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사용 설명서'와 레시피 !

 

 

프랑수아 트뤼포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 첫 번째 단계는 봤던 영화를 두 번 이상 본다. 두 번째는 그 영화를 보고 생각을 정리한 후 글을 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영화를 직접 만들어 본다. 일반 관객들에게 영화를 직접 만들어 보라고 요구하는 것까지는 무리'이겠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는 손쉬운 실천이니 누구나 할 수 있다. 첫 번째 감상이 전체적인 틀 안에서 줄거리를 따라간다면, 두 번째 감상은 특정 부분을 집약적으로 관찰하게 되는 여유를 제공한다. 이때 눈'은 숲(전체) 이 아니라 나무(부분 집약적) 를 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술적 측면도 엿보게 된다. " 저 장면을 찍기 위해서는 트랙을 8자 모양으로 설치해야 하고, 카메라가 180도 회전을 하게 되면 촬영 장비를 신속하게 이동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감독은 왜 굳이 이 장면을 힘들게 찍었을까 ? "

 

만약에 이 의문점이 해결되지 않으면 영화를 다시 보면 된다. 그러니깐 영화를 다시 본다는 행위'는 특정 장면에서 감독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런 다음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작성하면 끄읏 !  문학을 대하는 독자도 마찬가지'다. < 다시 - 읽기 > 는 전체를 보느라 놓친 부분을 세부적으로 분석하기에 좋은 방식이다. 첫 번째 읽었을 때 느꼈던 감상과 다시 읽었을 때 느꼈던 감상이 달라서 당황했던 경험은 다들 있으리라. 내게는 로맹 가리 소설이 그런 경우'였다. 나이가 들어서 다시 읽은 로맹 가리 소설들은 어딘가 모르게 미성숙했으며 자기중심적'이었다. 그렇다고 반드시 재독을 해야 독자로서 자격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문학 비평가는 한 작품을 깊이 읽기 위해서 반드시 " 다시 읽기 "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새움 출판사는 "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까뮈의 이방인이 아니다 " 라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번역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몇몇 사람들은 이 광고 문구가 < 자극적 > 이라고 지적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 적극적 >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니 내 판단이 틀린 모양이다. 판이 시끄러울수록 출판사의 적극적 마케팅은 성공적이었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카뮈의 < 이방인 > 을 이번 기회에 처음 읽었다기보다는 다시 읽었을 확률이 더 높지 않았을까 싶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니 말이다. 평가는 극과 극을 달렸다. 별점 테러는 카뮈의 < 이방인 > 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 이정서가 번역한 번역물 " 에 대한 평가에 가까웠다. 결과만을 놓고 보았을 때 이정서는 까뮈에게 민폐를 끼치는 꼴이다. 이 책에 대하여 좋은 평가를 내린 독자들은 한결같이 가독성을 높이 평가하며 다른 번역에 비해 이해하기 쉬웠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 가독성과 이해 > 는 이정서가 번역을 매끄럽게 잘했기 때문에 내린 평가라기보다는 다시 읽기'에 따른 효과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영화도 마찬가지이고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 다시 - 보기/읽기 " 는 놓친 부분을 다시 보게 만드는 과정이다. 첫 번째 읽기보다는 두 번째 읽기'가 이해력에 도움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정서가 번역한 책이 김화영이 번역한 책보다 가독성이 뛰어나고 이해하기가 쉽다는 지적은 착각일 확률이 더 높다. 만약에 당신이 카뮈의 < 이방인 > 을 이정서 판으로 처음 접하고 나서 김화영이나 다른 이가 번역한 < 이방인 > 을 다시 읽었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 두 번째 독서'이다 보니 놓친 부분을 다시 읽을 기회가 늘어날 것이다. 이처럼 보지 못한 부분을 다시 보게 만드는 과정이 다시-읽기'이니 이해의 폭이 그만큼 넓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

 

사실, 나는 까뮈의 < 이방인 > 을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책으로 읽었다(혹은 다른 번역본으로 읽었을 것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입 주변에 솜털이 부슬부슬 자라던 시절에 읽었으니 제대로 읽었을 리는 없다. 줄거리 뼈대 몇몇만 기억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아도 뫼르소의 행위가 난해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우, 하지 마라. 와와, 할 필요도 없다. 천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다. 문학이란 기본적으로 한 길 사람 속도 모르기 때문에 탄생한 영역'이다. 인간 행동과 그에 따른 해석을 박하사탕'처럼 시원하게 내릴 수 있다면 문학은 의미가 없다. 모든 문학이 계몽 소설은 아니지 않은가 ?  계몽 소설만큼 재미없는 소설도 없다. 인간이란 분석되지 않는 존재이기에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두려운 존재다. 그런데 이정서는 뫼르소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에 답을 부여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 정당방위 > 라는 기상천외한 해답이 나온다. 만약에 이정서가 자신있게 주장하는 것처럼 단 하나의 해석만 가능하다면 그것은 문학이 아니라 전자제품 사용설명서'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정서는 문학을 번역한 게 아니라 전자제품 사용설명서를 번역한 것이다. 왜냐하면 전제제품 사용설명서는 오로지 하나의 명령문'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 1번을 4번에 삽입 후 전원을 연결하라 > 는 문장은 오로지 < 1번을 4번에 삽입 후 전원을 연결하라 > 라는 단 하나의 해석문'만 존재한다. 여기에는 의뭉스러운 은유도 없고 중의적인 표현도 없다. 문화적 차이에 의한 오해도 없다. 1번을 4번에 끼우라고 하는 데 무슨 얼어죽을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란 말인가. 만약에 엉터리로 번역을 하게 되면 결과는 뻔하다. 1번을 3번에 삽입한 후 전원을 연결하면 어떻게 될까 ?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문학은 제품 사용 설명서가 아니다. 번역이란 기본적으로 번역가의 입장과 차이'를 반영한다. 번역이 아날로그'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레시피를 따라 요리를 했다고 해서 음식 맛이 모두 동일할 리는 없다. < 레시피 > 는 재료의 계량, 순서, 방식을 재현하기에는 탁월하지만 결정적으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아날로그적 손맛을 재현할 수는 없다. 번역 또한 마찬가지'다. 번역은 결코 한 가지 맛으로 통일되지 않는다. 번역은 레시피(원본)를 그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하지만 번역가가 만들어낸 손맛은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정서는 자신이 요리한 음식 맛을 표준이라고 우긴 후 다른 사람이 만든 요리에 대해서는 표독스러운 시어머니처럼 짜네, 다네, 싱겁네, 라며 타박을 한다. 나중에는 맹물 마시고도 짜다고 할까 걱정된다.  

 

이번 논란을 보면서 < 이방인 > 을 다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서가 번역한 < 이방인 > 이 아닌, 김화영이 번역한 책이거나 아니면 다른 이가 번역한 책을 말이다. 전자제품 사용 설명서'를 읽는 것만큼 인생을 허투루 낭비하는 것도 없다. 새움출판사에게 영화 < 친구 > 를 권한다. " 고마해라, 책 마이 팔렸다 아이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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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아 2014-05-0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심히, 공감하는 글입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7 15:44   좋아요 0 | URL
심히 공감이 가는 부분을 적어주십시요...ㅎㅎ

마립간 2014-05-07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곰곰발님의 윗글에 심히 공감합니다만, 공감이 가는 부분은 ... 아마 제 서재의 독후감을 읽으셨으리라 추측하면서 생략하지요.

