시작하려는 언니한테도 보여주고 싶다고 전화가 왔다. 이 책의 저자는 번역가로 일하는 분인데 번역일에 관한 구절이 의미있게 다가와 그 문장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열정 많은 작은딸은 소품으로 요거조거 머리 식힐 때 뜨개를 하는데 내 걸로 손가방도 하나 완성해 뒀다고 사진을 보여주었다. 집에 가보니 휴지곽, 컵받침 등등 떠 놓았더라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건, 일의 시작과 끝을 내가 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팀에서 일이 넘어와야 일을 시작할 수 있고, 다른 팀이 넘겨받아야 비로소 일이 끝났다. 그보다 더 힘들었던 건 대체 내가 하는 일이 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어었다. 봐야 하는 부분만 보고 넘기면 그게 나중에 무엇이 될지는 알 바 아니었다. 책임질 일이 없으니 가볍기는 했지만 부품으로 전락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영화 <모던 타임스>의 찰리 채플린이 자꾸 생각났다. 그에 비해 번역은 실체가 뚜렷한 일이다. 출판사가 어떤 기획 의도를 갖고 이 책을 출간하려 하는가,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옮겨야 하는가를 알고 시작한다. 내 속도대로라면 언제쯤 완역할 수 있겠다는 계산도 나온다. 잘했든 못했든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내 이름 석 자가 온전히 진다.  - 35쪽






**

(상략)

젊은 날의 어머니는 삼 남매의 옷을 손뜨개질해 입히곤 했다. 눈대중으로 품을 어림해 대바늘로 코를 잡고 시작해 주시면 코를 줄이거나 늘이지 않아도 되는 등판과 앞판은 내 몫이었다. 소매와 목둘레, 겨드랑이 부분은 손바느질한 것 같이 정교한 어머니 솜씨로 완성되었다. 길어도 사흘이면 충분했다.


알뜰한 어머니는 털실을 몇 번이고 풀어서 되감아 썼다. 새 털실은 거의 사지 않았다. 작아져서 못 입게 된 뜨개옷은 합동작업으로 실을 풀었다. 내가 한 손으로 옷을 잡고 또 한 손으로는 실끝을 잡아당기며 살살 풀면 좀 떨어져 마주 앉은 어머니는 양팔을 벌리고 양손을 실패 삼아 엄지손가락을 세워 실을 걸었다. 그 자세로 크게 에스 자를 그리며 감아나갔다. 우리는 죽이 척척 맞았다. 솔솔 풀려나가 주전자에 끓인 물의 수증기를 쐬고 새로운 한 뭉치가 되던 개나리색, 청보리색 털실이 참말로 고왔다. 라면 가락처럼 한 코 한 코 풀려나가는 실을 다 감고 나면 새 옷이 탄생한다는 기대감에 손끝은 날 듯이 움직였다. 우리는 두 개의 스웨터를 동시에 풀어 감으며 양색兩色 털실뭉치를 만드는 신공神工도 발휘했다. 털실이 부활하는 값진 시간이었다.


하룻밤 동안 스웨터 한 벌이 나오는 날이 잦았다. 손때 묻어 반질반질한 대바늘을 부지런히 놀리며 꼼짝 않고 앉아 불면의 밤을 달랬을 그 앙가슴이 무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생업에만 바빴던 어머니는 유폐된 예술가적 기질을 그런 작업으로나마 풀어내어 변신의 보람과 통쾌함을 맛보셨던 게 아닐까.

(중략)

뜨개실을 풀어 새로 감듯 안과 밖을 되감는 중이다. 바람 좋은 창가에 말라가는 내 안의 꽃을 매단다. 그런대로 괜찮은 풍경이 되길.


** 

이 글은 모 계간지에 '변신'이라는 제목으로 보내었던 글 중 일부. 꽃이 마른꽃으로 변해가는 과정과 털실이 변해가는 과정을 두 개의 줄기로 했는데 엄마의 뜨개 부분만 발췌. 

남들은 엄마, 하면 손맛 나는 집밥 뭐 그런 게 일순위로 떠오를 텐데 나는 뜨개가 제일 먼저다. 사실 울엄마는 부엌에서 음식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 손맛도 없는 편이라.^^ 예전에 이 점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엄마라고 모두 음식 잘하고 뭐 그래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재능이 다 다르니 이해해 드려야지. 하기 싫은 주방일을 수십 년 하며 얼마나 벗어나고 싶었을까. 지금이야 두 분이서 속닥속닥 밥 지어 드시지만 뭐. 뜨개도 언젠가부터 눈이 아프니 안 하시고 서화에는 50세 이후 30년, 아직 열심이다. 올봄에 자꾸 뭘 잊어버린다며 혹시나싶어 치매검사를 받으러 모시고 갔더니 같은 연령대 수치보다 훨씬 인지도가 높게 나와 엄마도 나도 안심했다. 3년 만 더 하면 원로작가로 들어간다고, 그때 그 센터를 나오면서 말씀하셨다. 며칠 전에 서예작품 하나 내러 가시고 이제 두 해만 더 내면 된다. 그때까지 건강히 잘 해내시길...



