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 : 하늘과 느티나무



 

 

 

 

어느 여성'이 << 미녀들의 수다 >> 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서 키 180 이하인 남자는 루저'라고 말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 촌스러운 취향 고백은 으레 신상 털기 작전으로 이어졌다.

그녀가 다니는 대학교 게시판에는 온통 그녀를 향한 욕설로 도배가 되었고, 출처를 알 수는 없지만 예상 가능한 정체불명의 루머가 떠돌아다녔다. 사생활이 문란한 여자'라는 것. 웃고 떠드는 오락 방송에 나와서 웃자고 한 말(Humor)이 무시무시한 말(rumor)이 될 줄 그 누가 알았으랴. 그녀 입장에서는 단순한 취향을 고백한 것에 가까웠지만 대한민국 불알후드(brotherhood)의 잣대(?)로 보자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 불경 " 이었던 모양이다. 사과 한 개'면 끝날 줄 알았으나 사과 박스 채 조공을 드리며 보시를 해도 대중의 비난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방송사'는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고 해당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그때가 2009년이었다. 쉽게 끓는 물은 금방 식는 법. 180 이하 루저 사건은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졌다. 이 사건은 여기서 끝,

 

났을까 ?  그렇지 않다. 이 사건으로 " 루저녀 " 라는 불명예를 얻은 그녀는 2013년,  한 대기업에 취직했으나 이내 취직이 취소되는 불운을 겪었다. 불알후드(들)이 떼거지로 해당 기업에 전화를 걸어 핏대 세우며 항의를 했기 때문이다. 2009년에 벌어진 일이 2013년까지 이어진 것이다. 한 여자의 취향 고백이 연좌제가 되어 그녀를 끈질기게 따라다닌 꼴'이었다. 불알은 (한) 영혼을 잠식했다1. 그렇다면 이 사건은 왜 이렇게 사회 문제'로 번졌을까 ? 간단하다. " 감히 " 여성이 남성의 자존심을 긁었기(권위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자는 자고이래로 루머의 희생자'였다. 루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쪽은 남성보다는 여성'이었다.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뜬소문은 여자의 일생을 작살내기에 충분했다.

막달라 마리아'도 루머의 희생자'에 속한다. 어쩌면 <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다 > 라는 소문은 가장 오래되었지만 진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고, 여전히 진행 중인 가장 오래된 찌라시'다. 성서를 이 잡듯이 뒤져보아도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라는 기록은 없다. 기독교와 관련된 외전(外典)과 외전(外傳)을 두루 살펴보아도, 그 어느 문헌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라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조심스러운 추론은 가능하다. 열두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이 사실을 퍼트린 것은 아닐까 ? 당시 예수가 활동했던 시대에는 여성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가축으로 취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수가 총애하는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라는 사실이 열두제자의 심기(질투)를 건드렸으리라. 이래저래 남성 권위에 도전하는 여성은 처벌을 받았다.

한마디로 여성잔혹사'인 셈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 하늘과 느티나무 >> 라는 제목에서 동화 같은 시적 낭만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곧 이 순열 順列 이 끔찍한 조합이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다음은 1993년 연합뉴스 기사 내용이다. 최협의 <<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 >> 라는 冊을 읽다가 끔찍한 사건'이라 이 자리를 빌려 소개한다.

 



(서울=聯合) ○...서울 강동경찰서는 3일 애인의 몸에 담뱃불로 문신을 새기고 폭행한 申씨에 대해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 경찰에 따르면 강동구 암사동 K병원 CT촬영 기사인 申씨는 지난 90년 11월 환자보호자로 병원에 찾아온 孫모씨(39.여.다방종업원)와 사귀어 내연의 관계를 맺어오다 지난달 19일 孫씨가 다른 남자와 교제한다는 이유로 병원부근 O여관으로 끌고가 넥타이로 孫씨의 두손을 묶고 수건으로 입을 막은 뒤 담뱃불로 등과 가슴에 '하늘'과 '느티나무'라는 글씨를 남기는 등 온몸에 문신을 새겨 전치 4주의 상처를 입혔다는 것. 지난 83년 결혼해 아들 2명을 두고 있다는 申씨는 경찰에서 '하늘'과 '느티나무'라는 문신을 새긴 데 대해 "남자는 하늘같이 모셔져야 하고 여자는 느티나무와 같은 남자의 휴식처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하며 태연한 표정.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 사건은 가해 남성이 내연 관계에 있던 피해 여성이 다른 남자와 교제를 한다는 이유로, 여성을 강제로 벌거벗긴 후 몸에다 담뱃불로 " 하늘과 느티나무 " 라는 문장을 새긴 사건이었다. 일명 " 담배빵 " 이었다. 담뱃불 최고 온도가 850~900c라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 여성이 겪었을 공포와 통증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어쩌면 이 행위는 살인보다 더 끔찍한 폭력일 수 있다. 그는 남성은 하늘이고 여성은 땅이라는 유교적 남존여비 男尊女卑 에 젖어서 남성 권위( 자존심)에 도전한 여성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 페니스를 섬기지 않고 다른 남자의 페니스를 섬기게 되니 좆부심이 발동한 까닭이다. 감히..... 네 년이 ! 넓게 보자면 이런 시선은 대중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대한민국 마초 남성들은 IMF 이후 양성 평등 사회,

혹은 여성 상위 시대'가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IMF 사태로 인해 정리 해고된 쪽은 남성보다는 여성이 많았다. 남성은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이유로 남고 여성 동료들은 직장을 떠나야 했다. 마초 남성의 주장과는 달리 남존여비 男存女悲'였던 셈이다. 그렇기에 IMF 이후 여성이 남성 밥그릇을 빼앗거나 남성 머리 위에 군림했다는 주장은 루머'인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자. < 180 이상인 남성이 좋다 > 라는 말과 < 얼굴이 예쁜 여자가 좋다 > 혹은 < 가슴이 큰 여자가 좋다 > 라는 말은 서로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얼굴이 예뻐야 된다는 남성 주장에 대해 비난을 퍼붓지는 않는다. 못생긴 여자에 대한 농담은 단 한번도 사회적 응징을 받은 적이 없다.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었고 강용석은 인기 방송인이 되었다.

마누라와 북어는 사흘에 한번씩 두들겨 패야 한다고 말한 윤종신은 사과 한마디로 없던 일이 되었다. 과연 이 사회는 양성평등사회'일까 ? MBC 주말 오락 프로그램 << 복면가왕 >> 이라는 오락 프로그램이 있다. < 나는가수다 > 라는 서사에 < 복면 > 이라는 미스테리한 요소를 첨가했다. 나는 (복면 쓴) 가수다 ?!  문학으로 비유하자면 순문학에 장르문학이 결합한 꼴이다. 계급장 떼고 편견 없이 노래만 가지고 승부를 가려 봅시다, 라는 제작 의도가 참신했다. 얼굴을 가리자 시청자는 비로소 < 눈 > 으로 보는 대신 < 귀 > 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시청자는 뛰어난 가창 실력을 선보이는 복면가왕의 승자가 얼굴 예쁘고 춤 잘 추는 걸그룹에 속하는 여성 가수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는 했다. 

예쁜 여성 가수는 노래를 못 부를 것이란 선입견이 은연중 작용한 탓이다. 예쁜 얼굴이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단점으로 작용하는 경우'이다. 이처럼 선입견은 눈을 감게 만들고 귀를 닫게 하는 작용을 한다. 남성 가부장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남자는 하늘이요, 여자는 땅이라는 관습화된 언어 습관이 하늘과 느티나무라는 끔찍한 문장을 만든 것은 아닐까 ? 인간은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단지 여자다운 여자로 훈련받고, 남자다운 남자로 교육받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생물학적 성(SEX)이 남성이 요구하는 사회학적 성(GENDER)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여자는 여자다워야 여자'다 ! 언어 속에 깃든 성차별은 널리고 널렸다. < 남의사 > 라는 낱말은 없지만 < 여의사 > 라는 낱말은 사전에 등록되어 있다.

