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28일 시작, 총 28시간 소요 녹음완성.

2012년 7월24일 1차 편집 시작.

 

 

녹음 속도가 빨라 편집할 도서가 많이 밀려있다.

지난 주 김훈 장편소설 <흑산>(총 19시간) 1차 편집을 마치고 오늘 <화차> 편집에 들어갔다.

 

미야베 미유키가 장치해놓은 복선들이 다시 눈에 띄었다. 혼마의 시선으로 표현된,

사람을 묘사하는 섬세한 눈과 사람을 꿰뚫는 예리한 눈은 동시에 작가의 것이리라.

소비자금융규제법과 개인파산에 대한 것까지 오늘 편집한 부분에서 나왔는데,

작가의 치밀한 자료조사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이 책의 주제로 통하는 '거울'에 대한 복선이 아주 초반부터 눈에 띈다.

 

다리 부상으로 휴직을 하고 있는 형사 혼마는 불현듯 옛날 일이 떠오른다.

상습절도범 소녀에 대한 기억인데, 솜씨가 좋았던 그 소녀는 훔친 고급 브랜드의 옷과 시계나

액세서리까지 한번도 밖에 나갈 때 착용하질 않았다.

 

대신 아무도 못 보게 방문을 걸어 잠그고 커다란 전신거울 앞에서 이것저것 번갈아 입어보았다.

오로지 자기 방의 거울 앞에서만. 그러면 어울리지 않는다는 핀잔을 들을 염려도 없으니까.

......

아무도 없는 곳에서만 자기주장을 한다. 찔리는 구석이 있으면 다 그렇게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 소녀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 벌써 이십 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이다. 어쩌면 당시의 자기 나이 또래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입을 굳게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는 그녀에게 설교를 늘어놓으려 애쓰면서 변변히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던 풋내기 형사의 얼굴 따윈 잊은 지 오래겠지만. (p9)

 

 

우리는 착각 속에 산다. 행복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정작 무언가를 손에 쥐면 행복할 것 같지만 절대 오래가지 않는다. 모든 건 순간이다. 그 느낌마저 순간의 착각이다.

가즈오의 약혼자, 한순간에 사라진 여인 세키네 쇼코는 "나는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다"고 말한다.

어떤 게 행복일까? 크고 아름다운 집이 있으면 행복해질 것 같았던 쇼코, 우리의 다른 이름이 아니고 무얼까.

 

이 세상에는 다리를 원하지만 허물벗기에 지쳐버렸거나 게으름뱅이거나 벗는 방법을 모르는 뱀이 수없이 많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뱀들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을 파는 뱀도 있다는 말씀. 그리고 뱀들은 빚을 내서라도

그 거울을 사고 싶어하는 거예요. (p347)

 

거울은 당연히 있는 그대로 비춰줄 것 같지만 거울마다 약간은 다른 느낌을 준다. 확실히 어떤 거울은 실제보다

이쁘게 보이게 한다. 옷가게 거울 앞에 서면 모델처럼 날씬한 내가 서있어 기쁘고 놀라운 경험이 다들 있을 거다.

그러면 당연히 그 거울을 사고 싶지만 대신 옷을 사고 만다. 집에 와서 입어보면 실망하겠지만.

우리는 뱀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 하나를 사기 위해, 행복이라는 이름의 착각을 사기 위해

결국 행복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끔찍하고도 아름다운 비유가 <화차>를 더 무게 있게 한다. 

이 책 편집하며 한 번 더 읽게될 거라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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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7-24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차는 영화만 보고 책은 못 읽었어요.
이 페이퍼만 읽어도 좋으네요~~~

프레이야 2012-07-25 23:57   좋아요 0 | URL
오기언니, 영화도 좋았는데 책으로 읽어보면 더 좋을 거에요^^

맥거핀 2012-07-25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인용하신 일부분만 보고도 미야베 미유키가 상당히 날카로운 관찰자라는 걸 알겠습니다. 아마 소설에서는 혼마 형사와 관련하여서도 재미있는 부분이 꽤 있는 것 같군요. 소설을 읽고 싶도록 만드는 글이네요.

프레이야 2012-07-26 00:00   좋아요 0 | URL
저는 미미여사의 다른 작품은 그다지 당기지 않아 피했는데 다른 것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에요. 이야기는 혼마의 힘으로 시종 끌고가는데, 혼마를 비롯해 다른 등장인물도
그녀(작품 속 쇼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해요. 그녀 안에서 자신들을 본 거겠지요.
원작의 엔딩이 전 영화보도 더 좋았어요.
그치만 변감독의 영화도 좋았어요.^^

라로 2012-07-25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여사는 돈으로 생기는 인간의 탐욕과 퇴락을 아주 잘 표현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책을 읽을 자신은 없어요,,,전 그녀의 [이유]읽고 무서워서 잠을 설쳤;;;
하지만 영화는 볼만 하더군요..오히려 영상이 어쩔 땐 더 쉬워요, 제겐.ㅎㅎㅎ