2.


 펀 오브 잇 












이 책의 번역자가 조금 지인의 딸이다. 자랑삼아 공개해 알게 되었다. 딸이 번역을 했다하니 울큰딸 때문에 급 관심이 생겨 좀 자세히 물어보고 책도 구매했다. 전문 번역자로 나선 건 아니지만 영어뮤지컬 쪽으로도 관심이 있어 대학원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하는데 우연한 기회에 처음 번역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아멜리아 에어하트를 어릴 때부터 좋아해 번역한 이 자서전은 어릴 때 영어로 읽었다고 한다. 번역본이 없는 걸 알고 처음 완역하게 되었다고... 훌륭하다.


옮긴이 후기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들은 안전한 미래와 안락한 삶을 위해 진정으로 원하는 일과 열정을 마음 한켠에 숨겨 두기도 한다. 아멜리아 에어하트는 그녀의 심장을 뛰게 하는 즐거움이 향하는 곳으로 다가갔고 즐거움을 원동력으로 많은 비행에 성공한다......이끌리지 않는 일은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운 길로 들어설 줄 아는 그녀의 결단력 역시 빛을 발한다.....

100세 시대에는 그 어떤 것을 시작해도 늦지 않은 나이이다. 성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멜리아 에어하트가 말한 바 있듯 실패는 누군가에게 또는 자신에게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러니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3.

온다 씨의 강원도 

부제는

 '막연하지 않은 강원살이'











올해 1월 옆지기와 속초로 달렸다. 눈발이 조금 흩날리고 기분좋게 추운 정도였다. 숙소를 속초로 두고 속초를 지나 고성 아야진리까지 올라갔다. 그곳은 바로바로 옆지기가 늦된 군인으로 2년 4개월을 복무한 곳. 다시는 그쪽으로 오줌도 안 눌 거라더니 이제는 가끔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해거름에 당도한 아야진리, 그 부대 앞에 당도하니 내가 그 옛날 파릇파릇 24살 때 면회 갔었던 그 풍경이 선연히 떠올랐다. 별로 많이 변하지 않았더라. 돌아 나와서 거진항에 들렀다. 사방이 컴컴한데 작은 불빛들이 명멸하고 조그만 찻집에 이십 대로 보이는 예쁜 여자가 친절하게 차 주문을 받았다.  다음날 햇살 좋은 날, 아바이마을로 해서 바닷가, 갯배를 타고 건너 간 속초중앙시장, 영랑호 등등.. 그 중 칠성조선소 마당 한켠에 있는 칠성북살롱에서 내게 온 저 책은 강원도를 좋아하는 내 눈에 안 뜨일 수가 없었지.


목차를 보면 크게 세 곳, 양양, 속초, 고성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장에서 강원도에 터를 잡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새 삶을 이룬 사람들을 소개한다.  지역 별로 그곳 사진과 좋은 곳 안내가 곁들여 있고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가 따뜻하고 의미있다. 인터뷰를 하여 대화체로 된 문장도 친근하게 읽힌다. 강원살이를 꿈꾸는 사람에게 도움될 책이다. 나는 강원살이까지 꿈꾸진 않지만 기분 좋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기분 좋은 책. 혹시 모르지 그렇게 될 수도.^^





칠성북살롱 안에서, 창가에 앉은 뜨개인형 넘나 이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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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0-14 20: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림책 읽던 큰아이는 그렇게 돌아 돌아 책관련 일을 하게 되는군요??역시~^^
잘할 것 같아요..엄마 닮았으면요^^
예쁜 풍경 사진들을 보면서 글을 읽으니 저도 함께 여행 다녀온 기분이 듭니다!!!
강원도 속초...아바이 마을,속초 중앙시장은 애들 어릴 때 다녀왔었는데 그때 기억이 떠오르네요.속초,양양...강원도도 참 아름다운 곳이에요^^ 강원도도 노후 계획에 넣어놔야 겠군요ㅋㅋㅋㅋ

프레이야 2021-10-14 22:30   좋아요 2 | URL
그림책과 함께한 아이들 참 많이 컸지요. 다니던 직장을 나와 스스로 하고싶은 일로 과감히 뛰어들기까지 고심했을 아이가 좀 안쓰럽더라구요. 모든 청년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행복하면 좋겠어요. 아직 출판된 책은 없지만 창창하길 ^^. 워낙 완벽주의 아이라 열심히 하고 있으니 마음으로 응원하며.