< 여교사 > 는 있지만 < 남교사 > 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여군, 여교수, 여배우, 여대생, 여주인 등. 세상의 반이 여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유별난 " 구별 짓기 " 는 성차에 따른 분류'이다. 이러한 성차별성 언어가 일상 생활 속에 스며들면서 남녀불평등 사회'를 만든다. 한국인은 알게 모르게 관습화된 언어를 통해 불평등'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역설적 표현이지만 한국 사회는 복면을 쓸 필요가 있다. 여성에 대하여 얼굴(미모)로 평가하지 말고 목소리'만 가지고 평가해야 한다. 복면은 오래된 편견을 없애는 도구'다. 티븨 광고 속에서 가장 흔한 말 가운데 하나가 " 사랑받는 아내 " 라는 말이다. 곰곰 생각하면 사랑을 주는 존재는 남편이고, 사랑을 받는 사람은 아내'다. 이러다 보니 칼자루를 쥔 쪽은 남편. 

아내 입장에서는 남편에게 앙칼진 말방구는커녕 알랑방구를 껴야 그나마 사랑을 받을까 말까'다. 이처럼 곳곳에 성차별적 고정관념은 견고하게 뿌리를 내려 결국에는 끔찍한 느티나무가 되는 것이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만국의 여성 노동자여, 복면을 씁시다.

 

                                                                                                                         

 

 

 

 

 

 

 

 

 

 


 

  1.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파스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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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5-04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면가왕 알고 보면 나름 의식있는 프로군요.
그건 몇년 전 <전설을 노래하다>란 프로에서 걸그룹의 멤버들이 자신들의
가창력을 증명하면서 촉발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때 <나가수>에선 중견들의 무대였다면 <전노>의 타깃은 그랬죠.
저렇게 잘하는데 그들이 부르는 노래들은 어쩌면 하나 같이 그런 건지...
묘한 엇갈림? 뭐 그런 게 느껴지더군요.
옛날 그 멋진 가사들을 가진 노래를 젊은 친구들이 잘하니 진짜 빛나 보인다는...

근데 곰발님 글 읽으니까 저도 욕하고 싶어졌어요. 시바 좆같은 남존여비 웃겨!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4 13:33   좋아요 0 | URL
전노`라고 하셔서 전국노래자랑인 줄 알았습니다.
보니까 전설을 노래하다, 이군요.
흔히 걸그룹, 보이그룹은 노래를 못한다는 편입견이 있는데
사실 이 사람들은 혹독한 보컬 트레이닝을 거치잖아요.
사실 8,90년대 가수들보다 기본기가 뛰어난 경우가 많죠.

아무개 2015-05-04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T해주는 트레이너가
여친이랑 다퉜다길래
누나한테 말해봐 했더니
여친이`감히` 따박따박 말대꾸를
해서 다퉜다고 하더군요.
둘은 동갑인데 감히 말대꾸를
했다는 표현쓴것은
네가 네 여친을 아랫사람으로 보는거 아니냐구
심지어 네 친구에게도 그런 단어
사용하지 않지 않냐했더니
당황 황당 스러워하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5 17:04   좋아요 0 | URL
은연중에 이런 생각하는 남자가 많습니다.
한때 이들은 모두 애인의 코딱지만한 가방이 무거워 보일까봐
들어주던 사내들이었는데 말이죠.

다락방 2015-05-04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단지 여자다운 여자로 훈련받고, 남자다운 남자로 교육받을 뿐이다.` 라는 문장이 유독 반갑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5 17:05   좋아요 0 | URL
뭐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이게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좀 답답할 따름입니다.

오쌩 2015-05-06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의 기호를 윤리적으로 평가하고 마냥사냥하는게 안타깝네요.
술자리에서 온갖 저급한 언어와 음담패설을 해도 남자는 괜찮고 여자가 거기에 맞춰주면,쉽게보고 낮게 펑가하는걸 보면..여성들은 스스로 피해당하지않게 자연스런 말도 곱씹고 검열해야한다는게 슬프네요ㅜ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6 12:47   좋아요 0 | URL
여자가 뉘앙스를 조금만 야시시하게 말하면
당장 표적이 되고는 하죠.
공평하지 않은 거에요.

돌궐 2015-05-06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다른 얘기긴 한데요... 저 지엄하신 조선 왕실의 제사에서 제사 음식은 모두 남자들이 준비했다고 하더군요. 종묘에는 아예 왕후를 제외하고는 여자의 출입을 금했다고 합니다. 아마 여자의 손길에 부정 탄다는 이유였겠지요. 그런데 오늘날 저 잘난 남자들은 제사만 지내면 여자들한테 모든 제삿상을 맡겨둔 채 무능하게 안방에 드러누워 허세질만 부리다 절 몇 번에 술잔 몇 번 돌리고 제사 끝나면 술 처먹고 진상 부리다가 집안 싸움까지 나기 일쑤죠.
그럴 바엔 제사를 지내지 말던가 지내려면 여자들과 같이 준비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애들한테 제사 지내지 말라고 할 거예요. 그냥 가끔 너희들 때문에 쎄빠지게 고생하던 애비가 있었음을 생각이나 해달라고 하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6 15: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제사, 여자들 골병듭니다. 그냥 각자 조금씩 음식 해와서 명절에 조금씩 상 위에 올리는 게 제일 낫지 싶습니다. 저희 집은 그렇게 합니다. 그러면 굳이 하루 전에 다 모여서 음식 차릴 필요 없어요. 각자 파트를 나누면 되니깐 말이죠. 이게 제일 편합니다. 저희는 기독교라 제사는 안 지내지면 음식은 하거든요. 옛날이나 못 먹던 시절이니 명절이라도 배불리 먹자 였지 요즘 누가 먹습니까. 조금씩 하는 게 최고인 거 같아요.
 

 

 

 

 

 



언어는 존재의 집




인간은 말한다(spricht). 우리는 깨어 있을 때도 말하고, 꿈속에서도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말한다. 우리가 아무 말도 소리 내지 않고 경청하거나 읽을 때에도 우리는 말하며, 심지어 특별히 경청하거나 읽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일에 몰두하거나 한가로이 여가를 즐길 때에도 우리는 말한다.


ㅡ 하이데거, < 언어로의 도상에서 > 中에서

 


 

쉬운 표현을 어려운 문장으로 꾸미는 게 쉬울까, 아니면 어려운 표현을 쉬운 문장으로 꾸미는 게 쉬울까 ? 두말할 것도 없이 어려운 표현을 쉬운 문장으로 꾸미는 것보다 쉬운 표현을 어렵게 꾸미는 게 더 쉽다. 조용필이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라고 노래했을 때, 이 표현은 남자의 복잡한 심사'를 매우 선명하게 그려낸 탁월한 문장이었다. 셰익스피어 또한 인간의 뒤틀린 심사'를 간결하게 묘사할 줄 아는 작(사)가다. 햄릿의 성격은 딱 잘라 말하기가 불가능하다. 배우 최민식옹께서 햄릿에게 " 누구냐, 넌 ? " 이라고 반문할 것이 분명하다. 사랑이 넘치는 인물 같다가도 느닷없이 잔인하며, 나약한 순간에 불같이 강한 성격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싸움닭 기질이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막상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겁쟁이로 추락한다.

그렇기에 햄릿은 누군가에 의해 특정 유형으로 정의 내리는 순간 상대방으로부터 앙칼진 말방구 공격을 받기 십상이다. 햄릿을 결단력 없고 나약한 인물이라고 정의 내리면, 햄릿이 결단력 없고 나약한 인물이 아니라는 증거를 들이대며 딴지를 걸 사람은 많다. " 닝기미, 조또 ! 결단력 없고 비실비실한 놈이 그 수많은 사람 죄다 죽였겠어, 그려, 안 그려 ? " 사실, 연극 << 햄릿 >> 은 " 환각과 속임수와 광기로 짜인 줄거리'는 결국 주인공들이 없어서(모두 죽어서) 중단된1 " 연극이다. 임성한 드라마 << 오로라 공주 >> 에서 등장인물이 이유없이 죽고, 쓸데없이 죽고, 어이없이 죽고, 황당하게 죽고, 심지어는 떡대  : 드라마 속 개 이름      마저 죽어서 시청자에게 " 막장 드라마 " 란 거센 항의를 받았다면,

<< 햄릿 >> 도 같은 이유로 비판을 받아야 한다. 오필리어도 죽고, 플로니어스 재상도 죽고, 거투르드 왕비도 죽고, 클로디어스 왕도 죽고, 레어티즈도 죽고, 햄릿도 결국에는 죽는다. 주요 등장 인물들이 모두 죽었으니 감독 입장에서는 난처한 상황이다. 쉽게 말해서 어...... 동열이고 없고,  어..... 종범이도 없는, 감독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해태(기아) 잘하고 있나 ?    이런 마당에 햄릿이 결단력 없고 나약한 인물이라고 ?! 그런데 < 햄릿 > 을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하면 오히려 더 심한 앙칼진 말방구'가 예상된다. 한마디로 햄릿은 굉장히 복잡한 인물이다. 셰익스피어는 이 복잡한 성격을 " to be or not to be " 로 해결한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쉬운 단어 활용'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이 난다.

