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존재의 집




인간은 말한다(spricht). 우리는 깨어 있을 때도 말하고, 꿈속에서도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말한다. 우리가 아무 말도 소리 내지 않고 경청하거나 읽을 때에도 우리는 말하며, 심지어 특별히 경청하거나 읽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일에 몰두하거나 한가로이 여가를 즐길 때에도 우리는 말한다.


ㅡ 하이데거, < 언어로의 도상에서 > 中에서

 


 

쉬운 표현을 어려운 문장으로 꾸미는 게 쉬울까, 아니면 어려운 표현을 쉬운 문장으로 꾸미는 게 쉬울까 ? 두말할 것도 없이 어려운 표현을 쉬운 문장으로 꾸미는 것보다 쉬운 표현을 어렵게 꾸미는 게 더 쉽다. 조용필이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라고 노래했을 때, 이 표현은 남자의 복잡한 심사'를 매우 선명하게 그려낸 탁월한 문장이었다. 셰익스피어 또한 인간의 뒤틀린 심사'를 간결하게 묘사할 줄 아는 작(사)가다. 햄릿의 성격은 딱 잘라 말하기가 불가능하다. 배우 최민식옹께서 햄릿에게 " 누구냐, 넌 ? " 이라고 반문할 것이 분명하다. 사랑이 넘치는 인물 같다가도 느닷없이 잔인하며, 나약한 순간에 불같이 강한 성격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싸움닭 기질이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막상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겁쟁이로 추락한다.

그렇기에 햄릿은 누군가에 의해 특정 유형으로 정의 내리는 순간 상대방으로부터 앙칼진 말방구 공격을 받기 십상이다. 햄릿을 결단력 없고 나약한 인물이라고 정의 내리면, 햄릿이 결단력 없고 나약한 인물이 아니라는 증거를 들이대며 딴지를 걸 사람은 많다. " 닝기미, 조또 ! 결단력 없고 비실비실한 놈이 그 수많은 사람 죄다 죽였겠어, 그려, 안 그려 ? " 사실, 연극 << 햄릿 >> 은 " 환각과 속임수와 광기로 짜인 줄거리'는 결국 주인공들이 없어서(모두 죽어서) 중단된1 " 연극이다. 임성한 드라마 << 오로라 공주 >> 에서 등장인물이 이유없이 죽고, 쓸데없이 죽고, 어이없이 죽고, 황당하게 죽고, 심지어는 떡대  : 드라마 속 개 이름      마저 죽어서 시청자에게 " 막장 드라마 " 란 거센 항의를 받았다면,

<< 햄릿 >> 도 같은 이유로 비판을 받아야 한다. 오필리어도 죽고, 플로니어스 재상도 죽고, 거투르드 왕비도 죽고, 클로디어스 왕도 죽고, 레어티즈도 죽고, 햄릿도 결국에는 죽는다. 주요 등장 인물들이 모두 죽었으니 감독 입장에서는 난처한 상황이다. 쉽게 말해서 어...... 동열이고 없고,  어..... 종범이도 없는, 감독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해태(기아) 잘하고 있나 ?    이런 마당에 햄릿이 결단력 없고 나약한 인물이라고 ?! 그런데 < 햄릿 > 을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하면 오히려 더 심한 앙칼진 말방구'가 예상된다. 한마디로 햄릿은 굉장히 복잡한 인물이다. 셰익스피어는 이 복잡한 성격을 " to be or not to be " 로 해결한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쉬운 단어 활용'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이 난다.

