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의 묘미 : 세월 호 보도와 히치콕 그리고 왕가위
영국에서 명성을 쌓던 히치콕은 바다 건너 할리우드로 갔다. 그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통해 배운 첫 번째 교훈은 편집권이 감독이 아니라 스튜디오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점이었다. 제작자는 감독이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편집하기 일쑤였다. 가만히 보고 있을 히치콕이 아니었다. 몸집은 곰 같았지만 생각은 여우였다. 그는 장면에 꼭 필요한 분량만 찍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 100분짜리 영화를 찍으면 100분 분량의 필름만 찍어서 편집실로 보냈다는 뜻이다. ( 꼭 100분 분량의 필름만 촬영했다는 말은 아니다. ) 보통은 원활한 편집을 위해서 다양한 각도로 찍기도 하고 내용을 살짝 바꿔서 여러 번 촬영해 두면 편집 시 원하는 장면을 뽑을 수 있기에, 다른 감독들은 이러한 작업 방식을 선호하는 반면
히치콕은 에누리없이 필요한 장면 분량만 찍었기에 편집권이 스튜디오에 있다고 해도 짜맞추기를 할 수 없었다. 영화 < 사이코 > 에서 처절하게 죽은 자넷 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히치콕 감독님의 영화는 필름 편집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씁쓸한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시더군요. 영향력이 별로 없었던 시절에 감독님 뜻대로 영화를 못 만들고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필름을 잘라 버렸대요. 촬영 필름을 너무 많이 넘긴거죠. 그래서 감독님은 아주 꼼꼼하게 미리 계획을 세워서, 잘라낼 소지가 있는 부분을 아예 없애려고 했어요. 효과적인 부분만 확실히 찍으려고 했죠. ( 스티브 레벨로, 히치콕과 사이코 中 ) "
제작자는 히치콕의 꼼수에 주먹을 불끈 쥐었고 히치콕은 괄약근을 풀어 호탕하게 웃었다. 반면 왕가위 감독은 필름을 많이 사용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100분짜리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분량의 필름을 사용했다. 대표적인 영화가 < 동사서독 > 이었다. 몇 개월 동안 찍은 필름은 하루아침에 처음부터 다시 찍기 시작했다. 맡은 배역도 느닷없이 바뀌었다. 양가휘는 몇 개월 동안 연기했던 역할을 버리고 장국영이 맡았던 배역을 연기해야 했고 장국영도 마찬가지였다. 내용도 180도 바뀌었다. 왕가위는 이 영화에 대해 확신이 들지 않았고 우왕좌왕했고 제작비는 올라갔다. 그만큼 필름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완성된 영화는 뒤죽박죽이 되었다. 장국영의 수염은 장면마다 들쑥날쑥했다. 오래 전에 촬영된 필름 분량과 섞이다 보니 엉망이 된 것이다. 그리고 주연인 줄 알았던 왕조현은 단 한 컷'만 등장한다.
영화는 애초에 생각했던 영화와 180도 달라졌다. 완벽하게 실패한 영화였지만 내게는 왕가위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때론 실패가 위대한 영화를 만든다. 내가 히치콕과 왕가위 감독을 불러들여서 두 감독이 가지고 있는 작업 스타일을 비교하는 이유는 언론이 팩트'를 가지고 가위질'을 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언론 조작은 매우 간단하다. " 가위질 " 이다. 취사선택에 따라 180도 달라진다. 언론사 데스크는 영화 편집실과 동일하다. 촬영된 장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편집실에서 가위질로 내용을 바꾸듯이, 기자가 쓴 초고는 얼마든지 데스크에 의해 바뀔 수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니깐 말이다. 특히 인터뷰 내용은 사실을 왜곡하기에 좋다. 세월 호 사고 유족들이 언론을 불신하는 이유는 편집이 되지 않은 현실과 언론 데스크를 통해 편집된 조작질 사이에 놓인 괴리감 때문이다.
박근혜 분향소 조문 장면만 해도 그렇다. 박근혜는 엄숙한 분위기에서 애도를 표하며 분향소를 한 바퀴 돈다. 슬픈 음악이 배경으로 깔린다. 뒤돌아서면 유족으로 보이는 늙은 노모가 서 있다. 그녀는 노모를 토닥이며 위로한다. 그런데 편집되지 않은 날것을 보면 실상은 전혀 다르다. 박근혜가 분향소를 두리번거릴 때 주위는 엄숙하기는커녕 거친 욕설이 오고갔다. 언론은 피맺힌 절규를 노이즈라고 판단하고 지웠다. 그리고 노컷 뉴스가 보도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슬픔을 나누던 유가족은 유가족이 아니라 청와대가 섭외한 조문객이었다. 청와대는 이 사실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하지만 판단은 국민이 한다. 설령,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박근혜의 조문은 예의가 없다. 어느 누구도 조문객을 위로하기 위해 분향소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명심해야 될 부분은 언론사가 제공하는 기사는 대부분 " 발췌본 " 이라는 점이다. " 발췌본 " 은 " 원본 "에서 따왔으므로 훼손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이 재료를 가지고 가위질을 하면 내용은 전혀 다른 내용이 된다. 노무현 NLL발언이 대표적'이다. 새누리의 힘은 바로 편집에 있다. 재앙에 가까운 대참사 속에서도 해경은 왜 진도VTS 통신 내용 원본이 아닌 편집본을 제출했을까 ? 모를 일이다. 동영상 속 빨간 손톱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할 말이 없다. 잘빠진 사진 한 장을 위해, 그깟 사진 한 장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