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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잎의 여자

오규원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 같이 쬐그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듯 보일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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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7-02-09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하필 물푸레나무일까요? 물푸레나무는 너무 단단하여 옛날에 도리깨(아실랑가?)를 만드는 주재료로 사용했었는 데......

짱꿀라 2007-02-09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 하나 더 드리고 가겠습니다. 학예사 한 분 중에서 오규원 선생님의 시를 좋아하는 분이 있어서 주신 것입니다.


<겨울 숲을 바라보며>

겨울 숲을 바라보며
완전히 벗어버린
이 스산한 그러나 느닷없이 죄를 얻어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겨울의
한 순간을 들판에서 만난다

누구나 함부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누구나 함부로 완전히
벗어버릴 수 없는
이 처참한 선택을

겨울 숲을 바라보며, 벗어버린 나무들을 보며, 나는
이곳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한 벌의 죄(罪)를 더 겹쳐 입고
겨울의 들판에 선 나는
종일 죄, 죄 하며 내리는
눈보라 속에 놓인다.


프레이야 2007-02-09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 물푸레나무는 시인들이 자주 노래하는 소재이긴 해요. 단단해서 요즘은 야구방망이도 이 나무로 만든다고 하네요. 가지를 꺾어 물에 담그면 푸른 물이 든다고 하지요. 그 물에 손을 담그면 손까지 온통 푸른 물이 드는 것 같겠지요. 해보진 않았지만 상상만으로...
어린이책에도 <물푸레, 물푸레, 물푸레>라는 동화가 있는데 고운 심성을 길러줄 수 있는 이야기에요. 왠지 물푸레~ 하고 불러보면 정감 있지요.
고인이 된 시인은 물푸레의 잎과 같은 여자를 그리워하고 있네요.
시집같은 여자, 라는 싯구가 인상적입니다.^^
시인은 시적영감을 동경하며 품으려 소망했던 건 아닌지...

산타님, 이 시도 페이퍼로 모셔둘게요. 오후의 선물 두개씩이나, 감사해요^^
 
 전출처 : 水巖 > 오규원 -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 오      원 -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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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2-09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규원 선생님의 시 하나 더 드리고 가겠습니다.

<한 잎의 여자>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 같이 쬐그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듯 보일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프레이야 2007-02-09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이 시 오래 전 어디서 보고 참 애잔히도 슬픈 곡조구나, 느꼈던 시네요.
님이 전해주시는 시로 다시 읊어봅니다. 오후의 느닷없는 선물~ 고맙습니다.^^
혼자 보기 아까워 페이퍼로 옮겨둡니다...
 
 전출처 : 水巖 > 오규원 - 안개

                          
                                           - 오      원 -
              강의  물을  따라가며  안개가  일었다
              안개를  따라가며  강이  사라졌다  강의
                밖으로  오래  전에  나온
              돌들까지  안개를  따라  사라졌다
              돌밭을  지나  초지를  지나  둑에까지
              올라온  안개가  망초를  지우더니
                나의  하체를  지웠다
              하체  없는  나의  상체가
              허공에    있었다
              나는  이미  나의  지워진    손으로
              지워진  하체를      쳤다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강변에서      소리를  냈다

 

1941 경남 밀양 출생.  
          동아대 법학과 졸업.  
1968 <현대문학>에 시<몇 개의 현상>이 추천되어 등단.  
1982 현대문학상 수상.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시집 <분명한 사건(事件)>    한림출판사  1971
시집 <순례(巡禮)>    민음사  1973
시집 <사랑의 기교(技巧)>    민음사  1975
시집 <왕자(王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문학과 지성사  1978
시집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抒情詩)>    문학과 지성사  1981
시집 <희망 만들며 살기>    지식산업사  1985
시집 <가끔은 주목받는 생(生)이고 싶다>    문학과 지성사  1987
수필집 <아름다운 것은 지상에 잠시만 머문다>    문학사상사  1987
시집 <하늘 아래의 생(生)>    문학과 비평사  1989

2007. 2. 2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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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2-0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답게 시를 남기고 가셨더군요.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툭툭 두드리며 하늘로 돌아가셨겠지요.
 