나랏 말쌈이 듕국과 달라 꽃 둏고 여름 할 때 서로 사맛디 아니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백성도 to, be, or, not 정도는 알지 않은가 ?  이토록 복잡한 인물을 이토록 쉬운 단어로 정의를 내리다니, 놀랄 노 자'다.  야구 선수는 공과 방망이를 가지고 놀고, 시인과 소설가는 언어를 가지고 논다. 철학도 크게 다르지 않다. " ㅡ 學 " 은 대부분 언어를 다룬다. < 신학 > 은 텍스트를 독해하고 숨은 뜻을 해석한다는 점에서 해석학'이다. 해석학은 언어의 은유를 파고들며, 분석철학은 언어의 규칙을 증명하려는 수작(秀作)이고, 프랑스 철학은 언어의 다의성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이 지점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철학과 언어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이다. 하이데거는 독일 현대 철학의 거성'이지만 인간성은 그닥 훌륭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히틀러에 빌붙어서 승승장구한 대표적 지식인이었다. 이 철학 교수는 1933년 5월 1일 나치당에 입당한다.  당원 번호는 3,125,894번'이었다. " 하일, 히틀러 !!! " 히틀러가 게르만 혈통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건강한 육체를 강조했다면 하이데거는 게르만 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독일어를 위대한 민족어'로 내세웠다. 그는 그리스어와 독일어를 모르면 철학을 결코 배울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에게 모어'는 존재의 집이었다.  타 언어'를 사용하는 철학자가 들으면 부아가 날 만한 소리'다. 하지만 독일 사람인 그가 독일어로 사유의 영역을 확장한 것은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모국어에 대해 무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그 누가 돌을 던지랴.

오히려 비판받아야 될 사람은 자기 나라말은 버려둔 채 하이데거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쪽이다. << 문학의 아토포스 >> 를 쓴 진은영은 시인이면서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니, 그 누구보다도 언어를 가지고 노는 직업군인 셈이다. 하지만 이 책은 온통 내 나라말이 아닌 다른 나라말이 넘치고 넘친다. 홍대 두리반'이나 쌍용 투쟁 현장을 바라보며 문학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지만 그닥 와닿지 않는다. 책 구성도 기막히다. 하인리히 하이네 Heinrich Heine의 << 독일. 겨울동화 >> 라는 독일 시 인용으로 첫 페이지'를 시작하더니, 이 책 마지막 페이지는 신형철의 발문이 삽입된 " 나는 여행을 쉴 수가 없으니 인생을 그 찌꺼기까지 다 마시련다(앨프리드 테니슨, < 율리시스 >) " 라는 인용구로 매조지한다.  

노동자가 원하는 것은 < 따순 밥 > 인데 이 책은 정작 < 빵과 버터 > 에 대해 말한다. 그녀의 걱정이 군걱정으로 들리는 이유이다. 이 책이 랑시에르 입문서'라면 비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노동 현장을 걱정하며 소통과 연대를 강조하면서 정작 엉뚱한 소리를 하면 비판받아야 한다. 그녀가 자주 말하는 " 시인적 모럴 " 이라는 표현이 어색한 이유는 무엇일까 ? " 시인적 모럴 " 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다면 대통령적 모럴, 검사적 모럴, 이발사적 모럴 따위도 자연스러워야 한다. 접미사 < -的 > 은 가급적, 국가적, 기술적, 문화적, 비교적, 사교적, 전국적 따위로 활용된다. 그래야 자연스럽다. 진은영의 시인적 모럴'이 어색한 이유이다. 끝까지 읽었으나 그 의중을 끝까지 모르겠다 ■

 


 


 

 

덧대기

 

的 ,  너는 누구냐      http://blog.aladin.co.kr/749915104/7499363




 

  1. 진실의 막간, 니콜라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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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0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르게네프가 인간 유형을 ˝햄릿형 vs 돈키호테형˝으로 나눈 적 있죠. 세르반테스가 20년 정도 먼저 태어나긴 했지만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작가라는 점도 흥미롭지요.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역사적인 인물....
햄릿은 너무나 고심하는 스타일이라 그로 인해 우유부단해지고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면, 돈키호테는 너무도 충동적이라 주변을 살피기보다 행동을 먼저 저지르고 말아 좌절의 좌절을 거듭했죠. 햄릿은 다른 이를, 돈키호테는 자신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성향의 차이일 뿐 모두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투르게네프는 시대가 그랬기 때문인지 돈키호테를 더 지지했습니다.
지금은 어떤 유형의 인간이 요구되고 있는 것일까요.

