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쓸쓸한 청춘

 


1.     내가 돈 주고 산 첫 번째 책'은 썬데이-서울'이었다. 이때 내 페니스는 파이(π)를 넘지 못했다. 핑크 빛 누드가 넘실거렸다. 아랫도리가 간지러웠다.

 

2.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을 초등학교 6 학년 때 읽었다. 그 시절, 내 페니스는 파이(π)의 범위를 넘어선 상태였지만 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이 작품에서 중요 갈등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목에 새겨진 키스마크'인데 소설은 그 성애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 아하, 이런 과정이구나. "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책에서 묘사한 키스마크가 누나 목덜미에 새겨져 있길래 나는 큰소리로 누나를 가리키며 키. 스. 마. 크 라고 외쳤다.  누나가 다가와서 내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누나는 그날 한여름에 스카프'를 하고 학교에 갔다. 한여름에 스카프라니 !

 

3.    중 3 수학 시간'에 카프카가 쓴 변신'이라는 소설을 읽다가 수학 선생에게 걸렸다. 선생이 무슨 책이냐고 물어봐서 변신'이라고 말하자, 병신 같은 놈_ 이라며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럴 시간에 수학 공식 하나를 더 외우라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수학 시간에 열심히 삼중당 문고를 읽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수업 시간에 수학 공식 따위나 열심히 풀었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나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카프카'가 당신과 나'를 연결시켜준 것이다. 이게 바로 문학의 힘'이다.

 

4.    옛날에는 알랭 로브그리예 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고무지우개' 라는 책을 읽기 위해서 도서관은 이 잡듯이 다 뒤진 것 같다. 이 책'은 딱 두 군데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정독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삼중당 문고에서 나온 책이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조심조심 넘겼다. 오래되어서 종이가 부서질 것 같았다. 사실, 그 소설이 좋았다는 점보다는 발견했다는 점'이 더 좋았다. 좋은 책이란 숨어 있는 책'이고, 좋은 독자란 숨어 있는 책'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좋은 책들은 꽁꽁 숨어 있을 것이다.

 

5.    스무 살 무렵, 나는 어느 유부녀를 사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여자'는 그냥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였던 것 같다. 그 여자'가 내게 책을 한 권 선물했다. 신이현의 숨어있기 좋은 방'이었다. 여자는 속지에 이렇게 적었다.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은 바로 나야. 소설 속 주인공 또한 행실이 좋지 않았다. 자기 변명을 교묘하게 문학적으로 포장한 최초의 여자였다.

 

6.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라는 소설을 읽었다. 리마 북동쪽으로 10km를 달리면 그곳에 새들이 비처럼 쏟아져 죽는 그런 작은 해안이 있다고 했다. 책을 덮었다.

 

7.    헌책방에서 카네티가 쓴 군중과권력'이라는 책을 산 적이 있다. 맨 앞장 속지 여백을 보니 책 주인이 쓴 메모'가 있었다. " 이 쓸쓸한 청춘 ㅡ " 으로 시작하는,    늘 그렇고 그런 고민이 묻어나는 문장이었다.  헌책은 타인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재미가 있다. 피식 웃었다. 나는 앞으로 이런 촌스러운 문장은 쓰지 말아야지 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책에 메모를 하지 않는다.

 

8.    어느 날이었다. 민음사에서 출간된 가타리와 들뢰즈의 앙티오이디푸스'를 꺼내 읽었다.  건성건성 책장을 넘겼다. 넘기다 보니 아주 오래 전 영화표 2 장을 발견했다. 영화 제목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그 옛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지도 못해 끙끙대던 시절에 우여곡절 끝에 함께 본 영화였다. 그때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쓸쓸하여 책을 덮었다. 술을 마셨다. 아마, 영화를 보러가던 그날 이 책'을 가방 속에 넣어두었었나 보다.

 

9.    카뮈와 사르트르에 열광한 적이 있다. 전적으로 이 열광은 김치수와 김화영 교수의 몫이 컸다. 김화영은 카뮈를 더 높이 평가했고, 김치수는 사르트르를 더 높이 평가했다. 카뮈와 사르트르는 라이벌이면서 동반자였다. 누가 나보고 당신은 뫼르소(이방인)'를 더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로깡탱(구토)을 더 좋아하십니까_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한참을 망설일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마치 찰리 채플린이 더 좋으냐, 버스터 키튼이 더 좋으냐'는 질문처럼 들리니까. 그래도 한 명을 뽑으라면 뫼르소'를 뽑겠다. 이유는 간단하다. 카뮈가 좀더 근사했으니까. 레인코트 깃을 세우며 담배를 피우던 그 사진, 멋있었다

10.    어느 날, 생각없이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코멕 메카시 소설 모두 다 예쁜 말들이 생각났다. 이유는 모른다. 아비정전을 생각하다가, 장국영을 생각하다가, 장만옥을 생각하다가 불현듯 모두 다 예쁜 말들이 떠오른 것이다. 다시 읽기 위해 찾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냥...... 찾고 싶었을 뿐이다. 그 책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코멕 메카시가 쓴 소설을 모두 골라냈다. 핏빛 자오선, 국경을 넘어서, 평원의 도시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로드...... 하지만 여전히 모두 다 예쁜 말들은 보이지 않았다. 분실한 모양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동안 내가 잊고 있었던 기억이 갑자기 생각났다. 나는 천장이 낮은 옥탑에서 산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한 여자를 오랫동안 사랑했다. 그 여자와는 헤어졌다. 그 책을 그녀가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책인 즐거운 지식이 내 책장에 있는 것처럼.  기억이란 늘 이렇게 의뭉스러운 점이 있지. 생각해 보니 아비정전'도 그녀와 함께 본 영화였다.

 

11.    톨스토이는 싫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좋다. (이제는)사르트르는 싫고 카뮈는 좋다.  정성일은 싫고 하스미 시게히코는 좋다. 마르크스는 쉽게 썼으나 알뛰쎄르는 어렵게 썼고, 프로이드는 추리소설을 썼으나 라캉은 SF소설을 썼다.   그래도 둘 다 재미있다.  라캉보다는 푸코가 더 좋고,  데리다보다는 롤랑바르트'가 더 좋고, 공자보다는 묵자가 더 좋고, 칸트보다는 스피노자가 더 좋다.

 

12.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세계 문학 전집 맨 뒷장에 기재되어 있느 출간 목록'에서 읽은 책 제목에 노란 색연필로 밑줄을 긋는 것이다.

  

13.    동네 헌책방에서 새 책이나 다름없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구입했던 적이 있다. 속지에는 다음과 같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to. **    나에게 사랑에 대한 다른 시각을 심어준 책. 용기를 준 책. 이 책이 지금 너에게 큰 힘과 용기를 줄거라 믿는다. 항상 밝은 모습. 긍정적 사고 잃지 말자. 사랑해. p.s 늘 항상 똑같이 !!     2010.4. ** 이가.           살해당한 시체와 읽은 책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둘 다 어떤 식으로든 증거를 남긴다는 점.  밑줄을 긋거나, 페이지를 접거나, 갈피 사이에 눌린 서표의 흔적이 있거나, 혹은 잘 말린 네 잎 클로버가 있거나 하는 식이다. 읽은 책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이 책은 읽은 흔적이 전혀 없었다. 특이하게도 출판사는 책과 함께 (소설에서 소개한 음악으로 구성된) 시디'를 책날개 안쪽에 붙여서 사은품으로 제공했는데 시디를 감싼 비닐 커버가 봉인된 상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니깐.....  여자는 남자가 선물한 책을 읽어 볼 생각도 없었고 음악을 들을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남자는 알고 있었을까 ?