프레이야 2012-07-26 00:00   좋아요 0 | URL
ㅎㅎㅎ 무서운 거, 잔인한 건 잘 못보는 뤼야님.
'화차'는 그런 장면은 없어요. 영화도 좋았어요.^^

blanca 2012-07-25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녹음하시는 중이군요. 저는 미야베 미유키가 이 소설이 처음이었는데 정말 기대 이상이어서 너무 탐닉하며 읽었던 기억이 나요. 가벼운 책인 줄 알았는데 읽으며 소름이 돋더라고요. 자본주의의 한켠에서 몰락해 가는 사람의 모습을 어떻게나 절절하게 그렸던지... 나중엔 슬프더라고요. 프레이야님이 편집 작업도 하시는군요!

프레이야 2012-07-26 07:51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녹음은 마쳤고 1차편집 중이에요.^^
저도 미미여사 소설은 이게 처음이에요. 님의 멋진 리뷰도 기억나구요.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어요. 오늘 편집분 중, 미조구치 변호사의 말,
개인파산을 한 쇼코에 대해 "그건 꼭 그녀만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현대사회의 신용대출 파산은 어떻게 보면 공해 같은 겁니다." 기억나시죠? ^^
눈의 무서움, 이런 짧은 단어 두 개로도 비유되고요. 겉은 멀쩡하고 화려하고 순백해도
덮여있는 슬프고 비루한 현실과 욕망이란 무서워요. 자본주의 거탑 아래 서서히 몰락해 가는...
네, 절절하면서도 참 담담하게 그리고 있구나, 생각 들었어요.

라로 2012-07-26 17:12   좋아요 0 | URL
저 치매 맞나봐요,,ㅠㅠ
저 위의 댓글 달면서 블랑카님이 한, '자본주의'니'몰락'이니 뭐 그런 단어가 생각이 안 나는거에야요,,흑흑
그래서 돈, 퇴락,,,이런걸로 썼다는,,,도대체 돈, 퇴락,,수준차이 나게 이게 뭐랍니까???ㅠㅠ
인간의 탐욕만 제대로 기억이 나더라는,,ㅠㅠ
명사를 잊어버리는게 먼저라더니,,ㅎㅎㅎㅎㅎㅎㅎ맞는 말이에요.훌쩍

프레이야 2012-07-26 19:15   좋아요 0 | URL
뤼야님, 저도 그래요.ㅠ 단어가 생각 안 나고 뭐든 깜박하고 그래요.ㅋㅋ
근데 자본이나 돈이나, 퇴락이나 몰락이나 그게 그거죠.ㅎㅎ

2012-07-28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훗. 거울을 사야 하는 거였군요. 옷이 아니라.
여튼 굉장히 섬뜩하고도 와닿는 비유입니다. <화차>는 역시 좋은 책이군요..
그나저나 녹음하면서 좋은 책들을 천천히 읽을 수 있는 프레이야님의 독서가 부럽습니다.^^

프레이야 2012-07-28 12:54   좋아요 0 | URL
섬님, 화차, 역시 영화도 좋지만 원작이 좋았어요^^
거울아,거울아, 하던 백설공주랑 계모 생각도 나네요.ㅎㅎ
사람관계도 그런 것 같아요. 내 보기에 좋은 거울을 만드는 일,
그게 행복한 관계를 만드는 일 같구요. 그러고 보니 거울이 다시 보입니다^^

2012-07-31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31 0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년 7월 18일 녹음시작, 7월 24일 마침. 총 10시간 남짓 소요.

 

오늘 이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의 말에서 '희망'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절망스러운 것인지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의 절망은 희망의 이마를 살짝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장영희 교수는 에필로그에서 자신이 "희망을 너무 크게 말했나"라고 반문했다.

희망을 가지라고 조언도 하지만 결국 그 희망 때문에 열정을 다해 살아낸 생이지만

누구나가 그렇듯, 조금 더 생명을 연장하긴 했겠지만 그녀는 이 세상에 안녕을 고하고

아끼는 사람들 곁을 떠났다. 몇 차례의 암 투병과 힘든 치료 과정을 다 겪고.

 

희망을 노래하는 게 어쩌면 동화 같은 이야기일지라도 장영희의 이런 인터뷰는 신선하다.

이 책의 에필로그 도입 부분이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질문자가 내게 빼놓지 않고 하는 질문이 있다. 신체장애, 암 투병 등을 극복하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이다. 그럴 때마다 난 참 난감하다. 그래서 그냥 본능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의지와 노력으로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니라 내 안에서 절로 생기는 내공의 힘, 세상에서 제일 멋진 축복이라고, 난 그렇게 희망을 아주 크게

떠들었다. 여러분이여 희망을 가져라,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p231)

 

 

 

엄마가 직장암 3기 말에 대수술을 한 지 만 5년이 되었다. 그동안 잘 견뎌오셨고, 병원에서는 5년만에 대장 내시경을

해야한다고 했고 어제 예약해둔 대로 하셨다. 다른 이상은 없다. 다행이다. 용종이 하나 있어 조직검사를 해두고 오셨다.