지적 사대주의 같다며 진은영을 공격하며, 곰곰발님이 하이데거를 서두에 내세우신 건 논의의 방어선을 만드신 걸로 보이는데 나쁘진 않습니다. 헌데 하이데거의 모국어의 사유가 정당하다는 말은 제겐 언어적 내셔널리즘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서양의 여러 제도는 받아들여도 되고, 서양철학은 안된단 말입니까. 어쨌거나 곰곰발님의 전제는 인정하며 논의를 따라갔으나, 수작들, 지적 허영, 어렵게 썼다, 모르겠다식의 잽만 넣으시고 결론을 지으신 건 좀 그러네요. 지난번 <문학의 아토포스>도 이런 식이었어서....논의, 토론, 공격도 상대의 꼼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펀치를 날려야 효과가 있는 거잖습니까.
물론 문단의 그러함은 진보진영의 그러함처럼 지적 유대 강화, 풀뿌리 내부 결속과 그 이상의 분열... 비슷한 점이 있긴 합니다. 역시나 인간답다고 하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16:43   좋아요 0 | URL
세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죽은 날이 같다고 하죠 ? 둘 다 성이 세 씨`이고 말입니다. 제가 보기엔 햄릿은 우유부단한 인물이 아니라 다생각증후군인 것 같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발생하는 병. 뭐, 제가 지은 병명입니다.


진은영에 대한 글 가운데 수작`은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제가 쓰는 수작은 수작 酬酌 이 아니라 수작 秀作 입니다. ( 참고로 진은영 글에 대해 수작`... 이라는 표현은 없네요. 비트겐슈타인의 분석철학에 대한 언급에서 잠시 手作을 언급했습니다. ^^ )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이 책은 단순히 랑시에르 입문서`라면 좋은 책이라 생각하지만, 문학은 정치적어야 한다, 라는 주장을 하기 위한 글이라면 가고자 하는 길이 곁가지로 흘러 방만해졌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또한 시인이라면 지나친 비문은 피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 저는 모럴이 번역불가능한 관념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토포스를 대체할 번역은 없지만 굳이 모럴 따위를 시인적 모럴`이라는 이상한 번역투를 상요하는 것은 이해가 안 갑니다. 번역서가 아니면서 번역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16:29   좋아요 0 | URL
글이 늘어났군요.
하이데거에 대한 언급은 언어적 내셔널리즘이 아닙니다. 자기 나라 말을 두고 자기 나라 말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그런 식이라면 아갈마 님은 이오덕의 주장을 언어적 내셜널리즘이라고 비판해야 하지 않을꺄요 ? 하이데거가 이런 말을 했죠. 그의 유명한 명제입니다. ˝ 언어는 존재의 집 ˝ 이다. 그는 자신의 모국어로 자신의 철학을 완성한 철학가입니다. 하이데거를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어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의 나라 말로 철학하기`보다 중요한 것은 내 나라말로 철학하기가 아닐까요 ? 문학의 아토포스에는 그러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론보다는 발로 현장(현실 참여, 실천.. 이런 표현을 유독 많이 씁니다 ) 을 뛰어나니며 고민하는 저자`가 막상 이론에 갇혀서 현장를 한정하는 것은 아닐까요 ?

AgalmA 2015-05-03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생각이 많아서 우유부단해졌다고요. 다생각증후군 동의합니다.
두 사람의 사망년도, 날짜가 같아요. 1616년 4월 23일... 신기하긴 합니다.