 
 

14.    내가 마지막으로 읽을, 마지막 읽을거리'는 뭘까 ? 카프카? 도스토예프스키 ? 아니다, 아닐 것이다. 내가 죽기 바로 전에 읽을 것'은 내가 쓴 ( 미리 작성한 ) 유서일 것이다. 이 쓸쓸한 청춘으로 시작하는 ,  늘 그렇고 그런 문장으로 끝나는, 그런 촌스러운 문장으로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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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6-07-02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딩때 빙점을 읽었지요. 기억이 새롭군요...^^
그런데 요즘은 빙점과 설국의 내용이 왔다리갔다리... 얼마전엔 실수도 했답니다...에궁~~~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0:52   좋아요 0 | URL
빙점이 청소년 문고로 지정되어 있잔습니까. 사실. 성애 장면이 꽤 나오는데 말입니다.
아야꼬였나요. 여자 이름이 ? 가물가물하군요..

표맥(漂麥) 2016-07-0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야코는 작가이름이고 주인공은 아마도 요코였을겁니다... 저도 가물... ^^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0:58   좋아요 0 | URL
아. 미우라 아야코였죠. 작가가.. ㅋㅋ..
진짜 가물가물하네요. 갑자기 함 읽어보고 싶네요..

시이소오 2016-07-02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니 사르트르가 카뮈를 미위한겁니다. 보부아르를 의심하고
안구돌출된 눈으로 도무지 그림이 안나오잖아요.

3년전 글인데 풋풋하네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1:29   좋아요 0 | URL
사르트르는 귀족으로서의 우월의식이 있었죠. 엘리트라는...
사실 사르트르가 보기에 카뮈는 천민 출신에 가까웠죠.
카뮈가 노벨상을 타자 그렇게 험담을 많이 했다고..

시이소오 님과 나눈 대화에서였나요. 숨어있기좋은방이란 소설에 대해 언급하셨길래
찾아보다가... 나름 풋풋한 글이어서 꺼내보았습니다.

시이소오 2016-07-02 11:34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아닌데요 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1:3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아. 이 건망증.. 다른 분인 것 같군요.. 요즘 기억력이 3초입니다..

기억의집 2016-07-0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보니 몇년 전에 제가 연상되서... 빙점의 인기가 얼마나 굉장했는지 아마 우리 세대만 알 겁니다. 진짜 빙점인기 어마어마했죠. 몇 년전에 갑자기 저도 빙점이 생각나더라구요. 여기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물리치며..어쩌고 저쩌고 그 뻔한 스토리가 갑자기 추억으로 새록새록 생각나 일단 전자책으로 미우라 아야코의 수필을 구입해 읽는데,,,, 너무 유치한 겁니다. 그리고 며칠 후 도서관에서 대여했는데..하핫 최초 몇장 읽다 반납했습니다. 유치 오글오글 거리는데,더 이상 그 시대의 향수를 못 느끼겠더라구요. 그 책 읽으면서 위대한 책이란, 혹은 수백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책이 왜 위대한지, 시대를 초월한 시대정신뿐만 아니라 신파와 감정 과잉의 배제가 세대와 세대를 연결해주는 주요 요인일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1:43   좋아요 0 | URL
어린 나이에 제가 그 책을 읽은 것을 보면 확실히 그때는 이 책이 대형 베스트셀러였던 것 같습니다.
줄거리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키스마크 때문에 사달이 나는 이미지만 남아 있고..
확실히 지금 생각하면 통속이죠.

저도 처음에는 재미웞는 고전을 왜 읽나 했는데
이젠 알겠습니다. 고전은 확실히 읽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원형성을 간직하고 있으니깐 말이죠. 오이디푸스 읽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samadhi(眞我) 2016-07-0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즐겁습니다. 곰발님 회상은 재미 가득해요. 저도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책을 제일 많이 읽었는데. 뭔 짓 하는지 걸리지 않으려 책상 위에 사전과 책을 가로로 잔뜩 쌓아놓고 책 읽거나 편지쓰거나 자거나 3년 내내 그러고 살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1:45   좋아요 0 | URL
저는 아예 교과서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수업시간에 책 읽던지 낙서를 하던지 둘 중 하나였던 것 같군요. 새록새록 기억이 나네요. 나름 학원사 책 열심히 읽었는데...

학원사 문고 아직도 있나 모르겠네요..
가끔 서점에서 범우사 책 보면 굉장히 반갑습니다. 범우사 디자인 변경하지 말고 계속 옛날 판형으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범우사 종이 재질(누런.. ) 을 제가 좋아하거든요..

samadhi(眞我) 2016-07-02 11:47   좋아요 0 | URL
범우사 책 정말 좋지요. 양장본만 만드는 짓 안 했음 좋겠어요. 책값만 비싸게 받고. 누런색이 눈에도 좋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1:49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양장은 무겁기만 하지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범우사 판형이 딱 좋아요. 우리가 흔히 접하는 판형은 조금 큰 편이고..
민음사 세계 전집 시리즈는 너무 길잖아요. 딱 질색..


범우사 판형이 제일 좋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선데이서울은 담임샘이 사오라고 해서 산 잡지였던 것으로 기억.
국군장병아저씨가 보내는 물품에 이 잡지가 포함되어있었는데 내가 그걸 사기로 한 것..
각자 맡은 물품이 있다. 어느 학생은 비누, 어느 학생은 수건.. 이렇게..

가넷 2016-07-02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빙점은 1년전에 읽었네요. 음.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구요. 그런데 생각의 나무는 망하지 않았나요? 다른 출판사인가... 책 자체는 좋은데 만듦새가 그다지 마음에 드는 출판사는 아니였죠.

<칼의노래>는 고등학교 야자시간에 읽은 기억이 나네요. 나중에 고향으로 가면 꺼내서 읽어봐야겠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1:50   좋아요 0 | URL
망했죠. 생각의나무 출판사 책은 조금 읽다 보면 반으로 쪼개집니다. 아마 그런 경험은 다 하셨을 듯.
좋은 출판사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자음과모음 출판사보다는 낫나 ? 최근 최악은 자모인 듯.

syo 2016-07-02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소 곰발님 글을 볼 때면
`이 양반은 정말 재미난 일로 점철된 인생을 사셨을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군요!
그래봤자(?) 글은 항상 너무 재밌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2:00   좋아요 0 | URL
재미없는 삶이니깐 재미있게 포장하는 겁니다.
글은 저에게 미원이죠.
언제부터인가 글을 멋스럽게 쓰는 것에 대해 염증을 느껴고 있습니다.
한때 문청 흉내 내던 게 부끄럽더라고요..ㅎㅎ

cyrus 2016-07-02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번 공감합니다. 나만의 도서목록을 만들어 놓은 뒤에 목록에 있는 책을 다 읽고, 글을 작성하면 표시를 해둡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5:39   좋아요 0 | URL
연속으로 10개 정도 밑줄 그으면 짜릿하죠. 어느 때는 표적 독서를 해서 열 개을 연달아 밑줄 긋기도 합니다.

stella.K 2016-07-02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2번에서 빵 터졌습니다.
대체로 같이 사는 사람들이 적인 경우가 많죠. 더구나 누나와 남동생인데...ㅋㅋ
저는 17, 8살 무렵에 범우사판으로 빙점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게 제가 처음 읽은 일본 문학이었던 것 같은데 정말 좋았죠.
그리고 나중에 두꺼운 책 2권 짜리로 다시 읽었는데 좋긴 했지만 처음만 같지는 않더군요.

