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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도교 - 도교의 역사에서 배우는 개인의 행복한 삶 한 권으로 읽는 유불도 1
장언푸 지음, 김영진 옮김 / 산책자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 도교와의 인연
- 때 늦은 독서

 
도교에 대한 호감은 너무 오래되고 시나브로 시작되어 처음 좋아하게 된 때의 기억조차 없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TV에서 불교영화 (주인공이 목련이고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목련 존자>가 거의 확실한데, 한국영화인지 조차 모르겠다.)를 해 주었는데, 저는 주인공 보다 잠깐 조역으로 나오는 젊은 청년 모습을 한 바위에 갇힌 산신령 (이름에 정 뭐라고 했다.)이 더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제가 왜 도교를 좋아하게 설명하기는 간단하지 않으나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동양권 문화가 도교 문화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불교의 문화의 상당 부분은 도교와 겹칩니다. 중국의 불교가 정착하는데 있어, 이미 토속신앙으로 자리 잡은 도교와 공통점이 많아 쉽게 정착했다고 합니다. 저도 책을 읽다보면 어떤 것은 이것이 도교에서 유래한 것인지 불교에서 유래한 것인지 혼동될 때가 있습니다. 단편적으로 신라 시대의 골품제도에서 성골, 진골의 어원은 도교의 성인과 진인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자연自然( 이때의 자연은 자연 환경의 자연, 도올 김영옥의 표현으로는 그린벨트의 자연)인데, 도피적 성향도 있지만 목가적인 분위기, 안빈낙도의 매력입니다. 영화에서 보면 도교 계통의 사람은 흰색이나 회색 복장을 하고 시골에서 살고 있습니다. 도교 회화에서도 산천의 배경은 기본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철학적 의미의 자연自然( 이때의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 무위자연의 자연)입니다. 저의 가치관 중에 하나가 ‘하지 않은 것은 하지 못할 이유가 있다.’입니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때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입니다.

 
기억나는 영화대사 ;
http://blog.aladin.co.kr/maripkahn/4331965

 그 이유를 찾는다는 것이 플라톤적 사고이나 그 이유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 것조차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이유 없음일지라도.

 
이 자연은 무욕無慾과도 연결되는데, 저는 무욕이 너무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과욕의 끝이 대부분 좋지 않는다는 교육의 결과도 연관이 있었을 것입니다.

 
도교에 관해 철학적 이해 없이 (지금이라고 해서 철학적 이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도교를 노자와 장자로 대표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노자는 플라톤과 공통점이 있고, 장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공통점이 있는 것 같고, 황로사상( 이 책을 읽은 후로는 노장 사상을 황로사상으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은 또 다른 별개로 여겨집니다. 황로사상은 디오게네스와 공통점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친숙해서 그런가? ‘도교’라고 명시된 제목의 책을 읽은 기억이 없네요. 이 책은 읽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사조영웅전>, <신조협려>에서 전진교의 왕중양, 구처기 등의 인물과 활인사묘등이 도교와 관련된 것들이라 체계적인 것을 알고자 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중국에서는 역사, 사회 전반에 걸쳐 우리나라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 컸다는 것입니다. 도교의 인물과 용어가 역사적으로 어디에 위치하는지도 알게 되었고 삽화도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궁금한 것은 이 책에 언급된 수많은 도교 서적들의 이 이름만 남은 것인지, 아니면 실존하는 것인지와 그 책들의 내용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신선술에서 과학적인 면은 어느 정도 있는지 (아니면 전혀 없는지), 현대의 초자연 현상(투시, 염력, 텔레파시)와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는지 등 여러 가지가 떠오릅니다. 간략한 도교에 대한 정보는 얻었으나 보다 전문적인 강의를 듣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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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 읽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유쾌하고 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읽기 - 쇼펜하우어의 재발견
랄프 비너 지음, 최흥주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 쇼펜하우어 ; 잘 모르는 철학자

