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령 의   반 대 말 은   청 소 부  :

 

 

 



가난한 자에게 공포를 허하라 !

 

 

 

 

 


 

 


                                                                

가국 家國 1) 에서 이상적 가족 형태는 < 아버지 - 어머니 - 나 > 로 구성된 조합이다.  이 말은 반대로 이상한 가족 형태는 < 아버지 - 어머니 - 나 > 로 구성되지 않은 조합이라는 의미와도 맥락이 통한다. 이상(理想)적 가족이 아닌 이상(異常)한 가족은 크게 < 부재 > 와 < 개입 > 으로 이루어진다.  아버지의 부재는 편모 가정이 되고, 어머니의 부재는 편부 가정이 되며, 자식이 없는 경우도 정상 가족 범주에서 벗어난다.

또한 가국 체제에서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나만으로 구성된 1인 가구도 이상한 가족 형태로 취급받는다. 그렇다고 이 부재를 채울 새아버지, 새어머니, 입양아의 유입도 마찬가지다. 하우스 호러물은 대부분 부재하는 가족이나 유입된 가족이 배경이다. 영화 << 엑소시스트, 1975 >> 는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벌어지는 공포 영화이고, << 요람을 흔드는 손, 1992 >> 은 정상 가족에게 이상한 보모가 유입되면서 벌어지는 공포를 다룬다. 반면,  리처드 도너 감독이 연출한 << 오멘, 1977 >> 은 부재하는 가족 서사와 유입된 가족 서사가 혼합된 경우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부부는 갓 태어난 아들이 죽자(부재하는 가족) 같은 시각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데미안이라 아이를 몰래 데려와 죽은 아들을 대체(유입된 가족)하면서 벌어지는 영화'다.  재미있는 사실은 가족 구성원이 부재하는 서사와 타자가 가족 구성원으로 유입되는 서사'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데 있다. 영화 << 요람을 흔드는 손 >> 이 타자(보모)의 개입이라면 << 엑소시스트는 >> 는 악령이 개입하는 영화다. 여기서 악령은 타자'다. 영화 << 컨저링 2 >> 도 부재하는 남편을 대신해서 악령이 그 자리를 채운다. 이 영화에서 아버지는 이웃집 여자와 바람이 나서 아내와 이혼한 상태'다.  

 

▶ 폴터가이스트(시끄러운 유령)는 제자리에 있는 물건을 흐트러뜨리는 일을 한다.  일상 생활에서 청소를 한다는 것은 제자리에 놓이지 않은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는 점에서 " 카오스(무질서)를 질서의 세계로 진입시키는 행위 "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청소부의 반대말은 유령이다.  유령이 물건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수록 가족은 " 자리 " 를 잃는다.   결국 가족은 쉴 자리를,  누울 자리를,  설 자리를 잃고 집에서 쫓겨난다.  불안을 뜻하는 독일어 < Angst > 가 원래는 고대 그리스어인 angh-에서 비롯되었는데 협심증이라는 뜻을 가진 의학용어인 angina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안은 협소, 제한, 불편이라는 의미와 연관이 있다.  영화 << 컨저링 2 >> 는 유령이 집을 점유하면서 발생하게 되는데,   사유 공간이 타자의 점유로 인해  수축( 공간 협소, 공간 제한, 공간 불편)되면서 발생하게 되는 데서 오는 신경 쇠약을 다룬다.

 

 

유령은 밤마다 가구와 물건들을 옮기거나 아이를 공중으로 띄운다. 영화 << 쏘우, 2004 >> 로  헐리우드에 혜성처럼 등장한 제임스 완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장기를 한껏 뽐낸다. 능수능란해서 능글맞기도 하다. 독일어 Angst는 불안이라는 뜻인데 원래는 마음이 답답하고 좁아진다는 의미라고 한다. 자신을 둘러싼 영역이 수축되는 것이 불안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귀신들린 집은 유령이 저지른 농간에 의해 뒤죽박죽이 된다. 영화 속에서 유령은 제자리에 있는 사물을 어지럽게 흐트러트리는 존재다. 청소란 공간을 만드는 행위이기에 청소를 하지 않으면 주변은 쓰레기(무질서)로 가득 차서 결국에는 쉼터를 잃어버리게 된다.

정리를 하는 행위(청소)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행위인 셈이다. << 인간과 공간 >> 에서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는 " 모든 물건에는 제자리가 있다 " 고 지적한 후 " 자리는 질서를 만들려는 인간 행위의 결과 " 라고 말한다. 영화 속 유령은 물건이 가지고 있는 제자리를 파괴해서 인간의 공간을 축소시킨다. 지하실도 마찬가지다. 지하실은 구정물이 넘쳐서 공간이 축소된다. 그렇기에 주인공들이 느끼는 불안은 공간의 수축에서 찾을 수 있다. 결국 가족은 공간을 잃고 집에서 쫓겨난다.  특이한 점은 하우스 호러물이 대부분 중산층의 공포를 다루고 있는 데 비해 이 영화는 영국 빈민층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깨달은 것은 영국은 가난해도 집은 크구나 _ 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었다. 비스킷을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집치고는 집이 너무 넓다. 집은 복층 구조로 네 남매가 각자 방 2) 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방도 넉넉한 편이다. 넓은 지하실은 물론이고 집 앞에는 그네도 있다. 공포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공포 영화'라는 장르는 " 인간과 공간 " 을 다룬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다루는 영화가 인간과 장소에 대한 이야기라면 공포 영화는 인간이 공간과 맺는 관계가 핵심인 것처럼 보인다.  장소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장소애(topophillia) 3) 라는 개념은 있어도 공간애'라는 개념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또한 만남의 장소라는 말은 있지만