결과가 나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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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7-24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술 후 검진결과가 좋다니 다행이어요.
어머님이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지요.^^
이 책은 어떤 부분을 읽어도 좋았어요~~

프레이야 2012-07-26 00:10   좋아요 0 | URL
네, 언니, 결과 좋기를 바래요. 아버진 훨씬 더 연세가 많으신데 사실 노인인데
겉으론 그래 안 보여서 아직도 청춘일 줄만 알아요, 제가요. 기력이 좀 없으신가 봐요.
날도 더운데... 몸에 좋은 것 사드려야겠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7-25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하네요..3기셨어도 수술하고 좋아지실 수 있는거군요.
가까운 지인의 부모님께서 모르고 계셨다가 대장암 말기로 판명이 나셔서 마음이 심난하네요.
함께 계실 때 더 잘해야 겠어요...
더운데 잘 지내고 계시죠?^^

프레이야 2012-07-26 00:12   좋아요 0 | URL
현맘님, 무더위에 지치지 않고 잘 지내지나요? ^^
주위에 암환자가 적지 않아요. 건강합시다!!!
엄마의 5년 전 그 때가 기억나요. 더울 때였지요. 병원에서 밤을 새던 몇날.
조직, 결과 좋게 나오길 바라고 있답니다.

라로 2012-07-25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능의 힘,,,정말 맞는 말이에요,,
그나저나 어머님 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제 친정 엄마도 그렇고,,,
딱히 잘 해드리는거 없지만 말이에요,,^^;;

프레이야 2012-07-26 00:13   좋아요 0 | URL
살아야겠다는, 살려는, 잘 살려는, 그런 건 정말 본능인 것 같아요.
몸도 알아서 반응하구요.
뤼야님 어머님도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바랍니다^^
우린 진짜 잘해드리지도 않고 허당 맏딸 같아요. 나만 그런가.ㅋㅋ

2012-07-28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능의 힘'이라고 말할 줄 아는 장영희 선생님은 역시 냉철한 이성을 가지신 분이셨구나 싶어요. (어디서 장영희 샘께 배운 분이 그런 분이라 하셨어요. 따뜻하고도 냉철한 분.)
어머님께서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프레이야 2012-07-28 12:56   좋아요 0 | URL
장영희 샘이 실제로도 그런 분이군요.
글과 사람이 일치하고 삶과도 일치하는 게 올바르겠지요.
엄마는 결과가 좋게 나와서 다행이에요. 일년 후 또 검사 대장 검사 하러 오랬답니다.
고마워요, 섬님.^^
 

 새로 시작할 책을 고르던 중 점자도서관 책꽂이에서 손을 기다리고 있는 책들에는 별로 마음이

가지 않아 내 것에서 고르던 중 2009년 6월 8일 읽었던 이 책에 다시 손이 갔다.

점자도서관에 대기 중인 책은 모두 기증도서로 채워지는데 나는 이 부분이 좀 거슬리긴 하다.

신간 위주로 녹음을 하는 게 좋다면서도 왜 점자도서관 측의 지원은 없는지, 몇 번인가 팀장에게

물어봤지만 개운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꽂혀 있는 책이 제법 모두 녹음되고 나가야 다른 책이

온다는 말도 납득되기 어렵고.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내가 갖고 있거나 내가 새로 구매한

책을 녹음도서로 하는 일이 자주 있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좋다. 듣는 분들에게 유익하면 좋은 일.

 

이 책, 저자도 제목을 두고 고심했다고 고백했지만 결국 김종삼 시인의 싯구를 딴 제목.

'기적'이라는 단어에 쏠렸고 '살아온'과 '살아갈'에 새삼 사로잡혔다.

표지의 꿈꾸듯 사랑스러운 분위기에 끌렸지만 가장 큰 이유는 동시대를 살다가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책의 글이 다시 읽고 싶어져서였다.

그리고 내 목소리를 들을 분들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편안하면서 진솔하고 꾸밈없이, 생에 대한 애정이 물씬, 발랄한 저자의 글을 읽으며

그녀가 환하게 웃던 생전의 얼굴이 떠올랐다. 삶에 대한 열망과 희망으로 반짝였던 그 얼굴이.

 

 

2012년 7월 18일 녹음 시작, 벌써 38페이지 정도만 남았다.