나랏 말쌈이 듕국과 달라 꽃 둏고 여름 할 때 서로 사맛디 아니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백성도 to, be, or, not 정도는 알지 않은가 ?  이토록 복잡한 인물을 이토록 쉬운 단어로 정의를 내리다니, 놀랄 노 자'다.  야구 선수는 공과 방망이를 가지고 놀고, 시인과 소설가는 언어를 가지고 논다. 철학도 크게 다르지 않다. " ㅡ 學 " 은 대부분 언어를 다룬다. < 신학 > 은 텍스트를 독해하고 숨은 뜻을 해석한다는 점에서 해석학'이다. 해석학은 언어의 은유를 파고들며, 분석철학은 언어의 규칙을 증명하려는 수작(秀作)이고, 프랑스 철학은 언어의 다의성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이 지점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철학과 언어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이다. 하이데거는 독일 현대 철학의 거성'이지만 인간성은 그닥 훌륭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히틀러에 빌붙어서 승승장구한 대표적 지식인이었다. 이 철학 교수는 1933년 5월 1일 나치당에 입당한다.  당원 번호는 3,125,894번'이었다. " 하일, 히틀러 !!! " 히틀러가 게르만 혈통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건강한 육체를 강조했다면 하이데거는 게르만 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독일어를 위대한 민족어'로 내세웠다. 그는 그리스어와 독일어를 모르면 철학을 결코 배울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에게 모어'는 존재의 집이었다.  타 언어'를 사용하는 철학자가 들으면 부아가 날 만한 소리'다. 하지만 독일 사람인 그가 독일어로 사유의 영역을 확장한 것은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모국어에 대해 무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그 누가 돌을 던지랴.

오히려 비판받아야 될 사람은 자기 나라말은 버려둔 채 하이데거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쪽이다. << 문학의 아토포스 >> 를 쓴 진은영은 시인이면서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니, 그 누구보다도 언어를 가지고 노는 직업군인 셈이다. 하지만 이 책은 온통 내 나라말이 아닌 다른 나라말이 넘치고 넘친다. 홍대 두리반'이나 쌍용 투쟁 현장을 바라보며 문학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지만 그닥 와닿지 않는다. 책 구성도 기막히다. 하인리히 하이네 Heinrich Heine의 << 독일. 겨울동화 >> 라는 독일 시 인용으로 첫 페이지'를 시작하더니, 이 책 마지막 페이지는 신형철의 발문이 삽입된 " 나는 여행을 쉴 수가 없으니 인생을 그 찌꺼기까지 다 마시련다(앨프리드 테니슨, < 율리시스 >) " 라는 인용구로 매조지한다.  

노동자가 원하는 것은 < 따순 밥 > 인데 이 책은 정작 < 빵과 버터 > 에 대해 말한다. 그녀의 걱정이 군걱정으로 들리는 이유이다. 이 책이 랑시에르 입문서'라면 비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노동 현장을 걱정하며 소통과 연대를 강조하면서 정작 엉뚱한 소리를 하면 비판받아야 한다. 그녀가 자주 말하는 " 시인적 모럴 " 이라는 표현이 어색한 이유는 무엇일까 ? " 시인적 모럴 " 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다면 대통령적 모럴, 검사적 모럴, 이발사적 모럴 따위도 자연스러워야 한다. 접미사 < -的 > 은 가급적, 국가적, 기술적, 문화적, 비교적, 사교적, 전국적 따위로 활용된다. 그래야 자연스럽다. 진은영의 시인적 모럴'이 어색한 이유이다. 끝까지 읽었으나 그 의중을 끝까지 모르겠다 ■

 


 


 

 

덧대기

 

的 ,  너는 누구냐      http://blog.aladin.co.kr/749915104/7499363




 

  1. 진실의 막간, 니콜라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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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0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르게네프가 인간 유형을 ˝햄릿형 vs 돈키호테형˝으로 나눈 적 있죠. 세르반테스가 20년 정도 먼저 태어나긴 했지만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작가라는 점도 흥미롭지요.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역사적인 인물....
햄릿은 너무나 고심하는 스타일이라 그로 인해 우유부단해지고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면, 돈키호테는 너무도 충동적이라 주변을 살피기보다 행동을 먼저 저지르고 말아 좌절의 좌절을 거듭했죠. 햄릿은 다른 이를, 돈키호테는 자신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성향의 차이일 뿐 모두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투르게네프는 시대가 그랬기 때문인지 돈키호테를 더 지지했습니다.
지금은 어떤 유형의 인간이 요구되고 있는 것일까요.

지적 사대주의 같다며 진은영을 공격하며, 곰곰발님이 하이데거를 서두에 내세우신 건 논의의 방어선을 만드신 걸로 보이는데 나쁘진 않습니다. 헌데 하이데거의 모국어의 사유가 정당하다는 말은 제겐 언어적 내셔널리즘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서양의 여러 제도는 받아들여도 되고, 서양철학은 안된단 말입니까. 어쨌거나 곰곰발님의 전제는 인정하며 논의를 따라갔으나, 수작들, 지적 허영, 어렵게 썼다, 모르겠다식의 잽만 넣으시고 결론을 지으신 건 좀 그러네요. 지난번 <문학의 아토포스>도 이런 식이었어서....논의, 토론, 공격도 상대의 꼼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펀치를 날려야 효과가 있는 거잖습니까.
물론 문단의 그러함은 진보진영의 그러함처럼 지적 유대 강화, 풀뿌리 내부 결속과 그 이상의 분열... 비슷한 점이 있긴 합니다. 역시나 인간답다고 하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16:43   좋아요 0 | URL
세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죽은 날이 같다고 하죠 ? 둘 다 성이 세 씨`이고 말입니다. 제가 보기엔 햄릿은 우유부단한 인물이 아니라 다생각증후군인 것 같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발생하는 병. 뭐, 제가 지은 병명입니다.


진은영에 대한 글 가운데 수작`은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제가 쓰는 수작은 수작 酬酌 이 아니라 수작 秀作 입니다. ( 참고로 진은영 글에 대해 수작`... 이라는 표현은 없네요. 비트겐슈타인의 분석철학에 대한 언급에서 잠시 手作을 언급했습니다. ^^ )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이 책은 단순히 랑시에르 입문서`라면 좋은 책이라 생각하지만, 문학은 정치적어야 한다, 라는 주장을 하기 위한 글이라면 가고자 하는 길이 곁가지로 흘러 방만해졌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또한 시인이라면 지나친 비문은 피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 저는 모럴이 번역불가능한 관념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토포스를 대체할 번역은 없지만 굳이 모럴 따위를 시인적 모럴`이라는 이상한 번역투를 상요하는 것은 이해가 안 갑니다. 번역서가 아니면서 번역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16:29   좋아요 0 | URL
글이 늘어났군요.
하이데거에 대한 언급은 언어적 내셔널리즘이 아닙니다. 자기 나라 말을 두고 자기 나라 말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그런 식이라면 아갈마 님은 이오덕의 주장을 언어적 내셜널리즘이라고 비판해야 하지 않을꺄요 ? 하이데거가 이런 말을 했죠. 그의 유명한 명제입니다. ˝ 언어는 존재의 집 ˝ 이다. 그는 자신의 모국어로 자신의 철학을 완성한 철학가입니다. 하이데거를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어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의 나라 말로 철학하기`보다 중요한 것은 내 나라말로 철학하기가 아닐까요 ? 문학의 아토포스에는 그러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론보다는 발로 현장(현실 참여, 실천.. 이런 표현을 유독 많이 씁니다 ) 을 뛰어나니며 고민하는 저자`가 막상 이론에 갇혀서 현장를 한정하는 것은 아닐까요 ?