저는 위 책을 구입했읍니다만, ... 심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제가 꽤 신뢰하는 알라딘의 독서가들 중에서 별점을 높게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역자 노트를 제외하고 이방인에 대한 평가와 기상천외한 해석 때문이지, 그 외에 제가 놓친 것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7 17:22   좋아요 0 | URL
아마 그 분들은 번역에 방점을 찍었다기보다는 그냥 카뮈의 이방인'에 대한 평가가 아닐까요 ?


개인적으로 저는 쉬운 번역이 반드시 좋은 번역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상의 < 오감도 > 를 일본에서 번역할 때 동시처럼 쉽게 번역하면 그 번역은 좋은 번역이 아니잖습니까. 오감도를 이렇게 번역하면 제대로 된 번역일까요 ?

첫 번째 아이가 달려가요. ( 아이 좋아 )
두 번째 아이도 달려갑니다
길은 막혀도 좋답니다, 찡긋

저는 번역은 번역투'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번역투가 싫다고 톨스토이의 전쟁과평화를 " 나라말쌈이 러시아와 달라 설로 사맛디 아니할세... " 따위로 번역하는 거야말로 정말 꼴불견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글 창작 소설이 번역투면 문제가 되지만 번역물이 번역투인 것을 두고 비판하는 거는 개인적으로 납득이 안 갑니다.

rendevous 2014-05-11 21:22   좋아요 0 | URL
한글 창작 소설이 번역투면 문제가 되지만 - 부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과거에 배수아 소설의 문장을 번역투라고 비판한 데에 대한 배수아 소설가의 비판을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2 10:51   좋아요 0 | URL
전 번역 작품은 어느 정도 번역투'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창작물이 지나치게 번역투가 되면 문제는 있다고 봅니다. 뭐, 제가 이오덕주의자는 절대 아니지만.... 사실... 제가 뭘 알겠습니까 ㅎㅎ... 질문을 너무 깊게 하시면 제 상식은 언제나 뽀록이 납니다.

다락방 2014-05-07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새움도 이정서도 정말 대단하네요. 방금전에 역자는 알라딘에 재연재를 시작하면서 이 논쟁을 두고 '타인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이기심' 이라고 말하며 '우리 사회의 광기'라 표현하네요. 재밌네요. 저는 새움과 이정서의 광기를 보고 있는데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번역에 대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이기심을 제일 크게 갖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정말 모르는가 봅니다. 이젠 정말 기가 막히네요.



마립간 2014-05-08 08:33   좋아요 0 | URL
지난 번에 비밀 댓글로 쓰려 했던 내용이 ; 어떤 사림이 자기 확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확신이 잘못된 것이라면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소수의 집단이 집단적 자기 확신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집단 속에 누군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표현할 수 없다면 (게다가 그 다른 생각이 맞다면 더더욱이, 비록 다른 생각이 맞지 않더라도) 그 상황은 불행한 상황이죠.

다락방 2014-05-08 10:29   좋아요 0 | URL
저도 그게 궁금해지더군요. 일단 알라딘에 서재를 만들고 글을 올리는 편집자나 마케터는 역자(즉 대표자)와 같은 생각인 것 같은데, 아니 같은 정도로 흥분을 하고 대응하며 귀를 막던데, 드러나지 않는 그 출판사의 직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혹여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표현했다면, 역자는 그들을 모두 내쳤던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습니다. 본인의 실명이 거론된 것을 퇴사한 직원 탓을 했으니까요. 그렇다면 그 집단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 모였다는건데, 그건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다른 생각에 대한 의견을 그동안 줄곧 들을 수 없었을테니.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다른 의견에 대해 미칠것 같은 흥분에 휩싸인건 아닐까 싶어요. 본인들에겐 자신들이 틀렸다고 하는 지적들이 의견이나 대화해야 할 안건이란 생각이 드는게 아니라 우습게알고 인격 모욕을 하는거라고 생각할테니 말입니다. 실제로 그 의견들에 바퀴벌레라며 흥분했듯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8 10:46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군요. 다락방 님....
제가 보기엔 노이즈마케팅 같습니다. 독자들은 궁금해지기 시작하거든요.
도대체 뭔데 저 지랄일까 ? 내 한 번 읽어보마.... 이런 생각들.
그런데 이런 장기전이 그닥 좋은 전략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학을 뗀 사람들이 과연 앞으로 나올 새움 출판사 책을 읽을까 ? 단기전으로 보았을 때는 노이즈 마케팅은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에러 아닌가 싶습니다.

말리 2014-05-07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첨에 좀 관심을 갖고 논쟁을 지켜 보다가 '정당방위' 에서 신경을 끊었습니다. 소설이 무슨 재판도 아니고. 누군가 쓴 글을 봤는데 김화영이나 학계에서 대응을 않는 이유가 전혀 그럴 가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8 10:5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흥미롭게 보다가 점점 흥미를 잃다가 나중에는 화가 나더군요.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이정서는 지금 비평문을 쓰고 있어요. 비평'이란 모두 각자의 시각이 존재하는 것인데
그는 비평을 쓰고서는 그것을 번역의 질'로 따지고 드니 .... 한심합니다.

이정서는 번역 후기'를 올리는 게 아니라 작품 분석(비평)을 하고 있습니다. 월권이죠.

Forgettable. 2014-05-08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독성이 다시 읽기 때문이었군요. 교묘하네요. 정말이지 이게 비교라고는 해놨는데 두번째에 놓이니까 더 공들여 읽게되는 효과가;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8 10:49   좋아요 0 | URL
오홋.. 포님이시군요.. ㅎㅎ.
전 이정서가 회심의 카드라고 내놓은 무기도 그냥 물방망이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소한 차이를 가지고 엄청난 차이'라고 우기니 답답합니다.

수다맨 2014-05-0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에는 이렇게까지 오고 말았네요. 권위에 대해서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러한 비판에 타당성과 정확성이 없으면 조야한 비난에 그치고 만다는 것을 이정서 씨가 보여주는 듯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이제는 씁쓸한 느낌만 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8 17:47   좋아요 0 | URL
명예훼손 운운하며 법적 제재.....
무슨 청와대도 아니고 독자의 의견을 가지고 법적 조치 운운입니까.
새움 출판사 책을 좋게 보았고 읽어도 보았습니다만, 앞으로는 새움 출판사 책은 살 때 망설여지겠군요....

꼬마요정 2014-05-09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는데, 저 역시 말리님 말씀처럼 '정당방위'란 말을 보는 순간 관심이 사라지네요.. 노이즈 마케팅은 이미지 구축에 아주 안 좋을텐데, 당시에 수익을 올리려고 출판사의 이름을 내걸다니.. 하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이 일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새움 출판사 책을 살 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씁쓸합니다.

바퀴벌레 운운하는 거 보니까 정몽준 아들이 미개한 국민 운운한 게 생각나네요. 그저 웃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0 13:39   좋아요 0 | URL
바퀴벌레...ㅎㅎㅎㅎㅎㅎㅎ. 뭐, 이것도 새로운 마케팅이겠지요.
노이즈마케팅이 적당히 하면 효과가 있는데
과하면 역효과가 발생하게 된다는 기본적 상식을 잘모르는 것 같군요....

곰곰손 2014-05-10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 실은 이 포스트 읽고 서너번 덧글 남겼엇는데
서너번.다 넘 취해서 쓰다 다 날림. ㅡ_ㅡ

오늘도 쫌 취했지만 다시 한번 답글단다. ㅋㅋ


너무 공감함.
나도 이 번역논쟁 은근 지켜봤는데
새움 번역가는 쓰레기인듯?

