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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 알라딘 신간 평가단 14기 활동
1. 개새끼들, 그럴 줄 알았다 !
우선 " 고해성사 " 부터 하자. 내 독서 편력은 서평의 고수인 로자, 나귀, 파란여우 님'처럼 광범위한 독서량은커녕 대한민국 국민 평균 독서량보다 조금 많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수인 양 뒷짐을 지며 "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베이셔도 마참네 제 뜨들 시러펴디 몯한 노미하니아 내 이럴 윙하야 어엿비너겨 < 4월의 주목할 만한 도서 목록 > 를 맹가노니 어린 얄라디녀는 참고하라 ! " 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뭘, 알아야 추천을 하고 그럴 것이 아닌가 ! 그렇다고 마음 내키는 대로 제비뽑기로 고를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내가 고른 목록은 양 미간보다 좁아터진 독서 편력'을 바탕으로 선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 아는 범위 안 " 에서만 골랐거나 특정 분야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고른 결과이다. "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로 우리 시대의 대표적 탈성장 이론가인 세르주 라투슈 ( 책소개 글 ) " 가 쓴 < 낭비 사회를 넘어서 > 는 후자에 속한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작가'다. 그런데 이 책 목차를 훑다가 무릎 탁, 치며 아, 했다. 왜냐하면 내가 평소 생각했던 의문점들이 고스란히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저렴한 테엽 장치 시계'가 많았다. 하루에 한 번 시계에 밥을 주면 되니 건전지도 필요 없어서 보관만 잘하면 오래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렴한 테엽 장치 시계'는 없다. 왜 그럴까 ?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품 수명이 오래 가면 튼튼한 제품이라며 반기지만 기업 입장에서 그런 제품은 불량 제품에 가깝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업이 " 일부러 제품 수명을 단축하거나 결함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애초 설계 시점부터 제품의 수명이 조작되는 것이다 " 라고 고발한다.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인가 ?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 예를 들어 프린터에는 인쇄 매수가 1만 8000장이 넘으면 자동으로 작동을 멈추게 하는 마이크로 칩이 삽입되어 있다. 1940년 듀폰사에서 출시된 스타킹은 올이 풀리지 않고 자동차 한 대를 끌 수 있을 만큼 튼튼했지만, 자외선 차단 첨가물의 양을 조절한 이후부터 여성들은 규칙적으로 새 스타킹을 구입하게 되었다. 1881년 에디슨이 만든 최초의 전구 수명은 1500시간이었고, 1920년대 생산된 전구의 평균 수명은 무려 2500시간이었지만, 현재 우리가 구입하는 것은 제너럴 일렉트릭 등 기업 간 담합으로 1000시간 이하로 정해졌다. 수리가 불가능한 아이팟의 배터리가 제조 단계에서부터 이미 수명이 18개월로 제한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나서 주먹 쥐고 일어났다. 그리고 소리쳤다. " 개새끼들, 그럴 줄 알았다 ! " ( 사회학 분야 )
▶ 기능이 많을수록 고장이 잘 난다
2. 전문성과 통속성 사이
과학자가 실력은 없으면서 " 말빨 " 만 좋으면 위험하다. 대표적 인물이 황우석'이다. 그가 선보인 젓가락 신공은 말빨의 미학이 만들어낸 황홀한 판타지아'였다. 피디수첩'만 아니었다면 < 황우석 가전제품 신공 시리즈 2탄 > 숟가락 신공'도 선보였을 것이다. 이상적인 과학자는 오로지 연구 결과'만 가지고 평가를 받는다. 손은 가벼워도 좋지만 입은 무거워야 한다. 그들은 전문 용어와 고급 영어를 구사하며 권위 있는 과학 전문 잡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스티븐 제이 굴드'는 대중적 글쓰기를 좋아했다. 그는 < 다윈 이후 > 머리말에서 " 내가 에세이들을 모아서 새로 펴낸 것에 대한 유일한 변명은 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 " 기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고백한다. 따분한 자연 과학 이론을 쉽게 설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학자 본분에 충실하면 독자가 이해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독자에 촛점을 맞춰서 " 콩나물에 고춧가루 팍팍 묻혔냐이 ~ " 라며 지나치게 잔재주를 부리면 주객이 전도되어 경박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굴드는 전문성과 통속성을 절묘하게 섞는 기술이 탁월한 과학자'다. 