매미 소리 울울창창 애절한 아침, 이영배 역도선수의 웃음 띈 얼굴을 티비에서 봤다. 4년 전 은메달을 따고 너무나

시원스레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던 장면과 함께 짧은 인터뷰가 나왔는데 아주 기분 좋은 웃음과 말이었다.

자신의 목표는 금메달이 아니었고 단지 메달이었다고. 그래서 더없이 행복해 웃음이 났다고.

3일 앞으로 다가온 런던올림픽에서는 더 부담없이 경기에 임할 수 있겠다고, 무언가의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은,

우리가 열정이라고도 부르는 어떠한 욕망에 초연한 태도가 내겐 오늘따라 더 감동적이었다.

열심히 해서 꼭 금메달을 따겠다는 말보다 백배는 더 훌륭하게 들렸다.

 

 

건강, 특히 암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극대화되어 있는 요즘, 삶의 열정이 지나친 것도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는 말을 늘

염두에 두는 편이다. 치열하게 살고 있지않은 내 삶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겠고 다 태우지 못하는 숨겨진 열정에 대한

자위의 말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나는 스트레스를 일종의 '허기' 또는 '공복감'으로 본다.  

그 허기의 종류는 무수하고 그 갈래 또한 섬세하다. 스트레스는 같은 상황에서도 받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걸로 보아 상대적인 것이지만 어느 정도의 객관성은 있다고 본다.  굳이 암이나 어떤 몹쓸 병을 생각한다면

깨끗한 먹을 거리로 잘 먹고 양질의 잠을 잘 자고 편안한 마음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전적인 요인도 있을 것이다.

단지, 열정이란 말은 흥겨운 꽃노래만으로 볼 수 없다. 지나친 성과욕, 현시욕, 지나치게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의 태도,

이런 것들이 하나의 스트레스가 된다고 한다. 우리 몸과 영혼은 열정에 의해 타들어가고 억압 받고 불편해진다.

몸과 영혼이 그걸 느끼는 순간 그것에 대적해 싸우려하는 태도가 동시에 발동하고 몇날을 몇달을 싸워야할지도 모른다.

그게 몇날 몇달이 아니라 좀더 지속적으로 오랜 세월의 태도로 굳어진다면, 우리 몸은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열병이나 다름없는 사랑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수긍하자.

장애를 평생 안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더 치열하고 열심으로 살았던 장영희 교수의 글을 읽으며

사람이 한 세상 살다 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좀더 느긋해지자. 의도적으로라도.

 

 

오늘은 방학을 한 작은딸을 데리고 오후에 가서 녹음 마치고 올 예정이다. 지금은 신명나게 사물놀이 연습하러 갔다.

그런데, 매미! 저렇게 한 계절 열정적으로 울어대다니... 그러니 단명하는 건가, 하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어 우습다.

아이는 윗층 일반 도서관에서 책 읽고 있겠다네. 생각해보면, 딸아이랑 이런 시간 가질 기회도 점점 적어질 테니

먼저 그렇게 말하며 따라가겠다고 하는 아이가 고맙다.^^

 

 

영작문을 가르칠 때 나는 미국의 유명한 수필가인 E.B. White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글을 잘 쓰는 비결에 대해 '인류나 인간(Man)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man)에 대해 쓰는 것'

이라고 했다.

즉 거창하고 추상적인 이론이나 일반론은 설득력이 없고, 각 개인이 삶에서 겪는 드라마나 애환에 대해 쓸 때에만

독자들의 동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화이트의 말을 인용하는 데는 다른 의도도 있다. 영문과가 아닌 학생들에게 글쓰기의 이론을 가르치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학생들 숙제를 읽을 때 지루함을 덜기 위해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추상적인

글보다는 좀 재미있는 일화 위주의 글을 읽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행복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잊지 못할 사람' 또는 '잊지 못할 그날'에 대해서 쓰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p156)

 

 

 

장영희 교수나 화이트의 말은 경험한 것만 쓰겠다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과도 같은 말이다.

 

The writer must write what he has to say, not speak it.  - Ernest Hemingway

 

 

 

덧) 장영희 교수의 책 중 갖고 있는 세 권과 안 갖고 있는 세 권. 표지가 모두 예쁘다.(우선은 표지에 늘 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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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7-24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주 중요한 것 알게 됐어요. '인류나 인간(Man)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man)에 대해 쓰는 것'
그런데 저는 사적인 생활의 글 - 제 자신이 드러난 글- 을 쓰고 나면 후회될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극복해야 할 문제이군요.
뽑으신 인용문, 훌륭해요. 네 번째 문단의 열정에 관한 글도 훌륭해요. ㅋ
노트에 적어 놓겠습니다.
1. 글을 쓸 땐 한 사람에 대해 쓸 것.
2. 삶의 열정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조심할 것.

저,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님 덕분에요.

