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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완전한’ ‘진실한’ 등 일련의 형용사들의 간계를 조심하지 않은 까닭에,

젊은이들의 정신이 정체하거나 부패하는 수가 있다. 힘겨운 문제를 대면하는 데
지구력을 보일 수 없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형용사들을 미끼로 문제를 농담으로
유인해 들이는 것이다.


*

상처가 글을 못 쓰게 하는 것은 자기 반성의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이나 증오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냉정할 것!


*

하나의 운명으로서 절망이 다가와 압도하기 전에, 스스로 임의의 절망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우리를 정화한다. 무수한 절망 연습을 통해 우리는
과장된 자기 전시와 기교의 소모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제작된 절망 속에 진실과 아름다움이 동거한다.


*

산문(散文)이 미드필드를 가로질러 속공을 노리는 데 반해 시어(詩語)는
로빙볼과 같다. 소위 문명이 밀집방어하는 문전에서 예감과 기대에 가득 차,
그러나 완연한 판가름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바나나킥으로 쏘아올리는
투기 - 그때 언어는 상징성을 얻고 혜성처럼 화염을 날리며 떨어진다.
이제 사물이 스스로 헤딩해야 할 찬스이다.

 

 

*

 

진흙 속으로 다시 들어가 수척해보지 않은 정신은 자기 성장의 부름켜를 찾지

못한다. 추악한 것, 비극적인 것, 만취한 것들은 우리들의 행위를 빈틈없이

호송하여, 우리가 과열된 상상력 때문에 월경(越境)하는 것을 막아준다.

 

 

*

 

시詩 - 정신의 수음행위. 그 옅은 피로감과 허탈함과 죄의식.

 

 

*

 

거리가 만들어내는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이미지'이며,

가장 너저분한 것은 동정同情이다

 

 

 

 


  -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이성복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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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0-29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처음 문장, 요즘들어서 끈기, 지구력도 능력의 일환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구요.

프레이야 2007-10-29 18:56   좋아요 0 | URL
형용사 남발이 지구력 부족에서 온 것이었을까요...
주어와 술어로 탄탄하게 선 문장!
쉽게 쓰는 문장이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고 그럴 땐
좌로 절(^^)하게 되기도 하구요. 그러면서 자신의 것을 만들어가는
것이겠지요.^^

비로그인 2007-10-29 22:30   좋아요 0 | URL
글쎄, 님은 좌절하실 필요가 없으실 것 같은데요 ^^
절대적인 의미를 담은 것들, '절대','완전히', '정말로', '진실로'..그런 단어들은 이제 쓰기가 꺼려져요. 그렇죠. 정말로 소박하고 간결한 문장. 음, 헤밍웨이를 제대로 읽어본적이 없단 생각이 퍼뜩들었어요, 지금 ^^

프레이야 2007-10-30 00:55   좋아요 0 | URL
이크, 절대긍정의 형용사만큼 절대부정의 그것도 위험하리란 생각이
들어요. 힘겨운 문제에 대한 좀더 진지한 고민.. 그앞에선 형용사도
머뭇거리게 되겠지요. 헤밍웨이는..음..또 누가 있더라.. 그렇군요.^^
새초롬님 주무세요? 지금.

비로그인 2007-10-30 10:25   좋아요 0 | URL
님이 댓글을 다신 그 시간엔 전 아마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던거 같아요.

비로그인 2007-10-29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능하면 적은 단어로 생각를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지요. 혜경님.


프레이야 2007-10-30 00:56   좋아요 0 | URL
네 정말 필요한 단어는 그리 많지가 않을텐데도 단어 앞에서 헤매고
있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한사님^^

바람결 2007-10-30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포리즘은 여기 있었군요.
'냉정'해야겠어요...

