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라벨 꼼꼼 가이드 - 건강한 식품선택을 위한
강희진 외 지음 / 우듬지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                                               


라 면 에  김 치 가  없 었 더 라 면  :



 

 

 

 



 

푸드 나쇼날리즘





 

                                                                                                                                                                                     비만을 방지하고 혈압을 낮추며, 암을 예방하고 노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음식은 무엇일까 ? 정답은 김치란다. << 식품 라벨 꼼꼼 가이드 >> 라는 책에서 가이드가 내놓은 김치에 대한 정의다.

전문가들이 내놓은 해설이니 불만을 품고 토를 다는 놈은 배반, 배신, to부정사 취급 당하기 십상이다. 이 설명이 맞는다면 김치는 불로초를 능가하는 음식이다. 김치 먹고 암을 극복했습니다아 ~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과다 나트륨 섭취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김치(김치를 짠지라고도 한다. 말 그대로 김치는 소금 덩어리 짠 음식이다)가 비만을 방지하고 혈압을 낮춘다는 설명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짠맛이 비만과 혈압을 높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김치는 비만과 혈압을 높이는 주요 음식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책에서는 나트륨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고 지적한다는 데 있다.

 


서울환경연합이 밝힌 라면 한 개당 평균 나트륨 함량은 2,075mg으로 우리나라 1일 성인 섭취 상한선인 3,500mg의 59%에 해당하며, 세계보건기구에서 정한 1,968mg을 훌쩍 넘어선다. 라면 한 개를 먹는 것만으로도 1일 상한선을 넘어서는 나트륨을 섭취하게 되므로 영양성분표에서 나트륨 함량을 꼭 확인하자.( 59쪽)

 

왜 이 책의 저자들은 음식을 섭취할 때 나트륨 함량을 꼭 확인하자면서 김치의 과다 나트륨 함량에 대한 지적은 안 하는 것일까. 나트륨이 건강의 적이라면 라면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더욱 좋겠죠 ?  _  라는 친절한 해석 정도는 붙여야 하는 것 아닐까 ? 그리고 이 세상에서 비만을 방지하는 음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음식은 열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래기 같은 내용을 읽고 있자니 헛웃음만 난다. 그래도.......   여러분은 김치는 비만을 방지하고 혈압을 낮추며 암을 예방하고 노화를 억제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to부정사(취급을 받으며) 산다는 것은 고달픈 일이니까. 우리 모두 합창합시다. 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아 ~                                

이 귀한 보물을 일본이 " 기무치 " 라는 이름으로 소비하고 있으니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열불 날 일이다. 김치 예찬론자이자 자나 깨나 나라 걱정을 하는 이들은 " 기무치 " 라는 명칭이 원조(한국)를 감추고 궁극에는 일본화하려는 고도의 개수작이라는 주장을 한다. 인도에서는 " 마샬라 " 라고 부르는 음식을 한국에서는 " 카레 " 라고 부르는데, 그렇다면 카레라는 명칭은 한국인의 개수작'일까 ?  원조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라도 그 나라 발음으로 발음해야 한다면, 우리는 왜 " 오뎅 " 을 " 어묵 " 이라고 가르치는 것일까 ?  나는 한식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숭배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징그럽다는 생각이 든다.

한식이 슬로푸드의 대명사이기에 건강식이라는 논조에 대한 반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삼겹살이 불판에서 익는 속도를 감안하면 삼겹살은 패스트푸드가 아닐까 ?  직장인으로 붐비는 식당에 앉자마자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면 그것도 패스트푸드가 아닐까 ?  햄버거가 패스트푸드라면 삼겹살도 패스트푸드다. 또한 짜장면이 패스트푸드라면 김치찌개도 패스트푸드'다. 음식은 음식일 뿐이지 열등과 우등을 가르는 문화-리트머스紙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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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20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족주의가 너무 과하면 타국 음식을 선호하는 개인의 취향을 짓밟는 경향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일본 음식 한 번 먹었거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매국노라고 비난하는 사람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21 09:11   좋아요 0 | URL
오죽 할 게 없으면 음식에서 민족주의를 찾습니까. 한심할 뿐입니다. 이러다 보니 이명박 때 우리의 김윤옥이 학식 세계화한다고 김치 칵테일이나 만들고...ㅎㅎ
 





나는 스타일을 신뢰한다

 

 

 

                                                                   스타일을 신뢰하는 편이다. 전자제품을 살 때에도 성능보다는 디자인이 좋은 제품을 구매하게 된다. 사람들은 치장(겉)을 보지 말고 마음 됨됨이(속)을 보라고 충고하지만 내 귀에 그런 소리는 개 풀 뜯어먹다가 어금니 빠지는 소리처럼 들린다. 마찬가지로 마음보다는 얼굴부터 보게 된다. 남진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예뻐야 여자지 _ 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개 풀 뜯어먹다가 어금니 빠지는 소리'다.