강원도는 갈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매력적이에요. 노후계획에 슬쩍 저도 묻어갈까요. ㅎㅎ

희선 2021-10-15 0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검정 고양이 사진 찍으라고 가만히 앉아 있는가 봅니다 마지막은 녹지 않는 눈사람이네요 날이 따듯해도 추워도 언제나 저기에 있겠습니다 제주도에서 한달 살기, 그런 게 있기도 하던데, 강원도에서 사는 사람 이야기도 있군요 저는 가 본 곳이 없어서 어떤지 잘 모르지만, 강원도에서는 별이 잘 보일 것 같습니다

사진이 다 멋지네요


희선

프레이야 2021-10-15 09:33   좋아요 1 | URL
희선 님 코로나 이후 국내로 시선이 모이다 보니 그런가 봐요. 한달살기 일년살기 유행이죠. 그럴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들, 여건을 만드는 사람들 부럽구요. 녹지 않는 눈사람 귀엽지요. 그러고 보니 이곳 말고도 강원도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세번째 책 내용도 만듦새도 좋구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hnine 2021-10-15 0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중간중간에서 프레이야님의 그동안 소식을 찾아읽는 재미가 있었어요. 프레이야님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봐주세요.
글 속에 드러나지 않은 많은 일들이 있으셨겠지만 그래도 우리 삶은 이렇게 진행중이라는 사실.
강원도를 좋아하시는군요. 어제 휴가 나왔다가 귀대하는 아들 따라서 강원도 철원 다녀왔어요. 두고 오는 길이라서 그런지 유난히 멀게 느껴지는 곳이었어요. ‘이곳은 공기부터 다르다...‘ 제가 남편에게 그랬지요.

저 칠성북살롱 입구 벽의 꼴라쥬가 너무 멋지고, 그 안의 저 눈사람 뜨개 인형은 훔쳐오고 싶도록 예쁘네요.

혼잣말 많아지는 새벽입니다.
좋은 하루 될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21-10-15 11:16   좋아요 1 | URL
에구 아드님 두고 돌아오는 길에 많이 우셨을 거 같아요. 철원은 가 보질 못한 곳이지만 꽤 멀게 느껴지는 곳이고 이땅의 아들들 고생하는 곳이죠. 건강히 복무 마치고 오길 바랍니다. 도시에서 떨어진 마을은 공기가 정말 달라요. 산도 물도 공기도 좋은 강원도.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해냈고 진행중이고 그렇게 나이 들어가네요.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고맙습니다. 마음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mini74 2021-10-1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책이지만 사진이 ! 동백꽃도 예쁘고 까만 고양이는 마녀배달부 키키에 나오는 그 고양이 같아요 *^^* 어머님 정말 멋있으시세요. 그 어머니에 그 딸에 그 손녀에~ 각자 조금은 영역이 다르지만 손재주의 피가 흐르는 ㅎㅎㅎ 눈 호강 하고 갑니다 ~

프레이야 2021-10-15 11:21   좋아요 1 | URL
키키~~^^ 엄마는 오래 서화하며 마음을 다독이는 거 같아요. 다 내려놓고 더 욕심도 없고 그냥 마음 편안하게요 ㅎㅎ 원래 철이 좀 없는 게 저도 엄마를 닮은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 동백은 진짜 땅에 떨어진 게 저래 이뻐도 되나 싶게요. 2월 중순이었는데 비양도의 그날은 완전 봄날이었어요. 미니 님에게도 봄날 ~^^

그레이스 2021-10-15 1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 너무 예뻐요
가보고 싶은 책방들~♡

프레이야 2021-10-15 11:32   좋아요 2 | URL
햇살이 다한 사진 ~ 이쁘단 말씀에 사진이 좋아할 거 같아요. ^^. 속초에 완벽한 날들이랑 동아서점이 유명하던데 거긴 안 가봤네요. 다른 곳도 그렇지만 제주에도 곳곳에 아담한 서점이 있어서 여행길에 한두 군데 들러보게 되어요. 좋은 하루 ^^

stella.K 2021-10-15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엄니도 왕년에 뜨개질 좀 하셨는데...
그게 참 신기하더라구요. 뜨개질 바늘로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스웨터가 나오고, 치마가 나오고.

아, 사진과 달리 서울의 하늘은 흐리네요.
으스스 춥기도 하고. 사진 예뻐요.^^

프레이야 2021-10-15 16:56   좋아요 0 | URL
가을바람 소슬하니 시원하네요. 주말엔 또 요기도 비오고 그러고나면 기온이 떨어질거래요. 스텔라 님 엄니는 치마도 뜨셨군요. 대단대단. 전 교복 안에 겨울에 두툼한 뜨개 바지 입고 다녔지요. 개나리색 털실로 ㅎㅎ 가디건 조끼. 어린 외손녀 모자도 코바늘로 잘 떠주셨어요. 그래서그런지 눈이 빨리 안 좋아지신 거 아닌가 싶어요.

scott 2021-10-15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의 뜨개질 글 전체를 읽고 싶습니다!!
계간지 알려주삼 333

어머님의 멋진 서화 만큼
인생도 멋지게!!


