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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완전한’ ‘진실한’ 등 일련의 형용사들의 간계를 조심하지 않은 까닭에,
젊은이들의 정신이 정체하거나 부패하는 수가 있다. 힘겨운 문제를 대면하는 데
지구력을 보일 수 없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형용사들을 미끼로 문제를 농담으로
유인해 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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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글을 못 쓰게 하는 것은 자기 반성의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이나 증오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냉정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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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운명으로서 절망이 다가와 압도하기 전에, 스스로 임의의 절망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우리를 정화한다. 무수한 절망 연습을 통해 우리는
과장된 자기 전시와 기교의 소모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제작된 절망 속에 진실과 아름다움이 동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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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散文)이 미드필드를 가로질러 속공을 노리는 데 반해 시어(詩語)는
로빙볼과 같다. 소위 문명이 밀집방어하는 문전에서 예감과 기대에 가득 차,
그러나 완연한 판가름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바나나킥으로 쏘아올리는
투기 - 그때 언어는 상징성을 얻고 혜성처럼 화염을 날리며 떨어진다.
이제 사물이 스스로 헤딩해야 할 찬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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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속으로 다시 들어가 수척해보지 않은 정신은 자기 성장의 부름켜를 찾지
못한다. 추악한 것, 비극적인 것, 만취한 것들은 우리들의 행위를 빈틈없이
호송하여, 우리가 과열된 상상력 때문에 월경(越境)하는 것을 막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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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 정신의 수음행위. 그 옅은 피로감과 허탈함과 죄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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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가 만들어내는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이미지'이며,
가장 너저분한 것은 동정同情이다
-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이성복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