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강미라, <몸 주체 권력>

후쿠오카 신이치, <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동적 평형>















 

시인은 여름을 원주 연세대 기숙사에서 보냈다.

 

사람은 몸-주체이고 몸은 사건들이 각인된 표면”(미셀 푸코)이다. 공간은 그냥 객체가 아니라 몸-주체에 의해 소유되고 거꾸로 몸 주체의 지각활동과 운동은 공간에 의해 제약된다. -주체와 그것이 놓인 공간은 상호 삼투하며 의미작용을 하는 관계에 있다.

 

낯선 공간속에서 시인은 불면의 밤을 보냈나 보다.

 

밤에, 불면속에 나의 깨어 있는 상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깨어 있는 것은 밤 자체이다.

그것은 깨어 있다.

이 익명적인 깨어 있음 속에서 나는 완전히 존재에 노출되어 잇다.

이 깨어 있음 속에서, 나의 불면을 채우는 모든 사유는 아무것에 대해서도

중지되지 않는다.

 

에마뉘엘 레비나스, <존재에서 존재자로>

 폴 오스터, <선셋파크>

마르탱 파주,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
















 

나는 생각했다. 죽기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아직 그리스를 못 가보다니! 아고, 그리스 사람들 요즘 힘든데 이런 생각을 해도 될라나.

그리스가서 돈을 펑펑 쓰고 오면 좋을텐데.

 

마르탱 파주? ‘이토록 아름답고 짧고 슬픈 사랑이라니!’ , 파주!

읽어야겠다.

 

이나 거울은 현실의 이면에 숨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움과 신비를 가리킨다. ‘은 숨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을 보여주는 거울이 필요한 것이다. 소년은 자신이 깨달은 그 사실을 용을 보여주는 거울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겠다. 우리는 그 거울을 찾아야 한다. 때로는 직접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불완전한 감각이 우리를 속이려 할 때 큰 도움일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마티아스 루,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강신주,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

왕멍, <나는 장자다>














 

축구로 철학을 하다니! 11명의 상대방은 타인이면서 또한 또 다른 .

공동의 목적을 위한 협력, 승리하고자 하는 욕망! 게임의 흐름을 파악하려는 생각-의식.

 

축구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돌아가는 삶이라면, 축구장은 승리하고자 하는 갈망 속에서 의식과 주체가 출현하는 장이다. 축구장은 규범들이 작동하는 사회이고, 갈등들을 해결하는 정치가 작동하는 세계 그 자체다. 그 안에서 철학의 여러 주제들을 끄집어낼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캐롤 스클레니카,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

폴 세르주 카콩,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하루키의 산문들은 그야말로 술술 읽힌다. 역시 이 책도 그러한 듯. 하루키는 꿈을 좇지 않는 인생이란 채소와 다름없다라는 구절을 반추한다. 채소는 인간과는 달라서 꿈을 좇지 않고도 사는 데 지장이 없을 테지만, 인간이란 종자는 꿈이 없으면 마치 알맹이가 빠져버린 만두와 같이 자신을 무가치하다고 느낄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 알코올 중독자였지만 글쓰기는 그를 구원해 주었다. 정말 정말 두꺼운 책이었지만 읽다보면 얇게 느껴질 정도로 재밌다.

 

로맹가리가 여배우와 사귄 건 몰랐다. 진 세버그. 그녀는 스물 한 살 때 마흔 다섯 살의 로맹가리의 연인이 되었다고. 결혼을 파경을 맞는다. 이혼 후 로맹가리는 승승장구하지만 진 세버그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화가는 자기 그림이 제 나이이고, 시인은 자기 시가 제 나이이며, 시나리오 작가는 자기 영화가 제 나이다. 바보들만 자기 동맥이 제 나이다.”

 

기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앙리 장송이 했다는 말.

그렇다면 내 나이는 한 살?

 

이때쯤 시인은 뭔가를 쓰는 대신에 시집과 소설을 줄기차게 읽었다.

여름은 쓰기보단 읽기에 적합한 계절인가 보다.

 

알랭 바디우, <사랑예찬>


 

바디우가 이런 책도.

 

사랑에 대해 말하는 책들은 많지만, 정작 사랑의 핵심을 보여주는 책은 드물다. 그저 주변을 긁적거리며 변죽만 울리다가 마는 책들이 부지기수다.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은 다르다. ”

 






최초의 장애물, 최초의 심각한 대립, 최초의 권태와 마주하여

사랑을 포기해버리는 것은

사랑에 대한 커다란 왜곡일 뿐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공간과 세계와 시간이

사랑에 부과하는 장애물을 지속적으로, 간혹은

매몰차게 극복해나가는 그런 사랑일 것입니다.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사랑은 그저 미친 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설사 사랑이 미친 짓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찬란하거나 쓸쓸한, 명랑하거나 우울한 하나하나의 생이란 바로 그 사랑의 부정할 수 없는 결과물들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사랑은 미친 짓이라기보다는 위험한 모험이다.”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축구란 무엇인가>

이진경, <노마디즘>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















 

스포츠에 관한 책들도 은근 많구나.

 

축구를 한다는 것은 자기 영혼이 축구공의 영혼이 되고 심장과 살갗이 가죽이 되는 것이다.

 

무엇과도 접속될 수 있는 열림이 리좀의 핵심 원리다. 리좀은 어디서나 접속이 일어난다. 이 접속은 새로운 배치를 만들고, 어느 한 점으로 귀속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새로운 배치를 만들되 이질적인 모든 것을 끌어와서 새로운 이질성으로 나아간다. 리좀의 사유체계안에서 이질성은 배척되는 대신에 다양성을 낳는 계기로 삼는다.”

