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身邊雜記 131111

- 신변잡기 131108 http://blog.aladin.co.kr/maripkahn/6681487 에서 계속되는 글

 

정신에 관한 명확한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도덕의 근거는 더 부실하다.

 

* 독서일기 111028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의 간단서평

http://blog.aladin.co.kr/maripkahn/5173445

* '인도주의를 기억하라,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무시하라.' ; 가연님의 글 중에서 발췌

http://blog.aladin.co.kr/760670127/6629638

 

* 무제 120525 http://blog.aladin.co.kr/maripkahn/5640990

* 무제 120423 http://blog.aladin.co.kr/maripkahn/5582602

 

* 나는 의를 인보다 앞세우는 사람이지만, 러셀을 나의 멘토로 삼고 인도주의를 나의 삶의 좌우명으로 삼으려 해도 언뜻 자기 확신이 서질 않는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책의 예화를 빌면 ; 브레이크가 망가진 기차에서 그대로 달리면 10명의 사람이 사망한다. 방향을 틀면 한 명의 사람이 사망한다. 인도주의 입장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나? 다른 예로 폭풍이 치는 바다에 요트를 타고 있는 사람이 조난을 당했다. 그를 구조하기 위해 구조대를 보냈는데, 그 과정에서 10명 사망했다. 이 구조는 인도주의에 입각해서 어떤 가치판단을 내려야 하나?

 

* '눈 앞의 비교적 확실한 악을 내버려두고 미래의 비교적 불확실한 미덕을 택해서는 안된다.' ; 가연님의 글 중에서 발췌 http://blog.aladin.co.kr/760670127/6629638

 

<공작왕> 이 만화에 여자의 나체가 자주 그려져 ‘19금’으로 분류되어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있고, 전체적으로 줄거리가 있는데, 마지막에 반전?이라고 할 결론이 있다. 어째든 이 이야기 전체 줄거리는 다음과 같은 딜레마를 남긴다. ;

 

1) 눈앞의 확실한 악덕을 행했다면 미래의 나타냈던 더 큰 악덕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확실한 악덕을 피했더니, 미래의 가능성의 더 큰 악덕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2) 눈앞의 확실한 악덕을 피했다. 그런데 이로 인해 발생할 미래의 더 큰 악덕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1)번 사실만으로도 모순을 안고 있는데, 1)번과 2)번 사건이 동시에 존재하니, 뭐가 옳은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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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1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 身邊雜記 131108

- 신변잡기 131107 http://blog.aladin.co.kr/maripkahn/6679724 에서 계속되는 글

 

요즘 가장 연구가 활발한 분야가 뇌과학일 것이다. 일부는 자연 과학의 신경 생리학 책으로, 일부는 인문학의 심리학 책으로, 일부는 행동 과학을 포함한 사회과학 책으로 출판되고 있다. 출판사나 서점에서 무슨 책으로 분류하든 나에게는 ‘수학, 물리, 생명, 정신’ 이 네 개의 track의 하나인 정신에 관한 책일 뿐이다. 이 정신에 관한 나의 default는 <빈 서판black slate>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사고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감정에 대한 충분한 고찰이 없었다. 정신 중 감정에 대한 나의 default는 <스피노자의 뇌>이다.

 

* 독서일기 130923 <스피노자의 뇌> http://blog.aladin.co.kr/maripkahn/6599855

 

* 또 다른 default인 성경에 의하면 우리의 정신은 지정의知情意로 되어 있는데, 의지의 본질에 관해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의지력의 재발견>은 의지력은 유한하다, 포도당의 공급으로 증강된다라는 정도의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있다.

