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라딘 서재 10주년을 축하하면서

 

저와 알라딘과의 이야기는 2004년 1월에 ‘알라딘과의 인연’이라는 페이퍼와 2009년 12월에 ‘알라딘 충성파 고객 구매기2’를 통해 알라딘에 느낌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 알라딘과의 인연

http://blog.aladin.co.kr/maripkahn/14038

 

* 알라딘 충성파 고객 구매기2

http://blog.aladin.co.kr/maripkahn/3254554

 

올해는 알라딘 서재를 갖게 된지 10년이 되고 나의 첫 서평과 첫 (방명록) 댓글이 2003년 8월 15일에 있어 나의 느낌을 정리하고 싶었는데, 다른 분들이 언급한 것과 겹치는 것이 많아 공통된 부분을 가능하면 제외하고 저의 느낌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우선 서재라는 블로그를 만들어준 알라딘에게 감사드립니다. 그 시작이 비록 영업에서 시작되었다고 할지라도 나에게는 여러 가지 유익을 주었습니다.

 

첫 번째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일일이 닉네임을 다 언급할 수 없지만, 저에게 조언과 때로는 위로를 주셨습니다. (제가 즐겨찾기한 분이 200명이 넘네요.) 지금도 알라딘에서 또는 알라딘을 떠나신 분들에 대해서는 Yes24, naver, kahn, facebook, twitter에서 근황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좋은 책을 많이 소개받았습니다. 서재가 있기 전에는 일간지의 도서 section을 통해 책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서재가 생긴 이후로는 서재의 지인들이 올린 독후감(리뷰)이나 페이퍼를 통해 구매가 이뤄지거나 구매를 결정짓는 판단 기준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나의 글을 외부에 노출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주로 생각을 많이 하고 그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읽었는데, 그에 반해 글을 쓸 기회는 적었습니다. 서재가 생김으로써 글을 쓰는 기회가 늘었고, 남들이 읽을 것으로 고려한 글쓰기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도 나의 글은 대중성이 없었고, 지금은 다시 간단한 메모로 돌아갔지만.)

 

네 번째로 알라딘의 서재의 글을 읽음으로써, 다른 분들이 추천한 책을 읽음으로써 나의 가치관의 교정 또는 다듬기가 이뤄졌습니다.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나 우리나라 통상적인 보수주의와는 다른 의미라고 생각한다.)

 

다섯 번째로 독서의 지속성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원래 저는 정독을 하고 다독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제 능력과 환경이 바뀐 것이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다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제든지 책을 놓을 기회가 있었는데, 알라딘 서재를 보면서 독서를 유지하게 될 동력을 얻었습니다.

 

알라딘 불매 운동’, ‘언론 광고’, ‘물만두님의 사망’과 ‘물만두님의 유고집 발간’, ‘중복게재를 포함한 몇 번의 논쟁과 몇 알라디너의 탈퇴’, ‘서재 version upgrade’, ‘2004년 오프라인 모임’ 등이 10대 뉴스에 들겠지만,

 

저는 서재의 시작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서재 이전에 (지금과는 다른) 명예의 전당이 있었고, 이것은 1970년대의 ‘장학퀴즈’라는 TV 방송을 연상시켰습니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엘리트주의를 연상시켰습니다. 그러던 것이 서재라는 블로그가 생기면서 대중 주의로 전환하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독후감의 질을 유지할 수 있을까? 서재 초기에는 방명록에 일상사를 남기며 개인 친분을 쌓는 community였고, 내가 좋아하던 몇 분은 서재의 시작 직후에 독후감을 올리는 활동을 중단하셨습니다. 혹시 나의 걱정이 현실로?