프레이야 2021-10-15 21:24   좋아요 1 | URL
스캇님 ㅎㅎ 앗. 아무래도 자른 그 부분을 이페이퍼 말고 가지 페이퍼에 달아둬야겠네요. 마른 꽃 이야기라서마른 가지랑 어울리겠어요. 나중 적절히 이어서 읽는 신공을 발휘해 주세욤.
 

https://youtu.be/AoYkYxdCSLw




The Power of the Dog
이 영화 몹시 당깁니다.
1925년 미국 몬태나 주 배경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
커스틴 던스트도 이제 세월의 흔적이 많이 보이네요
2009년 이후 12년만에
피아노, 의 제인 캠피온 감독 작입니다.
이번 비프 상영작인데 12월에 넷플에 뜰 거 같아요.
기다려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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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10-14 14: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우 스릴러네요?! 게다가 베네딕트 컴버배치라니 빨리 보고파요♡.♡ㅎㅎ

프레이야 2021-10-14 15:16   좋아요 3 | URL
그니까요 베네딕트 ㅎㅎ 로맨스도 곁들였대요. 풍광도 좋겠죠.

책읽는나무 2021-10-14 19: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휘파람 소리~~완전 심장 쫄깃한데요??

프레이야 2021-10-14 19:54   좋아요 2 | URL
후훗~~ 멋지죠 ^^

mini74 2021-10-1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끌리는데요. 그리고 오이님도 나오시고 *^^*피아노의 감독이라니!!! 피아노 정말 좋아하는 영화라!!! 12월 넷플 기억하겠습니다 *^^*

프레이야 2021-10-15 11:37   좋아요 1 | URL
오이님 ㅋㅋ 피아노 엄청 인상적인 영화로 기억하고 있어요 저도. 하비 키틀도요. 12월1일에 짠!
 

오늘 이곳 도시는 빗방울이 떨어지다 말다 잔뜩 흐리고 바람은 선선했다. 가까운 송정 바닷가 뷰맛집 식당에서 친구가 한 턱을 내기로 하여 셋이 모여 앉았다. 고만고만 같이 자랐던 조그맣던 애들이 어느새 자라 좋은 곳에 취업도 하고 각자 자기 자리에서 열심인 청년이 되었다. 고마운 것들. 영화의 전당 분위기는 다른 날 가서 보기로 하고 돌아왔다. 할 것들이 많다. 사진은 투썸에서 내려다본 송정바다 서퍼들, 까만 점들 보이나요. 좋은 파도를 탈 줄 아는 사람들 보는 것으로 대리만족하며 같이 나이 들어가는 여자끼리 수다 떨고 오니 착한 고양이 모꾸가 야옹하며 나오네 ^^





***


당신의 맏아들은 요즘 툭하면 울컥하고 멍하니 그런다. 맛있는 걸 먹다가도 드라마를 보다가도. 얼마전 '인간실격'에 장례식장이 나오길래 보다가 앗차싶어 얼른 채널을 돌렸다. 오늘 아침에는 주방에서 커피콩을 그라인딩하며 훌쩍이는 게 아니라 엉엉 울고 있었다.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묻다가 앗차 그렇구나 싶어 모르는 척했지만 나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그 마음 안다. 시간이 걸리는 일일 거다. 


아래 글은 엊그제 모 계간지에 '선글라스'라는 제목으로 보낸 글이다. 마침 테마가 '아버지'였고 더 퇴고할 것도 없이 마음에 있는 그대로 단숨에 써서 보내었다. 자꾸 들여다보며 다듬다보면 자가검열에 걸릴까 봐...  글은 참 중요한 것 같다. 당신은 이메일 서랍 속 다섯 개의 편지로 영원히 남아 계신다. 당시 몇 가지 이유로 답장을 드리지 않았고 지금에야 이 글로 답장을 대신한다. 별난 성미로 자식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는 문장 하나만 내 마음에 간직하고 나머지는 다 떠나보냈다. 편히 영면하시길 빈다. 


* * *


스무날이 지나고 하루가 또 저물어간다. 베란다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땅과 하늘 사이 똑같은 성냥갑 속 11층에 부양(浮揚)한 나를 발견한다. 지상에 가로등은 누가 점등하는 걸까. 한 사람의 존재가 하늘 아래 실제로 있다는 생각과 없다는 생각은 실상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영이별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사실 아버님과의 이별은 8년 전에 하였다. 그날 친정 부모님을 모욕하는 실수까지는 하시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이었고, 나는 견딜 수 없는 충격에 마음문을 과감히 닫아버리고 도망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위독하다는 전갈이 왔다. “아버님, 저 왔습니다.” 중환자실에서 혼미한 의식에 매달려 호흡기에 연명하고 계셨지만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수개월 동안 남편과 어머님이 목욕과 수발을 맡았고 결국 요양병원에 모신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너무 놀랐다. 내가 알던 아버님의 몸피가 아니었고 얼굴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언젠가는’ 이라며 유예한 긴 시간을 돌아왔다.


