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은  브루스

스를 무시하면 안 된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80102   ㅣ  식스센스, 그 어디에도 없는 남자


                                     죽어서 구천을 떠도는 귀신'은 사연이 많은 혼령이다. 억울한 일이 있기에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것이다. 귀신이 대부분 여성인 것은 가부장 사회'에서의 여성 잔혹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귀신은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다. 내 말을 들어달라고, 내 억울한 사연을 들어 달라고, 억울해서 이대로는 못 떠나겠다고 말이다. 만약에 당신 앞에 귀신이 나타났을 때 (무서워서) 눈을 감으면 죽을 것이고, (무섭지만) 귀를 열면 살 것이다. 내 말 무시하지 마시라. 정부의 메르스 대처법보다는 실용적이니까. " 낙타를 만지지 마세요. " 귀신의 출몰에 의해 죽은 수많은 사또는 대부분 남성연대 소속일 가능성이 높다. 혹은 일베 유저이거나 ! 

반면 귀신이 전하는 사연에 귀를 기울인 사또는 페미니스트'일 가능성이 높다. 혹은 페미니스트를 지지하거나 !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은 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유령은 억압된 자'다. 프로이트는 신경증을 분석하면서 억압된 것의 회귀(return of the repressed)라는 멋진 표현을 썼다.  신경증은 << 억압 >> 의 결과'이다. " 억압된 것 " 은 사라지지 않고 무의식 내부에 축적된다. 이런 과정은 의식 밖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시간이 흐른 후에 억압에 따른 증후가 발생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두고 " 억압된 것의 회귀 " 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그렇다면 귀신이 출몰하는 현상이야말로 억압된 것의 회귀'라고 할 수 있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프로이트'는 뛰어난 글쟁이'다.

좋은 문체 수집가인, 필경사 신경숙 달인이 프로이트 문장을 표절하지 않은 것은 진짜 보석을 보는 안목이 부족한 탓이다. 그녀가 소설 나부랭이 따위를 필사하지 않고 프로이트 문체를 흉내 냈다면 지금과 같은 추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곰곰 생각하면 며칠 동안 한국 사회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했던 추문도 억압된 것의 회귀'로 볼 수 있다. 다들 아시다시피 신경숙 표절 의혹 제기'는 이미 15년 전에 벌어진 논란이었다. 신경숙은 이 의혹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대응했고, 문학 권력은 보고도 못 본 척 생깠다. " 피식, 네까짓 게 째려보면 나보고 어쩌라고 ! " 언론도 동참했다. 말 그대로 문학 동네에서 주차 문제로 벌어진 사소한 말다툼 따위로 치부했다. 여기에는 각자의 잇속이 자리잡고 있었다.

주변인은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에게 " 가만히 있으라 ! " 고 협박하고는 했다. 여기저기서 조리돌림이 시작되었고, 의혹'은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 왜소한 죽음에 대해 귀를 기울인 문학 동네 사람들은 없었다. 의혹은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속삭였다. " I'll be back ! "  그 후......  15년이 지난 2015년. 죽은 줄 알았던, 그래서 영원한 침묵이 계속되리라는 의혹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의혹이 귀신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 옛날, 우리가 알던 힘 없는 의혹이 아니었다. 의혹은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되어서 신경숙 앞에 나타나 맞짱을 뜬 것이다. 우아한 하이킥과 힘 있는 무쇠 다리, 화려한 암바 기술과 헤드롹. 무엇보다도 째려보기 신공은 압권이었다. 아, 저 눈은 그 옛날 메두사......    