 

하지만 페이퍼 기능이 추가되면서 페이퍼를 통한 책 소개와 양질의 독후감과 일상사에 대한 글이 뚜렷이 구분되었고, 많은 독자들이 참여하면서 오히려 좋은 독후감도 많아졌습니다. 어쩌면 제가 좋은 독후감을 쓰는 알라디너를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0년 동안 초기에 활동하던 몇 알라디너는 회원탈퇴, 서재 페쇄, 활동중단 등으로 그 분들의 새로운 글을 볼 수 없지만, 서재가 있음으로 해서 좋은 글을 쓰는 새로운 알라디너를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알라딘에서 활동하고 계신 지기知己님들에게도 감사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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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3-08-13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그 시작이 비록 영업에서 시작되었다고 할지라도 나에게는 여러 가지 유익을 주었습니다.
완전 제 느낌.... 마립간님은 가끔 제 맘 속에 들어갔다가 오시는게 아니야? 싶다니까요. 그래서 공감 꾹~

저도 감사합니다, 소중한 지기님.

마립간 2013-08-14 07:48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감사합니다.^^

라주미힌 2013-08-14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재에 안들어오면 책을 잘 안보게 되네요... 뭔가 책을 가까이 하게 하는 원동력이 있는 것 같아요!

마립간 2013-08-14 12:00   좋아요 0 | URL
라주미힌님도 서재 초기부터 알고 있던 분인데, 서재에서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가족 모두 건강하시구요.

순오기 2013-08-24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하기 누르니, 이미 공감하셨습니다~ 라고 뜨네요.
댓글은 안 달고 공감만 눌렀나 봅니다.
마립간님도 서재 초기 멤버시군요~ 불매운동, 언론광고, 물만두님 서평집 및 에세이 발간은 아름다운 풍경이지요.

마립간 2013-08-25 16:5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감사합니다.

서재 초기 멤버라는 자체가 중요한 것 같지 않고, 좋은 리뷰와 글을 통해 책과 독자나 알라디너에게 좋은 인연을 갖은 것이 더 중요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순오기님께서 더 뜻깊은 일을 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 인공 지능과 진화론

 

- <황제의 새 마음 - 상> 앞 부문

 <황제의 새 마음 - 상>을 다시 읽고 있다. 첫 번째 읽을 때 생각보다 쉽게 읽어지질 않았다. 문체 탓일까?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으려 한다. 우선 의문점 ; 어째서 이 글이 어째서 강 인공 지능(strong artificial intelligence ; 기계가 사람과 같은 지능을 갖는 것)을 부정하고 있는 것일까?

 

다시 읽으니 ; (컴퓨터 존재하니,) 인공 지능은 존재한다. 그러나 아직까지의 지식으로는 기계가 (인간의 이해력과 같은 사고를 지닌, 경우에 따라 감정까지 지닌) ‘인간 지능?’과 같은 인공 지능에 이를지는 확실하지 않다. 여기에 두 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앞으로 지식이 발달하면 기계가 사람의 사고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과 결코 기계는 사람과 같은 사고를 할 수 없다는 가설이다. 설(John Searle)이나 이 책의 글쓴이 펜로즈(Roger Penrose)는 후자의 가설을 지지한다.

 

그러나 펜로즈가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고 설득하기보다 자신이 지지하는 가설을 서술하고, 나머지는 역시 지금까지 밝혀진 인공 지능에 관한 과학 지식을 서술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논쟁 구도가 진화론 논쟁을 떠올린다. 진화는 존재한다. 그러나 첫 생명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진화론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언젠가는 진화론(을 포함한 과학)으로 설명될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들과 (진화는 사실과 다르므로) 결코 설명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이 진화론에 대한 논쟁은 창조론이 증명되거나 진화론으로 생명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면서 논쟁은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창조론이 사실이라고 해도) 영원히 어느 쪽으로도 증명되지 않고 남을 수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진화의 논쟁에서는 생명의 시작에 지식의 빈 공간이 있는 반면 지능의 관해서는 완성에 지식의 빈 공간이 있다. 진화론/창조론의 지지자들이 강인공 지능의 가설에 관하여 어떤 지지를 갖고 있는지도 궁금해진다. 만약 강 인공 지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창조론이 지지된다’고 추론해도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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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리 입말 사전.