 일단 서평을 쓰기 시작하지만 이 책을 한 번 읽고 서평을 쓰기에는 제가 아는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받았습니다. (아주 강력히.) 저는 철학에 관심이 많다고 스스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제가 알고 있는 철학자는 딱 세 명입니다.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디오게네스. 책을 읽으면서 쇼펜하우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는데, 그럼 스피노자, 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있는가? 없습니다. 물론 데리다, 들뢰즈도 모르지요.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은 적도 없더군요.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로 인해 ‘자연철학’은 서양철학, ‘인문철학’은 동양철학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커서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인간도 자연인 고로 그 내용 속에 자연철학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위의 세 사람은 동양철학의 다음 세 가지와 대응하게 됩니다. ; 주리론, 주기론, 노장 사상

 이 세 가지는 저의 철학에 있어 단자monad에 해당합니다. 색의 삼원색과 같고 빛의 삼원광과 같습니다. ‘쇼펜하우어’이든 ‘칸트’이든 위 세 가지로 분석하고 환원합니다. 기독교 불교를 포함하여 종교도 위 세 가지로 환원합니다.

 현재는 수학이나 과학인 철학과 분리되었지만 예전에는 철학에 포함되어 있었고, 저는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면서 철학을 생각합니다. 뉴턴과 유클리드가 주리론이면, 하이젠베르크와 괴델은 노장 사상에 해당합니다.

 이 책에 관하여 말하면 유머로 읽히려면 저 보다는 철학서적 독서 소양이 더 필요합니다.
 (한 번 읽고 서평을 쓰려니, 쓸 말이 별로 없다. 다시 정독 후 쇼펜하우어에 대해 서평을 다시 써야겠다.) 쇼펜하우어에 대한 기억은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방은희가 외쳤던 철학자라는 것.
 책 구성에 관해서 말씀드리면, 검은색의 쇼펜하우어의 글과 붉은 계통색의 이 책의 저자가 한 말을 구분해 놓았는데, 붉은 색의 글씨를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차라리 미색의 배경에 검은 글씨로 인쇄하였으면 읽기에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쇄비용이 많이 들려나.)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 쇼펜하우어 대해 단편적인 생각


- 쇼펜하우어가 이야기한 ‘의지와 표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관념론과 실재론’은 오랫동안 철학적 논쟁이었다.
- 의지 ; 인지과학에서 단자monad(기본 module)으로 인정받게 될지 의심스럽다.
- 조경란씨가 이야기했던 3가지 종류 중 1) 인간이 자연과 화해하게 했고 문명이 자연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한 루소적 인간 2) 사려가 깊고 현명한 절제를 통해서 사람의 여러 가지 조건들과 갈등없이 지내는 괴테적 인간 3) 인간의 모든 질서가 비극적이면 일상적인 사람은 분열 그 자체라는 쇼펜하우어적 인물 ; 개인적으로 염세주의자의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 자신이 성악설과 비관론적 가치관을 갖고 있어 세상 자체에 관하여 대부분 염세주의적 결론을 내리니 말이다.
- 결혼 전 안해에게 나는 ‘기우’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한다고 했다. 안해는 이야기를 듣고 이 사람과 결혼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했다는 훗날의 고백.

* 평이하게 읽었던 철학 교양 도서 ; <철학 콘서트>,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 <한 권으로 보는 현대 사상가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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品川風俗 2010-10-05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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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석을 이렇게 본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나는 다석을 이렇게 본다 (반양장)
정양모 지음 / 두레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 나는 다석을 잘 모른다.

 ‘다석’ 책에서 봤던가? TV? 인터넷에서도 본 적이 없었나? 잘 모르겠다. 1981년에 돌아가셨으면 어디서든 슬쩍 봤을 텐데.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떠 오른 것은 김규항씨가 쓴 <예수전>입니다.
 이 책의 서평을 쓰면서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저는 잘 모르면 그냥 주저앉습니다. 목사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데,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정확한 반론의 논리와 증거 없으면 일단 기다립니다. 종교에 대해서는 판단이 쉽지 않는데, 그래서 판단 유보를 합니다. 하지만 저 나름대로의 판단은 있고,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기독교에 배중률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배중률을 적용하지 않으면 성경의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되지만 (예를 들면 예수님은 신이자 인간이다.) 제도권의 기독교에서는 종교 간의 배중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즉 기독교도 옳고 불교도 옳다.) 종교 중에 배중률을 적용하지 않는 종교가 힌두교인데, 기독교에서 선교가 가장 어려운 종교라고 합니다.

 p54
그런데 다석이 예수, 석가, 공자 모두가 똑같다고 하자 좌중이 웅성거리고 여기저기서 질문을 하려고 하였다.