 

스타일이 좋은 사람이 좋다. 그런데 " 스타일이 좋은 사람 " 에 대한 내 평가는 다른 이와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스타일이 좋은 사람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스타일이 후진 사람부터 말하는 게 순리일 것 같다. 그해의 유행이나 브랜드에 민감한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롱 패딩이 유행인지 너나 할 것 없이 롱 패딩을 입고 다니는데 직립보행하는 애벌레 같다.  자기 깐에는 유행을 선도하는 나는야 패셔니스트 _ 라고 외치겠지만 글쎄올시다. 아이고, 시바. 모르것습니다.                   좋은 스타일의 핵심은 개성이지 몰개성이 아니지 않은가. 좋은 스타일은 개성과 조화의 합이다.

 

 

- ​나는 차별화된 개성에는 성공했지만 조화에는 실패했다. 스타일의 최대 적은 과잉이다


내 기준에 있어 가장 완벽한 스타일은 노숙자다.  은유도 아니고 비유도 아니며 유머도 아니다.  노숙자야말로 가장 완벽한 패셔니스트다.  산발한 머리와 덧대어 입은 옷은 개성과 함께 조화롭다. 왜냐하면 노숙자가 옷을 입으면 그 어떤 컬러도 궁극에는 무채색의 모노가 되기 때문이다. 자의든 타의든 노숙자의 외피는 통일성을 대표한다.  한때 나도 그들이 입는 스타일을 따라 한 적이 있으나 악취를 견디지 못하고 포기한 적이 있다.  여기까지는 삼천포다. 지금부터가 서울로 가는 길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시의 핵심은 속이 아니라 겉이다.  그런데 입시용 시 교육은 온통 신체 해부에 열을 올린다.

나는 시각적 쾌락을 위해서 시를 읽는다. 스타일이 후진 시'는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시는 본질적으로 시옷을 입은 명조체의 세계이다. why ?  시라는 장르는 명조체라는 옷이 가장 잘 어울리니까. 그 사실을 무시하고 궁서체를 입히는 순간 아우라는 사라지게 된다. 배우 조인성에게 모시 적삼을 입힌 꼴이다. 상상해 보라. 아이고, 시바. 잘 모르것습니다.                         스타일이 좋은 시가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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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9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9 15:46   좋아요 0 | URL
그런데 좀 과합이다. 제 패션은 과잉이 넘쳐서 조금 아방가르드하게 되었습니다..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11-19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께서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셨음을 사진집(?)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9 16:12   좋아요 1 | URL
사진집이라니요... ㅎㅎㅎㅎㅎ 고맙습니다.

syo 2017-11-19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집을 유심히 관찰해보니, 저 인물들이 전부 동일인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syo의 날카로운 눈을 속일 수 있을까요?

이를테면, 5행 2열의 인물을 곰발님이라고 하면, 6행 6열의 인물은 곰곰발님, 7행 3열의 인물은 곰곰곰발님 정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유사하나 같지는 않은. 훗.

곰곰생각하는발 2017-11-20 10:59   좋아요 0 | URL
10년 넘게 세월의 차이가 있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ㅎㅎ
 
인간과 공간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 번역총서 5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 지음, 이기숙 옮김 / 에코리브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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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게    모 르 게    꽃 게   :

 

 

 


 


니     은




 

잠이 든다는 것은 자세를 포기하는 것이다

- 존 호이헨 반 린쇼텐

 