 

* 칸트에 대한 러셀의 말도 (중략) '실천 이성에 따르면 의지는 자유로운 것이다. 이러저러한 행위를 할 능력이 내가 없다면 당신은 그런 행위를 해야 한다, 라는 명령이 그릇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만큼만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능력만큼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칸트가 원하는 것은 정언 명령을 우리가 인식하는 것 자체가 자유의지의 표상이라고 우리가 깨닫는 것이다. 후회감, 등으로 말이다. 우리가 거짓말하면 후회를 느낀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우리가 그런 것을 느낀다는 것이 초월적 자유의 편린이라는 것이다. ; 가연님의 글 중에서 발췌 http://blog.aladin.co.kr/760670127/6629638

 

* 자유의지를 포함한 의지에 관한 나의 가치관 default는 성경을 통해 얻은 것이 없다. 의지에 관한 나의 가치관 default는 <철학에의 초대>이다. (<철학에의 초대>는 덕성여자대학교 출판부에서 출판, 원서는 Invitation to Philosophy: Issues and Options로 알라딘 해외서적에서 검색된다.) 이 책에 의하면 자유의지에 대한 가치 판단이 연속선(spectrum)위에 있다. 나는 이 8가지 가능성을 모두 수용한다.

 

1. 결정론 (자연적 원인들, 결정성, 신적 필연성), 2. 운명 혹은 예정설, 3. 과학적 결정론, 4. 수동적 자아 결정론, 5. 가정으로서의 자유, 6. 능동적 자아 결정론, 7. 자유의지, 도덕적 자유, 실존적 자유, 8. 비결정론 (우연, 비결정성, 원인 없는 사건)

 

(정확히 모르겠지만 내 판단으로) 칸트의 자유의지에 관한 가치관은 7. 자유의지, 도덕적 자유, 실존적 자유로 판단된다. 하지만 그 판단이 옳은가? 깨닫다. 후회, 양심의 가책이 의지에 속한 것인지, 단지 사고와 감정의 현상인지 내게는 불명확하다.

 

* 어느 알라디너는 나의 초월적 시각을 비판적 있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보편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초월적 위치에 있고 싶다. 그러나 초월적 위치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빈 서판> 이 제목은 우리가 정신/마음에 관하여 초월적인 것을 기대했으나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을 빗대어서 지운 제목이다. (초월적인 것은 없으나 인지과학은 있다. 아무것도 없다기 보다.) 초월에 대한 심상은 경우에 따라 신神, 영靈, 성性, 도道로 표현되나 실제적으로는 원형原型에 대한 동경과 창발에 대한 동경이라고 생각한다. 내 판단이 맞다면, 즉 내 판단 외에 다른 근거가 없다면 초월 역시 인위적이고 허상에 불과하다. 이렇게 묻는다. “일반 정신을 넘어선 초월적 세계, 있기나 한 거야?”

 

* 독서일기 131025 <무미예찬> 간단서평 http://blog.aladin.co.kr/maripkahn/6658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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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3-11-09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월적 시각, 심리 상담에서도 있습니다.
"관찰하는 자기" 라고도 합니다. 또는 "Meta cognitive" 라고도 하구요, 번역하면 "상위 인지"라고도 하더군요.

상위 인지가 발달한 사람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집착이나 생각의 융합에 치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며, 알아차림을 통한 명상으로 수련하기도 합니다. 영성 상담이 요즘 전체적인 상담에 영향을 끼치고 있거든요. 서불대의 총장님인 김명곤 교수님이 추천하신 책인데, 관심있으실지... 저는 구매하고 못 읽었습니다. 켄 윌버의 책들입니다. 마립간님께서는 저보다 빨리 책을 읽으시고, 또한 명료하게 판단하시니 관심있으시면 한번 보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마립간 2013-11-11 07:36   좋아요 0 | URL
사람과 동물을 구부하는 것중의 하나가 metacognitive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이 메타인식을 '지정의'와 구분된 새로운 정신(인지능력)으로 생각해야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구분 또는 초월의 단어에 대한 느낌은 양적차이가가 아니라 질적 차이입니다. 마치 위상수학에서 구분되는 것처럼요. (물론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유발하지만, 질적 변화를 유발하기 전후의 상태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직관도 사고의 하위로 놓고, 명상, 영성도 지정의로 설명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추천하신 책에 대해서는 감사드립니다. 시간나는 대로 읽어보겠습니다.