아버님의 건강에 적신호가 보인다는 소식이 들린 건 몇 년 되었다. 길을 가다가도 집에서도 잘 넘어져 정형외과를 찾는 일이 잦고 수면을 하지 못하고 감정이 불안정하다고 들었다. 음주에 불면증으로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복용하신 지 오래라 그런 부작용인가 싶었다. 어느 날부터는 아버지와 대화가 잘 안 된다고 남편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파킨슨이 육신을 야금야금 점령하고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병원을 모시고 가 보았지만 약을 처방해 줄 뿐, 어디서도 병명을 잡아내지 못하고 수년을 보내며 최근에 병세가 급격하게 진행되어 버린 것이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마지막 고갯길을 넘고 계시는 동안, 맏아들인 남편은 병원 복도에서 영정으로 모실 사진을 골랐다. 선글라스를 쓴 사진을 굳이 보여주길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남편은 두 해 전 여든 생신 때 직접 찍어드린 사진이 마음에 당기는 눈치였다. 최근의 가장 건강한 모습이었고 아버지를 잘 보여주는 이미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면 셔츠에 연한 풀색 캐주얼 재킷을 걸친 사진 속 아버님은 짙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턱을 살짝 치켜들고 입술을 고집스레 앙다물고 있었다. 스타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멋쟁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나 좋아하셨던 분이다.


빈소에서 아버님은 선글라스를 쓰고 우리를 지켜보았다. 울다가 웃다가 밥도 먹고 떡도 먹고 문상객을 맞이하고 밤이면 잠을 자는 아내와 아들, 며느리와 손자들을. 생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온 신도들과 예배도 함께하였다. 그분들이 당신의 청년다운 활기와 유머를 회상하며 은총의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광경을 예의 그 미소로 바라보았다. 부리부리한 눈을 감춘 저 선글라스는 이미 육신의 감옥에 갇혀 거동이 어려운 상태로 요양병원에 가실 때 챙겨 가신 물건이다. 선글라스 쓴 영정이 정말 멋지다는 말을 남기고 문상객이 모두 가고 나면 남편은 아버지가 좋아했던 엔카와 남인수 노래를 들려드렸다.


문상객을 맞는 중에 나는 빈소를 오가며 영정을 무시로 바라보았다. 아버님과의 인연은 당신이 마흔일곱 살, 내가 스물한 살 때 시작되었다. 상복을 입은 오십 대의 내 기억 속엔 자꾸만 그때 그 시절, 그러니까 지금에야 드는 생각인데, 저무는 해가 수평선 위에서 마지막 정념을 태우듯 뜨거운 빛을 사르고 있었을 오십 대까지의 아버님이 떠올랐다. 주어진 생을 건사하며 참 고단하였을 한 사람의 눈물겨운 일생과 못다 한 꿈을 나는 떠올렸다. 평생 청춘을 간직하고 싶었을 열망에 마음이 저릿해왔다. 그동안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어제 일인 듯 스쳐가고 좀 더 가닿지 못한 인연의 거리에 서글픔이 하염없이 밀려왔다. 나는 아버님의 조건 없는 애정을 바랐던 것이고 아버님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철없던 그때의 나는 이해해 드리지 못했던 비교적 젊은 날의 초상 앞에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 본다. 생각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생의 지엄한 운명이다. 세상에 이루어 놓은 건 없고 꿈도 청년도 사라져가고 육신은 스러진 풀잎 위 새벽이슬처럼 점점 기울어져 가는 시절, 절박하게 붙들고 싶으셨던 게 있지 않았을까. ()에도 욕심이 많았던 분인데 나는 일종의 심리조종 같은 걸 느꼈고 거부감이 들었다. 주부가, 여자가, 교회에, 이런 말은 친정아버지한테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던 말이다. 반발심이 생기고 내 정신과 생활에 강력한 억압이 되었다. 지나치게 잦은 전화와 간섭에 어디에 나가 있기도 자유롭지 못하고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과감히 도망쳐 나와 떨어져 있는 여러 해 동안 나는 수시로 낯선 땅을 밟으러 다니고 제사도 손 놓고 책을 세 권 발간했다. 영육을 결박하려는 어떤 것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한 셈이고 완벽하진 않지만 적잖이 실행했다고 여긴다. 무엇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못난 점도 인정하고 이해해 주셨더라면 상황은 달랐을지 모르지만, 내가 아버님에게도 그랬어야 한다는 걸 이제야 느낀다.