그는 < 내 어떻게 해서든 너를 이해시키마 - 를 주장하는 학자 > 에 속해서 " 철학, 신학, 종교, 야구, 미술, 소설, 광고, 영화, 학생들의 은어, 심지어 자신의 병까지 온갖 이야깃거리를 동원해 (책소개 글 발췌)" 독자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한 학자였다. 나는 그가 < 풀하우스 > 에서 " 4할 타자의 딜레마 " 로 진화의 패러독스를 설명했을 때, 그 감동을 잊지 못한다. 4할 타자의 딜레마 비유가 아니었다면 그가 주장하는 바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뻣뻣한 동료 학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 대중을 즐겁게 해주마-주의 " 는 점잖은 엘리트 뻣뻣 학자들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를 움직인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였던 다윈이야말로 대중적 글쓰기에 촛점을 맞춰서 책을 썼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점잖은 엘리트 학자들의 이러한 지적질은 꼴값에 가깝다. 굴드는 전형적은 68세대'로 좌파적 신념을 가진 과학자였다. < 인간에 대한 오해 > 는 그의 정치적 성향을 잘 보여준다. 과학이 대중과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이 순수한 믿음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 과학 분야 )
3. 귀환'이라는 말
어릴 때부터 < 귀환 > 이라는 낱말이 주는 묘한 긴장감과 사명감에 끌렸다. 사내아이'라면 당연한 " 끌림 " 이다. 영화 < 터미네이터 2 > 에서 오스트리아 사투리'를 심하게 구사하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자진해서 용광로 속으로 빠지면서 " 돌아온당께 ~ " 라고 말했을 때, 이 비장한 서정'에 두 주먹 불끈 쥐었다. 남자는, 그런 존재다. 황당한 소리 같지만, 내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 죽은 자의 귀환 " 혹은 " 억압된 자의 귀환 " 이라는 자극적 문장 때문이었다. 사선을 넘나드는 것도 모잘라서 아예 死者가 되어서도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처절한 욕망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호기심이 발동했다. 물론 여기서 죽은 자의 귀환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삐-급 서정'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할 포스터의 < 실재의 귀환 > 은 순전히 제목이 멋있어서 고른 책이었다. 철학'보다는 미학'을 더 어렵게 생각하던 내가 그때 읽기에는 내공이 필요한 책이었다. 계룡산 뜬구름 스승으로부터 " 이제 하산해도 좋다 " 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계단 쓸기 10년, 밥 짓기 10년이 더 필요할 시점이었다. 그 후, 10년이 지났다. 할 포스터의 신간 < 콤플렉스 > 가 출간되었다. 이젠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 원제는 < The Art-Architecture Complex (2011년) >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콤플렉스'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쓰였다는 점을 간파했을 것이다. " 귀 밝은 이라면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식에서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라는 말을 매우 경계하는 의미로 사용한 데서 그 부정적 뉘앙스 혹은 경계의 의미가 시작되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따라서 할 포스터가 만들어낸 ‘미술-건축 콤플렉스(art-architecture complex)’라는 말 역시 최근의 건축과 미술의 만남이 반드시 바람직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 책 소개글에서 인용 ) " 쉽게 말하자면 미술-건축 커넥션'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건축에 과도한 디자인이 사용되는 것을 비판적으로 다룬 것 같다 (이미 그는 전작인 < 디자인과 범죄 그리고 그에 덧붙인 혹평들 Design and Crime and Other Diatribes (2002년) >에서 자본화된 디자인을 신랄하게 깐 적이 있다) 대표적인 건축물이 바로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이다. 이 생뚱맞은 건축물을 볼 때마다 디자인에 목숨을 걸었던 사내아이, 5세 훈이'가 생각난다. 도심 주차 공간이 부족하기로 악명 놓은 동대문에 떡하니 자리잡은 널널한 건축물을 볼 때마다 < 모자란 것 > 은 주차 공간이 아니라 5세훈이의 머릿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마치 5세훈이에게 바치는 " 퍽유 - 헌정문" 같다. ( 예술 분야 )
4. 말아톤