AgalmA 2015-05-03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생각이 많아서 우유부단해졌다고요. 다생각증후군 동의합니다.
두 사람의 사망년도, 날짜가 같아요. 1616년 4월 23일... 신기하긴 합니다.

관념어를 모국어로 바꾸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우리에겐 없는 언어와 관념도 많으니까요. 그래서 번역서들이 이렇게 욕을 먹는 거 아니겠습니까ㅎ 추상어를 일반어로 바꾸는 건 지난한 일이죠. 그럼에도 최대한 모국어로 바꾸는 성실함은 필요하다는 것, 저도 동의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15:08   좋아요 1 | URL
네,네네. 전 관념어를 번역해야 한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atopos를 무슨 수로 한국말로 번역할 수 있나요. 호모사케르도 마찬가지고 줄리아크리스테바의 abjection을 비체`라고 옮기는 것도 그닥 확 와 닿지는 않죠. 철학 용어는 최대한 그대로 인용하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철학을 쉽게 설명할 수는 없죠. 진은영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 철학자들은 이제 내 나라말로 철학하기`라는 것에 대해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서양 철학에 단순히 각주를 다는 수준이 아니라 말이죠. 뭐, 어디까지나 그냥 저의 개인적 생각이니 깊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ㅋㅋㅋ.

AgalmA 2015-05-03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확인을 제가 더 정확히 알아봐야하겠지만 언급하신 `독일어를 위대한 민족어`로 강조한 것은 대단히 내셔널리즘이죠. 곰곰발님의 옹호 뉘앙스도 그렇고요. 다른 언어는 그보다 못 하답니까. 우리만 해도 한국어의 우수성을 얼마나 강조합니까. 한글이 트위터 정보 전달력이 훨씬 강한 조성체계이기 때문에 정보를 더많이 넣을 수 있어 한국의 트위터 파급률이 강하다는 주장도 있죠. 저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곰곰발님도 한국어 탐구 많이 하셔서 아시겠지만, 서양의 한정된 `보다` 개념과는 다른 촘촘한 뉘앙스의 한국의 단어들 얼마나 많은가요. 시간상 일일이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저는 제 사유와 존재를 탐구하기 위해 모국어에 관심이 기울이는 것이지 모국어를 사랑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존재의 집˝ 탐구로서 말이죠. 내 나라 말이든, 남의 나라 말이든 인간이라는 존재 탐구를 위해 저는 가리지 않으며 최선을 다해 볼 것이라는 노선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생각도 없습니다. 각자가 정한 지침대로 가는 거겠지만, 여기서 저는 그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순 없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16:41   좋아요 0 | URL
저는 이오덕 주장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내 나라말을 사랑하자는 태도는 지지합니다. 한국인이 한국말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나쁠 것은 없죠. 하이데거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 사람이 자기 언어에 대해 긍지를 가지는 것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을 지적한 겁니다. 독일어를 모르면 철학을 할 자격이 없다는 말은 굉장히 건방지지만 그가 자기 나라 언어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굳이 비판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아갈마 님은 자신의 사유와 존재를 탐구하기 위해 모국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지 모국어를 사랑하기 때문은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아갈마 님은 영어공론화를 주장하는 복거일의 자세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유와 존재를 탐구하기에 다른 나라 언어가 더 효율적이라면 모국어 대신 영어를 선택하실 수 있다는 태도처럼 들립니다. 그렇지 않나요 ? 복거일도 자신의 모국어가 비효율적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니 영어를 받아들이자는 태도를 취한 것이겠지요. 한글은 모국어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랑하는 존재여야 합니다. 그것은 조건이 될 수 없죠. 무조건입니다.

AgalmA 2015-05-03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종다양한 언어의 특성과 가능성을 말했지 효율성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나친 비약은 사양합니다.
하지만 모국어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면, 같은 나라이기 때문에 무조건 동포를 지지하고 사랑해야한다는 민족주의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18:39   좋아요 0 | URL
논리적 비약은 아갈마 님이 하시는 것이지 제가 하는 게 아닙니다. 모국어는 선택 사항이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선택 사항도 아닙니다. 부모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 못난 부모 만났다고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고 바라시나요 ? 선택할 수 없는 것은 결국 좋고 나쁘고를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닙니다. 모국어도 마찬가지죠. 사랑하고 나서 비판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게 전제가 되어야죠. 미워하고 나서 비판하는 것은 편견이자 편애입니다. 모국어에 대한 사랑을 패거리 문화 따위로 폄하하시려는 겁니까 ? 내 나라 내말을 무조건 사랑하고 싶다는 서정이 왜 삐딱한 감정입니까 ?

AgalmA 2015-05-03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그간의 가족주의 비판이 사랑의 관점이셨습니까. 저는 옳고 그름의 선, 통념의 잘못된 오류에 대한 지적으로 봐 왔습니다. 곰곰발님도 그런 관점에서 말씀하시는 걸로 보였구요. 지금 말씀은 결정론자나 운명론선에서 말씀하시니 아주 판이하군요. 지금껏 제가 다 잘못 읽은 걸로 감수하겠습니다.
제가 언제 이오덕 선생 잘못했다 했습니까? 언어를 바르게 쓰는 건 옳은 일이죠. 바른 인식과 타인과의 소통에서도 중요한 점이기도 하기 때문에요.
패거리문화 같은 용어들을 가져와 제게 붙이시는 걸 비약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논점에서만 말씀해주시죠. 제가 위에 분명히 타인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라고 분명 언급했습니다. 그걸 읽지 않으시고 본인 맘에 안드는 점만 계속 물고 늘어지는 건 논쟁만 하자는 걸로밖에 안 보이네요.
제 마지막 말의 답변을 정확히 부탁드립니다. 모국어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는, 같은 나라 동포를 사랑해야 한다는 민족주의와 어떻게 다릅니까?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18:58   좋아요 0 | URL
좀 어이가 없네요. 그러면 모국어를 미워할 수도 있는 상황이 가능합니까 ? 묻고 싶네요. 미우나 고우나 라는 말이 있죠. 언어는 바로 미우나 고우나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그것은 어떤 기준에 의해 평가받을 수 없는 영역입니다. 제가 누누이 말했듯이 언어는 절대 순위를 매길 수 없습니다. 그 나라 사람은 그 나라 말이 최적인 상태로 태어났고, 그 말을 고마워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모국어 사랑이 과연 편협한 가족주의 중 하나일까요 ? 내 새끼가 최고라는 가족주의와 모어에 대한 편애는 다른 것입니다. 혈맹은 이기`에 속하겠지만 모어에 대한 사랑은 운명에 대한 것이 아닐까요 ? 모국어는 무조건 사랑하고 나서 제2 외국어를 사랑하는 것과 제 2 외국어를 사랑한나머지 모국어를 폄하지는 마세요.

AgalmA 2015-05-03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국어 폄하한 적 없구요.
정확한 답변이라기보다 님의 말씀은 자신의 주장 옹호로만 보이는군요. 아마 님께도 제가 그렇게 보일 거구요.
알겠습니다. 저는 여기서 물러 나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20:08   좋아요 0 | URL



​내가 내 주장에 대해 옹호만 하는 인간이라면, 아갈마 님 또한 자기 주장에 대한 옹호하기 위해서 이런 글을 남기신 것은 아니겠습니까 ?

아갈마, 님. 논쟁이라는 건 말이죠.
사전적 의미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각각 자기 주장을 말이나 글로 논하여 다툰다는 의미입니다.

즉, 자기 주장에 대한 옹호가 바로 논쟁입니다.

