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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의 새들이 날갯짓을 하면서




최하림


끝을 모르는 시간 속으로 새들이 띄엄띄엄 특별할 것도 없는
날갯짓을 하면서 산 밑으로 돌아나간다 강물이 흘러 내려가고
나무숲이 천천히 가지를 흔든다 이윽고 나무숲 새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번쩍이면서 수천의 그림자를 지운다
새들은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하늘 속으로 들어가 멈추어 있다가
시간의 거울 속으로 빠져나가면서
거울과는 반대 방향으로 날갯짓을 한다
하늘에는 수천 새들의 날갯소리로 시끄럽고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요요마는 거울 속에서
거울의 부축을 받으면서 연주한다 황혼이 거울 속으로
돌아든다 새들이 또다시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날아가면서 꾸르륵꾸르륵 운다

 


-------

 

♠ 시인 최하림

1999년 전남 목포 태생
1964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데뷔
시집 『우리들을 위하여』 , 『풍경 뒤의 풍경』 등


 

▶ 시간과 자아, 침묵과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풍경 뒤의 풍경을 그린다.
    아니, 그 사이를 넘나든다. 나도 당신도 하나의 ‘풍경’이고, 그 뒤의 풍경을
    우리는 넘나든다. '나'는 '당신'의 풍경으로도 넘다들고 싶다.  
     고독한 풍경들의 바람(wish). 풍경들 사이로 수천의 새들이 날갯짓을 하며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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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0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0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빈 의자




                                                                      문태준




걀쭉한 목을 늘어뜨리고 해바라기가 서 있는 아침이었다
그 곁 누가 갖다놓은 침묵인가 나무 의자가 앉아 있다
해바라기 얼굴에는 수천 개의 눈동자가 박혀 있다
태양의 궤적을 좇던 해바라기의 눈빛이 제 뿌리 쪽을 향해 있다
나무 의자엔 길고 검은 적막이 이슬처럼 축축하다
공중에 얼비치는 야윈 빛의 얼굴
누구인가?
나는 손바닥으로 눈을 지그시 쓸어내린다
가을이었다
맨 처음 만난 가을이었다
함께 살자 했다

 

 

 - 문태준 <가재미> 중, 문학과지성사

 

 

 



                                                                           <가을햇볕 따사로운 9월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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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9-20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인데 햇살이 아직 너무 뜨겁네요. 올려다보기에 너무 눈부시기도 하고요.
오타 : 자재지 -> 가재미

프레이야 2007-09-20 11:16   좋아요 0 | URL
잉크님, 고쳤어요^^
비 그치고 나니 가을햇살이 쨍하네요.
그래도 가을햇살은 참 부드러운 느낌이에요, 늘. ^^

겨울 2007-09-20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다운 시네요.
고단한 누구라도 와서 쉬라고 놓인 빈의자는 바라만 봐도 좋지요.

프레이야 2007-09-20 14:21   좋아요 0 | URL
우몽님, 네.. 비어있어서 더 충만해보이는..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죠? 그래도 딱 그말이 맞는 것 같아요^^
가을, 어떻게 지내세요? ^^

춤추는인생. 2007-09-20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가을햇살이 찡해요~~
그래서 애틋하고 아쉬운 느낌이예요 ^^

프레이야 2007-09-20 20:55   좋아요 0 | URL
계절마다 햇살이 다른 느낌인데 가을은 참 특별하다는 생각이었어요.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했는데 님의 말, 그거에요. 여백이요!!
빈 하늘, 빈 의자, 빈 손, 빈 가지를 준비하는 나무..
님이 가을이면 읽는 '나목'이 떠올라요. 고요한 저녁, 편히~~ ^^
 

 

바구니 속의 계란


                                       최영숙




나는 아름다운 장기수
탈출을 꿈꾸지
결혼해 일년 반, 임신 육개월의 배를 끌어안고서
주위를 둘러싼 소리 없는 장막
저 찬란한 가을햇살을 찢고 달아나는 탈출을 꿈꾸지

 


꿈꾸는 성
꿈꾸는 태아
문지방에 기대앉아 대문 밖을 보노라면
나가자고, 자꾸만 머얼리 저어가자고
뱃속의 태아가 툭툭 발을 차네
소싯적 내 젊은 어머니, 가을 마당 햇빛 속에 물끄러미 서 계시네

 

 
나는 치밀한 탈옥수
냉정을 가장하네
뒷덜미를 끄는 햇살, 파도를 밀고 나가면 어디가 될까
갈대방석 위에 양팔 벌리고 누워 두웅-둥
나 누더기 되어 난바다로 떠내려가네
파란 하늘 파아란 구름 힘껏 들이마시며
뱃속의 아이에게 들릴 만큼 놀랄 만큼
소리질러야지
“계란 사시오, 계란 사시오오-”

 


깨지는 건 순간이야
앞뒤 구멍 내서 날계란 후루룩 마실 때의
비릿한 뒷맛
손에서 미끄러지면 끝장인 껍질
삶의 껍질을 끝까지 벗겨본 적 있던가
바구니 속의 계란 삼십개
고이 들고 온 이것이 인생의 황금기였나
미끈, 바닥으로 떨어뜨리면
한꺼번에 계란프라이 해먹어도 좋을
잘 달구어진 가을햇살, 햇살



- 최영숙 유고시집  <모든 여자의 이름은> 중

 

 

 


                                                                                             - 9월 가락, 김해평야

                                        

 

                               

                                   삶의 껍질을 끝까지 벗겨본 적 있던가, 라고

                                                절명한 시인은 묻는다.   