카뮈에 애정을 갖는 사람들이 얼마나많어..
근데그 사람들 모두에게 당신의 카뮈는 그 카뮈가 아니다는데 ..
설사 그게 사실이라도, 어떻게 그렇게 말해.
이건 옳치 않아.

새움 껄 재독한건 아니지만
새움쪽에서 문제시한 김화영씨 번역본 부분-여기 꺼랑 비교확인해봤는데
여기 번역본도 김화영씨번역본과 비숫한 부분이 많네..

난 그래, 가독성은 어떤 편리 도구같다고.
있으면 있는대로 편한 부분이 있는데,
편한 게 죄다 답은 아니잖아..?

쉽게얻은 건 쉽게 잊거나 잃느다고..
난 네가 예전에 철학은 어려워야한다고.. 그말 디게 남드라.
늘 이렇게 쉽게 읽히는 글쓰려 하는 네가 하는말이니
아마 정말 그런거 같아.
어떤 번역본이래도
카뮈를 그 누가 쉽게 읽어~
그건 정말 바보가 하는 말이거나
심각하게 오만한 자가 하는 헛소리야.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0 17:28   좋아요 0 | URL
이젠 안 취한 날이 신기한 날이 되었구나. 허허..
번역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출판사 자세가 불괘하지.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완벽한 번역이라니....
기가 찰 노릇...적당한 선에서 끝났으면 그려려니 했을 텐데
오도방정을 떨어서 정 떨어졌다고나 할까....

노이즈마케팅도 적당히 해야지.
지나치면 양 미간에 川자 그려진다.

가독성이 잘된 번역의 핵심일까 ?
난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어 지거등...
이상의 오감도를 가독성 읽게 번역한다고 동시 비스무리하게 번역했다면
가독성에 뛰어나니 좋은 번역일까 ? 생각해 볼 문제 다.

samadhi(眞我) 2014-05-1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때 카롤린 봉그랑,『밑줄 긋는 남자』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 소설에서 주인공이 로맹가리 전작주의여서 저도 로맹가리를 처음 알게 됐는데 그때 읽은 로맹가리 소설(자기 앞의 생)이 유치해서 무척 실망했거든요. 제 이해수준이 낮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로는 일부러 찾아 읽지 않게 되더라구요. 로맹 가리의 작품 중 수작을 하나만 꼽아주세요. 읽고 싶어질 지 모르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4 09:4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제가 생각하는 로맹가리 대표작은 자기 앞의 생'입니다. 저 어릴 때 읽어서 무지.....
개인적으로 < 새벽의 약속 > 인가요. 고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부 어릴 때 읽어서 ( 스무살 때 ? )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 읽으니 좀 유치하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stella.K 2016-03-13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원, 넘 오래된 곰발님 페이퍼에 댓글을 다는 게 좀 거시기 합니다만
최근 이정서가 새로운 책을 <까뮈에게서 온 편지>라나 뭐라나...
괜히 관심이 가더라구요.
물론 이 사람의 문학이 저와는 그다지 맞는 것 같지는 않지만 유독 번역에 집착하는 게
왜 그럴까 싶네요.
그러던 중 곰발님의 이 페이퍼를 접했는데, 짜네 다네 독한 시어머니에서 빵 터졌습니다.ㅎㅎㅎ
부지런해서 벌써 여러 권의 책도 냈던데, 아무튼 곰발님 이 글을 읽으면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기도 하고...
이 사람 여러모로 문제적 작가인 것 같긴 해요.ㅋ
 

 

 

 

 

 

 

 

 

 

 

 

 

 

 

 

 


 

 

 

 

 

젖은 양말은 쉽게 마르지 않지...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참석하지도 못한 채 되돌아와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 집회는 없었다. 날짜를 착각한 것이다( 집회는 5월 4일이 아니라 5월 3일이었다 ).  구보 씨'처럼 할 일 없이 도시를 배회하다가 종로 3가 서울시네마로 향했다. 서울 극장'은 옛 명성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골든 타임은 한때'다.  썰렁한 극장 로비를 보니 몰락한 패장을 보고 있는 듯했다. < 한공주 > 를 보기로 하고 상영시간표를 확인하니 2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극장 근처 다방'으로 들어갔다. 다방 또한 텅 비어 있어서 창가 쪽 자리를 쉽게 차지할 수 있었다. 커피를 마셨다. 책을 읽다가 까마귀처럼 잠시......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멜랑꼴리한 기분이 들어서 직원에게 커피 리필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직원은 상냥하게 가능하다며 커피를 잔에 가득 부었다.

 

카페 앞 은행나무 가로수에서 뻗은 튼튼한 가지를 꽤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문득 자살하고 싶다는 충동이 느껴졌다. 오월이 가기 전에 자살하기로 결심했다.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이 생각났다. 목을 매 자살하려던 사람이 죽음 직전에 속옷을 더렵힐까 봐 항문에다가 당근을 박아넣었다는 내용이었다. 아, 그래 ! 소설 제목이 생각났다. " 만연원년의 풋볼 " 나 같으면 항문에다 당근을 박느니 차라리 관장을 했을 것이다.  누구한테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떤 사람이 마당에 있는 빨랫줄을 끊어 방으로 가져와 목을 매려다가 시계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고 한다. 그는 잠자는 가족이 깰까 봐 잽싸게 알람 버튼을 누른 후 오랫동안 멍하니 있었다고. 그리고는 마당으로 나와 떨어진 빨랫감을 주워 왔다고 한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욕실로 가 씻고 출근 준비를 했다.

 

빨래 더미에서 전날 잘 마른 뽀송뽀상한 양말을 골라 신자 기분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뽀송뽀송하게 잘 마른 양말을 신었을 때, 그때 느꼈던 순간만을 기억하자고. 그 생각만 하면 세상을 못 살 것도 없지 않는냐고. 그래서 그 사내는 슬프거나 자살 충동이 일어나면 볕에 잘 마른 양말을 신었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가 내게 그 말을 한 것만큼은 어렴풋이 기억한다. 내가 아는 여자는 손에 지문이 없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엄마를 칼로 위협했다고 했다. 여자가 취직한 곳은 화학 약품을 다루는 공장이었다. 장갑을 낀다고 해도 늘 화학 약품이 손에 묻어서 날마다 살갗이 벗겨지다 보니 나중에는 지문이 사라졌다고 했다.

 

" 그럴 리가.... " 내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여자는 내 손을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자는 노동 운동 때문에 자주 경찰서를 들락날락거렸다. 신분 조회를 하기 위해 지문을 확인할 때마다 사라진 지문 때문에 판독 불능 판정을 받고는 했다. 여자는 그 사실이 슬퍼서 울었다고 했다. 게이'였던 내 친구가 나중에 소식을 전해주었다. 여자는 자살했다. 소문은 흉흉했다. 공장은 문을 닫았고 노동자는 뿔뿔이 흩어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시간이 되어 극장으로 향했다. 그때 거리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쳤다. " 고릴라'다 !!!! " 사색이 되어 소리친 사람이 가리킨 곳을 보니 덩치가 큰 고릴라'가 종로 거리를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사정없이 들이받은 후 내팽개쳤다. 그렇게 나가떨어진 사람은 서른은 넘어 보였다.   