 

로제 그르니에, <율리시즈의 눈물>

호이징하, <호모 루덴스>

크레이그 네켄, <중독의 심리학>

유승훈, <다산과 연암, 놀음에 빠지다>

문광훈, 김우창 <세 개의 동그라미>

 


























놀이는 자연스러운 것, 바로 자유이다. 또 이것에 깊이 연관 지어져 있는 두 번째 특징은

놀이가 일상적인혹은 실제의생활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실제의삶을 벗어나서 아주 자유스러운 일시적인 활동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호이징하, <호모 루덴스>

 

놀이만큼 좋은 것도 없다. 도박도 놀이다. 얼마나 재밌었으면 도박을 놀음(노름)’이라 했을까. 그러나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

 

낭만적으로 시 제목 같은 바다이야기가 도박판이라는 걸 누가 알았겠어요? 그것은 문화관광부에서 문화, 낭만주의 그리고 사행, 이 세 가지를 붙여서 한 거 아닙니까. 사람 사는 데마다 도박장이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거지요. 도박은 도박처럼 보여야지요. 문화관광부에서 하는 것이면 문화행사처럼 보여야 되고, 시면 시 같아야지요. ‘바다이야기처럼 시와 문화와 도박이 합쳐 있는 한국의 혼란 상태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문광훈, 김우창, <세 개의 동그라미>

 

바다 이야기가 참여정부의 작품이란 게 씁쓸하다. 1902년 서울 주재 이탈리아 대사이던 칼르로 로제티는 도박에 대한 열정은 모든 한국인이 천부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말했다는 데. 정약용이나 박지원같은 선비들도 예외가 아니었다니! 하긴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위대한 작가들도 노름꾼이었다. 한국에 도박 중독자만 300만명이란다. 이들에게 비난보다는 치료가 우선이다.

 

버트란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피에르 쌍소 외, <게으름의 즐거움>

톰 호지킨슨, <게으름을 떳떳하게 즐기는 법>














 

러셀에 따르면 게으름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근거는 딱 한 가지다. 그는 게으름을 타인의 근면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 말했다. 러셀은 근로가 미덕이라는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행복해지려면 일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으름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남이다. 그러나

정신까지도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맞서는 것을

잠깐 멈추는 식의 물러남이다. 이 세상이 뭐가 되는지,

되어가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라고나 할까.

 

피에르 쌍소, <게으름의 즐거움>

 

나처럼 게으른 사람 입장에서는 반가운 책이긴 하나 자랑스럽진 않다. 톰 호지킨슨의 <게으름 떳떳하게 즐기는 법>을 읽어봐야 겠다.

 

지그문트 바우만, <쓰레기가 되는 삶들>

시모무라 고진, <논어>













 

 

한 번 난민이면 영원히 난민이다. 잃어버린 고향의 천국으로 되돌아가는 길은 거의 완전히 끊겼고, 수용소의 연옥에서 나가는 출구는 모두 지옥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 <쓰레기가 되는 삶들>) 당신은 현실이 지옥같고 수용소같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잠재적 난민이다.

 

노숙자들을 마주치면 남일 같지가 않다. 나는 잠재적 난민이다. 바우만은 쓰레기로 전락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이 사람들의 욕망을 한층 더 탐욕스럽게 하고 변화를 한층 더 욕망하도록 만들게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나는 쓰레기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에드가 모랭, <스타>

 


<명량>, 혹은 마블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 영화의 흥행은 삶이 점점 더 고단해지고 있음을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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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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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트로이카 시대입니다. 정희진, 정혜윤, 정여울. 누구를 가장 좋아하시나요? 이 분들 책을 읽을 때면 마치 10대 소녀가 된 기분이 들어요. 어릴 적 사촌 누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마다 울었다고 합니다. 왜 우냐고 고모가 물어보면 울먹이며 이렇게 답했대요.

 

~~, 아이스크림이 자꾸 없어져~~.”

 

딱 이런 기분이에요. 페이지가 줄어들 때마다 속상해요. 얼른 뒷 페이지를 보고 싶다가도, 막상 남은 페이지가 줄어들면 안타까워 울고 싶어지거든요. 이 책도 급한 마음에 마구마구 읽으려다가도, ‘안 돼, 너무 많이 읽었어, 참아야 해.’하고, 몇 일에 걸쳐 야금야금 읽었건만, 어느새 다 읽어버렸습니다. .

 

~~, 글자가 자꾸 없어져.~~”

 

세 분의 글을 개략적으로 구분해 진, , 미로 나눠보는 건 어떨지요? 정희진 님이 진을, 정혜윤 피디님이 선을, 정여울 님은 미를 담당하시는 거죠. (주의 : 외모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세 분 글엔 이 세 가지가 다 있지만요 )

 

정혜윤 피디님의 글은 책에 함몰되지 않아 좋아요. <마술라디오>의 예에서 알 수 있듯 그녀의 글에서 책은 삶과 사람과 유리되지 않습니다. 이 책도 그러하죠. 정피디님이 사람 이야기를 하면 귀담아 듣게 되요. 일흔이 넘어 한글을 배워 시를 쓰신다는 한충자 할머니, 야구 중계를 꼭 챙겨 듣는다는 택시 기사 아저씨. LA 다저스 구장에서 박찬호가 공을 던지는 나이트 게임을 보는 게 소원이라던 할머니 손님 때문이었다고 하네요.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경기장 펜스 밖으로 날아가는 야구공만큼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없어. 쏟아지는 불빛도 팽개쳐 버리고 저 어두운 하늘 뒤로 날아가는 야구공.”