 

* 오소리 입말 사전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57301

 곰곰이생각하는발님의 ‘오소리 입말 사전’를 읽고 떠오른 생각 (그러니까 페이퍼에 대한 독후감) ; ‘갈릴레이 좌표계’

 몇 번을 읽고도 실제 오소리 입말 사전이 있는지 없는지 고민을 했습니다. 효형출판사, 가격이 17,800원이라는 구체적 제시에 믿을 수밖에 없지만.

 

* 개인적으로 플라톤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고, 분석적이고 환원적 사고가 주류입니다. 그런 사고에서 ‘지름길’의 반대말이 ‘둘레길’이 아니라, ‘애인과함께걷는길’이라는 말은 융통성 및 통합적 사고의 느낌을 줍니다. ~(~P)=P라는 논리식이 무색해집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에 있어 제가 동의하지 않는 ‘반대말, 대칭어’등을 아래 두 페이퍼에 작성했었습니다.

 

* 대칭어 대립어

 http://blog.aladin.co.kr/maripkahn/5616562

 

* 반대말 비슷한 말

 http://blog.aladin.co.kr/maripkahn/5614559

 

* 오소리 입말 사전 ; 가벼운것 vs 무거운 것.

<가벼운 것>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무거운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벼운 것>의 반대말은 <더 가벼운 것>이다.

 

* ‘없다’의 반대말은 ‘있다’입니다. 이를 산술/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없다’는 ‘0’이고, ‘있다’는 ‘자연수’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0은 공집합, 절대값 0 등도 가능하지만, 우선) 이렇게 치환하면 반대말을 언뜻 수긍할 수가 없습니다. 0의 반대말이 자연수(양의 정수와 동치)인가? 그러면 음의 정수는?

 

* 독서일기 120305

 http://blog.aladin.co.kr/maripkahn/5468634

p 6~7 다양한 의미를 갖은 ‘0’ ; ‘무’의 0, 좌표 원점으로서의 0, 평형으로서의 0

p 8~9 또 다른 의미를 갖은 ‘0’ ; 빈자리의 0, 기준으로서의 0, 기호로서의 0?, 수로서의 0?

 

 

 

 

 

 

 

* ‘가벼운 것’이라는 것이 지점을 뜻했을 때, 이때 (갈릴레오 좌표계처럼) 원점의 이동이 있습니다. 이 원점에 대한 부정(반대가 아니고)은 이보다 무거운 것과 이보다 가벼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말이 존재하려면, 이분법적 개념에 배중률이 존재해야 하므로) ‘가벼운 (것이라는 방향)’ 개념의 반대는 ‘무거운 (것이라는 방향)’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 (갑甲질?의) 언어 생활

 높이 ; 높다. 낮다./깊이 ; 깊다. 얕다./길이 ; 길다. 짧다./무게 ; 무겁다. 가볍다.

 

하지만 인용된 글은 묘한 다른 느낌을 주는데(, 이 느낌이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무겁다’, ‘가볍다’라는 형용사는 양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 방향의 차원은 무게입니다. 이 ‘무게’라는 용어는 무거운 것도 가벼운 것도 아닌, 중립적 용어이지만 이 용어는 ‘무겁다’에서 파생된 명사입니다. 높이는 높낮이, 길이는 길짧이, 깊이는 깊얕이로 사용되어야 하지만 그렇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용되는 ‘높낮이’는 ‘높이’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개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 이와 같은 언어생활은 가벼운 것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줍니다. 엄격하게 ‘가벼운’의 기준점을 제시하고 방향을 제시했더라면 위에서 언급한 묘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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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소리 입말 사전 : 乙은 새다.
    from 새빨간 활 2013-05-20 13:47 
    오소리 입말 사전 : 乙은 새다. 소율이 쓴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은 10년 동안 총 124부가 팔렸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팔린 책 가운데 100부'는 출판사가 사재기'를 해 충무로에 위치한 회사 창고에 쌓아두었는데, 그나마 화재로 소실되는 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비운을 겪었다. 결국은 24권 정도만 팔린 것이다. 그렇다고 24권이 다 팔린 것도 아니다. 사전을 집필한 소율 본인이 보관 및 선물용으로 구매한 책이 20권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0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동이군요. 맞습니다 !!!!!!!!!!!!!!!!!!
무게라는 것은 중립적인 것인데 이미 무게라는 말에는 무거운 것이라는 명제가 깔려 있어요.
우리가 흔히 벌레'를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지만...
이러한 무게로 가치를 따지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0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이 글 진짜 좋군요. 오소리 사전'도 바로 거기서 출발했거든요.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시다니 감동입니다.