마녀고양이 2013-11-12 14:25   좋아요 0 | URL
ㅠㅠ,
마립간님의 지식이 제 지식을 한참 상회하기 때문에
답을 읽다가 제 한계를 인정하고 뒤로 물러납니다. ^^, 너무 어려워요... 아하하.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마립간님과 인연이 있다는 자체에서 저는 기쁩니다.
저는 모르는 세계, 저와는 다른 세상, 세상과 인간의 유전자는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고,
오늘 읽었던 책에서 모짜르트의 음악 천재성과 살리에르의 다른 면에서의 천재성에 관한 언급을 떠올립니다.

마립간 2013-11-12 15:55   좋아요 0 | URL
저의 지식이 마녀고양이님의 지식을 상회한다는 것은 오해이며 과찬이십니다.

저는 제가 아는 것만 압니다. (정규 교육과정과 같이 빠지는 분야가 없고 전문가의 지도를 받는, 그런 것이 아닌 상태) 저는 제가 아는 것에 대해 이모저모로 살펴보면서 빈틈을 없애려는 생각때문에, 일견 깊이 또는 넓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고등학교 수준을 벗어나는 것은 피상적으로만 압니다. 사실 가연님의 글을 읽으면서도 제가 칸트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칸트에 대해 모른다는 메타인식은 이미 하고 있었지만요.)

내일 페이퍼에 지난 5일 간의 글의 정리와 변명의 글을 올리려 했는데, 혹시 누군가가 마음이 상할까봐 (약간은 중복게제 논란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상대분의 댓글이 없다면 글을 올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 身邊雜記 131107

- 신변잡기 131106 http://blog.aladin.co.kr/maripkahn/6678492 에서 계속되는 글

 

요즘 나의 가장 큰 철학적 (또는 종교적, 그리고 약간의 과학이 있다고 내가 주장하는) 의문은 ‘수학, 물리, 생명, 정신이 어느 정도 상호의존적인가’이다.

 

* 독서일기 121106 <혼돈의 가장자리> http://blog.aladin.co.kr/maripkahn/5944391

* 어렸을 때 궁금해 했던 것들

http://blog.aladin.co.kr/maripkahn/1576257

* 새로 정리된 문제들

http://blog.aladin.co.kr/maripkahn/3287045

 

이 의문은 꽤 오랫동안 다른 질문으로 변주變奏되어 왔다. 수학과 물리학의 관계는 성리학의 주리론, 주기론으로 생각해 봤고, 생명, 정신은 창조론과 진화론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신은 수학자인가>라는 책 제목과 이 책의 소개 글에 ‘일찍이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진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 우주는 수학자의 설계에 따라 창조되었을 것이다.”’라는 문구가 이야기를 해 주듯, 통상적인 생각은 수학으로 물리학을 설명하고 자연physics에서 생명현상이 창발 되고 생명현상에서 정신이 창발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종교적 논란이 있는 생명과 정신을 빼고, 수학과 물리학의 관계에서 조차 어느 정도의 상호의존적인지 (배중률에 따르면 어느 정도 독립적인지) 궁금하다. 친구에 지적에 의하면 연구될 수 없는 수학과 물리학의 연관성에 대한 의문은 과학적이지 않다. 나 역시 과학적 의문이라고 주장하기보다 철학적이라고 이야기한다. 단지 자료 축적으로 통해 철학에서 과학으로 이해하는 연속선상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이다. (책 읽는 속도가 생각보다 늦다. 어렵네) 퇴계는 주리론, 플라톤-노자에 비유되고, 율곡은 주기론 아리스토텔레스-장자에 비유된다. 주리론이 옳다면, 수학을 바탕으로 우주(물리)가 창조된 것, 모방된 것이므로 우주(물리)는 그림자寫像이고, 주기론이 옳다면 물리 현상에서 수학을 상대적으로 추론한 것이므로 수학이 그림자寫像다.

 

** 의문 2 ; 수학과 물리학이 각각 상호의존적이지 않은 영역이 존재하나?

** 의문 3 ; multiverse가 존재한다면 그 많은 우주verse 중의 하나는 우리(우리가 살고 있는 universe)와 다른 수학의 소수素數가 존재할 수 있는가?

 

* 독서일기 130620 <생명의 진화에 대한 8가지 질문>의 간단 서평

http://blog.aladin.co.kr/maripkahn/6423883

 

생명과 정신에 대한 진화론도 마찬가지다. (신의 창조했다는 의미로서가 아니고) 생명과 정신이 수학과 물리학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 영역이 존재하는가?