 

재즈를 듣는 택시기사 아저씨 이야기.

 

볼 것, 못 볼 것 다 봐도 결국은 여기밖에 없어요. 그런데 꼭 재즈가 그런 음악 같단 말이죠. 뭔가 찡하니 외로운데 금세 신나서 떠들썩해지잖아요. 그것도 아주 즉석에서요. 이것들은 속도 없나 싶을 때도 있어요. 근데 그게 나 같은 사람도 이해 못 할 게 없단 말이죠......그래도 밤에 재즈 들으면 꼭 딴 세상에 가는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그 딴 세상이 딴 세상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재즈 들으면 밤에 운전할 맛이 나죠.”

 

어떤가요? 살아있는 <브루클린 풍자극>이죠? 정피디님의 책은 사실 요약이 불가능합니다. 리뷰에 다 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언제나 답답해져요. 모든 문장에 줄을 치고 싶거든요. 불 꺼진 가게가 슬프다는 아이의 일화를 스킵 했더니 벌써 마음에 걸립니다.

 

책을 왜 읽어요?”라는 질문에 그녀는 무수히 많은 디테일로 답합니다. 여러 작가들의 글과 책을 동원해 주옥같은 글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옵니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은 대답은 유명 작가의 글이나 책이 아니라, 경기도 도서관의 한 기사 아저씨의 말이었습니다.


기사 아저씨는 정피디님에게 왜 역사책을 왜 읽는지 물었다죠. 정피디님이 우물쭈물하자 아저시께서 이렇게 말했다죠.

 

저는 역사책은 부끄러워지기 위해서 읽는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한 일을 두려워할 줄도 알고 부끄러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끔찍해서 역사책을 못 읽을 때도 많아요. 그런데 끔찍한 것도 다 인간이 저지른 거잖아요. 우린 자신이 할 수도 있는 일을 보고 있는 거죠. 우린 또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읽는 겁니다.”

 

이분이 또 묻습니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는 거죠? 역시나 정피디님이 우물쭈물할 때 이렇게 말하셨다죠. 아저씨는 책을 빌리는 사람들에게 책을 천천히 읽기를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책을 읽고 무엇을 하십니까? 저는 책을 읽고 알게 된 대로 살고 싶습니다.

당신이 책을 읽고 무엇을 하는지 말해 주십시오.”

 

책을 읽고 무엇을 하느냐구요?

......‘독후감을 씁니다.’란 멍청한 대답을 했답니다.

 

2년 동안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 삶의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왜 태어났을까란 질문에 예전엔 배우기 위해서가 가장 근사한 답이었어요.

 

책을 읽으면서 답이 바뀌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인간의 존재 이유를 모릅니다. 그러니까 어떤 가설도 가능한 거겠죠.

만일 인간의 레종 데트르(존재 이유)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면 어쩔 것인가?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태어난 거라면?‘

 

어머니는 암 투병 중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었죠. ‘도대체 어머니의 삶은 뭐였을까? 왜 저렇게 고생만 하다 어이없게 죽어야만 하셨을까? 굳이 뭐 하러 태어난 것일까

 

어머니의 삶 자체가 무의미해 보였습니다. ‘만일 어머니가 다른 사람을 위해 태어난 거라면?’ 그렇게 생각하자 어머니의 삶은 더 이상 무의미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랑을 전해주겠죠?

 

40년간 오로지 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남은 40년은 더 커다란 나를 위해 살고 싶습니다.

(여기서 40년은 은유입니다. 당분간 계속 를 위해 살 거에요. 일단은 살아야죠.)

 

 

책을 읽고 알게 된 대로 살고 싶습니다.

부족한 저를 책이 인도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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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달은 망했다. 2년 700권을 찍고 났더니 긴장이 풀려버려 ㅋ. 

이 달의 책 후보, 많넹.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도덕적 불감증, 지적생활의 즐거움, 세월호, 그날의 기록, 지식인의 표상, 

자본론 공부, 신은 위대하지 않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등등.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자본론 공부>를  읽고 통곡을 했다. 어찌나 억울하던지. 

헛 살았다. 마르크스를 모르고 잘도 살았다. 마르크스는 정말 천재였다. 

다음 달엔 마르크스 자본론 읽기로. 


그럼에도 이 달의 책으론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를 뽑아야겠다. 

