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강미라, <몸 주체 권력>
후쿠오카 신이치, <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동적 평형>
시인은 여름을 원주 연세대 기숙사에서 보냈다.
사람은 몸-주체이고 몸은 “사건들이 각인된 표면”(미셀 푸코)이다. 공간은 그냥 객체가 아니라 몸-주체에 의해 소유되고 거꾸로 몸 –주체의 지각활동과 운동은 공간에 의해 제약된다. 몸-주체와 그것이 놓인 공간은 상호 삼투하며 의미작용을 하는 관계에 있다.
낯선 공간속에서 시인은 불면의 밤을 보냈나 보다.
밤에, 불면속에 나의 깨어 있는 상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깨어 있는 것은 밤 자체이다.
그것은 깨어 있다.
이 익명적인 깨어 있음 속에서 나는 완전히 존재에 노출되어 잇다.
이 깨어 있음 속에서, 나의 불면을 채우는 모든 사유는 아무것에 대해서도
중지되지 않는다.
에마뉘엘 레비나스, <존재에서 존재자로>
폴 오스터, <선셋파크>
마르탱 파주,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
“나는 생각했다. 죽기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우, 아직 그리스를 못 가보다니! 아고, 그리스 사람들 요즘 힘든데 이런 생각을 해도 될라나.
그리스가서 돈을 펑펑 쓰고 오면 좋을텐데.
마르탱 파주? ‘이토록 아름답고 짧고 슬픈 사랑이라니!’ 오, 파주!
읽어야겠다.
‘용’이나 ‘거울’은 현실의 이면에 숨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움과 신비를 가리킨다. ‘용’은 숨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을 보여주는 ‘거울’이 필요한 것이다. 소년은 자신이 깨달은 그 사실을 “용을 보여주는 거울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겠다. 우리는 그 거울을 찾아야 한다. 때로는 직접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불완전한 감각이 우리를 속이려 할 때 큰 도움일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마티아스 루,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강신주,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
왕멍, <나는 장자다>
축구로 철학을 하다니! 11명의 상대방은 타인이면서 또한 또 다른 ‘나’다.
공동의 목적을 위한 협력, 승리하고자 하는 욕망! 게임의 흐름을 파악하려는 생각-의식.
축구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돌아가는 삶이라면, 축구장은 승리하고자 하는 갈망 속에서 의식과 주체가 출현하는 장이다. 축구장은 규범들이 작동하는 사회이고, 갈등들을 해결하는 정치가 작동하는 세계 그 자체다. 그 안에서 ‘철학’의 여러 주제들을 끄집어낼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캐롤 스클레니카, <레이먼드 카버 – 어느 작가의 생>
폴 세르주 카콩,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하루키의 산문들은 그야말로 술술 읽힌다. 역시 이 책도 그러한 듯. 하루키는 “꿈을 좇지 않는 인생이란 채소와 다름없다”라는 구절을 반추한다. 채소는 인간과는 달라서 꿈을 좇지 않고도 사는 데 지장이 없을 테지만, 인간이란 종자는 꿈이 없으면 마치 알맹이가 빠져버린 만두와 같이 자신을 무가치하다고 느낄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 알코올 중독자였지만 글쓰기는 그를 구원해 주었다. 정말 정말 두꺼운 책이었지만 읽다보면 얇게 느껴질 정도로 재밌다.
로맹가리가 여배우와 사귄 건 몰랐다. 진 세버그. 그녀는 스물 한 살 때 마흔 다섯 살의 로맹가리의 연인이 되었다고. 결혼을 파경을 맞는다. 이혼 후 로맹가리는 승승장구하지만 진 세버그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화가는 자기 그림이 제 나이이고, 시인은 자기 시가 제 나이이며, 시나리오 작가는 자기 영화가 제 나이다. 바보들만 자기 동맥이 제 나이다.”
기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앙리 장송이 했다는 말.
그렇다면 내 나이는 한 살?
이때쯤 시인은 뭔가를 쓰는 대신에 시집과 소설을 줄기차게 읽었다.
여름은 쓰기보단 읽기에 적합한 계절인가 보다.
알랭 바디우, <사랑예찬>
바디우가 이런 책도.