그걸 가지고 내 주장을 ˝ 자기 주장에 대한 옹호 ˝ 라며 쿨한 척 슬며서 물러나는 건 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아닙니까 ?


지금까지 아갈마 님은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이 지루한 댓글을 남기신 건 아닙니까.
이제 와서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댓글을 다는 행위를

세련되지 못한 논증이라는 논리가 이상한 겁니다. 자기 주장에 대한 고집은 토론과 논쟁의 기본입니다. 지금까지 아갈마 님이 진행한 댓글 또한 자신이 주장한 것에 대한 고집이라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모국어를 무조건 사랑해야 된다는 것과 한국어가 세계 최고라며 국뽕에 가까운 칭찬을 하는 정치가의 한글 사랑을 혼동하지는 마십시오.

후자는 비판받아야 할 것이지만 전자가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무조건적 박애와 정치적 실익`을 계산에 둔 선택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AgalmA 2015-05-03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대한 정중하려고 했기에, 서로의 주장이라고 말하던 겁니다. 분명 하이데거와 곰곰발님의 발언은 편파와 배척이 깔린 내셔널리즘입니다. 자꾸 가르려 하시지만, 님의 무조건과 국뽕은 다를 게 없습니다. 모국어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주장으로 어쨌거나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으시겠지요. 그 지지가 있다고 해서 비판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건 오만입니다. 자신이 가족주의인 줄 모르는 사람들만큼이나 내셔널리즘이란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계시니 당연하시겠지만요. 가족주의는 편협하고 모국어 사랑은 당연하다고요? 그야말로 사람 따로 말 따로 입니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건 인간과 언어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거 서로 인정하는 바 아닙니까. 단순히 가족주의 용어로 만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겪고 생각하는 가족도, 언어도 밀접하게 얽혀있기에 세상이 이토록 어려운 지경인데, 그렇게 쉽게 가르시다니...자신이 상당히 괴리적이란 생각을 못하시다니 유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20:29   좋아요 0 | URL
아갈마 님은 뭔가 굉장한 착각을 하고 계신 듯합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한글`이라는 것 자체만 놓고 보자는 겁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라는 속담은 한글 체계가 엉망이기에 나온 겁니까 ?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나누려는 남성 기득권 사회가 한글을 이용한 것일 뿐입니다.
여의사`라는 단어는 있는데 남의사는 없다는 사실이 한글의 편애인가요 ?
아니죠. 남성 기득권이 만들어놓은 구조죠. 한글은 죄 없습니다. 인간은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인 존재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다만 태어나면서부터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으로 훈련을 받죠. 언어의 잰더 규정에 의해서 말입니다. 한글 사랑과 편협한 가족주의 혹은 패거리 문화는 다른 겁니다.

< 무조건 > 과 < 국뽕 > 은 다르지 않다고요 ? 파블로프의 개처럼 무조건 반응하는 것은 국뽕일까요 ?

사람이 물에 빠졌다면 무조건 소리를 지르거나 물에 뛰어들어서 구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 태도는 국뽕입니까 조건 없는 반응을 국뽕이라고 하면 안 되죠.



+

최대한 정중하려고 하신다는데 최대한 정중한 필요는 없습니다.
최대한 정중한 태도를 보일 곳은 국제 외교 자리`겠죠. 논쟁은
최소한의 예의만 갖추면 됩니다.
최대한 예의는 청와대 초청으로 박근혜 앞에 있을 때 보여주십시오.
저 같은 잡놈에게는 최소한의 예의만 갖추시면 됩니다.

AgalmA 2015-05-03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성/남성성의 사회성까지 끌어와 논의를 넓혀서 논점을 흐리지 마십시오. 그럼 저는 인식론을 가져와야 하나요. 처음부터 저는 한글이 잘못됐다, 잘못 쓰이고 있다 라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저는 문제적인 부분, 하이데거와 님의 자기나라 말 사랑의 무조건성에 대한 지적을 했습니다.
님이 말하는 무조건적인 나라어 사랑은 나라사랑/가족사랑과 대상만 다르지 근본적 애착은 같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애착의 고리와 패착의 우려를 표했고, 님은 그건 간과한 채 그 사랑의 타당함만 주장하시니 이렇게 애쓰고 있는 거 아닙니까.
단순히 님의 개인적 나라어 사랑 지적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보실 것이기에 각자 타당함을 점검해보시라는 뜻도 있습니다. 대개가 나라어 사랑이 뭐 어때서겠죠.
어려서 이민간 사람들, 나라를 바꾼 사람들, 국어를 두 개 이상써야 하는 곳, 참 복잡한 문제가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국한하십니까.
결론 안날 거 뻔한데 뭐하러 시작을 했나 후회하고 있습니다.
 

 

 

 


뼈아픈 통증에 대하여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이 시는 시거 로스 음악과 함께 

 

 

                         이 詩에서 시인은 독자에게 < 알이 꽉 찬 꽃게 > 가 어떤 의미인지를 최대한 늦춘다. 초반에 " 뱃속의 알 " 이라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거지반은 단순히 알이 꽉 찬, 먹음직스러운 꽃게'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일종의 감정 유예'다. < 카타르시스 > 란 응집된 감정이 한순간에 터지는 경험. 그렇기에 진실은 항상 끝에 가서 밝혀져야 감정적 동요가 크다. 영화 << 올드 보이 >> 가 좋은 예'이다. 최민식은 모든 진실이 밝혀졌다며 의기양양할 때 전혀 다른 진실과 마주친다. 메이저리그 전설적 타자'였던 요기 베라의 명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 시'가 주는 감동은 예상치 못한 반전에 있다. 시인의 눈에 의해 관찰되던 꽃게가 느닷없이 인간의 말을 빌려 엄마처럼 말한다. 시점이 바뀌는 지점이다. " 저녁이야 /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이 표현은 이 시의 카운터펀치'다. "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 어찌할 수 없 " 는 몸부림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뱃속에 있는 알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응집된 감정이 한순간에 터지게 된다. 독자는 비로소 꽃게의 몸부림을 이해한다. 시를 다시 읽으면서 시인이 곳곳에 뿌려놓은 단서를 되짚어간다. " 벌컥벌컥 " 이라는 표현 대신 " 울컥울컥 " 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오고, " 꿈틀거린다 " 는 표현이 아린 생강의 맛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간장이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아보려고 물질을 멈춘 채 손발로 아픈 배를 감쌌을, 바닥 쪽으로 웅크렸던 어미 앞에서 먹먹해진다. 불길이 휩쓴 집 안에서 내 새끼를 살리기 위해서 웅크린, 불 타 죽은 어느 모성'이 생각난다. 시인은 " 저녁이야 /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라는 꽃게의 의인법을 통해 비극을 더욱 강조한다. 독자는 어미의 위로 앞에서 무너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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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5-02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기에 정호승은 시를 그렇게 잘 쓰는 시인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대중한테 손쉽게 어필하기 쉬운 시(물론 이것도 대단한 능력이긴 합니다만)를 쓴다고 해얄까요. 반면에 안도현은ㅡ그 역시 정호승 만큼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기는 했지만 바로 그 때문에ㅡ문학적으로는 다소 저평가를 받은 듯 싶습니다.
요즘 시들은 다 어려워서 무슨 말을 하는지 통 모르겠던데, 그래도 안도현이라는 존재가 새삼 귀하게 여겨지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2 13:23   좋아요 0 | URL
확실히 안도현 시`가 미래파 시인들에 비해 저평가된 느낌이 듭니다.
미래파, 이거 너무 과대포장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수다맨 2015-05-03 14:24   좋아요 1 | URL
장정일이 어느 서평에서 미래파를 일러 시를 모질게 자해함으로써 무한한 실험의 권리를 얻는 대신에 시의 원초성인 노래를 잃었다고 평가한 적이 있었지요. 그래서 문학이 사회와 완전히 격리되어 자족적이고, 게토화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실은 `백수파`나 다름없다며 독설을 한 기억이 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14:52   좋아요 0 | URL
평론이 제대로 된 몫을 못하니 서평이 오히려 평론이 해야 할 몫을 합니다. 그래서 장정일의 서평이 좋습니다.
제가 봐도 미래파 시는 자폐아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지속적 자해`라는 느낌이 확 ~ 듭니다. 진짜 문제는 미래파 시인보다는 평론이 아닌가 싶습니다. 집단으로 병맛한다고나 할가요. 언제부터 평론이 책장사꾼이 되었는지.....