또 다시 통곡, 히친스를 모르고 잘도 살아왔다. 엉 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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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북 2016-05-0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왓~ 더 분발해서 잀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드는 목록입니다^^

시이소오 2016-05-01 15:01   좋아요 1 | URL
4월은 날씨가 좋아서 영 책 읽기 싫더군요. 저도 5월엔 분발해야 겠습니다. 원더북님도 화이팅이요^^

라온 2016-05-01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 친구들이 책읽기를 많이 독려하네요

시이소오 2016-05-01 19:12   좋아요 1 | URL
저도 신갈나무님을 비롯한 여러 이웃님 덕에 자극이 되네요^^

깊이에의강요 2016-05-01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느끼는거지만 대단하시당~^^~

시이소오 2016-05-01 21:08   좋아요 0 | URL
백수가 뭐 대단할게 있겠어요? 일하면서 공부하시는 분들이 대단하죠 ^^

syo 2016-05-01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 리스트 중 그래도 몇 권은 읽었다는 사실이 왜이리 뿌듯할까요 ㅎㅎ

시이소오 2016-05-01 21:55   좋아요 0 | URL
읽은 책 저보다 많으시자놔요. ^^

syo 2016-05-0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다 읽은 거랑 읽은척 하는 거 사이의 어느 지점이에요. 보름만 지나도 새하얗게 사라집니다ㅠㅠㅠ

심지어 오늘 읽은 설국 남자 주인공 이름이 벌써 가물가물해요....ㅅ으로 시작하는 네글자였던 것 같은데 ㅋㅋㅋㅋ

시이소오 2016-05-01 22:16   좋아요 0 | URL
ㅋ 저도 가물가물해요. 조금이라도 기억해볼려고 끄적여도 세월앞에 장사없네요. 저, 남주 이름이 또 가물가물하네요. 여주들은 고마코와 요코였던가요? 사요나라는 아닌뎅 ㅋ

yamoo 2016-05-01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와! 정말 많이 읽으시는군요!!! 속독을 배우셨나 봅니다아~~~

시이소오 2016-05-01 23:46   좋아요 0 | URL
속독을 배우고싶네요.
백수라면 아무리 정독하더라도 누구라도 한달에 서른 권은 읽을 수 있어요. ^^;

붉은눈 2016-05-02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시네요. 제목만 봐도 읽는데 시간이 꽤 걸릴만한 책들이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거의 일주일 가까이 오리지널스 잡고 있습니다.

시이소오 2016-05-02 13:29   좋아요 0 | URL
저도 오리지널스 꽤 오래 걸렸어여 ^^

보빠 2016-05-07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책을 읽는다...왜냐면 두려움때문에...시이소오님은 즐거움을 위해서 책을 읽어시겠죠?

시이소오 2016-05-07 11:05   좋아요 0 | URL
책에 써진대로 살고 싶어서요. 어렵겠지만 해봐야죠? ^^
 

장석주는 시인인가? 서평가인가? 우매한 질문이다. 그는 시인이면서 서평가니까. <글쓰기는 스타일이다>를 채 읽지 못했는데 언제 또 서평집을 내신건지. 고즈넉한 시골에서 읽고 쓰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그가 좋아하면 반갑고 (, 당신도!) 모르는 작가의 책이 나오면 나의 무지를 들여다 볼 수 있어 좋다.

 

사계절 동안 그가 함께한 책들을 따라가 본다.

 


벤야민의 <일방통행로>로 시작된다. 도서관에 갔더니 이 책과 함께 <발터벤야민의 공부법><가면들의 병기창>이 새로 들어와 얼른 집어왔다. <일방통행로>는 읽었지만 <베를린의 어린 시절><아케이드 프로젝트1,2>를 아직 읽지 못했다.

벤야민 공부하라는 계시인걸까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

 

최근에 바르트의 <롤랑 바르트의 마지막 강의>를 봐도 바르트의 어머니 사랑은 절절하다. <애도일기>가 나온지는 몰랐다.


 













시인은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다시 읽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나 역시 다시 읽고 싶다. 첫 문장에 홀딱 반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구나.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



 












김동규? 나로선 금시초문이다. 시인은 김동규의 <철학의 모비딕>, <하이데거의 사이예술론>, <멜랑콜리 미학>을 읽었다고 한다. 하이데거 전공자인 듯.





 











이어 한병철의 <피로사회><시간의 향기>

 

한병철은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빌려 온 고요한, 맑은 울림과 향기를 지닌, 투명한” “수정의 시간에 대해 말하며, 그 시간이 지속의 감정이 온전하게 유지되도록 만들고, 마침내는 “향기가 지닌 시간적 연장성 덕택에 자아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한다. 향기로운 시간의 수정의 경험은 해체의 위협에 직면한 자아를 하나의 동일성 속에, 하나의 자화상 속에 안착하게 해줌으로써행복한 느낌을 주는 자기 귀환에 이르게 한다.

 

고유하게 존재하는 자는, 말하자면 늘 시간이 있다. 그가 항상 시간이 있는 것은 시간이 곧 자기이기 때문이다.”

 

난 늘 시간이 있는데, 내가 시간이었던 거얌??



 













좋은 삶은, 하이데거의 용어를 빌리자면, “머뭇거림”, “느긋함”, “수줍음”, “기다림”, “자체가 온존하는 삶, “오직 일만 하는 어리석음에 맞서는 지혜로운 삶, 바로 느림과 지속성을 거머쥐는 사색적 삶이다.

 

임형남, 노은주의 <이야기로 집을 짓다>는 건축을 이야기로 푼 책이라고 한다. 재밌겠다

정지돈의 <건축이냐, 혁명이냐>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에 적당할 듯.


데리야마 슈지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

 

데리야마 슈지라는 미치광이가 있었다니! 그의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다. , 짧고 굵은 삶이다.

 









최근에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과 손열음의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를 재밌게 읽었다. 이런 류의 책들을 더 읽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리셀 셔면의 <피아노 이야기>가 그러한 책일 듯.

 

좋은 연주자란 벌레나 독사, 시와 철학, 소리의 현상학과 인체 공학에 두루 조예가 있어야 한다. “피아노를 아는 것은 우주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반위의 철학자라니. 확 끌린다.



