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벗는 여인
최영숙
오래전 일이다
그날
온몸으로 악쓰는 소리 지나간 후
한 여인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한 겹
두 겹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가
길바닥으로 흘러내렸을 때
까만 브래지어와 팬티 한 장
먹잇감을 포획한 거미처럼
서서히 죄어드는 시선 속에서 여인은
스타킹을 벗어내렸다 숨죽인
저 알몸의 저항
내 일찍이 부끄러워했던
벼랑 끝 말없는 절규, 그렇구나
저게 내 몸인걸, 어느날 목욕탕 뿌연 거울 앞에서
깊고 검은 음부와
물기 없는 유방과
아이를 낳은 칼자국이 선명한 주름진 뱃살의 중년여인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아줌마가 저렇게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거리에 알몸으로 선 내게 돌을 던져라
기꺼이 그 돌을 맞으리니
모든 여자의 이름은 쓸쓸하고 가없이 슬픈 몸이라서
천지간에 바람 어지러울 때면
마구 소리치고 싶다 옷 벗고 싶다 하니 그것이 욕되다면
돌로 쳐라, 네 상처 위에 내 간을 포개놓으마
- 최영숙 유고시집 『모든 여자의 이름은』,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