유독 키가 컸던 남자는 고시원에 거주한 지 2년이 넘었다고 했다. 거제도에서 상경한 그는 고시를 준비한다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친해진 계기는 " 거제도 " 였다.  나는 아는 형님을 따라 거제도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몽돌 해안, 고현, 외도, 해당화 군락, 고등어회나 멸치회 따위를 이야기할 때마다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꽃이 폈다. 아름다운 사내였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이었던 그는 내가 싱싱한 멸치는 설탕보다 더 다아아아아아아알짝지근하지 _ 라고 말하면 침을 삼키곤 했다. 어느 날 고시원이 열흘 동안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바람에 그 기간 동안 급히 숙식을 해결할 곳을 찾아야 한다며 나에게 구조 요청을 했을 때 나는 흔쾌히 그에게 열흘 동안 내 방을 함께 쓰자고 제안했다. 방은 작아도 내 침대는 킹사이즈야 !                  다 큰 사내 둘이 킹사이즈 침대에 함께 눕는다는 것이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그가 내 집에 온 첫날부터 문제가 발생할 줄은 몰랐다.  그는...... 그러니까, 그게, 음, 그러니까, 좋다 !  민망하지만, 아아......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서 이 자리를 빌려 말하련다. 그는.......

잠버릇이 고약했다.  잠자리가 불편하여 한밤중에 눈을 떠보니 나는 침대 모서리 끝에서 침대 아래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반대로 객(客)은 침대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가 중앙을 점령한 채 나를 변방으로 내쫓은 것은 아니었다. 몸은 침대 맨 끝 벽에 붙어 모로 누웠으나 다리가 침대를 가로지르는 바람에 " 니은(ㄴ) 자 자세 " 로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뻐꾸기 둥지 밖으로 떨어진 나는 하는 수 없이 난방이 되지 않는 바닥에서 오들오들 떨며 잠을 청해야 했다(이른 봄이었는지 늦은 가을이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문제는 둘째 날에도, 셋째 날에도, 넷째 날에도, 다섯째 날에도 그의 사나운 잠자리가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이래서 머리털 검은 것은 집 안에 들이는 게 아니라니까.                         평정심을 잃은 나는 그를 깨워 투덜대기 시작했다. 잠결에 타박을 들을 때마다 그는 바로 누워 다리를 쭉 뻗어 갈치가 되었지만 다시 깊은 잠에 빠지면 형상기억 섬유'처럼  이내 새우로 복원되었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한 달이 지난 후였다. 노량진에서 그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새롭게 단장했다는 고시원이 궁금하여 잠시 구경을 하기로 했다. 좁고 어두운 복도를 따라 그가 2년째 머무르고 있다는 고시원 객실 방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나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 또한 쪽방 같은 고시원에서 산 경험이 있어서 고시원 환경을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그 친구가 머무는 방은 특이했다.

그 객실은...... " 니은(ㄴ) 자 방 " 이었다. 그가 머무는 방에는 공간의 1/4를 차지하는 사각형 건물 기둥이 방 모서리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모난 공간은 으레 주거 공간이 아닌 비품 창고로나 쓰이기 마련인데 건물주 입장에서는 돈 욕심 때문에 객실로 개조한 것처럼 보였다. 이곳에서 그는 2년을 버틴 것이다. 그는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무안하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형, 이 방이 살기는 불편해도 이 고시원에서 제일 싸요. 유난히 키가 컸던 그가 발을 뻗고 자기에는 턱없이 좁은 공간이었다. 비로소 나는 그의 사나운 잠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2년 동안 니은 자 고시원 객실에서 ㄴ자 잠'을 청했던 것이다.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모방한 그의 초라한 의태를 떠올리자 나는 먹먹해졌다. 

 

-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의 << 인간과 공간 >> 은 제목 그대로 인간과 공간이 맺는 관계를 탐구한다. 그가 풀어놓은 글감은 하이데거 철학 內-存在, In-sein 과 가스통 바슐라르의 << 공간의 시학 >> 에서 많은 빚을 지고 있지만,  << 인간과 공간 >> 은 << 공간의 시학 >> 보다 읽을거리가 더 풍부하고 사유 또한 더 깊다(개인적 판단이다).  이를 두고 청출어람이라 하는가 보다.  그 사람이 먹는 것이 그 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그 사람이 머무는 공간 또한 그 사람을 만든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 보인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그것은 서체와 문체가 맺는 관계에서도 종종 엿볼 수 있다.