프레이야 2007-10-30 15:22   좋아요 0 | URL
감정을 가라앉혀야 좋은 글이 된다는 말이겠지요^^
 

  
 
*

사랑은 대상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사랑은 언제나
대상과 합치하지 못한다. 사랑은 ‘결합된 사랑’ 조차도 대상화한다.


*

변용은 사랑 속에서 이루어진다. 변용은 사랑에 뒤따라온다.
그러나 변용을 위해 사랑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사랑을 위해
변용을 감수한다고 거짓말해야 한다.

*

사랑은 껍데기다. 가장 민감한 껍데기.
낭심의 피부처럼 유별나게 부드러운 껍데기.

*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의 윤곽을 지우는 것이다. 아니,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는 이미 우리 주위를 흐르면서 지워
져가는 부분적인 표정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

사랑은 처음에 온다. 지혜가 끝에 오는 것과 같이.
처음이든 끝이든 모든 공식은 감옥이다.

*

사랑의 방법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
방법을 가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사랑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럽혀진 것에 대한 사랑은 그러나 순결할 수 있다.
사랑은 ‘무엇’에 대한 관계이지, ‘무엇’은 아니기 때문이다.

*

사랑의 전제(前提)는 떨어져 있음이다. 시 - 간신히 맞붙은 상처를
다시 한번 찢어발기기.

*

사랑은 언제나 죽음을 낳는다. 죽음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

우리는 셋이서 산다 - 너와 나, 그리고 파산(破産) 혹은 끝장.




-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이성복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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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5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25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7-10-25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절구절이 다 마음에 와 닿지요?
요렇게 정리해주셔서 저도 한번 더 감상하며 감사~ ^^

프레이야 2007-10-26 00:2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소개로 알게 된 책이어요^^
짧은 글귀들 속에 결코 짧지 않은 생각들이 마음을 된통 흔들어댑니다.

2007-10-26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26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26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26 0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26 0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26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결 2007-10-26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런 책도 있었군요. 이성복 시인 참 좋은데요, 기억해둬야겠어요.
그나저나 몇 줄 아포리즘 읽으며 속수무책이네요;;

혜경님, 저무는 시월의 하루는 행복하게 보내셨나요?

프레이야 2007-10-27 09:12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저도 속수무책이에요^^
또 주말이에요. 즐기자구요~

바람결 2007-10-27 19:59   좋아요 0 | URL
해가 갈수록 더께오는 그리움들.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그걸 감내해내는 것이 사랑의 완성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어요.

고요한 저녁인데요, 저 산 위에 휘영청 밝은 달이 걸려있군요.
참 좋은 날입니다. 혜경님도 행복한 주일 보내세요~^^

프레이야 2007-10-27 20:52   좋아요 0 | URL
휘영청 밝은 달이요? 공원에라도 나가봐야겠어요.바람결님^^

누에 2007-10-29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상화'의 두 얼굴
'착함'의 두 얼굴
'사랑'의 두 얼굴
'나'의 두 얼굴

요즘 머리속에 자주 그리는 그림이에요.

프레이야 2007-10-29 20:17   좋아요 0 | URL
보는 각도에 따라 두 얼굴, 세 얼굴이 되다니요.. 놀랍지만
인정해야할 것 같구요. 적응은 잘 안되지만요..
누에님, 봉스와르~ ^^
 

*

예술에 있어서 새로운 주제란 없다. 영원한 주제의 새로운 체험만이 문제된다.

예술가에 대한 새로운 체험의 지배 형식이 곧 예술의 형식이다.

얼마나 진부한 이야기인가.

그러나 일단 형식 쪽에 윙크를 해줌으로써,

사유의 난봉질에 일침을 가할 수 있다.

 

*

날카롭게 보지 마라,

그대의 재주는 쉽게 부러져버린다.

 

*

행복은 이미지이고, 그것은 시선 때문에 태어난다.

시선은 언제나 거리를 필요로 한다. 예술이 삶에 대한 배반이고,

형식이 내용에 대한 왜곡일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거리 때문이다.