프레이야 2012-07-24 19:32   좋아요 0 | URL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에 대해 쓰는 게 좋다고 말한 헤밍웨이도 그런 의미로 한 말 같아요.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 속에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나겠지요.
극복해야할 문제 맞아요, 제게도. 어떻게 녹여내느냐의 문제 같아요.
페크님, 나이 들어가는 것의 좋은 점이라면 열정을 다스릴 줄 아는 지혜 같은 것이겠지요.
저는 아직도 멀었답니다.^^

비로그인 2012-07-2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스트레스를 일종의 '허기' 또는 '공복감'으로 본다.

그 허기의 종류는 무수하고 그 갈래 또한 섬세하다"



스트레스에 대한 곱지만 아주 섬세한 표현이세요..
기억하여 전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서 따로 수첩에 적어두었습니다..

둘째 따님과의 시간에 대한 일상을 넘어서는 애틋한 자각... 그리고 그것을 아끼시고 소중하게 채우시려는 마음이
손에 잡힐듯이 느껴져요..
더운날씨.. 평온한 오후이시길 바래봅니다..

프레이야 2012-07-24 19:35   좋아요 0 | URL
오늘 하루도 햇볕이 대단했어요. 하지만 우리 모녀는 도서관에서 시원하게 보냈어요.
최고 피서지에요. 녹음실은 더 그래요. 일반 도서관은 전기 절약 차원에서 에어컨 틀어주지 않고
선풍기만 돌려서 좀 더웠다고 딸이 그러네요. 저녁인데 매미소리는 그치질 않네요.
허기를 오늘도 내일도 항상 잘 달래보렵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몸에도 좋다고 하는데 지나치면
뭐든 좋지 않을 것 같아요, 현대인들님.^^

순오기 2012-07-24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내가 에세이 써야 했던 일 알죠?
그때 미친듯이 장영희 교수님 에세이집 읽었어요. 그리곤 좌절~~ ^^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요것만 없고 다 있어요,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프레이야 2012-07-26 00:15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언니 ^^
좌절은 왜 했대요.ㅎㅎ
장영희님처럼 그렇게 쉽게 쓰기가 사실 더 쉽지 않긴 해요.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이 책도 표지 엄청 이뻐~~요^^

라주미힌 2012-07-25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영희씨의 글을 프레이야님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저만 모르는건가;;;; )

프레이야 2012-07-26 00:16   좋아요 0 | URL
방법이 없어요.^^ (속으론 다행)
라주미힌님도 장영희님 글 좋아하시는군요.

라로 2012-07-25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영희 선생님의 골수 팬이라 그분의 책을 다 갖고 있지롱요~~~.그뿐 아니라 그분의 아버지인 장왕록교수님의 책까지 다 갖고 있어요,,,저 정말 그분들 참 사랑해요,,,

프레이야 2012-07-26 00:18   좋아요 0 | URL
골수 팬인 거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장왕록교수 책까지요!!! 우째우째.^^
이 책에,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읽다가 울컥했어요.

2012-07-28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뒤쪽 세 권을 안 가지고 있어요. 아, 맨 앞 책은 누구 줘버렸구나.... 뤼야님만큼의 팬은 아니군요. 프야님과 저는. (아마 가까운 미래에 뒤쪽 세 권도 다 가지게 될 듯.. 뤼야님의 뽐뿌질 땜에요.ㅎㅎ) 우와 장왕록 교수님 책까지 다 갖고 있다니, 대단하십니다 뤼야님.

프레이야 2012-07-28 12:57   좋아요 0 | URL
그죠? 뤼야님은!!!
<내 생애 단 한번>의 표지 파란 나비도 넘 멋지요.
이 책 제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던데 사람들이 '생의' 또는 '생에'로 잘못 아는 경우가
많더래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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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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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중략)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권정생 선생의 2000년 작, 시 '애국자가 없는 세상'의 일부다. 이 시를 보면 나는 존 레논의 'Imagine'을 떠올린다. 평화주의자의 노래이지만 반역과 혁명의 노래다. 1996년 녹색평론사 개정증보판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에 실린 유일한 시다.

 

 

1996년 12월 <우리들의 하느님> 책머리에 선생은 "오늘날 이 지구 위엔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그러나 아직도 끔찍한 살인과 약탈은 끊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도의 지능으로 속임수를 써가며 죽이며 빼앗습니다. 그 방법이 너무나 교묘하기 때문에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습니다.(10쪽, 우리들의 하느님)" 라고 직접 쓰고 있다. 선생이 흙집 댓돌에 흰 고무신 한 켤례를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가신 지 5주년, 그 정신을 기려 산문집 <빌뱅이 언덕>이 나왔다. 당연히 머리말을 대신할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고 안상학,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사무처장이자 시인이 나섰다. 권정생 선생은 손수 산문집을 내지 않았고 낼 뜻도 없었던 분이다. 1986년 산문집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와 1996년 <우리들의 하느님>에 이어, 세번째 산문집 <빌뱅이 언덕>은 평소 전집 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선생의 뜻을 지켜 전집으로 엮어도 좋았을 시 일곱 편과 동화 한 편까지 부록으로 안는다. 