같은 시라 해도 돋음체로 인쇄된 것과 명조체로 인쇄된 것은 읽을 때 느낌이 다르다. 서체가 때로는 문체를 만든다. 모든 시집은 명조체로 쓰여진다. 좋은 시는 명조체로 인쇄되었을 때 최적화된 시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명조체에 맞춰 시를 쓴다. 탓할 일은 아니다. 시는 명조체의 세계이니까. 거제도에서 상경한 그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공간을 꾸몄다기보다는 공간에 맞춰 자신을 인테리어한 경우'다. 이처럼 인간은 알게 모르게 꽃게 !   아, 농담이다.  이처럼 인간은 알게 모르게 공간의 영향을 받으며 사유 또한 그 영향을 받는다. 하이데거는 << 존재와 시간 >> 에서 " 현존재는 공간적이다 " 라고 지적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은 인간은 살면서 언제나 자신을 둘러싼 공간에 대한 관계를 통해서 규정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 방 > 이라는 공간은 사회가 요구하는 자세에서 해방된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장소'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직장에서의 예의바른 태도는 불량해진다. 집은 직립을 허문다. 그리고 잠이 든다는 것은 자세를 포기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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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7-11-19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댁에 잘 들어가셨습니까? 막판에는 참 경황이 없었네요. 저는 다행히 막차를 잡아서 집에 잘 들어왔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9 10:2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그러니까요. 시간이 간당간당했을 겁니다. 수다맨 님 차 놓치셨으면 같이 찜질방으로 데려가려 했었는데..
저는 뭐... 근처에서 갈비탕 한 그릇(정말 맛은 없더군요) 비우고 무사귀환했습니다. 사실 어제는 취하지 않았음..

담달에서 함 모입시다..
 









 

 

 

언어는 정치적이다




 

 

 

 

 

 

 

 

                                                                                            남들이 책상에 앉아서 학문에 힘을 줄 때,  나는 주로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학문에 힘을 준다.  누군가 친절하게 항문에 힘을 준다고 써야 할 것을 학문에 힘을 준다고 잘못 쓰셨어요. 호호호 _ 라고 지적한다면 나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리라. " 아닙니다. 저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학문에 힘씁니다. "

몸속에 있는 모든 적폐를 몸밖으로 내보낼 때까지 변기에 앉아서 국어사전을 읽는다. 스스로 탁월한 결정이란 생각을 한다. 화장실에서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그 시인에 대한 모독이며 << 폭풍의 언덕 >> 따위를 읽는 것도 그 작가에게 민폐'다. 저토록 쓸쓸한 몰락 앞에서 똥을 누면서 함께 슬퍼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화장실에서는 만만한 게 사전이다, 사전은 읽는 이의 서정을 요구하지는 않으니까(사전을 읽다가 우는 놈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 미친놈이다). 나랏 말쌈이 듕국과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한 국어사전을 읽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왕정복고로 되돌아가려는 잔재들이 눈에 보인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신분에 따른 차별 없이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한글이라는 세계는 철저하게 남근 중심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좆은 항상 젖보다 앞선다.  " 부부(夫婦) " 라는 단어만 해도 그렇다. 아내(婦)보다 앞서는 것은 남편(夫)이다.  그러니까 婦夫라는 단어 조합은 가부장 사회에서는 성립될 수 없다.  외국어 중에 서열을 이미 못 박는 경우는 별로 없다.  부부를 뜻하는 (married) couple'이라는 단어에는 성차에 따른 서열의 우선순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차가 아닌 남성 간 서열을 정해야 되는 경우는 나이가 권력이 된다. " 형제兄弟 " 라는 단어는 나이가 유세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같은 이유로 " 자매형제 " 라는 단어는 없지만 " 형제자매 " 라는 단어는 있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는 시대에 한글은...... 유감스럽게도 지위의 고하를 졸라 따지는 언어'로 성장했다. 그것이 어디 언어 탓이랴. 그런데 한글 특유의 서열 정리가 딱 한번 전복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 연놈 " 이라는 단어'다.  제일 먼저 욕을 먹는 부류는 놈이 아니라 년'이다. 무릎을 탁 _ 치고 아 _ 하게 된다.  이토록 치밀한 어깃장 ! 민물장어도 아니면서 꽤나 꼼꼼하시다. 이처럼 한글은 성차별적일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권력을 좇는다는 점에서 이명박스럽다. 한글의 성차별적 사례를 열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굳이 특정한 성을 명시하는 것도 성차별적이다.  여류 화가나 여류 소설가는 있지만 남류 화가나 남류 소설가라는 표현은 없다.  그리고 " 여교사 " 라는 단어는 있지만 " 남교사 " 라는 단어는 없다.  여배우, 여가수, 여교수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이런 단어들은 성중립적 단어가 아니라 성차별적 단어에 해당된다. 만약에 성을 굳이 명기해야 된다면 " 여교사 " 라는 단어보다는 " 여성 교사 " 라는 문장 구성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언어는 정치적이다 ■