마립간 2013-05-20 13:59   좋아요 0 | URL
저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시다는 것에 반갑고, 즐겁습니다.
 

 

* 미덕의 악덕

 

 순수하게 미덕美德만 있을 것 같은 덕목들에게 악덕惡德들이 존재합니다.

 

* 여행의 악덕 ; 허풍(거짓말), 방랑벽

* 칭찬의 악덕 ; 부담을 주고 타인의 기대에 맞춰서 행동, 결과 중심으로 행동

* 반성의 악덕 ; 독선

* 독서의 악덕 ; 독창성을 죽임

* 긍정의 배신

 

최초의 충격적인 경험은 ‘여행’의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개인적인 경험을 여행의 기술의 독후감에 언급했습니다.

 

* 다양성 즐기기 http://blog.aladin.co.kr/maripkahn/733549

 

* 처음 이 충격적이지 두 번째, 세 번째는 받아 들이만 합니다. 칭찬의 악덕에 대한 생각은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에서 시작했습니다. 정말 긍정적인 정작용, 미덕만 존재하고 부작용, 악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교육학에서는 아이들은 훈육할 때, 칭찬 50%, 가르침 30%, 징계 20%가 이상적이라고 하더군요. (20년전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에서는 징계 50% 이상, 훈육 30%, 칭찬 20% 미만이었다고 합니다.) 칭찬이 부족하던 시절에 칭찬의 미덕만 드러났겠지만, 지나친 확대 적용은 역시 교육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부작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반성의 악덕은 있을까? 딱히 떠오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간지에서 피델 카스트로가 언급하면서 (스스로 현명하고 실천력도 있으면서 거기에) 반성까지 하면서 독선으로 흘렀다고 이야기합니다. (읽었던 글의 출처가 검색되지 않아 명시를 못함.)

 

* 그 사이에 <긍정의 힘>이 인기를 끌었고, <긍정의 배신>이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 독서의 악덕은? 역시 딱히 떠오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래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안 읽기로 유명한 발레리의 말, "지나친 독서는 독창성을 죽이는 것이다"라는 데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21116145530

 

개인적으로 ‘창의성’의 반대말은 ‘성실’이지만, (마치 뫼비우스 띠처럼) 성실은 창의를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즉 독서는 누군가에는 창의성을 죽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는 창의성을 가져옵니다. <생각의 탄생>, <천재들의 창조적 습관>의 한 줄 독후감에서 언급하였습니다.

 

* 독서일기 http://blog.aladin.co.kr/maripkahn/6326304

* 독서일기 http://blog.aladin.co.kr/maripkahn/6207636

 

따라서 공감되는 독서의 악덕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곰곰생각하는발’님께서 ‘욕 먹을 각오로 쓴다 시리즈 3탄’에서 독서의 악덕을 ‘나쁜 쪽으로 고집이 세다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저는 선뜻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꼭 나쁜 쪽일까? 아니면 개연성으로? 독서를 하는 사람이 반성을 많이 하고, 독서의 악덕이 아니라 반성의 악덕이 2차 연관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닐까? 탐서가, 독서광들과 <활자 잔혹극>의 유니스와 심리기제가 동일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독서 자체의 악덕으로 생각하기 힘듭니다. 독서는 가치 중립적일까?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45685

 

영화 ‘네고시에이터’에서 사무엘 L 잭슨이 독서를 너무 믿지 말라고 하니, 케빈 스페이시가 한권을 읽지 않고 여러 권을 읽는다고 대답합니다.