 













권오운, <우리말 소반다듬이>

 

시인은 우리말을 굴려 먹고사는 작가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권혁웅, <몬스터 멜랑콜리아>

 

, 역시 권혁웅이다. 언제 또 온갖 괴물들을 모아 놓았단 말인가.



 



정수복, <파리를 생각한다>

 

, 파리를 생각하다니, 파리는 느껴야지.

 

정수복의 <파리를 생각한다>를 읽으며 파리의 골목들을 더듬고, 노상카페에서 한가롭게 차를 마신다. <파리를 여자였다>(안드레아 와이스). <셰익스피어 &컴퍼니>(실비아 비치),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제레미 머서), <파리의 좌안 피아노 공방> (사드 카하트)를 함께 읽어도 좋다.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달팽이 안단테>

 

달팽이와의 1년 동안 동거의 기록이라니, 재밌을 듯.

 

자크 랑시에르, <감성의 분할>

 

<감성의 분할>은 해묵은 과제, 즉 예술 일반 혹은 미학적인 것의 자율성을 정치 윤리성의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따져 묻고 그 본질을 규명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강석경, <신성한 봄>

 

시인은 토지문학관 입소, 도서실에서 강석경의 신작 <신성한 봄>을 집어와 단숨에 읽었다고. 손이 데일 듯 뜨겁다는 강석경의 문장들.

 


태고의 욕정, 호모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대물림한 바람 소리 숭숭 나는 욕정, 끝없이 욕구해도 채워지지 않는 인류의 야성이며 기갈든 황무지. 네 배꼽을 어미 짐승처럼 핥아주고 정액을 연유처럼 들이켤게, 네 뱃가죽 위에서

죽어도 좋아.

 

이거, 무시무시하다.

 

니나 상코비치, <혼자 책 읽는 시간>


 

날마다 책 한권 일기를 실천하는 여자의 자전체 체험과 책 이야기를 섞은 흥미로운 책이라고. 사랑하는 언니의 죽음을 이겨내기 위해 그녀는 자기 치유의 수단으로 책을 읽었다. 1년 동안의 그녀의 독서 원칙을 따라가 보는 건 ?

 

어떤 저자의 책도 한 권 이상은 읽지 않는다.

이미 읽은 책은 읽지 않는다.

읽은 책에 대해서는 모두 서평을 쓴다.

새 책, 새 저자의 책을 읽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옛날 책을 읽는다.

 

하루에 다섯 권도 읽을 순 있다. 1년 내내 하루에 한 권 씩 읽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네 아이를 돌보면서 가사 노동을 하는 중임에도 하루에 한 권 씩의 책을 읽었다니! 거기다 서평까지. 생계걱정만 없다면 평생 저렇게 살고 싶다.

 

매일 나는 모든 책과 저자와 등장인물들과 결론에 대해 읽고 삼키고 소화하고 생각했다. 나 자신을 저자가 창조한 세계에 푹 담그고, 삶의 변화와 전환을 다루는 새로운 방식들을 목격했고, 유머와 감정이입과 연결의 도구를 발견했다.

 

이브 파칼레, <걷는 행복>

크리스토프 라무르, <걷기의 철학>

조지프 A 아마토,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

레베카 솔닛, <걷기의 역사>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걷기에 관한 책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걷기사소한 움직임들이 한데 모여 전체가 된 것” (조지프 A 아마토,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이고, “뼈와 힘줄, 근육, 신경충격의 일이다. 한마디로 에너지 이동의 문제”(이브 파칼레, <걷는 행복>)이다.

 









한스 페터 뒤르, <나체와 수치의 역사>

필립 카곰, <나체의 역사>

로저 트리그, <인간 본성과 사회생물학>


 














다 벗고 살순 없는 걸까. 안 되겠지.

 

나체일 때 사람들은 더 현재적이 됩니다.

과거(걱정)나 미래(계획)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현재의 순간에 의미를 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더 상처받기 쉽고 의식적으로 더 자주

더 많이 자각하게 되고 더 많이 느끼게 되고,

그래서 더 자유롭고 더 진실하게 움직이고 행동합니다.

 

- 필립 카곰, <나체의 역사>

 

나체가 음란한 게 아니다. 나체를 음란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관념, 위선적 도덕의식, 체면이 음란한 것이다.

 

한병철, <피로사회>

에밀 시오랑, <절망의 끝에서>

에밀 시오랑, <독설의 팡세>

 















더는 잃을 것도 없는 상태, 인생의 밑바닥, 그 절망의 나락에 빠졌을 때 거기서 나올 수 있는 힘은 다름 아닌 절망에서 나온다. 용기를 내서 말하자면,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절망의 감수성’, 혹은 절망에 반향되어 나오는 부조리에 대한 정열따위가 아닐까? 바로 분노, 혹은 광기로 치달을 수 있는 요기에서 현실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동력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에밀 시오랑, 루마니아 철학자.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극작가 이오네스코, 신화학자 엘리아데와 더불어 루마니아 출신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란다. 인용된 문장만 보아도 그의 역설과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인간은 삶과 죽음에 유예되어 영원히 만족하지 못하는 동물의 비극을 살고 있다. 내가 인간이라는 것이 지긋지긋하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즉시 인간임을 포기하리라.