포스트잇 2015-05-02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호승, 그래도 그의 시에 백창우가 노래를 붙이고 김광석이 절창한, 그의 마지막 녹음곡 <부치지 않은 편지>가 우리에게 남았잖아요. 그거면 된 거죠, 뭐.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2 13:23   좋아요 0 | URL
흔히 떠도는 <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 라는 시는 정호승 시인님의 시가 아니랍니다. 정체불명인데 이게 정호승 시인의 시로 둔갑했다고 합니다. 어쩐지 제가 봐도 이게 무슨 시냐, 이랬는데 역시나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시랍니다. 오늘 아침, 정호승 시인 님이 직접 지적해주셨습니다. 영광인데요.. ㅎㅎ

cyrus 2015-05-02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미래파 시인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시집을 읽고 싶으면 안도현, 정호승, 김용택, 신경림, 정현종, 기형도를 가장 많이 찾습니다. 되도록 다른 시인의 시집도 읽어보려고 하는데 간혹 뭔 말인지 모를 때가 있어요. 마치 수능 언어영역 지문으로 나오는 시처럼 해석하게 만듭니다. 이해를 못하면 감수성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10:40   좋아요 0 | URL
문태준 시인 시도 좋습니다. 추천합니다 !!

수이 2015-05-02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친구들과 미래파 시인들 이야기를 좀 했는데_ 저는 미래파 하면 일단 떠오르는 인물들이 황병승과 김경주? 김경주 시인도 미래파인가 아니 아닌가, 일단 황병승 시인만 떠오르는데 읽어도 정말 어디가 그리 좋은건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뭐 가끔 좋은 시도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 미래파 시인들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막말을 해도 괜찮은건지;; 흠;;

오랜만에 안도현 시인 시 읽으니까 막 푸근해지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10:40   좋아요 0 | URL
미래파 시를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뭔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경향의 시`에 대해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도 가끔 황병승 시 중 확, 마음에 와 닿는 시가 있더라고요.
뭔 뜻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끌린다고나 할까요.. ㅎㅎ.
 
문학의 아토포스
진은영 지음 / 그린비 / 201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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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 앞에서 굶주림을 논하기


옛날에는 동전을 닦았다면 요즘은 책을 닦는다. 말 그대로 책 겉표지를 닦고 있다. 6월에 이사 예정이어서 시간 날 때마다 미리 조금씩 조금씩 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처음에는 강력 세제에 물을 타 마른 수건으로 묻힌 다음 표지를 닦았는데 부작용이 발생했다. 그러니까, 음, 그거시, 뭐냐, 흠흠, 그러니까, 음, 그거시, 뭐냐, 거시기, 흠흠 ...... 책'에서 피가 나는 것이 아닌가 ? 한겨레 출판사에서 출간된 홍세화의 << 빨간신호등 >> 이란 책을 온힘을 다해 박박 닦고 있는 데 갑자기 빨간 피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얼룩이려니 생각하고 더욱 힘차게 닦았는데 오히려 더 번지는 것이었다. 책이, 상처입은 것일까. 알고 보니 강력 세제의 세척력이 강해서 빨갛게 인쇄된 글자가 녹아서 번진 것이었다.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서 여러 세정액으로 실험한 결과(빨래비누,샴푸,린스,클렌징폼,비누 따위), 책을 닦는 데 가장 적합한 세제'는 빨래비누'였다. 특히 거품이 많아서 책을 닦는 맛이 탁월했다. 머리를 감을 때 거품이 많아야 머리를 감는 느낌이 나듯이 말이다. 그렇다, 나는 타고난 남자 아저씨'였던 것이다. 따로 준비한 마른 걸레로 거품을 제거하고 나면 하얗게 오른 표지가 뙇 ! 시바, 이 맛에 책을 닦는다. 책만 닦지는 않는다. 책을 닦고 나면 책을 펼쳐 내용을 훑는다. 이런 표현이 외설스러울지는 모르겠지만 : 내 독서 행위와 섹스 행위'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하드커버인 경우는 포장지가 양장본을 감싸는 경우가 많은데 읽기 전에 항상 벗겨서 안을 살펴보는 버릇이 있다.

 

포장지를 벗겨내는 행위는 마치 브래지어의 훅을 딸 때 느끼게 되는 손맛과 비슷하다. 출렁거리는 속살을 보게 되면 아, 하게 된다. 그 다음은 속을 보기 위해 책을 펼친다. 독서는 몰입이 주는 쾌감에 속한다. 정신이 산만한 사람이 독서를 따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몰입의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속을 샅샅이 훑을 때 느끼게 되는 쾌감은 짜릿하다. 섹스도 몰입이 주는 쾌감에 속한다. 속을 샅샅이 핥을 때 느끼게 되는 쾌감은 말 안 해도 다들 아시리라. 모르면 당신은 뽀로로요, 텔레토비'다 (너무 많이 알면 빨갱이다).  행복한 독서와 즐거운 섹스의 공통점은 속을 제대로 파악할 때 비로소 아, 아아아아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자리가 책의 에로스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는 아니니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책의 씻김굿 작업 틈틈이, 그 전에 시간이 부족해서 발췌독을 했던 진은영의 << 문학의 아토포스 >> 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발췌독에 따른 오독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 책을 읽고 나서 드는 독후(讀後)한 감(感)은 괜한 군걱정이라는,  씁쓸한 느낌'이었다. 물론 이 책이 교양 수준이 높은 고급 독자를 겨냥했다는 것을 감안한다 해도 쓸데없는 지식인의 과도한 자의식이 깨알처럼 박혀 있어서 읽는 내내 불편했다. 기형도의 시어'를 빌리자면 < 깨 > 란 내부의 빈곤을 숨기기 위해서 뿌리는 저렴한 음식 데코레이션이 아닐까 ? 유시민도 << 글쓰기 특강 >> 에서 잠시 이 책을 언급한 모양이다( 나는 읽지 않았다. 지나가는 바람이 귀뜸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글쓴이 자신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지만 독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을 너무 많이 썼다(249쪽) "

 

 

자기 생각은 없고 온통 바깥 세계에서 빌려온 사유로 내부 세계를 진단한다. 12월에 내리는 함박눈처럼 낯선 외국인 이름이 쏟아져내릴 때는, 아 ! ......  아찔한 맛도 선사한다. 이 장탄식은 내 무식이 탄로났을 때 느끼게 되는 좌절감 비스무리한 탄식이었다. 랑시에르의 사유 없이는 당대를 분석할 수 없는 것일까, 리오타르 없이는 숭고한 대상을 언급할 수는 없는 것일까, 알파벳으로 구성된 단어의 조합 없이는 단 한 문장도 완성시킬 수 없는 것일까 - 궁금하다. 이 책 제목인 << 문학의 아토포스 >> 에서 " 아토포스 " 를 대체할 마땅한 표현이 없기에 인용했다고 쳐도, 굳이 " 시대착오 " 라고 하면 될 것을 " 아나크로니즘 "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자세는 지적 허세'로 보인다. 내부의 빈곤을 감추기 위해서 깨를 뿌리지는 마시라. 맛으로 승부합시다(소제목만 나열하기로 한다 : 5장 미학적 아방가르드의 모럴, 6장 문학의 아토포스, 7장 시, 숭고, 아레테, 8장 니체와 문학적 코뮤니즘, 9장 문학의 아나크로니즘) !

 

이 책은 마치 서양식 만찬을 즐기면서 한국의 결식 아동에 대해 심오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처럼 보인다. 캐비어 좌파의 만찬이라고나 할까 ?  수사는 화려한데 메시지는 없다. 구호는 거창한데 진심은 느껴지지 않는다. 대한민국 당대를 이야기하면서 막상 끌어다 쓴 글감은 현해탄과 태평양 너머의 재료뿐이다. 그는 낮은 눈높이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뜬구름 위에서 뒷짐 지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다. 설상가상, 신형철은 이 책에 대한 발문을 썼는데 " 이미 거의 아름답다고 해야 할 정도로 명징한 논증을 구사하고 있 " 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기사, 그가 써온 평론치고 달달하지 않은 글이 있었던가 ? 목수가 도끼를 든 장인이라면 문학평론가는 화살을 든 장인이다. 신형철이라는 스타 평론가의 연장통이라 할 만한 화살통 안에는 온통 달달한 큐피드의 화살뿐이다.