 

 

그 중, 전에도 보았던 시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 2'는 선생의 인간적인 면을 꾸밈없이 보여주어 웃음을 머금게 한다.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 2

 

 

도모코는 아홉 살/ 나는 여덟 살/ 이 학년인 도모꼬가/ 일 학년인 나한테/ 숙제를 해 달라고 자주 찾아왔다.//

어느 날, 윗집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도모코는 나중에 정생이한테/ 시집가면 되겠네/ 했다.//

앞집 옆집 아웃 아주머니들이 모두 쳐다보는 데서/ 도모꼬가 말했다./ 정생이는 얼굴이 못생겨 싫어요!//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도모꼬 생각만 나면/ 이가 갈린다.

                                                                                              - [사람의 문학] 1997 

 

(p335, 빌뱅이 언덕)

 

 

선생은 자신의 반성만을 형식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도모꼬, 그보다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를 갈고 있는 못생긴 정생이 모두를 반성한다. 이 시는 어쩔 수 없이 비루한 인간성에 대한 참회이자 연민이다. 작정하고 하는 참회가 아니라 도모꼬 생각만 나면 이가 갈리고 그럴 때마다 불쑥 튀어나오는 반성이다. 그만큼 진실하고 강하다. 미사여구나 사족, 변명이나 미화도 없다. 이런 특징은 말할 것도 없이 선생의 산문 전반에서 두루 나타난다.

 

 

두 번의 전쟁 속에서 겪은 죽음의 공포, 가난과 병마, 유랑걸식, 가족과의 이별 등 기구한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하기보다 그 모든 걸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가난을 자발적으로 실천하며 세상과 사람, 이웃과 자신에 대한 가감없는 성찰로 반역과 혁명의 꿈을 오로지 펜으로 펼쳐 주장한 그의 글은, 여전히 우뚝하다. 정치, 경제, 환경, 미제국주의의 횡포를 보는 정확한 눈과 농민의 삶과 어린이의 삶, 우리말과 글이 행복할 수 있는 방안 등에 대한 제언 또한 거침없다. 그때의 세상이나 지금의 세상이나 달라진 게 없고 더 나빠진 면도 많지만 선생이 지향하는 진심이 세월이 간다고 퇴색되지는 않을 것이다. 풍요와 발전을 추구하는 세상에 어쩌면 천연기념물이 될지도 모를 그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산문과 동화, 시작품들이 하나의 브랜드가 될지라도 지켜야할 가치가 충분하다.

 

 

특히 다섯살 때 성경이나 강독에서가 아니라 예수상의 그 헐벗고 고통스러운 이미지를 보고 기독교신자가 된 선생이 훗날 예수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부분과 우리나라 기독교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나아갈 바를 주장하는 글은 매섭다. "약한 자가 가장 강한 자가 될 수 있다"는 선생의 역설을 간과해선 안 될 일이다. 선생은 하느님이 철저히 자유로운 몸을 주신 걸 은혜로 알며 살았고 "불가능한 것을 되도록 속히 포기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쉽게 하도록 만든다(작은 이야기, 2001)"며 가난한 사람에게도 우주는 그만큼 너그럽다고 생각했다. "자유로운 꼴찌는 그만큼 떳떳하다"고도 강변했다.

 

 

화려하게 치솟은 교회의 건물은 하느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릴 장소가 못 된다. 거기에는 인간의 사치와 낭비와 교만이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 성서는 불의와의 타협에 쓰이는 병법서가 아니다. 우리 모두 어떤 신분이나 지위보다

사람이 되어 하느님의 참모습을 볼 줄 알자. 그래서 가난한 세상을 만들어야만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 [경향잡지] 1987

   (빌뱅이 언덕, p221)

 

 

선생의 정신은 한 마디로 가난의 정신이다. '가난' 위에 서있다. 빌뱅이 언덕 두 칸 오두막집처럼 철저히 외톨이로 꼿꼿이.