 전출처 : 짱꿀라 > 제자 손바닥에 손톱으로 마지막 시를 쓰고 떠나다 - 오규원 시인

# 평생을 시 창작에 몰두하시다가 돌아가신 고 오규원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 세상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시작품만을 남기고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가셨습니다. 혼신을 다해 작품을 내셨던 분을 볼 수는 없지만 선생님의 혼이 실린 작품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 작가소개
   오규원 : 1941년 경남 삼랑진에서 태어났다. 부산사범학교를 거쳐 동아대 법대를 졸업했다. 교사, 회사원, 출판인 생활을 하다가 1965년「 현대문학」에 '겨울 나그네'가 초회 추천되고, 1968년 '몇 개의 현상'이 추천 완료되어 등단하였다. 현대문학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대한민국예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냈다. 시집으로 <분명한 사건>, <순례>, <사랑의 기교>,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사랑의 감옥>,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등이 있고, 시론집으로 <현실과 극기>, <언어와 삶>, <날이미지와 시>, <현대시작법> 등이 있다.

(2007년 2월 5일 조선일보기사)
제자 손바닥에 손톱으로 마지막 시를 쓰고 떠나다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 마지막으로 쓰고 가신 작품 -

시인은 의식이 남아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시를 썼다. 지난 2일 폐질환으로 타계한 오규원 시인(1941~2007)이 병상에서 제목이 없는 4행시 한 편을 남겼다. 오 시인이 가르쳤던 서울예대 문창과 출신 문인들은 4일 “지난 1월21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이던 선생님이 손톱으로 마지막 시를 쓰셨다”고 전했다.

당시 의식을 잃기 직전 상태였던 오 시인은 간병 중이던 제자 시인 이원씨의 손바닥을 찾았다. 그러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 손톱으로 제자의 손바닥에 시를 한 자 한 자 새겼다. “선생님은 처음 3행을 썼다가 한참 시간을 들인 뒤 마지막 한 행을 썼다”고 제자는 전했다. 스승의 빈소에 모인 제자들은 “마지막 시구는 2연의 첫 행일지도 모르지만, 4행을 한 편의 시로 편집하자”고 뜻을 모았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고 쓴 시인의 장례식은 5일 오후 2시 강화도 전등사에서 수목장으로 진행된다. 제자인 이창기 시인은 “선생님께서 의식을 잃기 전까지 유골을 화장해달라고만 말씀하셨는데, 수목장은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유족들이 결정한 것”이라며 “선생님의 시가 마치 사후의 일까지 내다보신 것 같다”고 말했다.

                               

 
오규원 시인은 한국 시단에서 언어 탐구의 거목이었다. 초기시에서부터 ‘추상의 나뭇가지에 살고 있는 언어’(시 ‘몇 개의 현상’ 부분)를 탐구했던 그는 결국 나무 아래에 묻혀 영면을 취한다. 그는 ‘사랑의 기교’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 등의 시집과 ‘현실과 극기’ 등의 시론집을 통해 시적 언어의 투명성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면서 독특한 시세계를 일궜다. 또한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 (1982~2002)를 지내면서 수많은 제자 문인들을 키웠다. 80년대 이후 시단에 진출한 양선희 박형준 윤희상 장석남 함민복 이병률씨 등 젊은 시인들을 지도했을 뿐 아니라 소설가 신경숙 하성란 조경란 강인숙 천운영씨 등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오규원 시인은 말년에 만성폐쇄성폐질환이란 희귀병을 앓으면서 큰 고통을 겪었다. 반딧불이가 살 정도로 공기가 맑은 경기도 양평의 전원주택에 칩거하던 그는 지난 2005년 9번째이자 마지막 개인 시집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를 펴내면서 ‘날(生) 이미지 시’를 제창했다. “존재의 현상 그 자체를 언어화하자는 것”이라고 ‘날 이미지 시’론을 설명했던 그는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사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 오규원 선생님의 시 두편은 소개한다.