알랑 로브르리예 어렵지 않던가요? 몇년 전 질툰가 하는 소설 읽을려고 했던 것 같은데
결국 실패한 기억이 납니다.ㅠ

근데 오늘 글 정말 좋네요. 짧게 써도 이렇게 좋은데 전 항상 만연체를 구가하고 있으니...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7:52   좋아요 0 | URL
누나와는 1년 동안 말을 아하고 지낸 적도 있습니다.
뭐 워낙 성격이 다르다 보니 지금도 누님은 식구들에게는 비싼 옷 자주 사주면서(오늘도 형님 등산복 사준다고 수원에서 일부러 올라와서 백화점 갔음)
저는 만 원짜리 티셔츠 한번 사주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때부터 갈들의 싹이 .. ㅋㅋ



그땐 어려서 로브그리예란 작가의 작품은 일종의 컬트마니아가 희귀 비됴 찾아다느는 쾌락에 읽었던 것 같습니다. 희귀본 구해서 읽는 심리하고나 할까요..

푸른희망 2016-07-02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글을 한번 써보고싶은데 기억이 안나요 ㅜㅜ 뭘 읽고 뭘 생각했는지 참 전 오래된 책갈피에서 빳빳한 이만원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넣어둔 내돈이지만 좋았지요 역시 책속엔 뭔가 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4 09:20   좋아요 0 | URL
댓글이 늦었네요. 미안합니다. 저도 사실 연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정도 때쯤 그런 책을 읽었지... 하는 추론일 뿐이죠. 푸른 희망 님의 독서의 역사를 듣고 싶습니다..
 

 

 


 

 

 

 

 

 

 

 

 

 

 

 

                                                   

 

만국의 고스터바스터즈여, 단결하라  :

 

 

 

 

 

 


 

여자에게 어울리는 직업


  

 

 


                                                                                             " 센 언니 "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일본 작가 기리노 나쓰오,  범죄 장르 소설을 쓰는 작가이지만 프로필 사진을 보면 그녀 스스로 느와르 영화에 나오는 팜 느와르(악녀) 같다.  기리노 나쓰오 소설에는 타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 속 여성 캐릭터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간다. 

< 여자 나홍진 > 같다고나 할까 ?  독자는 목이 졸린 상태에서 질질 끌려다니면서도 끝까지 읽게 된다.  누군가가 그래도 팬 서비스를 위해서 희망이라는 빛 한 줄 정도는 넣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투덜거리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 꿈이나 희망 따위를 내 소설에까지 요구하지 마세요 ! " 소설  << 아웃 >> 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이다.   하지만 아웃을 이웃에게 추천할 자신은...... 아우 ~  없다.  생생한 날것을 직시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극단까지 내몰린 여자들이 극단으로 치닫는 소설을 좋아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소설 속 표현을 빌리자면 손질하는 작업(시체를 토막내고 유기하는 일)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어울리는 일이라고 한다.    독자인 나는 예상치 못한 주장에 당황하게 되지만 읽다 보면 이내 여자에게 어울리는 직업이라는 말에 동조하게 된다. 생선 따위를 손질하거나 분리 수거하는 몫은 자고이래로 여성이 도맡아서 했으니 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작업 공간이 부엌에서 욕실로 바뀌었을 뿐이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탐정과 주부는 하는 일이 같다. 범죄 현장은 엔트로피(무질서) 상태'다. 선혈은 낭자하고 유리 파편은 흐트러져 있다. 용의자는 너무 많거나 아무도 없다.

범죄 소설에서 탐정(혹은 형사)는 우여곡절 끝에 사건을 해결해서 엔트로피를 네트로피(질서)로 편입시킨다. 비정형을 정형으로, 비정상을 정상으로, 무질서를 질서의 세계로 편입시키는 과정이 추리(혹은 수사)다.   주부도 탐정과 같은 일을 한다. 청소는 뒤죽박죽인 상태(엔트로피)를 질서정연한 상태(네트로피)로 편입시켜서 자리를 만들어내는 행위이다. 거실에 흐트러져 있는 레고 조각을 레고 박스에 담거나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책을 책장에 꽂는 행위는 비정형을 정형으로 바꾸는 일. 이처럼 탐정과 주부가 하는 일은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이래도 여자는 약하다고 무시할 텐가 ? 

청소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고 자리는 질서를 만들려는 인간 행위의 결과이다.  모든 물건에는 " 제자리 " 가 있다.  책의 제자리는 책장이고, 옷은 옷장 속이 제자리'인 셈이다. 인간에게도 제자리'가 존재한다. << 사람, 장소, 환대 >> 에서 김현경은 "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27쪽) " 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물건이나 사람이나 제자리에 놓여야 할 것이 자리를 이탈하게 되면 뒤죽박죽(엔트로피)이 된다. 귀신 들린 집을 다루는 하우스 호러물은 물건이 제자리를 이탈할 때 오는 불안(Angst)을 다룬다. 폴터가이스트(시끄러운 유령)는 제자리에 있는 물건을 흐트러뜨리는 일을 한다. 

유령이 공간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수록 가족은 " 자리 " 를 잃는다.  결국 가족은 쉴 자리를,  누울 자리를,  설 자리를 잃고 살던 집에서 쫓겨난다.  불안이란 독일어로 < angst : 불안, 걱정, 공포 > 이고 영어로 < anxiety > 인데  두 단어 모두 ' 좁다 ' 라는 뜻의 라틴어 < angustiae > 에서 나왔다. 또한 협심증이라는 뜻을 가진 의학용어인< angina > 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안은 협소, 제한, 불편이라는 의미와 연관이 있다.  하우스 호러물인 << 컨저링 2 >> 는 유령이 집을 점유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하우스푸어의 불안을 다룬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으로 인해 공간은 협소해지고, 제한을 받으며, 생활이 불편해진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지점은 < 유령은 무섭다 > 가 아니라 < 청소는 중요하다(혹은 자리는 중요하다) > 가 아닐까 ?   청소는 설-자리, 누울-자리, 쉴-자리'를 만드는 행위'이니 얼마나 숭고한 행위인가.  그 일을 여성이 도맡아서 하는 것이다(하지만 남성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고된 바깥일의 중요성만 늘어놓는다. 정말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그런 점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1)은 폴터가이스트 현상과 동일하다.    상가 주인의 횡포는 시끄러운 유령을 닮았고,  치솟는 임대료에 설 자리를 잃고 쫓겨나는 소규모 상인은 페기peggy네 가족2)을 닮았다.  