 

종로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는 이 풍경이 시적이어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고릴라, 봄비 그리고 난동이라......  그때였다. 고릴라 눈과 내 눈이 서로 마주쳤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고릴라는 손으로 가슴을 치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나를 향해 돌진하지는 않았다. 세월이 세월이니 만큼, 이 도심 속 난동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9시 메인 저녁 뉴스가 아닌 마감 뉴스 시간에 짧게 언급되거나 아예 기사를 내보내지 않을 수도 있다. 하긴 누가 믿으랴. 지리산도 아닌 종로 3가에 고릴라가 나타나 서울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릴라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어서 나는 서둘러 극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 한공주 > 는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였다. 앞에 앉은 사람의 머리가 커 화면을 가리다 보니 나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보느라 목을 빼야 했다.

 

하지만 목이 아프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음이 더 아팠으니깐. 피해자이면서 지역 사회로부터 쫒겨나 피해다녀야 하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도 희망은 존재할까 ?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나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엔딩 자막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상영관 안에 불이 들어왔다. 그런데 내 앞에 앉은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고릴라'였다. 이 고릴라가 아까 그 고릴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덩치는 비슷했다. 고릴라가 흘끗 나를 쳐다봤다. 내가 뒷걸음질치며 주변을 돌아보니 고릴라는 관객들 사이에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상영관을 나오면서 벽에 반사된 내 모습을 흘깃 쳐다보았다. 나 또한 고릴라'였다. 

 

 

뽀송뽀상한 양말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 사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끝내 자살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날은 비가 내렸고, 뽀송뽀송한 양말은 없었다. 빨랫줄에 목매단 그는 젖은 양말을 신은 발을 축 내려트렸다고 한다. 젖은 돈은 말리면 되지만 절망은 쥐새끼처럼 가차없이 희망을 갉아먹어서 젖은 양말을 말리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최초 목격자는 그가 자살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바닥에는 젖은 양말에서 떨어진 물'이 고여 있었는데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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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지& 2014-05-05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젖은 돈을 말리기에 급급했던 사람과
젖은 양말을 말릴 수가 없어 자살한 사람..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5 12:37   좋아요 0 | URL
본문보다 댓글이 더 화려하군요. 젓은 돈을 말리기에 급급한 사람과
젖은 양말을 말릴 수 없어서 죽은 사람이라....

새벽 2014-05-05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무소든 고릴라든 코끼리든 한번 휘저어줬으면 좋겠단 생각도...
본문의 고릴라는 다른 의미 같지만 말입니다.

여튼! 보셨군요. 이 영화는 진짜 극장에서 표 사서 봐줘야 할 영화 같은데 말입니다.
요 몇 년 극장에 발 한번 들여 놓기가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어요.
암만 생각해봐도 바쁘단 건 핑계 ;;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5 21:52   좋아요 0 | URL
영화를 보다 보면 고릴라 44마리가 나옵니다.
사실 전 일반 상업 극장 거의 안 갑니다 1년에 1번이나 갈까요. 대부분은 시네마떼끄를
이용해서 상업극장 가면 뭔가 기분이 굉장히 나빠요....
하여튼 전 상영관 적은 극장을 찾습니다. 같은 값이면.... 말이죠..

새벽 2014-05-06 00:0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대략 눈치 챘어요. 헐... 44마리나..!!!!!!!!!!

봄밤 2014-05-06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젖은 양말은 끄트머리가 특히 잘 마르지 않죠. 조금만 말리면 될 것 같은데 더뎌요. 어쩌면 그부분을 제외한 양말 전체가 다 마르는 시간만큼 더 필요한 것 같아요. 고릴라, 고릴라. 개봉해야겠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6 18:51   좋아요 0 | URL
젖은 양말은 끄트머리가 제일 늦게 마른다..... 라 !
시적인 표현이군요. 맞습니다. 항상 끄트머리가 제일 늦게 마르죠....

방가방가 2014-05-06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死가 젖은 사내의 심장을 말릴 최선의 방법이였다면
그 전에 기꺼이 빨랫줄이 되어 주지 못한 우리들에게 그 죄를 물으십시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6 22:12   좋아요 0 | URL
음.....

엄동 2014-05-07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또한 고릴라였다"
화끈.
제 낯도 붉어지고

젖은 양말에서 떨어져 고여있는 조금의 물"은
참.
가슴이 꽉 메어지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7 16:55   좋아요 0 | URL
조금의 물'이란 표현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이 영화 좋으니 꼭 보시기 바랍니다.
독립영화인데 완성도도 뛰어나고 좋습니다.

samadhi(眞我) 2014-05-13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려고 달력에다 개봉일까지 표시했었는데 남편이 그건 정말 보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구요. 너무 불편해서 볼 자신이 없다고. 영화를 보기 전에 밀양 그 사건에 대해 자세히 몰랐던 저는 최근에야 자세한 내용을 찾아보고 끔찍하고 무서워 저도 영화를 볼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네요. 한동안 검색어에 올랐던 그 여경도. 정말 대단한 "대"한 민 국 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4 09:39   좋아요 0 | URL
안 보길 다행이네요. 꽤 오래 남습니다. 저도 이 영화 보고 나서 한 며칠 계속 생각나더군요.
그리고 문득 궁금합니다. 그 학생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이 세상이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는 떳떳하게 살아가고...
가해자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이 영화는 보고 있을까. 정말 아무런 죄책감도 들지 않을까......
 

 

 

 

 

 

내 탓이 아니다

 

 

친일파 후손들과 정치-마피아'들이 국민을 세뇌시킨 대표적 감성이 " 화해와 용서 " 였다. 특히 < 용서 > 는 한국식 기독교 신앙과 결탁되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그런데 예수가 실천한 용서는 아래로부터의 용서'였다. 헐벗고 굶주린 자는 용서하되 가진 자가 지은 죄에 대해서는 분노해야 된다고 가르쳤다. 그는 가난한 자 앞에서 울었고 우상을 섬기던 부자에게는 불같이 화를 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용서는 오로지 기득권에 한해서 관용을 베푼 반면 굶주린 자에게는 들짐승의 발톱보다 가혹했다. 약자보다는 강자에게 용서를 베풀었다는 말이다. < 용서 > 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자면 나는 김대중'보다는 김영삼'이 빼 든 냉정한 칼끝을 좋아했다. 화해와 용서라는 아름다운 미덕으로 구태의 끈을 끊지 못하고 줄을 엮는 재단사'보다는 단칼에 베어버리는 무식한 망나니'가 필요한 사회다.

 

같은 이유로 김수환 추기경이 < 내 탓이오 ! > 운동을 전개했을 때, 나는 그 짓이 " 천박 " 하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기 때문이다. < 내 탓 > 이 용서'라면 < 네 탓 > 은 불관용'이다. 독일 사회가 나치 전범들에게 보인 불관용'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정의'였다. 세월호 참사'는 선장과 선원, 유병언과 유착 세력 그리고 정치 관료 사회'가 만든 지옥도'였다. 그들은 모두 가해자'였다. 무엇보다도 우두머리인 박근혜는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 공공의 적 " 은 점점 범위가 좁혀지더니 결국에는 < 선장과 선원 > 이 주범으로 찍혔다. 박근혜는 그 사실을 만천하에 천명'했다. 살인 행위 운운하면서 말이다.  촛점이 선명할 수록 배후 세력은 흐려지는 법이다.