                                              가을햇살 아래, '난바다'가

                                                         어지럽다

                                                      살아가야한다

 

                       (옆지기 사진, 내 단상 그리고 최영숙 시인의 가슴저린 싯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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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9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9-19 12:00   좋아요 0 | URL
이렇게 쨍쨍한데 또 비가 온대요? 적당히 와야할 텐데요..
저 시인의 시들이 참 절절해요.
추석 다가오는데 이래저래 마음 바쁘시겠어요.
풍성하게 건강하게 보내시기 바래요, 님^^

비로그인 2007-09-19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백이어도, 보입니다.
구름 사이로 찬란하게 대지로 내려앉는 한낮의 오로라, 저 오로라.
그리고 날개없이 날아다니는 공룡도 보이네요.(웃음)

I can fly without wings~♬ I can fly without wings~♬ I can~ fly~~

나는 치밀한 탈옥수
냉정을 가장하네
뒷덜미를 끄는 햇살, 파도를 밀고 나가면 어디가 될까

겨울 지나 봄이 와, 인간의 숫자 계란 한판이 되면 -
한번 확인해 봐야겠어요. 내가 있고 싶은 그 자리에 자신이 서 있는지.

프레이야 2007-09-19 16:55   좋아요 0 | URL
공룡박사 엘신님, 호호 공룡 찾으셨어요?
계란 한 판이면 내년 봄에 님, 스물네 살 맞지요? ㅎㅎ
파도를 밀고 나가자구요, 우리..

비로그인 2007-09-20 10:01   좋아요 0 | URL
오옷. 계란 한판의 새로운 정의로군요! +_+
흐흐흐흐흐흐...그거, 써먹어야겠습니다. (씨익)

가시장미 2007-09-19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시 정말 멋있네요. 어떻게 저런 표현을 생각할 수 있을지 궁금해요. -_-;
사진도 눈에 쏘~옥 들어옵니다요! 살아가야하는데..살아가야하는데..잘 살고 있는건지..
매일 매일 생각해도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살아가야죠.. ㅠ_ㅠ 으흐

프레이야 2007-09-19 16:58   좋아요 0 | URL
그죠? 확장성 심근증으로 43세에 유명을 달리한 시인인데 고정희시인의
제자였다고 해요. 싯구들이 절절하더군요. 좋아졌어요, 최영숙시인이요.
암요, 살아가야죠, 가시장미님^^

씩씩하니 2007-09-19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재미난 시인걸요...
이 곳은 오늘 정말,,후덥지근이에요..
멋부리느라 목티 입구 왔는데..이러다 목에 땀띠 나겠어요....흑..
글보다 더 멋진..사진...늘 감사해요~~

프레이야 2007-09-19 16:59   좋아요 0 | URL
발상이 신선하지요? ^^
오늘 여기도 좀 더웠어요. 땀 나던걸요.
목티 입고 나갔으면 진자 땀띠 났을라 ㅋㅋ
사진은 김해평야에요^^

icaru 2007-09-19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무엇보다 사진..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아요..

프레이야 2007-09-19 17:30   좋아요 0 | URL
엉! icaru님 가을 잘 보내고 계시죠? 그곳은 비가 오는지요?
여긴 오늘낮에 좀 후텁지근했어요.^^
사진..고마워요^^

비로그인 2007-09-19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벗는 여인과 더불어 강렬한 시어네요.
오늘은 날이 이래선지 마음에 착 감깁니다.

프레이야 2007-09-19 18:16   좋아요 0 | URL
허거덩, 님 왜 또 변신하시는거에용?
신비주의 벗어달라고 강력히 부탁드려욧!! ㅋㅋ(저한테만이라도)

민서 2007-09-19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신비주의 아니랍니다.
잠깐 로그인 해봤을 뿐..

프레이야 2007-09-19 18:58   좋아요 0 | URL
그 서재 그대로 있네요. 기억속으로/이은미, 다시 보고 왔어요.
님이랑 저랑 좋아하는 노래도 비슷해요^^

비로그인 2007-09-19 23:10   좋아요 0 | URL
기억속으로,제가 끔찍하게 좋아했던 노래지요.
저 한 열 곡 정도는 노래방에서 불러제낄 수 있는데 언제 한번 가서 같이 흔들며 불러요.