 

원할 때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살고 있다. 자살이라는 가능성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오래전에 자살했을 것이다.“

 

에밀 시오랑은 84세까지 살았다고.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 세상이 의미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모든 것은 결국 무로 귀착되며,

세상의 법칙은 고통이라고 생각하면서 끝없이 번민하는 인간의 불행 속에서

나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

나 같은 인간이 있다는 것은 삶이라는, 태양 위를 덮고 있는 어둠이 너무 커서

결국 빛을 가리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김현진, <뜨겁게 안녕>

 

<뜨겁게 안녕>은 거대도시에서 빈민으로, 혹은 비정규직 노동자로 뜨겁게 이 사회와 몸 비비며 사는 20대의 거침없는 서울 생활 사수기거나 분투기다.

 

서효진, <이게 다 야구때문이야>

 

비정규직 노동은 야구의 원포인트 릴리프와 닮아 있다. 투수가 한 타자만을 상대하고 투수판을 내려오는 때가 있는데, 이게 원포인트 릴리프. 서효인은 모든 투수의 꿈인 퍼펙트게임을 이렇게 적는다.

 

결국 실패하겠지만, 다음 등판이 남아 있다.

실패의 예정, 그리고 도전, 사는 것 자체가

퍼펙트게임이니까.

 

파울볼은 일시적 유예상태다. 파울볼을 쳐낸 타자는 아웃되지 않고 다시 타석에 들어설 수 있다. ‘파울 볼아직 죽지 않았어. 그러니 힘내의 줄임말이다.



 












다치바나 다카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 피도 살도 안 되는 100>

다치바나 다카시, 사토 마사루, <지의 정원>

폴 드 만 <독서의 알레고리>

요네하라 마리, <대단한 책>

 















시인이 시골로 내려간 건 2000년 여름이었다고 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책을 읽기 위해. 시인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부러울 따름이다.

 

세상에는 책을 많이 읽은 사람과 그보다 조금 덜 읽은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간다. 책을 더 읽었다고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책에 몰입하고 뭔가를 창조해낸 사람들 덕분에 이 세상은 보다 더 살 만한 세상이 된다는 건 사실이다. 밥을 먹듯이 날마다 책을 골라 읽어라. 세상의 혼란과 잡담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만의 척도로 온전히 살고 싶다면 지금 당장 그렇게 하라!

 

파리누쉬 사니이, <나의 몫>

 

저자는 현대 이란 여성 작가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중간에 읽기를 멈출 수 없을 만큼 이야기는 생동한다고.

 

윤구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윤구병, <흙을 밟으며 산다>

윤구병,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

 

아 부끄럽다. 나는 윤구병이란 이름도 금시초문. 국립대 교수자리를 작파하고 변산에 내려가 농부가 되어 공동체를 이끄신 분이라고 한다. 윤구병은 화학비료, 제초제, 농약을 쓰지 않는 삼무농법에서 더 나아가 비닐 안 쓰고, 항생제, 방부제 섞인 사료로 빚어진 짐승 똥으로 만든 유기질 비료 안 쓰는 오무농법을 고집, 병들고 썩어가는 땅을 되살려냈다. 동네 노인들도 농사의 자도 모르는 젊은 것들이 땅심을 되돌려놓았구먼하며 찬사를 쏟아냈다고.



 












엘렌 디사나아케, <미학적 인간 호모 에스테티쿠스>

움베르토 에코, <미의 역사>

움베르토 에코 <추의 역사>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출구>

문광훈, <숨은 조화 심미적 경험의 파장>

 













박항률, 누구지 싶었는데 글을 읽고 보니 얼마 전 읽은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 표지 그림을 그리신 분이다.

 

박항률의 그림에는 소녀와 소년들이 등장하고 그 배경에는 주로 새와 나비와 꽃이 나온다. 이 작은 오브제들은 화폭 안에서 매우 정적으로 배치된다. 고요는 고요 그 자체로써 영원성이라는 의미를 얻고 이 생명들이 처한 근원적 현존의 장으로 바뀐다. 박항률은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고요를 그려내는 화가다. 고요는 마음의 해탈을 가리키는 표상이다

















2015.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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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16-05-01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랑 벌레와 독사는 무슨 연관성이 있나요?

시이소오 2016-05-01 17:09   좋아요 1 | URL
피아노를 아는 것은 우주를 아는 것이다, 라네요 ㅎㅎ

:Dora 2016-05-01 20:24   좋아요 0 | URL
피아노를 아는 것과 연주하는 건 항상 이퀄=은 아닌 것 같아요^^

시이소오 2016-05-01 20:29   좋아요 0 | URL
피아노 연주할줄 몰라요 ^^;

:Dora 2016-05-01 21:52   좋아요 0 | URL
걱정마셔요 제가 쫌많이 앎 ㅋㅋ피아노와 우주라니 넘 비약이 큰 거같아서 책 내용이 궁금했네요 한번 읽어보고 싶어요 감사^^

시이소오 2016-05-01 21:58   좋아요 0 | URL
골프든 야구든 피아노든 대가들의 책을 보면 공통점 들이 느껴져요. 궁극의 도는 하나라고 할까요? 영성으로 가는 여러갈래의 길들이 있는것 같네요^^

기억의집 2016-05-01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미드를 많이 봐서 그런지 롤리타가 무진장 불편했어요. 나보코프의 다른 작품은 좋다란 생각이 드는데, 롤리타는 좀 그렇더라구요. 특히나 저는 첫문장이 좀.... 역시 불편해. 였어요.