 "풍요와 편리 때문에 결국 우리는 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p178)" 고 쓴 선생은 사람이 자연과 공생하며 본래의 가난으로 돌아가 산다면 욕심으로 인한 전쟁도, 욕망으로 인한 상실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찮고 더러운 강아지똥에서도 피어나는 한 송이 민들레처럼 생명이 있는 낮은 곳의 이야기, 비나리 달이네집과 몽실언니처럼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의 이야기는 선생의 삶만큼이나 눈물겹다. 우화나 동화를 빌어와 알기쉽게 가르치는 산문은 어른이나 아이 모두에게 읽히기 쉽고 받아들여지기 쉽다. 삶이 글이고 글이 삶이었던, 선생의 유산은 오롯이 '어떤 지향점'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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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7-22 0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서점에 간길에 권정생님의 책들을 이것 저것 들춰보다 왔답니다.
집에 와서 올라와있는 리뷰들을 보니, 의외로 비판적인 것들도 있더군요. 가난을 미화시킨다는, 가난은 극복되어야 할 것이 분명한데 왜 거기에 안주하라는 무언의 암시를 하느냐 등등.
전 아직 이분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요. 하도 유명하고 내용을 대충이나마 알고 있다보니 마치 읽은 것 처럼 착각할 뿐이지요.
하지만 언젠가 한번 진지하게 읽고 생각해봐야 할 작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 2012-07-24 08:12   좋아요 0 | URL
나인님, 권정생 선생의 글은 그 정신과 삶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더 가치 있는 것 같아요.
그저 구호에 그치지 않은 지향점이랄까, 저는 늘 그렇게 생각해왔어요.
그의 정신성은 '가난'이라는 점은 그런 의미로 해석해야될 것 같아요. 비판적 시각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하나일 수는 없으니까요. 그분의 생애와 궤적을 같이 읽어가다보면
훨씬 더 많이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오늘날의 가치에는 쉽게 타협되지 않는 점이 많다는 것도요.
'빌뱅이언덕'은 '우리들의 하느님'보다 읽기에 책이 좀더 편안하게 나온 것 같아요.
표지도 부드러운 인상이구요.^^

2012-07-23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4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7-24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 분의 생각에 공감해요. 사람들 생각이 다 같을 수는 없기에
비판적인 리뷰가 나올 수 있죠. 권정생 선생의 글에서 김구 선생의 글이 생각나서 옮겨 봅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김구 저, <백범일지>에서.


프레이야 2012-07-24 19:39   좋아요 0 | URL
페크님, 백범일지의 저 구절 저도 기억합니다.
문화의 힘!!! 그걸 길러야 강대국이 된다고 했지요.
권정생 선생의 글도 그런 의미에서 읽어도 의미가 있겠네요.
고운 우리말을 지키자는 구체적인 지적도 글에서 많이 나옵니다.

... 2012-07-2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신간평가단이셨군요. 그 부지런한 알라디너만 한다는!!!

프레이야 2012-07-26 00:18   좋아요 0 | URL
히히~ 안 부지런해요. 이것도 하루 늦게 썼어요.^^
 
[랄랄라하우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랄랄라 하우스 - 묘하고 유쾌한 생각의 집, 개정판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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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가의 수필과 시인의 수필을 각각 몇몇 읽어본 적이 있다. 두 종류의 수필이 딱히 어떻게 다르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어딘지 다른 데가 있다. 물론 개인의 특성이 우선일 테다. 시인은 산문인 수필에서도 시적인 비유와 음률이 느껴지는 문체를 쓰는 경우가 많고 시의 분위기가 산문의 분위기에도 연장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정록, 김선우, 문태준 등이 내겐 그랬다. 소설가의 수필은 이야기가 느껴져 또 좋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김훈의 것이 그렇고 공지영, 윤대녕, 한창훈의 것도. 김영하는 관심에 두었던 작가는 아니지만 그의 소설보다 수필을 먼저 읽게 된 셈이다. 얼마전 문학상도 수상하여 이름값에 박차를 가하려는 듯 <랄랄라 하우스>를 2005년 초판에 이어 원고를 추가하고 편집과 디자인을 개선하여 나왔다. 우선 제목이 '랄랄라'스럽고 마음산책의 사랑스러운 책표지가 마음에 든다. 원고를 밟고 앉아있는 고양이의 복슬복슬 요염한 발에 마음이 대책없이 노골노골해진다.

 

 

모두 6개의 장으로 구분하여 짧은 글을 모아두었다. 딱히 독특한 구성이랄 건 아니지만, 재미있는 건 첫 장이 길냥이 방울이와 깐돌이에 대한 이야기로 꾸며진 것이다. 한 식구가 되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 냥이들과 주인 부부의 이야기가 재치 있고 기발하다. 동물과 평화를 유지하며 잘 지내는 사람은 분명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냥이들의 이야기가 나머지 글들과 관련이 꼭 있는 게 아니듯, 여기 실린 글들은 모두 낱낱의 단상으로 읽혀도 무방하여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끌리는 제목부터 읽어도 작가의 위트와 진지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유년의 기억부터 35세(7년 전 초판 당시)와 그 이후의 삶에서도 소소하거나 조금은 덜 소소한 주제에 이르기까지 학습되거나 주입된 구도와 방향을 벗어난 참신한 생각의 집을 짓는다. 가벼워야 할 곳은 가볍게 터치하고 좀더 무거워도 좋을 곳은 냉철하고 무게감있는 생각의 기둥을 쌓아 견실해 보인다. 자신의 소설 '검은 꽃'이 피어나기까지의 글을 비롯해 대한민국 작가로서 지니는 자부심과 미래지향적인 긍정의 힘이 느껴지는 대목에서는 '청춘'이 느껴진다. 바람직한 출판기념회에 대한 제안도 마음에 와닿는다. 작가도 말했듯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우는 게 새들만의 특권이 아니듯 자신의 소설을 직접 낭독하는 출판기념회는 생경할 수 있지만 자신의 이름을 부르듯 자신의 문장을 직접 읽으며 독자와 가까이 소통하는 시간, 훌륭한 출판 행사가 되지 않을까.