그런 점에서 이응준은 귀신과 살아 있는 권력을 이어주는 무당인 셈이다. 그는,  죄 없다. 몸을 잠시 귀신에게 빌려주었을 뿐. 만약에 15년 전에 의혹이 제기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개선 방안을 모색했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문단은 신경숙을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대형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문학에 " 한류 " 라는 딱지를 붙이며 특허 등록을 마쳤지만 결과는 참담한 결실로 돌아왔다. 신경숙 사태는 된 놈만 밀어준다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편애'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설령, 신경숙이 승승장구하여 노벨문학상을 탄다고 해서 수족관 속 개불처럼 쪼그라든 한국 문학이 부활할 가능성은 제로'다. 서효인 시인이 지적한 것처럼  " 최고의 작가를 만들어 한국 문학의 대표적 상징을 만드는 것보다는 1만 명의 독자를 가진 50명'의 작가가 있는 사회가 훨씬 건강하다 "  

대만의 영화 산업'을 보면 답은 보인다. 대만은 허우 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차이 밍량 같은 대표적 상징(아시아 영화를 떠나서 세계 영화계 사람들이 이들에게 보내는 존경을 보라) 을 만들었지만, 대만 영화는 철저하게 몰락했다. 대만 사람은 대만 영화를 보지 않았고, 차이 밍량은 세계 영화제를 떠돌며 자신이 만든 영화를 상영하는 것에 대한 슬픔을 말한 적 있다. 차이 밍량 영화는 대만에서 상영되지 않는다. 서효인 시인 말대로 1만 명의 독자를 가진 50명의 작가'가 절실한 이유이다. 한국 문학이 한국인에게 외면하는 데에는 끼리끼리 놀고 있는 집단에 대한 혐오가 작용했다. 젊은 작가는 문학 평론가를 위해 글을 쓰고, 문학평론가는 출판 자본을 위해 글을 쓴다. 그리고 출판 자본 권력은 그들을 위해 문예지와 문학상이라는 일자리를 마련한다.

그 어디에도 독자는 없다. << 공포의 변증법 >> 이라는 탁월한 평론집을 쓴 프랑코 모레티는 문학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문학 평론가가 아니라 독자라고 말했다. 이 단순한 사실을 문학 동네 사람만 모른다. 의혹은 15년 전 약속을 지켰다. 억압받는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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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중배 기자 = "내가 나에 대한 비판의 글을 많이 읽지 않았고 못 읽어요. (비판이) 아주 많아요. 어떻게 읽겠어요. 그걸 읽고 감당할 자신이 없고, 기분만 나빠지고, 어떤 글은 뼛속까지 속이 상하는데요."

24일 문단에 따르면 소설가 신경숙의 이 같은 해명과 달리 그가 비판과 비판적인 비평에 상당히 예민하고 억압적으로 반응해왔다는 취지의 증언이 나왔다.

평론가 권성우는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2000년 무렵 선배 평론가와 모 석간지의 대담 서평을 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신경숙의 '바이올렛'의 미덕과 한계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는데 나중에 대담서평을 담당하던 문화부 기자로부터 신경숙이 신문 문화부장을 통해 항의를 했다고 들었다. (중략) 글을 통해 반론을 펼치면 되지, 문화부장이라는 문화권력을 통해 항의를 한다는게 그때나 지금이나 이해가 안된다." 

그에 따르면 한 문인은 '현대문학' 내 기고의 장인 '죽비소리'에 신 씨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익명으로 비판한 뒤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신 씨가 편집위원을 비롯한 출판사 고위층에 "왜 이런 비판이 실리느냐, 실제 필자가 누구냐"고 항의했다는 것.

권 씨는 문학과지성사가 발간하는 '문학과사회'의 경우 신씨가 직접 사장인 원로 비평가에게 자신에 대한 비판글이 게재된 것을 항의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며, "대담비평은 직접 겪었고, 다른 내용은 전언이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사실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외딴방'은 정말 감동적이며 뛰어난 소설이며 그의 모든 작품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며 그러나 "그 무렵부터 신경숙에 대한 기대를 조용히 거두었다. 어떤 고리타분한 도덕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글쓰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윤리를 얘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이명원 경희대 교수는 23일 한국작가회의-문화연대 주최 토론회에서 신 씨가 자신을 비판한 박철화 평론가에 대한 반박의 내용을 비판하면서 "표절에 대한 작가적 윤리나 책임 문제에 대해 자의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반대로 문제 제기자를 고압적으로 타매하는 양상만 눈에 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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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phor 2015-06-24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당하십니다.
회초리가 필요합니다.
자신을 향해 내리치는 자신에 깃들어 있는 귀신의 회초리가 ......
아니면 독자들이 나서서 도리깨질을 해야 눈을 뜰것이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6-25 05:57   좋아요 0 | URL
우국 표절 문장 보면 그닥 훔치고 싶은 문장도 아니던데
한 작가가 그 이미지를 자신의 언어로 만들 수 있는
능력조차 없는 걸까요 ?
아니면 시간이 없어서 급히 맘무리했을까요..