우리들의 꿈이 그러하다 / 시인  오규원

비상하는 새의 꿈은
날개 속에만 있지 않다 새의 꿈은
그 작디작은 두 다리 사이에도 있다
날기전에 부드럽게 굽혔다 펴는
두 다리의 운동 속에도 그렇고
하늘을 응시하는 두 눈 속에도 있다
우리들의 꿈이 그러하다
우리의 몸 속에 숨어서 비상을
욕망하는 날개와 다리와 눈을 보라
언제나 미래를 향해 그것들을 반짝인다

모든 나무의 꿈이 푸른 것은
잎이나 꽃의 힘에만 있지 않다
나무의 꿈이 푸른 것은
막막한 허공에 길을 열고
그곳에서 꽃을 키우고 잎을 견디는
빛나지 않는 줄기와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꿈이 그러하다
깜깜한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숨어서 일하는 혈관과 뼈를 보라
우리의 새로움은 거기에서 나온다

길이 아름다운 것은
미지를 향해 뻗고 있기 때문이듯
달리는 말이 아름다운 것은
힘찬 네 다리로
길의 꿈을 경쾌하게 찍어내기 때문이듯
새해가 아름다운 것은 그리고
우리들의 꿈이 아름다운 것은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의
비상하는 날개와 다리와 눈과
하늘로 뻗는 줄기와 가지가
그곳에 함께 있기 때문이다


1

들은 길을 모두 구부린다
도식주의자가 못 되는 이 들[平野]이
몸을 풀어
나도 길처럼 구부러진다

2

종일
바람에 귀를 갈고 있는 풀잎
길은 늘 두려운 이마를 열고
나를 멈춘 자리에 다시
웅크린 이슬로 여물게 한다

모든 길은 막막하고 어지럽다 그러나
고개를 넘으면
전신이 우는 들이 보이고
지워진 길을 인도하는 풀이 보이고
들이 기르는 한 사내의
편애와 죽음을 지나

먼길의 귀 속으로 한 발자국씩
떨며 들어가는
영원히 집이 없을 사람들이 보인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순례 序」 부분, 2 ;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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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7-02-06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 신문에서 시인의 기사를 읽으며 책꽂이를 더듬어보니 시집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가 있더이다. 책을 펼쳐보니 '늦가을 광화문에서 만난 사랑 하나'라는 메모가... 너무 일찍 가셨지요?
 
 전출처 : 동그라미 > 씨팔! / 배한봉 님




씨팔!


배한봉


수업 시간 담임선생님의 숙제 질문에 병채는
<씨팔!>이라고 대답했다 하네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으나
<씨팔! 확실한 기라예!>
병채는 다시 한 번 씩씩하게 답했다 하네
처녀인 담임선생님은 순간 몹시 당황했겠지
어제 초등학교 1학년 병채의 숙제는
봉숭아 씨앗을 살펴보고 씨앗수를 알아 가는 것
착실하게 자연공부를 하고
공책에 <씨8>이라 적어간 답을 녀석은
자랑스럽게 큰 소리로 말한 것뿐이라 하네
세상의 질문에 나는 언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을 외쳐본 적 있나
울퉁불퉁 비포장도로 같은
삶이 나를 보고 씨팔! 씨팔! 지나가네




경남 함안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흑조(黑鳥)》(1998), 《우포늪 왁새》(2002) 출간
계간 <시와 생명> 편집위원
웹진 <詩鄕> 편집주간

 

왠 욕!!!!....

욕이라서 깜짝 놀라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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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1-19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랐습니다. 더구나 혜경님과 같은 성씨라 더더욱...윽!

다락방 2007-01-19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말 화들짝!! 놀라서 달려왔잖아요. 하하 :)

짱꿀라 2007-01-19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보고 너무 놀랐는데 내용은 그게 아니었네요.

마노아 2007-01-20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멋져요^^

프레이야 2007-01-20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의 질문에 나는 언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해 본 적 있나..
자잘한 일에나 큰소리 치고 말이에요^^
놀라셨죠, 님들.
저도 화나면 마구 욕해요... 이 욕은 안 해 봤지만요..

행복희망꿈 2007-01-2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목만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 졌네요. 내용은 그게 아니네요 ^*^

푸하 2007-01-20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는 정말 휩싸이지 않으면서도 자신있는 태도가 갖고 싶어요.

프레이야 2007-01-2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희망꿈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푸하님, 정말 저도 그런 태도 가지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