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 들개를 만나다
내가 이사 온 동네 건너편은 방대한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 뉴타운 리빌딩 " 이란 근사한 작명 앞에 무릎 탁, 치고 아, 한다. 한국 사회는 요리사는 쉐프로 바뀌고 물병은 보틀'로 리빌딩되는 알파벳 사대주의'가 대세를 이루었다. 지랄이 풍년이다. 나랏말쌈이 듕국과 달라 스무 네 글자를 맹가놓으신 세종대왕이 보셨다면 무릎 탁, 치고 우, 했을 것이다. < 저개발의 철거 작업 > 을 뉴타운과 리빌딩'이라는 긍정적 단어로 치환하려는 도시 계획자의 잔머리에 경배를 ! 철거 지역은 광범위하다. 서너 마을이 동시에 철거되고 동시에 지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다 보니 철거에 의해 쫓겨난, 집 없는 사람들은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전세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요, 전셋집이 나온다 한들 전세 가격과 매매가'가 별반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일 억짜리 집의 전세는 팔천만 원이다.
밤에 동네를 산책하다가 건너편 마을을 보면 공동묘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살, 지 않는다. 그 황무지가 된 동네 뒤편에 산'이 있다. 이사를 오고 나서부터 생긴 취미는 공동묘지로 변한 건너 마을을 살피는 일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주택 안으로 들어선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 그래서 봉달 씨와 함께 한다. 김칫국에 쌀밥 먹여 키운 건장한 늑대의 후손. 똥을 쌌다 하면 든든한 고구마 6개는 생산해 내는 신축성 강한 라텍스 고무 항문과 쏴아아아아, 박연폭포처럼 쏟아내는 방광의 수압. 그리고 흥분하면 발기하는 십팔 센티미터 하드 바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봉달 씨는 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줄 것이란 강한 믿음을 내게 주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 타인의 집 > 을 살피기 시작했다. 버려진 화분에는 바람 속에서 떠돌다가 정착한 이름 모를 식물이 자랐고, 집에 버리고 간 살림살이가 널브러져 있었다.
봉달 씨는 열심히 냄새를 맡았다. 버려진 물건을 보는 것은 그닥 유쾌할 수 없는 노릇. 한때는 쓸모 있던 것이 이제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 유기된 모습은 유쾌한 일이 아니니까. 그 물건들은 다시는 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며 고독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동네 탐험이 끝나면 동네 뒷산을 올랐다. 산길 여행은 봉달 씨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다. 그는 땅바닥에 코를 묻고는 지나간 것들의 흔적을 감지했다.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다 내려오는 길목이었다. 컹 ! 개 짖는 소리.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서 내려다보니 개 세 마리가 산기슭 아래에서 이쪽을 바라보며 짖고 있었다. 진돗개 2마리와 혈통을 알 수 없는 개 1마리로 이루어진 들개 무리'였다. 아차, 싶었다. 산을 내려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길을 통과해야 하는데 들개 세 마리가 길목을 장악한 것이다.
봉달 씨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내가 말했다. " 시바, 쫄지 마 ! 형아가 접수한다. "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나무 막대기와 씨알 굵은 돌맹이를 주웠다. 돌맹이를 줍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컹, 컹, 컹 !!! 기선 제압은 들개 쪽에서 먼저 시작했다. 기세를 빼앗기면 싸움은 뻔한 것. 나도 호기롭게 외쳤다. " 야, 시방새들아 ! 길을 비켜라. 봉달 씨로 말할 것 같으면 날마다 쌀밥에 고기를 먹어서 힘이 장사일 뿐 아니라 날마다 고구마 6개를 생산해 내는 정력의 소유자이시다. 더군다나 방광은 어찌나 크신지 사막에 고립되면 방광에 고인 오줌으로 한 달은 버틸 수 있는 불알을 달고 계시니 오줌 찔끔찔끔 싸며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너희들이 상대할 것이 못된다. 알것냐 ? 나 또한 별명이 도깨비풀인 만큼 물면 안 놓는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길을 비키시지.... " 컹 !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이 짧게 짖었다.
번역하면 " 조까라 ! " 다. 우여곡절 끝에 길목을 벗어나긴 했으나 오줌을 쌀 뻔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들개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따라왔다. 뛰는 순간 들개들이 공격할 것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기에 뛰지도 못하고 느릿느릿 걸으며 살필 수밖에 없었으니 등골이 오싹할 수밖에. 나는 봉달 씨에게 낮게 소리쳤다. "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게 되면 목줄을 풀어줄 터이니..... 너는 일단..... 음, 그게.... 그러니까 일단 싸워라. 나는 뛰어가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테니까. " 불상사는 없었지만 불상사가 발생하게 된다면, 나란 놈은 줄행랑을 치고도 남을 것 같았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무서웠다. 동네를 벗어나 사람 사는 동네 초입에 진입하자 긴장했던 다리가 풀렸다. 집에 와서 곰곰 생각했다. 들개는 그 동네 사람들이 이사를 가면서 버리고 간 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몇몇이 모여 여전히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한때는 쓸모 있던 녀석들이 어느 순간 쓸모없는 것이 되어 아무도 없는 동네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으나 무서움이 먼저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에는 배낭에 개 사료를 듬뿍 가져가야 할 것 같다.
덧대기
다시 생각하니 들개 무리가 아니란 생각도 든다. 들개라면 몰골이 더럽고 비쩍 말라야 하나 내가 목격한 들개들은 하나같이 때깔이 곱고 통통했다. 뭐야, 괜히 쫄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