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것 으 로 만 족 하 겠 어 요 :
영웅본색 : 거울 보는 남자
두더지 발바닥처럼 생긴 모양을 한 과자가 있길래 먹어보았다. 뭐, 흔히 먹던 계란 과자 맛이었다. 가만 보니 정유 회사 쉘 - 로고를 닮았다. " 야, 쉘 - 로고 보면 조개 닮지 않았냐 ? " 친구가 한심한 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멍충아, 쉘이 조개라는 뜻이야. " 아 ~ 그렇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내가 먹은 과자의 정식 명칭은 마들렌'이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에서 나오는 그 유명한 마들렌 말이다. 프루스트가 극찬을 쏟아냈던 터라 마들렌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크게 실망했다. 에그그, 계란 과자였어 ? 우리가 첫사랑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기억이라는 시스템이 가동되기 때문이다.
기억은 < 조약돌 > 을 < 유리구슬 > 로 만드는 MSG다. 기억 속 대상이 현실로 호명될 때 우리는 꾀죄죄한 몰골에 실망하게 된다. 당신 앞에 나타난 첫사랑 남자는 기억 속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머리는 벗겨지고 배는 나오고 턱선은 무너졌다. 설상가상 아재 개그랍시고 껄껄 웃을 때는 대책이 없는거라. 당신은 < 속 > 으로 생각한다. 우아한 마들렌이 아니라 아우~ 겨우 계란 과자였어 ?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나 왜곡이 아니다. 기억이 소환한 대상은 과거의 눈높이에서 각인되고 고착된 象이니 말이다. 초등학생 때 눈으로 본 학교 운동장과 성인이 되어서 다시 찾은 초등학교 운동장이 같은 사이즈일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오우삼 감독이 연출한 영화를 최근에 다시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도 같은 느낌이었다. 주윤발이 << 영웅본색 >> 에서 알이 큰 선그라스에 롱코트를 입고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등장했을 때 수컷들은 모두 형광등 101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에 경탄하고는 했다. 우리는 돌맹이였고 그는 반짝거리는 유리구슬이었다. 폴 슈레이더는 << 필름 느와르를 특징 짓는 7가지 반복적인 테크닉 >> 中 하나로 물, 거울, 창문에 대해 거의 프로이트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반사하는 것에 대한 강박적 집착'이다. 그것은 자기 반영에 대한 황홀경(=나르시즘)이다.
▶ 영화 << 첩혈쌍웅 >> 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 장면은 느와르 장르가 본질적으로 나르시소스 신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주윤발이 머문 은신처는 온통 유리로 장식되어 있다. 유리는 나르키소스가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았던 " 딱딱한 물 " 이다. 두 사내는 모두 유리에 비친(혹은 유리 속에 갇힌) 이미지로 서로 교감한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 달콤한 인생 >> 은 물(자기 모습을 반사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호텔 바 내부는 " 물의 이미지 " 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온통 반사되는 것투성이'다. 이병헌은 호텔 바 어디에 서 있어도 반사된 자신을 볼 수 있다. 그는 밤이 스며든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며 황홀해 한다. 이 자기애'는 영화의 주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사랑하는 대상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자기애의 본질은 동성애'다. 영화 << 첩혈쌍웅 >> 도 이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배우 주윤발과 이수현이 하나가 되는 몰아일체 장면은 바둑판 무늬 유리문을 매개로 교차 편집되면서 오버랩된다.
이 두 영화는 팜 느와르(femme noire : 느와르 장르에서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악녀 캐릭터) 없는 느와르 영화'다. 그들은 마녀도 아니고, 요부도 아니고, 과부도 아니지만 남자를 죽음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검은 여성'이다. 피식, 웃음이 났다. 여자들은 거울을 보면 자기 얼굴에 대해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경향이 있고 남자들은 거울을 보면 대체로 자기 얼굴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다고 한다. 느와르가 남성 로망 판타지 장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물 이미지를 강박적으로 소환하는 까닭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생각해 보면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도 남자이지 않았나. 어쩌면 나르키소스 신화는 동성애 서사'인 셈이다.
사실 자기애에 대한 집착은 여성보다는 남성이 강하다. 공주병보다는 왕자병이 더 많다. 까마귀는 호기심이 많은 새라고 한다. 반짝거리는 물체를 보면 물어다가 둥지에 보관한다고. 그런 점에서 느와르 장르와 검은 까마귀는 서로 닮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