 

-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중, 이성복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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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0-24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영원한 주제의 새로운 체험만이 문제된다 "

흠, 과연...(탁)
 

 

세상의 친절




1

차가운 바람 가득한 이 세상에
너희들은 발가벗은 아이로 태어났다.
한 여자가 너희들에게 기저귀를 채워줄 때
너희들은 가진 것 하나도 없이 떨면서 누워 있었다.

2

아무도 너희들에게 환호를 보내지 않았고, 너희들을 바라지 않았으며,

너희들을 차에 태워 데리고 가지 않았다.
한 남자가 언젠가 너희들의 손을 잡았을 때
이 세상에서 너희들은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3

차가운 바람 가득한 이 세상을
너희들은 온통 딱지와 흠집으로 뒤덮여서 떠나간다.
두 줌의 흙이 던져질 때는
거의 누구나 이 세상을 사랑했었다.


(1922년)




- <살아남은 자의 슬픔> 중 / 베르톨트 브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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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0-20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레히트를 읽으면 전 늘 시인 김남주가 떠올라요. 워낙에 시를 잘 모르니 그 연상이 맞는건지 틀린건지는 모르지만 그저 그들의 그 치열함과 시가 풍기는 분위기가 항상 둘을 같이 떠오르게 만드네요. 저 시속의 아이들도 딱 시인들의 모습인것 같아 마음아픈 시예요.

프레이야 2007-10-21 00:22   좋아요 0 | URL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가지(사랑하지)못하고 비겁하게 살다가는
대부분의 우리를 한 방 때리는 것 같지요. 종종 이렇게 맞아야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리려나요... 밤이 깊어갑니다.^^
 

 

 
당신들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당신들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추측컨대, 당신들은 백만장자인 모양이다.
당신들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다. - 미래가
당신들 앞에 환히 보인다. 당신들의 부모는
당신들의 발이 돌멩이에 부딪히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 놓았다. 그러니 당신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지금 그대로
계속해서 살 수가 있을 것이다.

비록 시대가 불안하여, 내가 들은 대로,
어려운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당신에게는 만사가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정확하게 말해 줄 당신의 안내자들이 있다.
어떤 시대나 타당한 진리와
언제나 도움이 되는 처방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들은 모든 요령을 수집해 놓았을 것이다.

당신을 위하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한
당신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만일에 사정이 달라진다면
물론 당신도 배워야만 할 것이다.

(1932년)




-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 시집 (김광규 옮김) /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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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10-20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레히트의 시를 읽으며,
제 생의 지점을 가늠했던 때가 있었어요.
어쩌면,
지금 저의 모습은 그 가늠과 존재의 기로에서
좌충우돌하며 그저 우울의 울 안에 갇혀 있는 듯 싶기도 합니다. 만,

그러나 여전히 저에겐 배울 것이 많다는 그 진실 속에서
존재의 기로를 곧추 세우곤 합니다.

이 역설적인 시를 통해 브레히트가 느꼈을 존재의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느껴봅니다. 살아남아서,
배울 수 밖에는 없는 인생의 잔혹함을요...

프레이야 2007-10-20 09:54   좋아요 0 | URL
그의 시들은 깨어서 직시하고 일어나라고 부끄러운 얼굴을 찌르는 것
같습니다. 바람결님, 또 한주의 끝자락이네요. 날이 아주 화창합니다.
좋은 날, 맞이하시고 내일 준비 또 어떻게 하실지 기대됩니다.^^

소나무집 2007-10-20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책꽂이에 브레이트의 시집이 있는 걸 보면 읽었을 법도 한데 전혀 기억은 나지 않고...
백만장자가 아닌 나는 배워야 할 것이 많은데도 배우려 들지 않고 있네요.

프레이야 2007-10-20 11:38   좋아요 0 | URL
다 기억하긴 어렵지요.^^
님, 나쁘지 않은 주말 보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