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 새것과 낡은 것

 

 

 

 

새것(new)은 낡은 것(old) 때문에 고통받는다

 

- 맑스, 자본론 서문 中

 


 

 


종종 학교 앞에서는 뜨내기장사 좌판'이 열리고는 했다. 주로 병아리를 팔거나 동전 따위를 윤이 나게 닦을 수 있는 연마제를 팔았다. 또래아이들은 병아리와 연마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열에 아홉은 병아리를 가지고 싶어 했는데 나는 연마제가 탐이 났다. 그 연마제로 거무죽죽하고 구리구리한  십 원짜리 동전을 닦으면 아, 구리가 러, 블리 황금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  마치 이집트의 연금술사'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맛에 미친 나는 동전이란 동전은 죄다 닦았다. 동전을 닦는 대신 학문을 닦거나 항문을 (제대로) 닦았다면 치질로 고생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 것이다. 사소한 일에도 부들부들 하는 성격은 웬만한 일에는 그냥 웃어넘기는 유들유들한 성격이 되었을 것이고, 대장항문과 여의사의 손가락이 내 항문을 파고들며 " 그래도 곰곰생각하는발 씨'는 다른 건 몰라도 항문 하나만큼은 참... 예술이네요.
국화무늬 똥구멍이라는 게 그리 흔한 게 아니 거든요. < 잘생긴 똥구멍 대회 > 라도 열리면 1등은 따논 당상인데 아쉽네요. 당신 똥구멍은... 그래요, 키스를 부르는 똥구멍이에요. 호 ! 호 ! 호 ! " 라는 어색한 칭찬은 받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서 내 얼굴은 <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수준 > 인데 아무도 볼 수 없고 아무나 보여줄 수도 없는 항문은 가히 < 미색이 출중하야 누구나 心이 동하는 똥구멍 > 이었으니 이 무슨......  개 같은 운명이란 말인가 !  하여튼, 어린 나는 동전 닦는 재미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 나중에는 다년간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쾌락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게 되었다. 동전을 닦을 때 제일 좋은 소재는 낡은 백양 메리야스 런닝 샤쯔'였다. 손수건 크기로 넉넉하게 천 조각을 만들어 연마제를 묻힌 동전을 감싼 다음에 문지른다. 그런 다음에 백양 메리야스 런닝 샤쯔 조각을 조심스럽게 열면 그 속에 " 둥근 해가 떴습니다 ! "
마술사가 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나보다 어린 꼬맹이에게 선보이면 아이들은 신기해서 와와, 했다. 구리구리한 동전이 블링블링한 동전으로 재탄생하였으니 놀라지 않을 리 없었다. 이 맛에 동전을 닦았다. 그러다 보니 십 원짜리 동전을 발행년도별로 모으는 취미로 발전했다. 1967, 1968, 1969, 1970, 1971, 1972, 1973, 1974, 1975, 1976, 1978........ 동전을 모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흔한 것과 귀한 것이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1966년 동전과 1977년 동전'을 발견했을 때는 기뻐서 똥 쌀 뻔했다. 3000조각 직소퍼즐의 잃어버린 마지막 한 조각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나는 방바닥에 1966년에 발행된 십 원짜리 동원을 시작으로 년도별로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1977년 동전이 없어서 동전 기차놀이를 할 수 없었는데 드디어 1977년이라는 객차 한 칸'을 마련한 것이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날, 나는..... 울었다.
하지만 이 환희'는 오래 가지 못했다. 내가 애지중지 모았던 동전은 어처구니없게도 짜장면과 교환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내 책상을 정리하면서 서랍 속 동전을 모두 처분한 것이다. 내게는 귀한 동전이었으나 어머니가 보시기에는 " 동전 나부랭이 " 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어머니가 동전을 거론하면서 " 동전 나부랭이.... " , " 지저분하게...... " , " 아무 데나 나뒹구는..... "  따위로, 내가 신주 단지로 모셔온 십 원짜리를 비하할 때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거무죽죽한 짜장면을 먹으면서 울,  었다. 내가 퉁퉁 부은 얼굴로 질질 짜자 어머니가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 어린 놈의 새끼'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동전이나 닦고..... 동전 닦는다고 돈이 나오니 밥이 나오니.  커서 구두닦이 할래 ? " 그래서 준비했다. " 어머니 ! 십 원짜리'라고 무시하지 마십시오. 돈이 되고 밥이 된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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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머리가 커서 동전 따위를 닦거나 하지는 않는다. 동전을 발행년도별로 모으는 일도 하지 않는다. 동전 기차 놀이'는 이제 추억 저 편'으로 보냈다. 그런 것은 어릴 때나 하는 짓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동전을 닦고 발행년도별'로 동전을 모으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는 같은 값이라고 해서 다 같은 값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십 원짜리, 흔하고 흔한 동전이지만 그 속에도 진주는 있는 법. 흔한 것이 반드시 천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흔한 것이 귀한 것일 수도 있다는 어떤 희망. 십 원짜리 동전을 보면 종종 러시아 작가 고리키'가 생각난다. 그가 썼던 희곡 << 밑바닥 >> , 소설 << 소시민들 >> 이라는 작품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10원짜리 동전을 사람으로 치자면 소시민들이요, 계급 피라미드'로 보자면 밑바닥'이 아닐까 싶다.

