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에 대한 명상
의자와 침대 광고의 공통점은 “ 편안함을 강조 ” 한다는 점이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의자는 항상 인체공학적 설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 의자 > 를 제작할 때 반드시 “ 편안함 ”을 염두에 두고 의자를 만들지는 않는다. 패스트푸드 식당 의자’는 손님이 의자에 앉을 때 일부러“ 적당히 불편 ” 하도록 설계한다. " 허리가 뻐~ 근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 " 손님이 패스트푸드 식당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평균 10분 내외'라는 데에서 불편한 의자’가 한몫했다. 롯데리아 의자를 생각해 보면 쉽게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등받이 없는 딱딱한 의자‘는 빨리 먹고 빨리 나가라는 은유. 미국 맥도날드 식당에서 오래 머문다는 이유로 한인'을 내쫒았던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빠르다.
패스트푸드 식당에 걸린 가훈은 “ f. a. s. t ” 다. 그러니까 맥도날드 한인 추방 사건은 “ 패스트 ” 한 곳에서 “ 슬로우 ” 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무거운 엉덩이는 허물'이다(반면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무거운 엉덩이는 미덕이 되고 가벼운 발은 악덕이 된다. 고객이 쇼핑몰에 오래 머무를 수록 매출은 오른다). 누군가는 이 사건을 두고 장과 김치(발효 음식 : slow food)로 대표되는 한식 문화와 패스트푸드인 햄버거 문화가 충돌한 사건이라 말하지만, 한식 문화가 slow food 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오랜 세월 끝에 깊은 맛을 내는 장 문화가 슬로 푸드 요리'라면 어머니가 과연 짜장면은 싫다고 하셨어, 라고 말하셨을까 ? 짜장면도 장 요리에 해당하니 슬로 푸드인 셈이다. 그렇지 않은가 ?
직장인으로 붐비는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주문하면 5분 안에 세팅되고 10분이면 밥을 해치우는 환경에서 " 슬로우 " 라는 말은 뭔가 어색하다. 한 발 물러나서, 한식이 slow food 라고 가정해도 “ slow food ”를 “ fast food ” 처럼 먹으니 결과는 << slow food의 fast化 >> 인 셈이다. 문학 권력에 의해 문학이 소비되는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소설은 대표적인 슬로 푸드’이지만 그것을 소비하는 형태는 패스트푸드化되었다. 일단, 출판사와 결탁한 문학평론가(출판사 소속 문예지 편집위원, 기획위원1)는 상품 가치가 있는 작가를 집중 관리한다. 그들은 통속소설을 고급소설로 둔갑시키기 위해 온갖 칭찬 릴레이‘가 이어진다. 배울 만큼 배웠으니 " 말빨 " 로 대중을 현혹하기란 누워서 떡 먹기'가 아닐까.
비유를 들자면 패스트푸드처럼 만들어지는 김치찌개를 슬로 푸드로 소개하며 건강 요리'로 선전하는 꼴이다. 신경숙 소설은 바로 이 과정을 거친다. 상품이 출시되면 출판사 산하 문학평론가들의 집중 관리가 시작된다. 천박하게 말해서 영혼 없는 칭찬이요, 마사지 작업'이다. 마사지 과정을 거치면 평범한 대중소설도 걸작이 된다. 이것을 문학 전문 기자들이 그대로 옮긴다. 그 결과 신경숙 소설은 숙성 과정 없이 신속하게 베스트셀러 진열대에 진입하게 된다. 대표적 슬로 푸드인 문학이 패스트化되어 소비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흥행성과 대중성을 갖춘 소설로 둔갑한 작품이 김애란의 첫 장편 << 두근두근내인생 >> 이다. 이 소설은 실패한 소설로 볼 수 있다.
대중음악 가수가 4분짜리 댄스곡만 부르다가 4시간짜리 춘향가 완창에 도전한 느낌이라고 할까 ? 백 미터 단거리에서 우승한 육상 선수가 동시에 이 백미터 단거리 경기도 우승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백 미터 단거리 선수가 사 백미터 중거리 경기에서도 우승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단거리와 중거리(장거리)는 호흡법과 주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애란은 그동안 단거리(단편소설)에 익숙한 호흡법과 주법으로 중거리(장편소설)에 도전하다 보니 호흡이 툭, 끊긴다. 그러다 보니 << 두근두근내인생 >> 은 단편을 억지로 길게 늘린 것처럼 읽힌다. 김애란 특유의 쫄깃한 맛이 없는 소설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평단은 이 소설에 대한 영혼 없는 칭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신경숙을 대체할 만한 유일한 젊은 작가는 김애란‘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문단이 김애란을 전략적으로 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결국 완성도 면에서 실패한 소설은 “ 마사지 작업 ”을 거쳐 훌륭한 작품이 되고, 빠르게 소비되었다. 빨리빨리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파는 음식은 대부분 패스트푸드‘이다. 한식이 슬로 푸드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대중식당에 의해 유통되는 음식은 어떤 식으로든 패스트푸드일 수밖에 없다. fast food(대중소설)를 fast food‘로 광고하는 것은 윤리적 문제가 없지만 fast food를 slow food'라고 선전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 출판사 문예지에 소속된 문학평론가’를 동원하여 자사 상품을 고급소설(slow food)로 선전하는 것은 과장 광고‘다. 그 수혜를 고스란히 받고 자란 대표적 상품이 바로 신경숙 소설이다. 신경숙은 탁월한 실력을 가진 작가’다.
이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통속소설이라는 범주 안에서만 그렇다. 대중소설이 고급소설보다 질이 떨어진다는 소리'가 아니다. 대중소설을 고급소설로 둔갑시키는 문단 시스템이 역겨울 뿐이다 ■
덧대기
햄버거는 대표적인 패스트푸드'다. 열량이 높아서 정크푸드'라고도 한다. 하지만 맛이 좋아 대중이 즐겨 찾는 음식이기도 하다. 신경숙 작가'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 신파 > 는 " 감정의 과잉 " 에서 비롯된다. 내가 신경숙 소설을 통속소설'이라고 하는 이유는 작가가 절제의 미학보다는 감정의 과잉'에 빠졌다는 데 있다. 넘쳐흐른다는 점에서 신경숙 소설은 햄버거'다. 하지만 출판 자본'은 < 햄버거 > 를 5년 숙성시킨 김치로 요리한 < 오모가리 찌개 > 라고 광고한다. 신경숙 소설'이라는 기획 상품은 순식간에 한국을 대표하는 한류 음식으로 소개된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출판 자본이 광고하는 " 오모가리 찌개 " 를 먹으니 자꾸 콜라 생각이 나는 것이다. 햄버거를 먹을 때마다 이 세상에 콜라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햄버거를 먹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