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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그의 이름 같은  
                           - 김 승 동 
  
저렇게 
가슴이 부풀은 가지사이로 
촘촘히 내리던 봄비가 있었다 
젖은 온돌방 아랫목에서 이불깃을 끌어안고 
속으로만 그의 이름을 쓰던...
우산을 쓴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분주함이란 찾아 볼 수 없는 
단발머리 같은 봄비가 
 
어차피 당도하지 않을 가슴앓이가 
강을 이루고 
증류된 생각들이 향기도 없이 빗물에 젖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있었다 
며칠 지나면 의례 새싹이 움트고 
주책없이 여기저기 철쭉이 몸을 풀던 
그 봄 
 
오늘 
창 밖 가로수 키가 자라 
전깃줄에 매인 물방울에 입맞추며 
간간이 나누는 얘기가 봄비일 성싶다 
아직도 분주함이 없기는 마찬가지이겠지만 
이 비 지나도 
내겐 언제나 새순이 움트지 않던 
말라 버린 가슴에 
이제와 뿌려질 그의 이름 같은...
 
- Manci님 서재에서 담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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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3-28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비같은 사람 하나..
봄비같은 사랑 하나..
그렇게 봄비 내리는 날엔..
가슴 속 깊이 하~아 하는 한숨 하나..
그렇게 내립니다.

프레이야 2007-03-28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님의 댓글이 시입니다!!
늘 짧은 싯구로 생각을 주셔서 좋아요. 단발머리 같은 봄비라니요..
 

 

서늘한 점심상



잠깐, 광화문 어디쯤에서 만나 밥을 먹는다

게장백반이나 소꼬리국밥이나 하다못해 자장면이라도

무얼 먹어도 아픈 저 점심상


넌 왜 날 버렸니? 내가 언제 널?

살아가는 게, 살아내는 게 상처였지, 별달리 상처될 게

있다면 지금이라도 떠나가볼까,

캐나다? 계곡? 나무집? 안데스의 단풍숲?

모든 관계는 비통하다, 지그시 목을 누르며

밥을 삼킨다

이제 나에게는 안 오지? 너한테는 잘 해줄 수가

없을 것 같아, 가까이할 수 없는 인간들끼리

가까이하는 일도 큰 죄야, 심지어 죄라구?


너는 다시 어딘가에서 넥타이를 반쯤 풀며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머리를 누르고

나는 어디, 부모 친척 없는 곳으로 가볼까?

그때, 넌 왜 내게 왔지?


너, 왜라고 물었니?

C'est la vie, 이 나쁜 것들아!


나, 어디 도시의 그늘진 골목에 가서

비통하게 머리를 벽에 찧으며..........


다시 간다


-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中 p. 42

 

이게다예요님 서재에서 담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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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7-03-12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51838

님... ^_* 

제가 백번째 손님이랍니다...^.~

음... 그냥...^^;;

전... 따스한 차 한잔 주세요...^^;;


프레이야 2007-03-1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번째 손님이라! 뽀송이님 따뜻한 홍차 한 잔 어때요? ^^

2007-03-13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3-13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s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날 보내세요.

진/우맘 2007-03-13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언제쯤, 시의 매력을 알게될까나.....
시를 맛있게 읽을 줄 아는 분들을 보면 항상 부러워져요.

프레이야 2007-03-13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제 서재지붕 바뀐 것 보셨어요? 섭섭해하지 마셔요^^
님이 해주신 것도 넘넘 예뻤는데 봄맞이 선물로 받았네요.

진/우맘 2007-03-14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궁~ 전혀 안 섭섭해요.^^
지붕이야 갈라고 있는건데요. ㅎㅎㅎ
 

아내의 브래지어

 

- 박영희


누구나 한번쯤
브래지어 호크 풀어보았겠지
그래, 사랑을 해본 놈이라면
풀었던 호크 채워도 봤겠지
하지만 그녀의 브래지어 빨아본 사람
몇이나 될까, 나 오늘 아침에
아내의 브래지어 빨면서 이런 생각해보았다
한 남자만을 위해
처지는 가슴 일으켜세우고자 애썼을
아내 생각하자니 왈칵,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남자도 때로는 눈물로 아내의 슬픔을 빠는 것이다
이처럼 아내는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동굴처럼 웅크리고 산 것을
그 시간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던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나 오늘 아침에
피죤 두 방울 떨어뜨렸다
그렇게라도 향기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게다예요님 서재에서 담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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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2-27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우리 옆지기 보면 좋아할 시 같습니다.

뽀송이 2007-02-27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_*
님~~ 호호^^ 잘 읽고 가요.^^

해적오리 2007-02-27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있네요. ^^

프레이야 2007-02-27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 그럼, 살내음이 피존 두 방울 때문에 묻혀버리면 안 되겠네요...^^
 

산샘

 

- 이호우

 

가을 산빛이
고이도 잠긴 산샘

나뭇잎 잔을 지어
한 모금 마시고는

무언가 범한 듯하여
다시 하지 못하다.

---------

 
이호우[李鎬雨]

1912. 3. 1 경북 청도~1970. 1. 6.

시조시인.

