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과 환상 - 세계의 경계에 선 영화, 김소영 영화평론집
김소영 지음 / 현실문화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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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티스에서 호스트로 :

 

 


1 + 1 = 2 다

                                                                                       EBS방송 리얼극장 프로그램   :   사이가 소원해진 모녀가 해외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을 계기로 < 안 > 에 담고 있던 속내를 < 밖 > 으로 꺼내보자는 방송 기획. 자연 치유력이 당신의 화를 누그려뜨리리라. 딸은 전망 좋은 곳에 앉아 파란만장했던 지난 일을 회상한다. " 엄마, 내가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모델이 되었을 때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었을 때도 아니었어.

어릴 때 마루 바닥에 신문지 깔아놓고 온 가족이 모여 삼겹살 구워 먹었던 때 있었잖아. 그때 우리 가족은 행복했어. 그런 날들이 있었다는 게 신기해. "  딸은 동의를 구하듯 엄마를 쳐다본다. 동일한 기억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가족이라는 듯.  엄마의 눈가가 촉촉하다. " 넌 그때가 제일 행복했니 ?  엄마는 그때가 제일 불행했던 시절이었다.  네 아버지는 사업을 한다 뭐 한다 하지. 시댁에 딸린 식솔은 많지.  미래는 보이지 않지. 엄만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 "  딸에게는 행복이었던 순간이 엄마에게는 불행이 되는 기억의 편린 앞에서 비로소 딸은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_ 는 줄거리.

흥미로웠다.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지점은 하나의 기억을 두고 딸이 생각하는 이해와 엄마가 느끼는 이해가 각각 다르다는 점이다.  딸이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한 데에는 개인보다는 가족을 중심에 두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가족주의는 아빠 - 엄마 - 나로 구성된 삼위일체를 강조하기에 가족 구성원을 복수형이 아닌 단수형으로 뭉그려서 합일(合一)을 강조한다. 가족주의의 핵심은 1 + 1 = 1 이다.   아버지의 부재로 가장 노릇을 한 딸이  가족은 1 + 1 = 1 이라고 말할 때,  엄마는 1 + 1 = 2 라고 주장한다. 엄마는 하나의 기억을 공유한다는 게 반드시 동일한 해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인은 < 나 > 라는 독립적 개체보다는 < 우리 > 라는 집합체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내가 행복하면 가족이라는 집합체 구성원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가족 동반 자살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가부장은 자신의 불행을 가족 전체로 투사한다. 내가 불행하니 가족 모두 불행할거야). 1997년 IMF 사태는 한국 사회에 뿌리 박힌 가족의 단단한 결속력을 빠르게 붕괴시켰다. 가부장은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누워보는군_ 으로 시작하는 70년대 여성 호스티스 영화1)는 IMF 이후 남성 호스트 영화로 얼굴을 바꾼다. 전자가 몸을 팔아 가족 생계를 이어가는 여성 작부(酌婦)의 목소리를 빌려 가족 판타지를 채운다면,

후자는 몸을 써서 가족 생계를 이어가는 남성 작부(作夫)의 목소리를 빌려 가족 판타지를 채운다. 그들은 자릿세 명목으로 " 삥 " 을 뜯는 작부다2). 70년대 호스티스 영화가 여성-몸을 빌려서 남성 판타지를 채운다는 한계를 가지고는 있지만 그나마 여성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2000년대 호스트 영화는 그 목소리마저 지운다. 영화 << 비열한 거리 >> 에서 조인성은 << 영자의 전성시대 >> 에서 사장집 가정부로 시작해서 결국에는 한쪽 팔을 잃고 매춘부로 전락한 염복순(영자 역)을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가족의 색깔이다. 조인성이 " 몸을 팔아서 " 생계를 꾸리는 유사 가족은 조폭이다.

조직의 2인자인 조인성은 황 회장이 내미는 은밀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기회가 온 것이다. 이 영화는 성관계 없는 은밀한 거래'다. 황 회장은 조인성의 " 스폰서 " 다.  영화평론가 김소영은 이 영화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97년 IMF 위기는 세계화 이후 심해졌지만 한국 영화에서는 모든 사회적 문제가 남성 수사법으로 고민되어 영화적 재현의 장에 여성 문제가 사라져가는 것은 물론이고, 여성적 차이마저 남성 캐릭터에 흡수되고 있다. 여성을 어떤 방식으로든 말할 수 있는 재현에서의 정치적 공간이 대중영화에서 희미해져가고 있는 것이다. 호스티스는 호스트가 되고 호스티스는 호스트의 비극을 더 강조하는 보조물이다

 

- 김소영 영화평론집 << 비상과 환상 >> 347 쪽에서 발췌


 

김소영이 지적했던 것처럼 IMF 이후 쏟아진 조폭 영화는 호스트로 전락한 남성-몸을 투사한 후 이 < 비참 > 을 즐긴다. 그것은 일종의 위로이자 자기 연민이며 츄파츕스다. 자위용 사탕인 셈이다. 조인성의 죽음으로 인해 가족은 해체된다. 가족주의자의 쓸쓸한 죽음이다. << 달콤한 인생 >> 도 유사한 구조'다. 황 회장이 조인성의 스폰서라면, 강 사장(김영철 분)은 이병헌의 스폰서'다. 강 사장은 자신을 향한 선우의 지고지순을 시험하기 위해 신민아를 미끼로 내보낸다. 그녀는 이병헌을 유혹해서 파멸로 이끄는 팜 느와르( 악녀 )'다. 그는 과연 이 유혹 앞에서 흔들릴까 ? 이 영화는 그러니께 강 사장은 미끼를 던진 것이고 선우는 미끼를 물어분 것이여 ~ 