 

* (원조가 아닌) 기부의 악덕이 있을까요? 원조와 기부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고 결과에 의한 판단일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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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5-06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넘버3'란 영화를 좋아합니다. 거기에 명대사가 이렇습니다. 아내가 남편 깡패에게 묻습니다. 자기 나 얼마만큼 좋아 ? 그러자 남편 깡패가 말합니다.51% 좋아 ! 이 말은 49%는 안 좋아,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좋고 나쁨은 결국 1% 로 결정된다는 뜻인데요.
제가 여기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독서 자체가 아니라 탐서'를 말하는 겁니다. 소통이 없는 문자 중독'은 위험하기도 하다는 것을 지적한 겁니다.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이 들어서... 요.. 후후...

마립간 2013-05-06 13:44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제 서재를 둘러보시면 알겠지만, 행동없는 지적 유희를 추구하는 서재입니다. '독서의 미덕이 99.9%이고 악덕 0.1%이며, 그래서 악덕이 잘 들어나지 않더라도 생각해 볼 것이 있느냐'라는 의미로 저 혼자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곰곰생각하는발님의 글에서 공통된 문제 제기를 읽었습니다.

또 제가 잊어버린 여행의 악덕이나 기부의 악덕에 대한 (제가 생각지 못한) 의견을 기대하는 글입니다.

2013-05-06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7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7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7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8 0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 stella09님을 위로하며

 

 우선 제목이 '격려하며'가 아니고 '위로하며'인 것이 또 하나의 결론입니다.

 이 글을 읽고 제가 stella09님과 (알라딘 온라인으로) 친분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 글을 썼다고 평하시면, 맞는 이야기입니다. 이 글이 재방송이라고 평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그것도 맞는 이야기입니다. (사실은 내용상 삼방입니다.)

 

* 우클릭에 대한 섭섭함. http://blog.aladin.co.kr/maripkahn/5071723

 

 우선 적립금, 당선작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제 경험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중학교 수업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장학금에 대한 이야기가 하셨는데, 미국의 어느 학교에서는 성적 1등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고 2등에게 지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가 1등을 한 학생은 부유한 집안에 학생이고, 2등은 가난한 집 학생인 경우입니다. 장학금의 목표가 가난한 학생을 돕는 취지가 명시될 경우 부유한 집안의 학생이 배제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당시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장학금이란 공부 잘 하는 학생에게 주는 것인데, 1등을 배제한다!

 

 두 번째는 노벨상입니다. 노벨상만큼 권위가 있는 상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노벨상을 선정을 두고 거의 객관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느 책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인간적이라고 합니다만.) 노벨상 수상작에는 암의 원인 기생충이라고 발표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에서 보면 명백한 오류가 있는 연구에 대한 수상입니다. DNA를 발견한 왓슨과 크리크가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연구에 기여한 로잘린드는 수여를 못했습니다. 노벨문학상은 논란이 훨씬 더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학의 속성상 자연과학보다 더 큰 것이 당연할지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제가 초등학교 시절의 학급 간부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1학년부터 4학년까지는 반장 1명과 부반장 2명이었습니다. 5학년이 되었을 때 학교에서는 반장-부반장 제도를 없애고 ‘생활 부장’이라는 이름으로 10명을 발탁하여 2명이 두 달 동안 반장, 부반장의 역할을 주었습니다. 2명의 우열도 없기 때문에 2명이 상의하여 일을 분담합니다. (지금에서 추정해 보건대,) 교장 선생님께서는 학급 간부의 역할을 여러 명이 경험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네 번째 이야기는 알라딘 신간 평가를 위한 도서 제공입니다. 알라딘에서 처음에는 선착순으로 지원자를 받았습니다. 이후 선정방식이 바뀌었을 때, 대상자 선정에 m********님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알라딘에서는 제기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몇 번의 개정을 통해 오늘의 신간평가단에 이르렀습니다. 그 중에서 6기에서 7기로 넘어갈 때는 기존의 평가단에서 연속을 활동한 분들은 지원을 하지 않을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에게 평가단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다는 명분이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7기에 지원하지 않습니다.)

 

 적립금과 당선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현황과 그에 대한 평가가 이미 잘 되어있는 두 개의 페이퍼가 있어 소개합니다.

