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공간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 번역총서 5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 지음, 이기숙 옮김 / 에코리브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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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게    모 르 게    꽃 게   :

 

 

 


 


니     은




 

잠이 든다는 것은 자세를 포기하는 것이다

- 존 호이헨 반 린쇼텐

 



유독 키가 컸던 남자는 고시원에 거주한 지 2년이 넘었다고 했다. 거제도에서 상경한 그는 고시를 준비한다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친해진 계기는 " 거제도 " 였다.  나는 아는 형님을 따라 거제도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몽돌 해안, 고현, 외도, 해당화 군락, 고등어회나 멸치회 따위를 이야기할 때마다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꽃이 폈다. 아름다운 사내였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이었던 그는 내가 싱싱한 멸치는 설탕보다 더 다아아아아아아알짝지근하지 _ 라고 말하면 침을 삼키곤 했다. 어느 날 고시원이 열흘 동안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바람에 그 기간 동안 급히 숙식을 해결할 곳을 찾아야 한다며 나에게 구조 요청을 했을 때 나는 흔쾌히 그에게 열흘 동안 내 방을 함께 쓰자고 제안했다. 방은 작아도 내 침대는 킹사이즈야 !                  다 큰 사내 둘이 킹사이즈 침대에 함께 눕는다는 것이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그가 내 집에 온 첫날부터 문제가 발생할 줄은 몰랐다.  그는...... 그러니까, 그게, 음, 그러니까, 좋다 !  민망하지만, 아아......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서 이 자리를 빌려 말하련다. 그는.......

잠버릇이 고약했다.  잠자리가 불편하여 한밤중에 눈을 떠보니 나는 침대 모서리 끝에서 침대 아래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반대로 객(客)은 침대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가 중앙을 점령한 채 나를 변방으로 내쫓은 것은 아니었다. 몸은 침대 맨 끝 벽에 붙어 모로 누웠으나 다리가 침대를 가로지르는 바람에 " 니은(ㄴ) 자 자세 " 로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뻐꾸기 둥지 밖으로 떨어진 나는 하는 수 없이 난방이 되지 않는 바닥에서 오들오들 떨며 잠을 청해야 했다(이른 봄이었는지 늦은 가을이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문제는 둘째 날에도, 셋째 날에도, 넷째 날에도, 다섯째 날에도 그의 사나운 잠자리가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이래서 머리털 검은 것은 집 안에 들이는 게 아니라니까.                         평정심을 잃은 나는 그를 깨워 투덜대기 시작했다. 잠결에 타박을 들을 때마다 그는 바로 누워 다리를 쭉 뻗어 갈치가 되었지만 다시 깊은 잠에 빠지면 형상기억 섬유'처럼  이내 새우로 복원되었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한 달이 지난 후였다. 노량진에서 그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새롭게 단장했다는 고시원이 궁금하여 잠시 구경을 하기로 했다. 좁고 어두운 복도를 따라 그가 2년째 머무르고 있다는 고시원 객실 방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나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 또한 쪽방 같은 고시원에서 산 경험이 있어서 고시원 환경을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그 친구가 머무는 방은 특이했다.

그 객실은...... " 니은(ㄴ) 자 방 " 이었다. 그가 머무는 방에는 공간의 1/4를 차지하는 사각형 건물 기둥이 방 모서리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모난 공간은 으레 주거 공간이 아닌 비품 창고로나 쓰이기 마련인데 건물주 입장에서는 돈 욕심 때문에 객실로 개조한 것처럼 보였다. 이곳에서 그는 2년을 버틴 것이다. 그는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무안하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형, 이 방이 살기는 불편해도 이 고시원에서 제일 싸요. 유난히 키가 컸던 그가 발을 뻗고 자기에는 턱없이 좁은 공간이었다. 비로소 나는 그의 사나운 잠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2년 동안 니은 자 고시원 객실에서 ㄴ자 잠'을 청했던 것이다.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모방한 그의 초라한 의태를 떠올리자 나는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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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프리드리히 볼노의 << 인간과 공간 >> 은 제목 그대로 인간과 공간이 맺는 관계를 탐구한다. 그가 풀어놓은 글감은 하이데거 철학 內-存在, In-sein 과 가스통 바슐라르의 << 공간의 시학 >> 에서 많은 빚을 지고 있지만,  << 인간과 공간 >> 은 << 공간의 시학 >> 보다 읽을거리가 더 풍부하고 사유 또한 더 깊다(개인적 판단이다).  이를 두고 청출어람이라 하는가 보다.  그 사람이 먹는 것이 그 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그 사람이 머무는 공간 또한 그 사람을 만든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 보인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그것은 서체와 문체가 맺는 관계에서도 종종 엿볼 수 있다.

같은 시라 해도 돋음체로 인쇄된 것과 명조체로 인쇄된 것은 읽을 때 느낌이 다르다. 서체가 때로는 문체를 만든다. 모든 시집은 명조체로 쓰여진다. 좋은 시는 명조체로 인쇄되었을 때 최적화된 시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명조체에 맞춰 시를 쓴다. 탓할 일은 아니다. 시는 명조체의 세계이니까. 거제도에서 상경한 그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공간을 꾸몄다기보다는 공간에 맞춰 자신을 인테리어한 경우'다. 이처럼 인간은 알게 모르게 꽃게 !   아, 농담이다.  이처럼 인간은 알게 모르게 공간의 영향을 받으며 사유 또한 그 영향을 받는다. 하이데거는 << 존재와 시간 >> 에서 " 현존재는 공간적이다 " 라고 지적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은 인간은 살면서 언제나 자신을 둘러싼 공간에 대한 관계를 통해서 규정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 방 > 이라는 공간은 사회가 요구하는 자세에서 해방된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장소'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직장에서의 예의바른 태도는 불량해진다. 집은 직립을 허문다. 그리고 잠이 든다는 것은 자세를 포기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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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7-11-19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댁에 잘 들어가셨습니까? 막판에는 참 경황이 없었네요. 저는 다행히 막차를 잡아서 집에 잘 들어왔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9 10:2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그러니까요. 시간이 간당간당했을 겁니다. 수다맨 님 차 놓치셨으면 같이 찜질방으로 데려가려 했었는데..
저는 뭐... 근처에서 갈비탕 한 그릇(정말 맛은 없더군요) 비우고 무사귀환했습니다. 사실 어제는 취하지 않았음..

담달에서 함 모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