1977년 영국 엔필드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집에 출몰했던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홍대, 경리단길, 상수동, 서촌 등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  재개발이란 명복으로 가난한 노동자의 집을 빼앗는 부동산 개발업자나 구조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기업가 또한 폴터가이스트'이다. 그들은 서민의 설 자리, 누울 자리, 쉴 자리를 빼앗는다.  대한민국에서 폴터가이스트 현상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용산 망루에서, 서대문 옥바라지 골목길에서, 쌍용자동차 공장에서도 유령은 출몰한다.  폴터가이스트라는 이름의 유령이.......

마르크스는 << 공산당 선언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  그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사악한 유령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 만국의 고스터바스터즈여, 단결하라 ! " ■

덧대기   ㅣ    책 두 권 소개하기로 하자.  기리노 나쓰오의 << 아웃 >> 은 걸작이다.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의 << 인간과 공간 >> 은  바슐라르의 << 공간의 시학 >> 보다  좋다.  바슐라르는 공간을 지나치게 " 장소애 " 로만 접근했다. 공간에 대한 책으로 하나 더 추가하자면 김현경의 << 사람, 장소, 환대 >> 다.   http://blog.aladin.co.kr/myperu/8148273    영화 << 컨저링 2 >> 도 좋다.   이 영화는 하우스 호러'라는 장르를 빌려 하우스푸어의 불안을 다뤘다.  만듦새도 좋고 정치적 에티튜드도 좋다.  평론가 박평식은 이 영화에 대해  " 시답잖게 겁준다 "  는  촌평과 함께 3점을 매겼지만,   박평식 촌평에 대한 내 촌평은 다음과 같다. " 뭣이 좋은지도 모름서 "







​                                           


1)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지주계급 또는 신사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용어로,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uth Glass)가 처음 사용하였다. 글래스는 런던 서부에 위치한 첼시와 햄프스테드 등 하층계급 주거지역이 중산층 이상의 계층 유입으로 인하여 고급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이에 따라 기존의 하층계급 주민은 치솟은 주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살던 곳에서 쫓겨남으로써 지역 전체의 구성과 성격이 변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이후 번성해진 구도심의 상업공간을 중심으로 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어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대표적 사례로 홍익대학교 인근(홍대 앞)이나 경리단길, 경복근 근처의 서촌, 상수동 등지는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에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나 공방, 갤러리 등이 들어서면서 입소문을 타고 유동인구가 늘어났다. 하지만 이처럼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자본이 유입되어 대형 프랜차이즈 점포가 입점하는 등 대규모 상업지구로 변모하였고, 결국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기존의 소규모 상인들이 떠나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두산백과)에서 부분 발췌 )

2 )      영화 << 컨저링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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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6-07-01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제가 권해 「아웃」을 읽기 시작한 친구가 어제 그 책을 부담스러워하더라구요. 사람 봐가면서 권해야 하는데 제가 좋으면 아무에게나 다 권하는 눈치없는 버릇이 있다보니 남편에게 늘 핀잔을 듣습니다.
그 친구가 오늘 우리집에 와 자고 갈 거라서 청소해야하는데 미적거립니다. 오늘 곰발님이 던진 화두가 공교롭게도(?) 제게 하는 말이 되는 거네요. 돗자리 까세요.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1 09:25   좋아요 0 | URL
글은 저녁에 쓰고 올리기는 아침에 올립니다. 고로 어제 던진 화두라고나 할까요. ㅎㅎ
걸작이기는 한데 이게 대중적이지는 않죠. 저도 몇 번 추천했다가 반응이 시원찮은 경험을 했습니다.
청소는 자리를만드는 일이잖습니까. 친구의 자리를 만든다는생각으로 열심히 청소를 !
숭고한 일입니다. 청소라는 일은..

포스트잇 2016-07-01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좋은데, 청소가 여성의 숭고한 일이라는 건 너무 나가신 듯ㅎㅎ

청소나 시체훼손처리나 힘이 관건인듯합니다. 남자들의 청소가 훨씬 더 깨끗한 감이 있어요.
여성범죄자들이 시체훼손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더군요. 순전히 힘의 문제인지 장담은 못합니다만 ㅎㅎ
아, <아웃>에서도 여자들이 힘을 모아 분업하듯이 했던 것 같은데요.... 이 설정은 진짜.. 기리노 나쓰오 답다했네요.

요즘 인테리어랍시고 지나치게 깔끔한 집구석들을 봅니다.
올리는 사진들도 어찌나 깔끔들 하시던지. 다들 그러고 사는가 봅니다. 찍어 올릴 때 그 구역만 치우나...어쩌나...
`자리를 만든다`시지만, .... 비워진 자리를 채우지 않고 싶은 사람들도 많은 듯 합니다.
흐트러지고 제자리에 물건이 있지 못하면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의 불안강도는 어떨까요, 결벽장애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버리지 못해 온갖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최근 눈에 띄는 장면들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1 11:19   좋아요 1 | URL
msg가 조금 과했나요 ? ㅎㅎ. 청소라는 행위를 철학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사실 컨저링 보다가 생각난 아이디어였습니다.
사람들 왜 페밀리레스토랑 가면 먼저 사진부터 찍지 않습니까. 그 심리라고나 할까요.

전 아웃을 굉장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내 기준에 재미있다는 점이 함정인 듯.

저도 종종 카메라만 잡히는 곳만 치우고는 사진을 찍곤 합니다.. 반성.

쓰레기와 함께 사는 사람을 호더스라고 하죠 ? 저장강박증..
전 다 버리는 스타일입니다. 책만 빼고 .. 언젠가는 책도 다 버릴 날이 오지 않을까 싶네요..

stella.K 2016-07-0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같은 분은 사실 좋으면서도 위험한 사람이죠.
저 같이 무엇이 중한지 알지도 못하는 평범한 사람에게
새로운 시야를 선사하기도 하지만 아니다 싶으면 이것이 뭐지다냐
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을 매번 연출하시니...ㅋ
암튼 오늘의 페이퍼는 정말 영화와 책 둘 다를 믿어보게 만드시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1 16:17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전 위험한 남자입니다.
저도 뭣이 중헌지도 잘 모르는 1인입니다.
사실 곡성 보다가 초반에 졸았습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이상하게 극장만 가면
졸음이 쏟아지내요. 그리고 이젠 사람 이름을 곧잘 까먹습니다. 이것도 노화의 증거 같군요..
생각해 보니 제가 지금 동문서답하고 있는 것 같네요.. 허허..

stella.K 2016-07-01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그러니까 곰발님은 위험한 남자를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노화를 겪고 있는 남자에 대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왜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시나요?.ㅋㅋ 근데 저도 그래요. 전 연극 볼 때도 존 적이 있습니다.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0:21   좋아요 0 | URL
제가 원래 말귀를 잘 못알아먹어서 엉뚱한 소리한다는 지적이 많이 받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속터져하시죠..
하도 건성건성으로 들어서 말입니다.

파트라슈 2016-07-02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리노 나쓰오 <아웃> 저도 봤는데 좋은 작품이더군요. 읽는 내내 감질맛 나는 작품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0:21   좋아요 1 | URL
몰입도가 갑이었습니다.
 

 

 

 


                                             

 

유 령 의   반 대 말 은   청 소 부  :

 

 

 



가난한 자에게 공포를 허하라 !