관념어를 모국어로 바꾸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우리에겐 없는 언어와 관념도 많으니까요. 그래서 번역서들이 이렇게 욕을 먹는 거 아니겠습니까ㅎ 추상어를 일반어로 바꾸는 건 지난한 일이죠. 그럼에도 최대한 모국어로 바꾸는 성실함은 필요하다는 것, 저도 동의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15:08   좋아요 1 | URL
네,네네. 전 관념어를 번역해야 한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atopos를 무슨 수로 한국말로 번역할 수 있나요. 호모사케르도 마찬가지고 줄리아크리스테바의 abjection을 비체`라고 옮기는 것도 그닥 확 와 닿지는 않죠. 철학 용어는 최대한 그대로 인용하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철학을 쉽게 설명할 수는 없죠. 진은영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 철학자들은 이제 내 나라말로 철학하기`라는 것에 대해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서양 철학에 단순히 각주를 다는 수준이 아니라 말이죠. 뭐, 어디까지나 그냥 저의 개인적 생각이니 깊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ㅋㅋㅋ.

AgalmA 2015-05-03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확인을 제가 더 정확히 알아봐야하겠지만 언급하신 `독일어를 위대한 민족어`로 강조한 것은 대단히 내셔널리즘이죠. 곰곰발님의 옹호 뉘앙스도 그렇고요. 다른 언어는 그보다 못 하답니까. 우리만 해도 한국어의 우수성을 얼마나 강조합니까. 한글이 트위터 정보 전달력이 훨씬 강한 조성체계이기 때문에 정보를 더많이 넣을 수 있어 한국의 트위터 파급률이 강하다는 주장도 있죠. 저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곰곰발님도 한국어 탐구 많이 하셔서 아시겠지만, 서양의 한정된 `보다` 개념과는 다른 촘촘한 뉘앙스의 한국의 단어들 얼마나 많은가요. 시간상 일일이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저는 제 사유와 존재를 탐구하기 위해 모국어에 관심이 기울이는 것이지 모국어를 사랑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존재의 집˝ 탐구로서 말이죠. 내 나라 말이든, 남의 나라 말이든 인간이라는 존재 탐구를 위해 저는 가리지 않으며 최선을 다해 볼 것이라는 노선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생각도 없습니다. 각자가 정한 지침대로 가는 거겠지만, 여기서 저는 그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순 없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16:41   좋아요 0 | URL
저는 이오덕 주장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내 나라말을 사랑하자는 태도는 지지합니다. 한국인이 한국말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나쁠 것은 없죠. 하이데거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 사람이 자기 언어에 대해 긍지를 가지는 것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을 지적한 겁니다. 독일어를 모르면 철학을 할 자격이 없다는 말은 굉장히 건방지지만 그가 자기 나라 언어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굳이 비판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아갈마 님은 자신의 사유와 존재를 탐구하기 위해 모국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지 모국어를 사랑하기 때문은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아갈마 님은 영어공론화를 주장하는 복거일의 자세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유와 존재를 탐구하기에 다른 나라 언어가 더 효율적이라면 모국어 대신 영어를 선택하실 수 있다는 태도처럼 들립니다. 그렇지 않나요 ? 복거일도 자신의 모국어가 비효율적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니 영어를 받아들이자는 태도를 취한 것이겠지요. 한글은 모국어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랑하는 존재여야 합니다. 그것은 조건이 될 수 없죠. 무조건입니다.

AgalmA 2015-05-03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종다양한 언어의 특성과 가능성을 말했지 효율성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나친 비약은 사양합니다.
하지만 모국어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면, 같은 나라이기 때문에 무조건 동포를 지지하고 사랑해야한다는 민족주의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18:39   좋아요 0 | URL
논리적 비약은 아갈마 님이 하시는 것이지 제가 하는 게 아닙니다. 모국어는 선택 사항이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선택 사항도 아닙니다. 부모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 못난 부모 만났다고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고 바라시나요 ? 선택할 수 없는 것은 결국 좋고 나쁘고를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닙니다. 모국어도 마찬가지죠. 사랑하고 나서 비판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게 전제가 되어야죠. 미워하고 나서 비판하는 것은 편견이자 편애입니다. 모국어에 대한 사랑을 패거리 문화 따위로 폄하하시려는 겁니까 ? 내 나라 내말을 무조건 사랑하고 싶다는 서정이 왜 삐딱한 감정입니까 ?