 

* 항상 본인의 의견이 틀릴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어떻게 다른 입장이 그르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러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이 부분이 더 옳다, 라고만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뿐이다.

 

여기까지를 유추해냈지만, 만약에 경험론자라면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신은 없다' 라고 결론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다. 증거가 없으니 받아들이지 못한다, 라는 말은 양날의 칼이다. 증거가 없으니 일축해 버릴 수도 없다. ; 가연님의 글 중에서 발췌 http://blog.aladin.co.kr/760670127/6629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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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身邊雜記 131106

 

지난 달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1박으로 교외로 나들이를 갔다. 육아, 교육을 포함한 신변잡기로부터 공통의 관심사인 수학, 물리에 관한 여러 방면의 주제에 대해 잡담을 나누었다.

 

그 모임에 있던 한 친구 velociraptor가 나에게 비과학적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느 친구의 말을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에 이야기를 나눈 것도 그렇고, 이후에 곰곰이 생각해 봐도 ‘과학’이라는 용어에 다른 의미를 두고 있었다.

 

철학자들은 늘 서로 다른 관념을 가지고 싸운다. ; 가연님의 글 중에서 발췌

http://blog.aladin.co.kr/760670127/6629638

 

나는 거의 모든 학문을 철학으로 본다. 사람이 궁금증, 호기심을 갖는 것 자체가 철학이며, 나름의 가설을 제안한 것이 철학이다. 이런 문제에 시간이 가면서 자료가 축적되면, 그 자료를 바탕으로 좀 더 타당한 가설이 되면 (자료가 충분하면 가설은 이론이 된다.) 과학이 된다. 나의 의견, 약간의 통상적이지 않은 용어 사용은 실제 생활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문 과학’, ‘사회 과학’과 같은 용어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나와 달리 친구는 자연 과학에 한정지어 과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자연 과학’ 이외 것에 과학의 차용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 독서일기 130830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간단 서평

http://blog.aladin.co.kr/maripkahn/6556492

* 독서일기 130625 <모럴 아포리아> 간단 서평

http://blog.aladin.co.kr/maripkahn/6432591

 

하지만 나는 ‘도덕’도 이제는 과학에게 그 분야를 넘겨줘야 할 때가 온 것인가 생각했다. (물론 내 주장이기보다 내가 책을 읽고 그렇게 느꼈다. 엄밀하게 말하면 위 책의 저자가 주장하고 나는 그에 동의했다.) 같은 이유로 다른 분야 예를 들면 종교도 과학적 형식을 취하고 있다. 문제가 제기가 있고, 그에 대한 가설을 default로 세우고 자료를 축적하여 가설을 기각하거나 이론으로 받아들인다.

 

* 연구 및 증명

http://blog.aladin.co.kr/maripkahn/6650239

 

** 의문 1 ; 비과학의 분야, 예를 들어 종교적 의문까지도 과학으로 생각하는 나는 과학적인가 비과학적인가?

 

친구는 내가 모태 신앙으로 기독교적 배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친구의 정의에 의한) 비과학적인 것을 극복하기 힘들 것으로 보았다. 나 역시 친구가 지적한 부분을 극복해야할 것인지 대해 의문이지만 변화할 것 같지 않다. 단지 그 이유가 어렸을 때의 각인 때문이고 아니고 내가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는 기본적으로 종교적이다.