 

입관 전에 뵌 아버님 얼굴은 여태 본 얼굴이 아니었다. 그렇게나 맑고 순하게 바뀌어 있을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고운 화장을 한 까닭도 있겠지만 하얀 분가루와 붉은 입술연지만으로 그렇게 보일 거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선글라스를 벗은 두 눈은 고요한 봉분 아래 단정히 감겨 있었다. 정한(情恨)도 너무 짙으면 탐욕의 숲에서 그늘이 길어진다. 그 모든 집요와 집착의 그늘을 걷고 순연히 길 떠나는 얼굴은 안식과 평화의 풍경이었다. 가벼운 걸음으로 가시길 빌며, 삼베옷 한 벌 입고 작은 나무집 한 칸에 귀만 열고 하늘을 향한 얼굴에 우리는 작별인사를 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사흘은 금방 흘러갔다. 집에 돌아와 몇 날이 몸도 마음도 뭔가 쓸려 빠져나간 듯 멍하니 또 흘러갔다. 남편은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도 티비를 보다가도 울컥했다. 무엇보다 치부를 씻겨드리는 일은 없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권위와 허세 사이 그 어디쯤을 아들로서 지켜드리지 못한 걸 괴로워했다. 아들에게 치부를 맡길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도 어떤 심정이셨을지 생각하면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오는 육신의 연약함에 아뜩해진다. 우리 삶은 어떻게든 후회가 남는 거라는 말로 위로했다.


며칠이 지나, 오래 닫아두었던 이메일 서랍을 열었다. 우리 사이에 극단의 일이 있기 이전 20132월에 아흘 간격으로 받은 두 개의 이메일을 나는 고스란히 간직해 두었다. 잊고 있었지만 그 이전에도 2011, 2010, 2007년에 보내오신 편지가 3개 더 있었다. 아버님은 당시 복지관에서 컴퓨터를 배워 이메일도 워드도 능숙했다. 노년으로 접어든 삶의 언저리에서 드는 회한, 내 성정에 대한 은근한 질책과 맏며느리를 옥죄는 부담스러운 당부, 장남에 대한 자부심과 기대, 별난 성미로 또 자식 마음을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는 후회와 사과의 말 그리고 우리 가정과 당신의 자손들을 위해 새벽에 드렸다는 기도의 말씀을 다시 보며 미진함이 숙명인 우리 삶과 못다 한 인연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버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선글라스는 다른 유품들과 함께 아직 어머님에게 있지만 조금 지난 후 장남의 책상 서랍에 고이 모실 것이다. 애도의 시간은 정말 이제부터인 것 같다. *


* * *















좋아하는 장영희 책 중, 



이별을 고하며 / 월트 휘트먼


나는 공기처럼 떠납니다. 도망가는 해을 향해 내 백발을 흔들며.

내 몸은 썰물에 흩어져 울퉁불퉁한 바위 끝에 떠돕니다.

내가 사랑하는 풀이 되고자 나를 낮추어 흙으로 갑니다.

나를 다시 원한다면 당신의 구두 밑창 아래서 찾으십시오.

처음에 못 만나더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어느 한 곳에 내가 없으면 다른 곳을 찾으십시오.

나는 어딘가 멈추어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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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0-12 2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송정 투썸이라고 하시니 코로나전 신랑과 함께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셨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그때의 바다가 저 바다였었군요?
뷰맛집도 우리 가족이 갔었던 그 밥집이었었나?싶기도 하구요^^
송정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듯 합니다.

아버지를 잃은 아들은 커피를 그라인딩하며 엉엉 우시다니....에궁..ㅜㅜ
프레이야님께서도 시아버님과의 이별에 마음 정리가 안되셨을텐데...남편분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곁에서 챙겨 드리느라 내색키 힘드시겠습니다...문득 저도 시부모님 돌아가셨을 때가 떠오르네요.
시아버님의 명복을 빌어 드리겠습니다.
하늘에서 프레이야님댁을 잘 보살펴 주시지 싶어요^^

프레이야 2021-10-12 20:17   좋아요 3 | URL
책나무님 좋은 말씀 넘 감사합니다.
님처럼 진즉 그런 일을 치렀더라면 조금 더 일찍 철 들었을까 싶기도 하고요.에구ㅠ
남편분과 오셨던 그곳 맞을 거에요.
송정은 예전보다 요즘 핫플이랍니다. 서퍼들의 성지.
전 수영도 못하는 겁쟁이지만 시원하게 대리만족했지요.
오늘 흐린 바다에 파도가 제법이었거든요.
다음에 부산 오시면 송정 함 갈까요. ^^


2021-10-12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12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12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12 2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1-10-12 20: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 뵙는 동안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프레이야님도 참 쉽지 않은 시절을 사셨네요.
이제라도 시아버님과 화해를 하셨으니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편안하실 겁니다.
프레이야님도 묵은 마음 다 털어내시고 평안하시길...

시아버님의 명복을 빕니다.