만남의 공간이라는 말은 없는 것을 봐도 공간은 열린 이미지보다는 닫힌 이미지로 다가온다. 공포 영화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확대하고 재생산하는 장르'다. 한국 영화가 유독 공포 영화에 취약한 이유도 공포를 생산할 만한 주거 공간이 없다는 데 있다.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은 한국 주거 문화에서는 다락방이 있을 리 없고 넓은 지하실도 있을 턱이 없다.  더군다나 빈곤층 가정을 다룬 공포물?!  공간이 중요한 장치로 활용되는 공포 영화에서 단칸방이라는 설정은 끔찍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하우스 호러물이 대부분 중산층 가정을 배경으로 하는 데에는 공간이 주는 제약 때문이다. 숨어 있기 좋은 방이 좋은 공포를 만든다.

대한민국에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서럽다. 난한 자의 사랑 영화는 많은데 가난한 자의 공포는 어디에도 다루지 않는다. 사랑보다 시급한 문제는 공포인데 말이다. 우스꽝스럽게 들리겠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멜로는 < 인간과 장소의 관계 > 를 다루는 장르4)이고 공포는 < 인간과 공간의 관계 > 를 다루는데,  공포는 공간을 점유할 때 발생하고 사랑은 좋은 장소를 공유할 때 발생한다.  역설적 표현이지만 빈민층 주택을 배경으로 한 하우스 호러물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일수록 상대적으로 살기 좋은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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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家國은 국가(國家)를 뒤집은 꼴로 국민(개인)보다는 가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체제를 뜻한다. << 가족주의는 야만이다 >> 에서 이득재는 대한민국을 가국 체제'라고 명명한다.  

2) 언니와 여동생은 같은 방을 쓰기는 하지만, 나머지 식구들은 모두 독립적인 방을 가지고 있다.

3) 바슐라르의 << 공간의 시학 >> 은 장소애를 다룬다.

4) 멜로는 장소에 애틋한 서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토포필리아(장소애)를 다룬다.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는 장소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 티파니에서 아침을 >> , << 쉘브르의 우산 >> , << 로마의 휴일 >> 은 모두 토포필리아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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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6-06-30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아이가 귀신, 유령의 이야기를 할 때, 저는 혹시 만나거든 아빠를 꼭 만나고 가라고 전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전의 영화 <천녀유혼>, 최근?의 영화 <식스센스>는 저에게 귀신, 유령에 대한 타자화를 지워버렸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10:34   좋아요 0 | URL
유령에 대한 타자화를 지워버렸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마립간 2016-06-30 10:36   좋아요 0 | URL
단어 선택이 적절하지 않았나요? 유령이나 귀신에 두려움도 없어지고 남?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10:38   좋아요 0 | URL
아하.. ㅋㅋ. 연민을 느끼신다는 것이죠 ? ㅎㅎ.

마립간 2016-06-30 10:43   좋아요 0 | URL
^^ 글쎄요. 연민보다 귀신과 공감하는 능력이 생겼다고 할까요.

아무튼 <전설의 고향>을 봤던 어린 시절과는 확실하게 다른데 그것이 어른이 되었다는 상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두 영화를 기점을 바뀐 생각과 느낌이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11:00   좋아요 0 | URL
저도 식스센스 보고 느낀 점이 있습니다. 귀를 좀 기울이자. 귀신의 말을 듣자. 억울하니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등등...

마립간 2016-06-30 11:06   좋아요 0 | URL
https://www.youtube.com/watch?v=3qqVQcZxpqA

<식스 센스>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Six sense, car scene)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을 위해 주소를 남깁니다.

samadhi(眞我) 2016-06-30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 오웰이 묘사하던 영국 주택은 굉장히 좁던데요. 공포영화에서는 안 그런가 보네요. 하긴 우리 나라 공포영화도 장소가 굉장히 화려했던 것 같네요. 장화홍련도 꽤 넓은 집이 배경이었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13:32   좋아요 0 | URL
시대적 배경이 70년대 중반이니 약간 다른 모양입니다. 하여튼 중요한 것은 그래도 단칸방 이런 이미지는 아니라는 것. 공포영화는 기본적으로 중산층의 공포를 다룹니다. 넓은 집이 필요하니깐 말이죠. 그 한계 때문에 여고괴담 같은 경우는 집 대신 학교를 선택하죠. 집에서 학교로 옮겨지니 그만큼 공포를 생산할 공간이 늘어난 것. 사실 여고괴담은 학원공포물이 아니라 하우스호러인 셈입니다. 한국 공포가 대부분 기숙사에서 진행된다는 것은 바로 주택이라는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궁여지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행복하자 2016-06-30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독주택이 아니라 빌라에서 벌어지는 공포물도 있었던것 같아요.. 영국이 아니라 미국인가? 주거공간이 소재로 한 영화중 공포스럽게 봤었는데 제목이 생각이 안나네요~~
오멘 이후로 가장 무섭다고 생각했던 영화같은데,

컨저링은 초등학생들이 가장보고싶어했던 영화로 기억합니다 ㅎㅎ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14:59   좋아요 0 | URL
초등학생들이 실화라고 하면 껌뻑 죽습니디ㅏ. ㅎㅎ.

빌라에서 벌어지는 공포라면 ... 모르겠네요. 킹덤인가?
나중에 생각나시면 영화 제목 좀 알려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