한때 시조시인들의 자성(自省)을 촉구하는 평론을 발표해 한국시조시단에 경종을 울렸다. 호는 이호우(爾豪愚). 누이동생이 시조시인 영도(永道)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의명학당을 거쳐 밀양보통학교를 마쳤으며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가 신경쇠약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1929년 일본 도쿄예술대학[東京藝術大學]에 입학했으나 신경쇠약에다 위장병까지 겹쳐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했다. 8·15해방 후에는 잠시 대구일보사를 경영했으며, 〈대구매일신문〉 문화부장 및 논설위원을 지냈다. 1946년 〈죽순〉 동인으로 참여했고, 1968년 〈영남문학회〉를 조직했다. 1940년 이병기의 추천을 받아 시조 〈달밤〉이 〈문장〉에 발표되어 문단에 나왔다. 이어 발표한 〈개화〉·〈휴화산〉·〈바위〉 등은 감상적 서정세계를 넘어서 객관적 관조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노래하고 영탄하던 종래의 시조와는 달리 평범한 제재를 평이하게 노래했으며 후기에는 인간의 욕정을 승화시켜 편안함을 추구하는 시조를 썼다. 작품집으로 1955년에 펴낸 〈이호우시조집〉 외에 누이동생 영도와 함께 1968년에 펴낸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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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2-24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또 한편의 시와 시인의 소개까지 오늘 처음 들어서 좋은 시를 연거푸 만나고 갑니다.

프레이야 2007-02-2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이호우 시인의 호를 한자로 보고 무릎을 치게 되었네요.
자신에게 한 말이겠지요. 우리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구요.
편안하고 즐거운 휴일 보내시기 바래요^^
 

 

                                                       달무리

 

                                       우러르면 내 어머님

                                       눈물 고이신 눈매

 

                                       얼굴을 묻고

                                       아아 우주(宇宙)이던 가슴

 

                                       그 자락 학(鶴)같이 여기고,

                                       이 밤 너울너울 아지랭이.

 

 

             

 

                                             황혼에 서서

 

                                         산이여,  목메인 듯

                                         지긋이 숨죽이고

 

                                         바다를 굽어보는

                                         먼 침묵은

 

                                         어쩌지 못할 너 목숨의

                                         아픈 견딤이랴

 

                                         너는 가고

                                         애모는 바다처럼 저무는데

 

                                         그 달래임 같은

                                         물결 같은 내 소리

 

                                         세월은 덧이 없어도

                                         한결 같은 나의 정. 

 

 

 

 

                                                 단풍

 

                                           너도 타라,  여기

                                           황홀한 불길 속에

 

                                           사랑도 미움도

                                           넘어선 정이어라

 

                                           못내턴

                                           그 청춘들이

                                           사뤄 오르는 저 향로 ! 

 

                                                        -------------------

 

                 이영도(李永道 :  1916~1976 )  호(號)는 정운(丁芸),  1946년 <죽순>에 시조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민족정서를 바탕으로 하여 잊혀져 가는 고유한 가락을 시조에서

                          재구현하고자 노력했다.  시조집으로 <청저집(靑苧集)>(1954),  <석류>(1968)가

                          있고,  수필집으로는 <청근집(靑芹集)>(1958)과,  <비둘기 내리는 뜨락>(1969) 및

                         <머나먼 사념(思念)의 길목>(197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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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7-02-24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영도 시인이라면 유치환 시인의 정인? ^^;;
그들의 그런 사랑이란...
이영도 시인의 오빠 이호우(李鎬雨)도 시인이지요...^^
그러고보니... 유유상종 입니다그려...^^;;
"너도 타라, 여기
황홀한 불길 속에
사랑도 미움도
넘어선 정이어라
못내턴
그 청춘들이
사뤄 오르는 저 향로!" 좋아요...^^;;

프레이야 2007-02-24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송이님, 그 유명한 플라토닉 러브의 여인이에요. 68년에 오누이가 같이 낸 시집도 있지요. 오늘 청도에 있는 그분 생가에 문우들과 갔어요. 오누이의 비가 소박하니 나란히 있더군요. 이호우의 '이'자를 '爾'로 써놓았길래 집에 와 찾아보니 이호우 시인의 호가 이호우(爾豪愚)더군요.흥미로웠어요.
복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같다... 교과서에도 나왔던 이 시는 시비에 있더군요. 그 아래로 유천이 평화로이 흐르고 있었어요. 다른 곳도 들리고 좋은 시간이었답니다.

짱꿀라 2007-02-24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영도 시인님의 시를 혜경님 서재에서 만나네요. 어머님과 아버님이 즐겨 읽으시던 시들이었는데요. 아마 제 서재실에도 찾아 보면 책이 있을 것 같은데요. 너무 아름다운 시를 읽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말 잘보내시고요.

프레이야 2007-02-24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제 어머니도 이영도시인의 시를 읊곤 하셨는데 요즘은 그런 걸 못 듣네요.
제가 귀를 기울여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정운의 '달무리'가 감동입니다.
청마와의 로맨스는 두고두고 애절한 낭만의 이야기소재가 되는 것 같아요.

달팽이 2007-02-25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영에 청마문학관에서 얼핏 보았던 사진이 떠오르는군요.
통영인가 어딘가서 교사시절 유치환 선생과 같이 찍었던 사진에..
이미 유부녀였던 단아한 그녀의 모습..
그리고 오늘 혜경님의 시..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는군요..

프레이야 2007-02-25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그집, 정운과 이호우의 생가는 근대문화유산이란 명패가 달려있더군요. 집은 그저 소박했고, 뒤란으로 돌아들어가보니 켜켜이 먼지 앉은 툇마루가 보이고 초라한 석류나무줄기들만이 돌담에 기대어 있더군요. 지나간 것들의 애상이 청마선생과의 사랑과 함께 떠올랐어요. 그집 맞은 편에 오래 되어 보이는 정미소가 있더군요. 처음 봤거든요. 천장을 올려다보고 놀랐어요. 날씨도 포근하니 조용한 마을이었어요. 편안한 휴일 보내셨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