 

 

 

 

 


 

 


                                                                

가국 家國 1) 에서 이상적 가족 형태는 < 아버지 - 어머니 - 나 > 로 구성된 조합이다.  이 말은 반대로 이상한 가족 형태는 < 아버지 - 어머니 - 나 > 로 구성되지 않은 조합이라는 의미와도 맥락이 통한다. 이상(理想)적 가족이 아닌 이상(異常)한 가족은 크게 < 부재 > 와 < 개입 > 으로 이루어진다.  아버지의 부재는 편모 가정이 되고, 어머니의 부재는 편부 가정이 되며, 자식이 없는 경우도 정상 가족 범주에서 벗어난다.

또한 가국 체제에서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나만으로 구성된 1인 가구도 이상한 가족 형태로 취급받는다. 그렇다고 이 부재를 채울 새아버지, 새어머니, 입양아의 유입도 마찬가지다. 하우스 호러물은 대부분 부재하는 가족이나 유입된 가족이 배경이다. 영화 << 엑소시스트, 1975 >> 는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벌어지는 공포 영화이고, << 요람을 흔드는 손, 1992 >> 은 정상 가족에게 이상한 보모가 유입되면서 벌어지는 공포를 다룬다. 반면,  리처드 도너 감독이 연출한 << 오멘, 1977 >> 은 부재하는 가족 서사와 유입된 가족 서사가 혼합된 경우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부부는 갓 태어난 아들이 죽자(부재하는 가족) 같은 시각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데미안이라 아이를 몰래 데려와 죽은 아들을 대체(유입된 가족)하면서 벌어지는 영화'다.  재미있는 사실은 가족 구성원이 부재하는 서사와 타자가 가족 구성원으로 유입되는 서사'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데 있다. 영화 << 요람을 흔드는 손 >> 이 타자(보모)의 개입이라면 << 엑소시스트는 >> 는 악령이 개입하는 영화다. 여기서 악령은 타자'다. 영화 << 컨저링 2 >> 도 부재하는 남편을 대신해서 악령이 그 자리를 채운다. 이 영화에서 아버지는 이웃집 여자와 바람이 나서 아내와 이혼한 상태'다.  

 

▶ 폴터가이스트(시끄러운 유령)는 제자리에 있는 물건을 흐트러뜨리는 일을 한다.  일상 생활에서 청소를 한다는 것은 제자리에 놓이지 않은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는 점에서 " 카오스(무질서)를 질서의 세계로 진입시키는 행위 "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청소부의 반대말은 유령이다.  유령이 물건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수록 가족은 " 자리 " 를 잃는다.   결국 가족은 쉴 자리를,  누울 자리를,  설 자리를 잃고 집에서 쫓겨난다.  불안을 뜻하는 독일어 < Angst > 가 원래는 고대 그리스어인 angh-에서 비롯되었는데 협심증이라는 뜻을 가진 의학용어인 angina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안은 협소, 제한, 불편이라는 의미와 연관이 있다.  영화 << 컨저링 2 >> 는 유령이 집을 점유하면서 발생하게 되는데,   사유 공간이 타자의 점유로 인해  수축( 공간 협소, 공간 제한, 공간 불편)되면서 발생하게 되는 데서 오는 신경 쇠약을 다룬다.

 

 

유령은 밤마다 가구와 물건들을 옮기거나 아이를 공중으로 띄운다. 영화 << 쏘우, 2004 >> 로  헐리우드에 혜성처럼 등장한 제임스 완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장기를 한껏 뽐낸다. 능수능란해서 능글맞기도 하다. 독일어 Angst는 불안이라는 뜻인데 원래는 마음이 답답하고 좁아진다는 의미라고 한다. 자신을 둘러싼 영역이 수축되는 것이 불안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귀신들린 집은 유령이 저지른 농간에 의해 뒤죽박죽이 된다. 영화 속에서 유령은 제자리에 있는 사물을 어지럽게 흐트러트리는 존재다. 청소란 공간을 만드는 행위이기에 청소를 하지 않으면 주변은 쓰레기(무질서)로 가득 차서 결국에는 쉼터를 잃어버리게 된다.

정리를 하는 행위(청소)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행위인 셈이다. << 인간과 공간 >> 에서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는 " 모든 물건에는 제자리가 있다 " 고 지적한 후 " 자리는 질서를 만들려는 인간 행위의 결과 " 라고 말한다. 영화 속 유령은 물건이 가지고 있는 제자리를 파괴해서 인간의 공간을 축소시킨다. 지하실도 마찬가지다. 지하실은 구정물이 넘쳐서 공간이 축소된다. 그렇기에 주인공들이 느끼는 불안은 공간의 수축에서 찾을 수 있다. 결국 가족은 공간을 잃고 집에서 쫓겨난다.  특이한 점은 하우스 호러물이 대부분 중산층의 공포를 다루고 있는 데 비해 이 영화는 영국 빈민층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깨달은 것은 영국은 가난해도 집은 크구나 _ 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었다. 비스킷을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집치고는 집이 너무 넓다. 집은 복층 구조로 네 남매가 각자 방 2) 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방도 넉넉한 편이다. 넓은 지하실은 물론이고 집 앞에는 그네도 있다. 공포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공포 영화'라는 장르는 " 인간과 공간 " 을 다룬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다루는 영화가 인간과 장소에 대한 이야기라면 공포 영화는 인간이 공간과 맺는 관계가 핵심인 것처럼 보인다.  장소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장소애(topophillia) 3) 라는 개념은 있어도 공간애'라는 개념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또한 만남의 장소라는 말은 있지만

만남의 공간이라는 말은 없는 것을 봐도 공간은 열린 이미지보다는 닫힌 이미지로 다가온다. 공포 영화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확대하고 재생산하는 장르'다. 한국 영화가 유독 공포 영화에 취약한 이유도 공포를 생산할 만한 주거 공간이 없다는 데 있다.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은 한국 주거 문화에서는 다락방이 있을 리 없고 넓은 지하실도 있을 턱이 없다.  더군다나 빈곤층 가정을 다룬 공포물?!  공간이 중요한 장치로 활용되는 공포 영화에서 단칸방이라는 설정은 끔찍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하우스 호러물이 대부분 중산층 가정을 배경으로 하는 데에는 공간이 주는 제약 때문이다. 숨어 있기 좋은 방이 좋은 공포를 만든다.

대한민국에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서럽다. 난한 자의 사랑 영화는 많은데 가난한 자의 공포는 어디에도 다루지 않는다. 사랑보다 시급한 문제는 공포인데 말이다. 우스꽝스럽게 들리겠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멜로는 < 인간과 장소의 관계 > 를 다루는 장르4)이고 공포는 < 인간과 공간의 관계 > 를 다루는데,  공포는 공간을 점유할 때 발생하고 사랑은 좋은 장소를 공유할 때 발생한다.  역설적 표현이지만 빈민층 주택을 배경으로 한 하우스 호러물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일수록 상대적으로 살기 좋은 곳이다 ■



 


​                                    


1) 家國은 국가(國家)를 뒤집은 꼴로 국민(개인)보다는 가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체제를 뜻한다. << 가족주의는 야만이다 >> 에서 이득재는 대한민국을 가국 체제'라고 명명한다.  

2) 언니와 여동생은 같은 방을 쓰기는 하지만, 나머지 식구들은 모두 독립적인 방을 가지고 있다.

