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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박형진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 (창작과비평사)

    박형진 시인은 지금도 전북 변산의 그트머리 모항이라는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다고 한다.

 

1월 6일과 7일, 아이들을 데리고 생협에서 마련한 어린이 친환경캠프를 갔다왔다. 경북 상주로 세시간 가량을 달리는 동안, 옆에 앉은 친구랑 얘기하면서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간간이 보았다. 가지만으로 버티고 섰는 나무들에서 근육질의 생명력을 보았다. 예상만큼 춥지 않아 논에 물 뿌려 얼음판 얼려 놓고 그 위에서 옛날식 썰매 만들어 놀기로 한 건 완전 물거품이 되었다. 짱뚱이 시리즈에 나온 바로 그걸 타 볼 수 있겠다고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좋아했던 큰아이는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상주로 들어와 어느 폐교를 고쳐 환경학교로 만들어 놓은 아담한 건물 운동장에 버스는 우릴 풀어놓았다. 입교식을 하고, 환경을 생각한 세제와 일반세제를 각각 다른 어항에 풀어넣고 금붕어를 넣었다. 어휴~ 불쌍한 금붕어. 결국 두마리 금붕어는 시간을 달리 하긴 했지만, 아가미에 피를 머금고 물에 둥둥 떠 있었다. 그리고 햄버거와 청랑음료의 비밀에 대해 공부하고 청량음료의 당도를 측정해 보기도 했다.  미리 준비해 간 얼레로 연도 만들었다. 일부러 도와주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혼자 힘으로 그런대로 잘 만들었다. 잘 날아 오르지 않아 속 상해 하는 아이에게 그곳 생산자 아저씬 자기가 만든 멋진 연을 선뜻 주며 날아 올리는 쾌감을 맛보게 해 주셨다.

쓱쓱 닦아 껍질째 먹는 사과를 아삭아삭 베어 먹으며,  굴렁쇠 돌리기, 재기차기, 줄다리기, 그냥 먼 산 바라보기를 하였다. 코로는 감자, 고구마 굽는 냄새가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작불에 감자와 고구마를 호일로 싸서 넣고, 또 한 쪽에선 돼지 바비큐를 준비하고 있었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항생제도 먹이지 않은 건강한 돼지, 농약이나 제초제를 주지 않고 키운 먹거리라 생각하니 개운했다. 곶감은 또 어떻고. 깨끗하고 적당히 달고 맛있어, 자꾸 먹고 싶어졌다. 변비 따윈 걱정 접어 두자고. 

이 곳에 와서 건강한 먹거리 재료로 만든 소박하고 깨끗한 음식을 주니(우리 엄마들이 당번 정하여 주방에서 만들었다), 아이들도 편식을 언제 했나 싶게 잘 먹었다. 그곳 그루터기 생산자들이 마련한 먹거리와 놀거리 모두, 심심한듯 무심하게 둘러 서 있는 그곳 풍경들처럼 그랬다. 수수하고 은근한 맛이랄까.

또 한 가지!  상주는 자전거 도시란다. 다음 날, 집으로 오는 길에 자건거 박물관에 들렀다. 엄복동의 사진과 희귀한 자전거들이 최초의 자전거와 함께 잘 전시되어 있었다. 아담하지만 볼거린 충분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모닥불을 가운데 하고 빙 둘러 서서 어린애마냥 엉덩이를 흔들며 율동도 하고 노래도 하다가 새까만 밤하늘로 문득 시선이 갔다. 내가 왜 여기 와 있지, 여긴 어디지, 이놈의 병이 또... 아니, 생각해보니 오랜만에 아주 기분 좋은 낯섦이었다. 순간이었지만, 그 낯섦이 또 한동안 나를 설레게 할 것이다.

전 국민의 3퍼센트가 생협의 조합원이 되면 우리 농가가 살 만하다고 한다. 있는 사람들이 더 하다며, 우린 우스개 소리를 하면서도, 자기 아이들과 생업까지  팽개치고 십시일반의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열성 엄마들의 진지한 눈빛을 놓칠 수 없었다.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이 분들은 기꺼이 한 포기 풀잎이 되어주는 사람들 같았다. 내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나의 자리는 한 포기 풀일까, 아니 난 누군가에게 기꺼이 풀여치가 앉을 수 있는 풀잎이 되어줄 수 있을까,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려면, 난 얼마나 '나'를 버려야 하는지 생각했다. 버려야할 '나'는 보이지 않는 그물처럼 거추장스러워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 타인에겐 이기적이고 이질적이며 소심한 속성을 드러내니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무심하게 살자. 나를 잊고 나를 버리고 걸어보자. 검은 물이 뚝뚝 묻어날 것 같은 시골의 밤하늘 속으로 '나'를 온통 담궈버리자. 이 세상 속에서 나의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살아낼 때, 좋든 싫든 나를 대하는 모든 이들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 햇살, 바람이 되리.