 

세월호 이후, 변한 것은 없다. 시민을 십 원짜리 동전쯤'으로 여기는 오 만원짜리, 오만한 정치 권력 집단은 여전히 승승장구한다. 그들은 국민을 1997년도 십 원짜리 동전으로 생각한다. 흔하고 흔한 것으로 말이다. 3000만 원짜리 " 비타 500 c " 를 사서 마시는 족속이다 보니 십 원짜리 동전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그들 주머니에 동전은 없다. 4천 3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은 있지만 4천 3백 2십 1만 9천 8백 3십 원짜리 명품 가방은 존재할 수 없는 법. 가격표가 < - 00,000원 > 으로 끝나지 않고 < - 09,980원 > 으로 끝나는 상품은 대부분 서민용 상품'이다. 하지만 십 원짜리 동전이라고 모두 다 흔하디 흔한 동전은 아니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십 원짜리 동전 계급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천한 것은 아니다. 안도현 시인이 "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시밤바들아 ! " 라고 했듯이, 나도 이렇게 외치고 싶다. 십 원짜리 동전 함부로 차지 마라. 누군가에게는 귀한 동전이지 않느냐.

이상한 일이다. 박근혜와 집권 여당의 지지않는 승승장구'를 생각하다가 문득 그 옛날 동전을 닦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내가 어릴 때 동전을 닦던 취미'는 일종의 계급 투표 : 각 사회 계급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는 대표자에게 투표하는 정치적 선택   였던 셈이다. 연마제를 묻혀 더러운 동전을 새 동전으로 만드는 마술 같은 희열은 내 계급에 대한 지지가 아니었을까 ? 대한민국 사람들이 각자 동전을 닦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십 원짜리 계급이 십 원짜리 동전을 무시한다. 노동자는 노동자를 지지하지 않고 여성의 적은 어느새 여자가 되었다. 서비스의 질을 들먹이며 진상을 부리는 고객 가운데 상당수는 서비스업 노동자'라는 통계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1970년에 발행된 10원짜리 동전은 56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십 원짜리 동전이 오만 원짜리 지폐'보다 비싼 경우'다. 그러니 십 원짜리 군단이 오만 원짜리 오만한 군단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는 말자. 다윗은 골리앗을 이기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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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4-30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전 닦기를 이렇게 해석하시다니!!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계급을 대변하는 자에게 투표하지않고 본인이 지향하는 계급을 위해 투표하는것같아요...
다들 상위 1%를 지향하고 살기에 이런결과가 나온걸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4-30 15:11   좋아요 0 | URL
어제 투표 결과 보고
문득 제 어릴 적 신기한 약으로 동전을 새것으로 만들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맞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집단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투영된 집단에게 투표하려는 경향....
참... 암담하죠..

stella.K 2015-04-30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10원짜리도 소중한 건데...
지금 10원짜리 동전 크기가 옛날 5원짜리만 하잖아요.
그 많던 동전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ㅠㅠㅠ
저 1966년 짜리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저런 거 잘 모아두면 피가되고 살이되는 건데...
말에 의하면 10원짜리 동전 3개를 녹여야 하나 나온다고 하던데
우리가 10원짜리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습니다.
나 어렸을 때 10원 들고 가면 크림빵이나 건빵 한봉지 살 수 있었어요.
그 돈맛을 알 무렵 금방 저것들이 30원이 되고, 100원이 되는 걸 지켜봐야 했었죠.
돈 귀한 줄 모르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아요.
없는 사람에겐 여전히 귀한 건데 말입니다.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04-30 15:10   좋아요 0 | URL
5원짜리동전을 전 본 기억이 없어요. 이번에 알았습니다.
도표 보고어라 5원짜리 동전도 있었나 했습니다.
근데 요즘도 1원짜리 동전이 있네요. 신기하네....
1원은 도대체 어디 다 쓰는 것일까요 ?

마립간 2015-04-30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의 긍정적인 메세지는 충분히 이해갑니다만,

어느 페미니스트?가 사회적으로 정의된 10원짜리의 귀천을 거부한다. 이런 주장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4-30 15:07   좋아요 0 | URL
어느 페미니스트의 양성평등 주장인가요 ? ㅎㅎ.

2015-04-30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30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다맨 2015-05-01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이번 선거를 정부 여당이 승리함으로써 성완종 게이트나, 세월호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거라는 예감조차 듭니다. 또한,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려는 정부의 노동 정책이 더더욱 가속화될 것도 같구요.
야권의 계파 갈등이나 미흡한 전술/전략도 문제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다수 사람들이 정부 여당에 표를 주는 행위는 전혀 옳게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표를 주는 대가로 돌아오는 것이라곤 부정부패의 심화와 부의 일방향적 편중에 불과할 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믿을 건 여당이란 생각이 사람들 맘속에 제법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1 05:41   좋아요 0 | URL
여당은 지역색을 이용할 수록 유리하죠. 서울, 경기를 뺀 전북+전남+강원+충남+충복+제주를 다 합친 인구보다 경북+경남˝ 인구가 더 많습니다. 경상도 전라도 구조`로 가면 단연히 경상도 압승... 문제는 이런 지역색을 야당도 바란다는 점이죠. 국회의원이 가장 시급한 것은 배찌아니겟습니까. 서로 안전빵하려고 전라 경상 구도를 만드는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