로 요약될 수 있다.  그도 조인성처럼 죽음을 맞는다. 조직이라는 가족을 해체하고 개인주의자가 되는 순간 " 사회적 거세 " 가 작동되는 것이다. 반면, 황우석 줄기세포 사기극을 다룬 영화 << 제보자 >> 는 가족주의와 개인주의가 충돌하는 영화'다. 줄기세포 사기극을 펼친 이장환 박사(이경영 분)는 그를 따르는 수많은 추종자들의 스폰서'다. 이장환 박사의 성공은 곧 국가의 성공이다. 가족주의자에게 가국3)(家國)은 가족의 원형이요, 국민은 家에 종속된 가족 구성원인 셈이다. 그렇기에 국익을 위해서는 " 얼룩 " 을 은폐되어야 한다. 낡고 해진 속옷은 집 밖에 내걸면 안 되는 이유'다.

황우석과 그 추종자들이 가족주의자라면 황우석 사건의 전말을 폭로한 제보자인 심민호(유영석 분)은 개인주의자'다. 더러운 빨래는 집 밖에에다 널어야 된다고 믿는 그는 가족, 조직, 사회, 국가 따위의 가치보다는 행동하는 양심에 방점을 찍는다. 그는 하나의 가족, 하나의 조직, 하나의 국가'라는 가치보다는 한 명의 양심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는 국민에 앞서 시민이고 개인주의자'다. 그 또한 병두(조인성)나 수인(이병헌)처럼 개인주의자로써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 가족주의자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는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사회는 家를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개인을 억압하는 경향이 짙다. 그렇다 보니 명망 높은 어르신들은 여자가 결혼해서 애 낳는 것이 애국이라고 말한다. " 나라 망신 " 이라느니 " 집안 망신 " 이라는 말버릇도 모두 가족주의가 과잉된 결과'다. 국민보다는 시민으로, 가족보다는 공동체 재건이 필요한 시점이다. 1 + 1 = 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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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0년대 호스티스 영화 :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따위

2)  작부 : < 역사 > 조선 시대에, 토지 여덟 결을 한 부로 조직하여 결세를 거두어들이던 일. 또는 그 징세 책임을 지던 사람(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인용)

3) 국가가 家를 최소 단위로 하는 사회 집단이라면, 가국(家國) 은 家를 중심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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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6-06-29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폭영화를 그나마 인상깊게 본 영화는 ˝비열한 거리˝였는데 지금도 올드앤뉴를 들으면 비열한거리만 생각나요~
80년대의 매춘류의 영화와 90년대이후의 조폭류의 영화가 그리 연결되는군요~ 조폭영화는 불편해서 거의 안봐요.. 아니 못 봐요

peepingtom 2016-06-29 13:48   좋아요 0 | URL
어 갑자기 글이 지워졌습니다. 조폭들도 몸으로 때우잖아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6-29 13:51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조폭 영화 잘 안 봅니다. 남성 자의식 과잉이라고나 할까요..
꼭 자기들만 힘들다고 징징대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봤냐, 남성들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다. 뭐. 이런 메시지 같다고나 할까요..

yureka01 2016-06-2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부고발자가 조직의 비리를 까발리면 ..조직의 잘못에 대한 반성 보다는 내부고발자를 응징하려 하는 집단성이 발휘되는 원리도 비슷한 작동기제가 아닐까 싶습니다..역시 곰발님의 분석글은 착착 감깁니다....재미와 생각꺼리 이 두개를 동시에 주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29 13:52   좋아요 1 | URL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줄기세포 제보자는 잘 살고 있을까 ?
서구 사회라면 영웅이 되었을 터인데 한국 사회에서는 분란을 일으키는 나쁜 사람이 되고..
사회적 거세를 당하지 않았을까 ? 이런 생각... 잘 지내고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마립간 2016-06-29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 <Mad Max: Fury Road, 2015>에서 `퓨리오사`, 여성 전사가 결국

`영화적 재현의 장에 여성 문제가 사라져가는 것은 물론이고, 여성적 차이마저 남성 캐릭터에 흡수되고 있`

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페미니즘 영화로 보질 않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09:29   좋아요 0 | URL
저도 동의합니다. 황상민 교수가 박근혜를 비판하면서 했던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죠.
박근혜는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탈을 썼을 뿐 사실은 남성이다. 뭐, 이런 의미였던 것 같군요..

samadhi(眞我) 2016-06-30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 다른 기억을 털어놓았을 때 아팠을 딸의 마음과 서로를 진짜로 이해하는 날이 오기까지 견뎌 온 엄마의 마음이 함께 풀리는 화해(?)의 시간이 아련하네요.

아직도 가족주의 같은 집단주의가 선이라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요. 개인 각자를 인정하는 목소리들이 당연해지는 때가 오긴 올 지, 그땐 좀 살 만한 세상이 되겠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09:31   좋아요 0 | URL
충, 효, 가족주의의 본질은 수직적 관계입니다.
수평적 관계로는 충, 효, 가족을 지탱할 수 없죠.
한국 사회, 특히 기득권이 죽어라 하고 충, 효, 가족주의 메시지를 강박적으로 뿌리는 이유는
기득권에게 수직적 관계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뭐.. 그런 생각...


앞으로 살 만한 세상은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나라 뜨는 게 유일한 대안이지 싶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