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올바른 젠더의식을 위해
이선옥 지음, 김용민.황현희 도움 / 필로소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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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선옥은 이 책을 통해 분노를 연료 삼아 달려온 한국 페미니즘에 강력한 브레이크 건다. 진정성이라는 입막음 뒤에 묻힌 진실의 중요성을 환기함과 동시에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이 불러온 사회적 병리현상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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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도쿄대 교양학부 생각하는 힘의 교실 - 흔한 머리에서 모두가 반하는 기획을 만드는 생각의 기술
미야자와 마사노리 지음, 최말숙 옮김 / 북클라우드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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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의 인기 강연을 글로 옮긴 책인데 짧아서 그런지 심화하기가 어렵다. 실제 강연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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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도쿄대 교양학부 생각하는 힘의 교실 - 흔한 머리에서 모두가 반하는 기획을 만드는 생각의 기술
미야자와 마사노리 지음, 최말숙 옮김 / 북클라우드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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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감하기

사물을 객관적으로 파악한다. 되도록 시야를 넓히고 잠시 멈추어 서서 사물을 둘러싼 상황을 조감한다.


분류하기

어지럽게 섞여 있는 사물을 분류하고 정리함으로써 단순화해 이해를 깊게 한다.


파고들기

사물의 배경에 있는 것이나 근원적인 부분을 깊이 생각해 진실을 추구한다.


혼합하기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끼리 조합하거나 과거의 기억이나 새로운 정보 등과 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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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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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본 영화’가 ‘나 홀로 극장에’라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영화와 나만의 대면, 나만의 느낌, 나만의 해석이다. 나만의 해석. 여기에 방점이 찍힌다. 나의 세계에 영화가 들어온 것이다. 지구상 수많은 사람들 중에 같은 몸은 없다. 그러므로 자기 몸(뇌)에 자극을 준 영화에 대한 해석은 모두 다를 것이다. 한 작품을 천만 명이 본다면, 그 영화는 천만 개의 영화가 ‘되어야 한다’.


다큐멘터리를 포함해서 영화와 현실의 경계는 없다. 건물 안에서는 건물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재현(렌즈)을 통해서만 현실을 볼 수 있다. 렌즈는 다양하기 때문에 각자의 렌즈에 따라 당파적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리고 영화는 역사의, 인생의 한 부분을 잡아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영역은 북한이나 섹슈얼리티가 아니라 가족 담론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인 제도, 가장 부패한 제도, 가장 비인간적인 제도는 가족이다.


‘모든’ 사랑은 사랑하는 자의 결핍이나 욕망에 대한 자기 판단, 회계(會計, 대차대조표), 자기 확신의 활동이다.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절대로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랑받음은 내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상대방의 자기 혼란이다. 사랑은 내가 타인의 상태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달려 있다. 본인이 매력적이고 잘나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팜파탈은 남성이 저지르는 폭력과 파괴가 결코 남성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남성 판타지의 산물이다. 남성의 성욕은 무한대라서 어디로 ‘분출’될지 모르지만(성의 피해자로서 여성), 성욕 폭발의 버튼을 누른 사람은 남자 자신이 아니라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성의 유혹자로서 여성)라는 것이다. 이때 남성은 오히려, 모든 성폭력 가해자들이 합창하듯이, 유혹자 여성의 ‘피해자’가 된다. 팜파탈은 남성의 욕망을 맘껏 채워주면서도 남성들을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레즈비언이 되는 방식은 남성의 타자, 대리인으로서이다. 여성 대부분은 몸만 ‘여자’지 남자의 사고방식을 머리에 이고 지고 남자의 비위 맞추기를 일상 노동으로 삼아 산다. 생각해보라. 여자들이 ‘진짜’ 이성애자라면, 남자의 벗은 몸을 보고 쾌락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대부분의 이성애자 여자들에게 남자의 벗은 몸은 공포요, 폭력이다. 성기 노출이 성폭력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여성이 그것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불쾌해하는지 그들이 정확히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이성애자이면서도 남자의 벗은 몸이 아니라 (남성의 시선으로) 여자의 벗은 몸을 보고 성욕을 느낀다. 우리는 남자의 안경을 너무 오래 쓴 탓에 아예 남자의 눈을 가지게 되었다.


사랑은 여자의 일이다. 사랑(관계)을 유지하기 위한 감정 노동, 육체 노동, 그 모든 비용은 여자의 몫이다. 여성이 그 일을 그만두는 순간 이기적인 여자라는 비난과 함께 대부분의 연애는 끝난다. 성별 사회에서 여자에게 사랑은 사회적 관계, 생존, 돈, 자아 실현, 성취 같은 인생의 모든 것이기 쉽지만, 남자에게 사랑은 언제나 다시 올 버스, 여러 버스 중 한 대일 뿐이다.