 이 책을 읽으니 ‘다석’의 박학다식이 눈에 보입니다. 한자를 비롯해서 불교, 유교적 지식이 기독교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은 종교에 관해서는 언어의 유희나 박학다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총체적 통찰력 및 모순 없는 논리(교리)입니다.

 대학교 시절에도 성경공부를 하면 제가 이것저것 질문을 쏟아 냈는데, 순장님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답변을 얻지 못했습니다. 군복무 시절에는 목사님과 동거도 했는데 제가 질문을 드려도 답변을 주시지 않더군요.

 (그 당시 다른 사람들은 제가 목사님과 함께 산다고 저를 불쌍?하게 여겼지만 사실은 목사님 불쌍하게 지내셨습니다.)

 예전에 목사님이 우리나라 안에서 보면 잘 모르겠지만 밖에서 보면 한국 기독교는 불교적 요소와 무속적 요소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나요. 종교라는 것이 문화와 떨어져 생각할 수 있을까요? 사람 자체가 문화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는데.

 전능에 대한 농담이 있는데, 하나님은 전능할 수 없다. 하나님이 들 수 없을 정도의 무거운 돌을 만들라고 하는 것이다. 못 만들면 못 만들어서 전능하지 않고 만들면 들 수 없는 것이 있으므로 전능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인식의 한계를 반영합니다. 전능으로 무게라는 개념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버리면 됩니다. (지구에는 위아래가 있지만 우주에는 위아래가 없는 것처럼.)

 이 책이 문학이나 인문학 책으로는 매우 흥미로웠지만 철학이나 종교 책으로 다른 보조적인 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 교회 나가는 친구에게 던졌던 질문 ; 사람과 하나님과의 교제는 불완전한 것인가? 아니면 완전한 것인가?
* 한 핏줄 도서 <예수전> ; 무화과나무의 저주의 의미를 몰랐는데, 이 책에서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갑자기 김규항씨가 ‘다석’을 어느 정도 잘 알았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 ‘착한 고양이’님의 <예수전> 서평에서 발췌 ; 예수가 실재하지 않았다 한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존재 기반 안에서 예수(진리)는 살아있는 것이고, 그 해석은 모든 상황에서 다르게 이뤄진다는 아주 당연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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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먹으면 왜 안되는가?>를 리뷰해주세요.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 일상을 전복하는 33개의 철학 퍼즐
피터 케이브 지음, 김한영 옮김 / 마젤란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 철학의 끝없는 물음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에서 ‘철학이란 정답은 No!, 질문은 Yes’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저는 위 문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위 질문에 어울리는 책이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플라톤은 이데아라고 상위의 어떤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읽어보면) 니체는 별것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빈 서판>의 책에서, 사람들이 인지, 지능에 관하여 대단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지만 ‘사실은 별 것(?)이 없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별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아폴로 우주선이 달의 신비를 없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괴델은 ‘
수론에 적합한 어떤 형식체계의 무모순성은 그 체계 안에서는 증명할 수 없다.’라고 하였는데, 저는 이를 바탕으로 증명할 수 없는 진리가 존재한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증명할 수 없다면 그것이 진리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이언 스튜어트는 (<눈송이는 어떤 모양일까?>에서) 어떤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고(진리이고) 어떤 것이 의미가 없는지(우연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
그렇지만 모든 생물학적 특성이 다 적응은 아니다. 어떤 것들은 단순히 적응의 부작용이거나 부산물이다.’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의 질문은 니체가 말할 것처럼 특별한 답이 없을 수도 있고 괴델이 말한 것처럼 증명되지 못할 진리도 있을 것입니다.