AgalmA 2015-05-03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그간의 가족주의 비판이 사랑의 관점이셨습니까. 저는 옳고 그름의 선, 통념의 잘못된 오류에 대한 지적으로 봐 왔습니다. 곰곰발님도 그런 관점에서 말씀하시는 걸로 보였구요. 지금 말씀은 결정론자나 운명론선에서 말씀하시니 아주 판이하군요. 지금껏 제가 다 잘못 읽은 걸로 감수하겠습니다.
제가 언제 이오덕 선생 잘못했다 했습니까? 언어를 바르게 쓰는 건 옳은 일이죠. 바른 인식과 타인과의 소통에서도 중요한 점이기도 하기 때문에요.
패거리문화 같은 용어들을 가져와 제게 붙이시는 걸 비약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논점에서만 말씀해주시죠. 제가 위에 분명히 타인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라고 분명 언급했습니다. 그걸 읽지 않으시고 본인 맘에 안드는 점만 계속 물고 늘어지는 건 논쟁만 하자는 걸로밖에 안 보이네요.
제 마지막 말의 답변을 정확히 부탁드립니다. 모국어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는, 같은 나라 동포를 사랑해야 한다는 민족주의와 어떻게 다릅니까?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18:58   좋아요 0 | URL
좀 어이가 없네요. 그러면 모국어를 미워할 수도 있는 상황이 가능합니까 ? 묻고 싶네요. 미우나 고우나 라는 말이 있죠. 언어는 바로 미우나 고우나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그것은 어떤 기준에 의해 평가받을 수 없는 영역입니다. 제가 누누이 말했듯이 언어는 절대 순위를 매길 수 없습니다. 그 나라 사람은 그 나라 말이 최적인 상태로 태어났고, 그 말을 고마워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모국어 사랑이 과연 편협한 가족주의 중 하나일까요 ? 내 새끼가 최고라는 가족주의와 모어에 대한 편애는 다른 것입니다. 혈맹은 이기`에 속하겠지만 모어에 대한 사랑은 운명에 대한 것이 아닐까요 ? 모국어는 무조건 사랑하고 나서 제2 외국어를 사랑하는 것과 제 2 외국어를 사랑한나머지 모국어를 폄하지는 마세요.

AgalmA 2015-05-03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국어 폄하한 적 없구요.
정확한 답변이라기보다 님의 말씀은 자신의 주장 옹호로만 보이는군요. 아마 님께도 제가 그렇게 보일 거구요.
알겠습니다. 저는 여기서 물러 나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20:08   좋아요 0 | URL



​내가 내 주장에 대해 옹호만 하는 인간이라면, 아갈마 님 또한 자기 주장에 대한 옹호하기 위해서 이런 글을 남기신 것은 아니겠습니까 ?

아갈마, 님. 논쟁이라는 건 말이죠.
사전적 의미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각각 자기 주장을 말이나 글로 논하여 다툰다는 의미입니다.

즉, 자기 주장에 대한 옹호가 바로 논쟁입니다.

그걸 가지고 내 주장을 ˝ 자기 주장에 대한 옹호 ˝ 라며 쿨한 척 슬며서 물러나는 건 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아닙니까 ?


지금까지 아갈마 님은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이 지루한 댓글을 남기신 건 아닙니까.
이제 와서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댓글을 다는 행위를

세련되지 못한 논증이라는 논리가 이상한 겁니다. 자기 주장에 대한 고집은 토론과 논쟁의 기본입니다. 지금까지 아갈마 님이 진행한 댓글 또한 자신이 주장한 것에 대한 고집이라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모국어를 무조건 사랑해야 된다는 것과 한국어가 세계 최고라며 국뽕에 가까운 칭찬을 하는 정치가의 한글 사랑을 혼동하지는 마십시오.