 

 

 

 

 

덧대기   ㅣ    순우리말인 " 가시버시 " 는 부부(夫婦)라는 뜻인데 여기서 < 가시 > 는 아내를 < 버시 > 는 남편을 뜻한다. 그런데 이 단어를 한자 조합으로 구성한 것이 바로 夫婦다.  이런 단어들은 대부분 양반 계급이 한자를 조합해서 만들었다. ​그러니까 성차별적 언어를 창조하신 주체는 지배 계급인 양반이다. 이밖에도 부부를 가리키는 우리말에는 ‘팍내’, ‘한솔’이 있는데, < 팍내 > 는 가슴팍을 맞대고 사는 사이를 뜻하고 < 한솔 > 은 옷감의 끝단을 서로 잇는 하나의 솔기처럼 서로 엮인 사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부부를 의미하는 순우리말에는 성차에 따른 위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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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17-11-16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렇네요. 남녀라는 말에서도 남자가 우선이고... 정말 언어는 정치적이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10:03   좋아요 0 | URL
모든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선남선녀라고 하지 선녀선남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비로그인 2017-11-16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는 사람을 미치게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13:40   좋아요 0 | URL
동의합니다아.

cyrus 2017-11-16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래 ‘언니‘가 남성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동성을 부르는 호칭이었어요. 여성이 언니를 부를 때 ‘형님‘ 호칭을 사용했어요. 언제부터인가 성별로 구분해서 부르는 호칭으로 변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13:43   좋아요 0 | URL
오 !!!!!!!!! 그렇습니까 ? 형님은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는군요. 왜 아랫 동서가 윗 동서에게 형님 형님 하니까요..
그런데 남성이 보다 나이 많은 남성에게 언니라고 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13:47   좋아요 1 | URL
오, 정말 그러내요. 이런 내용이 있군요. 사실 한국어의 오염 대부분은 한자화되면서 만들어졌거든요.





언니라는 단어는 원래 손 위의 사람을 일컫는 순 우리말이다.

그러나 세종대왕님께서 창제한 훈민정음은 당시 유학자들에게 암글, 언문 등의 호칭으로

비하되어 불리며 버림받았다.

그래서 주로 신분이 낮거나 여자들 사이에서만 이 호칭이 사용되었으며(양반이나 왕족

사이에서는 형(兄)이라는 호칭이 사용되었다.) 후대에 이르러서는 여자들만 사용하는 탓에

손 위의 자매를 뜻하는 단어로서 점점 굳어졌다.

일례로 드라마 추노에서는 남자들끼리 손위의 사람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cyrus 2017-11-16 13:50   좋아요 0 | URL
드라마 <추노>에 왕손이(김지석)가 이대길(장혁)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대사가 나왔어요. 홍명희의 《임꺽정》 에 보면 꺽정의 의형제 동생들이 ‘꺽정 언니‘라고 부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수다맨 2017-11-16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에 댓글을 써주신 cyrus님 얘기 듣고 생각난 건데 몇몇 원로 작가들(고 이문구, 현기영 등) 글에도 남성이 동성 손위 형제를 일러서 언니라고 부르는 대목이 간혹 등장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이문구의 ˝관촌수필˝에 수록된 ‘공산토월‘이라는 자전적 단편에서는 어린 주인공이 형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지요.

cyrus 2017-11-16 13:54   좋아요 0 | URL
《관촌수필》에도 ‘언니‘ 호칭의 옛 의미가 나오는군요. 안 읽어본 작품이라서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13:57   좋아요 0 | URL
생각해 보니깐.... 장길산인가.. 거기서도 언니언니했던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14:22   좋아요 0 | URL
이런 단어를 만든 이는 양반 지배 계급이죠. 양반이 한자를 사용했으니까.
부부의 순우리말이 가시버시인데 여기서 가시는 아내고 버시는 남편입니다. 이걸 한자 조합으로 구성하면서
부부가 된 거죠..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14: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부를 가리키는 우리말에는 ‘팍내’, ‘한솔’ 따위가 있다. 가슴팍을 맞대고 사는 사이, 혹은 옷감의 끝단을 서로 잇는 하나의 솔기처럼 서로 엮인 사이라는 뜻쯤 되겠다. - 순우리말에는 성차에 따른 위계가 없다.