우우, 이상한 일이다.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얼룩말'이 좋다니. 아아, 나이가 들수록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 몰빵 " 하는 또래와는 달리 플라밍고, 얼룩말, 악어, 문어, 개복치, 지렁이, 하늘소 따위를 좋아했다. 철이 들지 않았다는 증거인가 ? 하긴, 영화 < 말아톤 > 에서 백만 불짜리 다리를 가진 초원이'도 얼룩말과 초코파이를 좋아했으니깐 ! 이 책을 고른 이유는 표지에 그려진 " 단지 그대가 얼룩말 " 이기 때문이다. 표범이나 기린 무늬'도 매력적이지만 얼룩말처럼 횐색과 검은색 같은 극단적인 무채색만으로 만들어진 줄무늬 형태는 얼룩말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동물원에 가면 얼룩말을 유심히 보게 되는데 줄무늬에 촛점을 맞춰 집중해서 보게 되면 아, 어느 순간 현기증을 경험하게 된다(다른 사람도 그런 경험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경우는 그렇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연필로 그린 그림 중 상당수는 얼룩말 줄무늬의 형태였다. 이 정도면 나 또한 초원이처럼 얼룩말을 항상 예의주시한다고 할까. 얼룩말 줄무늬'는 (얼룩말에게는 치명적인) 전염병을 옮기는 흡혈 쇠파리'를 쫓기 위해 진화한 흔적이다. 쇠파리'들이 가장 싫어하는 형태가 바로 얼룩말 줄무늬'라고 한다. 실제로 말파리가 기승을 부리는 지역에 사는 얼룩말일수록 줄무늬 수가 더 많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사실을 책에서 읽었는지 아니면 신문 기사를 통해 읽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만약에 책을 통해 읽었다면 재닌 베니어스의 < 생체 모방 > 아니면 데이비드 버스의 < 진화 심리학 > 에서 읽었을 것이다. (아님 말고!) 출판사 사이언스는 " 필립 볼 형태학 3부작’ 중 첫 번째 권으로 " 나온 < 모양 > 에 대해서 자연계의 패턴을 흥미진진하게 다뤘다고 소개한다. 단순히 생물학에 머물지 않고 물리학, 수학으로까지 범위를 확장했다고 한다. 자화자찬이야 책소개의 특성이니 됐고 ! 무엇보다도 얼룩말이 표지를 장식하니 개인적으로 뿌듯할 뿐이다. 마치 내가 아는 친구가 타임지 표지 모델이 된 듯한 기분. 여담이지만 나 또한 초원이처럼 얼룩말 줄무늬 치마를 입은 여자를 보면 엉덩이를 만지고 싶다(만지고 싶다기보다는 벗기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지만). 오해는 하지 말자. 내가 만지는 것은 여자의 엉덩이가 아니라 얼룩말이니깐 말이다. 혹여, 내가 얼룩말 줄무늬 치마를 입은 당신의 엉덩이를 만진다고 해서 너무 노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만진 것은 엉덩이가 아니라 얼룩말이니 말이다. 됐고 ! 내 취향과 변명'에 대해
애애, 하지는 맙시다. ( 과학 분야 )
5. 만화에 대한 오해
대한민국만큼 만화를 천대하는 나라도 없다. 이 나라에서 < 만화 > 는 달고나, 쫀드기, 눈깔사탕이다. 불량식품이라는 말이다. 프랑스나 미국이 만화에 대해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것에 비하면 학대 수준'이다. 학벌 사회이다보니 여성가족부와 교육부 꼰대들은 만화와 게임을 (박근혜의 처절하고 너절한 말투를 흉내 내자면) 성적을 갉아먹는 암덩어리 같은 존재요, (강마에 어록을 빌리자면) 똥덩어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착각은 자유이니 그럴 수 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수 있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니 말이다. 그들은 만화를 암적인 존재라고 판단하면서도 극장에 가서 " let it go " 를 따라 부르며 펑펑 운다. 만화는 서자'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하는 ! 그나마 알라딘이 신간평가단을 분류 별로 나누면서 인문 사회 과학 분야에 만화 분야를 포함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내가 보기에 리차드 아피냐네시가 글을 쓰고 스와바 하라시모비치가 그린 < 늑대인간 > 은 인문, 예술, 만화의 얼큰한 짬뽕이다. 왜냐하면 프로이트의 논문 < 늑대인간 > 을 만화로 각색했기 때문이다. " 맙소사, 이런 식의 퓨전'이라니 ! " 개인적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 프로이트 전집 "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책이 < 늑대인간 > 과 < 꼬마 한스와 도라 > 였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미리보기 기능으로 그림체를 보니 어두컴컴한 느와르 장르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누누이 주장하지만 프로이트는 의사라기보다는 위대한 탐정에 가깝다. 그리고 그의 논문들은 학술서라기보다는 탐정소설에 가깝다. 폄하가 아니다. 나에게 프로이트는 가장 위대한 추리소설가'다. ( 교양 만화 분야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417133 ㅣ 섹스, 만화책 그리고 짬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