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영화가 반드시 좋은 영화는 아니다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김승옥의 << 무진기행 >> 이 차지하는 위상을 굳이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이 작품이 시대를 앞서는 세련된 문체를 제외하면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다.
권태에 빠진 남자가 여행을 통해 묘령의 여인을 만나 원기를 회복한다는, 여성을 단순히 고개 숙인 남성의 보양식 정도로 소모하는 문학작품이라고나 할까 ? 이 소설은 철저하게 히마리 없는 남성의 발기를 위해 서사가 복종한다는 점에서 " 모던 " 하다기보다는 " (남)근대 " 적이다. 개불처럼 물러터진 남근을 딱딱하게 만드는 것이 문학의 목적인가 ? 문학은 비아그라'가 아니지 않은가(이 분야의 대가는 윤대녕이다. 윤대녕 소설은 장르적으로 순문학이 아니라 비아그라 문학이다) ! 한국 남성 문화에 대해 체질적으로 반감을 가진 나는 자기 연민을 바탕으로 한 " 남성성 회복 " 이나 " 남성성 과시 " 를
위한 서사를 보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고는 한다. 한국 사회는 남아에 대한 선호가 워낙 강하다 보니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 " Ladies & Gentleman " 을 숙녀 신사 여러분이 아닌 " 신사 숙녀 여러분 " 이라고 번역할 때마다 지랄도 풍년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한국 유교 문화의 특징은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강자에 대한 기득권을 먼저 강조한다. 언어의 형태를 보아도 강자는 약자보다 선행한다. 남녀라는 단어는 있지만 여남이라는 단어는 없다. 하지만 이 구조가 딱 한번 바뀌는 경우가 있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남과 여의 순열이 바뀐다. 우리는 남녀를 싸잡아서
욕을 할 때 놈 년이라고 하지 않고 연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나는 " 연놈 " 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한국 남성 사회의 집요하고 꼼꼼한 찌질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내가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그의 영화가 전형적인 남조선 불알후드 동맹에서 벗어나 있다는 데 있다. 김기영 영화는 여성이 그 시대가 요구하는 롤모델에서 벗어나 전복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며 혁명적인 영화다. << 육식동물 >> 만 봐도 그렇다. 시작은 권태에 빠진 남자가 젊은 호스티스를 만나 원기를 회복한다는, 전형적인 남성 성인용 비아그라 서사를 그대로 답습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역할 놀이는 전복된다. 아내는 바람난 남편의 정부를 시기하기는커녕 정부가 남편을 길들이는 조건으로 정부에게 양육비를 지급한다. 지아비를 섬기고자 하는 태도나 남성에 대한 존경은 없다. 말 그대로 남자는 애완동물로 취급된다. 영화가 워낙 뒤죽박죽이라 컬트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지만 참고 견디면 " 퍽유-시네마 " 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이보다 더 황당하고 난해한 영화를 찾는다면 <<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 를 추천한다. 영화적 완성도가 워낙에 형편없어서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펑 ! 펑 ! 펑 ! 캄캄한 동굴에서 뻥튀기 기계에서는 쉴 새 없이 뻥튀기 과자가
허공을 향해 날아가고 남녀가 그 밑에서 섹스를 하는 장면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왜, 동굴 속에 뻥튀기 기계가 있을까 ? _ 라고 의문을 갖는 순간 이 영화를 보는 재미는 감소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금 내가 한국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인지 과테말라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기영 영화가 좋다. 내 말에 동의할 사람은 없겠지만 김기영 감독은 알프레드 히치콕과 에드워드 우드를 반반 섞어놓은 인물 같다. 끝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