 

정작 평론가가 갖추어야 할 날카롭고 정직한 화살촉은 없다. 이 발문은 마치 진은영이 본문에서 신형철의 평론 << 아름답고 정치적인 코뮌 >> 을 언급한 것에 대한 화답처럼 보인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동업자 정신이 한국 문학을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한 꼴이 아닐까 ? 시를 읽지 않거나 문학 평론을 읽지 않는 시대를 한탄하기에 앞서 독자와 소통하려는 진지한 자세에 대한 언급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 진은영과 신형철의 글을 읽다 보면 담담하고 소박하지만 강직하며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가진 이명원의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명원은 << 마음은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 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학의 자율적인 체계를 지닌 예술이라는 통념에 대해서는 줄기차게 강조하는 평론가들이, 제도화된 영역에서의 문학평론가라는 것이 분명한 직업이며, 그에 걸맞는 치열한 직업윤리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편의적으로 눈을 감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함량 미달의 작품들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친소관계나 이해관계, 혹은 경영상의 이유 때문에 대단한 작품인 양 뻥튀기 하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일반 독자들이 읽어보아도 한갓 연애담이나 성 경험 고백서에 불과할 작품들을 초월적이니 비의적이니, 혹은 존재론적 고뇌니 하는 거창한 수사로 포장하는 미학적 사기가 횡행화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들이 이 집단적인 거간꾼의 자세에서 탈피해야 한다

 

- 마음은 소금밭인데, 113쪽


<< 문학의 아토포스 >> 을 읽다가  책을 덮고,  <<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 를 발췌독으로 다시 훑는다. 느끼하지 않아서 좋다. 칼칼한 김칫국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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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5-01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양식 만찬을 즐기면서 한국의 결식 아동에 대해 심오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 아 진짜 이 책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문학의 아토포스˝는 2014년에 나온 책 중 최악의 리스트에 올라갈 만한 책이라고 봅니다. 저는 무슨 평론화된 조경란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1 12:05   좋아요 0 | URL
제가 쓴 문장이지만 스스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책 읽고 나서 딱, 드는 생각이 저거 였습니다.
서양식 만찬을 즐기면서 독거 노인이나 결식 아동 가정에게 김장을 보낼 계획을 하는것 같은 그런 느낌...

stella.K 2015-05-01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곰발님은 안 좋은 책에 대한 리뷰도 외설과 예술을 오가며 잘 쓰시는 것 같아요.ㅋ
저는 안 좋아하는 책은 아예 리뷰를 불허하거나 하게되면 직설적으로 까던가 그러는데...ㅠ
저는 이 책 별로 끌리지 않았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 표지가 맘에 안 들더군요.
표지가 확실히 그 책을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좌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피 흘리는 책은 또 첨 보겠습니다. 그런데 세제가 문제였군요.
그런데 곰발님은 책을 정말 사랑하시는가 봅니다. 전 아무리 좋아해도 세제로 닦을 생각은
못하거든요. 전 말로만 책 좋아하지 가만 보면 방치하는 거나 다름이 없어요.
방치는 무관심 보다 더 안 좋은 거 같아요.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1 13:08   좋아요 0 | URL
오죽했으면 닦겠습니까. 이사할 때마다 폭우가쏟아져서
아주 책이 뗏국물이 철철 흘렀습니다.
이사할 때가 되니 시간 날 때마다 먼지 좀 털어낼 겸 해서
닦고 있습니다. 포장이사는 그냥 포장만 하지 먼지까지 털지는 않지 않습니까....

빨래비누물에 마른 걸래로 묻혀서 함 닦아 베숑..보세요.
의외로 짜릿합니다.
ㅋㅋㅋ

비로그인 2015-05-01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닦기를 이렇게 에로틱하게 표현하신것에 꽂혔습니다!! 저도 중고책 표지를 자주 닦는데 이젠 닦을때마다 곰발님 글이 생각나겠네요 ㅋㅋ 평가하신 책은 읽어보질 못해서 패스 ... 전 소양이 부족해서 곰발님 글을 읽으면 항상 주변얘기나 특정표현에만 집중하게 되네요...근데 그게 더 재밌어요...
눈높이가 낮은(다른) 사람에게도 재밌게 읽히는 글을 써주시는게 너무 좋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1 17:28   좋아요 0 | URL
제가 한 < 닦기 > 합니다. 제가 워너비 님보다 지적 수준이 더 낮을 겁니다. ㅎㅎㅎㅎ
제 아이큐가 98인가 그렇습니다.
또래애들이 두 자리 아이큐라고 더럽게 놀리고는 했는데 말이죠.. ㅋㅋ

닦는 게 취미라서 그러는데 뭘로 닦으십니까 ?

비로그인 2015-05-01 20:48   좋아요 0 | URL
가전기구 닦으려고 한박스 사놓은 유한그린텍의 <마법의 항균 청소박사>요.ㅎㅎ
마치 책 제목같은데 그냥 물티슈같은겁니다. 이걸 조금 말려서 닦으면 책이 많이 안젖고 시커먼 때가 잘지워지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2 07:3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고급 정보로군요. 당장 닦아보도록 하겠스비다.

dddddd 2019-11-04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책도 안봤는데 리뷰 글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당

WifeOf센프라우드 2023-04-27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큐가 98이셔서...
 

 

 

 

 

 

동전 : 새것과 낡은 것

 

 

 

 

새것(new)은 낡은 것(old) 때문에 고통받는다

 

- 맑스, 자본론 서문 中

 


 

 