 

* 독서일기 131023 <아웃사이더> 밑줄긋기 http://blog.aladin.co.kr/maripkahn/6653506

p28 ‘나는 너무 깊게. 그러면서도 너무 많이 본다.’

p178 고흐의 마지막 말 “불행은 결코 끊이지 않을 것이다”는 말에 대해 이 긍정의 태도를 균형짓는 일, 이것이야말로 아웃사이더의 문제다. 이는 이미 철학 문제가 아니라, 종교 문제기 때문이다.

p188 종교의 근본 이념은 자유다./아웃사이더의 문제란 결국 자유의 문제다.

p241 그뿐만 아니라 똘스또이는 정통적인 교회를 지지할 수는 없었으나 종교적인 결론에 도달했다는 점 - 이것 역시 아웃사이더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에서 니체 및 키에르케고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p245 “주여, 당신이 만약 계신다면, 내가 무엇이며 무엇 때문에 사는지를 밝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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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1-06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이라는 용어에 다른 의미를 두고 있었다."
- 서로 다른 뜻으로 말하는 건 흔한 일인 것 같아요.
당신을 사랑해, 라는 말도 사랑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잖아요.
사랑을 그리움과 뜨거운 열정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처럼 희생과 헌신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요...
그래서 의사 소통이 되지 않을 때도 있는 것 같아요.

말이란 오해를 낳는 법, 이란 말이 생각나네요. <어린 왕자>에서 읽었던 듯...ㅋ

마립간 2013-11-07 07:44   좋아요 0 | URL
통상적인 언어에는 의미가 차이가 미미하거나, 차이가 있어도 그 결과가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데. (저의 상대편이 많이 양보했겠죠.^^)

제가 좋아하는 사고를 엄밀하게 표현하려면 용어의 정의부터, 개념의 정의부터 논쟁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증거/증명의 객관성

 

1. 절대적 증명 (수학 분야) - 증명된 것이 바뀐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예) 피타고라스의 정리

2. 준절대적 증명 (물리학, 화학 분야) - 연역 사고와 실험에 의해 증명되지만, 가끔 확장된 이론으로 대치될 수 있다. 반복 실험이 가능하다. 예) 뉴턴 역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바뀐 것.

3. 상대적 증명 1 - 실험은 없고 이론에 합당한 현상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증명한다. 예) 생물의 진화, 우주 창조

4. 상대적 증명 2 - 관찰 및 소규모 실험을 통해 증명한다. 예) 사회 현상, 인지-심리 분야

 

* 연구의 결과

 

0. 연구되지 않은 것 (또는 충분히 연구되지 않은 것)

 

1. 연구된 것

 1-1 증명된 것

 1-1-1 ‘이다’라고 증명된 것. 예) 피타고라스의 정리

 1-1-2 ‘아니다’라고 증명된 것. 예) 일반각의 3각 분할

 1-1-3 ‘이다’ 또는 ‘아니다’라고 결정할 수 없다고 증명된 것. 예) 러셀의 역설(Russell's paradox)

 

 1-2 증명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상황

 1-2-1 유력한 1개의 가설과 이에 도전하는 가설

 1-2-2 대립되는 가설이 경쟁적 증거 제시

 1-2-3 증거가 부족한 가설 (한 개 또는 여러 개) - 연구되지 않은 것과 유사

 

 1-2-4 ‘이다’ 또는 ‘아니다’라고 결정할 수 없다고 추정되는 것. 예) 도덕적 아포리아

 * 1-2-5 반증도 없으나 (즉 참일 것으로 추정되나) 참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으로 남음. 예) 골드바흐의 추측은 참이지만 영원히 증명되지 않을 수 있다. (영원히 그 결과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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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10-2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를 읽고 정리했던 글

마녀고양이 2013-10-22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아하, 이렇게 정리를 하시니... 지난번 마립간님의 댓글에 조금 더 다가서는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에 아직도 의심과 불안과.. 그리고 기대를 품는 저네요.

마립간 2013-10-23 08:28   좋아요 0 | URL
회의가 학문을 발전시켰다는 위안과 함께 감정적으로 저에게 불안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네요.

우리 우주에서는 소수素數가 절대적이며 보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외계 지적 생명체와 접촉을 소수로 합니다. Multiverse의 다른 우주에서 (존재한다면, 그리고) 우리와 같은 소수가 사용된다면 세상 창조 이전에 도道가 있었던 것이죠. 상상하기 힘들지만 과연 그런가 의심(그러니까 다른 우주에는 다른 소수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 창조/진화론, 윤리/도덕이야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