시이소오 2016-05-01 17:1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롤리타를 일종의 익살극으로 해석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분명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바라보기보단 일종의 은유로 보심 어떨지요? ^^;

기억의집 2016-05-02 21:57   좋아요 0 | URL
어제 쓰려했는데 오늘 쓰네요. 나보코프를 다시 해석하기로 한 계기가 슈뢰딩거를 읽은 후였어요. 시이소오님도 책을많이 읽으시고 과학책도 많이 올리시잖아요. 저도 과학책을 주로 읽는데, 슈뢰딩거가 사생활은 난잡했는데, 그 중에서 지인의 딸둘을 수학 과외 해주다가 한명하고 관계를 맺기 시작했는데 그 나이가 십대였어요. 생각해보니 나보코프자 슈뢰딩거가 살던 시대는 여자가 일찍 결혼하던 시대라는 걸, 타임워프해서 21세기에서 나보코프의 직품을 바라보는 게 아니고 20세기 초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겠더라구요~ 그래서 예전에 제가 나보코프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쓴 적이 있었는데..시이소오님 페이퍼에~

시이소오 2016-05-02 22:06   좋아요 0 | URL
기억의 집님 플픽을 바꾸신거죠? 예전에 호랑이가 아니셨는데 ㅋ 기억 못해서 죄송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01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라울 거 뭐 있씁니까. 제가 보기엔 시이소오 님은 하루에 한 권 읽고 한 서평 쓰기를 몸소 실천하시는 분인데요, 뭘..

시이소오 2016-05-01 17:44   좋아요 0 | URL
저 요즘 게을러져서요. 매일 예전에 써놓은 글로 알라딘 땜방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서평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인독후감이죠. 5월엔 이독일필의 원칙을 고수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

기억의집 2016-05-02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리스 센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괴물이 아니고 다른 거였어요. 뭐 였는지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시이소오 2016-05-02 22:36   좋아요 0 | URL
슈뢰딩거 나빠요. 롤리타는 워낙에 말장난이 심해서 외국인이 해석하기엔 한계가 있는 소설인것 같습니다. 롤리타가 신세기 미국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거든요.

소설에선 어느 정도 도덕적 비판으로부터 자유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포르노가 인간의 자유에 기여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육체적 포르노보다 정신적 포르노의 해악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신자유주의와 재벌들 앞에서 영혼을 파는 지식인들 책이 더 문제아닐까요?

기억의집 2016-05-02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긴 해요, 근데 롤리타를 은유가 아닌 소설 그 자체로 바라보면 여자의 입장에서 불편해요. 특히나 미영은 소아애자에 엄청 엄격해서. 로앤오더란 미드보면 소아애자 범죄자를 체포하면서 롤리타 까거든요. 사회학적 관점에서 포로노와 소아애자에 대한 해석은 완전 달라요. 포로노는 성인의 공간이기에 자유에 기여했지만 소아애자 대한 건 범죄라는 인식이 강하고 절대 용납 안하더라구요. 롤리타를 바라보는 시선이 포로노적 표현의 자유라기보다는 범죄의 시선으로 보는 경우도 있기에 포로노와 다른 것 같아요.

시이소오 2016-05-02 23:55   좋아요 0 | URL
소아성애는 포르노와 달리 말씀하신대로 범죄죠. 어려운 문제네요. 어느정도까지 ㅇ예술에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할 것인가, 권력자들은 언제나 통제하고 싶어하죠. 테러방지법처럼요.
나보코프는 소아성애자를 두둔하기 위해 롤리타를 썼을까요? 작가의 의도에 대해 고민해봐야겠네요^^;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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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중에 <일기예보의 기법>,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 기억에 남고, 한 작품을 꼽으라면 역시 표제작인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다. 책을 쭈욱 훏어 보다가 그러니 한국 영화의 앞 날은 얼마나 밝은 거니?”란 문장 때문에 읽기로 했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마지막 대화문이었다.

 

화자의 이모는 젊은 시절 영화배우였다. 그녀는 출연한 영화의 감독과 제주도로 사랑의 도피 여행을 떠난다. 그녀는 감독과 3개월 정도 동거하면서 밤이면 감독님품안에서 빗소리를 들었다.

 

함석지붕집이었는데,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 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그 사람 부인이 애 데리고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시 정도까진 올라가지 않았을까?”

 

팸 이모는 감독과 감독 부인, 그리고 감독의 아들과 중국집에서 짬뽕을 먹는다. 그날로 감독은 그녀를 남고 두고 떠나고, 27년 후, 감독이 된 정감독의 아들이 제주도로 그녀를 찾아와 두 사람은 짬뽕을 먹는다.

 

나는 김연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읽은 작품이 별로 없었다. 내가 읽은 그의 소설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거나, <세계의 끝 여자친구>일 것이다. 그럼에도 왜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을까. 홍상수 영화에 출연했기 때문에? 카버를 번역해서? 그것도 아니면 <소설가의 일>을 읽었기 때문일까?

 

언급한 세 작품의 공통점이 있다면 대사는 유머러스하고 전반적으로 경쾌하다. 한편으로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내가 왜 한국 소설을 싫어하는지를 다시 한번 상기했다.

 

한국 소설들은 뭐랄까. 소녀들이 소중하게 간직해 온 물건들을 차곡차곡 모아놓은 비밀 상자라고나 할까. 아기자기하지만 답답하다. 아빠에, 엄마에, 동생이, 이모가, 외삼촌이 어쩌구 저쩌구. 늘 이런 식이다. 거기서 조금 확장되면 여자친구가, 남자 친구가, 남편이, 아내가, 장모님이 어쩌구 저쩌구.