 

 

수필은 글쓴이의 생각과 성향과 기질이 잘 드러나는 글이다. 이 책에 실린 김영하의 글은 그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사고가 유연하며 상상력도 풍부한, 꽤 튼실하고 유쾌한 생각의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진지한 생각의 집을 짓다가도 랄랄라~ 노래하며 웃고 사랑하며 어느 막다른 순간에서도 돌아서 갈 수 있는 유연한 집을 그려본다. 지금 당장은 쓰지 않을 잡동사니 모아두는 지하실도 있고, 외롭고 지칠 때 혼자 우는 다락방도 있고, 뒷마당 어디엔가 비밀정원도 있어 시간여행도 할 수 있는 집, 부엌 한 켠 좁은 문을 열면 끝없는 미로 속으로 빠질 수도 있는, 그러다 달이 뜨면 돌아와 언제나처럼 내 자리에서 글을 쓰고 거울 앞에서 나의 앞과 뒤를 돌아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집. 내가 건축한 나만의 집. 나의 향기가 은은히 배어나는 집. 우리는 다 비슷비슷 고만고만하게 지어진 아파트에서 살고있지는 않은지, 그런 아파트라도 내면은 다르게 가꿀 수 있지 않을지, 그래야하는 것 아닌지 생각해 본다.

 

 

김영하는 남과 똑같은 것, 일원론적인 태도를 무의식적으로 혐오하는 사람 같다. 그게 기질인지 강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글의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특히 '태극기 단상'에서 이런 대목, 그의 집, 랄랄라 하우스가 호감 가고 믿음 가는 이유다.

 

혁명은 사랑과 비슷하다. '우리는 하나'라는 비정상적인 열정에 사로잡혀 수행된다.

차이는 무시되거나 간과된다. 혁명이 깃발의 그늘에서 진행되는 이유도 그것이다.

깃발은 모두의 차이를 사상한다. "우리는 하나다!" 그러나 열정이 식으면 깃발은 거리를 뒹굴고

차이들이 부각되고  '혁명의 적'(혹은 연인)들이 숙청되기 시작한다. 그러니 깃발의 잔치를 조심하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국가로 모든 것을 환원하는 일원론적인 태도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태극기를 휘두르며 거리를 헤매는 갖가지 이념과 이익의 수호자들, 고단한 태극기팔이들이여,

이제 그만 깃발을 내려라.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p191)

 

 

 

덧) 부록, 추억의 사진첩에 담긴 도도한 냥이 방울이와 식탐 많은 깐돌이 사진들, 이거 보면 그냥 또 노골노골 씨익~

     고양이 키우는 건 무서운데 사진으로 보면 마냥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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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2-07-2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김영하는요, 소설집 [오빠가-] 하나만 읽고 작가에 대한 편견이 좀 있었는데, 팟캐스트 들으면서 참 좋아하게 된 작가에요.
[검은 꽃] 포함해서 장편도 좀 봐야겠고 하는데, 아무래도 수필집으로 먼저 가버릴 것 같은데요.
이 페이퍼 감사해요.
[원더보이]랑 [너의 목소리가 들려]랑 [은교]랑 요이땅하자고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과연 뭘부터 손을 댈까요~?
(그러고보니 김연수 [지지않는다는 말]보다 먼저 나온거네요? 생각보다 조용했네요. 개정판이라서 그런건가요?)

프레이야 2012-07-24 08:44   좋아요 0 | URL
김영하의 팻캐스트는 소문만 들었네요. 좋다고 하더군요.^^
저도 김영하의 소설은 '퀴즈쇼'만 읽었어요. 2007년 작인가 그렇죠.
TED강연도 있고 책읽어주는소설가도 있고 활동이 많더군요. 찾아볼 생각이랍니다^^(할 것도 많아 ㅋㅋ)

댈러웨이님, 요이땅~ 한 것 중 어떤 것부터 시작하셨어요? 왠지 은교??? ㅎㅎ
일요일에 교보에서 '지지않는다는 말'을 잠시 훑어봤어요. 김연수도 몇 권의 책에서 좀 덜 끌리는
바람에 접어뒀던 작가인데 슬며시 다시 펴볼까싶네요. 앗, 방금 봤는데 이 책이 다음달 신간평가단 도서로 선정됐네요.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