책한엄마 2017-11-16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배워가요.북플이 이상해졌는지 댓글달기가 자꾸 에러나요.알라딘 어플로 들어와 남겨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21:15   좋아요 0 | URL
확실히 에러가 많이 나죠 ? 하다 보면 나같은 사람이 성질나서 금방 포기하게 됩니다..

임모르텔 2017-11-16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집에선 성차별없었는데, 밖에나와서 성차별받고 충격받은 적이!
차별하는 심리...곧 생존공포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두려움....

팍내..한솔... 글느낌 참 좋네요^^
곰발님이 강사하면 인기강사였겠어요... 귀에 쏙~들어오는 쿵푸(공부)예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21:17   좋아요 0 | URL
순우리말들이 정말 예쁜 말들이 많습니다. 모서리가 없는 둥근 느낌이 많이 들죠.
이걸 양반이랍시고 사대주의에 빠져서 이상한 위계를 만들어놓은 것이 지금의 한자 조합 단어들입니다.
얼마나 좋아요. 팍내라는 뜻도, 한솔이라는 뜻도.... 이건 지배 계급인 양반들이 망쳤습니다.


물고기 이름만 봐도 그렇습니다. 생선답게 생긴 이름은 대부분 한자 조합으로 양반들이 만들었습니다.
못생긴 이름은 아예 짓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글 이름 물고기는 대부분 못생겼죠.
아귀(물텅벙이)만 봐도 그렇습니다..

음... 2017-11-17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남교사란 단어가 없다구요?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는데??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7 10:07   좋아요 0 | URL
사전에 남교사라는 말이 있나요. 전 들어보질 못했씁니다. 남선생이란 단어는 있어도 남교사라는 단어는 없죠.

마립간 2017-11-17 08: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음양 陰陽은 왜 양음 陽陰이 아닌 음양일까요? (이 댓글이 페미니즘과 관련되었다면 삭제하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7 10:06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러네요.. 음양이 뭐 광범위한 함의를 담은 단어이니.... 비단 여남의 뜻만 내포한 것은 아니니 그리 되었나 봅니다.

캐모마일 2017-11-17 16:54   좋아요 3 | URL
아마 도가를 비롯한 제자백가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사고와 주역의 지천태(곤괘가 건괘 위에 있는 상)을 길조 중의 길조로 생각하는것처럼요. 조선시대 중궁전의 이름인 교태전도 이 지천태괘에서 연원했다고 하지요. 곰곰님 말씀처럼 남여뿐 아니라 당시 우주관과 다양한 철학적 함의를 담고 있어서 그렇지 않을런지요.
 



 

 

 

 

 

 


 


잘 만든 영화가 반드시 좋은 영화는 아니다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김승옥의 << 무진기행 >> 이 차지하는 위상을 굳이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이 작품이 시대를 앞서는 세련된 문체를 제외하면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다.

권태에 빠진 남자가 여행을 통해 묘령의 여인을 만나 원기를 회복한다는, 여성을 단순히 고개 숙인 남성의 보양식 정도로 소모하는 문학작품이라고나 할까 ?   이 소설은 철저하게 히마리 없는 남성의 발기를 위해 서사가 복종한다는 점에서 " 모던 " 하다기보다는 " (남)근대 " 적이다. 개불처럼 물러터진 남근을 딱딱하게 만드는 것이 문학의 목적인가 ?  문학은 비아그라'가 아니지 않은가(이 분야의 대가는 윤대녕이다. 윤대녕 소설은 장르적으로 순문학이 아니라 비아그라 문학이다) !  한국 남성 문화에 대해 체질적으로 반감을 가진 나는 자기 연민을 바탕으로 한 " 남성성 회복 " 이나 " 남성성 과시 " 를 