“사랑에 대해 말하는 책들은 많지만, 정작 사랑의 핵심을 보여주는 책은 드물다. 그저 주변을 긁적거리며 변죽만 울리다가 마는 책들이 부지기수다.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은 다르다. ”
최초의 장애물, 최초의 심각한 대립, 최초의 권태와 마주하여
사랑을 포기해버리는 것은
사랑에 대한 커다란 왜곡일 뿐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공간과 세계와 시간이
사랑에 부과하는 장애물을 지속적으로, 간혹은
매몰차게 극복해나가는 그런 사랑일 것입니다.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사랑은 그저 미친 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설사 사랑이 미친 짓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찬란하거나 쓸쓸한, 명랑하거나 우울한 하나하나의 생이란 바로 그 사랑의 부정할 수 없는 결과물들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사랑은 미친 짓이라기보다는 위험한 모험이다.”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축구란 무엇인가>
이진경, <노마디즘>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
스포츠에 관한 책들도 은근 많구나.
축구를 한다는 것은 “자기 영혼이 축구공의 영혼이 되고 심장과 살갗이 가죽이 되는 것”이다.
“무엇과도 접속될 수 있는 열림이 리좀의 핵심 원리다. 리좀은 어디서나 접속이 일어난다. 이 접속은 새로운 배치를 만들고, 어느 한 점으로 귀속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새로운 배치를 만들되 이질적인 모든 것을 끌어와서 새로운 이질성으로 나아간다. 리좀의 사유체계안에서 이질성은 배척되는 대신에 다양성을 낳는 계기로 삼는다.”
로제 그르니에, <율리시즈의 눈물>
호이징하, <호모 루덴스>
크레이그 네켄, <중독의 심리학>
유승훈, <다산과 연암, 놀음에 빠지다>
문광훈, 김우창 <세 개의 동그라미>
놀이는 자연스러운 것, 바로 자유이다. 또 이것에 깊이 연관 지어져 있는 두 번째 특징은
놀이가 ‘일상적인’ 혹은 ‘실제의’ 생활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실제의’ 삶을 벗어나서 아주 자유스러운 일시적인 활동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호이징하, <호모 루덴스>
‘놀이’만큼 좋은 것도 없다. 도박도 놀이다. 얼마나 재밌었으면 도박을 ‘놀음(노름)’이라 했을까. 그러나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
낭만적으로 시 제목 같은 ‘바다이야기’가 도박판이라는 걸 누가 알았겠어요? 그것은 문화관광부에서 문화, 낭만주의 그리고 사행, 이 세 가지를 붙여서 한 거 아닙니까. 사람 사는 데마다 도박장이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거지요. 도박은 도박처럼 보여야지요. 문화관광부에서 하는 것이면 문화행사처럼 보여야 되고, 시면 시 같아야지요. ‘바다이야기’처럼 시와 문화와 도박이 합쳐 있는 한국의 혼란 상태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문광훈, 김우창, <세 개의 동그라미>
‘바다 이야기’가 참여정부의 작품이란 게 씁쓸하다. 1902년 서울 주재 이탈리아 대사이던 칼르로 로제티는 “도박에 대한 열정은 모든 한국인이 천부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말했다는 데. 정약용이나 박지원같은 선비들도 예외가 아니었다니! 하긴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위대한 작가들도 노름꾼이었다. 한국에 도박 중독자만 300만명이란다. 이들에게 비난보다는 치료가 우선이다.
버트란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피에르 쌍소 외, <게으름의 즐거움>
톰 호지킨슨, <게으름을 떳떳하게 즐기는 법>
러셀에 따르면 게으름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근거는 딱 한 가지다. 그는 게으름을 “타인의 근면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 말했다. 러셀은 근로가 미덕이라는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행복해지려면 일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으름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남이다. 그러나
정신까지도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맞서는 것을
잠깐 멈추는 식의 물러남이다. 이 세상이 뭐가 되는지,
되어가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라고나 할까.
피에르 쌍소, <게으름의 즐거움>
나처럼 게으른 사람 입장에서는 반가운 책이긴 하나 자랑스럽진 않다. 톰 호지킨슨의 <게으름 떳떳하게 즐기는 법>을 읽어봐야 겠다.
지그문트 바우만, <쓰레기가 되는 삶들>
시모무라 고진, <논어>
“한 번 난민이면 영원히 난민이다. 잃어버린 고향의 천국으로 되돌아가는 길은 거의 완전히 끊겼고, 수용소의 연옥에서 나가는 출구는 모두 지옥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 <쓰레기가 되는 삶들>) 당신은 현실이 ‘지옥’같고 ‘수용소’같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잠재적 ‘난민’이다.
노숙자들을 마주치면 남일 같지가 않다. 나는 ‘잠재적 난민’이다. 바우만은 ‘쓰레기’로 전락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이 사람들의 욕망을 한층 더 탐욕스럽게 하고 변화를 한층 더 욕망하도록 만들게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나는 쓰레기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에드가 모랭, <스타>
<명량>, 혹은 마블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 영화의 흥행은 삶이 점점 더 고단해지고 있음을 반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