 

한국 소설은 한마디로 넋두리 문학이다. (한이 많아서 일까?) 내러티브는 마치 메말라붙어 뚫고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설령 나아갔다 한들, 들어 온 물건을 잡을 수 없는 폐경기 여성의 질만큼이나 헐겁다.

 

그런 측면에서 정유정의 <7년의 밤>은 분명 칭찬받아 마땅한 작품이다. <28>의 실패가 아쉬운 대목이다. (읽다가 중간에 던져버려 내용을 모른다.)

 

이 책을 읽다 책 체인지, 프란시스 베이컨 인터뷰 집인 <나는 왜 고기가 아닌가>를 읽었다. 어라,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서 팸이모가 암송하던 T.S 엘리엇의 시를 인터뷰집 서문에서 다시 만난다. 불과 30분도 안되어 나는 똑같은 시를 읽어야 했다. 왜일까? 천 억분의 일의 확률의 우연. 융이말한 동시성의 상황. 삶의 지표일까? 징조일까? 코엘료가 말했던 표지일까.


(두 책의 번역 둘 다 마음에 안 들어 내맘대로 번역했다.)

 

I said to my soul, be still, and wait without hope

For hope would be hope for the wrong thing ; wait without you

For love would be love of the wrong thing ; there is yet faith

But the faith and the love and the hope are all in the waiting

Wait without thought, for you are not ready for thought;

So the dakness shall be the light, and the stillness the dancing

 

나는 내 영혼에게 말했다. 잠자코 희망없이 기다려라.

희망이란 그릇된 것을 위한 희망일지니.

사랑없이 기다려라.

사랑 역시 그릇된 것을 위한 사랑일지니

그럼에도 아직 믿음이 있을 것이나

믿음과 사랑과 희망은 모두 기다림 속에 있다.

생각없이 기다려라. 너는 아직 생각할 준비가 안 돼있다.

그리하면 어둠이 빛이 될 것이고,

고요는 춤이 되리라.

 

- T. S 엘리엇, <네 개의 사중주>

 

생계에 대한 위협이 시시각각 나를 죄어온다.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어느새 난 또 다시 걱정 속으로 침잠한다. 자연이 내게 보내오는 메시지는 아닐까. ‘고요히 기다리면 빛이 드러날 것이다라고 조언하고 싶은걸까.

 

얼마 전 읽은 다른 책에서의 들뢰즈의 말이 기억난다. 왜 그렇게 끊임없이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그림을 보러 전시회를 찾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들뢰즈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들뢰즈가 자신의 존재자체를 뒤흔들 예술작품과의 황홀한 조우를 기다리고 있다면 

나는 먹고 살 수 있는 건수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의 차원이 이렇게 다를 수가.


-2015.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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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30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4-30 16:54   좋아요 1 | URL
우와, 김연수 작가님 책 많이 읽으셨네요.

ㅋ 용기를 주시는 말씀, 감사합니다. ^^

요즘 날이 너무 좋아서 리뷰를 등한시하게 되는데 열심히 써야 겠어요. ^^

깊이에의강요 2016-04-30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무살과 꾿빠이 이상
딱 두권을 읽었는데...
애매합니다^^
잘 모르겠어요~~

시이소오 2016-04-30 23:14   좋아요 0 | URL
강요님도 많이 읽으셨네요^^ 오랜만이에요. ㅎㅎ

깊이에의강요 2016-04-30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녜^^
과중한 업무로 ㅋ

시이소오 2016-04-30 23:20   좋아요 0 | URL
허걱, 학생인줄 알았는데 커리어우먼이셨군요 ^^
남은 주말 푹 쉬어요 ~~

깊이에의강요 2016-04-30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다 입니당^^

시이소오 2016-04-30 23:34   좋아요 0 | URL
오호, 벌써 취직인건가요? 역쉬 인재 ^^

깊이에의강요 2016-04-30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오해는 나의 힘
너의(?) 힘 ㅋ

옆구리왕짜 2016-05-01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연수를 좋아하고 한국소설을 싫어하는 것은 찌찌뽕이네요.저는 한국소설응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가 그들이 공부를 넘 게을리 하기 때문이랍니다.그러니 영미문학과 비교했을 때 깊이 차이가 엄청나요 ㅠ

시이소오 2016-05-01 01:37   좋아요 1 | URL
최근에 줄리아 카메론 책을 읽었답니다. 30년간 글을 쓰신분인데 아직도 글을 못 쓰더라구요. 충격 먹었어요. 이분이 강조하는게 무조건 쓰라는 거거든요. 아무런 인풋없이 아웃풋만 하면 저 꼴나겠구나, 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까요? 쓰기전에 충분히 읽고 사유하는 과정도 필요할것 같아요 ^^

나비종 2016-05-01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개의 사중주> 란 게 믿음, 사랑, 희망, 기다림, 이렇게 4가지가 나중에는 음악처럼 어우러진다는 의미일까요?
기다리면 영혼도 더욱 깊어지고, 글도 성숙해질까 생각해봅니다. .

시이소오 2016-05-01 01:47   좋아요 1 | URL
오호, 근사한 해석이시네요. 시 전문을 다시 읽어봐야 겠어요. 시앞에만 서면 정신이 멍해져서 생각이 멈춰버리는 병이 있어서요 ㅋ 기다리면 얼어붙은 감수성을 깨버릴 무언가가 오겠죠? 지금 오고 있는지도 몰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