3) 바슐라르의 << 공간의 시학 >> 은 장소애를 다룬다.

4) 멜로는 장소에 애틋한 서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토포필리아(장소애)를 다룬다.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는 장소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 티파니에서 아침을 >> , << 쉘브르의 우산 >> , << 로마의 휴일 >> 은 모두 토포필리아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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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6-06-30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아이가 귀신, 유령의 이야기를 할 때, 저는 혹시 만나거든 아빠를 꼭 만나고 가라고 전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전의 영화 <천녀유혼>, 최근?의 영화 <식스센스>는 저에게 귀신, 유령에 대한 타자화를 지워버렸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10:34   좋아요 0 | URL
유령에 대한 타자화를 지워버렸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마립간 2016-06-30 10:36   좋아요 0 | URL
단어 선택이 적절하지 않았나요? 유령이나 귀신에 두려움도 없어지고 남?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10:38   좋아요 0 | URL
아하.. ㅋㅋ. 연민을 느끼신다는 것이죠 ? ㅎㅎ.

마립간 2016-06-30 10:43   좋아요 0 | URL
^^ 글쎄요. 연민보다 귀신과 공감하는 능력이 생겼다고 할까요.

아무튼 <전설의 고향>을 봤던 어린 시절과는 확실하게 다른데 그것이 어른이 되었다는 상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두 영화를 기점을 바뀐 생각과 느낌이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11:00   좋아요 0 | URL
저도 식스센스 보고 느낀 점이 있습니다. 귀를 좀 기울이자. 귀신의 말을 듣자. 억울하니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등등...

마립간 2016-06-30 11:06   좋아요 0 | URL
https://www.youtube.com/watch?v=3qqVQcZxpqA

<식스 센스>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Six sense, car scene)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을 위해 주소를 남깁니다.

samadhi(眞我) 2016-06-30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 오웰이 묘사하던 영국 주택은 굉장히 좁던데요. 공포영화에서는 안 그런가 보네요. 하긴 우리 나라 공포영화도 장소가 굉장히 화려했던 것 같네요. 장화홍련도 꽤 넓은 집이 배경이었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13:32   좋아요 0 | URL
시대적 배경이 70년대 중반이니 약간 다른 모양입니다. 하여튼 중요한 것은 그래도 단칸방 이런 이미지는 아니라는 것. 공포영화는 기본적으로 중산층의 공포를 다룹니다. 넓은 집이 필요하니깐 말이죠. 그 한계 때문에 여고괴담 같은 경우는 집 대신 학교를 선택하죠. 집에서 학교로 옮겨지니 그만큼 공포를 생산할 공간이 늘어난 것. 사실 여고괴담은 학원공포물이 아니라 하우스호러인 셈입니다. 한국 공포가 대부분 기숙사에서 진행된다는 것은 바로 주택이라는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궁여지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행복하자 2016-06-30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독주택이 아니라 빌라에서 벌어지는 공포물도 있었던것 같아요.. 영국이 아니라 미국인가? 주거공간이 소재로 한 영화중 공포스럽게 봤었는데 제목이 생각이 안나네요~~
오멘 이후로 가장 무섭다고 생각했던 영화같은데,

컨저링은 초등학생들이 가장보고싶어했던 영화로 기억합니다 ㅎㅎ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14:59   좋아요 0 | URL
초등학생들이 실화라고 하면 껌뻑 죽습니디ㅏ. ㅎㅎ.

빌라에서 벌어지는 공포라면 ... 모르겠네요. 킹덤인가?
나중에 생각나시면 영화 제목 좀 알려주십시오.
 
비상과 환상 - 세계의 경계에 선 영화, 김소영 영화평론집
김소영 지음 / 현실문화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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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티스에서 호스트로 :

 

 


1 + 1 = 2 다

                                                                                       EBS방송 리얼극장 프로그램   :   사이가 소원해진 모녀가 해외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을 계기로 < 안 > 에 담고 있던 속내를 < 밖 > 으로 꺼내보자는 방송 기획. 자연 치유력이 당신의 화를 누그려뜨리리라. 딸은 전망 좋은 곳에 앉아 파란만장했던 지난 일을 회상한다. " 엄마, 내가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모델이 되었을 때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었을 때도 아니었어.

어릴 때 마루 바닥에 신문지 깔아놓고 온 가족이 모여 삼겹살 구워 먹었던 때 있었잖아. 그때 우리 가족은 행복했어. 그런 날들이 있었다는 게 신기해. "  딸은 동의를 구하듯 엄마를 쳐다본다. 동일한 기억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가족이라는 듯.  엄마의 눈가가 촉촉하다. " 넌 그때가 제일 행복했니 ?  엄마는 그때가 제일 불행했던 시절이었다.  네 아버지는 사업을 한다 뭐 한다 하지. 시댁에 딸린 식솔은 많지.  미래는 보이지 않지. 엄만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 "  딸에게는 행복이었던 순간이 엄마에게는 불행이 되는 기억의 편린 앞에서 비로소 딸은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_ 는 줄거리.

흥미로웠다.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지점은 하나의 기억을 두고 딸이 생각하는 이해와 엄마가 느끼는 이해가 각각 다르다는 점이다.  딸이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한 데에는 개인보다는 가족을 중심에 두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가족주의는 아빠 - 엄마 - 나로 구성된 삼위일체를 강조하기에 가족 구성원을 복수형이 아닌 단수형으로 뭉그려서 합일(合一)을 강조한다. 가족주의의 핵심은 1 + 1 = 1 이다.   아버지의 부재로 가장 노릇을 한 딸이  가족은 1 + 1 = 1 이라고 말할 때,  엄마는 1 + 1 = 2 라고 주장한다. 엄마는 하나의 기억을 공유한다는 게 반드시 동일한 해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인은 < 나 > 라는 독립적 개체보다는 < 우리 > 라는 집합체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내가 행복하면 가족이라는 집합체 구성원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가족 동반 자살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가부장은 자신의 불행을 가족 전체로 투사한다. 내가 불행하니 가족 모두 불행할거야). 1997년 IMF 사태는 한국 사회에 뿌리 박힌 가족의 단단한 결속력을 빠르게 붕괴시켰다. 가부장은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누워보는군_ 으로 시작하는 70년대 여성 호스티스 영화1)는 IMF 이후 남성 호스트 영화로 얼굴을 바꾼다. 전자가 몸을 팔아 가족 생계를 이어가는 여성 작부(酌婦)의 목소리를 빌려 가족 판타지를 채운다면,

후자는 몸을 써서 가족 생계를 이어가는 남성 작부(作夫)의 목소리를 빌려 가족 판타지를 채운다. 그들은 자릿세 명목으로 " 삥 " 을 뜯는 작부다2). 70년대 호스티스 영화가 여성-몸을 빌려서 남성 판타지를 채운다는 한계를 가지고는 있지만 그나마 여성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2000년대 호스트 영화는 그 목소리마저 지운다. 영화 << 비열한 거리 >> 에서 조인성은 << 영자의 전성시대 >> 에서 사장집 가정부로 시작해서 결국에는 한쪽 팔을 잃고 매춘부로 전락한 염복순(영자 역)을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가족의 색깔이다. 조인성이 " 몸을 팔아서 " 생계를 꾸리는 유사 가족은 조폭이다.