프레이야 2021-10-12 20:21   좋아요 3 | URL
스텔라 님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좀 까다롭게 굴었나 싶기도 하고 겉으론 표를 안 냈지만
자책도 하며 후회도 하며 뭐 그렇게 8년이 흘렀네요.
참 오랜 인연인데 결국 이렇게 이별은 오는데 말이죠.
이제 가신 분도 남은 사람들도 평안하시길...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행복한책읽기 2021-10-12 20: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진함이 숙명인 우리 삶. 너무 와닿는 말이에요. 죽음을 목전에 두었거나 눈을 감으신 분들의 얼굴은 쓰신 것처럼 맑고 순하더라고. 주변분들에게 듣곤 했어요. 많은 걸 내려놓은 얼굴들은 그리 되는가봐요. 아버님 가는 길이 평안하셨던가 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애도의 시간은 지금부터. 정말 그럴 것 같아요.
그런데 작가님이셨군요^^;;

프레이야 2021-10-12 21:57   좋아요 3 | URL
에구 그리되나요 ^^
진짜 마지막 얼굴 뵙고 깜짝 놀랐어요. 전 개인적으로 이런 경험이 처음이기도 했고요.
그 얼굴이 눈에 선한데... 얼마나 다행인지요.
욕심 없이 살다가야겠다 싶어요.
따스한 말씀 참 감사합니다.

막시무스 2021-10-12 20: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돌아가신 시아버님의 명복을 빌어드리고, 프레이야님께 위로 드려야 하는데, 정성으로 눌러쓰신 글 앞에 제 마음이 왠지모를 따스함을 얻는것 같아 죄송하기만 하네요!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가족분들이 마음을 잘 추스르시길 기원드립니다!

프레이야 2021-10-12 21:23   좋아요 4 | URL
막시무스 님, 위로 말씀 감사합니다.
따스함을 얻으셨다니 제 맘이 통했네요.^^
잠시라도 생을 뒤돌아보고 생각하게 되니,
그게 이 세상 모든 가신 분들이 철없는 사람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 같습니다.

scott 2021-10-12 21: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며느리에게 꾹꾹 사랑을 담아 보낸 편지 ㅠ.ㅠ 얼마나 사랑스러운 며느리셨는지 프레이야님 진정 따스한 가족 사랑 부모님 사랑, 비어버린 자리 가족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시리라 믿습니다. 힘내세요 프레이야님 ^^

프레이야 2021-10-12 23:31   좋아요 0 | URL
지나친 집착이라고 여겼는데 그런 것도 사랑이란 걸 어렴풋이 알겠어요.
좀 더 살갑게 굴지 못하는 며느리라ㅜㅜ
스캇님 따스한 말씀 고맙습니다. ^^

페넬로페 2021-10-12 2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아버님의 명복을 빕니다.

가족이나 지인의 죽음이나 죽음을 앞 둔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흐릿해지며 알 수 없는 정념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님의 글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숙연해지면서도
과감하게 자신의 길도 선택하신 면에 감동했습니다.
프레이야님의 남편분께도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프레이야 2021-10-12 23:37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 님 위로 전할게요. 넘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시댁친정 합쳐서 처음 치른 일이었어요.
가까이서 지켜보게 된 일련의 풍경이 꿈만 같아요.
제길을 손들어 주셔서 제가 감동하네요.
가족들도 그동안 저를 묵묵히 기다려주었다는 걸 알아요.
그 점 또한 제가 고마워할 일인 거 같아요.
그동안 정신적 수감에서 놓여나 어떤면에선 사실 행복했거든요.
양상은 좀 달라져도 이제 다시 의무로 돌아가야겠지요.

붕붕툐툐 2021-10-12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드라마를 한 편 본 거 같아요. ‘화해‘라는 말이 얼마나 소중한 다가옵니다. 남편 분도 프레이야님도 아버님과의 좋은 추억을 오래오래 행복하게 기억할 수 있을 거 같아 저는 좀 부럽습니다~ 시간이 필요한 일.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지겠지요.
시아버님의 명복을 빕니다.

프레이야 2021-10-12 23:42   좋아요 1 | URL
붕붕님, 다감한 말씀 감사합니다.^^
마음에서 이제 화해가 되나봅니다.
말씀대로 좋았던 일만 간직해야죠. 그리 되는 것 같아요 저절로.
단단해지고 성숙해지고... 죽을 때까지 그 과정에 놓여 있는 게
사람인 거 같아요. 이 또한 지나가리^^

오거서 2021-10-12 2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프레이야 2021-10-12 23:42   좋아요 1 | URL
오거서 님, 명복을 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길 바라요.

오거서 2021-10-12 23:57   좋아요 0 | URL
지난 주에 죽음 관련 신간이 눈에 많이 띄였는데 정리하면서 새삼 깨달은 바가 있어요. 우리는 떠나는 사람을 많이 그리워 하며 잊지 못하지만 영미 쪽은 남아 있는 사람을 더 중시하는 것 같아요. 그들이라고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왜 없겠어요, 하지만 살아 남았으니 삶이 이어지도록 열심히 사는 것 역시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슬픔을 추스리는 데 도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심스레 보태는 말입니다.