2010년대 여성의 지위는 2010년대 남성의 지위와 비교되지 않고 조선 시대 여성과 비교되며, 중산층 여성의 지위는 중산층 남성과 비교되지 않고 노동 계급 남성과 비교된다. 여성은 동시대 남성이 소유한 동산(動産)에 불과하기 때문에, 동일한 계급의 남성들과는 같은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영원한 사랑 — 일부일처제, 배타적인 낭만적 사랑 — 을 믿고 실천하는 자의 고통은 상대가 자신을 변화시킨 그 순간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순간을 지속시키기 위해,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고통은 필연적이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의 종말이다. 사랑이 끝나서 자발적으로는 그 감정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강력한 제도의 힘을 빌리는 거다. 세상에 결혼/가족 제도보다 강력한 제도는 없으며 그 제도를 돌파하는 사람도 드물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보통’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성은, 세상 물정에 무지한 순진무구한 여성이다. 적당히 지적이지만 남성의 언어에 도전하지 않고, 거칠고 험악한 노동 시장에 진출할 필요나 의지가 없으며, 남자에게 부담 주지 않을 만큼만 의존적인, 깨끗한 손톱과 하얀 피부를 가진 여자.


영화의 내용은 감독의 ‘연출 의도’가 아니라 관객의 세계관에 달려 있다. 누구나 자기의 삶만큼 보는 것이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무능함과 먼저 싸워야 한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활자’는 이 ‘영상’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상처받았음을 강조하는 대신에 저들의 폭력을 폭로해야 한다. ‘우리’의 상처가 크고 작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슈가 되면, 우리는 지배 집단과의 싸움보다 누가 더 큰 상처를 받았는가를 두고 ‘경쟁’하게 된다.


피해자는 죄가 없다는 이 간단한 윤리, 아니 상식이 우리 사회에는 없다.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에게 흔히 사회가 보이는 반응은 “당신은 그때 어떻게 했습니까?(평소 네가 어떻게 행동했길래, 그런 일에 휘말리다니, 그 사람이랑 어떤 관계인데……)”이다.


변해야만 정상일까. 그렇게 당했는데도 같은 방식을 되풀이한다면, 그것은 착한 것이 아니라 멍청하다고 하는 것이 정녕 맞는 논리인가? 나쁜 사람이 변해야지, 왜 착한 사람이 변해야 하나?


마츠코는 나의 혼란을 정리해주었다. 그녀는 나쁜 세상과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영향받지 않고, 언제나 자기 본모습대로 살았다. 그 완강한 자기 노선. 과거 피해 경험과의 단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마츠코는 세상에 당한 것이 아니다. 세상과 싸웠다. 자기 방식이 옳음을 믿었다. 진정한 강인함이다.


서구는 여성 문제 외에도 정치・범죄・농업・경제・문화 등 다양한 모습이 보여지기 때문에 여성 폭력이 사회 문제의 일부분으로 인식되지만 ‘후진국’의 여성 현실은 그 사회의 미개한 본질로 간주된다.


일상적으로 성폭력 위협에 노출된 여성들에게, 전쟁과 평화의 구분은 가해 남성이 누구인가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의 식민 경험이 다르고 한국인 중에서도 부역자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조금이라도 묘사하면 친일이 되는 사회다. ‘블랙’ 리스트보다 한국 사회의 이러한 관객성이 예술가에게는 더 큰 고통일지 모른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계급은 젠더화되고, 젠더는 계급화된다. 계급과 섹스는 맞물리는데, 성별에 따라 정확히 반비례한다. 권력을 가진 남자는 여러 여자와 섹스할 수 있지만, 권력이 없는 남자는 한 명도 차지하지 못해 한 여자를 여러 남자와 공유한다. 반대로, 여성은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한 남자와만 섹스하거나 무성애자고, ‘밑바닥 인생’일수록 여러 남자를 상대하게 된다.


‘남자 됨’은 머뭇거림이나 주저함, 겁먹음이 ‘여성의 태도’라는 강력한 안티테제가 있을 때만 성립할 수 있다. 모든 의미, 정체성은 타자에 대한 부정으로 이루어진다. 남자들의 동성애 혐오는 남성 안의 여성적인 것에 대한 혐오이며, 여성 혐오는 여성 안의 여성적인 것에 대한 혐오다.


우리는 흔히 ‘차이가 차별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이 차이를 만든다. 차이가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이 먼저 온다. 불평등이 있기 때문에 차이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권력이, 인간들 사이에 무엇이 의미 있는 차이인지 혹은 의미 없는 차이인지를 규정하는 것이다. 흑인 노예가 필요하기 전까지는 인간의 피부색이 문제되지 않았다. 인간을 양성으로 구분하는 것은 성차별 사회를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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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그녀를 모르는 그에게 - 세계 최고의 관계 연구소 러브랩이 전하는 남녀관계의 비밀
존 가트맨 외 지음, 정미나 옮김 / 해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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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언부언이 좀 잦은 편이나 전하는 메시지 자체는 새겨들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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