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타일을 신뢰한다
스타일을 신뢰하는 편이다. 전자제품을 살 때에도 성능보다는 디자인이 좋은 제품을 구매하게 된다. 사람들은 치장(겉)을 보지 말고 마음 됨됨이(속)을 보라고 충고하지만 내 귀에 그런 소리는 개 풀 뜯어먹다가 어금니 빠지는 소리처럼 들린다. 마찬가지로 마음보다는 얼굴부터 보게 된다. 남진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예뻐야 여자지 _ 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개 풀 뜯어먹다가 어금니 빠지는 소리'다.

스타일이 좋은 사람이 좋다. 그런데 " 스타일이 좋은 사람 " 에 대한 내 평가는 다른 이와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스타일이 좋은 사람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스타일이 후진 사람부터 말하는 게 순리일 것 같다. 그해의 유행이나 브랜드에 민감한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롱 패딩이 유행인지 너나 할 것 없이 롱 패딩을 입고 다니는데 직립보행하는 애벌레 같다. 자기 깐에는 유행을 선도하는 나는야 패셔니스트 _ 라고 외치겠지만 글쎄올시다. 아이고, 시바. 모르것습니다. 좋은 스타일의 핵심은 개성이지 몰개성이 아니지 않은가. 좋은 스타일은 개성과 조화의 합이다.

- 나는 차별화된 개성에는 성공했지만 조화에는 실패했다. 스타일의 최대 적은 과잉이다
내 기준에 있어 가장 완벽한 스타일은 노숙자다. 은유도 아니고 비유도 아니며 유머도 아니다. 노숙자야말로 가장 완벽한 패셔니스트다. 산발한 머리와 덧대어 입은 옷은 개성과 함께 조화롭다. 왜냐하면 노숙자가 옷을 입으면 그 어떤 컬러도 궁극에는 무채색의 모노가 되기 때문이다. 자의든 타의든 노숙자의 외피는 통일성을 대표한다. 한때 나도 그들이 입는 스타일을 따라 한 적이 있으나 악취를 견디지 못하고 포기한 적이 있다. 여기까지는 삼천포다. 지금부터가 서울로 가는 길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시의 핵심은 속이 아니라 겉이다. 그런데 입시용 시 교육은 온통 신체 해부에 열을 올린다.
나는 시각적 쾌락을 위해서 시를 읽는다. 스타일이 후진 시'는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시는 본질적으로 시옷을 입은 명조체의 세계이다. why ? 시라는 장르는 명조체라는 옷이 가장 잘 어울리니까. 그 사실을 무시하고 궁서체를 입히는 순간 아우라는 사라지게 된다. 배우 조인성에게 모시 적삼을 입힌 꼴이다. 상상해 보라. 아이고, 시바. 잘 모르것습니다. 스타일이 좋은 시가 끌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