 

* 이달의 당선작 선정기준 http://blog.aladin.co.kr/koreaisone/5589323

* 알라딘 리뷰 당선작 논쟁에 대한 단상 http://blog.aladin.co.kr/caspi/5590707

 

 이제 stella09님의 주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주장의 요점을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당선작이 몇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느니 여러 사람에게 분산되게 수상하는 것이 어떻겠냐? 그 방법을 생각해 보자. 이런 것 아닌가요? 저는 이 주장 자체에 논리적 모순이나 부도덕함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물론 ‘▶◀? 1인 시위를 꿈꾸며...’가 논리적이고 비약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장을 하는 글에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한다면 좋은 글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 주장을 일고할 가치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당선작 수장자을 분산해야 되는 이유(근거)를 제시한다면,  위에 언급한 저의 초등학교 반장, 부반장 역할 분담과, 신간평가단의 지원 제한을 예로 들겠습니다.

 

 어떤 분이 stella09님의 글을 읽고 황당하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황당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전에도 황당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알라딘 비정규직 고용과 관련한 알라딘 불매 운동입니다. stella09님이 알라딘에 요구하는 것은 서비스에 관한 것입니다. 그에 반에 비정규직 고용에 관한 것은 경영에 관한 것입니다. 서비스에 관한 요구와 경영에 관한 요구 중에서 어는 것이 더 황당할까요? (경영에 대한 요구가 더 황당하다고 느끼는 제가 독특한 것인가요?) 저 더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알라딘 불매 운동에 자본주의인 한국에서 기업을 하는 알라딘과 그 사용자user인 저를 볼 때, 알라딘 탈퇴를 하지 않았으되, 그 불매 운동의 의미하는 바를 알기에 한시적 알라딘 구매 자제 방식으로 참여했습니다.

 

 stella09님의 꼼꼼히 읽는다고 읽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째든 이런 가정을 해 봅니다. stella09님은 당선작에 목을 메고 있고 적립금을 원하다. 적립금을 나에게 달라. ; 설령 이런 뜻으로 그 글을 썼다고 해도 저는 stella09님이 추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약간의 제도 개선을 통해 적립금이라는 경제적 유익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책을 구입해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라면, 저는 추하다기 보다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책을 마음대로 사서 읽을 수 없는 경제적 상황을 반영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경우에는 stella09님을 추하게 느낄 것입니다. stella09님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넘친다. 명품 액세서리에 많은 돈을 지불한다. 그러면서 책에 대한 지출은 아까와 한다. 그래서 적립금을 탐낸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텔라님 ....’의 글에 달려 있는 211개의 추천 (2012 5 20 현재)은 과한 것 같습니다.

 