 

박근혜가 살인 행위 운운하는 순간 선장과 선원은 공공의 적이 되었지만 여기에는 꼼수가 있다. 그것은 마치 망원 렌즈와 같아서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특정 인물에게 촛점을 맞추면 배경이 흐려지는 것과 같다. 배후 세력들은 자신을 감추기 위해 포커스를 선장과 선원 그리고 유병언에게 맞췄다. 그런데 이 사건이 가지고 있는 본질은 선장과 선원이 가지고 있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꾀죄죄죄함'이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선장과 선원들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다. 그들은 개새끼'이면서 동시에 먹고 살아야 하는 불쌍한 것'이기도 했다. 멱살 잡고 " 밥은 먹고 다니냐 ? " 며 끝내야 한다. 지은 죄에 대한 대가는 법에 따라 처벌을 받으면 되니깐 말이다. 뻔뻔하다고 욕할 필요 없다. 진짜 악은 평범하지 않다. 그들은 멱살을 잡힐 만큼 힘이 없는 존재들이 아니다.

 

전두환 때부터 이어져 온 정치 마피아들과 토호 세력'이 만든 재앙이 바로 세월호 대참사의 주범이다. 이럴 때마다 악랄한 기득권 세력이 유포하는 감성이 바로 < 화해와 용서 > 다. 그리고 < 화해와 용서 > 가 만들어낸 구호가 바로 " 내 탓이오 ! " 다.  " 내 탓이오 ! " 라는 회한과 반성은 겉으로 보기에는 지성적 자기 성찰을 담고 있지만 속내는 악랄하고 교묘한 대중 세뇌'가 숨겨져 있다. 어느 시점부터 분노는 서서히 기성 사회와 어른에 대한 반성으로 변질되면서 내 탓'이라는 자기 참회로 바뀌고 있다. 이 < 죄 > 가 대중으로 광범위하게 " 전이 " 되는 순간 본질은 흐려진다. 주머니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다는 속담은 백성들이 저잣거리에서 막걸리 마시면서 하던 소리가 아니라 탐관오리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기 위해 유포한 말이다.

 

가해자가 대중이 되는 순간 독일식 불관용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본질을 흐리는 짓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금 모금'이다. 이번 사건은 자연 재해'가 아니라 가해자(청해진과 정부 관료)가 명백한 참사'다. 자연재해의 경우, 가해자가 없고 피해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금하는 것은 인간으로써 당연한 도리이지만 이번 사건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피해 보상금은 전적으로 가해자인 회사와 정부의 몫이다. 그러므로 모금된 성금은 피해자를 돕는다기보다는 가해자를 금전적으로 돕는 꼴이 된다. 만약에 정부가 피해 보상액을 지급하지 못할 만큼 재정적으로 가난해서 지급할 수 없다면 박근혜를 비롯해서 관료들은 피해 보상액만큼 교도소에서 노역을 해야 한다. 그들은 교도소에서 인형 눈깔이라도 붙여야 한다.

 

애도'가 길어지면 우울'이 찾아온다. 상중에는 상제의 몸이므로 통곡해도 된다. 그것이 바로 애도'이니 말이다. 통곡도 교양 따지며 울 필요는 없다. 애도는 미개해도 된다. 하지만 애도 기간이 지나면 냉정하게 돌아와 사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나는 생떼 같은 아이들이 맹골수도 찬 바다 밑에 수장된 일'이 내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잘못은 내 탓이 아니라 내 탓 - 이데올로기'로 그동안 미꾸라지처럼 올가미를 빠져나간 그놈(들) 탓'이다. 반성은 그들의 목을 베고 나서 시작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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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4-05-04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자연재해도 아니고 책임 주체들이 분명히 있는데도 성금 모금을 한다는 것은, 책임을 분산시키려는 얍삽한 술책으로 밖에는 안 보입니다. 증오할 것을 제대로 증오하지 못하고, 목 베야 할 것을 제대로 목 베지 않으니 기만에 가까운 "화해와 용서" 이데올로기만 팽배해지는 것 같습니다. 더 거칠게 말하면, "화해와 용서" 발언 함부로 지껄이는 인간들 -정치인이고 종교인이고 예술인이고 가릴 것 없이- 입을 찢어야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5 11:11   좋아요 0 | URL
정치마피아와 극우 보수 기독교가 결합한 형태가 바로 화해와 용서'죠. 위에서도 말했지만 예수는 아래로부터의 용서를 말한 것이지 가진 자에게 베푸는 용서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김수환 추기경도 친일파'였죠.

새벽 2014-05-05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개한민국 특유의 더러운 가족주의 온정주의가 4월 16일의 비극을 만들었단 사실을 가족의 달 5월에 우리 함께 다가치 생각해 BoA요."

제가 쓴 말은 아니고.. 방금 어느 게시판에서 읽고 인상적이어서 공유하고 싶어서요.
온정주의 가족주의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고 가려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걸 확실히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정말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5 11:12   좋아요 0 | URL
정말 이 지랄같은 온정주의의 노망, 이젠 아주 실물이 납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있냐. 라는 소리도 일종의 온정주의이고,
너도 저 자리 차지하면 안 할 것 같냐, 는 소리도 너도 똑같은 놈이니 남 욕할 필요 없다는 소리이고.
말이 온정주의이지 노예근성입니다.

마립간 2014-05-05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行人臨發又開封행인임발우개봉 ;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방자의 무식함을 빌어 춘향이의 편지를 열어보는 장면이 나오죠.
저는 이런 장면이 소설 속에나 있는 장면으로 생각했는데.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 실제로도 일어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5 22:06   좋아요 0 | URL
미션임파서블한 게 한국에서는 늘 파서블'하잖습니까.
이젠 하도 많아서 국민들이 그려려니 하는 추세인 거 같습니다.

samadhi(眞我) 2014-05-14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말이 그 말입니다. 아 지긋지긋해서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그놈들 하는 짓. 뭘 먹으면 그렇게 낯이 두꺼워질까요. 범죄자들이 큰소리치며 애꿎은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는 일을 밥먹듯 하는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꿔야 할 지 막막합니다. 모두가 뜻을 모아야 할 텐데. 그마저도 쉽지 않아 속이 터지지만. 이번 만큼은 지들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살인자들, 전국민을 우울증 환자로 만든 주범들을 반드시 응징해야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4 09:38   좋아요 0 | URL
이게 바로 선거 때마다 새누리를 밀이줘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패악질을 해도 되네? 북한만 건드리면 되네... 이런 마인드..... 북한 없었으면 이 새끼들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정당입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해야 할 정당이죠...
 

