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 아니다
친일파 후손들과 정치-마피아'들이 국민을 세뇌시킨 대표적 감성이 " 화해와 용서 " 였다. 특히 < 용서 > 는 한국식 기독교 신앙과 결탁되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그런데 예수가 실천한 용서는 아래로부터의 용서'였다. 헐벗고 굶주린 자는 용서하되 가진 자가 지은 죄에 대해서는 분노해야 된다고 가르쳤다. 그는 가난한 자 앞에서 울었고 우상을 섬기던 부자에게는 불같이 화를 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용서는 오로지 기득권에 한해서 관용을 베푼 반면 굶주린 자에게는 들짐승의 발톱보다 가혹했다. 약자보다는 강자에게 용서를 베풀었다는 말이다. < 용서 > 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자면 나는 김대중'보다는 김영삼'이 빼 든 냉정한 칼끝을 좋아했다. 화해와 용서라는 아름다운 미덕으로 구태의 끈을 끊지 못하고 줄을 엮는 재단사'보다는 단칼에 베어버리는 무식한 망나니'가 필요한 사회다.
같은 이유로 김수환 추기경이 < 내 탓이오 ! > 운동을 전개했을 때, 나는 그 짓이 " 천박 " 하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기 때문이다. < 내 탓 > 이 용서'라면 < 네 탓 > 은 불관용'이다. 독일 사회가 나치 전범들에게 보인 불관용'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정의'였다. 세월호 참사'는 선장과 선원, 유병언과 유착 세력 그리고 정치 관료 사회'가 만든 지옥도'였다. 그들은 모두 가해자'였다. 무엇보다도 우두머리인 박근혜는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 공공의 적 " 은 점점 범위가 좁혀지더니 결국에는 < 선장과 선원 > 이 주범으로 찍혔다. 박근혜는 그 사실을 만천하에 천명'했다. 살인 행위 운운하면서 말이다. 촛점이 선명할 수록 배후 세력은 흐려지는 법이다.
박근혜가 살인 행위 운운하는 순간 선장과 선원은 공공의 적이 되었지만 여기에는 꼼수가 있다. 그것은 마치 망원 렌즈와 같아서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특정 인물에게 촛점을 맞추면 배경이 흐려지는 것과 같다. 배후 세력들은 자신을 감추기 위해 포커스를 선장과 선원 그리고 유병언에게 맞췄다. 그런데 이 사건이 가지고 있는 본질은 선장과 선원이 가지고 있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꾀죄죄죄함'이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선장과 선원들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다. 그들은 개새끼'이면서 동시에 먹고 살아야 하는 불쌍한 것'이기도 했다. 멱살 잡고 " 밥은 먹고 다니냐 ? " 며 끝내야 한다. 지은 죄에 대한 대가는 법에 따라 처벌을 받으면 되니깐 말이다. 뻔뻔하다고 욕할 필요 없다. 진짜 악은 평범하지 않다. 그들은 멱살을 잡힐 만큼 힘이 없는 존재들이 아니다.
전두환 때부터 이어져 온 정치 마피아들과 토호 세력'이 만든 재앙이 바로 세월호 대참사의 주범이다. 이럴 때마다 악랄한 기득권 세력이 유포하는 감성이 바로 < 화해와 용서 > 다. 그리고 < 화해와 용서 > 가 만들어낸 구호가 바로 " 내 탓이오 ! " 다. " 내 탓이오 ! " 라는 회한과 반성은 겉으로 보기에는 지성적 자기 성찰을 담고 있지만 속내는 악랄하고 교묘한 대중 세뇌'가 숨겨져 있다. 어느 시점부터 분노는 서서히 기성 사회와 어른에 대한 반성으로 변질되면서 내 탓'이라는 자기 참회로 바뀌고 있다. 이 < 죄 > 가 대중으로 광범위하게 " 전이 " 되는 순간 본질은 흐려진다. 주머니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다는 속담은 백성들이 저잣거리에서 막걸리 마시면서 하던 소리가 아니라 탐관오리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기 위해 유포한 말이다.
가해자가 대중이 되는 순간 독일식 불관용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본질을 흐리는 짓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금 모금'이다. 이번 사건은 자연 재해'가 아니라 가해자(청해진과 정부 관료)가 명백한 참사'다. 자연재해의 경우, 가해자가 없고 피해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금하는 것은 인간으로써 당연한 도리이지만 이번 사건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피해 보상금은 전적으로 가해자인 회사와 정부의 몫이다. 그러므로 모금된 성금은 피해자를 돕는다기보다는 가해자를 금전적으로 돕는 꼴이 된다. 만약에 정부가 피해 보상액을 지급하지 못할 만큼 재정적으로 가난해서 지급할 수 없다면 박근혜를 비롯해서 관료들은 피해 보상액만큼 교도소에서 노역을 해야 한다. 그들은 교도소에서 인형 눈깔이라도 붙여야 한다.
애도'가 길어지면 우울'이 찾아온다. 상중에는 상제의 몸이므로 통곡해도 된다. 그것이 바로 애도'이니 말이다. 통곡도 교양 따지며 울 필요는 없다. 애도는 미개해도 된다. 하지만 애도 기간이 지나면 냉정하게 돌아와 사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나는 생떼 같은 아이들이 맹골수도 찬 바다 밑에 수장된 일'이 내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잘못은 내 탓이 아니라 내 탓 - 이데올로기'로 그동안 미꾸라지처럼 올가미를 빠져나간 그놈(들) 탓'이다. 반성은 그들의 목을 베고 나서 시작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