위한 서사를 보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고는 한다. 한국 사회는 남아에 대한 선호가 워낙 강하다 보니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 " Ladies & Gentleman " 을 숙녀 신사 여러분이 아닌 " 신사 숙녀 여러분 " 이라고 번역할 때마다 지랄도 풍년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한국 유교 문화의 특징은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강자에 대한 기득권을 먼저 강조한다. 언어의 형태를 보아도 강자는 약자보다 선행한다. 남녀라는 단어는 있지만 여남이라는 단어는 없다. 하지만 이 구조가 딱 한번 바뀌는 경우가 있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남과 여의 순열이 바뀐다. 우리는 남녀를 싸잡아서

욕을 할 때 놈 년이라고 하지 않고 연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나는 " 연놈 " 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한국 남성 사회의 집요하고 꼼꼼한 찌질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내가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그의 영화가 전형적인 남조선 불알후드 동맹에서 벗어나 있다는 데 있다.  김기영 영화는 여성이 그 시대가 요구하는 롤모델에서 벗어나 전복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며 혁명적인 영화다.  << 육식동물 >> 만 봐도 그렇다. 시작은 권태에 빠진 남자가 젊은 호스티스를 만나 원기를 회복한다는,  전형적인 남성 성인용 비아그라 서사를 그대로 답습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역할 놀이는 전복된다. 아내는 바람난 남편의 정부를 시기하기는커녕 정부가 남편을 길들이는 조건으로 정부에게 양육비를 지급한다. 지아비를 섬기고자 하는 태도나 남성에 대한 존경은 없다. 말 그대로 남자는 애완동물로 취급된다. 영화가 워낙 뒤죽박죽이라 컬트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지만 참고 견디면 " 퍽유-시네마 " 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이보다 더 황당하고 난해한 영화를 찾는다면 <<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 를 추천한다. 영화적 완성도가 워낙에 형편없어서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펑 ! 펑 ! 펑 !  캄캄한 동굴에서 뻥튀기 기계에서는 쉴 새 없이 뻥튀기 과자가

허공을 향해 날아가고 남녀가 그 밑에서 섹스를 하는 장면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왜, 동굴 속에 뻥튀기 기계가 있을까 ? _ 라고 의문을 갖는 순간 이 영화를 보는 재미는 감소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금 내가 한국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인지 과테말라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기영 영화가 좋다. 내 말에 동의할 사람은 없겠지만 김기영 감독은 알프레드 히치콕과 에드워드 우드를 반반 섞어놓은 인물 같다. 끝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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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7-11-13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상을 쪼개어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항상 부럽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09:09   좋아요 0 | URL
ㅎㅎ 아닙니다. 과찬이십니다..

포스트잇 2017-11-1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테말라 영화..ㅋㅋ
뻥튀기가 펑펑 날아다니는 장면은 웃을수도 울수도 없던데요..
..김기영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여성들이 정작 ‘전복적‘ 쾌감을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 시대의 한국영화들은 워낙 손을 많이 탄탓에 그게 더 기괴하던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09:09   좋아요 0 | URL
여성성의 전복성이라기보다는
남성성의 전복성이 김기영 감독 영화의 특징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기영 영화 속 남자는 대부분... 좀 띨띨해요. ㅎㅎ

수다맨 2017-11-16 0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기영의 ˝하녀˝는 재작년 무렵에 곰곰발님의 추천으로 보았고, 임상수의 ˝하녀˝는 군복무하던 시기에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두 작품은 정확히 50년(김기영 영화는 1960년에, 임상수 영화는 2010년에 나왔지요)의 시차가 나는데도 오래전 작품인 전자가 월등히 낫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치정과 막장에 재미 이상의 ‘쫄깃한 무언가‘를 부여할 줄 아는 감독을 높이 치는데 김기영 감독은 제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제가 최하로 여기는 감독은 치정과 막장을 오로지 ‘그럴듯한 비쥬얼로만‘ 보여주는 사람이지요. 박하게 말하면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보고 나서 노출신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더군요. 저는 전도연이 불타서 죽는 장면보다, 이은심이 태연한 표정으로 살아있는 생쥐를 들고 흔드는 장면이 더 소름끼치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09:08   좋아요 0 | URL
ㅎㅎ임상수의 하녀는 정말 끔찍했죠. 아무리 스타일이 화려해도 본질을 꿰뚫을 수는 없습니다. 스타일에 집착하면 항상 본질을 놓치게되요.. ㅎㅎ이은심.. 정말 아주 독특한 비주얼이죠 ? 그 영화에서 대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