 (stella09님, 저는 서재가 생기기 전부터 알라딘을 이용해 왔고 (2012 5 20 현재) 307편의 마이리뷰와 524편의 마이페이퍼가 있지만 딱 한편 당선작이 되었습니다. 제 페이퍼가 당선작이 되고 나서야 페이퍼에도 당선작을 뽑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알라딘 신간평간단에도 찍힌 것 같아요. 저는 웬만해서 별점 3개 이상 안 주는 것이 원인인 듯. 웃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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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12-05-20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분이, 주기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같은 논리를 반복하시는 상황에 대한 불편함을 반영한다고 본다면 그 추천이 지나치다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동안 이런 지적이 거의 없었음을 생각하면 한꺼번에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비정규직 문제와 마이리뷰 문제를 알라디너들이 소비자라는 관점에서 알라딘 경영에 개입한다는 관점으로 본다면 후자가 더 타당하다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전자에 대한 개입은 알라디너들이 자신들의 이익이 아닌 타자의 이익을 위해 나서기 때문에 그 이타성만으로 정당성을 얻는 측면도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요구하는 데 망설이지 않는 태도는 어디까지나 부당하게 이익을 박탈당했을 때 당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타적인 주장은 당위성만 충족되면 정당성을 비판하기는 어렵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알라디너는 어디까지나 소비자라고 보는 관점이 그 비판의 유용한 근거가 될 것입니다.
결국 스텔라님은 마이리뷰 문제를 자신의 이익이 아닌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납득시키거나, 자신의 개인적 이익이라면 자신이 그것을 요구할 정당한 자격이 있다는 점을 밝히셔야 합니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현재의 마이리뷰 선정에 현저한 문제가 있다고 알라디너의 동조를 끌어냈는지 의심스럽고, 후자의 측면 역시 자신의 이익을 당당하게 주장한다는 진솔함을 제외하면 어떤 논리적 근거가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이익을 주장해도 탐욕스러워보이지 않고 당당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페이퍼에 따로 써야 할 내용을 주제 넘게 길게 적었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마립간 2012-05-21 08:3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로렌초의 시종님. 반갑습니다.
제 글의 앞쪽에 서술하였지만, stella09님을 격려하지 않은 것은 stella09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히려 로렌초의 시종의 댓글에 공감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글이나 로렌초의 시종님의 댓글과
인터넷에 게제 되었던 다른 2개의 페이퍼와는 가치판단과 감정에서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200건이 넘는 추천에도 합리적 불편감을 넘어선 불합리한 감정이 개입되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만약 로렌초의 시종님의 댓글이 페이퍼로 먼저 올라왔더라면 저는 위의 페이퍼를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댓글에 감사드리며, stella09님이 생각을 정리하는데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stella.K 2012-05-20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저는 먼저 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방명록에 글을 남겨 주셨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동안 몇분이 저를 많이 걱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제가 감정에 치우쳐 잘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점을 늦게나마 깨달았기에 그렇지 않아도 페이퍼를 다시 쓰려고 했습니다.
최대한 오해가 없도록 쓰겠습니다. 아니 오해를 푸는 방향으로 쓰겠습니다.
그렇게 노력은 해 보겠지만 다소는 마음에 드시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한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마립간 2012-05-21 08:04   좋아요 0 | URL
방명록을 생각해 봤는데, 내용이 너무 긴데가 stella09님에도 드리는 글이지만, 알리디너에게도 드리는 글이라 제 서제에 올렸습니다. 단지 제목부터 내용에게 이르기까지 stella09님의 닉네임이 도배되어 게제전에 조금 주저했었습니다.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마녀고양이 2012-05-21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깨서는 자주 제가 하고픈 말을 그대로 해주시는군요...
S님의 페이퍼에 공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의견을 소신있게 말씀해주시는 부분은 좋아보였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갈등이 예상되고, 그로 인해 충분히 스트레스를 예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말이죠. 그러나 추천수 200이란 수치는 많은 사람들이 어떤 점에서 불편해한다는 것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또한 존중받을만한 의견이라 생각됩니다. 다만 R님 페이퍼의 전반적인 논지는 이해할만 했으나, <추해보인다> 라고 쓰셨던 부분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 문장은 아무래도.... ㅠㅠ. 가끔 알라딘 페이퍼 추천수는 신랄함에 따라서 더 올라간다고 생각될 때가 있으니까요. 요즘 저는 그에 대해.... 왕따와 방관자의 학교 문제가 자꾸 떠오릅니다.

하지만 이 댓글로 제가 또다시 어느 한편으로 기운다는 오해는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만.
비밀 댓글로 해야할까요? (진짜인지 아닌지 몰라도) 비밀 댓글로 해도 누군가는 볼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서 들어서 비댓이 무슨 소용인가 싶더라구요... ^^

마립간 2012-05-21 12:00   좋아요 0 | URL
저도 R님의 페이퍼는 이해가 갑니다. 비록 '추해보인다'라는 표현이 과격하지만. 제가 페이퍼를 쓴 동기는 추천때문입니다. 동감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이해도 가고 존중해야지만 (제 생각입니다만,) 어느 시점 이후에는 추천이 '감정의 배설'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런 불균형을 교정하는 것으로 제 의견과 다른 S님의 페이퍼를 추천하는 것도 맞지 않고. 냉철한 이성에 의한 비판이었다면 로렌초의 시종님처럼 오류를 지적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