조직의 2인자인 조인성은 황 회장이 내미는 은밀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기회가 온 것이다. 이 영화는 성관계 없는 은밀한 거래'다. 황 회장은 조인성의 " 스폰서 " 다.  영화평론가 김소영은 이 영화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97년 IMF 위기는 세계화 이후 심해졌지만 한국 영화에서는 모든 사회적 문제가 남성 수사법으로 고민되어 영화적 재현의 장에 여성 문제가 사라져가는 것은 물론이고, 여성적 차이마저 남성 캐릭터에 흡수되고 있다. 여성을 어떤 방식으로든 말할 수 있는 재현에서의 정치적 공간이 대중영화에서 희미해져가고 있는 것이다. 호스티스는 호스트가 되고 호스티스는 호스트의 비극을 더 강조하는 보조물이다

 

- 김소영 영화평론집 << 비상과 환상 >> 347 쪽에서 발췌


 

김소영이 지적했던 것처럼 IMF 이후 쏟아진 조폭 영화는 호스트로 전락한 남성-몸을 투사한 후 이 < 비참 > 을 즐긴다. 그것은 일종의 위로이자 자기 연민이며 츄파츕스다. 자위용 사탕인 셈이다. 조인성의 죽음으로 인해 가족은 해체된다. 가족주의자의 쓸쓸한 죽음이다. << 달콤한 인생 >> 도 유사한 구조'다. 황 회장이 조인성의 스폰서라면, 강 사장(김영철 분)은 이병헌의 스폰서'다. 강 사장은 자신을 향한 선우의 지고지순을 시험하기 위해 신민아를 미끼로 내보낸다. 그녀는 이병헌을 유혹해서 파멸로 이끄는 팜 느와르( 악녀 )'다. 그는 과연 이 유혹 앞에서 흔들릴까 ? 이 영화는 그러니께 강 사장은 미끼를 던진 것이고 선우는 미끼를 물어분 것이여 ~ 


로 요약될 수 있다.  그도 조인성처럼 죽음을 맞는다. 조직이라는 가족을 해체하고 개인주의자가 되는 순간 " 사회적 거세 " 가 작동되는 것이다. 반면, 황우석 줄기세포 사기극을 다룬 영화 << 제보자 >> 는 가족주의와 개인주의가 충돌하는 영화'다. 줄기세포 사기극을 펼친 이장환 박사(이경영 분)는 그를 따르는 수많은 추종자들의 스폰서'다. 이장환 박사의 성공은 곧 국가의 성공이다. 가족주의자에게 가국3)(家國)은 가족의 원형이요, 국민은 家에 종속된 가족 구성원인 셈이다. 그렇기에 국익을 위해서는 " 얼룩 " 을 은폐되어야 한다. 낡고 해진 속옷은 집 밖에 내걸면 안 되는 이유'다.

황우석과 그 추종자들이 가족주의자라면 황우석 사건의 전말을 폭로한 제보자인 심민호(유영석 분)은 개인주의자'다. 더러운 빨래는 집 밖에에다 널어야 된다고 믿는 그는 가족, 조직, 사회, 국가 따위의 가치보다는 행동하는 양심에 방점을 찍는다. 그는 하나의 가족, 하나의 조직, 하나의 국가'라는 가치보다는 한 명의 양심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는 국민에 앞서 시민이고 개인주의자'다. 그 또한 병두(조인성)나 수인(이병헌)처럼 개인주의자로써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 가족주의자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는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사회는 家를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개인을 억압하는 경향이 짙다. 그렇다 보니 명망 높은 어르신들은 여자가 결혼해서 애 낳는 것이 애국이라고 말한다. " 나라 망신 " 이라느니 " 집안 망신 " 이라는 말버릇도 모두 가족주의가 과잉된 결과'다. 국민보다는 시민으로, 가족보다는 공동체 재건이 필요한 시점이다. 1 + 1 = 2다.





​                                

1) 70년대 호스티스 영화 :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따위

2)  작부 : < 역사 > 조선 시대에, 토지 여덟 결을 한 부로 조직하여 결세를 거두어들이던 일. 또는 그 징세 책임을 지던 사람(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인용)

3) 국가가 家를 최소 단위로 하는 사회 집단이라면, 가국(家國) 은 家를 중심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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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6-06-29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폭영화를 그나마 인상깊게 본 영화는 ˝비열한 거리˝였는데 지금도 올드앤뉴를 들으면 비열한거리만 생각나요~
80년대의 매춘류의 영화와 90년대이후의 조폭류의 영화가 그리 연결되는군요~ 조폭영화는 불편해서 거의 안봐요.. 아니 못 봐요

peepingtom 2016-06-29 13:48   좋아요 0 | URL
어 갑자기 글이 지워졌습니다. 조폭들도 몸으로 때우잖아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6-29 13:51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조폭 영화 잘 안 봅니다. 남성 자의식 과잉이라고나 할까요..
꼭 자기들만 힘들다고 징징대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봤냐, 남성들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다. 뭐. 이런 메시지 같다고나 할까요..

yureka01 2016-06-2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부고발자가 조직의 비리를 까발리면 ..조직의 잘못에 대한 반성 보다는 내부고발자를 응징하려 하는 집단성이 발휘되는 원리도 비슷한 작동기제가 아닐까 싶습니다..역시 곰발님의 분석글은 착착 감깁니다....재미와 생각꺼리 이 두개를 동시에 주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29 13:52   좋아요 1 | URL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줄기세포 제보자는 잘 살고 있을까 ?
서구 사회라면 영웅이 되었을 터인데 한국 사회에서는 분란을 일으키는 나쁜 사람이 되고..
사회적 거세를 당하지 않았을까 ? 이런 생각... 잘 지내고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마립간 2016-06-29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 <Mad Max: Fury Road, 2015>에서 `퓨리오사`, 여성 전사가 결국

`영화적 재현의 장에 여성 문제가 사라져가는 것은 물론이고, 여성적 차이마저 남성 캐릭터에 흡수되고 있`

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페미니즘 영화로 보질 않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09:29   좋아요 0 | URL
저도 동의합니다. 황상민 교수가 박근혜를 비판하면서 했던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죠.
박근혜는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탈을 썼을 뿐 사실은 남성이다. 뭐, 이런 의미였던 것 같군요..

samadhi(眞我) 2016-06-30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 다른 기억을 털어놓았을 때 아팠을 딸의 마음과 서로를 진짜로 이해하는 날이 오기까지 견뎌 온 엄마의 마음이 함께 풀리는 화해(?)의 시간이 아련하네요.

아직도 가족주의 같은 집단주의가 선이라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요. 개인 각자를 인정하는 목소리들이 당연해지는 때가 오긴 올 지, 그땐 좀 살 만한 세상이 되겠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09:31   좋아요 0 | URL
충, 효, 가족주의의 본질은 수직적 관계입니다.
수평적 관계로는 충, 효, 가족을 지탱할 수 없죠.
한국 사회, 특히 기득권이 죽어라 하고 충, 효, 가족주의 메시지를 강박적으로 뿌리는 이유는
기득권에게 수직적 관계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뭐.. 그런 생각...


앞으로 살 만한 세상은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나라 뜨는 게 유일한 대안이지 싶습니다만..
 