후자는 비판받아야 할 것이지만 전자가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무조건적 박애와 정치적 실익`을 계산에 둔 선택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AgalmA 2015-05-03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대한 정중하려고 했기에, 서로의 주장이라고 말하던 겁니다. 분명 하이데거와 곰곰발님의 발언은 편파와 배척이 깔린 내셔널리즘입니다. 자꾸 가르려 하시지만, 님의 무조건과 국뽕은 다를 게 없습니다. 모국어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주장으로 어쨌거나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으시겠지요. 그 지지가 있다고 해서 비판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건 오만입니다. 자신이 가족주의인 줄 모르는 사람들만큼이나 내셔널리즘이란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계시니 당연하시겠지만요. 가족주의는 편협하고 모국어 사랑은 당연하다고요? 그야말로 사람 따로 말 따로 입니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건 인간과 언어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거 서로 인정하는 바 아닙니까. 단순히 가족주의 용어로 만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겪고 생각하는 가족도, 언어도 밀접하게 얽혀있기에 세상이 이토록 어려운 지경인데, 그렇게 쉽게 가르시다니...자신이 상당히 괴리적이란 생각을 못하시다니 유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3 20:29   좋아요 0 | URL
아갈마 님은 뭔가 굉장한 착각을 하고 계신 듯합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한글`이라는 것 자체만 놓고 보자는 겁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라는 속담은 한글 체계가 엉망이기에 나온 겁니까 ?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나누려는 남성 기득권 사회가 한글을 이용한 것일 뿐입니다.
여의사`라는 단어는 있는데 남의사는 없다는 사실이 한글의 편애인가요 ?
아니죠. 남성 기득권이 만들어놓은 구조죠. 한글은 죄 없습니다. 인간은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인 존재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다만 태어나면서부터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으로 훈련을 받죠. 언어의 잰더 규정에 의해서 말입니다. 한글 사랑과 편협한 가족주의 혹은 패거리 문화는 다른 겁니다.

< 무조건 > 과 < 국뽕 > 은 다르지 않다고요 ? 파블로프의 개처럼 무조건 반응하는 것은 국뽕일까요 ?

사람이 물에 빠졌다면 무조건 소리를 지르거나 물에 뛰어들어서 구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 태도는 국뽕입니까 조건 없는 반응을 국뽕이라고 하면 안 되죠.



+

최대한 정중하려고 하신다는데 최대한 정중한 필요는 없습니다.
최대한 정중한 태도를 보일 곳은 국제 외교 자리`겠죠. 논쟁은
최소한의 예의만 갖추면 됩니다.
최대한 예의는 청와대 초청으로 박근혜 앞에 있을 때 보여주십시오.
저 같은 잡놈에게는 최소한의 예의만 갖추시면 됩니다.

AgalmA 2015-05-03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성/남성성의 사회성까지 끌어와 논의를 넓혀서 논점을 흐리지 마십시오. 그럼 저는 인식론을 가져와야 하나요. 처음부터 저는 한글이 잘못됐다, 잘못 쓰이고 있다 라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저는 문제적인 부분, 하이데거와 님의 자기나라 말 사랑의 무조건성에 대한 지적을 했습니다.
님이 말하는 무조건적인 나라어 사랑은 나라사랑/가족사랑과 대상만 다르지 근본적 애착은 같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애착의 고리와 패착의 우려를 표했고, 님은 그건 간과한 채 그 사랑의 타당함만 주장하시니 이렇게 애쓰고 있는 거 아닙니까.
단순히 님의 개인적 나라어 사랑 지적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보실 것이기에 각자 타당함을 점검해보시라는 뜻도 있습니다. 대개가 나라어 사랑이 뭐 어때서겠죠.
어려서 이민간 사람들, 나라를 바꾼 사람들, 국어를 두 개 이상써야 하는 곳, 참 복잡한 문제가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국한하십니까.
결론 안날 거 뻔한데 뭐하러 시작을 했나 후회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