프레이야 2007-09-19 23:15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좋아라해요. 듣는 사람은 별로겠지만..ㅋㅋ
진짜로 한 번 가요, 우리^^
님, 왠지 노래 무지 잘 할 것 같아요..

2007-09-19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9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뻘 / 함민복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힘

말랑말랑한 힘

 

- 함민복 시집 <말랑말랑한 힘>, 문학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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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8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엽다 ㅎㅎ

말랑말랑 말랑말랑

체셔냥이는 몰캉몰캉몰캉몰캉한데...^^

프레이야 2007-09-19 16:50   좋아요 1 | URL
몰캉몰캉, 이거 경상도 할머니들 잘 쓰시는 말인데..ㅋㅋ
전 그럼 말캉말캉 할래요..

바람결 2007-09-19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저도 함민복 시인 팬이에요~^^
그의 시를 볼 때마다, 정말이지 이건, 관념의 언어가 아니라
삶의 구체 속에서 펄펄하게 살아뛰는, 땀냄새 그득한 말이지 싶습니다.

'말랑말랑한 힘'......, 너무 좋습니다.

프레이야 2007-09-19 17:57   좋아요 0 | URL
역시 좋은 시인은, 그랬군요.^^
강화도 어느 바닷가에서 산다고 하지요. 바다냄새 펄펄 나는
생활의 구체어들, 이제부터 만나보려구요. 전 이제 팬이 될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07-09-19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뇌가,아픔이,슬픔이 강펀치를 날려도 말랑말랑 받아들이는 힘이 흙의 힘이고 삶의 힘인것 같네요.

프레이야 2007-09-19 16:53   좋아요 0 | URL
정말 말랑말랑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게 힘인데 말이에요.
다른사람에게도 그리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왜 이리 어려운지..

비로그인 2007-09-19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랑말랑...이란 말을 계속하다 보면,
혀가 꼬여요.
그래도 기분 좋아요.

프레이야 2007-09-19 16:53   좋아요 0 | URL
그죠? 혀도 마음도 부드러워져요, 민서님..
피아노 연습 많이 하고 오셨어요. 다음에 꼭 공개해주세요.^^
 

 

옷 벗는 여인


                                     최영숙


 

 

오래전 일이다

그날 
온몸으로 악쓰는 소리 지나간 후

한 여인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한 겹
두 겹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가
길바닥으로 흘러내렸을 때
까만 브래지어와 팬티 한 장

먹잇감을 포획한 거미처럼
서서히 죄어드는 시선 속에서 여인은
스타킹을 벗어내렸다 숨죽인
저 알몸의 저항
내 일찍이 부끄러워했던
벼랑 끝 말없는 절규, 그렇구나

저게 내 몸인걸, 어느날 목욕탕 뿌연 거울 앞에서
깊고 검은 음부와
물기 없는 유방과
아이를 낳은 칼자국이 선명한 주름진 뱃살의 중년여인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아줌마가 저렇게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거리에 알몸으로 선 내게 돌을 던져라
기꺼이 그 돌을 맞으리니
모든 여자의 이름은 쓸쓸하고 가없이 슬픈 몸이라서
천지간에 바람 어지러울 때면
마구 소리치고 싶다 옷 벗고 싶다 하니 그것이 욕되다면

돌로 쳐라, 네 상처 위에 내 간을 포개놓으마


 



- 최영숙 유고시집 『모든 여자의 이름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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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8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로 쳐라, 네 상처 위에 내 간을 포개놓으마 "

멋지군요.

프레이야 2007-09-19 17:02   좋아요 0 | URL
다른 시들을 봐도 상처입은 자들에 내미는 손이 정말 뜨겁더군요.
뭉클한 싯구들이 많더군요. 천천히 읽으려구요^^

뽀송이 2007-09-19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년의 여자란... 아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아줌마!!
자기가 없는 가족을 위한 보조기구처럼...
요즘은 자기개발에 열심인 젊은 엄마들이 많아졌고,
이들이 중년이 되었을 땐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중년을 사는 여자들이 모두 행복해 지기를 바래보는 마음입니다.

프레이야 2007-09-19 17:05   좋아요 0 | URL
중년의 여자, 우리가 그런 여자들인가요.
갈수록 몸이 중요하단 생각을 하게 되어요. 몸, 지극히 사랑스럽고
애처로운 보금자리가 아닌지요. 우리 영혼이 담긴..
그리고 누군가에게도 밥이 되어주는..
30초중반의 엄마들만 해도 삶의 방식이 다소 다르더군요.
나름 현명하다 할 수 있지요.^^

비로그인 2007-09-19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적인 단어들만으로 일상적이지 않은 느낌을 만들어낸 시였어요.
가슴이 뭉클합니다.

프레이야 2007-09-19 17:06   좋아요 0 | URL
그죠 민서님? 뭉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