 
진리는 다음과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1) 증명된 진리. (오류가 발견되어 진리가 아닌 경우 - 이 경우는 의미가 없겠다.)
 2) 증명되지 않았으나 진리로 여겨지는 경우 - 그러나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진리로 확신할 수 없다.
  2-1) 이중 일부는 후대에 증명되어 진리로 남는 경우
  2-2) 이중 일부는 후대에 오류가 발견되어 진리에서 퇴출되는 경우
  2-3) 영원히 증명되지 않는 진리

 플라톤은 2-3)의 경우를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2-1)와 2-2)를 인간의 노력(사고 및 실험)을 통해 구분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나 니체는 1)과 2-3)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를 읽었을 때, 저의 철학적 지식을 한 매듭을 짓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저의 서재의 카테고리 ‘좋은 책을 추천 받고자’와 ‘2006년 여름 이벤트’에서 제시했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의 저자인 황상윤 교수님께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철학의 본질인 질문이 넘치는 책입니다.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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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를 리뷰해주세요.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 - 일상에서 찾는 28가지 개념철학
황상윤 지음 / 지성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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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은 구름위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꼭 내가 쓴 글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 문장은 <후불제 민주주의>의 서평에도 언급했던 이야기입니다. 저의 정치적 가치관 및 지식이 <후불제 민주주의>에 요약되어 있다면 저의 철학적 지식 및 가치판단이 잘 정리된 책이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라고 할 수 있겠군요. 잘 모르는 ‘데리다’나 ‘들뢰즈’를 언급한 책이었다면 모르면서도 아는 체하는 라고 꽤 힘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주장하는 모든 것에 동감하는 것은 아닙니다. 후반부 정치적 가치판단에서 있어 동감을 하지만 추가되는 의문을 황상윤 교수님께 던지 싶은 구절이 여러 군데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인 철학의 유용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철학은 현실과 무관하다.’ ‘철학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철학교수인 본인은 그렇게 생각지 않겠지만 대부분 일반인들은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철학은 당연히 쓸모없다고 생각해서 입 밖에 소리를 내지 않지만 오히려 수학의 경우는 ‘수학은 현실과 무관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산수 정도면 충분하다. 단지 입시를 위해서만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그렇게 따지면 직업적 작가나 기자가 아닌 다음에야 문학은 뭐에 필요하겠습니까? 화가나 직업적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에게 미술 공부는 무슨 소용이 있나요?

 새로운 개념 몇 가지를 이 책에서 건집니다. ‘철학이란 정답은 No!, 질문은Yes!’ 저는 개인적으로 이 문장에 동의를 하지 않지만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라는 느낌을 갖습니다. 도덕과 윤리의 구분입니다. (저의 대학생 새내기 시절 대학 입학 후 거의 대부분이 읽는 책인) <철학의 기초이론>에 보편성과 특수성이라 단락이 있었는데, 도덕-윤리에서도 적용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저의 성향은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에 관심이 많습니다. 따라서 윤리를 총괄하는 도덕이 반드시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나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추론과 (사고) 실험을 추구합니다. 역시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적 사고방식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이때의 형상이란 지정의知情意를 말한다고 합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를 봅시다. 개에게 지식이 없는가? 냉장고 문을 열면 그 속에서 음식을 꺼내는 것을 안다. 사람이 야단치면 서글퍼한다.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으려는 의지가 있다. 개에게도 지정의가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다른 동물과 불연속적으로 구분되는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인간을 구분 짓는 비교적인 잣대는 '메타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관용에 대한 관용이냐 불관용이냐는 또 다시 선善이 무엇이냐, 윤리에 적용 받을 것인가 도덕에 적용 받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 됩니다. ‘강요된 선과 방임된 악 중에서 어느 것이 좋은가?’

 타인에 대한 삶의 인정 ; 강남에 사는 부자인데, 다른 사람의 간섭을 싫어한다. 부자세가 신설되면 세금을 낼 것이고 지금은 종합부동산세를 낸다. 법테두리 안에서 일하고 돈을 번다. 이 사람은 가난한 사람과 어울려 살기 싫다. 불쌍한 사람을 돕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나를 내버려도 둬!’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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