프레이야 2021-10-13 05:57   좋아요 1 | URL
오거서 님, 백 번 동의합니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생각은 생을 더 의미있게 살게 하는 힘이라고 여깁니다.
남아 있는 사람은 국밥을 먹고 떡을 먹고 울다가도 웃고 떠들며 고인과 관련하거나 무관한 옛이야기 보따리를 풀었어요.
그런 시간과 그런 장소를 마련해 주더군요, 가시면서.^^ 그렇게 오래 못 보던 친지들과도 얼굴 보구요.
저는 사실 영화 <빅피쉬>에서 살면서 늘 목이 말랐던 아버지를 아들이 안고 강에 넣어주며 아버지 생에 조연으로 빛났던 사람들이 모두 서서 웃으며 박수치고 환호하며 보내드리는 장면을 좋아해요. 그렇게 축복과 즐거움으로 보내드리는 마음이면 좋겠어요. 그렇게 가면 좋겠습니다 누구든. 이야기 더 나누니 좋으네요. 감사합니다. ^^ 이 모든 게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서니데이 2021-10-12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는 유족에게 위로의 말씀 전합니다.

추석연휴 지난지 얼마 되지 않는데, 그 사이 많이 힘드셨겠어요.
어른들 떠나시면, 계실 때는 모르던 것들 한동안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며칠 사이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습니다.
프레이야님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편안한 밤 되세요.

프레이야 2021-10-12 23:45   좋아요 2 | URL
서니 님, 늘 다정한 말씀 고맙습니다.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되는 게 사람의 한계인가 봅니다.
사실 이리 될 줄 몰랐던 건 아니에요.
나중에야 깨달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당시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어요.
억지로 또 나를 죽이기도 싫었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었답니다.
남은 시간 서로 사랑하며 좋은 마음으로 살아야겠지요.
굿나잇!

바람돌이 2021-10-13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행히도 양가 부모님이 모두 살아계시고, 양가 어른 모두가 자식들의 삶에 대해 지들이 알아서 잘살면 된다는 주의라서 좀 편안한 느낌이에요. 그래도 프레이야님 마음이 어떤지 알겠어요. 저는 친정아버지에 대해 그런 애증 비슷한 마음을 참 오랫동안 갖고 있거든요. 지금은 저도 나이들고 아버지도 연세가 많으셔서 좀 관계가 많이 동글동글해졌지만 참 오랫동안 날카로웠어요. 사실 지금은 제가 아버지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애증이란건 좀 어려운 감정이더라구요.
프레이야님 오랫동안 마음고생하셨을텐데 언제나 그렇듯이 훌륭하게 마음 갈무리하시고 마음의 평안을 느껴가시는게 글에서 느껴지네요 . 저도 언젠가는 좀 애증이라는 감정에서도 놓여나고 좀 편안해질 수 있겠죠 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더불어 가족분들에게도 조금 더 편안한 마음이 빨리 찾아오기를 기원해요.

프레이야 2021-10-13 10:37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 님, 고마운 말씀 잘 흡입합니다.^^
애증의 관계는 가족간에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많이 둥글어지는 것 같아요.
어른도 처음부터 어른이 아니었으니 그럴 듯요. 늘 마음 가운데 평온이 깃들길 바라요.

희선 2021-10-13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는 정말 힘들게 느껴지는 게 지나고 나면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레이야 님 시아버님이 프레이야 님을 사랑해서 여러 가지 바란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식구가 조금 더 편하기도 하니 상처를 주기도 하는군요 그러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게 잘 안 되기도 하는...

사람이 죽는다 해도 막상 그런 일을 겪으면 무척 슬프겠습니다 지금은 슬퍼할 때겠지요 남편분과 이 시간 함께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희선

프레이야 2021-10-13 10:39   좋아요 1 | URL
희선 님, 뒤늦게 알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적절한 거리두기가 필수인데 말이죠. 시간이 가면서 드러나는 것, 사라지는 것,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어요. 고맙습니다.

캐모마일 2021-10-13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 댓글을 썼다 지웠다 또 지나서 썼다 지웠다를 여러 번 했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뭉클합니다 울컥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쓰는데 표현이 잘 안 되네요 내가 아버님에게도...극단의 일...이메일...다 읽고 나니 여러 생각과 감정이 들고 그랬습니다 제 부족한 표현력이 안타깝네요

프레이야 2021-10-13 10:42   좋아요 1 | URL
캐모마일 님, 위로가 되는 말씀 감사합니다.
이렇게 또 생의 한 마디가 생기고 그 자리가 단단해지나 봅니다.
항상 좋은 면을 보고 나아가야겠어요.
오늘도 캐모마일 님에게 보람있고 즐거운 하루가 되길 빌어요.

그레이스 2021-10-13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적시는 글 너무 감사합니다.
어머님 보내드린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프레이야 2021-10-13 19:19   좋아요 1 | URL
에구 그러셨군요. _()_
좋은 기억만 갖고도 늘 그리우시지요.^^
제 친구들도 한두번 겪은 일인데 저는 이제야 처음 치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