종종 학교 앞에서는 뜨내기장사 좌판'이 열리고는 했다. 주로 병아리를 팔거나 동전 따위를 윤이 나게 닦을 수 있는 연마제를 팔았다. 또래아이들은 병아리와 연마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열에 아홉은 병아리를 가지고 싶어 했는데 나는 연마제가 탐이 났다. 그 연마제로 거무죽죽하고 구리구리한  십 원짜리 동전을 닦으면 아, 구리가 러, 블리 황금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  마치 이집트의 연금술사'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맛에 미친 나는 동전이란 동전은 죄다 닦았다. 동전을 닦는 대신 학문을 닦거나 항문을 (제대로) 닦았다면 치질로 고생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 것이다. 사소한 일에도 부들부들 하는 성격은 웬만한 일에는 그냥 웃어넘기는 유들유들한 성격이 되었을 것이고, 대장항문과 여의사의 손가락이 내 항문을 파고들며 " 그래도 곰곰생각하는발 씨'는 다른 건 몰라도 항문 하나만큼은 참... 예술이네요.
국화무늬 똥구멍이라는 게 그리 흔한 게 아니 거든요. < 잘생긴 똥구멍 대회 > 라도 열리면 1등은 따논 당상인데 아쉽네요. 당신 똥구멍은... 그래요, 키스를 부르는 똥구멍이에요. 호 ! 호 ! 호 ! " 라는 어색한 칭찬은 받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서 내 얼굴은 <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수준 > 인데 아무도 볼 수 없고 아무나 보여줄 수도 없는 항문은 가히 < 미색이 출중하야 누구나 心이 동하는 똥구멍 > 이었으니 이 무슨......  개 같은 운명이란 말인가 !  하여튼, 어린 나는 동전 닦는 재미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 나중에는 다년간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쾌락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게 되었다. 동전을 닦을 때 제일 좋은 소재는 낡은 백양 메리야스 런닝 샤쯔'였다. 손수건 크기로 넉넉하게 천 조각을 만들어 연마제를 묻힌 동전을 감싼 다음에 문지른다. 그런 다음에 백양 메리야스 런닝 샤쯔 조각을 조심스럽게 열면 그 속에 " 둥근 해가 떴습니다 ! "
마술사가 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나보다 어린 꼬맹이에게 선보이면 아이들은 신기해서 와와, 했다. 구리구리한 동전이 블링블링한 동전으로 재탄생하였으니 놀라지 않을 리 없었다. 이 맛에 동전을 닦았다. 그러다 보니 십 원짜리 동전을 발행년도별로 모으는 취미로 발전했다. 1967, 1968, 1969, 1970, 1971, 1972, 1973, 1974, 1975, 1976, 1978........ 동전을 모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흔한 것과 귀한 것이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1966년 동전과 1977년 동전'을 발견했을 때는 기뻐서 똥 쌀 뻔했다. 3000조각 직소퍼즐의 잃어버린 마지막 한 조각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나는 방바닥에 1966년에 발행된 십 원짜리 동원을 시작으로 년도별로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1977년 동전이 없어서 동전 기차놀이를 할 수 없었는데 드디어 1977년이라는 객차 한 칸'을 마련한 것이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날, 나는..... 울었다.
하지만 이 환희'는 오래 가지 못했다. 내가 애지중지 모았던 동전은 어처구니없게도 짜장면과 교환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내 책상을 정리하면서 서랍 속 동전을 모두 처분한 것이다. 내게는 귀한 동전이었으나 어머니가 보시기에는 " 동전 나부랭이 " 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어머니가 동전을 거론하면서 " 동전 나부랭이.... " , " 지저분하게...... " , " 아무 데나 나뒹구는..... "  따위로, 내가 신주 단지로 모셔온 십 원짜리를 비하할 때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거무죽죽한 짜장면을 먹으면서 울,  었다. 내가 퉁퉁 부은 얼굴로 질질 짜자 어머니가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 어린 놈의 새끼'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동전이나 닦고..... 동전 닦는다고 돈이 나오니 밥이 나오니.  커서 구두닦이 할래 ? " 그래서 준비했다. " 어머니 ! 십 원짜리'라고 무시하지 마십시오. 돈이 되고 밥이 된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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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머리가 커서 동전 따위를 닦거나 하지는 않는다. 동전을 발행년도별로 모으는 일도 하지 않는다. 동전 기차 놀이'는 이제 추억 저 편'으로 보냈다. 그런 것은 어릴 때나 하는 짓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동전을 닦고 발행년도별'로 동전을 모으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는 같은 값이라고 해서 다 같은 값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십 원짜리, 흔하고 흔한 동전이지만 그 속에도 진주는 있는 법. 흔한 것이 반드시 천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흔한 것이 귀한 것일 수도 있다는 어떤 희망. 십 원짜리 동전을 보면 종종 러시아 작가 고리키'가 생각난다. 그가 썼던 희곡 << 밑바닥 >> , 소설 << 소시민들 >> 이라는 작품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10원짜리 동전을 사람으로 치자면 소시민들이요, 계급 피라미드'로 보자면 밑바닥'이 아닐까 싶다.

 

세월호 이후, 변한 것은 없다. 시민을 십 원짜리 동전쯤'으로 여기는 오 만원짜리, 오만한 정치 권력 집단은 여전히 승승장구한다. 그들은 국민을 1997년도 십 원짜리 동전으로 생각한다. 흔하고 흔한 것으로 말이다. 3000만 원짜리 " 비타 500 c " 를 사서 마시는 족속이다 보니 십 원짜리 동전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그들 주머니에 동전은 없다. 4천 3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은 있지만 4천 3백 2십 1만 9천 8백 3십 원짜리 명품 가방은 존재할 수 없는 법. 가격표가 < - 00,000원 > 으로 끝나지 않고 < - 09,980원 > 으로 끝나는 상품은 대부분 서민용 상품'이다. 하지만 십 원짜리 동전이라고 모두 다 흔하디 흔한 동전은 아니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십 원짜리 동전 계급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천한 것은 아니다. 안도현 시인이 "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시밤바들아 ! " 라고 했듯이, 나도 이렇게 외치고 싶다. 십 원짜리 동전 함부로 차지 마라. 누군가에게는 귀한 동전이지 않느냐.

이상한 일이다. 박근혜와 집권 여당의 지지않는 승승장구'를 생각하다가 문득 그 옛날 동전을 닦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내가 어릴 때 동전을 닦던 취미'는 일종의 계급 투표 : 각 사회 계급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는 대표자에게 투표하는 정치적 선택   였던 셈이다. 연마제를 묻혀 더러운 동전을 새 동전으로 만드는 마술 같은 희열은 내 계급에 대한 지지가 아니었을까 ? 대한민국 사람들이 각자 동전을 닦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십 원짜리 계급이 십 원짜리 동전을 무시한다. 노동자는 노동자를 지지하지 않고 여성의 적은 어느새 여자가 되었다. 서비스의 질을 들먹이며 진상을 부리는 고객 가운데 상당수는 서비스업 노동자'라는 통계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1970년에 발행된 10원짜리 동전은 56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십 원짜리 동전이 오만 원짜리 지폐'보다 비싼 경우'다. 그러니 십 원짜리 군단이 오만 원짜리 오만한 군단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는 말자. 다윗은 골리앗을 이기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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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4-30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전 닦기를 이렇게 해석하시다니!!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계급을 대변하는 자에게 투표하지않고 본인이 지향하는 계급을 위해 투표하는것같아요...
다들 상위 1%를 지향하고 살기에 이런결과가 나온걸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4-30 15:11   좋아요 0 | URL
어제 투표 결과 보고
문득 제 어릴 적 신기한 약으로 동전을 새것으로 만들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맞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집단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투영된 집단에게 투표하려는 경향....
참... 암담하죠..

stella.K 2015-04-30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10원짜리도 소중한 건데...
지금 10원짜리 동전 크기가 옛날 5원짜리만 하잖아요.
그 많던 동전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ㅠㅠㅠ
저 1966년 짜리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저런 거 잘 모아두면 피가되고 살이되는 건데...
말에 의하면 10원짜리 동전 3개를 녹여야 하나 나온다고 하던데
우리가 10원짜리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습니다.
나 어렸을 때 10원 들고 가면 크림빵이나 건빵 한봉지 살 수 있었어요.
그 돈맛을 알 무렵 금방 저것들이 30원이 되고, 100원이 되는 걸 지켜봐야 했었죠.
돈 귀한 줄 모르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아요.
없는 사람에겐 여전히 귀한 건데 말입니다.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04-30 15:10   좋아요 0 | URL
5원짜리동전을 전 본 기억이 없어요. 이번에 알았습니다.
도표 보고어라 5원짜리 동전도 있었나 했습니다.
근데 요즘도 1원짜리 동전이 있네요. 신기하네....
1원은 도대체 어디 다 쓰는 것일까요 ?

마립간 2015-04-30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의 긍정적인 메세지는 충분히 이해갑니다만,

어느 페미니스트?가 사회적으로 정의된 10원짜리의 귀천을 거부한다. 이런 주장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4-30 15:07   좋아요 0 | URL
어느 페미니스트의 양성평등 주장인가요 ? ㅎㅎ.

2015-04-30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30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다맨 2015-05-01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이번 선거를 정부 여당이 승리함으로써 성완종 게이트나, 세월호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거라는 예감조차 듭니다. 또한,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려는 정부의 노동 정책이 더더욱 가속화될 것도 같구요.
야권의 계파 갈등이나 미흡한 전술/전략도 문제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다수 사람들이 정부 여당에 표를 주는 행위는 전혀 옳게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표를 주는 대가로 돌아오는 것이라곤 부정부패의 심화와 부의 일방향적 편중에 불과할 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믿을 건 여당이란 생각이 사람들 맘속에 제법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1 05:41   좋아요 0 | URL
여당은 지역색을 이용할 수록 유리하죠. 서울, 경기를 뺀 전북+전남+강원+충남+충복+제주를 다 합친 인구보다 경북+경남˝ 인구가 더 많습니다. 경상도 전라도 구조`로 가면 단연히 경상도 압승... 문제는 이런 지역색을 야당도 바란다는 점이죠. 국회의원이 가장 시급한 것은 배찌아니겟습니까. 서로 안전빵하려고 전라 경상 구도를 만드는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