 

 

 

 

 

 

편집의 묘미 : 세월 호 보도와 히치콕 그리고 왕가위

 

 

 

 

영국에서 명성을 쌓던 히치콕은 바다 건너 할리우드로 갔다. 그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통해 배운 첫 번째 교훈은 편집권이 감독이 아니라 스튜디오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점이었다. 제작자는 감독이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편집하기 일쑤였다. 가만히 보고 있을 히치콕이 아니었다. 몸집은 곰 같았지만 생각은 여우였다. 그는 장면에 꼭 필요한 분량만 찍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 100분짜리 영화를 찍으면 100분 분량의 필름만 찍어서 편집실로 보냈다는 뜻이다. ( 꼭 100분 분량의 필름만 촬영했다는 말은 아니다. ) 보통은 원활한 편집을 위해서 다양한 각도로 찍기도 하고 내용을 살짝 바꿔서 여러 번 촬영해 두면 편집 시 원하는 장면을 뽑을 수 있기에, 다른 감독들은 이러한 작업 방식을 선호하는 반면 

 

히치콕은 에누리없이 필요한 장면 분량만 찍었기에 편집권이 스튜디오에 있다고 해도 짜맞추기를 할 수 없었다. 영화 < 사이코 > 에서 처절하게 죽은 자넷 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히치콕 감독님의 영화는 필름 편집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씁쓸한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시더군요. 영향력이 별로 없었던 시절에 감독님 뜻대로 영화를 못 만들고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필름을 잘라 버렸대요. 촬영 필름을 너무 많이 넘긴거죠. 그래서 감독님은 아주 꼼꼼하게 미리 계획을 세워서, 잘라낼 소지가 있는 부분을 아예 없애려고 했어요. 효과적인 부분만 확실히 찍으려고 했죠. ( 스티브 레벨로, 히치콕과 사이코 中 ) "

 

제작자는 히치콕의 꼼수에 주먹을 불끈 쥐었고 히치콕은 괄약근을 풀어 호탕하게 웃었다. 반면 왕가위 감독은 필름을 많이 사용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100분짜리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분량의 필름을 사용했다. 대표적인 영화가 < 동사서독 > 이었다. 몇 개월 동안 찍은 필름은 하루아침에 처음부터 다시 찍기 시작했다. 맡은 배역도  느닷없이 바뀌었다. 양가휘는 몇 개월 동안 연기했던 역할을 버리고 장국영이 맡았던 배역을 연기해야 했고 장국영도 마찬가지였다. 내용도 180도 바뀌었다. 왕가위는 이 영화에 대해 확신이 들지 않았고 우왕좌왕했고 제작비는 올라갔다. 그만큼 필름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완성된 영화는 뒤죽박죽이 되었다. 장국영의 수염은 장면마다 들쑥날쑥했다. 오래 전에 촬영된 필름 분량과 섞이다 보니 엉망이 된 것이다. 그리고 주연인 줄 알았던 왕조현은 단 한 컷'만 등장한다.

 

영화는 애초에 생각했던 영화와 180도 달라졌다. 완벽하게 실패한 영화였지만 내게는 왕가위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때론 실패가 위대한 영화를 만든다. 내가 히치콕과 왕가위 감독을 불러들여서 두 감독이 가지고 있는 작업 스타일을 비교하는 이유는 언론이 팩트'를 가지고 가위질'을 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언론 조작은 매우 간단하다. " 가위질 " 이다. 취사선택에 따라 180도 달라진다. 언론사 데스크는 영화 편집실과 동일하다. 촬영된 장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편집실에서 가위질로 내용을 바꾸듯이, 기자가 쓴 초고는 얼마든지 데스크에 의해 바뀔 수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니깐 말이다. 특히 인터뷰 내용은 사실을 왜곡하기에 좋다. 세월 호 사고 유족들이 언론을 불신하는 이유는 편집이 되지 않은 현실과 언론 데스크를 통해 편집된 조작질 사이에 놓인 괴리감 때문이다.

 

박근혜 분향소 조문 장면만 해도 그렇다. 박근혜는 엄숙한 분위기에서 애도를 표하며 분향소를 한 바퀴 돈다. 슬픈 음악이 배경으로 깔린다. 뒤돌아서면 유족으로 보이는 늙은 노모가 서 있다. 그녀는 노모를 토닥이며 위로한다. 그런데 편집되지 않은 날것을 보면 실상은 전혀 다르다. 박근혜가 분향소를 두리번거릴 때 주위는 엄숙하기는커녕 거친 욕설이 오고갔다. 언론은 피맺힌 절규를 노이즈라고 판단하고 지웠다. 그리고 노컷 뉴스가 보도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슬픔을 나누던 유가족은 유가족이 아니라 청와대가 섭외한 조문객이었다. 청와대는 이 사실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하지만 판단은 국민이 한다. 설령,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박근혜의 조문은 예의가 없다. 어느 누구도 조문객을 위로하기 위해 분향소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명심해야 될 부분은 언론사가 제공하는 기사는 대부분 " 발췌본 " 이라는 점이다. " 발췌본 " 은 " 원본 "에서 따왔으므로 훼손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이 재료를 가지고 가위질을 하면 내용은 전혀 다른 내용이 된다. 노무현 NLL발언이 대표적'이다. 새누리의 힘은 바로 편집에 있다. 재앙에 가까운 대참사 속에서도 해경은 왜 진도VTS 통신 내용 원본이 아닌 편집본을 제출했을까 ?  모를 일이다. 동영상 속 빨간 손톱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할 말이 없다. 잘빠진 사진 한 장을 위해, 그깟 사진 한 장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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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미에르 2014-05-01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오늘 한껀 했습니다.
이런걸 나르시즘 이라 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전 좀 멋진 놈이었습니다 -_-V

http://kaizi2011.blog.me/20209812436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3 14:25   좋아요 0 | URL
분향소가 설치되었으니 많은 주민이 애도를 표하겠군요...

엄동 2014-05-01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게 뭔가요
뭐하는 짓인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3 14:26   좋아요 0 | URL
희망이 없는 사회 같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4-05-03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언론은 최고의 영화편집자인듯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3 14:26   좋아요 0 | URL
청와대와 언론에 대종상 편집상을 줘야 할 듯합니다.

samadhi(眞我) 2014-05-14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저 할매는 성과급 고액연봉자가 아닐까 합니다. 멋째이 할머니가 되는 것이 제 꿈인데, 저 할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말하는 할매는 둘 다 입니다. 조문객 배우와 지시한 할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4 09:36   좋아요 0 | URL
전 오히려 이 연극을 연출한 사람이 궁금합니다.
누가 이렇게 하자고 했으니 박근혜도 동의했겠지요. 길이길이 남을 명장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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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 알라딘 신간 평가단 14기 활동

 

 

 

 

 

 

1. 개새끼들, 그럴 줄 알았다 !     

 

 

 

 

우선 " 고해성사 " 부터 하자. 내 독서 편력은 서평의 고수인 로자, 나귀, 파란여우 님'처럼 광범위한 독서량은커녕 대한민국 국민 평균 독서량보다 조금 많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수인 양 뒷짐을 지며 "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베이셔도 마참네 제 뜨들 시러펴디 몯한 노미하니아 내 이럴 윙하야 어엿비너겨 < 4월의 주목할 만한 도서 목록 > 를 맹가노니 어린 얄라디녀는 참고하라 ! " 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뭘, 알아야 추천을 하고 그럴 것이 아닌가 ! 그렇다고 마음 내키는 대로 제비뽑기로 고를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내가 고른 목록은 양 미간보다 좁아터진 독서 편력'을 바탕으로 선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 아는 범위 안 " 에서만 골랐거나 특정 분야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고른 결과이다. "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로 우리 시대의 대표적 탈성장 이론가인 세르주 라투슈 ( 책소개 글 ) " 가 쓴 < 낭비 사회를 넘어서 > 는 후자에 속한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작가'다. 그런데 이 책 목차를 훑다가 무릎 탁, 치며 아, 했다. 왜냐하면 내가 평소 생각했던 의문점들이 고스란히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저렴한 테엽 장치 시계'가 많았다. 하루에 한 번 시계에 밥을 주면 되니 건전지도 필요 없어서 보관만 잘하면 오래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렴한 테엽 장치 시계'는 없다. 왜 그럴까 ?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품 수명이 오래 가면 튼튼한 제품이라며 반기지만 기업 입장에서 그런 제품은 불량 제품에 가깝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업이 " 일부러 제품 수명을 단축하거나 결함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애초 설계 시점부터 제품의 수명이 조작되는 것이다 " 라고 고발한다.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인가 ?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 예를 들어 프린터에는 인쇄 매수가 1만 8000장이 넘으면 자동으로 작동을 멈추게 하는 마이크로 칩이 삽입되어 있다. 1940년 듀폰사에서 출시된 스타킹은 올이 풀리지 않고 자동차 한 대를 끌 수 있을 만큼 튼튼했지만, 자외선 차단 첨가물의 양을 조절한 이후부터 여성들은 규칙적으로 새 스타킹을 구입하게 되었다. 1881년 에디슨이 만든 최초의 전구 수명은 1500시간이었고, 1920년대 생산된 전구의 평균 수명은 무려 2500시간이었지만, 현재 우리가 구입하는 것은 제너럴 일렉트릭 등 기업 간 담합으로 1000시간 이하로 정해졌다. 수리가 불가능한 아이팟의 배터리가 제조 단계에서부터 이미 수명이 18개월로 제한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나서 주먹 쥐고 일어났다. 그리고 소리쳤다. " 개새끼들, 그럴 줄 알았다 ! " ( 사회학 분야 )