 

 

 


​                                             


그 것 으 로    만 족 하 겠 어 요 :




 


영웅본색 : 거울 보는 남자



 

                                                                                                       두더지 발바닥처럼 생긴 모양을 한 과자가 있길래 먹어보았다.  뭐,         흔히 먹던 계란 과자 맛이었다. 가만 보니 정유 회사 쉘 - 로고를 닮았다. " 야, 쉘 - 로고 보면 조개 닮지 않았냐 ? " 친구가 한심한 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멍충아, 쉘이 조개라는 뜻이야. " 아  ~  그렇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내가 먹은 과자의 정식 명칭은 마들렌'이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에서 나오는 그 유명한 마들렌 말이다. 프루스트가 극찬을 쏟아냈던 터라 마들렌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크게 실망했다.  에그그, 계란 과자였어 ? 우리가 첫사랑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기억이라는 시스템이 가동되기 때문이다.

기억은 < 조약돌 > 을 < 유리구슬 > 로 만드는 MSG다. 기억 속 대상이 현실로 호명될 때 우리는 꾀죄죄한 몰골에 실망하게 된다. 당신 앞에 나타난 첫사랑 남자는 기억 속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머리는 벗겨지고 배는 나오고 턱선은 무너졌다. 설상가상 아재 개그랍시고 껄껄 웃을 때는 대책이 없는거라. 당신은 < 속 > 으로 생각한다. 우아한 마들렌이 아니라 아우~  겨우 계란 과자였어 ?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나 왜곡이 아니다.  기억이 소환한 대상은 과거의 눈높이에서 각인되고 고착된 象이니 말이다. 초등학생 때 눈으로 본 학교 운동장과 성인이 되어서 다시 찾은 초등학교 운동장이 같은 사이즈일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오우삼 감독이 연출한 영화를 최근에 다시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도 같은 느낌이었다.  주윤발이 << 영웅본색 >> 에서 알이 큰 선그라스에 롱코트를 입고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등장했을 때 수컷들은 모두 형광등 101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에 경탄하고는 했다. 우리는 돌맹이였고 그는 반짝거리는 유리구슬이었다.   폴 슈레이더는 << 필름 느와르를 특징 짓는 7가지 반복적인 테크닉 >> 中  하나로 물, 거울, 창문에 대해 거의 프로이트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반사하는 것에 대한 강박적 집착'이다. 그것은 자기 반영에 대한 황홀경(=나르시즘)이다.

 

▶  영화 << 첩혈쌍웅 >> 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 장면은 느와르 장르가 본질적으로 나르시소스 신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주윤발이 머문 은신처는 온통 유리로 장식되어 있다. 유리는 나르키소스가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았던 " 딱딱한 물 " 이다. 두 사내는 모두 유리에 비친(혹은 유리 속에 갇힌) 이미지로 서로 교감한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 달콤한 인생 >> 은 물(자기 모습을 반사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호텔 바 내부는 " 물의  이미지 " 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온통 반사되는 것투성이'다. 이병헌은 호텔 바 어디에 서 있어도 반사된 자신을 볼 수 있다. 그는 밤이 스며든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며 황홀해 한다. 이 자기애'는 영화의 주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사랑하는 대상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자기애의 본질은 동성애'다. 영화 << 첩혈쌍웅 >> 도 이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배우 주윤발과 이수현이 하나가 되는 몰아일체 장면은 바둑판 무늬 유리문을 매개로 교차 편집되면서 오버랩된다.

이 두 영화는 팜 느와르(femme noire : 느와르 장르에서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악녀 캐릭터) 없는 느와르 영화'다. 그들은 마녀도 아니고, 요부도 아니고, 과부도 아니지만 남자를 죽음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검은 여성'이다. 피식, 웃음이 났다. 여자들은 거울을 보면 자기 얼굴에 대해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경향이 있고 남자들은 거울을 보면 대체로 자기 얼굴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다고 한다. 느와르가 남성 로망 판타지 장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물 이미지를 강박적으로 소환하는 까닭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생각해 보면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도 남자이지 않았나. 어쩌면 나르키소스 신화는 동성애 서사'인 셈이다.

사실 자기애에 대한 집착은 여성보다는 남성이 강하다.  공주병보다는 왕자병이 더 많다.  까마귀는 호기심이 많은 새라고 한다. 반짝거리는 물체를 보면 물어다가 둥지에 보관한다고. 그런 점에서 느와르 장르와 검은 까마귀는 서로 닮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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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6-06-26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와르라는 장르 자체도 남자들의 환상성 또는 나르시즘을 반영한 거라고 생각해요. 잔뜩, 있는대로 온갖 개폼을 잡는 내용이니까요.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6-27 09:13   좋아요 0 | URL
그럼요. 범죄 느와르는 확실히 남성 판타지죠. 또 개폼을 잡아야 시스템이 돌아가기도 하죠.. 후후..

포스트잇 2016-06-27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첩혈쌍웅... 몇번을 봤는지 모릅니다. ㅋㅋㅋㅋ 나중에 저 두 남자, 시냇가에서 상처를 치료해주죠.
느와르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지금 다시 보면 어떨지...오글거릴 것두 같고...

곰곰생각하는발 2016-06-27 09:12   좋아요 0 | URL
오글거리죠. 영웅본색은 정말 오글거렸음 -_- 이쑤시개는 왜 물고 그리 나타나는지...
ㅎㅎ 하지만 첩협은 촌스러운 게 별로 없습니다...

stella.K 2016-06-27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번뜩이는 지성을 가지신 곰발님께서 친구분한테 그런 핀잔을 들으시다니뇨.
근데 단락을 읽어보면 그렇지도 않더란 말이죠. 귀엽네요.ㅋㅋ
마들렌 저도 먹어봤는데 계란 과자보단 부드럽고 맛이 좋던데.
계란 과자에 비하겠습니까? 마들렌이 곰발님 미워할 겁니다.ㅎ
근데 사실 환장하리만치 좋은 맛은 아닌 것 같긴해요.
누가 사 준다면 모를까 내 돈 주고는 글쎄...
어쩌면 우울한 날 자신을 위로한답시고 자기 이름 불러가며 내가 나한테 사 주는 거야.
뭐 어떤 사람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럴 확률이 높은 건 남자 보단 여자고.
혼자놀기의 달인 여자들 곧잘 그렇게도 하잖아요.
남자들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곧잘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거든요.
그것도 자기애의 하나는 아닐까 싶어요. 나와의 대화 이러면서...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6-29 13:29   좋아요 0 | URL
댓글이 좀 늦었네요..

전 워낙에 과자를 좋아하지 않아서.. 미묘한 맛의 차이를 잘 모르겠습니다.
과자는다 똑가틈.. ㅎㅎ

저는 혼잣말을 자주 합니다.
ㅎㅎㅎㅎ 개하고도 이야기하고 나무하고도 이야기하고..
뭐 그렇죠. 인생 다 산 늙은이처럼 굴 때가 종종 있씁니다...

마립간 2016-06-27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다른 모든 요소가 정규분포의 정상 범위에 있지만, 저의 호기심만은 정상 범위를 벗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6-29 13:31   좋아요 0 | URL
정상 범위를 벗어난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곧 아웃사이더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도 정삼 범위를 벗아는 것에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