'이 세상 속에서의 나'는 풀여치에겐 풀잎이 되고, 맑은 하늘에겐 새가 되고, 물결치는 바람에겐 흐르는 물이 되고, 나를 믿고 따르며 안겨드는 아이들에겐  나도 뛰노는 아이들이 되리. 하나가 되리.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 오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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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진 2004-01-29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많이 놀랐어요. 엄마랑 글 보다가요. 저희 집도 생협 하거든요. 엄마께서 열심히 이 글 끝까지 보시더니 뭐라고 하시는 줄 아세요?
"야~이 분도 글 무지 잘 쓰신다!"
예진 왈
"그럼! 이 분이 명예의 전당 분이셔!"
엄마 왈
"진짜? 어휴~대단하시네!"
참고로 예진이네 집은 예진이 알라딘 명예의 전당이 꿈입니다.^^ 아주 크고 결정적인 소망이죠. 혹시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는 비법이 있다면? 저한테만 알려주세요^-^

프레이야 2004-01-29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진님, 요즘 글쓰기 샘물이 터져 쉬지 않고 콸콸 뿜어져나오는 님의 마이페이퍼 보며 참 즐겁기도 하고 생각의 힘이 느껴져요. 자신만의 생각을 그렇게 세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글까지 유려하고 논리정연하니까요. 날마다 게을리하지 않으면 더욱 빛을 발할 거에요. 다음에 생협에서 마련하는 캠프에도 가족과 함께 가 볼래요? 푸근하고 건강하고 배부르고, 좋아요.
명예의 전당엔 뭐, 굳이 오를 필요 있나요?^^ 벌써 예진님 명성이 자자한데요. ^^
 

 

             포구의 잠

                                                                   김선우

 

생리통의 밤이면

지글지글 방바닥에 살 붙이고 싶더라

침대에서 내려와 가까이 더,

소라냄새 나는 베개에 코박고 있노라면

 

푸른 연어처럼...

 

나는 어린 생것이 되어

무릎 모으고 어깨 곱송그려

앞가슴으론 말랑말랑한 거북알 하나쯤

다 안을 만하게 둥글어져

파도의 젖을 빨다가 내 젖을 물리다가

포구에 떠오르는 해를 보았으면

이제 막 생겨난 흰 엉덩이를 까불며

물장구를 쳤으면 모래성을 쌓았으면 싶더라

 

미열이야 시시로 즐길 만하게 되었다고

큰소리 쳐놓고도 마음이 도질 때면

비릿해진 살이 먼저 포구로 간다

 

석가도 레닌도 고흐도 감자먹는 아낙들도

아픈 날은 이렇게 혁명도 잠시

낫도 붓도 잠시 놓고 온종일 방바닥과 놀다 가려니

처녀 하나 뜨거워져 파도와 여물게 살 좀 섞어도

흉 되지 않으려니 싶어지더라

                                                     <내일을 여는 작가> 1997년 봄호

 

    안도현이 눈여겨 보고 있는, 아직 시집 한 권 묶지 않은 젊은 시인이란다.

   어제 가족과 함께 바다에 갔다. 서서히 해가 바다로 내려가고 있었고 해면은 잘게 부서지는 유리조각의 발광체 같았다. 코로 들어오는 바다 비린내가 언제부터 좋았는지... 그래 자주색 볼레로의 교복이 이뻤던 여고 2학년 때다. 어느 일요일 새벽(겨울이었다) 시내 버스로 한 시간 남짓을 달려와 해돋이를 하자고, 몇이서 의기투합되었다. 겨울바다는 그렇게 큰 몸으로 나를 덮치듯 안겨왔다.

  딸아이 둘은 서로 새우깡을 많이 주겠다고 야단이다. 포말처럼 하얗게 몰려오는 갈매기들에게 하나라도 더, 잘(입에 쏙 들어가게) 주려고 전심전력 하고 있다. 가히 몰입의 경지다. 그래서 아이들이 부럽다. 작고 하찮은 것에 대한 탐욕스런 몰입이 부럽다. 양볼이 발그레 물들고도 안 춥다며 새우깡을 한 봉지 더 사게 해 달라고 조른다. 수퍼에서 사는 값의 두배 이상의 값을 치르고, 작은 아이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로 난 수평선을 따라 걷는 기분이다.

  "갈매기가 내가 던진 거 먹었어. 바다로 떨어진 건 아마 물고기가 먹었을걸. 갈매기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참 좋아."

  아이는 시인이다.

  아이들 아빠는 카메라를 바꿔 가며 바다와 하늘과 갈매기와 사람을 담느라 바쁘다. 내 눈의 렌즈는 이 모든 풍경을 사진처럼 담고 있다. 정지한 시간이기라도 하듯 스틸사진으로 담고 있다. 무비카메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 그 사람이랑 닮았다. 살면서 닮아가는 면이 많기도 하다. 다양한 각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본다. 한마디로 자기 목적성이 강한 인간이다.('몰입의 즐거움'에서 이끄는, 질 높은 삶을 사는 인간형)  

  난 마음 속에 어떤 갈등이 있어 혼란스러우면 칩거하는 유형인데, 이 사람은 카메라 가방 메고 새벽에 나가는 형이다. 한때 그 도구가 낚싯대인 적도 있다. 난 가장 싸게 먹히는 도구, 바로 책을 보고 노는데 말이지.  보이지 않는 족쇄에 스스로 매어서 헤어나질 못하는 '나'는 이제 떨쳐버리고 그 모든 타성에서 벗어나야지.

  바다는 '나'를 버리라 한다. 그릇된 자아일랑 바닷물에 던져버려라. 까닭 모르게(사실은, 알고 있다. 나 자신의 한계가 두려워 입 밖에 내지 않을 뿐) 아픈 날,  바다는 한 몸으로 날 달구고 서늘하게 식힌다.

   딸아이들과 난 여자 사우나에서 목욕하고 남편은 찜질방에서 있다가 두 시간 후에 만났다. 통유리 밖으로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욕조라니. 이런 작은 호사는 누려도 뭐랄 사람 없겠지. 아이들 살갗이 참 보드랍다.  동그란 엉덩이는 마알간 해 같다. '이제 막 생겨난 흰 엉덩이를 까불며' 종알댄다. 몇달 새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 아이들 건강한 거, 감사하다. 하지만 내 몸무게는 늘지 않았어야 하는데... 그래도 난 종종 달콤한 도넛이 먹고 싶다. 초콜릿이 얌전히 발린, 동그란 구멍 있는 도넛에 커피 한 잔.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나의 애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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