 

▶ 기능이 많을수록 고장이 잘 난다

 

 

 

                                                                                                        

 

                                                       

                                

 

                  

2. 전문성과 통속성 사이

 

 

 

 

 

과학자가 실력은 없으면서 " 말빨 " 만 좋으면 위험하다. 대표적 인물이 황우석'이다. 그가 선보인 젓가락 신공은 말빨의 미학이 만들어낸 황홀한 판타지아'였다. 피디수첩'만 아니었다면 < 황우석 가전제품 신공 시리즈 2탄 > 숟가락 신공'도 선보였을 것이다. 이상적인 과학자는 오로지 연구 결과'만 가지고 평가를 받는다. 손은 가벼워도 좋지만 입은 무거워야 한다. 그들은 전문 용어와 고급 영어를 구사하며 권위 있는 과학 전문 잡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스티븐 제이 굴드'는 대중적 글쓰기를 좋아했다. 그는 < 다윈 이후 > 머리말에서 " 내가 에세이들을 모아서 새로 펴낸 것에 대한 유일한 변명은 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 " 기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고백한다.  따분한 자연 과학 이론을 쉽게 설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학자 본분에 충실하면 독자가 이해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독자에 촛점을 맞춰서 " 콩나물에 고춧가루 팍팍 묻혔냐이 ~ " 라며 지나치게 잔재주를 부리면 주객이 전도되어 경박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굴드는 전문성과 통속성을 절묘하게 섞는 기술이 탁월한 과학자'다. 그는 < 내 어떻게 해서든 너를 이해시키마 - 를 주장하는 학자 > 에 속해서  " 철학, 신학, 종교, 야구, 미술, 소설, 광고, 영화, 학생들의 은어, 심지어 자신의 병까지 온갖 이야깃거리를 동원해 (책소개 글 발췌)" 독자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한 학자였다. 나는 그가 < 풀하우스 > 에서 " 4할 타자의 딜레마 " 로 진화의 패러독스를 설명했을 때, 그 감동을 잊지 못한다.  4할 타자의 딜레마 비유가 아니었다면 그가 주장하는 바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뻣뻣한 동료 학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 대중을 즐겁게 해주마-주의 " 는 점잖은 엘리트 뻣뻣 학자들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를 움직인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였던 다윈이야말로 대중적 글쓰기에 촛점을 맞춰서 책을 썼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점잖은 엘리트 학자들의 이러한 지적질은 꼴값에 가깝다. 굴드는 전형적은 68세대'로 좌파적 신념을 가진  과학자였다. < 인간에 대한 오해 > 는 그의 정치적 성향을 잘 보여준다. 과학이 대중과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이 순수한 믿음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 과학 분야 )

 

  

 

                                                                                                       

 

 

 

 

 

3. 귀환'이라는 말        

 

 

 

 

어릴 때부터 < 귀환 > 이라는 낱말이 주는 묘한 긴장감과 사명감에 끌렸다. 사내아이'라면 당연한 " 끌림 " 이다. 영화 < 터미네이터 2 > 에서 오스트리아 사투리'를 심하게 구사하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자진해서 용광로 속으로 빠지면서 " 돌아온당께 ~ " 라고 말했을 때, 이 비장한 서정'에 두 주먹 불끈 쥐었다. 남자는, 그런 존재다. 황당한 소리 같지만, 내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 죽은 자의 귀환 " 혹은 " 억압된 자의 귀환 " 이라는 자극적 문장 때문이었다. 사선을 넘나드는 것도 모잘라서 아예 死者가 되어서도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처절한 욕망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호기심이 발동했다. 물론 여기서 죽은 자의 귀환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삐-급 서정'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할 포스터의 < 실재의 귀환 > 은 순전히 제목이 멋있어서 고른 책이었다. 철학'보다는 미학'을 더 어렵게 생각하던 내가 그때 읽기에는 내공이 필요한 책이었다. 계룡산 뜬구름 스승으로부터 " 이제 하산해도 좋다 " 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계단 쓸기 10년, 밥 짓기 10년이 더 필요할 시점이었다. 그 후, 10년이 지났다. 할 포스터의 신간 < 콤플렉스 > 가 출간되었다. 이젠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 원제는 < The Art-Architecture Complex (2011년) >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콤플렉스'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쓰였다는 점을 간파했을 것이다. " 귀 밝은 이라면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식에서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라는 말을 매우 경계하는 의미로 사용한 데서 그 부정적 뉘앙스 혹은 경계의 의미가 시작되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따라서 할 포스터가 만들어낸 ‘미술-건축 콤플렉스(art-architecture complex)’라는 말 역시 최근의 건축과 미술의 만남이 반드시 바람직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 책 소개글에서 인용 ) " 쉽게 말하자면 미술-건축 커넥션'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건축에 과도한 디자인이 사용되는 것을 비판적으로 다룬 것 같다 (이미 그는 전작인 < 디자인과 범죄 그리고 그에 덧붙인 혹평들  Design and Crime and Other Diatribes (2002년) >에서 자본화된 디자인을 신랄하게 깐 적이 있다)  대표적인 건축물이 바로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이다. 이 생뚱맞은 건축물을 볼 때마다 디자인에 목숨을 걸었던 사내아이, 5세 훈이'가 생각난다. 도심 주차 공간이 부족하기로 악명 놓은 동대문에 떡하니 자리잡은 널널한 건축물을 볼 때마다 < 모자란 것 > 은 주차 공간이 아니라 5세훈이의 머릿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마치 5세훈이에게 바치는 " 퍽유 - 헌정문" 같다. ( 예술 분야 )

 

           

                                                                                               

 

 

4. 말아톤                   

 

 

 

 

 

