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니 속의 계란
최영숙
나는 아름다운 장기수
탈출을 꿈꾸지
결혼해 일년 반, 임신 육개월의 배를 끌어안고서
주위를 둘러싼 소리 없는 장막
저 찬란한 가을햇살을 찢고 달아나는 탈출을 꿈꾸지
꿈꾸는 성
꿈꾸는 태아
문지방에 기대앉아 대문 밖을 보노라면
나가자고, 자꾸만 머얼리 저어가자고
뱃속의 태아가 툭툭 발을 차네
소싯적 내 젊은 어머니, 가을 마당 햇빛 속에 물끄러미 서 계시네
나는 치밀한 탈옥수
냉정을 가장하네
뒷덜미를 끄는 햇살, 파도를 밀고 나가면 어디가 될까
갈대방석 위에 양팔 벌리고 누워 두웅-둥
나 누더기 되어 난바다로 떠내려가네
파란 하늘 파아란 구름 힘껏 들이마시며
뱃속의 아이에게 들릴 만큼 놀랄 만큼
소리질러야지
“계란 사시오, 계란 사시오오-”
깨지는 건 순간이야
앞뒤 구멍 내서 날계란 후루룩 마실 때의
비릿한 뒷맛
손에서 미끄러지면 끝장인 껍질
삶의 껍질을 끝까지 벗겨본 적 있던가
바구니 속의 계란 삼십개
고이 들고 온 이것이 인생의 황금기였나
미끈, 바닥으로 떨어뜨리면
한꺼번에 계란프라이 해먹어도 좋을
잘 달구어진 가을햇살, 햇살
- 최영숙 유고시집 <모든 여자의 이름은> 중
- 9월 가락, 김해평야
삶의 껍질을 끝까지 벗겨본 적 있던가, 라고
절명한 시인은 묻는다.
가을햇살 아래, '난바다'가
어지럽다
살아가야한다
(옆지기 사진, 내 단상 그리고 최영숙 시인의 가슴저린 싯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