stella.K 2015-06-24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경숙은 한동안 자숙하겠다고 그러고
창비는 신간을 출고를 하지 않겠다고 그러고
그러면 사건이 일단락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검찰에 고발까지 당했다고 하는데 그러기엔 너무 솜방망이 아닌가요?
그렇다고 교도소에 보내는 것도 그렇고. 애매해요.
이래서 작가는 명예직인가 봅니다.

프랑코 모레티가 아주 쓸모있는 말을 했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25 05:56   좋아요 0 | URL
모레티 워딩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납니다만... 뭐, 저런 비스무리한 말이었습니다.
신경숙 그냥 문학 인생 끝난 거죠.

권력의 단맛을 너무 좋아하셨어요...

samadhi(眞我) 2015-06-24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곪을대로 곪아서 터지면 새살이 돋게 마련이니, 이번 일을 기회로 피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네요. 고질적인 출판업계의 병폐, 무반성에는 기대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작가든 평론가든-이 자각하면 더 좋을테구요. 어느 곳에나 자본에 종속된 가엾은 우리네 중생들이네요. 영혼이나 양심 같은 것을 가볍게 팔아넘기는 애처로운 일상.

곰곰생각하는발 2015-06-25 05:59   좋아요 0 | URL
헌 부대 꿰매서 담지 말고..
그냥 헌 부대 버리고 새 부대에 새것을 담았ㅇ면 합니다.
버려야죠. 고치면 안 됩니다. 새것 사는 게 낫습니다.

개인적으로 뭐 바뀌겠습니까 ? 이 시스템 그대로 가리라 생각됩니다.
문예지를 끼고 도는 권력 삼각형(문학평론가가 출판사 직원이 되는... 연예기획사 소속으로 뛰는.. )
이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2015-06-25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25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25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25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다맨 2015-06-25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경숙이 자신에 대한 평을 나쁘게 썼다고 해서 신문사 부장이나, 문예지 편집위원들한테 가서 거세게 항의했다는 것은 (곰곰발님께서 인용하신 기사가 나오기 전에) 저도 오래전에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심지어 어떤 분(김정란이었던 듯한데)은 인쇄 직전까지 갔다가 평론집 출판이 이유도 없이 취소되었다는 `카더라`도 들었던 적이 있구요... 여러 모로 씁쓸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6-25 13:57   좋아요 0 | URL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권력의 쭈쭈바를 너무 많이 드신 것 아닌가 하는.....
확실히 사자가 없으면 늑대가 왕이 되고, 늑대가 없으면 토끼가 왕이 된다는 진실은 사실인가 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6-25 14:04   좋아요 0 | URL
작가에서 소설에 대한 비평은 당연한 것이고 운명인데 칭찬만 받고 쓴 비판은 어떻게 해서든 문제 제기를 하는 자세에 경악했습니다. 대부분 작가는 그런 상황에 처하면 직접 반론글을 제기하고는 하는데... 놀랍군요. 장정일이 존경스럽네요. 적어도 그는 스스로 반론을 제기했으니 말입니다. 비겁하고 데스크 윗대가리 찾지 않고 말이죠...

5DOKU 2015-06-27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고의 작가를 만들어 한국 문학의 대표적 상징을 만드는 것보다는 1만 명의 독자를 가진 50명`의 작가가 있는 사회가 훨씬 건강하다˝

구구절절 공감합니다...ㅠ_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06-27 08:03   좋아요 0 | URL
마찬가지로 삼성을 한국 기업의 대표적 상징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500개의 우량 중소 기업을 가진 구조가 더 튼튼한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