우우, 이상한 일이다.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얼룩말'이 좋다니. 아아, 나이가 들수록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 몰빵 " 하는 또래와는 달리 플라밍고, 얼룩말, 악어, 문어, 개복치, 지렁이, 하늘소 따위를 좋아했다. 철이 들지 않았다는 증거인가 ? 하긴, 영화 < 말아톤 > 에서 백만 불짜리 다리를 가진 초원이'도 얼룩말과 초코파이를 좋아했으니깐 ! 이 책을 고른 이유는 표지에 그려진 " 단지 그대가 얼룩말 " 이기 때문이다. 표범이나 기린 무늬'도 매력적이지만 얼룩말처럼 횐색과 검은색 같은 극단적인 무채색만으로 만들어진 줄무늬 형태는 얼룩말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동물원에 가면 얼룩말을 유심히 보게 되는데 줄무늬에 촛점을 맞춰 집중해서 보게 되면 아, 어느 순간 현기증을 경험하게 된다(다른 사람도 그런 경험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경우는 그렇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연필로 그린 그림 중 상당수는 얼룩말 줄무늬의 형태였다. 이 정도면 나 또한 초원이처럼 얼룩말을 항상 예의주시한다고 할까. 얼룩말 줄무늬'는 (얼룩말에게는 치명적인) 전염병을 옮기는 흡혈 쇠파리'를 쫓기 위해 진화한 흔적이다. 쇠파리'들이 가장 싫어하는 형태가 바로 얼룩말 줄무늬'라고 한다. 실제로 말파리가 기승을 부리는 지역에 사는 얼룩말일수록 줄무늬 수가 더 많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사실을 책에서 읽었는지 아니면 신문 기사를 통해 읽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만약에 책을 통해 읽었다면 재닌 베니어스의 < 생체 모방 > 아니면 데이비드 버스의 < 진화 심리학 > 에서 읽었을 것이다. (아님 말고!)  출판사 사이언스는 " 필립 볼 형태학 3부작’ 중 첫 번째 권으로 " 나온 < 모양 > 에 대해서 자연계의 패턴을 흥미진진하게 다뤘다고 소개한다. 단순히 생물학에 머물지 않고 물리학, 수학으로까지 범위를 확장했다고 한다. 자화자찬이야 책소개의 특성이니 됐고 !  무엇보다도 얼룩말이 표지를 장식하니 개인적으로 뿌듯할 뿐이다. 마치 내가 아는 친구가 타임지 표지 모델이 된 듯한 기분. 여담이지만 나 또한 초원이처럼 얼룩말 줄무늬 치마를 입은 여자를 보면 엉덩이를 만지고 싶다(만지고 싶다기보다는 벗기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지만). 오해는 하지 말자. 내가 만지는 것은 여자의 엉덩이가 아니라 얼룩말이니깐 말이다. 혹여, 내가 얼룩말 줄무늬 치마를 입은 당신의 엉덩이를 만진다고 해서 너무 노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만진 것은 엉덩이가 아니라 얼룩말이니 말이다. 됐고 ! 내 취향과 변명'에 대해

 

애애, 하지는 맙시다. ( 과학 분야 )

 

 

                                                                                                           

 

 

 

 

5. 만화에 대한 오해      

 

 

 

 

대한민국만큼 만화를 천대하는 나라도 없다. 이 나라에서 < 만화 > 는 달고나, 쫀드기, 눈깔사탕이다. 불량식품이라는 말이다. 프랑스나 미국이 만화에 대해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것에 비하면 학대 수준'이다. 학벌 사회이다보니 여성가족부와 교육부 꼰대들은 만화와 게임을 (박근혜의 처절하고 너절한 말투를 흉내 내자면) 성적을 갉아먹는 암덩어리 같은 존재요, (강마에 어록을 빌리자면) 똥덩어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착각은 자유이니 그럴 수 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수 있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니 말이다. 그들은 만화를 암적인 존재라고 판단하면서도 극장에 가서 " let it go " 를 따라 부르며 펑펑 운다. 만화는 서자'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하는 ! 그나마 알라딘이 신간평가단을 분류 별로 나누면서 인문 사회 과학 분야에 만화 분야를 포함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내가 보기에 리차드 아피냐네시가 글을 쓰고 스와바 하라시모비치가 그린 < 늑대인간 > 은 인문, 예술, 만화의 얼큰한 짬뽕이다. 왜냐하면 프로이트의 논문 < 늑대인간 > 을 만화로 각색했기 때문이다. " 맙소사, 이런 식의 퓨전'이라니 ! " 개인적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 프로이트 전집 "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책이 < 늑대인간 > 과 < 꼬마 한스와 도라 > 였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미리보기 기능으로 그림체를 보니 어두컴컴한 느와르 장르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누누이 주장하지만 프로이트는 의사라기보다는 위대한 탐정에 가깝다. 그리고 그의 논문들은 학술서라기보다는 탐정소설에 가깝다. 폄하가 아니다. 나에게 프로이트는 가장 위대한 추리소설가'다. ( 교양 만화 분야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417133 ㅣ 섹스, 만화책 그리고 짬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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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4-30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저와 비슷한 독서 취향은 ... 아니고 공통분모가 있죠^^

<바른 마음>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63675

인기 서재에 기대어 댓글로 한 권도 더 추천합니다. 추천 이유는 ; 제목이 멋져서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4-30 15:35   좋아요 0 | URL
정말 직설적인 제목이군요. 근 10년 동안 이렇게 스트레이트한 제목은 처음입니다.
흥미롭습니다. 바른마음이라... 박근혜에게 한 권 선물하고 싶군요.

곰곰손 2014-04-30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올~도도한곰발이 웬겸손? 위대한개츠비 빼곤 안읽은 책이 없으면서.ㅎㅎ
굴드는 예전부터 읽어보고싶었음.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1 06:29   좋아요 0 | URL
누가 보면 내가 비로그인으로 들어와서 자화자찬하는 지킬앤드하이드 같다고 의심할 거 같다.
사실 나 문학책 거의 안 읽는다. 그냥 누가 좋다고 하는 것만 읽는 편...

수다맨 2014-05-01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곰곰발님 출판사 취직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ㅎㅎ 책 소개 문구를 기가 막히게 잘 쓰시는 것 같아요. 로쟈님 같은 분들이ㅡ대외적 이미지도 있고 해서ㅡ 어쩔 수 없이 진지 모드로 가던데, 곰곰발님은 거침없이 하실 말씀을 하시니 그저 문장이 아주 쫄깃합니다. 특히 "개새끼들 그럴 줄 알았다"는 문장을 읽고 나니 입에서 다디단 꿀맛이 흐르는군요ㅇ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1 06:31   좋아요 0 | URL
아니 왜 그러냐면 가전제품이 확실히 옛날에 비해 엄청 수명이 단축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냉장고 사면 20년 쓰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있는 김치 냉장고 3년인데 2번 고장나서 수리비만 20만 원 나왔습니다.
핸드폰 보세요. 밧대리 때문에라도 다른 폰 사게 되는데 그게의도적이라 생각해 보십시요...

2014-05-01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01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rendevous 2014-05-0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들었던 어떤 강연에서 어떤 교수가 추리 소설, SF소설 등을 싸잡아서 '장르 문학' - 본격 문학에 안티테제로 취급하는 걸 보고 심기가 심히 불편했더랬죠. 최근에 작가란 무엇인가 움베르토 에코 인터뷰를 보니 그 나라의 문학 수준을 알려면 추리 소설을 보면 된다, 가 추리 소설의 위상과 가치에 근접한 인식일 텐데...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1 16:2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에코가 그런 소릴 했어요. 장르 소설이라는 늬앙스 자체가 자기들은 중심부이고 너희들은 변두리다, 라는 속내가 읽히죠. 자기들이 하면 순수문학이고 다른 것은 장르 문학으로 구분하는... 약간 사이코 같죠..

만화애니비평 2014-05-01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로워도 슬퍼도 오덕은 안 울어!

곰곰생각하는발 2014-05-01 16:22   좋아요 0 | URL
오덕은 울어도 됩다. 그래야 진정한 오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